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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 이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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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읽을 때는 개별적인 5개의 단편 소설들이 수록된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되고, 내용들도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 소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의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소설을 통해 이해될 수 있었따. 즉 이 책은 ‘벼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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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읽을 때는 개별적인 5개의 단편 소설들이 수록된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되고, 내용들도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 소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의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소설을 통해 이해될 수 있었따. 즉 이 책은 ‘벼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서로 다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서술된 하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청소년들이 각자의 다른 삶에서 각기 경험하는 절망과 삶의 막바지라는 위기 의식, 실망과 좌절 등이 다른 모습을 지니고 펼쳐지고 있다. 첫 번째 ‘노는 애와 이상한 애’는 이상한 애로 불려지는 것에 만족하는 나은조, 자신이 이상한 애로 불려지는 동안은 나를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한 애로 취급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나은조. 입시를 위해 지금을 즐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 자신이 더 이상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자퇴를 결심하기까지 공감이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갑작스런 친구의 자살 등이 무리하게 설정된 것 같은 느낌은 받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이 겪을 수 있는 고민이라고 여겨진다. 자살과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특수한 경우지만, 극적인 전개를 위해 선택이 불가피했으리라 이해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번쯤은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노는 애 난주에 대해서는 아무 내용이 없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다보니, 세변째 소설 ‘벼랑’에서 난주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첫째 소설에서 담임선생님께 혼나고 있는 난주가 잠깐 등장하는데, 세 번째 소설을 읽다보니 그때 난주가 왜 혼났을지, 난주를 왜 노는 애라고 했는지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벼랑’에서는 학교 폭력의 악순환이 드러난다. 벼랑에 몰린 피해자들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난주에게 가해를 가했던 경화가 피해자 되고, 피해자였던 난주가 이번엔 가해자가 되어 경화를 벼랑 끝으로 몰게 된다. 특히 여기에서는 청소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성인의 추한 모습까지 등장한다. 물질적, 윤리적, 사회적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초록빛 말’에서는 짧은 내용 속에 잘 계획된 구조, 소재가 인상적이다. 혜림의 자살을 필리핀 어학 연수에서의 경험과 연관 지어, 혜림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혜림이 자살한 장소인 호수와 제스민의 고향 호수, 자신과 제스민의 처지 비교, 화산 분지까지 태워다 주는 말의 외모에 대한 실망과 생각과 현실의 차이 등을 교차시키며 내용을 전개한다. 이런 소재, 배경, 설정이 작가의 치밀한 계산과 조직 속에서 서술되고 있는 것 같아 잛지만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 레미에서 희수’와 ‘늑대거북의 사랑’에서는 현우와 민재가 주인공으로 각각 등장한다. 입시아 현실적 도구로서의 미술, 마마보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현우는 자신과 모든 것이 대조적인 희수에 대한 동경과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삶,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그 현실을 무시하고 미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몰두하고 있는 희수는 현우에게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희수가 연출해낸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현우는 분노와 배신감에 희수를 떠나게 된다. 결국 현우가 누리고 있는 현실을 희수는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었던 것이고, 어쩌면 희수는 그러한 현실을 누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수는 현우가 누리고 있는 현실을 동경하고 집착하기보다는 미술과 고흐에 대한 열정에 자신을 던지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다. 현우로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삶을 희수는 선택한 것이다. 희수의 이러한 자유와 열정에 던져진 삶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동경하는 삶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묶여 있는 현실을 떨쳐 버리고 뛰어들기에는 무모함과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그저 동경으로만 그치고 현실에 주저 앉아 있는 쪽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희수는 어떤가? 희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즉 다른 아이들이 당연히 누리고 있는 현실적 안정과 기반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열정과 자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어떤 용기가 필요하기보다는 어쩔 수없이 내몰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선택도 있었겠지만, 그런 삶을 선택한 것에는 다른 의미의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늑대거북 사랑’을 책의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현우의 일상이 등장하면서 앞의 소설에서 생략된 현우의 이후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평범한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이고, 겉으로 볼 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 속에서도 저마다 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리고 늑대 거북관 관계된 부모님의 사랑, 주변 사람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현실이 수용할 수 없는 그래서 잠시 보류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한계 등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 앞에서 벼랑 끝에 선 겉 샅은 우리의 삶이지만, 그런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 한 인간이 되어져간다는 것, 그 과정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고 부모, 이웃, 친구들의 관계와 관심과 더불어 성장해간다는 것을 발해주고 싶은 의도에서 이 부분을 마지막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y****j 2025.02.14. 신고 공감 14 댓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