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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두 번이나 거절당한 시집입니다. 지도 선생님의 참 좋았다는 평이 있었지만, 함께 읽기에는 무겁다는 의견 때문이었죠. 강력하게 추전하여 함께 읽은 시집입니다. 언제까지고 모른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마음에 무겁지만 눈에 힘을 주고 똑바로 보기로 해요. 제주의 아픔과 그 아픔이 낳은 것들을! 시인은 1975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어요.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작가로 활동했고,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죠. 대학교 3학년 무렵 선물 받은 최승자의 시집 <내 무덤, 푸르고>를 읽고 시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백석, 김수영, 파블로 네루다, 최승자를 시적 스승으로 생각한다고 해요. 2018년부터 제주로 이주한 후 4.3관련 증언을 기록하며 시로 쓰는 일을 이어오고 있죠. 문명과 역사, 체제와 이념의 폭력 속에서 음소거된 목소리를 듣는 일,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을 부르는 작업에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려고 해요. 지은 책으로는 <나는 잠깐 설웁다>, 산문 <내일 쓰는 일기>,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이 있습니다.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음소거된 목소리와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을 부르는 시들로 채워져 있어요. 서로의 눈빛에 책임이 있다는 반려가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듯 반겨줍니다. 사람이 왜 그래요 무서운 사람들은 무서워서 점점 무서워지고 검은 부리로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차단당한 얼굴들이 창백하다 너는 더욱 모르고 싶어서 모르고자 한다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가 아니다 중) 아가, 무엇을 보았느냐 뒤엉킨 뼈들을 보았습니다 흰 사슴의 눈물 잘린 나무의 울음을 보았습니다 그 나무에서 피가 솟아 나에게로 흘러옵니다 그러나 여기 어리고 아린 마지막 아이가 있어 목이 쉬었습니다 흰 하늘과 땅 사이 사람으로 서서 오직 울음으로써 돌아가려 합니다 (Kommos:바람 타는 섬 중에서) 목격한 나무들 다시 꽃대를 밀어올리지 이제 꽃잎으로 눈물을 닦아 꼭꼭 곱으라 곱을락 할 때면 내 뒤 숨곤 하던 너 풋귤 같았어 그해 귤은 쓰디써 먹을 수 없었지 (목격한 나무들은 죽지 않는다-늙은 불카낭 중에서) 4.3의 희생자들, 피해자들의 모습이 보이는 시들입니다. 적나라한 사진 같은 모습이 아니어서 더 아프고 참담하죠.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 영화가 아니라 죽은 동생의 조그만 신발을 보며 우는 형의 뒷모습 같은 느낌입니다. 보이는 것이,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시는 음소거된 주인공들을 내세우며 말해요.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량 주의보처럼 모르고 싶어서 더욱 모르고 살았습니다. 시청률 좋은 드라마의 한 회 분량도 안되게 나오던 제주도의 공산당 이야기를 오래 사실처럼 알고 살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지, 전쟁 중이라 그랬지 하며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살았습니다. 어떤 진실을 똑바로 보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죠. 내가 알고 있던 나라가, 자국민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제주도 마을에서는 누구도 그날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해요.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함께 상처를 어루만지며 세월을 견디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모르고 싶어서 더욱 모르게 되는 일을 똑바로 마주 보며 이런 책들을 아프지만 읽어야 합니다.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지나왔는지를, 그들의 희생과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를요. 그래서 온전한 애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는 그만 잊으라는 무례하고 아픈 말이 아니라 언제가 되었든지 온전히 그들을 보낼 수 있게 시간을 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자 했는지를요. 그래서 마침내 회복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회복기는 진행 중입니다. 시인은 시집의 제목을 왜 회복기라고 했을까요? 스스로 회복해 온 그들과 제주도에게 이제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몰랐다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들어 있었는지를 봅니다.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위로와 면죄부를 주지 않아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마치 다 아는 것 같은 오만함도 경계합니다. 당장 불타올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은 강렬한 감정도 억눌러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회복하기 위해 혼자 애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하죠. 제주공항 사고에도 마음을 다해 유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아픔이 그들만의 것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봐요. 다녀올게라는 말이 단순한 인사가 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꿈꿉니다. 다시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꿈꿔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앞으로 나가는 사회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물 것 같지 않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이 시집을 읽습니다. 부디 나아지기를, 아직 거기 있는 당신과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나아지기를. |
| 허은실 시인님의 시집 회복기의 리뷰입니다. 책을 읽는 타이밍이 참 중요한거 같아요. 이 책도 사두고 한참 묵혀뒀다가 마음이 힘든 요즘 읽었는데 표제작인 회복기라는 시가 정말 위로가 되었어요. 복잡한 비유나 많은 말 없이 적확한 단어만으로 시상을 전달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시집 후반에는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인님의 시선을 알 수 있어서 저도 인식이 넓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