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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녕 노무현이 바란 나라인가?"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노무현에 대한 '지못미'의 감정을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노무현의 반대편에 서 있던, 여전히 서 있는 사람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명제다.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 정치의 전과 후를 가르는 선명한 경계였을 뿐 아니라 이후 정치의 판도를 바꾸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 후 3번째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정치적 숙제와 물고 물리는 보복의 순환고리는 여전히 살아 숨쉬며 정치 전반을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이다. "단두대만 없을 뿐, 대한민국은 노무현의 죽음 이후 프랑스의 길을 반복하고 있다." 한 현직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혁명기 프랑스가 그러했듯 대한민국의 정치는 권력을 쥔 집단이 그 이전에 권력을 쥔 집단을 사정없이 난타하고 대중의 눈 앞에 마련한 처벌대 위에 올렸다. 때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검찰과 언론은 권력의 의도에 따라 칼춤을 추고 대중을 뒤흔들었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에 와 버렸다. 극단적 대립이 낳은 보복과 팬덤의 정치는 내외부를 막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는 무조건 적으로 돌려가며 축출의 대상으로 삼아 버리는 일 역시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은 그 위태로운 현실을 교묘히 이용하는 몇몇 정치인과 집단일 뿐이다. 민생은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고 정쟁만 남은 이러한 정치가 국민들에게 이로울 리도 없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논하는 것 역시 또다른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낳을 뿐인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해결책은 무엇인가. 사람이 바뀌면 될까? 체계가 바뀌면 될까? 적어도 노무현 트라우마가 지배해 온 지난 14년 동안을 보면 사람이 바뀌어도, 체계가 바뀌어도 좀처럼 해결이 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극복하고 넘어서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과거는 분명하게 털고 가야 한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수사기관을 앞세워 정적을 축출하고 여론을 등에 엎었다고 으스대며 정의를 들먹이는 것은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분명 노무현의 죽음은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한국 현대 정치사의 비극이다. 하지만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지금의 모습이 정녕 그가 바란 나라인가 물었을 때, 지금의 모든 정치인과 정치집단은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로잡을 무수한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이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은 건 한 가지다. 지금의 정치를 포함해 이제는 극복하고 넘어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좌초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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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시대는 오래된 망령인 노무현 트라우마 과제를 푸는 데 실패했다'. 책 마지막 이 문장 정말 충격이다. 감히 노 사후 윤 취임까지 그 모든 사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문은 실패했다. 노무현으로부터 내려온 지상과제인 '검찰 개혁'에 실패했다. 개혁을 완수할 칼인 검찰총장에 윤을 임명하면서 그 실패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심지어 변명했다. 노를 그렇게 만든 이들 정적들 복수를 위해 적폐청산이라며 몰아붙인 대가일까? 새 시대가 왔다. 작가는 이제 윤에게 조언한다.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복수심을 버리고 노무현으로부터 이어져온 트라우마를 극복하자고... 하지만 그 말은 윤 뿐만 아니라 내게도 하는 말임을 안다. 지금이야 말로 진영을 떠나 노무현으로부터 지겹게 이어 내려온 저 트라우마를 극복할 시간이라는 뜻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