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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이어 12월에도 병원에 갈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책을 한 권씩 가져갔다. 예약을 하고 가더라도 병원에선 하염없이 기다리기 일쑤이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병원은 아무리 가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공간이라 안정감을 줄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안정감은 주는 물성이 있는 존재는 책이고, 사람들이 많고 언제 진료실에 들어갈지 알 수 없는 병원에선 소설이나 산문보다 짧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짧게 읽고 오래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가, 적절하다. 그래서 11월에 이어 12월에도 병원에 갈 때마다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은 12월 초에 절반 정도를, 12월 중순에 나머지 반을 읽었다. 두번째 간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수술 일주년 경과를 살피기 위해 만난 거였는데, 아주 좋다는 호의적인 결과를 듣고 가벼운 마음에 집에 온 바로 그 다음날부터 남편이 심한 독감을 앓았다. 결국 이튿날은 ER까지 가야했고, 전염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도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2주간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12월 하순에 또 한 번 읽게 되었다.
초반과 중반에 이 시집을 한 번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는 황유원의 시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하얀 사슴 연못'이라는 표제작은 '백록담'을 우리 말로 푼 것인데, 정지용의 시를 계승한 듯한 작품이다. 이 시 이외에도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전반적으로 흰색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겨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즈음에 『하얀 사슴 연못』이라는 황유원의 시집이 나왔는데, 아마도 상당 부분이 겹칠 것 같은 시들을 읽으면서, 출간된 시집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커졌다. 황유원은 번역가로 먼저 만났고, 그가 번역한 문장들이나 작품들을 계속 눈여겨보다 시인으로서도 주목하게 된 케이스인데, 이 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때문인지 한동안은 번역을 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시인의 말을 듣고 한 편으로는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인이 번역하는 작품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아주 큰 역할이라는 점을 꼭 전해주고 싶어졌다. 당신의 문장들이 여느 번역가들의 문장과는 달라서, 책을 읽다가도 문득 문득 그 아름다움과 적절함에 감탄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시인인만큼 빼어난 번역가이고, 당신이 번역한 글들 역시 다른 의미로 당신의 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꼭 얘기해주고 싶다.
12월 하순에는 대부분 감기 기운과 약 기운이 혼재한 몽롱한 상태에서 읽었다. 그래서인지 권박이나 이영주의 시들이 더욱 현실감 있게, 벼랑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선 절박함과 간절함이 실감났다고나 할까. 내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도 어찌 보면 (중년) 여성으로서 내가 살아내고 감내해야 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니깐, 가장 아픈 고통의 순간에 더욱 잘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그런데 의도치도 않았던 시에 눈이 멎고 말았다. 이런 건 과실에 의한 추돌 사고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송승언의 「(웃음)」이란 시다. '웃음'이란 명사를 괄호로 묶은 것이 시의 제목인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행복은 의무이니까'라는 시구가 있고, 그 시구의 출처를 주를 통해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 주 부분이다. 편집상 이 시구의 바로 밑에 해당 문구의 출처를 밝힌 주가 있는데, "Happiness is madatory."라고 되어 있는 거다. 감기 기운과 약 기운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이 typo가 너무 눈에 들어왔다. 'mandatory'에서 'n'이 빠진 저 문장의 낯섦 때문에 오히려 주에 더 주목하게 되었는데, 주에 표기된 출처만으로는 해당 문장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Happiness is madatory." Greg Costikyan, Dan Gelber, Eric Goldberg, 『Paranoia』.
세 명이 함께 만든 공동 작품이라는 건데, 이 문장만으로는 이게 비디오 아트인지, 영화인지, 혹은 콜라보를 한 시나 소설 혹은 산문인 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결국 구글링을 했고, 엄밀히 말해 『Paranoia: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제목의 롤플레이 게임(RPG)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파라노이아: 해피니스 이즈 맨더토리(Paranoia: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이 게임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완벽한 가상의 도시 '알파 컴플렉스'가 이 게임의 무대인데, 이 도시에서는 말 그대로 행복이 의무이다. 체제에 의문을 갖거나 권한 밖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반역으로 간주, 바로 처단해버리는 도시가 게임의 배경인데, 플레이어는 레드 보안 허가 권한을 갖는 팀을 이끌고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반역자들을 찾아내야 하는데, 모든 선택과 행동이 컴퓨터의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 역시 조금이라도 반역의 기미를 보이면 비밀 결사의 일원으로 몰려 처단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깐 이 게임은 SF와 매카시즘을 컨셉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게임의 컨셉이나 내용을 알면 알수록 왜 이 게임의 제목이 'Paranoia'인 줄 알 것만 같다. 알파 컴플렉스를 관리한다는 이 컴퓨터가 실로 편집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철저한 계급감시사회인 괴이한 이 세계가 단지 게임 속에만 있지 않기에 시인은 이 게임을 인용한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기실 바람직하고 타당할뿐만 아니라 온당해보이는 이 문장이 매우 소름끼치게 와닿는다. 그렇게 이 시를 읽은 후 이 시집에 수록된 송승언의 시들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송승언의 시들이 2023년, 더 넓게는 팬데믹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묵시록'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현재가 이미 아포칼립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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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어떤 진심」
문진영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박지영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이서수 「엉킨 소매」
위수정 「몸과 빛」
이승은 「우린 정말 몰랐어요」
이장욱 「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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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자주,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작가들이 많다는 건 또 그만큼 읽어야 하고, 알아가야 할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리라. 안보윤 작가의 '어떤 진심'은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서 가스라이팅을 겪은 주인공이 다시 새로운 대상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소년심판이라는 시리즈에서 청소년 보호센터에서의 이중성 (겉으로 포장되는 착함의 이미지와 달리 실상은 집단적 차별과 폭행이 횡행하고 있다는)에 관련된 내용을 봤는데 많이 오버랩된다. 물론 가스라이팅을 통한 종교 공동체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인물에 대한 내용은 뉴스나 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접했던 부분이지만 그 대상자가 어떻게 생활을 하게 되고 (사랑이나 엄마를 빼앗겼다고 느끼게 돼가는 과정 등), 또 스스로가 어떻게 다시 그러한 논리들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하는지에 대해 보여주면서 진실과 진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안보윤 작가의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또한 놀라움을 안겨다 준 소재였다. 이혼한 엄마가 아빠에 대한 복수심 (네 딸이 어떻게 죽는지 망가져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의 감정으로 친 딸에게 행했던 살인의 기억.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은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까스로 일상'을 견디고 유지하는 인물을 보며 그 깊은 상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또한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해 가슴 시린 상처와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 더 나아가 공포와 두려움을 주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본다. 앞으로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보자. 문진영 작가의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은 그간 마음 속으로 설정하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정형화된 생각(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패션에 무감각하며, 자기 삶을 우선시 하지 않는 등)을 다소 갸웃거리게 만든 작품이다. 독특하기도 했지만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수상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박지영 작가의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겪은 일상을 웃음으로 희화화시켰는데, 그 내용들이 그저 웃고만 넘기기지는 못할 만큼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했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있듯이 아프신 부모님을 간호하며 생활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감당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듯 연극을 하듯 아버지의 치매를 간호하며, 그 과정에서 등급별 케어 요금을 매겨 형제들에게 청구한다거나, 유투브에 치매 父子의 일상이라는 채널을 개설해 수익을 창출한다든가, 유쾌한 설정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 아울러, '착한' 사람으로 규정지어진 인물이 일종의 '억압'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착하게' 살아가는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주위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쓰고, 어떻게 보여질까에 많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또 다른 의미를 안겨주는 것 같다.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임신 중절 수술(작품에서는 '임신 중지'로 표현되는)을 결정하고 이후 버텨내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서수 작가의 '엉킨 소매'의 경우도 정말 수없이 많은 현실에서의 케이스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 본다. 1 카톨릭 신앙인으로서 낙태의 부당성과 윤리적 당위성, 생명의 소중함 등은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는 바이지만,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당장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여성'의 삶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고 있다. 당연히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한 생존권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만, 비단 윤리적인 문제만으로 견디고 지내라고 하기에는 현실에서 겪게 될 현신적 난관을 개인적인 부분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닐까 한다. 사회적 제도나 특히 사회적 시선이 개선되지 않은 채 윤리적 당위만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교통사고로 영혼만 남게 된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고 가해자, 또 다른 죽은 영혼, 자신의 남자 친구, 부모님 등을 바라보며 상대의 생각과 생활 등을 판단하게 만드는 위수정 작가의 '몸과 빛'은 실제 그런 현상(몸과 영혼이 분리되며 영혼으로 얼마간 지상에서의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는)이 있음직하긴 하다. 다만, 영혼의 시선으로 봤을 때 해결되지 않은 바라 보여지는 사람들의 진심과 속내까지는 드러나지 않아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인 제목인 윤보인 작가의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는 옛 연인의 아들에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 (자신이 인생을 겪어왔던 방식으로)을 알려주는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책임감과 애틋함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저 무시해도 무방한 상황에서 그토록 진심으로 다가가는지, 그런 마음에 대해 알고 싶다. 한 시골 마을의 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대립되는 주민들의 갈등 상황 속에서 좋은 가격에 매수하려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 속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부유를 보여주고 있는 이승은 작가의 '우린 정말 몰랐어요'는 뭔가 글을 급히 끝낸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전사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부족하다 보니, 결말에서의 급작스러운 화해(?)도 좀 생뚱맞긴 했다. 호평받는 정치평론가에서 현실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변모한 인물의 짧은 하루 밤과 낮을 보여주고 있는 이장욱 작가의 '요루'는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하등 무례하거나 결례를 범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방에게는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음을 그래서 더욱 살아가기가 힘들고 무서운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닥치는대로 텍스트만을 읽지 않고 느끼고 생각하고 변화하며 읽고 싶다. 나의 이해의 속도를 잘 모르고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속도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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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이라는 말에는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 ...... 어인 일인가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살이 오른 사슴들이 빈 표지 같은 내 가슴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와 마실 물을 찾는다 놀랍게도 물은 늘 그곳에 있다 --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중에서 시가 뭘까? 아름답고 영롱한 것일까? 사회나 세상을 들이받는 것일까? 속물같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일까? 흘러가는 시간을, 사람을, 대놓고 잡지 못해 글로 붙잡는 것일까? 그래, 대체 시가 뭐란 말이냐??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쓸 수 있는 건데? 수상작(수상자)뿐만 아니라 후보작(후보자)들에게도 축하와 감사와 질투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