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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내 우둔한 정신을 깨우치는 진보적인 책을 만났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했던가! 오늘날 살아남은 책들 역시 승자의 독식 아래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참히 살해되고 날조된 책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 서문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책의 정신』은, "좋은 책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책에 대한 가이드에 다름 아니다. 시공간의 넓이와 동서양을 아우르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드넓은 책 세계의 시공간을 한 권의 책에 '책을 위한 책'으로 담아냈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고전 목록의 이데올로기성에 칼날을 댔다. 책에 대한 그럴듯한 소문과 추론들이 마치 진실인냥 페르소나를 쓴 채 지금까지 당연한 지혜로 받아들였던 편견과 한계를 일순간에 깨부순다. 그것은 '불멸의 고전'이라는 그럴듯한 옷을 입고, 오래된 지혜와 전통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전승되어왔다. 반대로 그들의 권위주의적인 잣대에 의해 반대 입장에 놓인 정직한 책들은 말살되거나 감쇄왜곡을 거듭했으니, 당시 지배층의 이익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따라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 정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책의 현실이다.
권장도서목록 같은 방식의 독서운동은 목록 밖의 책들을 소외시켜 살해하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의도적인 범죄가 될 수도 있다. -P32
성이 부정되기 시작한 것은 쾌락의 가치를 부정하고 노동의 가치만을 존중하던 시기, 즉 다분히 근대에 가까운 시기부터다. ... 성의 부정은 근대적인 사유에서 비롯되었으며 성 이야기와 계몽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현대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포르노그래피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 여기서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설적인 표현과 관련해서 가장 적절한 비교 대상은 잔인한 전쟁영화나 범죄영화, 장르소설 같은 거예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엄청나게 잔인하고 아주 자세하게 표현해도 괜찮고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는 그렇게 하면 왜 안 되는 걸까요? 하나는 죽이는 행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리는 행위에 대한 것이잖아요. -P93~97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논문이자 프랑스대혁명의 성서라 할 수 있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거의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영향력은 한 세기를 풍미했던 포르노소설에 가까운 연애소설 <신 엘로이즈>를 통해 확인됐으니, 이 책이 신분계급사회의 막을 내리게 만든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포르노소설이 세상을 변혁하는데 그렇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니! 흥미로운 것은, 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꾼 책 중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위대한 고전' 목록은 없다. 18세기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종류의 책은 포르노소설과 SF, 그리고 정치적인 중상과 비방을 담은 소설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포르노그래피와 진지한 정치논문을 구별하지 않았고 모두 계몽사상을 퍼뜨리는 철학서로 취급했다. 어리석은 민중인 줄로만 알았던 그들이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도 모르게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평등사상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작을 대표하는 저작물로 꼽히는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는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과학혁명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역사상 가장 덜 팔린 책으로 꼽힌다. 현대의 천문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갈릴레오의 유명한 일화에는 '갈릴레오의 문제'가 제기된다. 갈릴레오는 대개 과학혁명과 근대과학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멋진 독백은 없었다 한다.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위인전의 조작 작법에 충실했던 에피소드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던 갈릴레오는 유명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화형까지 당했던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외>의 조르다노 브루노는 잘 모른다. 현대과학의 기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몇몇 엘리트 과학자만의 발명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근대의 과학혁명을 완성시킨 뉴턴은 자신의 최고 걸작인 <프린키피아>를 일반인들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너무 어렵게 썼다. 왕립협회에서 받은 논쟁의 여파로 독자층을 좁힌 결과였다. 이에 대한 해설판은 영국의 경쟁 상대국인 프랑스의 과학자 에밀리 뒤샤틀레에 의해 번역되어 프랑스에 좋은 일을 해준 꼴이 되었다.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 서양철학사에 종종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소크라테스는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2500년 전에 쓴 글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이해하고 있는데, 플라톤과 같은 연배인 소크라테스의 또다른 제자 크세노폰의 글은 무시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으로 추론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동양에서도 발견되는데 공자의 <논어>가 그렇다. 공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았으며 제자들이 기록한 내용을 전제로 한다. 공자의 유학은 기득권층의 윤리적 솔선수범을 강조하지만 반윤리적 행동을 선택했을 때 그것을 통제하는 철학적 논리는 없다. 뻔하고 싱거워서 너무 궁색한 게 <논어>다. 공자는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묵자는 민중 편에 서서 평생을 바쳐 투쟁한 평화주의자이자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주의자지만 그에 대한 책은 별로 없다(기세춘의 <묵자>, 모리 히데키의 <묵공>).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공통점은, 성인의 독재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보았다는 계급주의와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성경> 역시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이어져왔고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 필사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첨삭되거나 왜곡된 사례가 많았고 그런 점은 원전 비평을 통해 상당 부분 밝혀진 상태다. 그러니까 이 오래된 고전들은 모두가 '편집된' 저작물이다. -P172 고전은 오랜 세월 동안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주류 이데올로기를 가진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필요한 만큼 적당히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지 모른다. 그것들을 변형시켜 살려낸 이들은 그 주인공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그 성인의 입을 빌려 민중들에게 자신들의 도덕을 강요했던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사형당하는 것조차 감수했다는 일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 그 사실은 1993년에 발표되었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지만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권고는 2004년 11월에야 내려졌다. -P177 고전은 정말 위대할까? 일단 의심하라고 한다. 오래된 고전을 즐겁게 읽으려면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그래야 책에 먹히지 않고 책을 먹을 수 있다고, 그럴듯한 고전의 오류와 허상을 가히 설득력 있게 발현한다.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브렌다 사건을 통해, '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인가 양육인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의 역사와 그 내용을 다룬다. 남자로 태어난 아이를 여자로 키우려고 하는 인위적인 시도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브렌다는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탐욕, 권위의 희생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성과 양육이라는 과학에는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려는 저자들의 자료 조작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독하게 극단적인 환경이어서 타고난 성격이 제대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가 아니라면 성격이나 지능은 본성에 따른 영향력이 크다. 오늘날 사이비 과학으로 알려진 골턴에서 시작된 우생학은 20세기 초반에 전 세계를 지배했던 주류 과학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도 공감하고 동조했으며 우수한 인종 집단을 만들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노력했다. 히틀러만이 아닌 그 당시의 보편적 정서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본성의 극단을 택한 것처럼 양육의 극단을 택했고, 소련의 실패가 가치의 실패가 아닌 탐욕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지배층의 실패라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우생학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산아제한과 낙태'로 변경됐다.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 책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은 고대로부터 학살의 대상이었고 정치적 물건이었으며, 가장 큰 규모의 학살은 20세기에 일어났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는, 주로 20세기에 있었던 엄청난 책의 파괴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학살했던 사건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처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책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도서관은 정치적인 전쟁터일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책의 사건들은 종교적인 믿음처럼 변형된 이데올로기가 다원성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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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하여, 어떤 이는 지식의 습득을 위해 책을 읽는다. 때문에 책은 수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책, 행복한 책을 원한다. 하지만 읽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해서 사람들은 도움을 받는다. 책에 대해 잘 아는 이들, 이를테면 전문인의 추천이나 기사를 통해 말이다. 그리고 책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한다. 강창래의 『책의 정신』 도 그런 책이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이란 부제가 설명하듯 우리가 몰랐던 책의 진실에 대해 들려준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모두 다섯 가지다. 첫 번째 책을 바라보는 관점, 즉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두 번째 아무도 읽지 않는 책, 세 번째는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네 번째는 인간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이론을 다룬 책, 다섯 번째는 책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얼핏 어려운 주제가 아닐까 싶지만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여, 앞선 이들의 남긴 기록에 의존한다. 그러니까 역사는 또 하나의 책이다. 이것은 옛 성인들의 기록이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믿는 고전에도 해당된다. 저자는 올바른 책을 선택하고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비평에 주목한다. 이 말은 A라는 이론과 주제를 다룬 책을 읽는다면 그에 반하는 이론에 대한 책도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책으로 알려진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첫 번째 질문 <좋은 책이라 어떤 책인가?> 에서는 프랑스대혁명과 루소에 관한 이야기다. 루소의 『사회계약설』 은 정말 유명한 책으로 많은 이들이 읽었을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결코 아니다. 그 책이 아니라 포르노에 가까운 연애소설인 『신 엘로이즈』 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가난한 평민 출신의 남성과 귀족의 외동딸이 주인공인 이 소설을 통해 귀족과 평민의 계급이 아닌 모두 같은 감정을 지닌 인간임을 확인한다. 프랑스대혁명의 평등이라는 키워드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는 책에 대한 진실, 정말 믿어도 좋을까?
두 번째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 에서는 코페루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를 소개한다. 매우 어려워서 읽은 사람이 극소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주장하여 재판을 받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알려진 갈릴레오가 등장한다. 신이 중심이었던 교황의 시대에 지동설은 금기였을 것이다. 만약 지동설을 받아들였다면 코페루니쿠스의 책은 다시 쉽게 출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국의 영웅인 뉴튼의 『프린키피아』 도 같은 이유로 일반 독작에게는 읽히지 못했고 프랑스의 뉴튼이라 불리는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은 쉽고 명료하여 현재로 그의 이론이 더 유용하게 쓰인다.
세 번째 질문인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는 대중들이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고전, 서양철학인 플라톤에 의해 쓰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나 동양 사상인 공자의 『논어』 의 진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들의 기록은 시대상의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니까 제자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원본은 찾을 수 없으니 전해지는 과정에서 분명 변화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조건 고전은 위대하다는 건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래된 고전들은 모두가 ‘편집된’ 저작물이다. 편집의 의미는 자료를 모아 좋은 것을 추려내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임의로 내용을 ‘추가’ 하거나 원래 문장을 ‘조금’ 고치는 경우가 휠씬 더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인쇄술이 시작되기 전에는 베껴 쓰는 방식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필사본이 그런 것이다. 필기도구가 원시적이었던 고대에 많은 글자를 정확하게 베껴 쓰는 일은 대단히 힘든 노동이었다(오죽했으면 필사를 고행과 수도의 한 방편으로 삼았겠는가). 그 과정에서 글자가 몇 자 빠지거나, 다른 글자를 써넣었거나,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구절을 슬쩍 고치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때로는 내용을 뭉텅이로 빼거나 넣기도 했다.’ 172쪽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란 독특한 부제가 붙은 네 번째 질문은 우성학에 대한 이야기다. 히틀러로 대표되는 우월한 인종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 이들의 잔인한 실험과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실험 결과에 대한 이론서를 소개한다. 연구 달성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책으로 극단적인 환경론을 펼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가 있다. 여전히 우생학을 최고로 여기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통감할 뿐이다.
마지막은 책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목표였다는 말이다. 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지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부정한 세상을 바로 세우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 책을 불사르는 이유도 그것이다. 통치자에게 책은 가장 중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빼앗거나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 위험하면서도 소중한 존재 말이다.
‘책은 적의 상징물이었고, 피통치자에게 자기 권리를 깨치게 하는 것이어서 통치자에게는 성가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은 통치자에게 더 잘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주는 생명과 영혼의 샘물 같은 것이었고, 잘만 활용하면 피통치자를 길들이는 데에도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 책은 지혜의 화신이기 때문에 적의 것이라면 훔치거나 빼앗아서 내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불살라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책은 정신적인 사치를 보여주는 상징물로서, 한때 무척이나 비싼 물건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을 자극했다.’ 339~340쪽
책을 읽는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훌륭한 책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읽는다. 책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준 『책의 정신』 이 좋은 책이라고 말해도 그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판단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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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다고 알고 있지만 책 역시 그 시대의 이해와 맞아 떨어진 것들만이 후세에 알려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위인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관점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니... 책을 통해 책에 담겨진 내용은 물론이고 전혀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책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책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현시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는 그 시대에는 전혀 읽히지 않은 책들이 많다. 오히려 어쩜 저런 책이 시대를 이끌고 있고 중요한 역할로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우리의 정서와 잘 맞지 않아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포르노소설이 나오고 있다. 대담한 성에 대한 묘사나 행위를 다룬 포르노소설이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글이 흥미롭기까지 했다. 철학자이자 계몽사상가가 잘 알려진 볼테르는 '오틀레앙의 처녀'란 외설적이고 음란한 소설을 썼으며, 백과사전을 편집, 발행한 디드로는 음란한 포로노소설을 써서 뱅센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니... 장 자크 루소는 '신 엘리로이즈'란 연애소설을 발표하고 40년 동안 무려 115쇄를 찍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의 저서로 알려진 '사회계약론'은 읽지 않아도 당시 문맹률을 따져 볼 때 신 엘리로이즈를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가히 짐작케 한다. 여기에 19세기 발명품인 포르노그래피는 산업사회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겉으로는 미풍양속을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력 착취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았다. 폼페이의 유적지는 물론이고 대저택 벽화에서 여러 모양의 포르노그래피를 볼 수 있으며 규제로 단속하는 현행법들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사람들에게는 전혀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어야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코페루니쿠스의 책이나 갈릴레오의 책이 바로 그러했다. 솔직히 과학책은 다소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있어 쉽게 잡고 읽고자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데 그들의 책 역시 당시에는 그런 대접을 받았다. 길고 어렵게 쓰여진 책보다 책이 나오기 전에 미리 적은 분량의 요약본을 읽고 참고하기도 했다.
최고의 지성을 꼽으라면 소크라테스나 공자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나 그들이 이야기가 어느까지 사실이고 어디 까지 과장되어 알려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직접 남기지 않았으며 소크라테스의 경우 애제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사후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게 사실 오류를 가지게 된다. 같은 사실을 같이 보았어도 서로의 말이 다른 경우가 태반이다. 그만큼 기억은 내 생각위주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쉽다. 후세에 알려진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는 플라톤이 남긴 글들이다. 헌데 플라톤과 함께 애제자인 크세노폰은 전혀 다른 모습의 소크라테스를 글로 남겼다. 허나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다른 글을 쓴 크세노폰의 글은 알려지지 않는다. 공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이야기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에 그의 이야기는 좋은 말만 나열해 놓은 것과 자기계발서의 원조나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평가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와 같이 높은 학식을 가진 '묵자'란 인물이다. 스스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겉치레의 귀족 신분을 거절하고 노동자의 옷을 입고 전쟁 반대 운동,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운동에 평생을 걸었던 사람이다. 진보주의 성향의 묵자에 대한 영화와 책이 여러 권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책이란 것이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아닌 다음에는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하는 책이 있다. 허나 진실을 담아야 하는 과학 분야의 연구는 특히나 오랜 시간을 두고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고 있다. 특히나 인간이 본질적인 성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헌데 이 성도 충분히 교육에 의해 변할 수 있다니... 이러한 실험? 대상이 된 소년 아니 소녀가 커가면서 자신의 원래의 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간의 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란 생각이 다시한번 든다.
마지막으로 지식과 계몽의 도구로 사용되어진 책의 위험성으로 인해 학살당하게 했던 사건들이 고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책의 학살은 진행형으로 되어 있으며 많은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지금껏 좋아하는 책들을 위주로 책을 읽는 편이었다. 허나 책이 가진 의미나 상징성, 가치 등에 대한 생각을 ' 책의 정신'을 통해 다시 해보게 된다. 하나의 책을 읽으며 그 책이 가진 내용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적도 있었는데 다양한 책들을 좀 더 많이 접하고 읽을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좋은 책은 어떤 책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이 진짜 좋은 책인지... 시대를 반영하고 올바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인지 아직은 책을 고르는데 서투르고 잘 모르기에 매번 헷갈리지만 좋은 책을 고르려면 많이 읽고 나만의 책 고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더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독서에 대한 생각과 이해를 넓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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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로 책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것일까? 이 책은 한국 독자층에 대한 "도발"같은 느낌이 든다. 내용도 내용이나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책 안읽기로 유명하고 더 나아가 쉬운 책만 골라 읽기로 유명한 한국 독자를 상대로 "책의 정신"이라는 철학 느낌의 제목이라니? 뿐만 아니라 책 내용도 그 어렵다는 철학, 역사, 문화, 과학 등이 동. 서양 가릴 것 없이 등장하며 책 표지마저 두껍고 질 높게 만들어 마치 불경이나 성경책을 보는 듯한 조심스러운 기분을 준다. 한 마디로 "가벼운 책 중심의 현재 유행을 꺼꾸로 타고 있는" 겉모습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면... 풍성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흘러가서 잠시 나의 생각을 놓치고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으면 확실히 작가가 공부를 많이 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채워넣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자부심이 있기에 책도 과거의 그것처럼 "책답게" 만들어 판매하련지도 모르겠다. 이 노력과 재미에 비한다면 책 후면에 그려진 19500원의 가격이 오히려 싸보일 정도니까..
저자는 머릿말부터 책에 관련한 자신의 관점을 많이 선보인다. 이중 독서의 즐거움이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권장도서목록 같은 방식의 독서운동은 오히려 자발적인 즐거움을 뺏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독서운동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억지로 책을 읽히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대충 학생들 상대로 강제로 주입식 교육하듯이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만 이 책도 후면에 수 많은 사람들이 추천사를 올려 주었는데, 그 이름도 이어령, 안찬수, 이용훈 등 출판계 거물들이 가득하다(원고를 다 읽어 보고 올린 추천사 같지는 않다). 머릿말 속 작가의 정신이 정말 제대로 표현되려면 추천사도 전혀 올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유명인의 추천사도 사실상 권장도서를 목록으로 추천하는 것과 근본은 다를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위로 책을 소개하는 거니까..자발적인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관점을 정말 보수적으로 해석한다면 진정한 책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손에 집혀져 읽혀지며 서서히 그 이름을 알리는 것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 타며 10년이 넘어도 가치있는 책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정도의 가치가 있기는 하다. 내용은 크게 다섯개로 나뉘는데, 마지막 "책의 학살" 챕터를 제외하고 시간 순서대로 펼친다면 1)고전을 리모델링 해 드립니다. -> 2)아무도 읽지 않은 책 -> 3)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 ->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순이나 실제 책 챕터는 1)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 -> 2)아무도 읽지 않은 책 -> 3)고전을 리모델링 해 드립니다. ->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순으로 흐른다. 이유는 작가가 이야기를 여는 시작점이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인식 변화라 그런 듯 싶다. 근대를 여는 상징적인 일이니까... 그리고 그 혁명에 영향을 미친 중세 과학책들... 그러한 과학책들이 넘고자 했던 장벽인 고전이라 불리던 가치관... 이런 순서대로 하나씩 안으로 들어가듯 이야기를 펼치고자 했던 것같다. 물론 그나마 자극적인 내용인 포르노.. 즉 얼핏 호기심 있는 야한 내용을 앞으로 당겨 읽히게 함으로써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에게 앞 부분만 잠시 읽어도 빠르게 흥미를 가지고 결국 책을 계속 읽도록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러나 내가 같은 책을 썼다면 당연히 위의 시간 순으로 펼쳤을 것이다. 그래야 시간 순서라는 흐름에 맡길 수 있으니 우선 독자가 이해하기 편하고 다음으로 작가도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표현하기 쉽게 된다. 물론 시대순에 따라 변화는 관점 등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훨씬 붙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책이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는 의미다. 공간과 시간의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 역순이나 유기적으로 잘 흘러가는 앞의 세 쳅터에 비해 마지막 두 쳅터는 시, 공간에서 책 전체에 흡수되지 못하고 널찍히 떨어져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면 책을 설사 사더라도 끝까지 읽어내는 독자의 비율은 작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이것도 책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는데 장애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능한 책은 잘 읽히되 누구나 편하게 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책에 대한 관점이다. 책이 이야기 하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또는 당연시 여기는 그것도 실제로는 사실이 아닌 또는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에는 비판적 관점을 지니고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에 다가가는 순간...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이 다가온다. 이것이 진짜 책 읽기 운동이 아닐련지." 이를 위해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긴 이야기의 예를 들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추합해 다시 재조합하여 보여줌으로써 실제 사건, 인물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다만 그때마다 사회 지배구조가 필요로 하여 인위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변형시켰다는 형식의 마무리는 약간 아쉽다. 지금도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나서 정부기관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가치관에 위배된다고 비판을 하고 실제 해외에서는 한국을 정치적 후진국으로 볼 지라도... 나는 그것이 국가 지배구조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이 만든 현상이자 그 책임도 국민에게 있다고 본다... 즉 이야기 구조를 변형 시킨 것도 그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자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의 성숙도 및 당시 인구 구조의 한계상 당연히 그런 식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던 현상이라고도 해석하고 싶다. 이 역시 나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올려 본 것이다.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많이 남겼으나... 그 정도로 나의 생각도 많이 나오게 하는 책이라는 의미다. "혼자 책 읽고 끝~~" 하는 그런 일반적 책과는 달리... 이런 저런 작가의 생각에 동조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나의 생각도 이렇다."를 말할 수 있는 책... 만일 작가가 자신의 책을 통해 그것을 원했다면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자기 생각의 표현과 더불어 비판 의식 성숙"이다. 그것이 책 제목대로 "책의 정신"일지 모른다. 추신: 반드시 읽어 봐야 하는 사람들.. 작가 지망생, 사서, 역사학자, 비평가, 그 외 글을 쓰는 사람들 모두. [출처] 우리나라 최초의 진정한 서적사가인 강창래형의 『책의 정신』|작성자 한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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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코너가 모방송국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독서의 저변화를 꾀한 적이 있었다.매주 1번씩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다.또한 그 주에 선정된 도서는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선하였기에 머리 속에 저장하고 또는 간단하게 기입해 놓았다가 기회가 닿으면 구입을 한다든지 또는 빌려서 읽곤 했다.당시 인상적이고 부러웠던 점은 방송 현장에 등장했던 게스트들의 독서력이 대단했는데 어떤 분은 속독력을 현장에서 테스트 받아 그 결과에 대해 사회진행자가 읽은 내용에 대해 확인을 했는데 놀라우리 만큼 거의 정확했다는 점이었다.일반인 특히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수준에 맞고 필요한 도서를 꾸준히 읽어 가다 보면 세상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이 증대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책을 몇 년간 꾸준히 읽어 오면서 내용정리,서평 등을 다는 것도 생각의 힘과 비판력,논리력이 좋아지기에 사회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고 정신적으로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양함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의 힘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데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연간 신간이 4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실로 출판문화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신간으로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하고 있는 도서는 과연 얼마나 될까.어떤 도서가 되었든 전문가에 의해 쓰여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편향적인 독서력으로 인해 대부분의 도서는 출판공장 창고에 잠자고 심할 경우에는 파쇄기로 쓸려 가는 불운한 운명을 맞기도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1990년대와 같이 언론사를 비롯하여 공익단체에서 꾸준하게 독서의 필요성과 독서의 저변확대를 위해 다양한 독서행사,모임 등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또한 IT산업의 발달에 따라 SMS 및 스마트폰을 이용한 독서 전 및 독서 후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의미없는 시간 때우기,수다떨기와 같은 시간낭비성 SMS나 스마트폰 활용보다는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 가는 것이 독서의 저변확대와 문화생활을 넓혀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메타북은 책이란 무엇인가,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그리고 책에 담긴 내용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룬다.(중략)메타북은 책의 내용이 담기는 그릇으로서 언어의 정체를 밝힌다.그리고 책은 문자문화의 핵심이지만 구술(口述)문화와 비교할 때 그 정체가 더 잘 드러난다.빛이 어둠과 비교될 때 가장 잘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이런 종류의 메타북은 주로 수천 년에서 수만 년에 걸친 거시적인 역사를 다룬다. - 본문 -
이렇게 메타북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을 하여 책에 담긴 내용과 언어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독자의 정신적인 인식과 사유의 힘,도서의 역사를 살피면서 생각과 언어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가 있어 독서의 가치가 증가되리라 기대한다.언어로는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문자로 표기된 도서 안에는 구체적인 기록과 증언을 비롯하여 당대 바깥으로 표출할 수 없었던 개인 및 사회상을 바르게 재인식하면서 역사적인 오류와 실수는 재발하지 않도록 환기시켜 주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분석과 통찰이라는 시각으로 문명을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을 한다.그래서 책의 역사,책이 담고 있는 정신은 한 개인의 정신력을 고양시키는 것을 떠나 전세계,전인류의 문명발전의 바로미터가 되어 주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를 통해 강창래저자를 알게 되었다.이번 <책의 정신>은 앞의 내용을 보강하고 있는데 시선을 집중시키는 내용들이 많다.국가권력에 의해 통제.검열되었던 도서의 수난과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진 도서들이 과학혁명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또한 고전에 대한 재해석과 본성과 양육에 대한 인간의 오해,책의 학살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사건 등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특이한 점은 각장의 사건,에피소드와 관련하여 역사적인 삽화를 도입하여 읽는 재미와 이해력,공감력을 돋구고 있다는 것이다.도서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기도 하고 당대의 국가의 통치술과 정권행사를 행하고 문명의 발전,철학적인 인문사상을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책을 쓰는 저자에게는 도서의 판매부수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는데 저자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 서문을 본떠 '사람들아 새 컴퓨터 하나 사게 책 좀 사봐라'라고 프롤로그를 대신하고 있다.이 글을 읽는 나에게는 보다 참신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서평력이 향상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군주의 힘이 막강했던 봉건주의 시대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의 내용에 담긴 외설(猥褻)적인 부분에 대해 심한 검열과 통제가 이루어졌음은 주지하고 있는데 이는 천박하고 불경스럽다고 느끼는 언어문화,사회인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다.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유교문화권 및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성의 표현 및 성의 표현물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한 단속.검열.구속 등이 이어지곤 했다.(개인적으로 볼 때) 유교권인 동북아 3국(한.중.일)가운데 한국이 가장 성문화에 대해 보수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이와 견주어 중국,일본의 경우에는 성문화의 개방이 한국보다 많이 앞서 있다.인간의 성행위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우면서 자연스러운 행위이다.중세의 '엘로이즈 이야기'는 중대 최대의 연애사건으로서 가정교사와 학생의 아슬아슬한 러브 스토리이다.신분의 차이로 인해 둘은 결합을 못하고 만다.글에 등장하는 삽화들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파격적이기만 하다.저자는 전쟁의 참혹상과 누드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느 것이 더 외설적이고 참혹한지를 묻고 있는데 그림이 매우 섬뜩하기만 하다.
한편 1997년 한국에서는 장정일작가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포르노그래피와 연관되어 음란성이 문제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당시 강금실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략) 사회가 도덕의 이름으로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 육체의 이면으로 들어가 성관계를 헤집어놓거나,쾌감을 확장시키는 어떠한 실험적 시도도 통제의 뇌관을 건드리는 가장 위험한 행위가 될 것이다. - 본문-
포르노그래피가 계몽사상을 일깨워 준 근대과학의 좋은 메타포가 되어 주었다.이와 연관지어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과학사 및 일반 역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통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잘 팔리지 못한 불운의 도서였다.당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천동설과>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매우 파격적인 우주과학 이론이고 파격적이었을 것이다.교황에 대한 신성모독죄에 해당하여 종교재판을 받기도 했다.나아가 물리학과 광학 이론으로만 알려져 있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사회개혁을 갈망하던 계몽주의 사상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뉴턴의 사회개혁 및 계몽사상이 후일 존 로크,볼테르의 정신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며 에밀리 드 샤틀레는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주석까지 달았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플로타르코스로 이어지는 유럽 고대철학자를들의 사상과 저작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다행이다'라는 것이다.수많은 도서들이 통치권자의 입맛에 맞지 않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시대의 지배구조와 타협하며 살아남은 고전이다.그런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건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고 소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일본도서를 그대로 번역하고 군사독재문화하에서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것이 국가를 통치하고 국민을 지배하는 데에 유효한 수단으로 보였으리라 판단한다.나아가 이러한 고전은 원래의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지적하는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주류 이데올로기를 가진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필요한 만큼 적당히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정확하게는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이다(1978년 한국어판).또한 헤겔은 공자의 <논어>를 '매우 상식적'인 내용이면서 멀건 맹탕 같다고 비하하고 있다.그러한 내용은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다른 민족에게서 더 잘 정리된 상식을 찾아볼 수 있다는 우월 의식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치적인 견해이면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인간은 본성과 양육 사이에 놓여 있다.우성학으로 대변되는 본성과 실패했지만 공산주의,진보세력에 적용되는 양육 현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인간은 좋은 DNA를 받아 태어나는 우성학에 기반을 둔 소수계층 및 소위 보수세력 등은 본성에 입각한 인간군상을 좋아할 것이고,경험과 교육에 의해 인간이 성장해 나간다는 양육론이 더욱 부합할 것이다.다만 극단적인 본성론,양육론은 시대의 흐름,변화에 의거하여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하든 부단한 교육과 경험,체험을 통해 인간의 그릇이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 일관된 생각이다.또한 흥미로운 점은 <타고난 성,만들어진 성>이다.성생활에 대한 문제,정신적인 긴장감으로 인한 신경쇠약증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일화 즉 여장 남자,남장 여자와 같이 양성인들에 대한 정체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그 가운데 홀로코스트로 유명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은 독일 아리아인의 우월적인 자부심과 민족성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했던 점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우생학이 현대과학의 유전공학,사회생물학으로 발전해 나가는 점에서는 학문적으로나 실용적인 면에서나 매우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20세기 이데오로기 책을 학살하다의 부분은 주지하다시피 20세기초 세르비아의 티토,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중국현대사의 비극인 마오저둥의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이념과 사상인 주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도서들은 군중들 앞에서 처참하게 화형식을 맞게 되었다.그 가운데에서도 용케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도서들은 구중궁궐과 같은 서고에 남아 통치자의 정책과 지혜를 채우기 위해 모조리 불사르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한다.강창래저자는 수많은 독서이력에 공감과 설득력을 더해주기 위한 인용구,삽화,풍부한 참고 도서까지 전해 주고 있어 이 도서를 덮고 난 뒤에도 독서의 힘,책의 정신은 단순히 문자해독과 문리(文理)를 터득한다는 1차적인 의미를 떠나 사회와 국가,다양한 문명의 발전에 있어 도서의 힘은 매우 막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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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의 저자인 '강창래'에 대하여 '이어령'은 ' 강창래의 글솜씨와 박학다식, 깊은 통찰력에 찬사를 보' (저자 소개글 중에서)낸다고 하였으며, 이 책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스럽다' (추천글)라고 말했다.
'이어령'의 이 두 문장으로 '강창래'의 글솜씨와 독서편력을 다 말하기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책들에 대한 지식과 소문 그리고 진실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과연 읽어 보기는 했는가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묻게 된다. 이 책에서 많은 페이지에 걸쳐서 거론되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에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공자의 <논어>,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등의 내용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세기를 전해 내려오는 책들에 대한 소문이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이 책에서는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그동안 고전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도 한다. 저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10 여권이 넘는 책들을 읽고 그 책들에 대한 내용까지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책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 5가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주제만 보아도 이 책이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간단하게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1)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좋은 책들이 정말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읽혔고,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사람들의 독서를 통해서 알아 본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준 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에밀>이 아닌 연애소설인 <신 엘로이즈>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토록 낯선 이야기는 프랑스 대혁명을 전공한 문화사학자인 '단턴'과 '헌트'가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프랑스 인들이 많이 읽은 책들을 조사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이 당시 프랑스에서는 포르노 소설, SF 소설, 정치적인 중상과 비방을 담은 소설들이 많이 나왔는데, 루소나 볼테르 등과 같은 계몽사상가도 포르노 소설을 썼으며 그런 소설들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는 포르노 그래피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대중들은 계몽 사상가의 위대한 저작물이 아닌 음란 연애소설들에 많이 읽었다. 대중들은 포르노 그래피에서 묘사하는 성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신분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 그것은 지배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평등사상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책이 되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과는 너무도 많은 차이가 있으니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지했던 대중들 중에서 <사회계약론>을 읽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것에 대한 조사도 사회문화사학자들이 밝혀냈다고 한다. ![]() (2)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 그 책들은 누가 읽을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 이 세상에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있을까. '아무도'는 좀 그렇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읽었던 책은 생각 보다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세상을 바꾸어 놓은 책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사례로 들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는 완역본이 없는 책이다. 이 책은 '무시무시하게 어렵다' 고 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 조차 거의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세상에 어떻게 알려졌을까? 그것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간되기 이전에 이 책의 요약본이 이미 세상에 나왔고, 그의 제자인 레티쿠스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대한 소개서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당시의 출판은 초판이 약 180부가 발간되는 실정을 감안한다면 읽은 사람이 20명 내외일 것이고, 그중에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궁금한 책이다. ![]() 갈릴레오에 대한 이야기도 잘못된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는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런 사실은 어떤 문장으로도 남아 있지 않고, 만약에 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는 그 자리에서 투옥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갈릴레오를 주인공으로 한 위인전에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낸 에피소드가 아닐까. 그에 비하면 조르다노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했고, 교회의 박해를 받고 대중들과 소통을 하였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굽힌 갈릴레오를 더 기억하고 있다. 뉴턴의 책 중에 운동법칙 3가지, 만유인력을 설명한 책인 <프린키피아>도 역시 일반일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게 씌여진 책이기에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3)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들 중에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논어>을 주로 다룬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는 자신의 책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거의 플라톤에 의해서 책으로 남겨진다. 플라톤의 기억에 의존해서 씌여졌기에 어느 정도 정확한 기록인가는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스파르타를 선망했다. 그를 고발한 사람은 독재 치하에서 핍박받던 민주투사이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는 실제로 그런 말을 소크라테스가 남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성인의 입을 빌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많은 해설서를 양산시키기도 했다.
논어의 경우에도 은유적 표현의 대화가 담겨 있는데, 이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해석이 나오게 된다. 누구의 해석이 맞을까? 그건 2500 년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제대로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4) 본성과 양육 이 주제는 그동안 많은 연구와 실험을 가졌던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된 책이야기들이다. - 인간의 모습은 본성이 아니라 양육의 결과다. - 본성를 뒤바꿀 정도의 양육은 불가능하다.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심리학, 진화 생물학, 우생학, 유전공학, 행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연구하고 실험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이에 관한 책들도 소개된다. (5) 책의 학살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학살은 오늘날 (21세기)에도 자행된다. 책의 학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에서 중국의 문화혁명까지. 책은 지혜의 화신이기 때문에 책을 말살하려는 행위가 있어 왔다. 책을 읽고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되는 대중들에게서 책을 훔치거나 빼앗아서 통치자들의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불살라 버리는 행태가 책의 학살이다. 통치자들에게는 대중들의 권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 적과 같은 대상이기에 성가신 존재가 된다. 그래서 대중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경우에는 이런 책의 학살이 이루어지게 되고, 책들은 타오르는 불 속에 사라져 가게 된다.
이와같이 5 주제에 의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덧붙이자면 첫 번째 이야기인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대혁명'은 단편적인 면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프랑스 대혁명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의를 자칫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사건은 사회적 배경, 발단, 전개 과정, 결과, 미친 영향 등을 깊이있게 살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몇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만으로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준 것이 마치 루소의 연애소설인 <신 엘로이즈>를 비롯한 포르노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된 내용일 수도 있다.
비록 당시에 루소의 <사회계약설>이 포르노 소설들 보다 많이 읽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그 책의 첫 문장인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다' 에서 인간평등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루소가 이 책을 쓴 당시에는 널리 읽히지 않았지만 그후에 혁명가들의 복음서가 되어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으로 계승되었고, 국민공회 헌법을 만들 때에 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첫 번째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내용 중에는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성 논란으로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석주의 <채털리부인의 여인>을 비롯한 고전과의 비교, 금태섭 변호사의 <율리시스>와의 비교, 강금실 변호사의 변론 내용 등을 이야기한다. 유명화가의 예술작품과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된다. 조각이나 회화에서의 표현은 예술로 보면서, 소설 속의 음란 내용은 왜 외설로 보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한다. 여기에서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 속의 포르노그래피는 책읽기에 불편한 마음이 든다. 성인의 경우에도 양서라고 하는 책 속의 그런 부분들이 외설스럽다고 판단되는 책들이 있는데, 청소년들이라면 그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때론 청소년들에게 양서라고 하는 책을 선물하려고 하다가 그런 부분들이 생각나서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책 속의 이런 내용들은 읽으면서 내 생각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들이다. 그래도 꼭 고전이라고 해서, 양서라고 해서 좋은 책이고 널리 읽히는 책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책 이야기라는 점은 참신한 주제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법도 되짚어 보게 된다. 좀더 깊이있고 폭넓은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많은 책을 읽기 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깊이있게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독후감을 끝낼 때다. " (p. 7) 저자는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이와같은 문장을 써놓았다. 내가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약 4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책은 읽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책의 서평을 쓰게 되면서 책은 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책을 읽은 후에 그 내용을 정리해 보고 그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글로 남기는 것임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 속에 국내외, 시대를 아우르는 독서편력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 또 다른 책을 읽고, 그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을 연결해서 읽는 그런 독서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는 깊이있고 폭넓은 책읽기를 통해서 그동안 우리들이 알고 있던 책이야기와는 좀 다른, 별난 책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연결되는 책읽기가 강창래의 독서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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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왠만큼 한다고 자부하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 10년도 안되는 독서량 어렵고 지루한 책이라 생각했기에 중요한 학창 시절에 외면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말이다. 독서의 시작은 만화책 부터였고, 그 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잡다가 이제는 고전과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관심만으로도 나에게 크게 성장한 결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 <책의정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펼치기 전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읽는 동안 읽지 않았다면 후회를 했을 도서이다.
그러면 왜 <책의정신>인가. 이 책은 도서의 시작과 어떠한 사람들이 접했고 우리가 수없이 들었던 과학자나 철학자의 존재들이 거론 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책에 국한된 소재가 아니라 '책'자체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설명까지 해주고 있다. 첫 시작은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으로 열었는데 혁명과 포르노 단어가 같이 쓰일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한장씩 넘기면서 읽게 되는 이야기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었고 그 시대에는 '포르노'에 대한 이미지가 현재와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전 보다 오히려 로맨스 분야가 훨씬 많이 읽혀졌고 이로 인해 민중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작가에게 절실히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100%로 이런 책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으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서적이라는 점이다. 그럼 이어 왜 문화가 발달 된 시기가 아님에도 '포르노'는 자유롭게 접했는데 근대에 와서 점점 감추게 된 것일까. 그 이유가 등장하는데 그 분야가 아니라 오로지 '책' 그 자체 라는 것이다. 사람은 책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얻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깨닫는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성향인데 '포르노'를 통한 쾌감으로 본능 즉, '자유'를 깨닫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위층의 억압이 었다.
문맹이 많고 고위층 보다 하층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들은 반드시 구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바로 '포르노'였고 점점 나아가서는 '책'으로 변화 된 것이다. 책을 통한 지식은 분명히 무섭고, 강력하다. 또한 책속의 책처럼 <책의정신>안에는 다양한 도서를 소개하고 있고, 상당히 오래된 저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가져지는 책들이 더러 있었다. 그 중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절판이 된 도서도 있지만 도서관을 통해 읽어 볼 필요가 있는데 심리학과 정신학은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전에는 연구자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끼워 맞추기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어, '책' 그리고 '도서관'은 지식의 공간이었으면 때론 적국에게는 위험의 대상이기도 했다. 전쟁을 통해 점령한 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행했던 것은 바로 도서관을 없애는 것이다. 이것은 무너뜨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책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한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간은 책을 통해 두려움을 만나기도 하지만 역사를 배우고 과학을 배우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의 문장처럼 책은 인간을 변화시키기게 충분하면서 한편으로는 위험한 상상에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부제목만으로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고 나니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고 더불어, 지식의 갈구는 끊임 없음을 새삼 느낀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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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책에 관한 책. 강창래 저자의 『책의 정신』(알마)은 책 소개글이 상당히 끌렸고,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었다. 워낙 독서가 취미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인 내게 책과 관련된 책들은 항시 관심 대상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과거 저자의 또 다른 책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알마)를 봤고, 그로 인해 지난해 결국 그 책을 구입했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 책을 알기 위해서는 서문을 꼭 읽어봐야 한다. 특히, 이 책은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이 어떠한 내용으로 어떻게 구성이 될지에 대해 언급을 해주고 있어 읽어보면 책을 읽는데 유용하다. 고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또한 새로운 것이면서도 다소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어떻게 선발이 되었고, 그러한 저서들은 어떻게 비판을 감추고 이어져 왔는가에 대한 이야기...흥미롭다. 총 다섯 번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의 정신』. 그 처음은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이어간다. 전혀 상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내용이었는데, 당시 혁명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사회계약론』을 쓴 루소의 연애소설이 있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포르노그래피가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이 파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는 시대의 유명한 인물들과 그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감추어지거나 미화 되어 있었고, 실제로는 그들이 어찌했는지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 그 예들 중 하나는 종교개혁의 마르틴 루터가 너무 反가톨릭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었지 결국 나중에는 그의 경직적인 사고로 '계급 중심의 사회는 불가피하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도 종교재판을 받는 갈릴레오가 했었다면 고문을 받고 화형을 당할 것이라는 것. 고로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드려는 위인전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 부분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오래된 고전들은 원래의 것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문장이다. 우리가 흔히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을 하듯 고전들 또한 저자의 말처럼 주류 이데올리기의 편집자들이 그 의도에 맞게 변형하여 현재에 이른 것일지 모른다는 말도 공감을 하게 만든다.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섯 번째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은 이 책을 마무리 하는 정리의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총 다섯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의 정신』.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극히 일부이며, 그 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내용들을 너무 무분별하게 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나 역시도 이 책과 같은 '메타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책에 대한 관심이 많고, 책으로 다양한 것을 접하며 지내는 이들이라면 『책의 정신』(알마)은 우리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냉철한 시선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며 책리뷰를 줄인다.-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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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은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책에 담긴 내용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루는 메타북에 관한 이야기다.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얼마나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편견은 수많은 편견을 접함으로써 해소되며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는 시점은 내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비판적으로 읽어내기에 좋은 메타북을 통해 독자 입장에서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다.
『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 편견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해석조차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 』 - p8
그러다 보니 고전 목록으로 우리 삶에 자리 잡은 '고전'에 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고전 중에서도 비판을 숨기거나 비판에서 비켜나게 만들었던 것들이나 비판적인 비평을 숨기며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우상화된 책이 현재의 고전 목록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세상을 바꾼 '좋은 책'은 현재 알려진 고전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전 목록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고전 목록에 있는 고전을 의심해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저작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책과 혁명의 관계를 통해 알아본다. 루소의 대표작은 상류층 일부만이 읽은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시민 대부분이 독자층이었고 40년간 무려 115쇄를 찍은 연애소설 <신엘로이즈>란 사실을 아는지. 프랑스대혁명은 계몽사상가로서의 사회계약론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라 유명한 연애소설 작가로서의 <신엘로이즈>가 그 기원이라는 것을 국가의 번영과 포르노그래피 사이의 기묘한 상관관계를 통해 알려준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과학의 역사를 통해 책을 '제대로' 읽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갈릴레오, 뉴턴 등의 책을 통해 일부 전문가들에게만 위대한 책의 정확한 요약본과 해설서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책, 성경 등을 통해 입맛에 맞게 추려내고 재구성된 편집된 저작물의 상황을 설명한다. 고전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더 중요한 경우 여러 관점에서 접근하게 해 줄 책들을 읽어 준비된 상태에서만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즉, 책에 먹히지 않고 책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 메타북의 권위를 우산처럼 받쳐 들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튼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지, 다른 의견을 가진 저자는 없는지, 있다면 그 저자의 생각은 어떤지 챙겨봐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메타북을 읽기 전에 '하룻밤의 지식여행'과 같은 시리즈에서 진화론, 인류학, 진화심리학, 유전학 등을 다른 얇은 책을 통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 p222
정치적으로 이용된 본성과 양육의 과학, 20세기 초 과학상식이었던 우생학 광풍은 당시 과학은 누구의 정치적 입장에 유리한가에 따라 사회적 지지를 받은 셈이고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이 존재한다. 과학책 역시 비판적으로 검증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잘못된 인용, 왜곡된 인용, 의도적인 엉터리 해석, 잘못된 해석은 다윈의 이론을 바탕을 둔 것이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며 우생학을 지지한 프랜시스 돌턴, 사회다윈주의자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정작 최적자생존이라 말한 적도 없고 경쟁보다는 공생을 강조했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요상하게 비치게 된다. 우생학 지지 나치즘이 물러난 시점에도 우생학적 사고방식은 낙태, 산아제한으로 이어졌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파블로프 조건반사 이론은 이후 추종자들이 탐욕적인 환원주의 이론으로 만들어버려 극단적인 환경론이 양산되는 사태로 이어진다. 사회적 지지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과학이라는 이름 역시 그 균형이 무너져왔다. 평소 과학교양서에 관심 많아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의 주요 이론과 그에 반대되는 스티븐 제이 굴드, 제레미 리프킨의 이론을 고루 읽으면서 느낀 균형감각을 생각해보면서 저자가 말하는 과학책 제대로 읽기는 특히 공감이 많이 된 부분이었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란 부제처럼 다양한 책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점, 책 학살의 역사와 배경, 메타북을 바르게 읽는 방법 등 책을 올바르게 읽어야 할 독자의 권리와 의무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책이다. 이후 우리나라와 관련한 주제를 다룬 이 책의 2권에 해당하는 책을 낼 계획이 있다는데 이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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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야기하는 책 메타북이다. 모두가 무조건적 옳음을 추앙할 때 의심하라고 외치는 이런 책이 좋다. 이 책 또한 모임의 토론 주제책이었다. 어디서 이런 책을 골라왔는지 무척이나 감사했다는. 의심하고 비판하라. 어찌 의심하고 비판할지를 꼼꼼하게 뒷담화로 알려 주기 때문에 무척이나 술술 읽힌다. 하지만 책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정도의 비판 쯤은 많이 들어 봤을터라 여기 저기서 주워 들었던 것을 자세히 명료하게 정리한다는 기분 정도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전이란 원래 베스트셀러가 아닌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에 고전의 정의 부분은 억지 스럽게 느끼기도 했고... 가끔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란 재미 없는 사람들이 읽는 언제쯤 재미있어지려나? 어라 끝났네 라는 감상을 하면서 읽는 재미 없는, 하지만 또 기대하고 집어들게 되는 책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하니까.
좋은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의심하라'라는 명제를 전달하기에는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어조들은 이거이거 너무 막나간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일정부분 시원한 일갈이라는 공감이 들기도한다. 작가 본인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으니까. 자신은 좋은 말은 빼고 비판하기위해 비판적인 글을 쓰겠다라고 말이다.(좋다라는 책은 너무너무 많으니 아무거나 꺼내 읽으면 될 테니까.) 가뜩이나 이런 비판서들을 찾아 보기 힘든 실정이라(요즘은 인문학과 고전을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는 책들의 쓰나미를 보노라면 상당히 불편한게 사실이다.) 시원한 소나기까진 아니더라도 단비와 같은 이슬비 정도의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분서에 대한 이야기들 이었다. 읽다. 'READ'의 어원이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졌던 것을 생각해보면(Read, riddle, reason같은 단어를 생각해보라.)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고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물건 임에는 틀림 없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의심하라'라는 명제가 들어 서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과학혁명과 산업 혁명의 시대를 거쳐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읽어야할 고전 목록 혹은 OO추천 목록은 이 의심하라는 명제를 죽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추천목록=옳음 즉, 사리에 맞고 바르다 라는 등식을 무의식 적으로 사람들에게 자리 잡게 만드는 행위에 찬동 할 수 없기에 분서 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울러 도서관=책의 무덤이란 등식에 반발과 함께 일정부분 공감도 갔고 말이다.
고전이 무조건 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대상의 일부를 읽어 내는데는 분명한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의 이면을 읽어 내는 방법론으로서 이 책은 분명 읽어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쉬웠던 것이 그럼 반대편에 있는 책을 어찌 찾아 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데, 본 책에서 몇몇 고전에 대해 이 문제는 이책을 읽어라 라고 분명하게 제시를 하면서도 어떻게 찾아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 적인 측면에서는 내게 많은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어찌 다양하게 접하고 그런 책을 어찌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어찌 설명할까 싶기도 하고, 무조건 적으로 많이 뒤지다간 지쳐 나가 떨어 질 거 같고,(저자 본인 도 아찔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은 나도 간절히 원하는 바인지라 갈증 해소에 부족함을 느꼈던게 사실이다. 로크가 말한 독서라는 행위는 지식의 재료만을 공급할 뿐이고 이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 즉 생각의 힘이다라고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 그리고 이 책을 토론 하면서 재미있는 아주 유용한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책바다'서비스 책을 검색을 했는데 이 책이 먼데 도서관에 있는 경우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해 택배비만 부담하면 집근처 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빌려보고 반납이 가능하단다. 이 얼마나 유레카한 발명품인가 말이다! 역시 대한민국은 아이티 강국! http://www.nl.go.kr/nill/user/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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