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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삶과 돈, 죽고사는 문제에 대하여
"삶과 돈, 죽고사는 문제에 대하여" 내용보기
후반부 50페이지는 주옥같다. 외떨어진 단편소설일 수도 있었다. 소설 속 구절(대화)을 차용하면, 과정이 아무리 길고 벅차고 힘겨워도 결말이 좋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남은 자들의 시간은 떠난 자들이 남긴 시간을 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색으로 채색하면서 다시 시작된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 중 넷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누구의 죽음도 장엄하지 않은 동시에 장엄하고 아프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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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50페이지는 주옥같다. 외떨어진 단편소설일 수도 있었다. 소설 속 구절(대화)을 차용하면, 과정이 아무리 길고 벅차고 힘겨워도 결말이 좋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남은 자들의 시간은 떠난 자들이 남긴 시간을 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색으로 채색하면서 다시 시작된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 중 넷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누구의 죽음도 장엄하지 않은 동시에 장엄하고 아프지 않은 동시에 아프고 슬프지 않은 동시에 슬프다. 삶과 죽음에 대한 환상의 경계를 오색찬란한 무지개의 세계로부터 끌어내리는 것이 작가의 목표였을까. 의료보험제도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카피는 이 작품이 가진 여러가지 장점 중 하나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미국이라는 특정국가의 의료보험제도를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지만 금방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꼬박꼬박 세금을 걷어가는 국가가 정작 간절히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단지 미국적 상황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생명(목숨)의 가치가 자본(돈)과 맞바꾸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변화의 다양성이 미래에 대한 예측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서 미래는 물론 현재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재산을 모조리 팔고 치료를 해도 결국 죽을 일만 남은 가족이 생기면 당신은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운명을 사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은 지상에서 가장 무겁고 어렵고 아픈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늘 그러죠. 과거를 샅샅이 뒤져서 책임을 지려고 한다고요. 하지만 잭슨은 늘 '개인적인 책임'에 대해 떠들어댔잖아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잭슨 자신의 책임이죠. 그리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지만 내 잘못이기도 해요." (p.552)

 

엄마에게 "안녕, 엄마." 라고 말하고 "널 알아서 참 좋았어." 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미국은 내가 모르는 나라다. 그게 아니면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굉장하든지. 딸과 엄마의 이토록 쿨한 이별이라니. 조금 놀라고 조금 부러웠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건 정말이지 이 분량 긴 소설의 사소하고 느낌있는 일부분에 해당될 뿐이다.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담고 있는 가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는 도무지 절망하는 법을 모른다. 올 테면 와라, 난 내 갈 길을 갈 테니. 같은 전투적 의지마저 느껴진다. <내 아내에 대하여>는 수리공 셰퍼드의 아내이자 금속 공예가(주부) 글리니스에게 출구 없는 불행이 닥치면서 시작된다. 셰퍼드는 복잡하고 윤기없는 이 도시를 떠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프리카 섬 펨바에서 하루 1달러로도 풍족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남자다. 드디어 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달려온 셰퍼드에게 닥친 시련은 단지 가족들이 따라나서지 않거나 저축해둔 돈이 없어지거나 남들이 썩은 감성에 인생을 맡긴다고 비판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내의 몸을 찾아온 불치의 희귀병은 순식간에 한 가정을 쓰나미처럼 쓸어버린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소 인권 보장 제도에 속하기도 하는 의료보험제도가 안은 매커니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즈음 찾아보면 좋다.

 

이야기는 길고 깊고 가차없다. 직장동료이자 오랜 친구 잭슨과 아내 캐럴, 유전적 희귀병을 앓는 큰딸과 아프기라도 해서 언니보다 더 관심받고 싶어하는 둘째딸이 합세하고, 말년에 요양원으로 가게 된 아버지와 벌이 없이 하고싶은 일만 하며 경제적 보조를 요구하다가 드디어 아버지 집을 꿰찬 여동생 베릴의 이야기까지 더하면 앞에 놓인 카메라가 관찰하는 영역의 넓이 또한 깊이 못지 않게 놀랍다. 셰퍼드의 결단은 다소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 병과 돈처럼 원하지 않았으나 찾아온 것들과 투쟁할 수는 없으니 지금 이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상통한다. 병명을 듣는 순간 글리니스의 삶은 예견되었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셰퍼드는 모든 선택과 결정, 부채와 책임을 혼자 떠안는다. 그의 고독과 방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내가 그라면 그처럼 할 수 있을까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미래 속에 몇 사람이 오고 간다. 누가 죽어가든 말든 살아있는 자의 생은 계속된다는 가혹함에서 놓여날 이가 있던가. 여전히 현실과 접점에 서 있는 분노와 무기력, 절망. 죄없는 환자 한사람으로부터 시작해 질서 없이 뻗어나가는 핏줄처럼 선연하게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배. 물이 꽉 들어찬 배의 가라앉음. 배는 모두를 태운 채 침몰하기 직전 기적처럼 끌어올려진다. 마치 지상에서의 가장 소중한 마지막을 빛낼 한 줌의 행복을 찾으라는 듯이.

 

병에 걸린 것 이외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 또 계속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 흐르는 630쪽 분량의 페이지는 슈라이버의 도무지 가벼울 줄 모르는,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꼼꼼하고 집요한 성격에서 기인한다. 지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던지되 섣부르게 감상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시니컬하면서 깊고 강렬한 문체는 다소 예상되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쉽고 빠르게 넘기기 어렵게 한다. 길고 긴 시간을 건너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꾸고 있는 꿈이 처음에 꾸었던 바로 그 꿈일까. 아프리카 섬의 해변가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미국 대도시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같은 색일까. 우리를 배신한 세금은 지금쯤 어느 별을 유영하고 있으려나. 죽음은 삶의 일부가 아닐까. 이야기를 읽기가 힘겹던 이유는 단지 머리와 가슴이 따로노는 죽음에 대한 인지법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 어떤 의료보험제도도 죽어가는 사람 모두를 살려낼 수는 없다. 돈의 문제를 떠나 병의 문제인 경우도 있으며, 돈 문제일 경우를 막기 위해 제도를 보장해나간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세금은 현재를 갉아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출구가 없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죽음이란 삶만큼이나 필연적이고 친숙하다.   



s*****d 2014.02.02. 신고 공감 18 댓글 131
리뷰 총점 종이책
『내 아내에 대하여』불치병에 걸린 이를 돌보는 가족에 대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내 아내에 대하여』불치병에 걸린 이를 돌보는 가족에 대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내용보기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아픈 사람을 보살펴야 하고, 개인의 생활은 없을 정도가 되어 간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병명이 불치병이든, 불치병이 아니든 오랜 병원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누군가가 아프다고 말하면 짜증까지 일어날 태세다. 병원에 입원하다보면 자주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자주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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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아픈 사람을 보살펴야 하고, 개인의 생활은 없을 정도가 되어 간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병명이 불치병이든, 불치병이 아니든 오랜 병원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누군가가 아프다고 말하면 짜증까지 일어날 태세다. 병원에 입원하다보면 자주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자주 방문하게 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문하는 기간이 띄엄띄엄 해진다. 마음은 자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다른 일로 바빠지게 된다. 한쪽 마음으로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지만, 좀처럼 시간내기가 힘들어진다. 아마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리라.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는 불치병에 걸린 이를 돌보는 가족에 대한 모든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책 속의 주인공 셰퍼드는 '복막중피종'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복막중피종'이라는 병은 복막을 감싸고 있는 미세한 막에 종양이 생긴 경우다. 중피종은 석면이 원인이 되는 병이기도 하다.

 

셰퍼드는 늘 '제2의 인생'을 꿈꾸었다.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곳, 천국같은 그곳에서 자신의 제2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구두쇠처럼 돈을 쓰며 돈을 모아왔다.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표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아들의 표도 구입했다. 왕복이 아닌 편도로 끊었다. 드디어 아내에게 말하기로 결심한 날, 아내가 가지 않는다고 해도, 혼자서라도 출발하고 말겠다고 결심하고 아내에게 말을 했건만, 아내는 더 충격의 말을 한 것이다. 자신은 따라가지 못한다고. 암이 걸려서 남편의 의료보험을 사용해야 겠다고 말한 것이다.

 

몇달 전에 미국에 사시는 시댁 큰집 시누이가 한국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이라 의료비가 너무 비싸고, 유명하다는 의사는 만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서 한국에 와 진찰을 하고 수술 받기로 했다며, 한국이 의료비가 저렴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의료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것처럼 셰퍼드의 말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와 희귀병으로 인해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의료제도를 고발하고 있었다.

 

책의 한 장이 시작될 때마다 셰퍼드의 은행 잔고의 순자산가치가 나오는데, 셰퍼드의 아내 글리니스가 치료를 받을때마다 그들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여준다. 셰퍼드가 속해 있는 회사의 의료보험 회사와 수술을 위해 찾아간 병원과 제휴된 게 아니라면 그 병원비는 셰퍼드에게 청구서가 다 날아오게 되는 것이다.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잔고는 1년여만에 100만달러에 가까운 돈에서 3천달러 정도만 남은 파산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에게는 초기때부터 함께 일해온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잭슨이 있다.

잭슨에게도 아픈 딸이 있었다. 열일곱 살의 플리카는 FD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잭슨의 아내 캐럴의 삶은 모든 것이 플리카에게 맞춰져 있었다. 잭슨의 의료보험으로는 딸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의료보험 회사가 좋은 IBM에 취직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내고 있는 건강보험이 정작 보험 적용이 안되는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 처럼 개혁안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암수술을 받고 나면 5년까지 병원비에 대해 많은 혜택이 있다고 들었다. 완치 판정이 나는 5년이 지나면 혜택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처럼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더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사실 찔리는 부분도 많았다. 가족 중에 한 분이 말기 위암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몇번 찾아뵙지 못하게 보내드린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만날때마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흑빛으로 변해가는 얼굴색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비슷한 말의 안부전화 드리기도 어려워했었던게 생각이 났다.

 

책에서는 글리니스가 암에 걸리고, 가족들, 친구들이 처음엔 안부 전화도 자주하고, 찾아오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더니, 글리니스의 병이 깊어질수록 전화를 거는 횟수도, 시간도 짧아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뜸해져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셰퍼드의 생각을 통해 전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아픈 사람에게는 몇마디의 위로가 크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과 친구들때문에 상처받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건네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책은 이런 모든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아픈 사람의 화를 내는 감정,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가족들의 감정, 아픈 가족을 살리고싶은 마음과는 별도로 결국엔 돈이 문제라는 점, 돈이 없으면 치료를 못받을수 밖에 없는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들 말이다. 

 

예전의 우리나라 같은 경우 암에 걸린 이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넸는데, 이번에 셰퍼드의 생각들을 보면 본인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졌다. 본인이 살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어질때도 제대로 이별을 말하지 못한다는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삶을 병원에서 있기 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이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결말을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지만, 만약 죽음이 정해졌다면,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게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왜 나여야만 했는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 편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도 하게 되지 않을까.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왠지 긍정적인 마무리처럼 보여진다. 아마도 셰퍼드가 최선을 다해 글리니스를 돌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셰퍼드의 염원인 셰퍼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서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4.01.13. 신고 공감 7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그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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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이 마지막 관문에는 죽음의 문턱,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해야 하는 잔인하고 무서운 시간들이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사회 구조와 제도권 내에서의 중산층의 삶에 대한 불공평함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잭슨, 그리고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린 여자 글리니스의 죽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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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이 마지막 관문에는 죽음의 문턱,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해야 하는 잔인하고 무서운 시간들이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사회 구조와 제도권 내에서의 중산층의 삶에 대한 불공평함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잭슨, 그리고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린 여자 글리니스의 죽음이다. 그러니까 충격적인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에서 스스로 사라진 한 사람과, 서서히 저항하며 사라진 한 사람, 그 두 사람의 대조적인 죽음을 통해 우리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기 직전의 문제, 그 아무도 이야기하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을 가득 메운 죽음의 그림자는 도도하고 심술궂고 이기적이고 예술적이고 우아한 글리니스의 것이다. 그리고 'So Much For That'이라는 원제의 이 책은 그 죽음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 한 사람의 죽음에게는 기막힐만큼 부수적이지만, 남겨질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될 만큼 중요한, 하지만 여전히 '부수적인' 것들을 다룬다.

 

글리니스가 중피종이라는 희귀암을 통해 죽음으로 다가가는 방식은 현대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표준에 가깝다. 아프고,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위험한 병이라는 소식을 듣고, 살기 위해 살아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지조차 모른 채, 인내하고, 견디고, 참고, 싸우면 한 줌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헛된 기대에 모든 것을 건 채, 한발 한발 주위의 사람들과 멀어지고, 남겨질 사람들의 생을 위한 담보들을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서, 죽음에 다가간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지막 치료만 끝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그렇게 우리 시대에게 죽음에 다가가는 방식은 그 어느 시대의 죽음에 이르는 방식보다 잔인하다. 다른 시대의 죽음을 이렇게까지 천천히 600쪽 페이지 전체에 걸쳐서 얘기한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보다 더 무섭고 이보다 더 파괴적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끝갈 데까지 가버려 이제는 브레이크를 걸어 세울 수도 속도를 늦출 수도 없이 계속해서 최고 속도로 달려도, 자멸로 치닫는 설국열차, 그 자본주의와 닮아 있다. 우리는 어느새 의학이 거의 포기한 불치병마저도 긍정의 힘으로 누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타도 대상이자, 누가 이기나 악물고 싸워야 할 경쟁 대상으로 여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병마와 싸운다는 은유가 그렇다. 누가 무얼 휘두르고 찌르고 부러뜨리고 파괴하나. 병이 와서 몸이 아픈 것 뿐인데.. 그 아픔을 겪는 것, 경험한다는 것, 그것일 뿐인데,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상태를 우리는 싸운다 여긴다. 사실 죽음은, 병은, 암세포는 그렇게 내가 고통을 참고 견디고 언젠가는 살아낼 수 있다고 소망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는 적군이 아니다. 의지와 분투와 노력으로 오르고 정복할 수 있는 어떤 숭고한 지상 목표도 적군의 진지도 아니다.

그녀는 물 없는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하지만 저편에는 '그 후 이후의 글리니스'라는 오아시스가 놓여 있었다. 과거의 글리니스와 똑같지만 그보다 더 나아진 미래의 글리니스, 그녀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마지막 항암 치료 광경이었다. 닥터 골드먼이 의기양양하게 이제 다 끝났다고 선언하는 광경. 셰퍼드가 일 년에 한 번씩 뒤뜰에 있는 그 바보같은 분수들을 씻어낼 때 부스러기와 침전물이 빠져나가듯 그녀의 피에 남아 있는 사악한 물질도 곧 빠져나갈 거라고 선언하는 광경. 그녀의 소변에서 나던 젖은 콘크리트의 칙칙한 냄새도 하루하루 조금씩 빠져나갈 것이다.

잘 죽는 것도 하나의 소망이다. 나는 나의 마지막을 글리니스처럼 가정의 재정을 파탄에 빠뜨리고, 자신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의 삶을 벼랑끝까지 몰아 함께 파멸하는 길을 택하고 싶진 않다. 또한 글리니스처럼 희박한 생존가능성이라는 팩트를 외면한 채 허무하고 덧없는 희망을 품고 독성 화학요법에  몸이 부스러기 재처럼 조금씩 타 없어지듯 고통스런 방식으로 서서히 죽음과 마주하기도 싫다.  죽어 시체가 되기 전 숨쉬고 있을 동안엔 최소한의 인간된 존엄성을 지키는 것. 남겨진 사람들의 몫을 죽음을 가지러 가는 길목에 다 소비해 버리지 않는 것. 그렇다. 그것은 누구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글리니스랑 나는 늘 빠듯하게 살았어. '두 번째 삶'을 위해 종잣돈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말이야. 샴푸는 두 개 사면 하나 끼워주는 행사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 샀어. 화장지는 값싼 홑겹으로 열두개들이를 사다 쓰고,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도 칠면조 버거를 할인하면 그걸 사다 먹었지. 그런데 이젠 한 번에 5백 달러, 5천달러씩 나가. 게다가 얼마인지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맘먹고 돈 쓰러 나온 것처럼 가격표도 없는 물건을 카운터에 잔뜩 쌓아놓은 것 같아. 본인 부담 비율은 20퍼센트 밖에 안되지만 가입자 우선 부담금 5천달러를 낸 후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 검사 비용 하나만 해도 화장지를 엄청나게 살 수 있는 돈이라고

 

결국 글리니스는 자신의 중피암의 암세포 증식을 3개월 더 연장하기 위해 백만장자라고 불리웠던 돈, 우리돈 10억을 모조리 써버렸다. 이것은 물론,  기업의 이윤을 목표로 한 불합리한 사설 의료보험 서비스의 제도적 헛점과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그렇게나 목청높여 주장하는 초현실적 '미국적으로 현실적'인 의료수가가 교묘하게 모의한 미국의 현실적 항암 치료비이다. 게다가 우리의 미국적 긍정 철학을 가진 담당 의사는 3주 겨우 남아 있는 글리니스에게 보험 적용이 안되는 새로운 항암제 1억짜리 항암제를 시도해 보자고 설득하고 있다. 제정신인가. 3주 남은 시간, 그 한 줌 남은 숨결을 또다시 항암제 투여로 때우라는 것이다. 게다가 잭슨에 의하면 이렇게 막대한 개인 의료비를 지불하는 미국이 의료 서비스 면에서는 내가보기에 OECD 국가 중 꼴찌다.

다른 부유국들과 비교해보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의(내가 보기에 OECD 국가 중) 유아생존률이나 암 생존율 뭐 그런 주요 통계를 보면 맨 꼴찌야 게다가 돈도 두배로 내고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아이러닉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셰퍼드와 잭슨의 파산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소시민적 삶이 파산과 함께 파멸되는 것을 느꼈고 그것과 더불어 탐욕의 끝, 자본주의의 끝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작은 귀퉁이가 마모되다 보면 둑은 무너지고 시스템 전체는 붕괴된다.
남편은 대학을 포기하고 그가 숭고하고 정직하다고 믿는 육체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만물수리상을 차려 집안을 일구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백만 파운드에 사업체를 넘기고 잠시, 그 꿈을 실현할 준비를 한다. 그가 꿈을 위해 타협되지 않은 많은 것을 과감히 내던진 채, 드디어 일생을 통해 꿈꾸어왔던 그 소박한 미래, 건강한 꿈을 위해 성큼 한 발짝 내딛었을 때, 매력적인 그의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복수하 듯, 도도하게 말했다. 당신의 의료보험이 필요해.

 

미국의 사회와 제도는 잭슨의 입을 통해 통렬하고 시니컬하게 해부된다. 어찌 보면 그는 미국 내 보수 성향에 가깝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의료 보험의 헛점은 잘 통제된 의료수가와 사회안전망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에게는, 정직한 서민의 월급을 온갖 종류의 세금이라는 이름하에 갈취해가는 정부와, 무임 승차를 권리로 아는 게으른 하층민들에게 자신들의 원래 몫을 떼어주지 않아야 했다. 그는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의 혜택을 위해 49퍼센트의 '찐드기'들을 위해 51퍼센트의 '찐따'들이 죽도록 일하고 있다고 보았다. 잭슨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65세 이상의 환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는 메디케어는 응급 관리만을 제공해준다. 장기 환자는 정부로부터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호구 주인공 셰퍼드의 아버지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수술비만 덩그러니 지원받고, 그 이후의 서비스는 온전히 그의 몫으로 돌아가 버렸다.

 

몰염치하고 뻔뻔한 찐드기 여동생 베릴의 등장은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에 다채로운 색상을 보탠다.  베릴은 40이 넘도록 자신의 집세를 감당하지 않으면서 골절 때문에 요양중인 아버지의 재산을 탐하는 뻔뻔녀이다. 부모의 집을 차지한 대가로 병든 부모를 돌보기는 커녕, 함께 살기 싫어, 돌보기 싫어, 근처의 사설 요양원에 보내 놓고는 집을 차지하고  방문조차  하지 않는다. 1년에 1억씩하는 사설 요양비를 부담해야 하는, 지리적으로 먼 곳에 위치한, 죽어가는 아내의 병수발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요양원 방문조차 미루는 인간 쓰레기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난방비까지 부담해야 공평한 게 되어버리는 찐드기. 왜 미국의 중산층이 그토록 오바마의 사회안전망 확충 제안에 대해 그토록 치를 떨고 반대하는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는 캐랙터이다. 베릴은 잭슨이 혐오하는 찐드기, 즉 성실하게 일을 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면서 자신의 몫을 정부라는 탐욕스런 괴물에게 갈취당하는 찐따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에 등골 브레이커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예를 들어 가족 내 찐따와 찐드기를 구분하자고 치면,  설사 그녀가 항암에 치르는 막대한 비용을 예외로 치더라도,  사실 가장 큰 찐드기는 바로 셰퍼드의 아내 글리니스이다. 그녀는 결혼생활 27년동안 오로지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 그녀의 고상한 취향을 만족시켜 왔으면서, 막상 남편이 원했고 처음부터 두 사람의 함께 설계했던 미래, 그토록 남편이 갈망하는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결국은 이런 저런 핑계로 배반해 왔다. 여기서 나는 그의 제 3국 이민과 육체적 노동을 통한 소박한 삶이라는 숭고한 계획에 동의하려는 게 아니다. 셰퍼드의 주위 사람들이 누누히 말해 오고 있듯 제 3자들에게 제3국은 도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핑계는 구구절절 옳다. 내가 주목한 것은 저자가 주인공들을 통해 말하는 것, 두 사람의 공생관계, 더 나아가서 인간과 인간의 제도적 공생관계가 찐따와 찐드기들의 일방적 퍼주기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시각이다. 우리 여자도 여자에게 불리한 수많은 편견과 핍박과 관습의 역사에서 살아남다 보니 영악해져서 21세기쯤에는 본인의 능력으로 살아남는 것보다 찐따와 가족을 이루고 찐드기가 되어 사는 편이 훨씬 유리한 경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건 찐따의 2세를 출산할 수 있는 생물학적 요건이 우월한 신체적 정신적 매력과 결합해 찐따에게 만족스런 찐드기상을 소유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우에 한해서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술을 핑계로 집안일도, 아이키우기도 잘 하지 않았으면서, 가정 경제를 위해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집을 구성하는 물건들의 색깔과 위치와 가격과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는 실제적 소유주였다.

파이와 아이들, 부엌 바닥 이외에 '그 전의 글리니스'가 정확히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전의 글리니스'가 평소에 금속 공예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그것이 수수께끼였다.

그리고 그녀의 착한 남편이 그의 친동생에게 퍼주는 돈에 대해 베릴을 험담할 권리를 똑같이 행사했다.

"오히려 정 반대지. 자기가 수혜자는 커녕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항상 불만이 가득하잖아". 셰퍼드는 그건 글리니스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꼼짝없이 집 안 혹은 병실이라는 공간에 유폐되어 회복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붙잡고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불치의 암 환자에게 병문안은 유일한 사회적 접속 포인트이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에게 면회를 요청하는 암이라는 충격 요법은 대개 한 두번이면 끝난다. 게다가 대화 주제는 갈수록 빈곤해진다. 환자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는 모두 몸에 일어나는 것들 뿐이고, 병문안자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아픈 환자에게 염장지르는 자랑질 혹은 불평 중 하나에 해당된다. 그래서. 환자는 자신의 소박한 집 밖에도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점점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불치병 환자의 마지막에 고립은 덤이다.

사람들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맹렬하게 목숨을 유지하려고 버틴단다(p426)

한 때 그녀가 동행을 원하지 않는다면 혼자 두고 떠났을 하지만, 이제, 고통을 저당잡아 헛된 희망에 유배된 채 나날이 죽어가고 있는 그녀의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아야 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차라리 의식을 잃는 편이 행복이 되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바랄 수 없어 그저 경감되기만을 바라는 세상. 그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도 간절한 나머지 정말 이곳을 떠나게 된 것 같았다. 저 관들이 쇠사슬처럼 지하 감옥에 그녀를 묶어 놓은 것 같았다. 강력한 칼로 그것들을 끊고 싶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품에 안고 가운을 질질 끌면서, 택시와 핫도그와 코카인 중독자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전당업자 등이 가득한, 댕댕거리는 밝고 부산스러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그의 여인을 내려주어 그 분홍빛 맨발이 차가운 콘트리트에 닿으면 그녀는 다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무섭다. 누구나 거쳐야하는 죽음을 이렇게 실존적으로 묘사해 놓은 책을 본 적이 없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 속의 죽음은 극적 효과를 일으키는 감상적인 것들이었다.  슬프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그런 종류의 형용사이거나 부사였지 동사나 주어나 목적어가 아니었다. 

생각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힘겹게 해낸 생각 가운데 투자한 에너지만큼의 가치가 있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이 생각, 즉 '생각 없이 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그게 모든 것의 표준이 되었다. 그냥 사는 것, 살아 있는 것.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주로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경우, 살아 있는 것이 그토록 소중한 일이 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서히 소멸해가는 것, 생각하는 에너지를 잃고, 생각하는  생각 마저 잃고, 그래서, 살아있는 의미와 집착을 잃고, 기억을 잃어가는 것. 죽음에 이미 그만큼 성큼 다가가 있는데도, 그녀는 기계적으로 항암제를 투여받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생각할 힘과, 집착을 잃은 채로..상상할 수 없어 그리워할 수도 없는 채로 숨쉬고 있는 시간들 말이다.

더 이상은 집착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그리워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착이 사라진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녀가 아는 것은 그 뿐이었다.

나는 엉뚱하게도 글리니스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딸과 마지막 포옹을 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끝까지, 아픈 엄마의 면회를 주저했던 딸 아멜리아도,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인생의 패배로 규정하고 맞서 싸우려 했던 글리니스도, 숙연하게 끝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이 될 그 순간에 서로를 포옹하던 그 순간에, 울지 않고 편히 보내주던 그 순간에...

 

마지막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작가의 유토피아적 환상이라 결론짓는다. 비극적 결말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 전혀 무리없는 설정이었고 완벽한 소설적 구성을 이루는 결정적 몫을 했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고, 섹스할 수 있는 사람은 섹스하고. 헐리우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듯 완성된 결말이 많은 사람의 비극적 죽음을 결국은 해피하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한 것은 그 험난했던, 600 페이지에 걸친 글리니스의 죽음에 이르는 긴 여정을 헉헉거리며 따라오다 녹초가 된 독자의 감정 상태를 복구시키는 힐링 과정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g******1 2014.01.20.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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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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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로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결코 적지않게 묵직한 여운을 남겼던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다시 한 번 그 가족에 대한 것을 들고 우리들에게 찾아왔다. 소설 '내 아내에 대하여'가 바로 그 작품이다.   원제는 'So Much For That'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거기에 대해 할만큼 했다' 정도의 뜻일텐데 소설 제목으로는 참 어울리지 않는 지라 굳이 '내 아내에 대하여'로 바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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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에 대하여'로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결코 적지않게 묵직한 여운을 남겼던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다시 한 번 그 가족에 대한 것을 들고 우리들에게 찾아왔다. 소설 '내 아내에 대하여'가 바로 그 작품이다.


  원제는 'So Much For That'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거기에 대해 할만큼 했다' 정도의 뜻일텐데 소설 제목으로는 참 어울리지 않는 지라 굳이 '내 아내에 대하여'로 바꾼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원제에서 'That'은 주로 주인공 셰퍼드와 관계된 것으로, 그건 희귀한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아버린 아내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원래 재산이 좀 있는 중산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의료 보험 제도 때문에 아내의 병을 치료하느라 일시에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만들어버린 미국이란 국가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내에 대해서라면 남편으로서 해 줄만큼 해줬다는 뜻이 될테고 국가에 대해서라면  오로지 흡혈귀처럼 국민을 착취하가만 하는 그런 불합리한 국가에게 참을만큼 참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위싱턴 포스트지의 평론가 론 찰스는 '나는 감상주의가 없는 슈라이버의 작품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동감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작품이 '케빈에 대하여'보다 더 좋았다. 근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에 있다. 집안에 연쇄살인마는 없어서 '케빈에 대하여'에서의 어머니 마음은 '과연 어떨지?' '소설의 말이 맞을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가까이서 좀 오래 병 수발을 해 본 나로서는 '내 아내에 대하여'에 드리운 셰퍼드의 경험과 고뇌들이 그저 진실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그것도 누군가 꼭 곁에서 돌봐야 하는 정도의 중병이라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뜻한다. 그건 생각했던 것만큼 결코 만만치 않다. 매일 일어나 산 위로 무거운 돌을 등짐지고 날랐던. 저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나라의 백성들만큼이나 힘들고 마음 아픈 일상들이 계속된다. 마음과 몸만이라면 괜찮을 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일 것이다. 나날이 쌓여져가는 치료에 드는 비용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는 집까지 파는 것도 모자라 계속 빚을 내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이 급기야 온 가족마저 어두운 미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모든 희생을 감내한다. 도대체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So Much For That'을 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셰퍼드도 그렇다. 그는 원래 제법 괜찮게 사는 축이었다. 우연찮게 시작했던 사업이 성공을 거두었고 그 사업을 또한 백만달러라는 가격에 팔아 현재와 미래가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좀 더 저축하여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새로이 시작하고 싶다는 꿈. 그는 그걸 '세컨드 라이프'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연히 맞이한 아내의 암으로 그 꿈을 이루기는 커녕 당면한 현실마저 급속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착실했다. 사업을 할 때도 조그만 자신의 이윤 보다는 고객의 신뢰를 선택하여 결국 성공에 이르게 한 사람이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잭슨은 언젠가 그런 그를 이렇게 타박했다. "왜 세상의 모든 짐을 너혼자 다 떠안으려 하느냐!"라고. 그만큼 그는 책임감이 강하다. 사랑하는 아내도, 요양이 필요한 목사였던 늙은 아버지도, 제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보다는 예술한답시고 오빠에게 빌붙기 바쁜 여동생도 자기 밖에 모르는 딸도 그리고 이제는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까지 다 맡으려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타인들에게 'So Much For That'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론 찰스의 '감상주의가 없다'라는 말은 그 때문이었다. 다른 작가였다면 어쩌면 영웅적으로도 묘사했을 셰퍼드의 모습을 슈라이버는 결코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슈라이버는 신중하게도 마치 작가 자신의 냉소를 대변하듯 누누히 옆에서 그의 짧은 식견과 바보 같음을 탓하는 존재를 소설에다 만들어놓았다. 그게 바로 그의 친구 잭슨이다. 잭슨은 끊임없이 셰퍼드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냉소를 날린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바보같은 믿음이라고. 과연 그 말 그대로 그토록 헌신한 셰퍼드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친구 관계도 좋고 직원들에게 존경까지 받았던 셰퍼드지만 아내의 암과 더불어 있게 되자 모두들 떠나간다. 물론 처음엔 가족이고 친구고 이웃이고 할 것없이 달려와 위로의 말과 당연히 아낌없이 도와주겠다는 말들을 해댔다. 하지만 그건 말뿐이었고 결국 셰퍼드와 그의 아내가 맞닥뜨린 건 그들과의 결별 뿐이었다. 찾아오기는 커녕 연락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사정을 뻔히 아는데도 여동생은 어떻게든 자신이 힘든 것을 피하려하고 회사 사장은 셰퍼드 때문에 늘어난 보험부담만 탓하더니 직장에서 잘리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그건 곧 아내가 죽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매정하게 해고해 버린다. 잭슨도 그렇고 셰퍼드도 그렇고 결국 아무도 자신만큼 아파해 주지도,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할만큼 했다고 느낀 잭슨은 권총 자살을 하고 셰퍼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버리게 된다.

 슈라이버의 냉정한 시선이 포착한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좋을 때만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기꺼이 힘들 때 곁에 있겠다고 도와주겠다고 말들 하지만 진짜 어려움에 닥쳐보면 똑똑히 깨닫게 된다. 그건 정말로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최근에 시작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게도 이런 대사가 있더라. 인간이 철들기엔 인생이 너무도 짧다고. 인간은 약하다. 인간은 다른 이를 자기 몸처럼 챙길만한 존재가 못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꽤나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환자를 보살피고 있는 이들에게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면. 주로 실제 해보지도 않은 자들이 그런 말을 한다. 또한 그런 이들은 꼭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자기는 고생을 이만큼이나 해봤다는 식으로. 또한 그런 자들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치료에 대해 어떤 제도적인 잘못된 점이나 개선해야 할 것을 말하면 꼭 온정주의적으로 응수한다. '좀 더 바지런히 수발하면 될 것을 뭘 그런 것까지 요구하나?' 혹은 '부모인데 그정도도 못 해줘? 나라면 기꺼이 가진 것 다 내놓겠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소설 속 셰퍼드의 여동생 베럴의 반응이 그냥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제도적 구멍, 불합리등을 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겠지. 나서서 도와달라고 하면 '시간이 없는데', '이것 참 사정이 안 따라주네' 하면서 얼마든지 달아나서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안다. 경험도 없고 생각이 가벼운 자들이 남 비판 또한 가벼이 한다는 것을. 또한 그런 그들에겐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도.


 한 사람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온정주의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다. 슈라이버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듯이 인간이 아직 그럴만한 그릇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던가? 개인에게 벅찬 짐이 될 것을 알기에 제도를 통하여 그 짐을 덜어주도록 말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게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임금을 주는 것이다. 그게 이런 국가의 기틀을 세운 홉스가 말한 사회계약론의 모토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의 국가는 소설에 나오는 잭슨의 말대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세금은 대선에 개입할 목적으로 불법 댓글이나 달고 철도 민영화 저지를 위한 파업 진압을 위해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 수천명의 경찰을 동원하고 세금으로 만들어진 각종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비용은 우리같은 국민이 부담하게 만들고 이익은 소수의 힘있는 자들이 챙기게 하는 데 쓰이고 있다. 매일을 안녕하게 보내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는데 보라! 이제 그 국가는 도리어 우리가 서로에게 '안녕하십니까?'하고 묻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나에게 뭘 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모두는 어제도 오늘도 국가에 대해 'So Much For That'했다. 그런데 응당 받아야 할 몫은? 과연 우리는 준만큼 돌려받고 있는 것일까?

 슈라이버가 냉정한 시선으로 셰퍼드의 삶을 그리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온정주의, 아니 더 쉽게 말하자면 '휴머니티'적인 것을 지우고자 함이다. 언젠가 강신주가 경희대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짜 사랑한다는말을 할 수 있는 건 남편이 다리가 잘려 실직해 집에서 놀게 되었을 때 '아, 이제 비리소 내가 마음껏 돌봐줄 수 있게 되었다'면서 기뻐서 업고 다닐 때'라고. 휴머니티라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되어야 휴머니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의 삶을 나의 삶만큼 책임져 줄 수 없다면 그건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일 뿐이다. 아시다시피 그 정도를 해 줄 수 있는 인간은 정말로 얼마 없다. 아프기는 커녕 돈만 못 벌어도 내쳐지는 세상이다. IMF 때 급증한 이혼률이나 지금도 여전히 경제적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가 많음을 보라. 그러므로 제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제도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이다. 환자에 대한 수발과 치료는 그 중에서도 한 인간의 힘으로는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제도가 반드시 도와줘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꺼이 세금이라는 걸 내는 것이다.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는 그걸 똑똑히 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정말 무엇을 시급히 고쳐야 하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 그녀는 소설이 불러 일으킬 모든 감상주의를 휘발시켜 버린 것이다.

 이 책에서 당신이 보게 되는 건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실이다. 당신이 누가되었던 셰퍼드가 당했던 곤경을 당하면 당신도 혼자서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고난의 파도를 보다 쉽게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제도라는 둑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매일 그 둑을 좀 더 높고 두텁게 만들기 위해 세금을 낸다. 하지만 국가는 자꾸만 그 둑을 얇고 낮게 만들어 가고만 있다. 결국 셰퍼드는 미국을 포기한다. 마지막의 문장은 셰퍼드의 이같은 고백으로 끝난다.

  "다 허튼 소리였다. 그의 탈출은 끝내주게 좋았다."

  셰퍼드처럼 이제 우리도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시작은 '내 아내에 대하여'였지만 그 끝은 '내 국가에 대하여'가 되는 소설. 오늘의 현실이 뭔가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고 왠지 주정뱅이에게 운전을 맡긴 것처럼 불안하다면 부디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이 책에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든 슈라이버는 국가와는 달리 충분한 보상을 해 줄 것이다.







l****1 2013.12.22. 신고 공감 5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에 조금 가벼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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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어서 다행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 소설은 두번째다. 전에 《케빈에 대하여》는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나았다. 우울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병원에 가는 게 아니고 병원 자체를 싫어한다.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구나. 얼마전에 이런 생각했다.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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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어서 다행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 소설은 두번째다. 전에 《케빈에 대하여》는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나았다. 우울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병원에 가는 게 아니고 병원 자체를 싫어한다.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구나. 얼마전에 이런 생각했다. 아프지 않아야겠다는. 이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어쨌든. 실제 지금까지 나는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데리고 갔지만. 내가 병원에 가지 않으니 내가 낸(내가 낸 건 아니구나) 의료보험료는 그냥 남았겠다. 그것은 대체 어떻게 될까. 의료보험료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병원에 가야 비로소 의료보험료가 도움을 준다. 어쩐지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안 낼 수도 없고. 의료보험이 도움이 되는 건 어느 정도나 될까. 우리나라에도 보험이 안 되는 게 있을 거다. 예전에 텔레비전 방송을 보니 아이가 큰병에 걸렸을 때 집까지 팔아서 돈을 마련했다. 왜 보험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는지. 낫기 어려운 병에 쓰는 약은 그렇게 비싼가.

병원을 왜 싫어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는 것만 말해야겠다. 아픈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에서는 병과 싸우고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식구들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런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은 또 달랐구나.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이 어두울 거다. 셰퍼드가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린 아내 글리니스를 돌본 게 한해 정도지만, 한해가 짧지는 않다. 집안 사람 누군가 한두 주 병원에 있는 것도 길게 느껴지는데. 셰퍼드는 아프리카에서 두번째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날 아내 글리니스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는 글리니스가 낫기를 바라고 수술도 받게 한다. 셰퍼드는 그날 그만둔 회사에 다시 돌아간다. 그것은 의료보험 때문이다. 셰퍼드가 다니는 회사는 본래 셰퍼드가 만들었는데 직원이었던 사람한테 비싸지 않게 팔고 셰퍼드는 직원으로 일했다. 셰퍼드는 늘 두번째 삶을 살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겨우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는 글리니스가 암에 걸렸다.

지금은 암을 빨리 발견하면 다 낫기도 하지만 중피종은 잠복기간이 아주 길었다. 이것은 석면 때문에 걸린다고 한다. 석면……. 글리니스는 집을 고치는 일을 한 셰퍼드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했다. 셰퍼드는 그것 때문에 미안해하기도. 글리니스가 석면에 드러난 건 셰퍼드 때문이 아니고, 글리니스가 대학에 다닐 때 쓴 금속공예를 하는 연장 때문이었다. 글리니스가 소송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 봤을 때는 그냥 하는 말인가 했는데 정말 했다. 병에 걸린 게 무엇 때문인지 알면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나라면 그런 생각 못할 텐데. 다른 까닭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내 우울한 마음 때문에. 병은 마음에서 오기도 하지만, 암에 걸리게 하는 화학약품도 있다.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알면 그런 것은 쓰지 않고 조심하게 해야 한다.

셰퍼드 친구 잭슨한테는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유전병을 가진 딸 플리카가 있다. 이 병은 유대인에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잭슨은 오랫동안 플리카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도 아내 캐럴과 잘 지냈는데 생각을 잘못해서 안 해도 되는 일을 해서 문제가 생긴다. 셰퍼드와 잭슨은 같은 회사에 다녔다. 셰퍼드는 글리니스가 아프고 잭슨이 그동안 어땠는지 알게 된다. 어떤 일은 자신이 겪지 않으면 모르기도 한다. 글리니스가 암에 걸려서 수술하게 되었다고 글리니스 친정 식구한테 말했을 때는 병원에 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는 연락이 없었다. 글리니스 엄마만이 아침마다 전화했다. 글리니스 친정 식구뿐 아니라 글리니스 친구도 소식이 뜸해졌다. 셰퍼드는 그런 일을 섭섭하게 여겼다. 다른 사람한테 기대하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그 사람 삶이 있으니까.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누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가거나 연락을 할까 하는. 모르면 연락 못하겠지만 알면 할 것 같기도 하다. 먼 곳에 살면 가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식구도 오래 아프면 마음을 덜 쓰는데 남은……. 잊지 않고 마음 써주는 사람도 있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셰퍼드 돈도 줄었다. 글리니스는 수술도 제대로 못했다. 셰퍼드는 알고 있었다. 글리니스 병이 다 낫지 않는다는 것을. 셰퍼드는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딸한테도 돈을 보태주었다. 잭슨은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지 마라 했다. 그때는 화나서 그런 것 같지만.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셰퍼드는 일하는 곳에서 잘렸다. 비싼 의료보험료 때문에. 미국은 회사에서 드는 의료보험이라도 모두 되는 건 아니다. 셰퍼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싼 의료보험을 들었다. 그런데도 그 돈이 많이 든다고 하고, 이제는 회사 의료보험을 없앴다고 했다. 그럴 수가. 미국은 그런 곳이 많아서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까. 셰퍼드는 지금까지 세금도 잘 내왔는데 왜 그렇게 된 건가 했다. 지금 생각하니 다른 소설에서는 이런 이야기 거의 안 했다. 아파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겠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할지도. 글리니스는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희망을 갖고 밝게 살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한테 사실을 말해주는 게 옳은지 어떤지 모르겠다. 아니, 숨기기보다 말해주는 게 낫겠다. 그래야 정리하지.

마지막은 덜 우울하다. 중간이 지루한 영화라도 끝이 좋으면 좋은 영화로 기억한다고 하는데, 소설도 그럴까. 읽는 동안 우울했는데 끝날 때쯤 조금 가벼워졌다. 돈으로 산 글리니스의 괜찮지 않은 몇 달은 있어야 했을까. 옮긴이는 그 시간이 있어서 셰퍼드가 소중한 것을 알았다고 했는데. 더 빨리 결정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희선




☆―

“내가 달아나고 싶은 대상? 복잡성, 불안 같은 거지. 평생 언제나 뭔가 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할 일이 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거나 하지 못한 채 벌써 지나가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런 느낌에서 달아나고 싶은 거야. 그게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니까. 아침에 눈 뜰 때부터 하루 종일,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내 그런 기분에 시달렸지. 난 어릴 때 금요일 오후에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곧바로 숙제를 해놓는 버릇이 있었어. 그러면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 기분이 아주 좋으니까. 마음놓고 평온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후련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거잖아. 토요일 아침에 느끼던 그런 참된 자유맛을 어른이 된 뒤엔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어. 이 엘름스퍼드에선 숙제를 다 했다는 느낌 속에서 눈을 떠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은 숙제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지루해서 미치려고 할걸.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낼 거야? 분수 만드는 거?” (307~308쪽)


“힘들 때 사람들을 도우라고 ‘정부’라는 게 있는 거지! 세금은 그런 데 써야 ‘하는’ 거야. 보도. 그리고 허리케인!” (395쪽)


“‘우리도 마무리를 잘하자’고.” (592쪽)


n***8 2014.06.30. 신고 공감 2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일 수 있는 간호와 삶,내 아내에 대하여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일 수 있는 간호와 삶,내 아내에 대하여" 내용보기
<케빈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읽지를 못했다.그리고 만나게 된 <내 아내에 대하여> 이 책은 두껍다. 부담스런 두께지만 읽다보면 금방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긴 병과 큰 병은 환자 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피폐하게 만들고 더불어 한 가정의 몰락까지도 가져온다.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도 하지만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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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읽지를 못했다.그리고 만나게 된 <내 아내에 대하여> 이 책은 두껍다. 부담스런 두께지만 읽다보면 금방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긴 병과 큰 병은 환자 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피폐하게 만들고 더불어 한 가정의 몰락까지도 가져온다.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도 하지만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서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병에 대비하여 의료보험과 개인보험을 들어 놓는다고 하지만 내가 당하게 되면 보험도 피해가는 경우가 있다. 보험은 내가 타려고 하면 해당사항이 없는데 종종 보험을 역 이용하는 이들이 더 많이 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긴 병이나 큰 병을 앓는 이들은 간병인이나 가족중 누군가 환자를 돌봐야만 한다. 친정아버지가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동안 나는 자처해서 아버지 곁에서 머물면서 아버지와의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와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엄마의 밥도 해서 날라야했고 병원생활을 따분해 하는 아버지 곁에서 웃을 수 있고 운동도 시켜 드리며 함께 한 시간은 영원토록 잊을수가 없고 내게는 값진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셰퍼드,그는 대학을 가려다 미루고 대학가 주변 동네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집수리를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그 길로 정착을 하게 된다. 친구 잭슨과 함께 하며 수리공을 자처하며 키운 회사를 떠넘긴 후 회사는 그들이 운영할 때보다 몇 배로 커져서 그는 그곳에서 관리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다른 곳에 살 생각을 하며 아내 글리니스와 답사여행을 다녀오곤 하다가 아프리카 서남쪽 '펨바'라는 곳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며 살고 싶어하여 식구들 몰래 짐을 꾸려 놓았지만 갑자기 금속공예를 하던 아내가 불치병이고 희귀병인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시 주저 앉게 되었다.

 

"게다가 그 대가를 당신이 치르다니,너무 부당한 일이야.아파도 내가 아파야지.당신이 아니라 내가 암에 걸린 거라면 좋겠어.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좋겠어."

 

아내는 자신보다 건강한 사람처럼 군살도 없고 현재는 금속공예가 아니라 초콜릿 공장에서 밀랍으로 틀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픈 내색 없이 갑자기 희귀병인 중피종이라니. 중피종은 석면과 관계된 암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집수리일을 하였던 자신 때문에 아내가 암을 얻게 된 것일까? 아내는 전적으로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남편 셰퍼드 때문이라며 20년이 넘은 그가 관계했던 집수리 재료들에서 석면과 관계된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한다.정말 자신 때문에 아내가 중피종에 걸렸단 말인가? 셰퍼드 그는 혼자서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경제를 도맡아 하듯 하고 있다.아버지 집의 가스비며 다큐제작을 하며 오빠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 동생까지 그리고 성인이 된 딸의 보험이며 모든 돈을 그가 책임지고 있다.아내는 나가서 번다고 해도 도움이 안되었고 그가 매각한 회사의 돈은 제2의 삶을 위하여 계좌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아내가 암을 치료하기 전에는 말이다. 아직 부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펨바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중피종,그것도 희귀암이라니.

 

"난 그 기계들을 유지 보수하도록 세금을 내잖아요. 결국 이것도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릴 탄압하는 도구를 살 수 있게 자금을 조달해야 할 의무가 있죠. 하지만 당국에서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나한테서 몰수해 간 돈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그건 내잘못이 되고 내가 두 배로 돈을 내야 하는 겁니다. 주 당국은 모든 걸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잖아요. 이성이나 형평성,심지어는 상식이 적용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료보험'과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 잭슨이 FD를 앓고 있는 딸 플리카와 비만인 헤더로 인해 카드빚에 집대출도 갚지 못해 허덕이고 거기에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수술한 것이 잘못되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저 자신앞에 닥친 고난만 토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잭슨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불만이 한층 고조되고 자신의 문제까지 겹쳐 더이상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글리니스의 암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 때문에 회사 생활도 엉망이 되고 아내만으로도 벅찬데 동생과 아버지의 문제로 인해 그야말로 셰퍼드는 혼자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아내는 점점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 다녀야 의료보험의 혜택이라도 누려 보는데 그 의료보험이라는 것이 국가만 용이하게 해 놓았는지 환자에게서 돈을 있는 대로 다 빨아 먹고는 쓸모 없으면 뱉어 버리듯 낫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간다. 통장은 점점 텅텅 비어가는데.

 

제2의 삶은 커녕 다음달 월세를 낼 돈도 없게 된 상황에서 그는 직접 현실과 부딪혀 보기로 한다. 아내에게 삶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자신의 아버지를 동생 손에 아니 사설 요양시설에 맡겨야 하는 것인지.그러다 잭슨의 자살과 마주하며 일생일대 결심을 하게 되는 셰퍼드, 아내가 거짓 연기로 통장이 다시 가득차게 되고 그는 가족과 잭슨네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아프리카로 날아가기로 한다. 더이상 자본주의 미국에서 버티고 살 자신을 잃었다. 잭슨네도 집어 삼킨 미국이지만 자신의 삶도 거기에 목사였던 아버지는 신을 부정하게 되었다. 왜 이런 날이 오고 만것일까? 승승장구하며 아니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닥칠지 모르고 살아 왔는데 아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그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음지를 보듯 국민의 혈세만 빨아 먹는 국가,국민이 쓰러져 가도 나몰라라 하는 국가에서는 더이상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은 국가에 자신과 연결된 가족에게 할만큼 했다. 더이상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의사도 병원도 환자를 어떻게 해서 병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약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진절머리가 났다. 환자는 그야말로 돈덩어리다. 아내 글리니스가 몇 달 동안 병원에 쏟아 부은 돈은 자신이 벌었던 돈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과 제2의 삶을 흔들어 놓은 의사는 끝까지 글리니스를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려 했지만 그녀에게도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신약의 실험대상이 되어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란 희망은 환자를 더 아프게 할 뿐이며 병원과 의사가 결코 환자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내를 통해 깨닫게도 되었지만 노환인 아버지에게서도 요양원의 실체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가족중 누군가 큰 병에 걸렸다면 우선은 고쳐 놓고 보길 원한다. 돈이 얼마나 드느냐는 나중 문제로 작용을 하지만 그게 또 내가 막상 닥쳐 보면 그렇지가 않다.물론 환자도 살려야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내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환자를 포기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는 아내는 물론 아버지 그록 가족에게도 정말 할만큰 했다. 잭슨이 마지막 자살이란 것을 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이제 남겨진 그들을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 히키코모리인 아들에게도 FD라 걱정했던 플리카에게도 비만이라 걱정했던 헤더에게도 그리고 아내와 아버지에게도 펨바는 지상 낙원처럼 그들을 새로운 삶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아프리카는 미국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자본주의에 젖어 미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줄 알았던 이들이 자연에 빠져 건강해지고 혹은 아름답고 평온한 마지막을 맞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곳에서 더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양 손 가득 쥐고 있는 현실을 놓아 버리면 못살것 같은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내려 놓거나 놓아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것처럼 아둥바둥 현실에 목 매며 살아가고 있는데 셰퍼드는 결정이란 오랜시간을 걸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모두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결정하게 하여 떠난 아프리카의 삶은 만족 대 만족이다. 아둥바둥하며 살아야 했던 미국의 삶이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해피엔딩이라 조금 덜 씁쓸하다.

 

셰퍼드,그가 아프리카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제2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 글리니스로 인해 정말 바닥까지 떨어져 보았기 때문이다.혼자서 다 감당하듯 가족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했던 고난한 미국의 삶,분명 잭슥이나 타인들이 보면 행복한 삶처럼 보였겠지만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집 한 채없이 살았고 자신이 일군 회사를 매각 후에 회사는 몸채를 몇 배는 크게 늘려 그야말로 그가 가졌던 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왜 그렇게 현실에 눈을 뜨지 못했던 것일까? 대학을 다니지 않서일까? 그렇다면 행복의 기준은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평생 신을 모시고 살았던 아버지가 자신이 눕게 되고 신을 부정하듯 자본주의속에서 잉태하고 숨쉬고 살았던 그가 자본주의를 떠나 자연속에서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그가 살았던 미국에서는 그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면 펨바에서 그란 존재는 반짝반짝 빛나는 값어치를 지녔다.꼭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아내가 선물해주고 간 제2의 삶이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바닥까지 내려가보지 않았을 것이며 제2의 삶을 위한 종잣돈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때문에 경험하게 된 자본주의의 실체에 진저리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 병원생활을 많이 하게 되지만 부모님을 지을수가 없다. 부모도 가족도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이 더 와 닿는다. 현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셰퍼드와 잭슨의 이야기는 여운이 길 듯 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2 2014.01.1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 아내에 대하여 / 라이오넬 슈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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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100세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늙고 병들어 오랜 세월을 살아내야하는 것 만큼 힘든 일도 없을테니까.. 새로운 약들이 개발이 되고 의료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무엇보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렇듯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경제개발을 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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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100세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늙고 병들어 오랜 세월을 살아내야하는 것 만큼 힘든 일도 없을테니까.. 새로운 약들이 개발이 되고 의료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무엇보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렇듯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경제개발을 외치던 시절이 아니라 이제는 선진국의 대열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중요시 되는 그런 시점이 되었고 이제는 개개인의 삶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씨스템화된 제도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이다.

매달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기에 조금만 아파도 우리는 일단 병원부터 찾는다. 아주 큰병이 아닌 이상 병원의 문턱은 그리 높지 않고 일당 병원가서 주사 맞고 약 처방 받아서 약을 먹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각종 암보험등 의료관련 보험들을 들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

물론 큰병일 경우 아직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약들과 장비들로 인해 거액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내 아내에 대하여>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셰퍼드는 종피종이라는 암에 걸린 아내 글리니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추억과 사랑 아쉬움등의 애뜻함이 아닌 암에 걸린 아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들을 감정을 싣지 않고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덤덤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셰퍼드는 제2의 삶을 꿈꾸고 있는 40대후반의 남자이다.

가장으로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연로한 아버지를 돌보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여동생의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난 제2의 삶을..

미국에서 클립 한 상자를 살 수 있는 돈이면 하루를 살 수 있는 아프리카의 한 섬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모든것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아내와 함께 '답사'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둥지를 틀 곳을 여행하기도 했지만 아내는 설마 .. 라는 생각을 했고 셰퍼드는 기필코 떠나리라.. 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를 직원에게 매각하고 그 돈은 개인계좌에 따로 보관을 하고 있었다.. 제 2의 삶을 위해서..

 

이야기의 첫 장면은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한 그가 가방을 챙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인데도 진동칫솔등의 사소한 것들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일단 아내와 아들의 것까지 편도 비행기표를 구입한 상태였고 최악의 경우는 자신만이 비행기에 오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외출한 아내를 기다리는 셰퍼드의 모습...

그러나 그는 떠나지 못하고 짐을 풀 수 밖에 없었다. 떠나려는 그에게 아내인 글리니스는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종피종이라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에게는 FD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을 가진 친구 잭슨이 있다.

그동안은 잭슨이 말하는 의료제도의 모순, 헛점 그리고 야유와 분노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점점 셰퍼드도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된다.

잭슨의 말에 따르면, 찐드기 일순위는 바로 정부 사람들과 정부에 얹혀사는 사람들, 즉 정부 도급 업자들과 '고문들', 두뇌 집단, 로비스트들이었다. 회계사들과 변호사들은 특히 더 경멸했다. 교활하게 우리 편인 척하지만, 사실 이 배불뚝이 노획자 계급의 교섭 준문가들은 엄청남 수수료를 챙겨 우리의 세금을 불린다는 점에서 경계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수혜자들도 당연히 찐드리에 속했지만, 그들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잭슨은 주장했다.(p121)

보험혜택은 많이 받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제2의 삶을 위해 모아 두었던 비용을 아내의 병원비와 수술비로 쓰게 된다. 점점 통장의 잔고는 바닥이 나고 아내의 병은 깊어만 간다.

보험을 유지해야하기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아내의 병간호 집안일을 해야한다.

뉴욕에 사는 여동생의 월세집도 해결해 주어야하고 혼자 지내시는 아버지가 크게 다시셔서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것도 돌봐드려야하며 독립했지만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딸을 도워줘야하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학비도 마련해야했다. 혼자 동분서주하는 셰퍼드의 모습.. 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인 상황이고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글리니스의 병이 길어질수록 그녀에게 연락하는 지인들도 점점 줄어 친한 친구목록에서 친하지 않은 친구 목록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많아진다.

아내를 찾아온 친구가 사소한 것을 걱정하며 그를 위로하자 셰퍼드는 무척 감동을 받는다.

이렇듯 그는 누군가로부터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을 알아주고 함께 맘은 나눠주는 것에 대해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야기는 셰퍼드와 그의 친구인 잭슨의 시점으로 반복되며 전개된다.

메릴린치 계좌의 잔액을 보여주면 셰퍼드의 이야기를 하는 장과 잭슨이 자신의 아픈 딸 플리카와 아내 캐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회제도의 모순과 악행을 고발하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

어찌보면 끝이 뻔한 결말.. 그들이 맞이하게 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그 결말을 과연 작가는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지.. 두꺼운 책의 끝이 다가갈 수록 점점 같이 힘겨워졌다.

암선고를 받은 후로 여러 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시커먼 부분, 그림자 같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곳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았다. 마음의 눈이 이 바글거리는 부분을 보지 않도록,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도록 습관을 들인 덕분에 대개는 그것을 그저 빛의 속임수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퀴벌레 소굴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무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것은 더 커지고 시커멓게 변했으며 머릿속에서 떼어줘야 할 자리도 더 넓어졌다. 게다가 가끔 밤이 되면 갈색 봉투 위를 기어 다니는 수천 개의 작은 다리들처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p491)

 

이렇듯 그녀는 병을 마주보기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그림자와도 같은 부분을 알면서도 자꾸 외면하려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마치 바퀴벌레 소굴을 몰라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섭다 끔찍하다며 외면하고 싶어 방치해 두는 것처럼...

 

이런 이들의 아픈 이야기의 결과는 생각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결국 3주에서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듣게 되는 셰퍼드.. 의사는 주위사람들에게는 말을 해서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본인에게는 끝까지 희망을 갖도록 얘기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한다. 하지만 셰퍼드는 그와 반대의 행동을 취한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그녀와 이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 글리니스가 자신의 삶과 이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에.. 아내에게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더 살기 위해 하는 노력이 아닌 마지막의 모습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그들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드디어 그들은 셰퍼드. 글리니스. 아들 쟈크 그리고 아버지 개이브리얼..

잭슨의 부인인 캐럴과 그녀의 딸 플리카와 헤더.. 이렇게 7명은 아프리카 펨파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셰퍼드의 결정과 행동에 공감을 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모른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그 마지막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 그렇이 더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또 다른 희망을 볼 수 있었기에 글리니스는 좀 더 편안한 맘으로 이별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아픈 가족과 함께 한다는 고통과 그들을 더욱 힘겹게 하는 제도의 모순과 부당함때문에 책을 읽으며 맘이 무거웠고 두꺼운 분량을 어서 읽어버리고 나도 이 아픔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맘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셰퍼드가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그 새로운 삶을 보면서 아픔속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그런 이야기였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4.01.19. 신고 공감 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내 아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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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내가 아플 때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서러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부자든 가난하든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의료보험제도권 안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내 아내에 대하여'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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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내가 아플 때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서러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부자든 가난하든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의료보험제도권 안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내 아내에 대하여'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아픈 사람으로 점차 기울어가는 가정 경제, 위태로운 가족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케빈에 대하여'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다. 자신의 가족,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바로 잡을 용기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였던 강한 여운을 남겼던 작품이다. 두 권의 책의 내용이 다르지만 가족에 대한 생각을 또 하게 만든 책이다.  

 

주인공 셰퍼드 암스트롱 내커는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남자였다. 사랑하는 아내, 아들,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인 그가 왜 가족을 벗어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나서려고 했는지 궁금해졌는데 그의 꿈은 예상치 못한 일로 시도조차 못하고 만다.

 

아내의 갑자스런 암선고... 중피종이란 석면에 의해 생긴 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셰퍼드는 수리공을 걸쳐 집수리 회사를 운영했고 회사를 매각한 후에는 그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한 번도 아내를 회사나 공사 현장에 데리고 가지 않았어도 그가 일하며 입었던 옷에 묻은 석면이 원인이 되었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셰퍼드의 마음을 차지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도전도 잊고 아내만을 돌보는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셰퍼드와 그의 동료이며 친구인 잭슨...  두 사람의 시각으로 풀어간다. 집 안에 아픈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든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셰퍼드의 집안은 아내 글리니스가 암이 걸리면서 엄청난 의료비 부담으로 은행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소심한 아들이 다니는 비싼 학교, 여기에 자립해서 살아야 할 딸도 그에게 기대고 있다.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셰퍼드의 여동생은 아픈 아버지를 핑계로 어떻게든 오빠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금전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잭슨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FD란 아주 희귀한 병을 알고 잃는 딸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와중에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아내 캐럴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그를 힘들게 한다.

 

아프면 서럽다. 대신 아파해 줄 수 없기에 아무리 가족이라고 대신해줄 수 없다. 혼자서 모든 것을 참아야하는 환자는 자연스럽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러울 수 있다. 이럴 때 옆에 있어주며 가장 자신에게 잘 하는 사람에게 괜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게 된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인데 글리니스는 셰퍼드에게 이런 행동을 수시로 하게 된다. 셰퍼드는 아내의 고통과 마음을 알기에 묵묵히 감내해낼 뿐이다.

 

셰퍼드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잭슨에게 털어 놓는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잭슨은 셰퍼드가 혼자서만 짊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로는 차마 하지 못한다. 잭슨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갖고 싶어 한다. 그가 실행에 옮긴 수술은 오히려 아내 캐럴을 당혹하게 만든다. 잭슨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털어 놓는데...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과 경제적인 이유와 함께 그의 죽음을 앞당기는 이유 중 하나로 자리했다는 생각이 드는데...남자들의 어리석음이...

 

이제 은행잔고가 바닥을 보인다. 파산상태의 셰퍼드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기에 용기를 내어 아픈 아내와 자식들에게 털어 놓는다. 셰퍼드가 선택한 결론은 미국을 떠나 것이다. 의료보험혜택을 받기 힘든 미국에서 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제도... 아픈 환자로 인해 셰퍼드의 부담도 늘었지만 그가 다니는 직장 역시 의료보험료가 증가했기에 그를 해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른 의료보험제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셰퍼드, 잭슨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그들이 겪은 고통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한다.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나이 들수록 아픈 곳은  더 늘어간다. 지금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진료들이 꽤 있다. 전부 국가가 부담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 이해는 하지만 아픈 환자들을 생각해서 좀 더 폭넓은 부분까지 혜택이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 공감하면서 읽은 책이다. 선진국의 척도는 복지제도에 있다고 알고 있다. 은행잔고 대신에 3개월의 시간 연장을 한 글리니스의 삶이 셰퍼드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선택한 아프리카 섬에서 모두는 편안해져서 다행이다 싶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항상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이민이나 유학을 생각하게 되는데 건강할 때는 상관없지만 아프면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긴 여운이 남는 이야기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q******5 2014.01.17.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이 ‘상상’하는 걸 다시 돌아보자, 여기 ‘현실’이 있다—『내 아내에 대하여』
"당신이 ‘상상’하는 걸 다시 돌아보자, 여기 ‘현실’이 있다—『내 아내에 대하여』" 내용보기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한 여자가 멍한 곳으로 시선을 둔 그림이 있는 표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무척 불편했다. 묘하게 암울했다. 그 ‘아내’가 가진 암이 표지 속 여자의 시선을 따라 내게 전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설핏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다. 막상 이 과도하게 빵빵하고 답답한—심지어는 목차가 1,2,.....19로 매
"당신이 ‘상상’하는 걸 다시 돌아보자, 여기 ‘현실’이 있다—『내 아내에 대하여』" 내용보기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한 여자가 멍한 곳으로 시선을 둔 그림이 있는 표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무척 불편했다. 묘하게 암울했다. 그 ‘아내’가 가진 암이 표지 속 여자의 시선을 따라 내게 전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설핏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다. 막상 이 과도하게 빵빵하고 답답한—심지어는 목차가 1,2,.....19로 매겨진—소설을 직접 손으로 만지게 되자 당황했다,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복지를 위해 내가 냈던 세금을 왜 아내의 불치병 치료에는 쓸 수 없을까?”라는 심오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군소리 없이 600페이지를 잘 읽어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버거웠다. 적어도 셰퍼드의 삶을 엿보기 전까지는.

 


셰퍼드는 ‘두 번째 삶’을 꿈꾸며 살아온 남자다. 벌어놓은 돈 없이 늙어가는 아버지와 무일푼의 예술가를 자처하는 여동생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면서도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p.18)’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 위해 집을 사지 않았고—덕분에 집값이 올라 엄청난 돈을 임대료로 내고 있는 사정이었지만—그가 시작한 작업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일개 직원의 손아귀에 넘어가 한 순간에 사장의 직함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원으로 내려앉았지만 크게 불만은 표시하지 않는 남자다. 모든 게 ‘두 번째 삶’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글리니스와 아들 자크에게 그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해 단호한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몰래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그의 결정이 카운트다운을 들어가려는 순간이 왔고, 그가 말했다.

“펨바까지 가는 표야. 내 거랑 당신 거랑 자크 거.”(p.33)

아내는 그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순응했다. 


물 같은 이 남자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평생을 그려온 꿈이라 했는데. 그의 직장상사에게 멋지게 한마디(‘그동안 즐거웠다, 개자식(p.62~63)’를 하고 나온 상황인데. 비굴하게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과를 한다,굽실굽실. 그에게 빌붙어 살던 여동생이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도착했을 때 올케의 상황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베릴이 변할까 만은,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는 건 꽤나 재미있었다. 셰퍼드도 나처럼 재미있어 했을 것 같다. 글리니스가 아픈 건 아픈 거고, 그는 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소소한 방법을 익혔으리라. 하나 둘 펼쳐지는 기이한 그림들은 묘하게 독자를 매료시킨다.



 

책 속에는 암환자 글리니스 말고도 ‘고기능’ 장애아 플리카가 등장한다.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에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는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멋지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 글리니스를 돌보는 셰퍼드의 마음을 엿보는 것도 줄어가는 잔고를 보는 것도 꽤나 자연스럽다.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들에게 왜 ‘싸우고 있다’고 표현하는 건지, 크를 접시 왼쪽에 놓는 예절이 있어도 아내가 칼질을 당하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없(p.192)는 건 왜인지 그는 당황스럽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판에 박힌 인물이 아니어서—작가 김연수의 연재물에서 배운 것을 써먹자면 ‘핍진성’이 확실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들이 대화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유쾌했다.(아니, 암선고를 받은 여자와 혼자서는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소녀를 보며 유쾌할 수가 있다니!)

 

게다가 셰퍼드의 곁에는 잭슨이란 멋진 친구도 있다. 조금 수다스럽긴 하지만 그의 말은 하나같이 뼈가 있는 농담들이다. 가령 이런 말- "제기랄,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돈을 주겠다는데 좀 쉽게 만들어놓으면 안 되나 싶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엄청난 서류에 수많은 숫자와 코드. 그게 다 일종의 연막이라고. 그래놓으니 반창고 하나에 300달러나 주고 사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p.101)을 내뱉는 잭슨의 등장으로 이 책은 더욱 더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물론 그의 결말(?) 때문에 이 유쾌한 감정이 순도 100%로 남아있진 못했지만.(무척이나 아쉽다.))



 

물 같던 남자 셰퍼드와 금속 같던 여자 글리니스는 파산했다. 셰퍼드는 재산이, 글리니스는 몸이 축 나 버렸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묘하게 통쾌했다. 아픈 사람이 어느 순간 순둥이가 되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너스레를 들으며 ‘와줘서 고마워’하며 촉촉하고 반짝이는 눈초리를 보낼 거라는 환상을 철저하게 지워줘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나 친절하게 행동하는 게 맞지 않냐며 의사들의 친절을 묘하게 비판해주기도 해서. (잭슨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지나치게 ‘쪼다’스러움에 공감한 단 말인가.)

암 선고를 받고 그들이 파산하기까지 잃은 것만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실한 마음을 알아보는 것, 자신이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과감하게 놓아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더 세부적으로 헤아리면 수백 수천가지의 것들—이 변해‘주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 무얼까.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병에 걸렸고 시한부임은 분명하지만 돈을 쓰는 만큼 수명은 연장된다. 보험회사나 국가 기관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기 위해 얼마든지 당신을 괴롭힐 준비가 되어 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인 당신은 이 이상한 그림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실적인 걸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삶에 드리워진 배경 그림이라면?




엄마는 몇 년 전에 유방암에 걸렸다. 약간의 수술—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감내하셨고 그 외에 정기적인 많은 치료를 혼자 이겨내셨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는 엄마에게 ‘상피내암’은 암이 아니라며 치료비에 대한 보상금을 내놓지 않았다. 내가 이미 겪은 현실의 그림은 이랬다. 그래서 나는 『내 아내에 대하여』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진짜라고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추천한다, 아직 ‘현실’을 겪어 보지 않은 당신에게. 좀 더 핍진성이 넘치는 현실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o****2 2014.01.24.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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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슈라이버. 그녀의 전작 <케빈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왠지 내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케빈에 대하여>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끝내 나와 대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뒤이어 그 작품을 읽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연말 나 자신을 위한 도서 선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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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슈라이버.

그녀의 전작 <케빈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왠지 내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케빈에 대하여>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끝내 나와 대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뒤이어 그 작품을 읽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연말 나 자신을 위한 도서 선물 목록에 제일 먼저 들어간 것이 바로 <케빈에 대하여>다.

그런데 때마침 그녀의 신작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전작 <케빈에 대하여>에 앞서 그녀의 신작 <내 아내에 대하여>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경제도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서두에 주인공 인물의 계좌 잔고를 표시한다.

‘무슨 의미일까’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두 번째 등장한 계좌잔고의 변동은 없다. 그런데 왜 표시를 해놨지 하는 의문이 계속 드는 과정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두 번째 삶을 꿈꾸는 주인공. 그는 환율의 차이로 인해 가난한 나라에서 자신의 저축된 돈으로 평생 동안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세계 여러 곳을 답사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후보지를 탐색해왔다. 그러나 아내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그의 두 번째 삶의 후보지에 퇴짜를 놓는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평생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내 몰래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짐을 싼다. 그리고 아내의 의중을 물으며 자기 혼자라도 떠나기로 했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그에 앞서 더 강력한 선전포고를 한다. 아내가 희귀성 암을 앓고 있다고.

그의 모든 꿈은 이렇게 멈췄다.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는 한때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인물에서 100만 달러를 주고 팔았고 그 회사에서 일개 직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그의 꿈은 끝내 이렇게 좌절되고 마는 것일까?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우리에게 낯설다. 한때 다큐프로에서 미국에서 많은 아이들을 입양한 부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중 다수가 장애아였는데 그 모든 아이들의 엄청난 의료비를 감당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웠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과 일수 제한 등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 나에게 그 가족의 의료보험은 완벽해 보였다. 후불로 지급해주는 우리나라 의료보험과는 달리 그냥 병원에 가서 진료받으면 병원 자체 내에서 모든 비용을 의료보험회사에 청구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 년 후 지인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친구가 감기가 걸린 아이 때문에 한국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여기 저기 국제전화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의료보험이 안 되도 그냥 일이만 원이면 될 것을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 일이십만 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의료보험도 연금도 모두 직장이 관할하기 때문에 직업의 잦은 이동이나 계약직에겐 둘 다 꿈일 뿐이라는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의 대거 퇴사 조치는 그래서 크나큰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보통 미국에서는 한 직장에서 20년 근속하면 평생 연금이 나오는데 그 전에 퇴사하는 경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런 의료보험 현실에 있다. 또한 직장에서 가입한 의료보험을 개인이 선택하지 않고 회사가 선택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선택한 의료보험의 품질이 항상 최고라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처럼 아내를 위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할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교적 많은(60 만 달러가 넘는) 잔고를 보유하고 있던 주인공의 잔고는 어느 덧 개인 파산 신고를 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희귀성 암을 앓고 있는 아내. 그 병을 앓는 과정을 마치 전투처럼 묘사하는 의사, 그 과정에서 상처만 떠안는 아내, 그런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주인공, 그리고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점점 아내와 멀어지는 사람들.

작가는 무덤덤하게 이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결말에 이르는 이 과정에서 아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 의문스러웠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결말에서 보여주는 작품의 의미를 접하면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앞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기대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그리고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일기에 적어본다.

p******2 2013.12.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