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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신앙》으로 보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모습
글쓴이: 조연호/작가
독일 기독교가 나치를 후원 혹은 지지한 이유
《권력과 신앙》은 독일 제3제국이 형성되는 과정과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여 잔인무도한 히틀러 정권을 후원한 역사를 담고 있다. 물론, 모든 교회와 목회자, 신앙인들이 나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이라는 커다란 상상의 공동체 아래로 모든 만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역을 독일 내로 제한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권력과 신앙》은 나치에 동조 혹은 지지했던 교회의 이유를 살피고 있는데,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한 부분을 살펴보면 본서는 우선, 무지(無知)로 인한 동조자가 있었다고 말한다. 즉, 나치가 정확하게 어떤 정당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잘 몰랐던 것이다. 과거 한국 기독교 운동가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대면하면서 기독교와 유사하다고 판단한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당시 독일 교회의 많은 신앙인 역시 무지에서 비롯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다음으로 권력에 친근한 교회의 역사를 지적한다. 교회는 오롯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공동체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 기원후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로 기독교는 권력의 첨단에 서 있었다. 다음으로 민족이라는 큰 명제를 앞세워 감히 아리아 민족을 위한다는 나치정권을 부정하기 힘들었던 점을 지적한다.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수많은 배상금 지급 등으로 정치 · 사회 ·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패전국이라는 수모와 더불어 경제 침체로 인한 국민의 피폐함, 그리고 사회적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독일 국민은 그들을 이끌어 줄 영웅을 바랐던 찰나였다. 이때 등장한 나치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국민의 자긍심을 끌어올렸고, 강대국에게 당당히 맞섬으로써 실추됐던 자존심을 다시 세웠던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이 처음부터 나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은 나치에게 유리해졌고 이러한 상황을 나치는 십분 활용해 제1당이 될 수 있었다.
21세기 한국 기독교와 정치
한국의 기독교 수용도 따져보면 서민적이지 않았다. 알렌, 언더우드 등 선교사의 등장과 그 포교 활동 과정을 보면, 당시 조선(이후 대한제국) 상류 계층의 두터운 신뢰를 얻음으로써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한국에 뿌리 내린 기독교는 이후 교육, 사회, 의료 분야 등에서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며, 독립 운동가 중 대다수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조국광복을 위해 애썼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교회는 일제의 권력에 굴복하여 신사 참배했으며, 이후 광복 후에도 독재 정권을 위한 구국 기도회를 수없이 개최했다. 반대로 독재정권에 항거한 많은 투사들 역시 기독교인이었는데,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서로 상반된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 기독교의 위세는 절정을 이루고, 여러 문제점이 등장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개독교’, ‘먹사’ 등이 기독교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단어이며, 70 ? 80년대까지 문화의 중심에서 국내 문화를 선도했던 기독교 문화 역시 대중문화에 밀린다. 그러다가 도래한 21세기, 현재 기독교는 청소년층에서 별로 달갑지 않은 종교가 됐고, 당당히 밝히기 어려운 활동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맞아 기독교의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려울정도로 부정적으로 바뀌었는데, 전체 교회의 메시지가 아닌, 일부 목회자의 독선적 행동과 무속에 가까운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태로 인해서 지성 사회를 이끌어 갈 종교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여전히 정치 영역에서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으며, 이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의를 부르짖기 보다는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추태를 보여주는 게 현실이다. 특히, 교회는 분단 70년이 다 되어 가는 역사적 혈흔을 앞에 두고 여전히 ‘빨갱이’ 잡이에 앞장섬으로써 보수정권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한국 교회는 나치 시절 대다수 독일 교회와 굉장히 닮았다. 우선, 권력과 결탁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점, 다음으로 당시 나치가 내세웠던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방어라는 논리가 한국 교회에 여전히 통한다는 점, 그리고 세계 선교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지만, 한민족이라는 언어로 기독교의 영역을 제한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한국 교회는 우경화 됐으며, 일부가 진보를 자칭하지만 정치 ·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는, 그들조차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준은 인간이 만든 정치 · 사회적인 것이기에 진정한 기독론을 바탕으로 교회가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준으로 돌아 갈 필요가 있다는 게 《권력과 신앙》에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경의 기준은 어떠한가?
먼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성경은 세속의 권력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의 권세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한다. 다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되 정의로운 권력을 위해 기도해야지 권력 유지를 위한 기도를 바라지 않는다. 나치를 지원했던 독일 교회와 독재자를 위해 기도했던 한국 교회는 정의로운 권력을 부르짖지 않았다. 통수권자 지지를 위한 담합적 행동으로서 기도회를 개최했을 뿐이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라는 말씀은 보수나 진보 등의 기준에 따르는 게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무지에서 오는 불행이다. 나치 시절 독일 교회 목회자들은 나치를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그럴만한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부 목회자들은 나치의 전략을 파악하고 저항하기도 했다. 서서히 끓는 물에 저항 없이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서서히 악의 구렁텅이로 빠진 것이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휴전선을 두고 남북이 대치됐고,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갈려서 무익하고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질 않는데, 교회도 이런 정쟁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전선 맞은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와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며, 현재까지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아울러 인공지능, 복제인간, 유전자 조작 등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과학적 발전에 대한 무지는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이동하는 고령층을 위한 설교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어도,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를 만들어 전달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결국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목회자와 교회는 계속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토대로 한 권력의 시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민족이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실체다. 한민족임을 자부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알고 보면,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여러 민족이 섞여 있다. 중국은 수십개 민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에서 한족에게 특혜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언제라도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을 강조한 국가일수록 폐쇄적인 경향이 컸다. 나치도 아리안 민족을 주장하면서 죄 없는 유대인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이후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스탈린도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 윗세대는 민족에 대한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그 다음 세대는 윗세대와 비교할 때, 민족적 가치가 훨씬 후순위로 밀린다. 아마도 그 다음 세대는 민족에 대한 의미를 시공간적으로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이미, 남한과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처럼 민족을 앞세운다면, 같은 국가와 사회 내에서도 분쟁이 발생하고 폭력적 정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양대 정당에서는 휴전선을 두고 심각하게 다투고 있는 수준이다. 한국 교회 역시 세련된 세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여전히 민족주의이라는 제한된 울타리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성경은 민족을 넘어서서 “땅 끝까지 이르러”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론을 토대로 선 21세기 교회는 과거의 ‘민족’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 과거 민족은 불법적 침략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의의 구호였다. 하지만, 현재는 민족이라는 경계를 지우고 땅 끝까지 이르는 세계화를 추구해야 한다.
나가며
《권력과 신앙》에 나타난 나치 시절 독일 교회의 모습을 거울삼아 21세기 한국 교회 모습을 비춰 보았다.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문장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아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설상가상으로 더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될 거로 예상되기에 문장을 써 나가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인간의 권력 추구 욕망은 예수가 받았던 사탄의 시험 중 하나였으며, 무지로 인한 오류는 거대한 공룡이 된 한국 교회가 변화하는 시대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과거에는 분명 약소국이 성장하고 독립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으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성장하고 발전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힘을 앞세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현재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세계적인 분위기 역시 여전히 민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계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을 바라는 신앙인들에게 《권력과 신앙》은 21세기 한국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며, 동시에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깃든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더불어 온전한 역사의식을 함양하여, 복음의 세계화를 추구하길 바라는 기도문이라고 단언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