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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을 마침내(?) 끝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은 건 2014년.생각보다 잘 읽혀서 놀랐고..시간이 지난 후 오롯하게 기억에 남는건 많지 않아...다시 읽게 되는 날이 오길 바라는 사이, 민음사에서도 잃어버린... 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곰야곰 책을 구입했다.(일부는 선물로 받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불쑥 아주 긴 분량의 책을 읽고 싶었다. 책 읽기가 끝나면..코로나19도 과거의 시간 속으로 사라져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그렇다고 프루스트를 선택하다니~~^^) 그러나 코로나19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나는 마침내(2021년3월부터~) 두 번째 읽기를 마쳤다. 처음 읽을 때보다 잘 읽혀진 건 말할 필요도 없겠고... '질투'라는 화두를 따라 가는 즐거움이 컸다. 그렇게 11권까지 마무리로 완결 된 줄 알았는데,불쑥 12,13권의 출간 소식이 들려왔다. 12권은 온통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점점 전쟁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어 역시 프루스트..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13부는 또 완전 다른(?) 이야기인것처럼, 예술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서술되는 것이 아닌가.. 작가로서의 고통으로 보이기도 하고, 작품 자체에 대한 비하인드를 들려주는 것도 같았고... 그러다 예술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람 속으로 들어왔다. 한때는 젊었으나..이제는 시간이 흘러, 변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시간은 종종 기억의 왜곡을 가져오기도 하고..시간 속의 삶과 시간 밖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며..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잃어버린...에 대한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나는 줄거리 자체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프루스트의 소설에 투영해서 내 마음대로 오독 가능한 것이 좋았다. 13권이나 되는 분량 속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온전히 기억하기란..애당초 무리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어쩌면 프루스트를 읽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이었을지도..무튼 잃어버린...을 관통하는 수많은 주제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백과사전과 마주한 기분이였다.무엇보다 산사나무에 대한 강렬함이....올봄 산사나무를 만나게 해주었고..소개되는 예술과, 문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에 밑줄을 쳤다.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만 모아 누군가 책으로 엮어 내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순간 이재무 시인의 <한 사람이 있었다>에서 평행이론 같은 상황을 만난 것 같아..혼자 책을 읽었지만..누군가와 같이 읽은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도 재미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이 기억은 또 여러 색깔로 변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결국 자신을 이해/ 하고 사랑하는 것이다/이것은 자기애와는 다른 것/으로 진정한 사랑은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집착이 아/니라 자기 극복이기 때문이다/집착은 자신을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지만 사랑은 자기를 성숙시킨/다 니체의 위버멘쉬처럼 철절한 몰락 이후 변신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아포리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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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아쉬워서 마지막 권은 두 번 읽었다. 푸루스트가 14년간 쓴 이 책을 김희영 교수님이 10년간 번역한 이 버전은 표지도 이쁘고 번역도 좋다. 총 7편 13권의 대장정을 마치며 다 읽은 기쁨보다 더 읽을 게 없다는 서운함이 더 크다. 나중에 1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 '나'는 게르망트 대공부인의 초대를 받는다. 들어가기 전, 포석에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 접시에 부딪친 스푼 소리에! 빳빳한 냅킨의 촉감에, 종소리와 개똥지빠귀의 노래 소리들에 '나'는 시간을 넘어 차원을 넘어 마들렌을 먹었을 때처럼 잃어버린 시간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예술 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내게 가르쳐 준 빛보다 찬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빛이 내 마음 속에 비추었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 작품의 이 모든 소재가 내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지나간 삶. 그래서 '나'는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겠다 한다. 게르망트 대공부인의 연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매우 늙어있다. 약 20년 정도 흐른 듯하다.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질베르트를 그녀의 엄마인 오데트로 잘못 보기도 하고, 스완이라는 존재가 철저히 묻혀버리고, 창녀가 배우로 사랑받으며, 귀족은 여전히 거만하다.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며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써야할지 느끼고 있다. 베르고트가 '완벽하다'고 칭찬했던 자신의 재능을 그동안 낭비했던 것을 깨달으며 이제야 오로지 글 쓰기에 전념하겠다 다짐한다. 프루스트의 애초 계획은 1, 3, 7편이었는데 계속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너무 좋았다. 프루스트 사후 출간된 5편부터는 뭔가 살짝 아닌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지막 권은 이게 프루스트지 싶은 사유가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처럼, 저 책을 읽으면 저 책처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삶과 나의 글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루스트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본 글을 읽으며 나는 감히 흉내내기도 어려운 섬세함과 통찰력과 관찰력과 예술에 대한 깊은 감상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에 월동 준비를 이 책으로 하셨다는 인친님처럼 나도 처음부터 다시 정독해보리라~ 프루스트 안녕~~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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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되찾은 시간 2
<타임스> <르몽드> 등 세계 일간지에서 선정한 20 세기 최고의 책으로 꼽히며 프루스트 이후 모든 현대 소설의 출발점이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 - T.S. 엘리엇.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종결 편이다. 마지막 권을 읽고 나서야 프루스트를 왜 신경과학자라고 말하는지, 왜 그토록 의식의 흐름을 고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쓴 긴 글이 사라질 것에 대한 고뇌와 애환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내 책 역시 육체를 가진 '나'라는 존재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십 년 안에는 그 자신이, 백 년 안에는 그의 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영원한 지속은 인간에게나 작품에게나 약속된 것이 아니다.' - 323 그의 우려와는 달리 죽음과 맞바꾸다시피 한 그의 글은 문학에 한 획을 그었으며 지금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방대한 소설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1894~1906)을 깊이 있게 다루었고, 1차 세계대전(1914~1918) 같은 사회적 사건은 물론 음악과 회화와 같은 예술을 비롯하여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랜 시간(20년) 동안 요양원에서 병을 치유하지 못한 마르셀은 파리로 돌아왔다. 스스로 자신이 별 가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나이가 듦에 따라 문학에 대한 어떤 취향도 재능도 없다고 생각되었고 문학이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르셀은 게르망트 대공 저택에서 열리는 오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모임에 가려는 기쁨이 순전히 경박한 기쁨처럼 보이지만 다른 어떤 기쁨도 얻을 수 없음을 알기에 경박한 기쁨이라도 누리고자 했다. 마르셀은 정신의 기쁨을 향유하고 있지도 못하고 삶에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But... 게르망트 저택의 안마당에 들어섰을 때 자동차를 피하려다 포석을 밟는 순간 마르셀은 모든 절망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았던 날 그랬던 것처럼.. 마들렌의 맛이 어린 시절 보냈던 콩브레를 연상시켜 주었듯이, 포석을 밟으며 느꼈던 감각은 그를 베네치아로 데려다주었다. 대공 부인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 간이식당 옆에 있는 작은 서재 겸 살롱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한 하인이 낸 접시에 스푼이 부딪치는 소리는 어린 시절 발베크로 가는 길에서 들은 그때의 피로와 슬픔의 감정 때문에 향유하지 못한 작은 숲 앞에서 기차가 정차한 동안 차바퀴의 뭔가를 수리하는 철도원의 망치소리를 듣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하인이 갖다 준 냅킨으로 입을 닦으려고 잡는 순간 발베크에 도착한 첫날 창문 앞에서 그토록 얼굴의 물기를 닦기 힘들었던 그 풀 먹인 뻣뻣한 냅킨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다의 빛깔뿐만 아니라 그 빛깔을 불러일으킨 그것을 향한 갈망이었던 삶의 순간 전부를 음미하게 했다.
'고르지 않은 포석의 감각과 뻣뻣한 냅킨과 마들렌의 맛은 마르셀이 한결같이 기억의 도움을 받아 베네치아와 발베크와 콩브레에 대해 자주 기억하려고 했던 것과 어떤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어느 순간에는 삶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만 별 의미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처음 순간, 우리가 그 삶과는 아주 다른 것, 그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은 이미지에 근거하여 그 삶을 판단하고 폄하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했다.'-33
접시에 부딪친 스푼 소리와 고르지 않은 포석과 마들렌 맛이 주는 그 행복한 인상들은 마르셀이 현재의 순간과 아주 먼 과거의 순간이 동시에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자신이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르셀은 의식의 흐름이 정리가 되었고 또한 문학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진실이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형을 가져오는지.. 내게는 사건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의 기억은 균일하지 않다. 망각에 따라 진화한다.
'만일 추억이 망각 때문에 그 자신과 현재 순간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어떤 사슬고리도 던지지 못한다 해도, 추억이 그 자리에 그 날짜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깊은 골짜기나 산꼭대기에서처럼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회상은 돌연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예전에 우리가 호흡했던 공기, 시인들이 낙원에 널리 퍼뜨리려고 헛되이 시도했던 것보다 더 순수한 공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그 공기를 호흡한 적이 없다면, 쇄신에 대한 어떤 깊이 있는 감각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낙원이란 바로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35
이 사건으로 마르셀은 삶에 생명력을 얻게 된다. 작가의 임무는 마음을 번역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마르셀. 예술 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가르쳐 주었으며 문학 작품의 모든 소재는 내 지나간 삶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프루스트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몸이 느끼는 미세한 감각이나 내밀한 몸짓으로 우리의 감동을 몸과 연관시키는 글쓰기와 글 읽기를 통하여 타자에 대한 끝없는 물음과 성찰을 하게 하여 불가능한 합일의 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삶과 분리되지 않는 문학, 삶의 글쓰기로서의 문학으로 나아가려는 어려운 목표를 담아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예술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나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 내면과 삶의 총체적 모습을 드러내는 전대미문의 기념비적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다.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서는 소설을 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읽기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여서 끝까지 읽어야 할지 고민도 했었지만 13권 마지막 권을 읽으면서 작가가 그토록 집착해야만 했던 과거의 기억을 정리한 내용과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온 생명을 바친 글이 사라질 것만 같은 위기 의식을 느끼며 쓴 글을 읽을때 왠지 마음을 울리는 그 무엇이 전해졌습니다. 그런 뭉클함이 이 책을 백 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있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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