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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장일호)> 슬픔으로 가득 차지 않은 인생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책을 읽으며 한두 번 감탄한 게 아니다. 에세이인데 시 같고 소설 같았다. 몇 번을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던 저 문장은 책을 처음 펼치면 보이는 책날개에 있었다. 편집자가 선택한 문장이었을까, 저자가 선택한 문장이었을까? 아무튼 내가 이 책을 지인에게 소개할 때 저 문장으로 대화의 문을 연다. 글맛, 내용 맛 모두 훌륭한 <슬픔의 방문> 책. 온 동네방네 전파 중이다. 하하하. 솔직히 나는 장일호가 누군지 몰랐다. 심지어 책을 읽는데 이해가 안 되어서 왜 이럴까 싶었는데, 장일호를 남자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옴마나, 장일호 기자님! 미안해요~ ^^) 장일호 기자님. 여성. 더 자세히 찾아보지 않고 일단 이 정도 정보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 책을 추천한 JS는 매일매일 울었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슬프길래 그럴까?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첫 문장이 ‘아버지는 자살했다.’이다. 글맛이 좋아 소설 같은 책이라고 느낀 것도 있지만, 이게 현실인가 싶어 소설 같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명백히 에세이!
짧고 은유적이면서도 선명한 문장들은 책장 넘기는 속도를 부추겼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장일호 작가의 인생을 따라가며 생각의 달리기와 멈춤을 반복했다. 슬퍼서 책을 덮고 뜨거운 가슴을 부여잡고 울기도 하고, 할 말 다 하는 장일호 기자의 말에 목덜미 잡고 웃기도 했다. 너무도 옳은 말을 할 때엔 마음에 담아두고자 핸드폰 메모에 타이핑을 하기도 하면서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1) 짝꿍과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시가. ‘읽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 짝꿍을 알아가는 시기에 서로에게 책 선물하는 것을 제안했다. 아~ 10년 전 내가 상대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난 바로 탈락 통보를 받았을 것 같다. 하하하.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과 나누고 확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뒤늦게 책 맛을 알게 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나 역시 독서의 중요를 알아버려서일 것이다. 서로에게 책 추천 선물 방법은 연예비법 책에서 ‘이것만을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당신에게만 알려줍니다’ 수준의 팁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그렇게 대단한 거냐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는 너무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것들을 실천하지 않는다. 며칠 전 결혼을 고민하는 지인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가치관, 삶의 태도, 방향을 알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니 서로 만나기 전에 추천 책을 교환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까. 그렇게 서로 책을 교환한 장일호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며 나도 설레었다. 음식점(정확히는 술집!)에서의 결혼식,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 속이 후련했다. 이게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것이 더 후련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 신부이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오는 결혼식을 당당히 거부하고 진심으로 결혼식 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만 초대하여 음식점에서 파티를 열었다.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에서 30년 넘게 모르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가족 관계가 되는 것이 납득 안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용건은 되도록 짝꿍을 통해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한 부분에서 또 한번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에는 내가 내뱉지 못한 지난 세월의 답답함이 실려 있었을 것이다. 글자를 통한 이 좋은 생각들이 꽃향기 퍼지듯 온 세상에 가득 퍼졌으면 좋겠다. 참고로, 장일호 작가와 시어머니는 현재 좋은 관계라고 강조했다. ^^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으리라.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이러니 장일호 기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하하.
2) 1인분의 책임,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 장일호는 기자다. 나는 교사다. 교집합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직업 세계에서 나는 여러 번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슬픔의 방문> 54쪽’
나 역시,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이런 생활을 누리고 있지 못했을 거다. 누군가는 기자로서, 누군가는 교사로서 1인분의 책임을 지고,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의 ‘운’이 되어주어야 한다. 지난날 나의 힘듦과 어려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게, 나는 애쓰고, 또 애쓰고 있다. 지금도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여러 에피소드에서 느껴지는 장일호 기자의 마음에는 ‘존중’이 있다. 특히 약자에 대한 시선에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작가와의 만남 때 남편을 ‘동거인’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단어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 말을 해야지 하면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남편’대신 ‘동거인’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동성 부부’를 떠올린다. 그 말은 그렇게 ‘동성 부부’의 여러 어려움에 연대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얇은 벽장을 타고 들려오는 가난한 노부부의 찬송가 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취재 도중 만난 사건의 피해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따라가는 사람. 1인분의 책임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장일호 기자. 너무 좋다.
3) 더 좋은 세상이란… 25살. 아버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2년여 투병생활을 하시다 55세에 돌아가셨다. 그해 큰아이가 태어났다. 나에게 온 새 생명이 내 일상을 기쁨으로 채웠지만 문득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실의 슬픔이 나를 덮쳤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슬픔의 방문> 80쪽
이 문장을 읽다가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2007년 아버지를 보내고 힘들었던 2년여 시간이 생각났다.
슬픔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아버지가 투병하던 시간 동안 나의 동료, 그리고 우리 가족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은 지금 생각해도 벅차다. 당시 물질적인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그때 내가 생각했던 마음과 똑같은 문장이 있었다.
‘선배들은 선배가 베푼 것은 선배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에게 갚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 고마워하되 미안해하지 않고, 받은 마음을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는 법도 함께 익혔다. <슬픔의 방문> 246쪽’
27살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닮은 이 문장이 참 반가웠다. 그리고 올해 1정 연수를 가는 후배 교사에게 이 글귀와 함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줬다. 좋은 세상이란 내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 좋은 마음은 흐르는 것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장일호 기자도, 나도 각자의 인생에서 순탄치 않은 일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매번 선택의 순간에 놓이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대충, 그냥, 막 선택하지 않았다. 충분히 고민했고, 어쩔 수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 말이 참 좋았다.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슬픔의 방문> 217쪽’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실패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지나 지금 서 있는 나에게 애썼다고, 고생했다고, 잘 지나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리고 나의 자녀 CB, CY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도… 올해 상반기 나의 베스트 책! <슬픔의 방문>!!!!
이 책은 슬픔만 이야기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슬픔을 빼고 인생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이 가져오는 기쁨과 감사함의 선물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슬픔, 기쁨 모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게 결국 인생이고, 행복에 가까워지는 일이 아닐까…
https://blog.naver.com/elly7949/22316690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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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애썼지만 매번 실패하고 타협했다. 쓸 때의 나는 여기 없다. 이 글들은 나였던 것,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 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여기에 두고, 여전히 ‘처음’인 많은 것들에 매번 새롭게 놀라면서 다음으로 가고 싶다. 행간을 서성이며 배운 것들 덕분에 반드시 지금보다 ‘ 더 좋은 사람’이 될 앞으로를 기대한다. 10쪽 - 하지만 가난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만 구별하지 않는다. 문화와 교양과 취향으로 드러난다. 70쪽 -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굉장한 재능 중의 하나다. 꼭 그만큼삶이넓고 깊어진다. 싫어하는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가며 가면서 살고 싶다. 83쪽 (......)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86쪽 -“ 좀 조심하지”라는 타인의 말에 담긴 염려를 모르지 않지만 그건 따져보면 ‘내 잘못’이라는 소리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는 생겼고, 살아갈수록 ‘살아남았다’는 감각만 자꾸 선명해져갔다. 131쪽 사실, 에세이는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면서 자칫 잘못 고르면 남의 푸념을 돈주고 들어주는 꼴이라서 지양하는 편이다. 또 소설이나 시와 달리, 작가가 생각나는대로 고민없이 막 갈겨쓰기도 하기 때문에, 읽고나면 더 정신 사나워 지는 경향도 있어, 에세이는 사실 책을 열고 읽기가 두렵기까지. 그런면에서 박웅현 작가의 책에서 언급(추천은 아니고)되어 ‘과연 그는 어떤 마음에 읽었으려나?’ 하는 마음에 편견없이 읽게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유려하고 오밀조밀하게 잘 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하늘아래 이런 인간도 살고 있고, 이런 생각도 하고 산고 있구나’하는 느낌은...이질감 없이 신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질감 때로는 응원하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어찌보면 다들 그냥 저냥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내면을 보면 이런 저런 기억 속에 갇혀..혹은 그 기억을 떨쳐내려고 용기내어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땠을까. 나는 그 시절은 가면의 연속이였던 것 같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듯...화목하지 않지만 화목한듯...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듯. 사실 이렇게 ‘그런 척’이라도 하지 않고 살았더라면...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또 한 편으로는...다른 현명한 방법은 없었을까 싶기도하고. 책을 다시 열심히 읽어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살고 싶기 때문이였다. 이 책의 작가는 책을 많이 읽는 것 같고, 동거남에게 ‘염소의 맛’을 선물했다는 내용도 좋았다.(내가 좋아하는 책) 그리고 참 요상한 것이 그냥 이 책을 읽고나니 더 씩씩하게 살고 싶다는 열망도 생긴다. 이상한 일이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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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장일호는 〈시사IN〉의 기자이다. 한때 〈말〉지와 〈한겨레21〉을 정기적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어느 시점 이후 시사지는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주(혹은 월)단위로 읽기엔 너무 빨라져서, 라고 읽지 않음의 이유를 대고 싶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체감의 속도일 뿐 실제로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그보다는 세상의 진행 방향에 대하여 갖게 되는 드문 희망과 잦은 절망이 그 읽지 않음의 이유로 더 적합하겠다.
“서글픔과 미안함이 ‘기어이’ 다정과 평화를 닮아 가는 일은 타인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과하는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우리를 그렇게 연결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꽤 자주 활자라서 나는 계속 언론사에서 일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저널리즘이라니 우리끼리만 아는 ‘나쁜 농담’ 같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속절없이 그런 것에 마음을 홀리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힘을 믿고 싶다.” (pp.165~166)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내용에서 금세 여성이라는 사실이 파악된다. 다만 그 문체에 가만히 적응을 하고 있다보면 중성적이라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나쁘다거나 어중건하다거나 어색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카테고리로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유별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뉘앙스와 패턴을 분명히 하고 있어 본받을만 하다.
“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슬픔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 (p.9)
자기 자신을 책에 포개어 읽고,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기’와 ‘일기’를 결합시키는 방식도 무척이나 훌륭하다. (책에 실린 글들이 본래 주간지에 실렸던 것들이라면 나는 이 글들을 읽기 위해서라도 그 주간지를 사볼 요량이 있다) 저자가 겪은 유년의 가난과 최근의 투병이라는 커다란 슬픔들이 어떻게 책과 함께 포개어지고, 어떻게 발화되고 있는지를 보는 일에는 슬픈 쾌감이 있다.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에서 독자에게 한 가지 태도를 제안한다. “나는 우리가 먼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오래전 주간지를 끊은 것처럼 현재는 모든 뉴스를 끊고 있다. 그 절단의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뉴스들조차 어찌할 수는 없지만 특히나 사회정치와 관련된 소식에 일부러 귀 기울이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투정보다는 그래 봐야 별 수 없구나 하는 낙담이 부채질한 결과였는데, ‘이제는 그저 일정 부분 망가진 울퉁불퉁한 길을 일단 걸어가 본다.’라는 문장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한때는 사람 돌보는 거나 동물 돌보는 거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부 잘 하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꼭 그런 게 아니라도 보통의 시민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렇기에 때론 다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지향적이다.” (p.110, 김화수 《냥글냥글 책방》 재인용)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슬픔의 방문》은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유에서 모두 다른 접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풀어내는 글도 좋고, 작가가 그 글을 풀어내는 원동력의 하나로 인용하고 있는 책들도 놓치고 싶지 않다. 저자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커지는데, 저자가 열어젖히고자 하는 가능성에 자꾸 잊혀져가는 내 희망을 포개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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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 그날 기분은 한없이 좋아진다. 함께 한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건 그만큼 책이 좋다는 거겠지! 이번 책은 '슬픔의 방문' 장일호 작가의 에세이 이다. 오랜만에 독서노트를 쓰면서 손이 아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문장을 꼽을 수 없을만큼 좋은 글귀들이 많아서... 그렇게 하염없이 독서노트 정리를 했더랬다.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슬픔'이라는 감정이 들어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슬픔의 대한 주제들로 이야기가 채워져 있나? 어떤 슬픔들이 있길래 제목부터 슬픔의 방문일까? 여러 궁금증을 뒤로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다양한 주제들과 그에 맞는 책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작가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있었고, 대부분 어두운 주제들이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해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p54) -> 이 문장은 나는 지금 어떤 어른인지, 누군가에게 의지할만한 어른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누군가의 '곁'이 되어준다는 건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을 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주제도 눈에 띄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왜 생존자가 느껴야 하는 걸까.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살아 있는' 일이다. 고통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사회다. 수치심은 비밀 안에 싸여 있을때에나 존재한다.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가이드 북 <아주 특별한 용기>의 저자들 역시 '침묵깨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생존자들은 다른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용기를 보면서 동기부여가 된다.(....)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도 타인을 살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여성이 그 깨달음의 폐허 위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증언을 이어가고 있다.(p95~96) -> 수치심의 뜻을 찾아보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 느끼는 마음이다. 그리고 수치가 되는 행동을 할 경우 느끼는 것이다. 그럼 생존자가 아닌 가해자가 가져야 할 감정이 아닌가? 왜 우리 사회는 생존자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주고 있을까?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성폭력에 관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 그대로인 것 같아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용기내어 고백하는 그들에게 우리모두가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몇년 전 슬픔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함에 의미없이 보내고 있을때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어린시절과 나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다시 슬픔이 방문했을 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그리고 아이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자기자신을 아는게 중요하다고, 그래야 너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옆에서 지켜봐주는 어른이 되어줘야겠다. 의지할만한 어른으로... |
#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어떤 책은 서문에서부터 감동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를 알고나면 시작부터 이미 좋은 느낌을 준다. 장일호 작가의 <슬픔의 방문>이 그랬다.#슬픔의방문 #장일호 #낮은산 작가는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절박한 젊은 날을 거쳐 기자로 살아가는 삶과 암 투병 환자가 된 이후까지 크고 작은 슬픔의 방문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교통사고를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알고 보니 자살을 했고, 남편을 잃고 아이 두명을 길러야 했던 엄마의 고단한 삶이 작가 자신과 남동생 때문에 희생된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때면 견디기 힘들어지곤 했다. 편모 가정인 것과 사글세 지하에 산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고 열심히만 산다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상업계고에 진학했다.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었고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일호 작가는 말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걸.(p.76)"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답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등장한다. '노동자','자살 유가족','장애인','성폭력 피해자','암 환자'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약자들의 슬픔이 가득하다. 작가가 중 병원 대기실에서 염불처럼 외웠다는 문장을 떠올려본다. "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받는다."(p.230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문학동네, 2020) 우리에게 행복하고 밝은 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불행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나에게 불행이 찾아온다면, 슬픔이 갑작스레 방문한다면 속절없이 무너지고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처럼 암투병을 하게 된다면 삶의 의지가 쉽게 꺾일 것만 같다. 그럴 때 작가처럼 김금희의 문장을 떠올리며 어떤 불행은 내게도 예외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슬픔의 방문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견디고 싶다.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p.251)아 있겠다는 작가의 문장을 마음에 품었으니까 슬픔이 슬픔으로 남아있지 않고 슬픔을 건너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p.9)"이라는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에게 방문한 슬픔도, 당신에게 방문한 슬픔도 우리가 서로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할 때 슬픔이 사라지리라믿는다. 그 안에 사랑이 있으므로. 그런 사랑이 모여서 장일호 작가가 원했던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로 성큼 다가설 수 있기를.그래서 조금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좋았던 문장이 너무나도 많아서 통필사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고 실제로 필사를 무척 많이 했던 책이었다. 그 중 좋았던 문장들을 뽑아본다. p.9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p.9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p.10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P. 35 가치관 우선순위를 체크하는 테스트를 했을 때 우리는 둘 다 최우선 순위로 ‘나’를 꼽았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아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의 건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 P. 39 진심은 언제나 이처럼 생각지 않았던 방식으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법이다. ![]() P. 54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P. 62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 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죽음은 공평하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연인 죽음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것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 날은 좀 더 씩씩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P. 70 가난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만 구별되지 않는다. 문화와 교양과 취향으로도 드러난다. P. 83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굉장한 재능 중 하나다. 꼭 그만큼 삶이 넓고 깊어진다. p.95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참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소재는 그저 언론에서 얻었을 뿐이라고 수차례 말해 왔다. 그 대답을16년 만에 고쳐 준 사람은 딸이었다. 작가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할 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당당하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딸아이가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음을 밝혀 적는다. 딸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이제는 놀다가 넘어진 일만큼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고. 그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주라고.˝P. 109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기르는 일은 전전긍긍을 동반한다. 그것이 고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약하고 작은 존재인 아니와 함께 살면서 어린 사람과 함께 사는 타인의 기쁨과 보람과 고단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랑은 피곤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임을 배웠다. P. 161 누군가 목숨 걸고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이 ‘당연한 문장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이 죽어, 몸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P. 165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 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부분 서글픔과 피곤함이 ‘기어이‘ 다정과 평화를 닮아 가는 일은 타인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과하는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우리를 그렇게 연결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꽤 자주 활자라서 나는 계속 언론사에서 일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저널리즘이라니 우리끼리만 아는 ‘나쁜 농담‘ 같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속절없이 그런 것에 마음을 홀리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힘을 믿고 싶다. P. 240 병은 내 삶을 흔들어 대고 일정 부분 바꿨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병의 원인을 내가 살아온 삶을 반성하는 일로 갈음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P. 230 ˝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받는다.˝P. 246 선배들은 선배가 베푼 것은 선배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에게 갚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 고마워하되 미안해하지 않고, 받은 마음을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는 법도 함께 익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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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슬픔이 들이닥쳐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펑펑 울거나 묻어두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슬픔이 문득 들이닥치면.. 장일호 기자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 순탄한 인생이 아니였다. 힘든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그녀를 짖눌렀다. 그러나 매번 극복한다. 책을 통해서 생각들을 정리하고 행동하는 그녀는 영리했고 멋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책에는 다양한 책들이 발췌되어 있다. 몽땅 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들이다. 그녀는 책을 통해 이렇게 가능성을 열고 있구나. 배우고 느껴본다. 슬픔이 방문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을 열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그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 슬픔은,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다.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슬픔의방문 #낮은산 #장일호 #기자 #다양한가족 #삶의_스펙트럼_확장 #정확한_출처 #슬픔의가능성 #책이_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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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로 마음이 후벼파여서 북토크를 신청했어요. 작가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영광이었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 코를 컹컹거리며 눈물이 터졌던 신기한 경험도 했네요. 제가 몰랐던 저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걸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삶에 방문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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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독서로 이어지는 독서가 좋다. 좋은 책들로 차분하게 안내하는 글을 읽다보면 다음에 읽고 싶은 책들이 한아름 생겨나는 책들은, 완독 후에도 허전함이 덜하다. 삶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나와 내 주변을 돌보아가며 읽을 책들을 부드럽게 안내하는 글들. |
| 장일호 작가님의 <슬픔의 방문>을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기자님의 에세이라는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져 구매하였습니다. 저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긴 했지만 작가님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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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북토크 후기 어느 토요일, 북토크 오신 시사In 장일호기자님을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간다고 신청은 하였지만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른 저 이기에.. 간다 하고 못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암경험자로서의 기자님도 궁금했습니다. 제게는 가 볼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죠. 저는 시간을 조금 이르게 가서 일명 숲밥! 도서관에서 강된장비빔밥도 나눠 먹었습니다. 강된장 특유의 꼬릿하고 찐한 향이 숲에 가득합니다. 분명 배가 안고팠는데 왜 그럴까요? 갑자기 배가 막 고파집니다. 울산 동구 대송동에 위치한 더불어숲작은도서관은 종종 밥을 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눠 먹습니다. 모임 후에 각자 집에서 반찬을 가지고 와서 한식뷔페처럼 푸지게 먹기도 하고요. 모임이 없는 날에도 드물게는 도서관 활동가 쌤들한테서 “식사하러 오세요.” 라는 연락을 받기도 합니다. 지근거리에 있다면 달려 갑니다. 내가 먹는 건 밥 일까? 정 일까? 아, 이것은 밥정입니다. 밥으로 맺은 정. 연대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 인거죠. 처음 뵙는 작가님과 자연스레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소탈하시고 배려가 깊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질문에도 가감없이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모임에 오기전부터 쉽게 만나기 힘든 기자님을 뵌다고 해서 조금 설레었습니다. 미리 읽어 본 슬픔의 방문은 문체 그대로 그 분의 일상이 그려집니다. 어떠한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생각하는 방향성은 무엇인지 어떤 의미로 노동조합원 같은 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저 또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슬픔은 이제 좀 그만. 그런 인식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좀 회피하고 싶은 단어이기도 하거든요. 방문? 슬픔의 이유가 아니고 슬픔의 방문? 제목의 의미를 알아볼까요? 수동적인 느낌으로 내가 갈수도 있는데 기다리는 느낌이 있죠. 왔다가 가는 방문의 의미. 사전으로 검색하면 네 가지 뜻이 있고 네 번째 사전적 설명이 작가님은 맘에 닿았다고 하셨어요. 옮겨봅니다. 방문4 명사 어떤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 어떠한 슬픔을 고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받아들여 그것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참 괜찮은 단어구나. ‘이렇게 숨은 뜻이 있는 단어들도 많겠구나.’ 생각이 되었어요. 그동안 관심두고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 사전을 자주 찾아보지 않은 점을 순간 자각합니다. 이 책 표지 그림은 <오닉스목걸이를 한 여성>이 그림의 제목이며 국내 여성작가 손정민의 600만원짜리 작품이에요. 장일호작가님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작가님이 머리가 짧으시니 작가님을 그린 것일까 추측했었는데 역시 아니었어요. 스무고개 퀴즈같이 이 책은 중간중간에 장치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 다음 퀴즈는 성별맞추기! 장일호기자님은? 여성분이십니다. 분명히 이름만으로 남성분으로 오해가 있을 수 있지요. 그 자리에서 함구하고 있었지만 저도 한참을 읽던 중에 작가님이 여성분 임을 알게 되었어요. 이름가지고 뻔하게 생각해 버린 오만한 실수입니다. 작가님은 매번 물어오는 성별 질문에 들을수록 재미있고 이 또한 좋다고 하셔요. 그 순간 성별의 고정관념을 점검케 만드는 순간이므로 의미가 있습니다. 아. 깨달음을 주는 좋은 이름을 가지셨네요. 소개하실 때 민주노조조합원이시고 페미니스트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는 누군가에게서 민주노조조합원같이 생겼다는 소리도 들으셨대요. 무슨 뜻일까?...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 두 권이 있습니다. 물론 책 내용에는 더 많은 책을 옮겨 주셨고요. 일단 북토크에서 언급하신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조세희/침묵의뿌리/열화당:사진첩인데 평소 헌법과 사전을 가지고 다니시는 분이 쓰셨는데 선택적 단어 선별이 수려하다 제임스베런/스타인웨이만들기/프란츠:번역가가 단어를 되게 잘 썼다 영문을 한글로 번역할 때 몹시 어려움이 있지만 이 책은 남다른 번역가가 번역을 너무 잘 하셨다 어려움이 있을 단어를 무릎을 탁 치게 바꿔 놓았으니 추천. 장일호작가님도 매일 컴퓨터를 켜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으로 단어검색을 놀이처럼 하신답니다. 배울 점이 하나 생겼어요. 저도 매일 들어와 봐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어릴 땐 손 때묻은 사전으로 펼치고 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윗 글에서 언급했듯이 단어검색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렇게 글을 쓸때도 올바른 표현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고 요즘은 문해력을 위해서 라도 도퇴되면 안될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투병이후 가장 크게 느낀 문제는 자율성이라고 하는 게 인권의 영역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항암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타인에게 의존해야하는 자신의 인권을 들여다 보신 거에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도 사실은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 같아서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답니다. 저는 백번 공감하는 표현입니다 '책이 나 대신 울었다' 라는 글에서, 내가 울면 다 속상해지는 그런 상황이었고 의연하게 책 정리 중에 내가 못울고 있으니 책이 울어주었다 라고 생각하셨답니다. 영화 중경상림에서도 양조위가 널어 놓은 빨래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이렇게 슬퍼하냐. 했거든요. 중요한 순간에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이 제 때 못울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두어머니의 문화적 자본 차이를 경험한 이야기. 옛날식 사주풀이 이야기. 어느 도서관에서 할머니의 질문. 왜 남편보고 동거인이라 하느냐 물으셨다구요. 결혼을 꼭 해야되는가, 꼭 남녀만 해야되는가 그러한 화두를 던지신 이야기. 토크중에 애인은 인재라고 말이 툭 나왔어요. 그러다가 자연재해가 나오고.. 재밌는 표현인데 요즘에 참 맞는 말 같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너무도 맞는 말이어서 씁쓸했습니다. 이 세상은 어찌 돌아가는 것인가.. 사랑해서 만난 사이는 인재. 결혼까지 가면 자연재해.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아기까지 낳으면 스불재. (스스로 불러 온 재앙) 젊은 친구들이 결혼을 안하고 사는 것이 사랑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헬조선에서는 집 사고 아이 낳고 할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비혼자들이여, 비혼식도 떳떳하게 하고 축의금도 받으세요. 못받을 건 뭐에요? ‘우리가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모여 책을 읽는지는 사실은 지금이 아니라 내일을 바꾼다’ 라고, 우리가 하나씩 바꾼다 생각을 하면 이 활동들이 좀 의미없고 지치는 날에도 의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민들레책읽기라는 책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화도 내고 뭔가 대안에 대해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거든요. 갑자기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건실한 생각으로 뭔가 활동을 해나간다면 분명히 나아갑니다. 글 못쓰는 사람이 글쓰기 티칭을 받으면 조금씩 발전적인 모습을 보듯이 분명 우리는 젖어들고 나아갑니다. 책 슬픔의 방문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글 잘 쓰시는 작가님은 시사인 기자님이시기도 합니다. 기자님 기사도 구독도 합니다. 진작 알아뵈지 못했지만 지지하는 마음을 보태기로 하였습니다. 팬심으로 추앙하게 되었거든요. 세상에는 정말 조용하게 많은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