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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한다. Genesis. 창세기는 세상이 시작된 이야기다. 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는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다. 여기까지가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창세기>를 통해 '실낙원' 이후, 그러니까 낙원인 에덴에서 추방당한 이유의 스토리를 알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아들 둘을 낳는다. 가인과 아벨. 이 둘 사이에서 이 가정의 비극이자 인류 최조의 살인이 일어난다. 맏아들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즉, '실낙원'은 낙원을 잃은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시작된 모든 비극들을 의미하며, 가족 내에서, 형제 간에 일어난 살인이 '실낙원'의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살인이야말로 '실낙원'의 정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트장>은 <창세기>의 재해석이다. 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만든 이야기(2부의 첫 시인 「R을 제외한 해변의 전체」와 3부의 첫 시인 「침묵의 푸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1부의 첫 시이자 이 시집 전체를 여는 「하농 연습」, 4부의 첫 시인 「현대사 공부」 등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낙원'에 대한, '실낙원'의 이야기다.
한 가지, 존 밀턴의 <실낙원>과 김선오의 <세트장>의 차이점이라면, 존 밀턴이 예수를 통한 구원의 희망을 품고 있다면, 김선오는 타락 이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실낙원'만 있고 '복낙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배제내지는 거세되어 있다. 그렇기에 김선오의 <세트장>은 철저하게 불길한 '실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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