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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도서관 서가를 거닐면서 소설 코너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와 우리나라의 소설가가 진짜 많구나. 아무리 도서관에 서점에 진열되어 있어도 누군가 찾지 않으면 그 작품은 기약 없이 잊혀질 터. 겨울을 앞둔 지금에 어울리고 미지의 작가를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읽어나갔다.
『당장 필요한』은 25살 마리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냉장고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남친 준과 동거하고 있다. 거창한 꿈은 없고 생활은 소박하지만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던 마리. 어느날 모르는 번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경찰이어서 놀랐다. 더 놀랐던 것은 아빠의 죽음 소식. 아빠는 뉴스나 소설에서나 보던 말인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직계 가족인 딸에게 경찰이 당연히 연락한 것인데, 마리는 사실 아빠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소설은 범죄 수사극의 장르이다. 짧은 분량인데도 쫄깃하고, 서스펜스 있는 표현을 유려하게 해서 감탄했다.
『아껴 쓴다면』은 주인공 이름은 나오지 않고 1인칭 화법이다. 서른 초반을 지나고 있고 색종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주인공 청년.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서 곧 그만 두게 된 주인공. 그런데 학교 동창들을 통해서 재규의 소식을 들었다. 대장암 말기라는 중병에 걸려서 지금 시골에 가서 살고 있다고. 주인공은 재규와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이였고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어느날 재규로부터 문자가 와서 조금 놀란 그. 자기 사는 집에 한번 놀러오지 않겠냐는 재규의 문자. 낚시하기 좋은 데가 있다는 격의 없는 표현. 그는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마침 애인과 헤어진 직후라 바람 쐬러 한번 가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그러면서 주인공과 재규가 만나고, 낚시터로 가서 처음 같이 낚시를 하는 이야기로 향한다. 서른 초반의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누군가의 죽음을 강렬히 받아들이면서 겪는 이야기. 심오한 톤은 아니면서 진중하고,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함을 놓치지 않았다.
표제작이면서 중편인 『겨울의 색채』 주인공의 이름은 이수정이고, 그녀가 친구의 장례식을 참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의 ‘아껴 쓴다면’이 코믹한 터치가 있던 반면에, 이번 이야기는 무척 묵직하고 무거웠다. 이수정의 친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이자, 한때 사귀기도 했던 연인 사이. 소설은 두 사람이 얼마나 애틋한 시간을 함께 했으며, 그렇지만 끝내 함께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애달프면서 관조적으로 그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리뷰하는 작품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수록작이다. 「크리스마스 택배」 크리스마스가 들어가는 제목을 너무도 좋아하는 나여서 무척 궁금하게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서른 중반의 택배 기사이다. 어느날 강원도 산골로 배달일을 간다. 계절은 한겨울이고 배송지에는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인제나 홍천, 그 부근 도시로 예상되는 곳. 소설의 무대는 그 곳에서도 아주 산골 깊숙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주인공은 할머니에게 택배를 배송하고 서둘러서 서울로 향하려는데, 이럴수가. 눈은 펑펑 내리기 시작하고, 폭설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엎친데 덮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고, 주인공은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일하러 와서 강원도 시골에 고립되었다”는 걸.
와, 이러한 설정은 너무도 ‘단편소설’ 적이었다.
앞의 빌드업이 무척 탄탄했기에 이야기에 빨려들어갔고, 할머니는 정겨운 시골 할머니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내며 주인공더러 하루 묵어가라고 한다.
난 읽는 내내 미소가 입에 걸렸고, 주인공은 비록 ‘재난 상황’이지만, 펑펑 눈 내리는 시골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들에 마음이 설레였다. 와, 이런 느낌이 얼마만이지. 영화 ‘러브레터’에 느껴봤던 겨울의 심상.
단편이기에 금새 이야기가 끝났지만, 그만큼 시간 순삭인 작품이었다.
소재와 설정이 개연성이 있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너무도 깨알같아서 같이 당황스러워하다가, 같이 감동하고, 한겨울의 정취를 오롯이 느꼈다.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을 확연히 느끼게 한 작가의 첫 데뷔작 소설집. <겨울의 색채>.
읽기 전하고, 읽은 후의 나의 정서와 생각이 무언가 변화함을 느낀 기쁨을 선사받은 비범한 이야기들이었다. As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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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누구야? 준? 잠이나 자라고." 그러나 그건 준이 아니었다.준은 마리보다 먼저 들어와 자고 있었다. 마리는 열려 있는 방문 사이로 준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는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댄 다음 귀고리를 풀어서 전화기 옆에 올려놨다.
수화기 목소리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했다.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맞고 살해됐다는 것이다. 마리는 지금 시간이 몇시냐고 물었다. 목소리는 마리 씨가 아니냐고 물었다. 마리는 맞다고 말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목소리는 뭘 어쩌라는 건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11-)
재규는 내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느 좀 더 지켜보다가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재규가 청설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해가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떡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했다. 얼마 없었다.기껏해야 한 번쯤, 최대한 아껴 쓴다면 두 번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67-)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죽기 직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자 위로 올라가 목을 맨 다음 의자를 떠밀어 버리기 전에 그는 무엇을 봤을까? 후회했을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후회 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포에 질렸을 때 그는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이다. 뒤이어 일어날 일이 더 끔찍한 일일지라도.
"나와 함께 있으면 넌 죽어갈 거야." 나느 그에게 말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가 헤어져야만 그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114-)
민호의 아빠가 주고 난 뒤에 나는 그의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당분간은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민호는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예전처럼 혼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때때로 텅 빈 교문을 바라보았다. 민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하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44-)
우리 모두에게는 생의 시기마다 자신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서와 세계관이 있잖아요? 살아가는 방식이나 일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저에게는 물리적으로 각박한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집세, 전기세, 수도세를 내는 일이 정말로 큰일인 사람들이 중요했습니다. (-176-)
우리 인생에 삶도 중요하지만, 죽음 또한 매우 중요하다. 삶이 있기에 죽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축복받으면서 태어난 아기가 죽음 앞에서,다양한 모습,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축복받지 못하는 죽음,고독한 죽음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이어지는 삶의 편린들이 그 사람의 죽음 이후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축복받는 죽음을 꿈꾸지만 현실은 불행한 죽음으로 끝나버릴 때가 많다.
소설 『겨울의 색체』는 네 가지 형태의 소설이며,내가지 삶과 죽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사회에서,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고, 각자 죽음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삶은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매우 타자화하고, 무감각할 때가 있다. 특히 연락이 끊어져 버린 가족,그 가족의 생사를 경찰에 의해서 듣게 될 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바라볼 때가 있다.보편적으로 슬픔과 아픔으로 죽음을 바라보지만, 때때로 가족의 죽음을 타자의 죽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즉 우리 사회가 가족 해체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가족간의 단절이 회복되지 않음을 이 소설에서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마다 느끼고 있었던 것들은 내 가족의 죽음이 비극으로 끝나버렸음에도, 그 죽음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살아간다. 그러한 형태의 가정이 만들어지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남의 일처럼 보이는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될 수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가과 회복을 죽음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다. 어떤 죽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발현되는지에 따라서,그 죽음이 나의 정서와 세계관이 깊이 각인될 수 있으며, 내 삶의 생애 주기에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만들어 낸다. 삶이란, 죽음 이후에 완성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아껴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삶에 대해서, 평생에 걸쳐서 갚아 나가야 할 빚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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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겨울을 삶의 양면인 죽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겨울의 색채" 는 4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지만 각 소설이 보여주는 화두는 삶과 죽음에의 단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 인생에 드리운 죽음에 대한 그림자들을 형성하는 많은 사회적 불안과 문제들이 건강한 사회를 위한 회복에 있어 죽음이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조망하고 있으며 그러한 죽음을 통해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생애에 드리운 트라우마와 같은 심리적 기제를 발생시킨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