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앙.”
뺑 하는 날카로운 고동 소리와 와앙 하는 우렁찬 고동 소리 ― 汽車의 고동에 두 가지가 있다. 와앙 하는 우렁찬 고동 소리를 지르며 仁川을 떠난 客車는 京城驛에 到着하였다. 아침 열時. ‘男女老少’라 하면 가지各色의 사람을 다 한꺼번에 說明하는 것이다. 汽車가 京城驛에 到着되면서 거기서 쏟아져나오는 男女老少 가운데 二等客室에서 徐九가 내렸다.
同行이 있었다. 스무 살이라 보기에는 좀 앳되어 보이는 女人이었다. 模樣은 작으나 左右間 洋髮을 하였으니 미세스인지 미스인지 알 수 없다. 徐九가 그 女人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아야 알 것이다. 徐九는 먼저 汽車에서 폼으로 내려서서 女人이 내리려는 것을 부축하려는 듯이,
“미스 홍, 잡으세요.”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女人은 부끄러운지 그 손을 잡지 않고 自己 혼자서 뾰족한 구두로 빼뚝거리며 내렸다.
“仁川이란 참 平凡하고 俗되죠?” 九는 미스 홍이라는 女人과 나란히하여 서서 出찰口 쪽으로 向하여 가면서 短杖을 휘두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네.”
女人은 簡單히 對答하였다. 얼굴을 붉혔다. 이것은 기쁘다는 表情이다. 徐九와 나란히하여 갔지만 若干 틈이 있었다. 이것은 수저워한다는 證據다. ‘男女老少’들은 이 한 쌍 男女를 힐끔힐끔 본다.
徐九의 나이(서른이었다)며 그의 능청스러운 태도는 男便다운 데가 있었지만 女人의 부끄러워하며 수저워하는 꼴은 아내나 小室이나가 아닌 것이 分明하였다.
同一한 理由로서 男妹間이거나 親戚間도 아닌 것이 分明하였다.
女人이 賣笑婦로 보이지 않으니 誤入장이의 仁川 놀이도 아니었다.
억지로 이 男女의 關係를 合理化하여 보자면 過則 約婚者 間이나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徐九의 態度로 보자면 그렇지도 안했다. 이렇기 때문에 殊常하게 생각되어 ‘男女老少’는 힐끔힐끔 보는 模樣이었다. 그것 때문에 女人은 또 더욱 수저워하는 模樣이었다.
그러나 徐九는 아무 꺼리는 바가 없이, 女人과 同伴하여 出札口 밖에까지 나왔다.
“自家用이 없으니 택시를 타지요.”
徐九는 女人을 돌아보고 微笑하며 함께 택시까지 탔다. 女人의 얼굴에는 困惑하여 하는 表情이 分明히 나타나 있었다. 男子를 사랑하는지라 함께 仁川까지도 갔었을 것이매 良心上 부끄러울 바는 없지만 二十 年 生涯에 지금껏 父母 膝下를 떠나서 밤 지내 본 적이 없는 이 女人이 只今 집으로 돌아가야겠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 模樣이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그는 日帝 末에 內鮮 一體와 皇民化를 主張하고 日帝의 植民支配 統治 理念을 作品에 內面化한 親日 作家이다. 따라서 金東仁은 民族文學作家會議, 民族問題硏究所 等에서 發表한 親日 文人 42名의 名單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民族問題硏究所가 發刊한 ≪親日人名辭典≫에도 그의 이름이 包含되어 있다. 또한 ‘親日反民族行爲 眞相糾明委員會’에서 發表한 ‘文學 分野 親日反民族行爲者’ 31名의 名單에도 그의 이름이 收錄되어 있다. |
| 김동인의 소설인 정열은 병인가는 단편소설 분량에도 불구하고, 짧다는 느낌 없이 밀도 있고 꽉 들어찬 듯한 재미와 감상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장면 하나씩 따로 떼어 보아도 대사 표현 등이 좋아서 재미있고, 기승전결이 탄탄하게 배치되어 구성된 전체 모습으로 읽으면 시너지 효과처럼 더욱 재미있는 느낌의 소설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