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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이 소설<마지막 섬>의 작가 쥴퓌 리바넬리는 튀르키예(구 터키)의 군부독재와 이슬람 정권의 장기 집권, 그리고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통치, 사회 저변의 문화 등 그리 안정되지 못한 채로 동, 서양을 잇는 미묘한 흐름, 여성, 정의, 평화 등의 메시지를 작품 속에 녹아내고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작가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책은 꽤 흥미롭다 못해, 상어 대가리로 표현한 전 대통령…. 이 대목은 번역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어 대가리 전두환으로 자꾸 읽힌다.
튀르키예의 현대사는 우리의 그것과 닮아있다. 60년, 80년대의 쿠데타가 있었다. 권위주의와 국민의 무관심이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우화다. 같은 경험을 했던 한국과 튀르키예의 미래 진로 방향은 어디서부터 달라졌나. 물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조금은 진전된 한국-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십보백보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등장한 전 대통령 상어 대가리
정권에서 밀려나게 된 전직 대통령이 가공의 섬, 등장인물들은 이 섬을 머나먼 섬이라 부른다. 갈매기와 공존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도시의 시간과 달리 천천히 흐르는 별세계인 이곳에 전 대통령이 찾아들면서, 사건은 시작되는데….
이웃들과 자연스레 배려하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서로 존중하는 삶,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고서도 평화롭게 굴러가는 공동체, 아마도 이런 것이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평화스럽게 천천히 흘러가는 삶 속에 이방인으로 등장한 전 대통령은 이곳을 장악하려 든다. 검은 색안경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작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늘 하던 대로 이미 습관이 된 자신 외에는 모두 의심하는 모습, 어린 손녀에게 갈매기가 위협을 가했다고, 밤에 자신의 집 주변을 시끄럽게 돌아다녔다고. 갈매기와 전쟁을 선포한 전 대통령,
운영위원회 만들고, 이 자연 속에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제 나름대로 유지되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질서를 전 대통령의 잣대로 가치를 평가하고 제멋대로 바꾸는데, 섬사람들은 그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이곳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 소설가가 전 대통령의 횡포에 맞서는데….
전 대통령에게 학살당한 갈매기 떼, 이들의 복수가 시작되고, 갈매기 떼한테 애꿎은 마을 사람이 희생을 당하면서, 섬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마치 독일인들이 나치에게 경도되고, 기대하면서 환영을 하듯,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지켜오던 섬의 암묵적 평화는 금이 가고 갈매기를 공존할 수 없는 것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갈매기 떼를 몰아내기 위해 여우를 들여오고, 섬 안에 독사들은 지금까지 갈매기의 먹이로…. 일정한 개체 수 이상으로는 늘지 않았듯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균형이 깨지면서 섬은 지옥으로 변해가는데….
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용기 있는 지식인과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여성, 섬사람들 손에 크다시피 한 장애가 있는 소년,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공증인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상징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어디까지 휘둘림을 당하고, 어떻게 사고가 변하는지, 권위주의 앞에 어떻게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이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섬사람들을 갈라서게 하고 누군가를 질시, 배척하는 구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모습,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를 오랑캐로 무찌른다-)의 전술까지, 뭉치지 못하게 분열시키는 공작 정치까지 현대 정치판과 우리 사회와 놀랄 정도로 닮은 모습이다. 이 소설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받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커다란 사회를 무대로 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은 그리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향인 섬마을에서 지금까지 없던 권력이 등장하고, 권력을 향하는 해바라기와 이를 거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본디 이런 갈등이 잠재돼 있었다는 암시도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역시 인간의 본능, 집단동조, 집단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 대한 공격….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민주시민교육이니, 촛불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열 마디 스무 마디 말 보다, 이 책을 읽게 하는 게 오히려 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싶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 무엇이 개입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를 사람들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제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나치독일에 관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군부독재 쿠데타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쿠데타가 왜 일어났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재난을 겪는 과정에서 그간 수면 아래 잠들어 있어 그 모든 것들이 수면 위로 자연스레 떠 오르게 된, 문제들 ?돌봄, 그리자 노동, 필수노동자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연대를 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지금 검찰 공화국 체제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 소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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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정치적 우화”라고 소개된 내용을 보고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소한 터키 작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잔뜩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파도가 불안감을 더하는 책 표지를 가볍게 넘으며 낯선 섬으로 떠나 본다.
쥴퓌 리바넬리는 1946년 생으로 스톡홀름에서 철학과 음악 교육을 받았다. 1972년 사상범으로 수감되었으며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문학, 음악, 그리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국내외 30개 이상의 수랑 기록을 갖고 있다. 책은 낙원 같은 섬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섬은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섬에 외부인으로 전직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섬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섬으로 요양차 왔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나른하고 지루하게 흐르는 섬의 시간 위에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될 것인가? 아님 바다를 완전히 뒤집는 폭풍이 될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자.
전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능숙한 솜씨로 나뭇가지들을 자르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마치 녹색의 담장처럼 만들고 있었다. (p54) 천혜의 자연환경과 낙원 같은 섬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숫자로 불렀다. 그 숫자는 이 섬에 정착하여 집을 지은 순서에 의한 것으로 1번부터 40번까지 모두 40가구가 살고 있는 섬이었다. 섬의 주인이 오래전에 섬을 사서 혼자 지내기는 외로워서 지인들에게 집을 지을 땅을 무상으로 주면서 주민들이 늘어났다. 그 섬에서는 경제 활동도 일도 없으며 늘 함께 어울려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거나 수영을 하는 등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 섬에 전직 대통령이 들어오게 된다. 전직 대통령은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권력을 지켜온 독재자였다. 그 끝도 좋지 못해서 쫓겨나듯 암살자들을 피해 외딴섬으로 들어온 것이다. 전직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권력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섬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섬의 모습들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가 자연 터널을 형성했던 무성한 나무들을 조경수처럼 잘라낸다. 섬마을 사람들은 이일을 따지기 위해 몰려가지만 그의 뛰어난 연설과 임기응변에 휘말려 물러서게 된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니잖아. 다 뜻이 있겠지라고. 그 안일함과 무관심은 이후 큰 대가를 요구한다. 섬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고는 “내가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어. 어디를 가든 악은 너무 강해서 이기기가 힘들다는 거야. 선은 악에 비하면 약해.”라고 했다. (P98) 섬에는 이전에 없던 운영위원회가 생겨나고 공지 사항들이 돌려진다. 섬이 너무 무질서했다면서 섬의 규율과 규칙들을 운영위원회를 내세워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 간다. 그는 이 섬에서 자신의 작은 나라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데리고 온 손녀를 갈매기가 위협했다는 이유로 갈매기와 전쟁을 선포하는 전직 대통령. 그 섬의 주인으로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았던 갈매기를 자신에게 조금의 위협을 가했다고 모두 없애고자 한다. 이 일로 인해 섬주민들은 약간의 경각심을 느낀다. 이번만은 지난번 나무를 베어낼 때처럼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운영위원회를 통해 교묘하게 섬주민들의 의견을 통일 시킨다. 점점 작은 섬에서조차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대통령의 술수를 본다. 국가의 작은 축소판 같은 섬에서 군부 독재를 경험한 적 있던 우리 현대사와 겹쳐지면서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이렇게 독재자는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새롭고 창의적인 것은 없다. 늘 폭력에는 더 큰 폭력으로 억압하고 누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국민들은 그 뜻에 저항하기 위해 세력을 모으기도 하지만 각자의 이익 앞에 그 세력은 힘이 약해진다. 특히 작은 구성원들을 갖고 있는 섬에서는 반대하는 한 사람이 주민들로부터 분리된다. 그 분리된 한 사람이 투쟁을 계속 이어 갈 수 있을까? 어디서나 악은 강하고 악에 비하면 선은 약하다. 하지만 그 약한 선을 통해서 인간은 더 좋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설사 목숨에 목숨을 잇대는 한이 있더라도. 광주의 시민들도 그랬고, 3.1운동의 백성들이 그랬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 약한 선들이 약함으로 승리하는 것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약한 선들이 승리를 위해 흘린 피와 대가는 너무 컸다. 섬의 주민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그들은 선함으로 악함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줄까?
우리는 굴복해서 패배했다. 점차 수위를 높여가던 권력의 폭압이 얼마나 더 극에 달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했다.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 그리고 구멍가게 아들이 얻어맞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모든 것들을 너무나 순진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갈매기들은 저항했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했다. (p286) 이야기의 그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부터 예상하고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갈매기들과 전쟁을 선포하여 갈매기들을 총으로 쏘고, 알들을 발로 밟아 깨트린다. 그 공격 후 갈매기들은 목숨을 던져 섬 주민들의 집에 부딪쳐 유리창을 깨고 기와에 돌을 떨어뜨리고 밖에 나온 사람들의 머리를 쪼았다. 그 공격으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들이 생겨나고 갈매기의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갈매기를 죽이는 것에 더는 반대하지 않게 된다. 폭력이 더 강하게 되풀이되면서 처음의 시작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잊는다. 어쩌면 잊은 채 하면서 쉽게 화살을 돌릴 수 있는 희생양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폭력으로 인해 두려움이 마음을 온통 지배할 때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쉽고 유익이 되는 비열한 생각들이 힘을 갖는다. 점점 더 끝을 알 수 없이 치닫는 섬의 상황들이 안타깝다. 각자의 사연이 있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섬을 버리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늘 쉬운 선택들과 더 폭력적인 것들을 선택하는 인간의 악함을 민낯을 보듯이 보여준다.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저항하는 것이 힘들고 아프지만 꼭 저항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도 없고, 쉽지도 않은 일이지만 꼭 그렇게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타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에서는 소설가와 주인공의 여자 친구 라라이다. 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전직이지만 대통령이었던 그 사람은 이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 책들이 머릿속에서 함께 떠올랐다. <동물 농장>이 생각나기도 했고, <소년이 온다>의 폭력적인 장면이 함께 생각나기도 했다. <아주 개인적인 한국사>의 이승만의 기록에 대한 부분도 생각났다. 어디서나 공식처럼 독재의 모습들이 나오는 것에 씁쓸하고 힘들었다. 터키 작가의 소설에서 우리나라의 독재 시절을 읽을 수 있고, 그 독재자는 폭력으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무섭도록 사실적인 모습들이 그려졌다. 전직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네 맞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편안해졌다는 말이나 처음에는 갈매기를 쏘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총으로 갈매기를 맞추며 자신의 사격 실력을 자랑하는 모습이 소름이 돋았다. 또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섬 주민들은 처음 시작을 알렸던 전진 대통령의 잘못은 잊은 채 피난하기 쉬운 상대를 찾는 모습도 아프게 다가왔다. 마치 뉴스를 보는 것 같은 상황을 읽으면서 불편한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에게 불편함 만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섬 주민들처럼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아갈 때 그 무관심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희생으로 쌓아 올린 우리나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뉴스를 보기 싫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보고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비록 사표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 더 적극적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쩌면 마지막 섬이 될 수도 있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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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퓌 리바넬리.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이름에 눈길이 간 건 오르한 파묵 이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터키(이제는 튀르키예라고 해야 하지만) 작가라는 책 띠지에 적힌 한 줄의 글귀 때문이었다. 접하기 힘든 나라의 작가라는 점도 흥미를 끌었고 노벨상에 근접하다는 표현에도 궁금증이 강하게 일었다. 어떤 작가이기에, 어떤 작품을 썼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지 직접 읽고 싶어졌다.
쥴퓌 리바넬리는 사상범으로 군 형무소에서 복역, 11년간 망명 생활,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교수로 활동, 파리 유네스코 명예 대사, 터키 국회와 유럽 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했다. 간략한 이력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기에 작품에 담긴 그의 생각도 상당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나라의 작가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기에 결국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열었다.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님 생각과는 다른 전개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섬에 살던 나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배경으로 시작해 조금은 낯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 이상적인 세상과는 다른,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라 바로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나 평화로운 낙원 같은 곳에, 전직 대통령, 그것도 독재자로 사람들의 질타를 한 몸에 받는 이가 들어왔을 때 보인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 나 같으면 그런 사람이 들어온단 것 자체를 반대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소설가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은 점점 변해간다. 변해가는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소설가가 소설 첫머리에 던진 한 마디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잊지마, 자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제일 중요한 게 그거야.
지금 우리 사회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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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정치적 우화"라고 소개된 이 책은 오르한 파묵 이후 노벨문학상에 가까운 튀르키에 작가로 불리는 쥴퓌 리바넬리의 소설이다. 사실 오르한 파묵의 글을 읽을 때 쉽지 않았었는데 '정치적 우화'라고 하니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읽는 것이 망설여졌는데 이 소설은 절대 어렵지 않은, 하지만 적나라하게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화로 읽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지상낙원, 사계절 내내 온화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된 세상이었던 섬에 '그'가 나타난 이후로 공동체의 삶뿐 아니라 자연생태계마저 파괴당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처음부터 모두가 그렇게 예상을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어긋나며 틈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문명에서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에서 모두가 가족은 아니지만 대가족이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어느날 전대통령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섬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가 섬을 바꿔놓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늘을 드리워주던 섬의 나무를 베어내버리고, 나무에 앉아 쉬던 갈매기들이 나무가 사라진 길에서 전대통령의 손녀가 손에 든 과자로 달려들던 갈매기를 피하다 넘어지는 사고가 나고 그것이 갈매기를 없애려는 이유가 된다. 인간들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잘라내버린 나무 하나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결국 섬의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게 된다. 그것이 인간에게서 시작한 것임을 잊고 애꿎은 동물과 자연을 탓하는 모습이 정말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굴복에서 패배했다. 점차 수위를 높여가던 권력의 폭압이 얼마나 더 극에 달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했다. 그 나무들이 잘려나갔을 때, 그리고 구멍가게 아들이 얻어맞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 이 상황에서 고개를 숙인 인류가 더 똑똑했던 건가, 아니면 저항한 갈매기가 더 똑똑했던 건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맞지 않을까?"(286)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또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말솜씨가 없는 내가 전하는 우화이야기는 재미없게 간추려버린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소설을 펼쳐든다면 뻔해보였던 이야기가 전혀 뻔하지 않게 전개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구멍가게 아들이 소설 속 작가의 손을 잡아 끌던 모습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던 모습이 가장 따뜻하고 가장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무관심뿐만 아니라 우리의 용기없음이 가져오는 비극일 수 있다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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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소설이다, 장편소설, 그리고 정치소설이다. 또한 환경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나 : 화자 라라 : 나의 여자 친구 소설가 : 나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인물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 : 이 섬에서는 사람을 살고 있는 집의 번지수로 부른다. 1호, 9호 하는 식이다. 그 : 전직 대통령. 나중에 ‘상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85쪽) 구멍가게 구멍가게 아들 : 곱사등이, 말을 하지 못한다. 갈매기들, 뱀들, 여우들,
줄거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섬에 그 섬의 주민들과는 다른 외부인이 한 명 들어온다. 이 소설은 그 한 명이 공동체를 어떻게 끌고 가며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그려낸다. 들어온 외부인은 전직 대통령이다. 장기 집권 후에 어쩔 수 없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섬으로 들어온 것이다.
평화롭기만 하던 섬이 초토화되는 데 걸린 시간은
차근차근, 아니 야금야금 섬을 초토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 물론 초토화라는 말은 전지적 시점인 독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전 대통령은 그 말 대신 문명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65쪽)
처음에는 갈매기가 주적이었다. 그 갈매기를 없애기 위해 총으로 시작한다. 그게 힘드니 여우를 섬으로 들여와 갈매기 알을 먹어치우게 하는 식으로 갈매기 개체 수를 줄이려 한다. (194쪽) 그런데 갈매기 개체수가 적어지니 생태계 균형이 깨지는 결과가 되어 뱀이 늘어나게 된다. (228쪽) 결국 여우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갈매기가 주적이었던 것이 다음에는 뱀, 그 다음에는 여우가 주적이 된다.
여우를 잡기 위해 청산가리를 풀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로 번진다.
마지막 수단으로는 산불을 놓는데, 그 산불이 여우를 잡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잡는다. 산에 불이 나자 여우는 잽싸게 도망쳐 버리고, 그 불은 대신 사람이 사는 집을 삼켜버린다. 결과적으로 섬이 초토화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은
이 소설에서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구멍가게의 아들이다.
전 대통령의 계략에 의해 섬의 모든 주민들이 갈매기 섬멸작전에 동원될 때 그 아이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화자인 나는 나중에서야 그 행동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대미에 해당하는 여우 잡겠다고 산불을 놓았다가 모든 집들이 불에 타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때, 그래도 전 대통령이 주민들을 괴롭히는 장면에서.....
다시 이 책은?
패배는 아주 사소한 것에 굴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소설은 그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타협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타협하면 결국 패배한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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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는 텔레비전 전파를 수신할 수 없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무슨 이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들르는 여객선 편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서나 알 수 있었다. 조용한 우리만의 세사에서 와인을 곁들인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해먹에서 잠들기 전, 반쯤 감긴 눈으로 읽는 신문기사에는 갈수록 광기를 더해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 우리는 이런 소식들을 스타워즈 정도로 여겼다. 그런 바깥세상 소식들은 그 정도로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었다.(-15-)
"아닙니다. 이웃 여러분. 말씀드리죠. 무정부, 무정부 상태입니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시스템을 무정부 상태라고 하죠! 맞습니까?" 이번에는 모두 한목소리로 "맞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모두 한목소리라고 내가 말한 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66-)
섬 주민들에게는 우일한 수입원이 사라지고 집을 잃게 도리라는 걱정과 관광천국으로 개발될 섬에서 자신들이 손에 쥐게 될 어마어마한 재산에 대한 꿈이 동시에 존재했다. 섬에는 소리 없는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라라는 입은 굳게 닫고 있었다. 라라는 악은 모든 것에서 승리르 재취하고 선을 짓밟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라라는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또 한 번 받아들여야만 했다. (-144-)
날이 밟아 아침이 되됩자, 나는 이 모든 게 갈매기의 공격이라는 걸 알았다. 갈매기들은 해변에서 물고 온 큰 돌을 하늘 옾은 곳에서 집을 향해 떨어트렸다. 그 돌은 가속도가 붙어 총알처럼 기와 위로 내리꽂혔다. 갈매기가 아주 영리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종류의 새라는 걸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갈매기 중 일부는 기왓장을 깨고, 일부는 사람을 공격하도록 임무를 분담한 것 같았다. 몇몇 갈매기는 가미카제처럼 자살공격 임무를 맡고 잇는 것 같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엇다. (-178-)
사랑하는 친구, 섬 주민들이 총질과 여우를 죽이는데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지 자넨 상상도 못할 거야.갑자기 해풍이 일어 갈수록 바람이 강해지는데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했지 뭐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이 번지는 걸 알아챘을 땐 너무 늦었던 거지. 숲에서 시작된 불이 강한 바라을 타고 섬 전체를 뒤덮었어. 커다란 숲이 마치 오열하고 비며을 지르며 폭발해서는 훨훨 타오르는 것 같았어. 목숨이 붙어 있던 짐승들은 미친듯이 숲 밖으로 몸을 내 던졌지만, 일부는 불 속에서 재가 돼버렸다네. (-276-)
1946년 생 쥴퓌 리바넬리는 1972면 사상범으로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1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하버드와 프린스턴등 유명한 대학에서 다수의 강연과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문학, 음악, 영화에서, 세계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의 작품 『마지막 섬』은 유토피아처럼 느껴지는 어떤 섬, 40가구가 사는 그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주민들 사이에 큰 문제가 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 그 시간을 깨는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였다. 전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보좌관이 섬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전 대통령은 섬에 정착하자 마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스스로 통치자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행동들이 40가구가 모여있는 섬 주민들에겐 매우 맟설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오로지 전 대통령만 섬에 있는 모든 모습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놓아서, 마지막 섬을 전면 개조, 변화를 실천하고 말았다. 섬의 주인이 섬 주민이었다면,이제 섬의 주인은 전 대통령이 된 셈이다. 전 대통령의 의 행동 하나하나가,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우화소설 『마지막 섬』 은 정치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우화소설이다. 실제 튀르키예의 독재상황을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소설 속 전 대통령이 독재자로서 행동하는 그 모습이 하나하나 느껴지고 있으며,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정치적인 포석,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위선과 모순, 오만함, 우화소설은 세가지로 압축된다. 손님으로 들어온 전 대통령은 어느 순간 섬의 주인행세를 하고 만다. 주객전도가 된 상황이며, 40가구 주민에게 맞춰진 섬의 상황과 조건들이 전 대통령에게 억지로 끼워 맞춰지는 상황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의 기준으로 섬에 있는 모든 것이 문제꺼리, 골칫거리다. 나름대로 사후약방문, 대안을 만들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또다른 문제를 만들언어내고 있다.자신은 섬의 미래를 바꿔 나가는영웅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섬 주민의 입장으로 볼 땐, 불청객 또는 파괴자에 불과할 뿐이다.
소설은 한사람이 조용한 마을에 들어와 권력을 휘두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섬의 상황, 섬 주민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 반영할 뿐이다. 그로 인해 최선을 다해 섬 곳곳에 산적해 잇는 문제들을 해짚어 버리지만, 자연의 저항, 즉 갈매기가 인간을 향한 폭력과 공격이 시작되고 만다. 즉 누구나 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입장으로 볼 때,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제 현장에선 정답이 아닐 수 있다.미래를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미래를 망처버리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이런 모습들은 주변의 수많은 정치인들의 위선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련만,괜히 섵부리 건드려서 일을 키워버리는 상황, 그것이 우리 사회를 골병들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통일이후 남한과 북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한에 의해 하나의 통일 정부가 들어선다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 주민,북한 사회에 파고들 수 있다.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는 북한 사회,그 북한 사회에 남한 사람이 들어가서, 그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을 해체해 버린다면, 그들에게 재앙이 불 수 있다.그 재앙이 인가넹 의한 재앙일 수 있고, 자연에 의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정치에 대해 초론 과 토의가 가능한 소설 『마지막 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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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제주 강정마을 사태가 떠올랐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떠올랐다. 전두환과 그의 아내 이순자가 소설 속 전 대통령 부부와 너무 똑같아 놀라울 정도였다. 가만히 보자, 우리나라 소설이 아닌데도 정치적 환경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다니. 선과 악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구나. 정권 유지를 위해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모질게 학대했던 우리나라의 현실이 소설 속 세계와 매우 흡사했다.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한 위대한 나라이다. 하지만 독재의 횡포를 겪었음에도 또 똑같은 정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러니함도 존재한다. 국민의 반이 또 그 정당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가진 자들 배만 더 불릴 뿐이다. 재벌의 이익을 위해 저소득층의 노인들이 소중한 한 표를 선사한다. 우매한 저소득층들은 그렇게 다시 한번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정당에 자신의 한 표를 기꺼이 던진다. 독재의 향수를 떠올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평화로운 섬에 정착해 살던 사람들도 전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진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의 행동을 보며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그들의 행태는 흡사 전두환과 그의 아내 이순자를 떠올리게 했다. 책 속의 전 대통령이 수천 년 전부터 섬에 정착해 평화롭게 살던 갈매기를 학살한 모습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전두환의 만행을 떠올리게 했다. 전두환은 죽기 전까지 끝끝내 자신의 행동에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천수를 누리고 갔다. 그의 육신은 이 땅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영혼은 부디 하늘에서 심판받기를...
전두환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한 만행을 증언할 이들은 정녕 없는 것일까? 학살의 현장에서 전두환의 명령을 이행한 이들은 그 당시엔 젊은 나이였을 것이다. 그들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일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그들도 이제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되어 있을 텐데.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죽기 전 일말의 반성을 하고 죽기를... 모든 악은 악행에 눈 감은 자들과 악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추종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번성할 수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 축복을. 죽어가는 것에 생명의 숨결을. 나고 죽는데 모든 것에 평등함을. 너와 나 오리 모두가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를. 어느 하나 생명 앞에 중하고 덜한 것은 없다. 너의 생명이 소중하듯 이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다 소중하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나의 반려견을 보니 동물에 대한 애틋함이 밀려온다. 생태계를 교란시킨 대가가 무엇인지 소설은 처절하게 드러낸다.
자신의 알을 지키려 도망치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 학살의 현장을 마주할 수밖에 없던 갈매기들의 애환이 오롯이 느껴져 한동안 가슴이 저려왔다.
소설은 침묵하고 동조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선과 악, 누구도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 도 있다.
p.263 그날 밤 자네는 내러티브 아트에 관해 내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했었어. "심리, 성격, 인간관계는 신경 쓰지 말고 행위에서 나오게 해야 해. 아름다운 단어나 강한 의미를 담은 단어를 써서 수려한 묘사로 등장인물들의 상태를 묘사하려고 하지 마. 자네는 행위를 묘사하면 돼. 나머지는 독자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완성할 거야.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말했어."
주인공이 소설가와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레 소설을 쓰는 기법을 배우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소설이나 동화,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이 소설 속 이야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팁들을 배울 수 있었다.
몇몇 부분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은 소설 속 현실이 마냥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현실은 오히려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으니.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었다. 소설을 다 읽고 한동안 먹먹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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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고립된 자급자족의 독립된 섬, 그 속에서 살아가는 40여 가구의 소규모 공동체는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다.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그렇게 그들만의 낙원을 이루고 살던 외딴 섬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전직 대통령이 나타났다. 권위와 억압의 상징과도 같은 그는, 무장한 경호원들과 함께 섬에 들어왔다. 그의 등장은 작은 균열로 시작해 평화로운 섬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 곳 사람들이 피해왔던 외부의 사회처럼 말이다.
이 책은 정치우화소설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동되고, 자기도 모르게 권위에 굴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공포와 권력의 폭압 속에서 논리적이며 정의로운 목소리가 어떻게 잦아드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에는 전직 대통령의 등장부터 이를 반기지 않았던 소설가가 나온다. 그는 망가져가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저항의 목소리를 내보지만 대중에게 외면받는다.
평범했던 이들은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나무가 잘려갈 때, 작은 소동이 있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권위가 자리잡고 나면, 그저 갈매기와 전쟁을 할 뿐이다. 이는 극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작가는 저항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 같다. 평화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순진하다. 그래서 권력은 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 서글픈 현실인거 같다.
번역이 잘된건지, 작가의 문체의 특징인지. 무거운 주제를 굉장히 무던하게 잘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쉽게 잘 읽혔던 것 같다. 작가는 특정 국가를 빗댄 우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뭐 그런가보다. 폭력과 권위로 인한 혼란은 국가만의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규모에 관계없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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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공간은 육지와 떨어져 있어 교류가 쉽지 않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나쁘면 배가 오갈 수 없고 파도가 잔잔해질 까지 며칠이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고립된다고 한다. 고립된다는 건 그만큼 변화가 늦을 수도 있다. 통신이 발달해서 섬에서도 육지와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이 섬엔 그런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 <마지막 섬>에서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외지인이라 불리는 섬 주민이 아닌 사람이 섬에 들어온다. 작은 섬은 40가구가 전인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작은 섬이다. 새로 이사온 외지인은 전직 대통령으로, 장기 집권 후 어쩔 수 없이 사임했다고 한다. 그런 전직 대통령이 이 섬으로 와 정착하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섬 주민들은 대통령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섬으로 초대한 것은 1호로 섬 주민들은 섬의 전통에 따라 이름보다 집의 번지수로 서로를 불렀다. 전직 대통령은 섬의 24호에 이사오게 되었다.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섬에 24호 전직 대통령이 이사온 후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전직 대통령은 섬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는 나뭇가지들을 다 잘라버린다. 길을 걷는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인데 섬 주민들은 이런 24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민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주민 공동 그늘을 없애버린 것이다.
나뭇가지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일 뒤에 24호는 모든 집에 공지사항을 쓴 종이를 전달해 마을 그늘막 아래 모이게 한다. 섬 주민들이 모이자 24호는 지금 이 섬이 무정부 상태라며 섬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리조직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운영위원회라고 부르며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만들자고 한다. 24호는 1호를 위원회의 영구 위원으로 추천한다는 제안에 주민들도 환영한다. 운영위원회 5명 중 2명을 추천하고 나머지는 제비뽑기를 통해 정한다. 위원회 구성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 중 한 명이 이 소설의 화자인 '나'와 친구인 소설가였다. 그런데 제비뽑기로 소설가가 운영위원이 된다. 지금까지 섬 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과 전직 대통령의 생활 방식은 아주 차이가 많이 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에서조차 전직 대통령 24호는 엄청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집 주변에 보초를 세우고 항상 경계해야 했다. 게다가 운영위원회를 통해 24호 집 주변에 안전거리를 만들어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규정을 만든다. 전과 달리 섬은 점점 긴장감이 감돌았고 24호의 집에서 총성이 들렸는데 테러리스트가 침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가 갈매기 소리에 겁먹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고 24호는 소설가를 원수처럼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섬>은 작은 섬에 전직 정치인이 이사오면서 작은 섬이 하나의 나라가 된다.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우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