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어오고 있으면서도 막상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연학을 주제로 한 그의 에세이는 1974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펴내는 월간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되어 왔다고 하는데, 300여 편에 달한다고 합니다. 27년의 기간 동안 써온 것이라고 한다면 매월 한편씩의 에세이를 써온 셈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에세이라기보다는 한편의 논문이라고 할 정도로 정교하고 풍부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나는 에세이를 쓸 때 하나의 원칙을 따른다. 타협은 없다. 즉 전문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없앰으로써 접근성을 높이되 개념은 결코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하는 자신만의 글쓰기 원칙에 충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997년에 <다윈이후>라는 에세이집으로 묶어서 내놓은 이래 2002년 <I have landed>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권의 책으로 출판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윈 이후(1998)>, <판다의 엄지(1998)>,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1998)>, <여덟 마리의 새끼 돼지(2012)>에 이어 <플라밍고의 미소>가 다섯 번째로 소개되었습니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1985년에 출간된 에세이집이기 때문에 1980년대 초반에 쓰인 글들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생생한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은 앞서 소개한 굴드의 글쓰기 원칙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에세이집을 낼 때의 시점과 관련하여 통일된 주제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멩고의 미소>에서는 ‘연쇄적인 함의를 낳는 한 가지 특정한 발견’이라는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궤도를 벗어난 소행성, 혹은 혜성 소나기가 백악기 멸종을 일으켰다는 가설은 지금 ‘매우 있음직한’ 일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토록 철저하게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의 재구성은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2,500만년 내지 3천만 년이라는 규칙적인 주기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라는 점입니다. 주제와 관련된 사실을 광범위하게 다룬 글은 이 책의 15번째 에세이 ‘죽음과 변모’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8부 ‘멸종과 연속성’에서는 곳곳에서 대규모 멸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구환경은 새로운 생명체로 채워져 왔다는 점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당시 고생물학이나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는 멸종이 그만큼 중요한 주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멩고의 미소>에 실린 글들이 모두 생물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이례적인 에세이 한편이 있습니다. 바로 14번째 에세이 ‘양극단의 소멸’입니다. 이 에세이를 쓸 무렵 미국 프로야구계에서 4할을 치는 타자를 볼 수 없게 된 현상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굴드가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직업은 고생물학자다. 생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의 대부분을 장기적 경향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낸다. (…) 우리가 경향을 설명할 때 하나의 미묘하지만 강한 편향에 사로잡힌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극단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우리는 극단을 시스템 내의 특별한 값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그 극단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 하지만 우리가 극값을 더 큰 시스템이 갖는 한계치로 간주한다면 매우 다른 종류의 설명이 나올 수 있다.(270쪽) 얼마 전에 읽은 최재승교수님 등의 <백인천 프로젝트; http://blog.yes24.com/document/7382719>가 출범하게 된 배경이 된 에세이라고 합니다.
실험을 하다보면 간혹 튀는 값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값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간혹 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과학이 과학답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꼭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데이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고 틀과 맥락이 필요하다. (…) 과학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도 그런 작업의 본질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틀림없다.(176쪽)” |
|
굴드는 다윈 이후 가장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2년 62세로 타계했다. 그는 일찍이 나일스 엘드리지와 함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 theory)를 발표(1972)하여 독창적인 진화론을 세웠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
현암사는 굴드의 에세이 시리즈 중 주요 작품을 선정해 출간하고 있는데 최근 《플라밍고의 미소》를 선보였다. 이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Eight little piggies)에 이어 두 번째 권. 《플라밍고의 미소》는 굴드에게 네 번 째(1985) 에세이집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역시 시리즈 중 여섯 번째(1993) 것으로 굴드의 사후 10주기를 맞은 2012년도에 나와 그 깊은 뜻을 더했다. 굴드의 필력이 지닌 강점은 진화론의 특수성에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반성을 이끌어내는 점이다. 이번《플라밍고의 미소》도 그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역전과 경계를 다루고, 마지막 8부는 멸종과 연속성이다. 내가 보기에 굴드는 에세이집을 엮을 때 치밀한 구성을 위해 안배를 하지 않나 싶다. 아마도 굴드는 ‘역전’과 ‘경계’의 영역은 진화의 ‘연속성’상의 한 단계일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채기를 염원했는지 모른다. 또한 이 책에는 생명사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멸종에 관한 에세이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저자가 역사과학의 ‘여왕’으로 추대한 분류학을 찬미하는 에세이들과 역사과학의 방법을 다루는 에세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킨제이가 과거에 혹벌분류학자였다는 사실과 그의 성 연구가 긴밀한 학문적 관련을 맺고 있다고 밝히며, 다윈 이전의 오래된 분류학이 채용했던 수비학 등 학계 연구 성과에 대한 해석, 새로운 발견 혹은 이례적인 사례 연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현암사에서 작년에 펴낸《여덟 마리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굴드는 《내추럴 히스토리》에 자연학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절대로 깨지 않는 규칙이 두 가지 있다고 밝힌다. 첫째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둘째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첫째 규칙을 지키기 위해 철두철미 수많은 원전을 바탕으로 1차 자료만 인용한다. 누군가의 해석이나 편집을 거친 2차 자료를 활용할 경우에는 뜻하지 않은 오류가 생성되고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규칙에 대해서는 굴드의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내 경우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에서 굴드가 〈작품번호 100〉으로 명명한 에세이를 보자. 이것은 100번째 쓰는 연재물이란 뜻으로 붙인 것이다. 100번째 에세이를 맞는 기념으로 자신이 푹 빠져 있고 개인적 열정을 불태우는 사랑의 대상, 바하마 제도의 육상 달팽이 케리온(Cerion)속에 대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두 번째 규칙을 깨뜨리는 것, 즉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대상인 케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지만, 발견의 순수한 기쁨 앞에서 환호를 내질렀을 저자의 학문적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리라.
이는 라마르크의 말이다. 라마르크는 생물들이 환경의 필요성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며, 그 결과로 일어난 변화들을 자손에게 직접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일명 ‘획득형질의 유전’. 물론 다윈은 이에 반대하면서, 진화는 지역 환경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변이하는 행운을 타고난 개체들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더 많은 생존 자손을 남긴다고 주장했다. 과연 굴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과 수고를 아끼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굴드는 이의 설명은 불충분하고 관점도 부적절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굴드의 견해는 어떠할까? 그는 야구가 등장한 이래 선수들이 서서히 수비, 투구, 타격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변이는 필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석한다. 느긋했던 시대에 나왔던 극단적인 성적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극단’에 주목하자. 굴드가 야구 이야기를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가 극단에 매혹되어 이에 집중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가령 예로 포유류의 가장 큰 뇌 크기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온 사례를 든다. 이것만 보면 포유류는 마치 가차 없이 뇌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표준’적인 뇌 크기는 분류군이 생긴 이래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평균값으로의 회귀’를 떠올려 보면 굴드의 지론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굴드의 에세이는 진화론과 과학사에 대한 정치하면서 참신한 맛을 안겨 주기도 하고, 인간사에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은 힘이 있고 살아 꿈틀거린다. 그의 몸은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아직도 그의 정령은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말미를 보자. 흥미롭게도 공룡의 멸종에 대해 다룬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서는 3가지 가설이 있다. 익히 아는 하나는 소행성과의 충돌설이다. 그런데 다른 두 가지 가설이 의외로 재밌다. 이에 대한 것도 역시 품을 팔기 원하는 독자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고 싶다. ^^ 아무쪼록 현암사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왕 내친 김에 굴드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을 모두 내주십사하는 것이다. 여러 춣판사를 통해 간헐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일관해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탓이다. 혹여 누가 알겠는가? 제2의 장대익 교수같은 이가 또 나올지 말이다! |
|
다윈의 종의 기원은 아직도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진화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진리에 가까운 인류 문명의 대표성에 도전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스티븐 제이굴드이다.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그는 진화대표이론인 단속평형설을 통해 진화가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생명의 재구성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우연성에 기인한 생명 탄생을 강조한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1980년대 초에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자연학 에세이집의 일부이다. 300편의 논문 중 220여편이 역사적 요소인 역사과학 분야를 다루고 있다. 역사과학은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이 역사를 수반한 재현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플라밍고는 선명한 빨간색의 우아한 새로 크고 부드럽고 살집이 있는 혀로 진화하였으나 이로 인해 불행의 근원(채집자의 표적)이 되었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식지인 염도 높은 얕은 호수에 서식하는 새로, 몸집이 큰 포에니콥테루스 루베르는 연체, 갑각류,곤충, 애벌레를 먹이로 삼는다. 반면 포에니코나이아스 미노르는 촘촘하고 효율적인 필터를 가지고 있어 직경 0.02~0.1밀리미터인 남조류, 규조류의 세포를 분리해 먹는다. 이때 머리를 거꾸로 뒤집고 먹이를 먹는다. 이는 기존의 상식과도 배치되는 이례적인 행동-신기한 역전이라 표현-이 형태의 변화로 이어졌으며 이를 밝혀내는 게 목적이다. 플라밍고의 부리는 아랫부리 기능을 하는 플라밍고 윗부리가 새의 아랫부리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형태에 근접하거나 그것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진화함을 발견했다. 플라밍고의 윗부리는 대부분의 새들의 아랫부리처럼 보이고 기능하도록 크기도 형태도 움직임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플라밍고의 부리는 거꾸로 뒤집힌 기능에 맞게 진화했기에 거꾸로 뒤집힌 플라밍고를 터무니없는 동물로 보는 대신 좀 이상한 백조로 보는 것. 결국 거꾸로 뒤집으면 거만한 ‘바다의 낙타’로 불렸던 혹이 미소가 되면서 거만한 플라밍고가 미소짓는 백조로 바뀐다. 거꾸로 뒤집힌 섭식자세, 거기에 동반된 부리의 크기와 모양의 변화, 플라밍고의 운명을 결정해버린 두툼한 혀 같은 모든 변화를 일관하는 주제로 여과 섭식 과정을 거친다. 이와 유사한 예로 송장 해파리의 갓 역시 역전된 생활에 대한 적응이라는 점에서 플라밍고의 부리를 연상시키는 특징을 공유한다. 송장 해파리도 갓의 구조적 윗면이 생태적 밑면으로 기능하기에 더 알맞도록 모양을 가꾼 것. 플라밍고는 부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유일한 위상학적 해법으로서 낙타의 혹 같은 기이한 형태로 부리를 구부렸음을 알 수 있다. 다윈에 의해 라마르크 학설이 사장되었으나 ‘행동이 사람을 만든다’는 옥스퍼드대 유칼리지의 모토만큼은 거꾸로 뒤집힌 생명은 형태의 큰 변화란 행동의 귀결로 생긴다는 라마르크의 주장과 일치한다. 이는 생명사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극적인 예이며, 암컷 사마귀에 의해 교미 중 잡혀먹고 오직 날개만 남은 수컷 사마귀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티븐 제이굴드의 위대함은 곳곳에서 나타나는 데 ‘작품번호 100’이란 논문을 보면 자신의 연구와 이론을 선전하는 데 할애하는 데 바로 경험적 측면에서의 연구 일환으로 바하마 제도의 육상 달팽이 케리온 속 이야기를 든다. 모든 좌절도 지루하고 반복되는 노력도 새로운 뭔가를 발견했을 때의 순수한 기쁨 앞에서는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리며 ‘발견했다, 이해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자연의 혼돈 속에서 의미와 질서를 찾았다는 기쁨보다 더한 보상이 있을까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책의 구조를 보면 총8부로 되어있는 데 에피소드로 출발해서 일반 과학적원리를 끄집어 내고,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슬쩍 비껴나면서 비판을 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시키고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또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잘 알려지지 않은 고서에서 뽑아낸 독특한 소재들을 버무리는 방식을 통해 대중적인 글을 표방하면서도 전문성을 놓치지 않는 절묘함과 역사의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일생을 매달린 면이 크다. 다윈의 일반법칙을 생각할 때마다 예외, 불확실성의 작은 일화들을 끄집어내어 배치되는 이론을 달성하는 명쾌함과 우하하고 친근한 문체를 통해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고상함이 돋보인다. 과학 글쓰기의 전설로 불리우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다름아닌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저술 활동과 과학의 대중화 운동에 기여했으며 다양한 과학 모임 및 책임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 참여등 적극적인 민중을 위한 활동을 선보였고, 암투병을 하면서도 한 번도 거르지 않는 과학 에세이 기고가 그를 전설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
|
자연학 에세이라는 것을 쉽게 수필이나 간단한 산문집 정도로 생각했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설명하듯이 자연학을 대중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만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뼈만 발라내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학에 관련한 논문들을 일반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과학사 잡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으니 정신차리고 정독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 책의 무게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책의 제목과 같은 첫번째 에세이인 "플라밍고의 미소"에서는 플라밍고의 다리을 떼어넨 사진에서 올바르게 서있는 플라밍고를 상상하는 어색한 백조를 상상하든지 이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환경에 적응한 플라밍고의 부리가 다른 조류와 달리 형태적인것 뿐만 아니라 사용상에서도 뒤집힌 역할을 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흥미진지하게 따라갈 수 있다. 다음 에세이인 "오직 날개만 남았다"에서는 교미후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컷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으며 사마귀와 검은 과부거미 이야기에서부터 성선택에 이르기까지 눈을뗄수 없도록 전개해 나가고 있다. 다양한 작은 소재에서 인류학의 중요주제에 이르는 다양한 에세이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읽는 독자나 과학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독자나 모두들 제각각의 흥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특히 과학의 발달이전에는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추정으로 가설들을 만들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지금이야 정충과 난자에 포함된 DNA 정보가 자녀세대로 물려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던 과학자들에게는 정자나 혹은 난자속에 이미 완성된 작은 사람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성장해서 사람으로 태어났나는 것을 가설로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제안했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과학사에 알려진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은 자신의 가설을 발표하고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설이 틀릴 경우 쉽사리 인정하지 않고 또다른 새로운 방향으로의 가설을 세우는 방식으로 과학의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설을 설파했던 세지윅은 자신의 가설이 틀렸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과학에 임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섹스, 약물, 재난, 그리고 공룡의 멸종"이라는 에세이에서는 지구상에서 공룡의 멸종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공룡멸종의 원인중 하나로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파충류들의 고환의 온도 증가로 인하여 기능이 마비되고 이로 인하여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도 실험도 불가능하며 육지,바다 모두 적용되는 논리로 발전가능성도 없다. 두번째 원인중 하나는 당시에 속씨식물의 전성기가 도래했고 속씨식물은 대부분 향정신성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이를 섭식한 공룡들이 약물중독으로 멸종했다는 것이다. 반면 포유류는 이러한 물질에 대한 해독능력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역시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속씨식물은 공룡멸종전 천만년 이전부터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마지막 원인으로는 소행성 혹은 혜성 충돌로 인하여 공룡이 멸망했다는 것으로 이는 해당 시점의 지층에서 이리듐이라는 원소가 대량발견되는 과학적 접근이 가능하며 공룡멸망의 주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서 올바른 과학적 고증방법과 다양한 과학자들의 오류및 시대상황을 보는 재미가 있다. 비록 30년 이전에 쓰여진 에세이들이지만 독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에세이를 쓸 시점에 암판정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에 입각하여 과학적 접근으로 일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4할타자에 대한 내용을 자연학과 절묘하게 연결한 에세이를 중간에 배치함으로써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
|
구약의 창조론 신화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요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진화론이란 과학적 계몽의 빛을 전혀 누리지 못한 어둠의 자식들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창조론을 의심하지 않는 이른바 과학적 창조론자들은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삭제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적이 있다. 종교와 과학의 테두리 안팎에서 온갖 사이비들이 과학의 진리를 더럽히고 있다. 과학적 창조론자로 자처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특히 노아의 홍수와 노아의 방주를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윌리엄 버클랜드 목사와 같은 영국의 지질학자도 한때 그런 결론을 내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버클랜드 같은 이를 단순히 사이비 창조론자의 무리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아니, 정말 창조론자에 대항해 싸우는 진화론 진영의 영웅이 할 소린가. 하지만 굴드는 과학적 사실을 찾아내려는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열정과 검증을 위한 과학적 자세를 더 중시한다. 과거의 과학자가 한때 창조론자들의 사이비 결론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공헌을 깍아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이론의 흥분은 맥락을 바꾸는 힘, 한때 말이 되는 듯 보였던 것을 얼토당토않게 만드는 힘에 있다. 현재 이론들의 맥락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로 과거를 비웃는다면, 어떻게 맥락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우리가 선호하는 이론들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그 이론들도 무의미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제대로 겸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직한 지적 열정은 항상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259쪽)
1820년대 버클랜드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지질학적 증거를 연관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를 사실로 믿었다고 해서 버클랜드가 오늘날의 창조론자처럼 형편없는 사이비 과학자라고 비난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과학적 증거나 경험적 연구에 따라 자신의 이론적 가설의 문제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버클랜드는 결국 홍수설을 버리고 빙하설로 이행했다. 버클랜드의 이야기는 유사과학과 진정한 과학정신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굴드는 버클랜드의 사례를 통해 지식과 과학의 적은 종교가 아니라 비합리주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무조건 비합리주의로 몰아가려는 생물학계 내부의 일부 전투적 무신론자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굴드는 서구 학술계를 지배하는 네 가지 지배적 이념을 진보, 결정론, 점진주의, 적응주의라고 해석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바로 그런 지배적 이념에 무척 잘 부합하는 이론이 아닐까. 일반성과 특수성의 문제 모두를 가장 원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론, 그것이 바로 '과학'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을 통해 생명사의 일반 패턴을 밝히고, 닭의 이빨이나 말의 발가락, 플라망고의 미소와 같은 특수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굴드는 플라밍고의 미소라는 우연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다윈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 보완작업을 시도한다. 굴드는 다윈의 적자생존에 대해 반기를 든다. 진화는 개체 발전보다는 환경과 생태변화에 따라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굴드는 자신의 전공인 고생물학 자체가 우연과 의미를 다루기에 매우 적합한 학문이라 보고, 역사에서 우연의 중요성과 우연적 사실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 책『플라밍고의 미소』(현암사, 2013)는 역사의 본질과 의미, 생명사의 패턴, 분류학, 과학의 정신, 우연 등에 대한 굴드의 오랜 학문적 관심을 잘 보여준 과학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원서는 1985년에 출간되었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정보는 여전히 유효하고 매혹적이다.
굴드는 다윈의 적자생존의 이론과 부합하지 않는 생태 현상에 주목한다. 학의 일종인 플라밍고의 섭식법이 그러한 예다. 플라밍고는 다른 일반적인 새들과는 달리, 크고 부드럽고 살집이 있는 혀를 진화시켰다. 또한 부리 안에 필터가 들어 있는데, 몸집이 큰 플라밍고는 작은 연체동물, 갑각류, 곤충 애벌레를 필터로 걸러 먹고, 몸집이 작은 플라밍고는 매우 촘촘한 필터 덕분에 남조류와 규조류 세포들까지 분리해 낼 수 있다. 그런데 플라밍고가 먹이를 먹는 방식은 머리를 거꾸로 뒤집고 먹는 독특한 방식이다. 아래턱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위턱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섭식을 한다. 일견 거만해 보이는 플라밍고 그림을 거꾸로 놓고 보면 미소를 짓는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조로 보이는 이 책의 표지 그림이 사실 뒤집힌 플라밍고다. 단지 그림에서 플라밍고의 가늘고 기다란 다리를 사라지게 했을 뿐이다.
플라밍고의 독특한 섭식법은 염도가 높고 얕은 호수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가혹한 환경과 습속에 따른 생존의 차원이지 적자생존의 결과가 아니다. 플라밍고의 부리와 송장해파리의 갓 등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주장처럼 우연히 조성된 환경과 생태 습관에 따른 진화에 해당한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나름 설득력이 있음을 예시한다.
"동물들의 몸과 각 부분의 형태가 습성이나 생활양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습성이나 생활양식 그리고 환경의 다른 모든 영향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동물의 몸과 각 부분의 형태를 구축한다."(42쪽)
|
|
스티븐
제이 굴드의 『플라밍고의 미소』를 읽으면서 이미 몇 차례 독서 메모를 했다. http://blog.yes24.com/document/7563180 http://blog.yes24.com/document/7566632 http://blog.yes24.com/document/7567184 http://blog.yes24.com/document/7568855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았다는 얘기다.
놀라운
발견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30년 전의 에세이들이니 그 동안
새로운 발견으로 말미암아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이론과 잘못된 추론이 없지 않다(혹은 그럴 것이다). 물론
그의 원래 전공인 고생물학이나 과학사의 부분에서는 내가 진위나 발전 양상을 판단할 만한 능력이 없지만, 발생학이라든가, 유전학, 심지어 진화생물학 등에서는 그 20년 동안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그러니
아무리 훌륭하지만 30년 전의 에세이, 그것들 생물학 관련
에세이에서 무언가 최신의 발전을 찾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출판사는 이 책을 번역해서 내놓았으며, 우리는 기꺼이 읽을까? 30년 전의 에세이집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판할 만큼 충분한 ‘현재성’이 있다는 말인데,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에세이가 지금 왜, 어떤 가치가 있느냐라는 질문과
같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최신의) 과학적 사실과 이론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그의 20년 전의 에세이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애당초 (30년 전 당시의 상황에서도) 굴드의 의도도
아니었다.
굴드는
여러 진화학과 역사과학의 사례를 통해서 ‘과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었했다. 잘못
받아들여지고, 과장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현재의
의미에서는 잘못된 과학이지만 당시의 잣대로 판단했을 때는 진지한 과학이었던 사례를 통해서, 굴드는
과학이란 결론이 아니라 과정과 활동임을 보여주고 있고, 선입견에 사로잡힌 과학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과학’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굴드의 30년이 지난 에세이집이 ‘현재성’을 갖는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직접 고민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떤 ‘현재성’이 있을까?
아마도
그건 그의 글쓰기 자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학에
관해서든, 혹은 그냥 에세이로서든 하나의 모범과 같은 글쓰기가 바로 굴드의 글쓰기다. 어쩌면 하나의 전형과도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이니 만큼 당연히(이 ‘당연’이란 말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현란한 학문적 용어를 휘갈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범 혹은 전형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으로
대상으로 한 글임에도 절대로 전문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저 쉽게만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것. 그럼에도
읽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굴드의 글쓰기가 성취한 전형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집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느낀 중요한, 구체적인 것들은 이미 앞의 메모에서 거의 얘기했다.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안다. (2014. 1) |
|
'스티븐 제이 굴드'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요. 이 분의 책은 처음 접해 보았어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 바로 '플라밍고의 미소' 입니다.
플라밍고가 미소를 짓고 있었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요. 플라밍고의 미소속에 이런 특별한 작가의 통찰이 들어 있을 줄이야... 책을 읽게 되면서 자연학에 대한 놀라운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에세이형식을 취하고 있어 부드럽고 잔잔하면서도 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속으로 접근할수 있었던것 같아요.
1부 동물계의 예외부분에서 시작하여 8부 멸종과 연속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 두고 있는데요. 처음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읽어나가게 되면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어요. 작가의 특별한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고,자연계의 수많은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플라밍고의 미소 부분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사진까지 실려 있어 더 재미 있었어요. 백조의 미소를 닮은 사진과 실제 플라밍고의 모습 사진이 주는 충격이란 놀라움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더군요. 아름다운 새 플라밍고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고 진화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의 각부분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이 실려 있는데요. 사진이 있어 이해를 쉽게 할수 있었고 더 흥미로웠어요.
진화론 하면 찰스 다윈이 떠오르는데요. 지금까지 단순히 진화론적인 입장에서만 자연의 모든 사실을 바라보고 있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자연계에서는 우연적인 결과로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가 이루어 지고 있으며 인간도 그러한 자연이 일부분 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자연의 법칙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7의 세티와 케이시 스텡걸의 지혜 부분 중
'각각의 종은 불가능성의 연속이로 생겨났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알려주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라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역사의 재현 불가능성은 모든 종이 유일무이하며 정확하게 반복될수 없다고 선언한다. 진화론은 역사과학으로서 다른 세계에서의 인간형 생물에 대한 개별 논증을 부정한다.....인간의 궁극적인 발생은 대락적으로 말하면 백만가지 개별적인 변화에 의존했고 각각의 변화는 특수한 유형으로서 유기적 환경이나 비유기적 환경 혹은 둘 모두에 일어난 여러가지 선행하는 변화에 좌우되었다.그러한 어마어마하게 긴 일련의 특정한 변화들이 두번 일어날 확률은 .....거의 0 에 가깝다.
인간이 존재가 아니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치를 높여주고 인정하게 만드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우연의 반복과 다양한 변화속에서 만들어진 지구상의 모든 종들은 특별하고 존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 '플라밍고의 미소'는 기존의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론을 역사과학이라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자연계에 대한 특별한 통찰과 깊이있는 시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입니다. 청소년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수 있을것 같아 권해 주고 싶은 책입니다.
|
|
책을 읽으며 굴드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몇가지 정리해보니 대략 7~8가지가 나온 것 같다.
나름 그중에서 인상깊은 것은 '연속성'인데 우리는 늘 A 아니면 B 둘중에 하나를 택하는 양자택일의 결정에 익숙해져있어서 뭔든지 양립시키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읽으면서 '과연~' 하고 여러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A도 아니고 B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고, 또한 A이며 B일 수도 있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기 어려운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이미 처음부터 오류를 가지고있다...고 하는것도 이 '연속성'과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볼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책에서 인상깊은것은 이미 과학적 검증이나 과학력의 발전에 의해 이미 그 내용이 사장(死葬) 된 고서들을 다시 한번 수면위로 꺼내어 그 의미를 분석한 내용들이다. 지금의 지식에 비교해 그 내용이 아주 엉터리일지라도 당시의 과학지식으로 충분히 검증하고 논리있는 주장을 펼친 책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굴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엉터리 내용의 책들 중에서도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합리적인 주장이 아닌 책들은 가차없이 혹평하고 있다.
내용중에 환원주의 및 그런 환원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데 굴드는 그런 환원주의에 반해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모든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그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나, 또한 내용중에는 그런것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예를 들어 영혼이나 신적존재 ) 고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본인도 환원주의쪽에서 진화를 바라보는 입장이기에 아직도 굴드는 그런점에서 인정하고 싶지않으나 다양한 주제에서 진화이야기를 꺼내고 또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또한 진화에 대한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굴드는 정말 대단한 과학인문학자라고 볼 수 있겠다.
...안타까운건 이미 죽은자는 아무런 말이 없으니 더이상 새로운 주장도, 학설도, 논증도, 자신의 글에대한 반박을 반박하는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
칼 세이건, 데이비드 아텐보러, 리처드 리키...나의 어린 시절 tv나 책을 통해 과학을 쉽게 소개해주던 세 명의 과학자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데이비드 아텐보로는 그 유명한 BBC 다큐들을 통해, 그리고 리처드 리키는 <오리진>이라는 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소개를 하던 몇몇 다큐들을 통해...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들을 어찌나 매혹적이면서도 쉽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들려 주시던지, 당시 해당 분야에 별다른 지식이 없던 어린 나도 시청하는데 지장이 없었다는건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가족들이 모두 모여 과학 다큐를 시청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그때는 그것이 가능했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들과 NHK방송사가 만든 < 실크로드>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근사하게 수놓아준 수작 다큐들이었는데, 지금 본다면 예전에 봤을때처럼 아련한 느낌이 나려나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뿌린 씨들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도 난 과학 다큐나 역사 다큐라면 사죽을 못쓰니까.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한다는걸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전공을 선택할때갈등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때 난 어른이 되면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취향도 변할줄 알았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스러운 관심이 생길거라고. 하긴 어른은 아이의 연장일 뿐이라는걸 그때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헤아리는 아이는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들의 다큐를 보면서 자란 소녀가 어른이 도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들도 보람을 느끼지 않을런지...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들이 바로 그 세 명의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영상 매체들을 통해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 서 왔다면 굴드는 지면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같은 목적을 이뤄 놓으신 분이라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어서다. 알고보니, 굴드는 2001년 작고하기 전까지 무려 27년동안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3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연재하셨다고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과학의 최신 정보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하지만 결론만 내어놓은 것이 아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추론 과정도 보여주면서 현재 과학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일목 요연하게 들려주고 있던데, 그 기간이 27년이고, 모두 합해 300편이란다.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동안 쓸 말이 바닥나지 않았을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한 압박감을 뒤로하고 글을 쓰실 수 있었을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의 박학함이나 지적인 통찰력, 그리고 실제 성격은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싶음에도 남들 못지 않은 입담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는 유려한 글솜씨는 왜 그의 월간 에세이를 사람들이 목매달고 기다리며 읽었을지 짐작이 가게 해주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얼마나 부럽던지 말이다.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이런 에세이를 쓰시고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은 이런 재밌는 과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성장했을걸 생각하니 질투가 나더라. 이런 뛰어난 과학자를 배출해낸 미국이란 나라가 부러웠고, 그의 글을 따끈 따끈할때 읽을 수 있었던 미국 사람들이 부러웠다. 더불어 지금 미국이 과학 강국이 된 것도 이해가 갔다. 과학의 대중화에 이런 인재들이 나서서 솔선수범했으니 지금의 결과야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한 물 갔다고, 퇴페한 나라라고 말하던데, 솔직히 난 이런 글을 읽을때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조용히 자신의 나아갈 길을 가고 있는 미국 지성인들의 실체를 우리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닌지 싶어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 글을 쓰실 당시 저자가 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글속에선 도무지 그가 암은 커녕 생사의 기로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그만큼 지식을 향한 그의 집중력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다. 그의 지식에 대한 열정이,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집념이 이해되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한층 깊어졌다. 전공이 전공이시다 보니,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과학자가 아니라면 주목하지 않은 특이한 사연들을 진화 사례에 맞춰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것이 좋았다. 생물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추리 소설 읽는 듯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가장 재밌었던 챕터는 제목인 <플라밍고의 미소>와 그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한 턱 쓴 작품인 <작품 번호 100번>이었다. 특히< 작품 번호 100> 은 자신의 연구 분야인 케리온 달팽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으시던데, 그가 그 작품속에서만 그 열정을 털어놓으신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굴드는 자신이 관심있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흥미가 있겠는가라는 겸허한 생각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에세이는 가급적 피하셨다고 하는데, 그가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독자들이 매혹을 느끼는 것은 때론 저자의 열정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하니 이 책 속에 들어있는 30여편의 에세이중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쓴 그 작품이 제일 재밌었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리처드 포티의 <삼엽충>을 읽으면서 그의 열정이 압도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굴드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글을 썼더라면 그 못지 않은 매력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지 싶기도 하다. 왜냐면 분야의 다양성이나 지적인 호기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열정에서만큼은 리처드 포티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여서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쉬지 않고 주절대는 사람과 남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소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 사람과의 차이가 아닐런지 싶었다. 결국 본인이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해야 남들도 호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왜 인간이겠는가. 공감하고 반응할 줄 알아서 인간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과학 에세이다. 굴드가 그 오랜 시간동안 인기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충실한 글들이었고, 뒤늦게 나마 이런 글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 모든 것들이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수수께끼 투성이일까 싶어 그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비록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수수께끼 풀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주와 지구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눈뜬 장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오늘을 살아가고는 있지만서도, 때론 저 먼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호기심을 느끼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아마도 이 책은 최선의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런지,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