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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라 하면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연안을 침략하여 노략질을 일삼던 일본해적들의 통칭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왜구의 폐해를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왜구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의 노략질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와, 토벌을 통해 왜구를 물리친 이야기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 책 [왜구, 그림자로 살다]는 그런 왜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왜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왜구가 좋은 놈이었는지 나쁜 놈이었는지를 떠나 과거의 기록을 통해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저자는 고려와 조선, 그리고 명나라의 기록을 바탕으로 왜구란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막상 왜구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왜구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왜구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왜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 나타난다. 1223년(고종10년) 5월, 왜가 김해에서 도둑질을 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왜구(倭寇)라는 단어는 왜구가 조직적인 모습을 띠며 규모가 커진 1350년(충렬왕2년)부터이다. 공민왕 대에 이르러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해지기 시작하고, 우왕 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도 왜구에 대한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구가 바다를 건너와 약탈해간 것은 초기에는 진귀한 보물이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1323년 이후에는 미곡과 사람이었다. 즉, 식량과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잔인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우왕 때이다. 한반도 전역이 왜구에 의해 피해를 보자 고려는 왜구의 약탈금지를 요구하는 사절을 일본에 5차례나 보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와는 별개는 최영과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면서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시기의 왜구는 무리의 숫자도 많았지만 조직력을 갖춘 무력집단이었다. 내륙으로 들어와 주요도시를 공격하고 말을 타는 기병을 앞세워 고려군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는 등 군대로서의 면모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이들이 삶을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고 믿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기록은 한결같이 쓰시마가 왜구의 소굴이라고 적고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제도의 개혁으로 왜구가 방자하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이 축소되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적극회유에 나서면서 차츰 왜구의 약탈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명나라에서는 왜구의 약탈활동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여말선초의 기록과 중국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왜구는 동아시아 세계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고려의 말기적 상황, 중국의 원명교체기, 일본의 남북조시대가 겹치면서 혼란과 변화의 시기에 이들이 극성을 부리며 그림자에서 주역 아닌 주역으로 떠올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각국의 내부질서가 확립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안정되자 왜구는 점차 질서 안으로 편입되면서 다시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이 건국된 후 조선과 명나라에서 왜구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한 본체의 사람들이라 보고 있다. 왜구의 본체를 이룬 사람들이 처해 있던 상황, 즉 일본 내의 정치상황이나 조선과 명의 왜구에 대한 정책을 통해 왜구들이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419년(세종1년) 왜선 50척이 충청도의 비인현에서 조선의 범선을 공격하고 노략질을 했다. 이에 태종은 쓰시마섬 정벌계획을 세우고 이종무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정벌한다. 이후 중국은 왜구의 피해가 심각해졌지만 조선의 왜구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해도 좋은 상황이 되어갔다. 쓰시마섬의 도주는 왜구의 중국 약탈계획과 결과를 조선에 보고했고, 조선은 이들을 회유책으로 통제했다고 한다.
16세기 들어 왜구가 다시 큰 문제가 된 것은 중국 명나라에서였다. 해금정책이 느슨해지면서 늘어난 밀무역을 다시 억제시키자 이들이 왜구와 결합하면서 국가운영을 위협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이때의 왜구는 중국인의 수가 더 많거나 아예 두목이 중국인이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중국 해안지대가 이들의 노략질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는데, 이들을 중국 가정 연간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왜구라 해서 ‘가정왜구’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던 중 1555년 조선에서 을묘왜변이 발생했다. 조선은 쓰시마섬 도주가 보낸 보고와 별도로 난을 일으킨 왜구는 중국에서 노략질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가정왜구의 소행으로 보았다. 이후 바다를 통해 조선 연안으로 온 사람은 국적과 목적을 불문하고 모두 왜구로 취급했다.
저자는 왜구에 대한 기록을 통해 왜구가 극성을 부린 시기는 국가권력이 통제권을 일정부분 상실한 시기라는데 주목한다. 바다에 한중일 삼국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자 바다는 밀무역과 약탈의 현장이 되었고,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밀무역이든 약탈이든 이들 모두는 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려조에 처음 나타난 왜구, 여말선초에 출현했던 왜구 그리고 16세기에 나타난 가정왜구 모두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정체를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저자는 기록에서 그들을 살펴보고,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역사의 기록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한 집단을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왜구와 같이 우리에게 피해를 준 집단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마 그래서 저자는 이 글이 왜구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주제를 가지고 중점적으로 살펴본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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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구매하며 5만원 이상 맞추려고 구매한 책이라 기대도 없이 책 제목만 보고 구매를 했었다. 가격이 착하다 ㅎㅎ 책은 착한 가격 만큼 두껍지 않고, 비 인문학 전공자인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게 쓰여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왜구가 왜인들만 있다고 알고 있지만, 책에 나와 있듯이 왕직이나 다른 중국과 동남아 해적들도 왜구로 활동을 했었다. 후기 왜구로도 부르는데, 이런 부분까지 나와 있어서 나름 책은 괜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