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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소재로 잊기 쉬운 삶을 뒤돌아보며 공감하는 잔잔한 감동의 글들이다. 할머니, 어머니, 나 3대에 걸친 삶의 여정을 담아내고 고발하며 공감 속에 생명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도전에 찬사를 보내며 나 또한 작가의 용기를 따라가고 싶다. 언젠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내 삶을 글로 써보고 싶었다. 차예랑 작가님의 "상미"의 책이 다시 한 번 불을 지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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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한참 에세이에 빠져 에세이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렸던 시기가 있었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짧지만 짧지 않게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과 단상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에세이를 탐닉하던 나는 언제인가부터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이 팍팍해져서 일까?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이, 생각이 궁금하지 않았다. 에세이에 흥미를 잃은 내게 옮겨 적기 바빴던 문장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마음에 박히던 단상들은 시큰둥해졌다. 어쩌면 내 인생 하나 제대로 돌아보기도 힘든데 남의 생각과 인생이 건네는 조언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기쯤 나는 소설만 읽었다. 차라리 허구의 세상이 건네는 위로가 더 진짜 같았고, 감동이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그런 내가 에세이 <상미>를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너무 재미있어서 덮지 못했던 소설책을 읽을 때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재미가 있어서 문장이 좋아서 위로가 되어서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에세이에서 멀어지게 했을까?'
책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독서를 즐기고 있다면 분명 그 첫 시작을 가능하게 해준 책이 있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던 작가를 떠나거나, 즐겨 찾던 장르의 책을 더 이상 보지 않을 때는 그렇게 만든 책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책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에세이를 놓쳐왔을까?
에세이 <상미>를 읽는다는 것은 이런 나에게 곧 '에세이라는 장르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단단한 문장이 주는 읽는 기쁨, 어깨가 툭 떨어질 만큼 공감되는 생각들, 나의 삶과 주변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시 느끼게 해준 <상미>
인상적인 표지만큼이나 인상적이고 오래 기억될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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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의 삶이 이토록 단단한 문장들로 가득 찰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