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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낙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철저히 거세된, 실낙원 이야기
"복낙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철저히 거세된, 실낙원 이야기" 내용보기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한다. Genesis. 창세기는 세상이 시작된 이야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건 신의 입장일 뿐이다. 신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만든 이야기가 창세기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창세기>는 '실낙원', 즉 낙원을 잃는(엄밀히 말하면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다. 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는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하나님
"복낙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철저히 거세된, 실낙원 이야기" 내용보기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한다. Genesis. 창세기는 세상이 시작된 이야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건 신의 입장일 뿐이다.
신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만든 이야기가 창세기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창세기>는 '실낙원', 즉 낙원을 잃는(엄밀히 말하면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다.

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는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물로 준 낙원인 에덴에서 쫓겨난다.

여기까지가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창세기>를 통해 '실낙원' 이후, 그러니까 낙원인 에덴에서 추방당한 이유의 스토리를 알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아들 둘을 낳는다. 가인과 아벨.

이 둘 사이에서 이 가정의 비극이자 인류 최조의 살인이 일어난다. 맏아들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낙원을 잃어버린 아담과 이브에게 닥친 불행이자 '실낙원'의 실체이자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실낙원'은 낙원을 잃은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시작된 모든 비극들을 의미하며, 가족 내에서, 형제 간에 일어난 살인이 '실낙원'의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살인이야말로 '실낙원'의 정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트장>은 <창세기>의 재해석이다. 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만든 이야기(2부의 첫 시인 「R을 제외한 해변의 전체」와 3부의 첫 시인 「침묵의 푸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1부의 첫 시이자 이 시집 전체를 여는 「하농 연습」, 4부의 첫 시인 「현대사 공부」 등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낙원'에 대한, '실낙원'의 이야기다.


<세트장>은 '실낙원'의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는 '그 살인'에 대한 다양한 변주이자 기나긴 이야기이다. 그래서 종종 스릴러 소설처럼 서늘하고 추리소설처럼 시인이 준 실마리들을 찾기 위해 집중해서 읽게 된다. 하나의 단서라도 놓치면 큰 일날 것처럼.
시인이 잘 짜놓은(세팅된) '세트장'에 독자가 쑥 들어가게 되는 셈인데, 요즘 말로 하면 가상 현실 체험인 VR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산하고 불길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가장 먼저 촉감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독자들은 점진적으로 '실낙원'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서서히 경험하게  된다. 마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본인이 바로 그 '살인자'이거나 그 살인을 목격한 사람처럼.

 

한 가지, 존 밀턴의 <실낙원>과 김선오의 <세트장>의 차이점이라면, 존 밀턴이 예수를 통한 구원의 희망을 품고 있다면, 김선오는 타락 이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실낙원'만 있고 '복낙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배제내지는 거세되어 있다.

그렇기에 김선오의 <세트장>은 철저하게 불길한 '실낙원'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3.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