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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전집 - 고형진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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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서정시가 또 있을까.’ 박용래님의 시를 만나고 나서 얻은 첫느낌이다. ‘눈물의 시인’이라고도 하고 ‘전원적, 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 했다는 이 시인을 지난 겨울 알게 되었다. 평산 책방에서 선정한 3월의 시집이기도 했다. 1925년 충남 강경에서 탄생, 1956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 한때 중학교 국어교사, 1980년 사망 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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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서정시가 또 있을까.’ 박용래님의 시를 만나고 나서 얻은 첫느낌이다. ‘눈물의 시인’이라고도 하고 ‘전원적, 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 했다는 이 시인을 지난 겨울 알게 되었다. 평산 책방에서 선정한 3월의 시집이기도 했다. 1925년 충남 강경에서 탄생, 1956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 한때 중학교 국어교사, 1980년 사망 등 여러가지 이력도 눈에 띈다. 그렇지만 처음 시부터 끝 시까지 자연과 고향, 가난 등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시인의 맑은 감성이 담겨져 시 한 편 한 편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중에서 내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 시 몇 편을 소개해 보겠다.


1.

가을의 노래 - 박용래


깊은 밤 풀벌레 소리와 나뿐이로다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로 간다

어두움을 저어 시냇물처럼 저렇게 떨며

흐느끼는 풀벌레 소리…….

쓸쓸한 마음을 몰고 간다

빗방울처럼 이었는 슬픔의 나라

후원을 돌아가며 잦아지게 운다

오로지 하나의 길 위

뉘가 밤을 절망이라 하였나

말긋말긋 푸른 별들의 눈짓

풀잎에 바람

살아 있기에

밤이 오고

동이 트고

하루가 오가는 다시 가을밤

외로운 그림자는 서성거린다

찬 이슬밭엔 찬 이슬에 젖고

언덕에 오르면 언덕

허전한 수풀 그늘에 앉는다

                                          - 1955년 작


--> 1955년 『현대문학』에서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은 시다. 어두운 가을밤. 나와 풀벌레뿐이다. 화자는 풀벌레에 감정이입하여 쓸쓸하고 슬프고 외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푸른 별들과 바람이 있기에 밤은 절망을 넘어선다. 그리고 동이 트고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화자는 하루가 오가는 자연의 섭리 안에서 자기 존재의 불안으로 서성거리며 가을밤에 자연을 관조하고 있다.


2.

울타리 밖 - 박용래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들길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이다. 소년, 소녀의 낯선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울타리 밖 공간, 즉 대자연의 공간이다. 그곳은 아지랑이가 피고 제비가 날고 물이 흐르듯 천연의 공간이다. 마을은 인위적인 공간이다.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다. 울타리 밖에 화초를 심는 행위는 인간의 공간에 자연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오래오래 태양의 잔광이 남고 별 뜨는 이 마을에서 자연과 함께하고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소망이 드러난다.


3.

하관 - 박용래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딩구는

우렁 껍질

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하관

선상에서 운다

첫 기러기떼.


--> 시인의 누님 이름은 홍래(鴻來)였다고 한다. ‘기러기’는 누님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어려서 누님을 잃었다. 누님은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다. 어른이 된 후에도 누님을 생각하며 자주 울었다고 한다. 이 시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누님의 장례식을 연상하게 한다. 껍질만 남은 우렁과 바닥에 떨어지는 햇무리 등은 죽음을 의미한다. 일렬로 늘어서 울면서 떠나는 기러기떼는 떠나가는 누님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4.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춧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시인에게 누이, 가을은 그리움, 슬픔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화자는 이 가을에 구절초를 본다. 고향에 지천으로 피고, 약으로도 쓰이고,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정도로 예쁜, 무섭도록 적막한 숲속에서 피는 꽃이다. 고향과 누이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죽은 누이를 그리는 것이다. 가을은 화자에게 몹시도 아름답고도 슬픈 계절이다.


5.

강아지풀 - 박용래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역 구

내 모퉁이 어메는 노

오란 아베도 노란 화

물에 실려 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풀. 목

마른 침목은 싫어 삐

걱 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 싫어 반딧불 뿌

리는 동네로 다시 이

사 간다. 다 두고 이

슬 단지만 들고 간다.

땅 밑에서 옛 상여 소

리 들리어라.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풀.


--> 전체 시의 형태가 네모다. 행을 억지로 끊어 단어를 해체해 버리고 네모난 틀에 집어 넣은 것은 갑갑한 현실에 갇혀 있는 강아지풀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어느 기차역에 갇혀 있는 강아지풀 가족. 기차와 침목은 근대의 상징이다. 근대 문명은 인간성의 상실로 연결된다. 인간성을 배제한 목마른 침목이 강아지풀을 둘러싼 현실이다. 강아지풀 가족은 모든 것을 버리고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다시 이사를 가려한다. 반딧불이 살아있는 근대화 이전의 순수 공간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녹물이 들어버린, 즉 삶에 찌들어 혼탁해진 강아지풀에게 순수의 공간은 아주 멀어 보인다. 강아지풀은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이 시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세계, 즉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t*****i 2024.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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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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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알려진 여러 서정시인이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풀어낸 시어들이 답답하고 거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서정시의 매력이라 생각하는데 이름있는 그들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마치 정석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유롭고 아름다운 작품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박용래 시인의 시를 알게 되었고 이번에 출간된 박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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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알려진 여러 서정시인이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풀어낸 시어들이 답답하고 거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서정시의 매력이라 생각하는데 이름있는 그들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마치 정석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유롭고 아름다운 작품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박용래 시인의 시를 알게 되었고 이번에 출간된 박용래 시전집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박용래 시인의 시들을 꾸준히 찾아 읽었었는데 그의 시는 조용한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들입니다. 눈 오는 밤, 살포시 쌓여 있는 싸락눈 같은 시들이 그의 작품들이며 요란하지 않으면서 삭막한 마음을 달래 줄 부드러움이 있는 시어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박용래 시인의 시들은 조곤조곤한 어조가 특징입니다. 과하지 않은 묘사와 절제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시끄러움과는 반대의 위치에 서 있고 그럼으로써 알음알음 서정시를 찾아다니는 독자들에게만 알려진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차분하고 정적인 시들이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절대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시입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슬픔과 외로움을 담아내면서도 희망을 절대 놓지 않는 문장들이 마음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고 그의 시들은 겨울밤, 조용히 한구절 한구절 읽어나가는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라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박용래 시전집을 구입하며 다시 그의 시들을 보게되었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도 좋은 시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름다운 한 권이었고 언제나 마음속 술렁임을 일으키는 좋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입니다.

 

p*****9 2023.0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