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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가 세 번 있었다. 그전에는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진보세력이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았지만, 그때마다 부동산이 폭등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삶은 전보다 훨씬 더 핍박해졌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그 까닭을 정치의 실패일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제도정치를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은 물론, 외환위기 이후 자본 또는 시장의 힘이 정치가 사회에 개입하는 힘을 압도한 결과라고 본다. 그는 이 책에서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역대 민주 진보세력이 시장력의 확대에 맞서는 사회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원인을 역사정치적 과정 속에서 살펴보고 있다.
시장력이란 상품이 될 수 없는 토지, 노동력, 화폐를 모두 상품으로 만들고 모든 사회관계를 상품의 거래로 확장하려는 힘으로 그 주도자는 자본이다. 개발 독재 30년, 신자유주의 30년을 거치는 동안 자본과 보수 기득권세력이 추구한 정치경제적 목표이기도 하다. 반면에 사회력이란 국가나 시장의 전제적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개인과 사회의 자생적 힘을 말한다. 사회력이 제대로 작동하여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시장력의 횡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정치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보장된다고 한다. 가족주의와 이기주의는 사회력을 잠식하고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력을 파괴한다. 시장력과 사회력의 역학관계에 따라 우리의 삶은 고통과 희망을 오가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 고통에서 헤어난 적이 거의 없다.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고(2021년 합계출산율 0.81명) 자살률도 가장 높은(2021년 인구 10만명당 26명) 나라이다’(20쪽)라는 이 한 문장에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이 다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심각한 억압과 경제위기 등 대환란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와 사회는 거의 기능 부전에 빠졌고 국민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가족 등의 공동체나 임금으로 다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삶과 재생산을 책임지는 사회 정책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사회 정책은 경제 정책에 종속되고 국가는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겼다. 저자는 우리의 이러한 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민주진보 세력이 사회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실패한 원인을 먼저 사회 정책과 사회적 삶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노동정책은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함께 과도하게 시장 지향적인 노사관계 질서를 시정하려는 논의조차 해보지도 못했고, 교육정책은 교육은 국가가 관장하되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는 구조에 손을 대지도 못했고, 주택정책은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강력한 규제와 사기업에 의존하는 공급, 주거비의 사적 부담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결과 한국의 노동, 교육, 주거, 의료영역은 시장성과 상품성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고용불안과 장시간 노동, 과중한 사교육비 지출, 안정된 주거 공간의 부재는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진보 정부가 사회 개혁이 아닌 자유주의와 경쟁주의 기조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수와 관료, 기업, 언론, 사법으로 대표되는 비선출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집요한 저항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들 스스로도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단임제 대통령제, 양당 독점구조, 단순 다수제 소선거구제는 정권에 대한 지지와 심판을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삼는 정책없는 정당체제를 확대재생산하고, 계속해서 비선출권력의 힘을 확대시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경제적 개혁안이 입법되지 않거나 정책으로 실현되지 않는 까닭은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 등 생산계층을 대표하는 진보정당과 정치엘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치구조를 바꾸거나 교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 역시 보수 기득권층과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저자는 이어 지구의 정치경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서 지식 권력의 담론정치에도 일침을 가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안보, 외교, 국제 정치노선은 미국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동아시아 권력의 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는, ‘개혁은 (항상) 반공 자유주의가 길러낸 보수 일변도의 언론 지형, 기본적으로 보수적 지향을 가진 관료, 그리고 검찰과 사법부의 노골적인 개혁 사보타주, 성장주의와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의식, 그 밖에도 의사, 변호사, 교수 같은 특수 전문직 이익집단의 저항에 의해 굴절되고 좌초됐다’(305쪽)고 강조한다. 반공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공통점은 경제민주화를 거부하고, 노조의 정치문화는 물론 세력화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라며, ‘한국에서는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에 재벌 일가의 반사회적 불법 활동까지 용납하는 논리가 사법 판결에서 등장하지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묻지도 않고 응답하지도 않’(335쪽)으며, ‘한국의 지식사회는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고, 그것은 미국식 가치관과 세계관, 이론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339쪽).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미국 다음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경제 발전과 사회의 저발전이라는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목표와 발전 방향,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일대 전환을 통한 한국 자본주의의 경로 대전환을 제안한다. 자살률, 저출산,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업재해는 한국 사회의 재생산이 고장 난 상태이며, 한국이 매우 살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웅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한다. 이를 초래한 지구화 혹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공공정책의 산물이지 불가항력의 자연법칙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한국은 안보 국가, 개발 국가, 신자유주의 국가의 틀을 벗어나 평화 국가, 복지 국가, 생명 안전의 국가로 동시에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각 주체의 타협에 의한 만성적 감세 국가에서 증세 국가로 전환, 양대 정당의 독점구조 해체, 독점 대기업이 개인과 모든 경제 주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경제질서의 개혁을 전제로 하는 사회력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집권에 성공한 민주진보 정권들이 실패한 원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가 보수정권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시장력의 극대화를 위한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말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사회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오늘날 집권 검찰 세력은 어제의 군부와 국정원의 후예들이다. 이들이 한국이 정상 국가, 지속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설사 다음 대선에서 진보세력이 다시 집권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감추지 않는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사회력의 회복을 갈망하는 시민의 연대와 정치세력화가 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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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읽는 책 분야가 너무 한정된 분야에 편중되어 있어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깨닫게 해준 책 지금 사회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