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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완독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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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완독서평나는 아직도 완강히 핸드폰 사용을 거부하는데, 누군가는 요즈음은 핸드폰이 없다는것은 예의가 없는 것처럼 취급될 소지가 있다고 넌지시일침을 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상은 수년 전만 해도 최신품이던 핸드폰 사양을 무슨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버팀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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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완독서평

나는 아직도 완강히 핸드폰 사용을 거부하는데, 누군가는 요즈음은 핸드폰이 없다는것은 예의가 없는 것처럼 취급될 소지가 있다고 넌지시일침을 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상은 수년 전만 해도 최신품이던 핸드폰 사양을 무슨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버팀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는 버티어보려한다.

이것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다.

63-4쪽

이 책의 표제가 된<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아날로그를고집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아날로그의 낭만을 놓지 못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 뿐아니라 디지털을 거부하며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집전화에 이어 상대방의 불편으로 인해 아마도 지금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겠지만 과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크게 불편했던 것 같지는 않다.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는 분명 아쉬움을 크게 느끼고 있는터라 나는 초라한 반자본주의 마저 주장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달리기에 관해서도 언급한 부분이 나오는데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권하기도 한다. 걷기든 달리기든 그 자체에 몰입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신체적인 건강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마치 술과 마찬가지로 달린다는 행위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달리다보니 정신과 육신의 이로운 점이 생겨나는 것이지 그 어떤 것보다 달리기를 우선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가하면 헌책방이나 라면집처럼 반자본주의와 제법 낭만적으로 이어진 내용들도 나오는데 이부분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과 감상이 저마다 다를것 같아 생략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들도 기억에 남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등장한다.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가정폭력에 의해 죽을고비를 수차례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자녀들의 강권하여 이혼에 이르렀다는데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가정폭력만큼은 어떻게든 함께 살라고 강요할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수태저자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읽을 때는 공감하지만 책을 덮는 순가부터 공허해지는 여타의 에세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인문학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나의'라고 했지만 결국 '우리의'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21.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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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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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다산북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은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난을 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밤에 보초근무를 섰던 기간병이나 훈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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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다산북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은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난을 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밤에 보초근무를 섰던 기간병이나 훈련병들은 기합을 받았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건너편에 있는 다른 중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p.42~43

어느 중대가 당했다더라는 이야기나 어느 중대에서는 대낮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성공했는데 선임하사가 직접 작전을 진두지휘했다더라 하는 이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의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에 실린 에피소드이다.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이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으나 점점 이야기의 스케일은 커진다. 어떻게 하면 적으로부터 자신의 중대 창문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게임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흥미진진했던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 쉬운 방법으로 6중대 6중대장에 의해서 사건이 마무리된다. 아마 몇몇 중대장이 왜 자신도 그처럼 남다른 발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말 따라 나 또한 6중대장의 발상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치렀던 '작은 손해'가 다른 모든 중대장과 뚜렷이 구분되는 행동으로 사병들에게 특별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면 나에겐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한대 치는 이야기였다. 정말 '내가 공연히 손해 볼 수는 없다'라는 일념이 한 발자국 양보함으로써 생기는 더 값진 것을 잊고 살게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목차에서 볼 수 있듯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길지 않게 담겨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평범한 삶이 담긴 인문 에세이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그의 삶의 일부분을 통해 나의 삶의 일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와 함께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글들이 많아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3부의 논어 주제가 실렸을 땐 뭔가 아쉬웠다. 저자의 다른 에피소드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3부의 논어를 통해 수없이 들어왔던 '논어'와 '공자'에 대해 맛보기를 할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

 

 

각 장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나볼 수 있는 풍경 그림,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과 함께 제목에서 주던 부정적이고 어려운 느낌이 싸악 씻겨내려가기 기분이었다.

저자의 '간소한 생활에의 꿈'편에선 식당에서 홀로 있으며 식생활로 흐른 생각이 종교의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다시 보게 될 잃어버린 성소나 제단의 흔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편에선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까지 기웃거리며 세상의 변화와 문명의 이기를 줄레줄레 따라가고 있지만 아직 핸드폰은 없다며 버티는 데 까지는 버티어보려 한다며 이것이 본인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를 응원했다.

'고향이라는 허물'편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따라 나 또한 고향을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자란 만큼 폭이 좁아졌던 골목길과 담벼락을 보며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생각, 예전에 있던 가게가 사라졌을 땐 나의 추억을 도난당한듯한 기묘한 기분 등 나의 낡은 기억 아래에 묻히고 만 고향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사 유감'편에서는 우리가 거대한 '……척(pretend)' 속에 살고 있으며 너무 오래 척하느라 척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된 것이 바로 이 자본의 밤이라 이야기를 통해 정말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이 고요를 우리 시대는 잃어가고 있다.

p.97

'고요한 시간'편에서 주는 그 고요함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차 소리 각종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소란한 세상 속에서 벗어나 완전한 고요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댁을 찾아 그저 멍~하니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끝없이 이어지던 논과 밭이 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그 여유로움을 느꼈던 그때가 그리우면서 이제는 그곳을 다시 가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의 소소하면서도 평범한 삶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된 추억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즐거웠다. 그리고 논어 편에서는 묻는다. 저자가 공자에게 말하던 부분이었지만 나에게도 묻는듯했던 말, 이젠 그 답을 찾아볼 시간.

너는 무엇을 하느라 네 일생을 허비하였느냐?

머리는 왜 그리 희었으며

지금 그 늦은 나이에 아직도 무엇을 찾겠다고

서성거리고 있느냐?

p.233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인문학에세이인문학도서

a******2 2021.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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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6일차(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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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사무사 책방 시리즈 중 조금 늦게 읽었는데 웬걸 술술 읽힌다. 저자와 함께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논어에 대해 적어놓은 부분에서 약간이나마 논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으나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 이수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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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사무사 책방 시리즈 중 조금 늦게 읽었는데 웬걸 술술 읽힌다. 저자와 함께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논어에 대해 적어놓은 부분에서 약간이나마 논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으나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인문학에세이인문학도서

a******2 2021.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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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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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우리의 번영도 번영이 아니고 우리의 세련됨도 이미 세련됨이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척(pretend)' 속에 살고 있다. 너무 오래 ……척하느라 ……척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된 것이 바로 이 자본의 밤이다. p.70 32평으로 이사를 하고 심란한 저자는 아내에게 버럭 화까지 냈다고 한다. 32평 아파트로 표현되는 이 애처로운 삶의 지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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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우리의 번영도 번영이 아니고 우리의 세련됨도 이미 세련됨이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척(pretend)' 속에 살고 있다. 너무 오래 ……척하느라 ……척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된 것이 바로 이 자본의 밤이다.
p.70

32평으로 이사를 하고 심란한 저자는 아내에게 버럭 화까지 냈다고 한다. 32평 아파트로 표현되는 이 애처로운 삶의 지표를 그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내게는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범죄처럼 여겨진다."던 간디의 말이 뒤따랐다는 저자. 32평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볼모 잡히지 않으려고 버티기도 했다는 저자의 말이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

정말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대목에서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공감이 갔다.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리투지원도서사무사책방시리즈인문에세이

a******2 2021.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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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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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도 전화가 없는 집이 있나요?" "요즈음도 흑백텔레비전을 보는 집이 있나요?" p.62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주위에서 신기하단 듯이 반문하는 소리를 수없이 듣고서 전화를 놓고, 컬러텔레비전을 샀다는 저자. 지금은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까지 기웃거리며 세상의 변화와 문명의 이기를 줄레줄레 따라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핸드폰은 없으시다고... 버티는 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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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도 전화가 없는 집이 있나요?"
"요즈음도 흑백텔레비전을 보는 집이 있나요?"
p.62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주위에서 신기하단 듯이 반문하는 소리를 수없이 듣고서 전화를 놓고, 컬러텔레비전을 샀다는 저자. 지금은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까지 기웃거리며 세상의 변화와 문명의 이기를 줄레줄레 따라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핸드폰은 없으시다고... 버티는 데까지는 버티어보려 한다며 이것이 본인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라고 한다.

저자는 세상의 변화에, 문명의 이기에 따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난 주위의 간섭에 더 따라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혼자일 때는 왜 남자친구가 없냐고 묻는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좋은 소식이 없냐고 묻는다. 또 아들 쌍둥이를 낳았을 땐 이젠 엄마에겐 딸이라며 딸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가족계획까지 세워주던 주위 사람들, 모르는 어르신들... 요즘은 아이를 가지지 않고 둘만 살아가는 부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제일 힘든 건 아마도 주위 사람들의 '좋은 소식 없냐'라는 질문이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내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을듯하다. 티비가 없으면 어떻고 핸드폰이 없으면 어떠냐 싶다.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정작 나의 시간이 사라져가는데.. 단지 나의 주위 사람들이 불편을 느낄 뿐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를 응원하고 싶다. 어째 쓰다보니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기분이지만 ㅎㅎㅎㅎ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인문학에세이인문학도서

a******2 2021.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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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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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의 모든 것은 결국 가족 중심으로 결정이 나고 나의 생각이나 정서는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그 생각과 정서가 조금이나마 꿈틀거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라면집 의자 위에서의 하릴없는 상념 정도이다. p.58 저자의 간소한 생활에의 꿈 편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끔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한없이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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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의 모든 것은 결국 가족 중심으로 결정이 나고 나의 생각이나 정서는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그 생각과 정서가 조금이나마 꿈틀거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라면집 의자 위에서의 하릴없는 상념 정도이다.
p.58

저자의 간소한 생활에의 꿈 편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끔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한없이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혼자 살았더라면 정말 간소하게 살았을듯싶다. 아마도 먹는 거에 있어서는 정말 정말 정말 간단하게 대충 때우는 식이었을듯하다.

의식주에서도 식생활, 먹는 것은 인간 조건의 절대적인 부분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여진다. 정말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깐! 식당에서 홀로 있으며 생각의 고리가 식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의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다시 보게 될 잃어버린 성소나 제단의 흔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인문학에세이인문학도서

a******2 2021.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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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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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치랑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는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p.43 한 편의 게임을 본듯한 이야기였다. 도난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으며 그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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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치랑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는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p.43

한 편의 게임을 본듯한 이야기였다. 도난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으며 그다음 날엔 다른 중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으니 ㅋㅋㅋㅋ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웃으며 읽어내려갔다. 이 스릴 넘치는 게임에 종지부를 찍은 6중대장!

정말 한 발자국을 물러섬으로써 자신의 앞에 몇 배나 더 넓은 영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6중대장이 아니었을까?! 내가 손해 볼 수 없다는 일념이 만들어 낸 이 문제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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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2021.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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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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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새로 부임하는 보스는 처음에는 조직원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엄했다가 차츰차츰 관대해져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가혹했다가 관대해져야 관대해졌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며 처음부터 관대하면 그것을 관대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연하게 여기며 또 오히려 나중에 가혹해질 경우 원망하게 된다. p.34 이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전략적 사고가 얼마나 기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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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새로 부임하는 보스는 처음에는 조직원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엄했다가 차츰차츰 관대해져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가혹했다가 관대해져야 관대해졌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며 처음부터 관대하면 그것을 관대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연하게 여기며 또 오히려 나중에 가혹해질 경우 원망하게 된다.
p.34

이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전략적 사고가 얼마나 기괴한 논리에 빠질 수 있는지 느낀 적이 있다는 저자. 난 왜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특정한 단어가 떠오르는 것일까?! 오히려 착하던 사람이 제대로 화를 내면 더 무섭지 않나?! 가혹할 정도로 엄하던 사람이 관대해지면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들던데... 아! 가끔은 '웬일이래?!'라는 생각도 드니깐 그런 맘인가?!

인간의 전략적 사고가 주는 기괴한 논리와 위험성 너무 있을법한 이야기인 거 같다.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이수태다산북스리딩투데이인문학에세이인문학도서

a******2 2021.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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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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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시리즈 중에서 사적인 에세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에세이여서 가볍게 읽어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읽으면서 이태수 작가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도 작가의 인생의 가치를 볼 수 있었고, 그 가치는 곧 옛 선조들의 신념과 일맥상통함을 엿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고 두른 것이 많고 내세울 것이 많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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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시리즈 중에서 사적인 에세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에세이여서 가볍게 읽어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읽으면서 이태수 작가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도 작가의 인생의 가치를 볼 수 있었고, 그 가치는 곧 옛 선조들의 신념과 일맥상통함을 엿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고 두른 것이 많고 내세울 것이 많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위상을 잃게 된다.

제 자신을 잃고 어떻게 남을 논의할 수 있는가.

이태수 작가는 한 시대의 사람으로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삶 속에서 성찰한 인생의 가치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세속적, 물질적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염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이 옛 현인들의 지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물질적인 것에 흔들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가치가 가장 아름답고 살아가면서 고수하기 힘들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생각하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나날들이다.

우리의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척'하는 속에 살고 있다.

평범한 삶. 그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삶이지만 그 속에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은 극소수이고 어렵지만 나는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훨씬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과 발돋움을 수없이 해야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우리들에게 잠언의 경구들을 통해 성찰을 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책 중에서 사무사의 주제와 가장 걸맞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사사로운 에세이 작품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k******1 2021.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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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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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마주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이 섬세하고 어렵지 않은 에세이 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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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마주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이 섬세하고 어렵지 않은 에세이 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에 대한 표현이 섬세하였다.

특히 안양천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고향은 없다. 고향은 다만 내 추억 속에만 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고향은 아버지의 헐벗은 무덤을 안고

늙은 어머니의 초점 잃은 퀭한 눈을 안고

오늘도 창백하게 낡아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숲 그늘을 노래하던 매미는 잠시 자신이 허물을 벗던 나무둥치,

그 메마른 허물 곁에 앉아 본다.

한때는 그의 세계였던 허물,

여름과 녹음을 향한 꿈, 끝없는 비상의 꿈이 배태되던 허물은

이제 하얗게 바랜 흔적만으로 매달려 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내용을 읽고 나니,

저자가 고향에 대해 느꼈던 그 쓸쓸하고 황량한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또한 '내 키가 자라는 만큼 그 폭이 좁아졌던 강도 급기야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고 말았다'와 같이

전체적인 표현이 섬세하고 그 상황이 이해되고 장면이 상상되듯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고향 또한 언제나 그 모습으로 그 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고향이 그 단어의 의미로서 그리고 반갑고 정겨운 추억의 장소로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물리적 장소나 공간이 아니라 나의 기억과 추억을 통하여 내 마음에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변화를 겪어가는 것이

비단 인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 그 시간의 흐름 가운데

고향도 그 주변 환경도 함께 변화해간다는 것이

새삼스러울지 몰라도 조금은 새롭고

잘 인지하지 못한채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돌아보는 생각 가운데

왠지 그것들은 그대로이기를 바라며 지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칠 줄도 모르고 안양천과 놀고 있다.

나는 문명의 개숫물이 흘러 내려가는 이 거친 저지대에서 잠시 숨을 쉰다.

이런 휴식도 어쩌면 내 존재에 있어서는 불성실과 도피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만한 휴식도 없이 어떻게 이 곤고한 세월을 살아간단 말인가.

이제 초가을이다. 안양천의 뿌연 흙빛은 어느덧 다시 녹색의 풀빛들로 바뀌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풀더미 아래에는 아직도 큰물의 상처가 뿌옇게 혹은 시커멓게 남아 있다. 그래도 안양천은 지난달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고 파란 하늘 아래에는 군데군데 코스모슥가 피어 그림처럼 고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그 코스모스도 쓰러져 눕고 풀들도 누렇게 시들어 본격적인 가을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겨울이 오면 이 헐벗은 안양천에도 눈이 올 것이다.

나는 눈 덮인 안양천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때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난, 하얀 길을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 보고 싶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이글을 읽고 안양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양천에 대해 적은 저자의 표현이 섬세하고

자연에 대한 묘사가 세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 부터 시작하여 겨울까지, 안양천에 대한 글 가운데 사계절이 담긴듯

저자의 표현을 따라 읽다보면 변화되는 안양천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저자의 행동과 시선을 따라 나도 안양천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 글 다음에 저자는 '병든 도시의 정맥' 그리고 '버려진 저지대'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다음에는 '찬가를 보내고 싶어진다.' 와 '공연히 마음이 아득해지고 눈물겨워진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비되는 듯한 표현으로 안양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더욱 강조하여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천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고 시원하게 조성된 하천 부지에는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뚝방 아래 농구코트를 가로질러 곧바로 물 가까이 접근하니

탁한 오수의 냄새가 풍겼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 냄새는 조그마한 소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추억의 냄새이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들고 종일 철다리 아래 개천가를 쏘다닐 때 시커먼 도랑에서 나던 그 잊혀졌던 냄새를 나는 모처럼 다시 맡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검은 물 위로 야생 오리들이 줄을 지어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미끄러지듯 헤엄치고 있었다. 봄이라서 그런지 하천부지는 온통 연녹색이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이전에 앞 부분에서 저자가 고향에 대해 적은 글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글과는 또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고향을 고향이라는 의미로서 느끼는 것은

그 위치나 장소가 아니라 내가 고향이라는 단어 가운데 가지고 있는

마음과 추억, 감정들이 모인 그 정서를 느낄 수 있을 때 인 것 같다.

 

또한 옛 시절이 떠올라 반가운 그 감정은

항상 밝고 따뜻한 것들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며,

비록 그 자체의 소재는 좋지 않더라도

내가 그것을 통해 느끼는 정서와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나에게 소중하고 정겨운 것이라면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는 별개로

나에게 그 순간에는 긍정적인 것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상처'에 대한 내용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저자의 시선이 철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의 전환 가운데 상처를 극복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처를 상처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극복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정초에 컵퓨터를 고치겠다고 연장을 다루다가 무심결에 손을 다쳤다.

작업에 너무 취해 있었던 탓인지 손이 좀 쓰리다는 것만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컴퓨터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놓았으나 움직임이 많은 부분이라 제대로 붙어 있지를 않았다. 아물다가 피가 나고 또 아물고, 딱지가 앉다가 떨어지고 또 딱지가 앉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상처를 다스리면서 나는 마음에 난 상처를 생각해 보았다.

우연한 일상일 수도 있고 또 그 순간을 자극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더치고 하는 과정이 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7

컴퓨터를 고치다 다친 손의 상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생각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아마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무너질듯 자책을 했을 것 같다.

요증 더 힘들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너무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나보다 그런 내면의 상처를 인식하고 이겨내는 힘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서도 저렇게 또 다른 시선의 생각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막연하게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늘해왔다고 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그러한 상처 하나 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요즘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나를 돌보기도 지치는 날들이 많아서

그냥 편히 쉬고 싶고, 더 이상 상처로 아파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몸도 마음도 어디하나 상처 받지 않고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저자의 표현은 인상적이었고, 공감이 되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고이자란 사람의 시선은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기 쉬다.

인간사의 다양하고 미묘한 내정은 제가끔의 상처를 통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처를 다스리면서 형성된 경험세계를 통해 비로소 인지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심한 상처는 때로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자체를 압살해버리기도 한다. 실제 세상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터를 안고 그 고통에 짓눌려 한평생을 불행히 살다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할수 만 있다면 상처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상처는 우리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상처 그 자체는 대부분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불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면 우리는 그 우연성과 개별성을 넘어 필연성과 보편성을 갖춘,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지닙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8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몸의 상처 한 번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처는 받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 라는 생각도 든다.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상처라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함께 존재할 때 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기 위해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산북스의 사무사책방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주로 읽었던 책이 외국작가들 책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이야기가 다긴 책을 더 자주 찾아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혹시나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먼저 생각할 수 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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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7 2021.06.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