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사상가들의 말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그들의 생각을 재단해서 우리의 생각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만 하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애덤 스미스가 두 번 정도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의 시대 유행어처럼 사용하고 뭐든지 잘 될 거며 적극적인 투자를 옹호하는데 '케인스'를 소환한다. 파레토는 생전에 말하지도 않았던 20:80의 법칙도 파레토의 법칙이 되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상가들을 오해하고 있는가? 그런 물음과 대답을 위해 이 책은 쓰였다. 마치 3권 이상의 책을 읽을 느낌이 남을 정도로 함축이지만 강렬했던 이 책은 트로이목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애덤 스미스다. 소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항상 얘기한다. 시장은 자유롭게 두면 그 자체로 잘 작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경제는 지금만큼 복잡하지 않았고 그런 애덤 스미스 조차도 국가의 역할을 얘기했다. 국가는 전쟁을 막고 구성원들이 정의롭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가하면 해결해야 한다. 시장의 힘으로 생산할 수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공공의 업무를 해야 한다. 특히 생필품에 대한 과세나 사업 이익에 과도한 과세를 비판했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도덕 철학자다. 그가 말한 사회상은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사람은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만큼 도덕적이지 않은 것일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파편화된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생각이 편협해질 것을 걱정해서 노동자의 교양을 훈련시킬 장치가 필요하며 가난한 자를 위한 공립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물질이 풍족해지면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노동자들의 마음이 퇴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계몽과 도덕적 인간을 얘기한 애덤 스미스의 시선을 벗어났다. 인간의 물욕은 높은 수준의 덕성으로 억제되지 못했다. 경쟁만 교육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생시몽의 생각은 시작되었을까? society가 처음 지녔던 말은 '함께하는 사람'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와도 닿아 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라 그에게 올바른 지식 와 습관,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못한 환경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인본주의 경영의 시작이었다. 사람 중심 경영과 이익 중심 경영의 모순을 깨트린 생시몽은 현재 HRD의 선구자다. '기업가'라는 단어는 프랑스의 자랑이다. 대부분의 경제 용어가 영어인데 반해 기업가만은 프랑스어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바티스트 세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둘로 나눴다. 바로 기업가와 관리자다. 기업가는 혁신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역동하면서 경제를 진화시키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남의 지식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지식과 지식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발명을 뛰어난 이익 창출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어떤 연결점을 기업가들은 찾아내고 비즈니스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저 잘 살게 된 국가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국 한 국가가 되기까지의 국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영국'을 예를 들어도 강한 영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앨리자베스 여왕 1세의 강력한 통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경제대국들은 자신을 위해서 보호주의를 꺼내 들면서 다른 대륙에 대해서는 개방을 요구한다. 개방은 강한 자에게 유리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마저도 중요할 때마다 보호주의를 꺼내 든다. 풀뿌리 경제가 나무로 자라기 전까지 국가는 산업을 지켜줘야 한다. 세계 커피 시장의 크기를 비해 케냐의 소득 수준은 절망적이다. 산업의 기반을 강대국들이 모두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 또한 자유 경제의 민낯인 것이다. 힘 있는 세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자유방임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꼬드긴다. 마치 돈 많은 사람이 '법대로 하자'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문 아니 모든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띄고 있다. 미디어는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고 권력은 이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를 부정하고 나선 이가 바로 '퓰리처'다. 우리에게는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는 올바른 것만 얘기하고 시민들이 관심 가지는 것에 집중하라고 얘기한다. 그는 언론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고 언론전문대학을 설립하는데 거금을 기부했다. 지금의 언론은 구독료보다 광고료에 의존한다. 광고료는 독자 수에 비례하겠지만 결국 광고료를 지불하는 이에게 당당해질 수 없다. 우리는 마치 공짜로 미디어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구독료만으로 유지되는 언론사여야지만이 세상에 당당하고 구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아픈 사연이 이해가 가지만 이해하고 싶진 않다. 파레토의 20 : 80 법칙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된다. 세상의 나쁜 일의 80%는 나머지 20% 때문에 일어난다던지, 회사 수익의 80%는 20%의 아이템으로부터 나온다던지, 문제의 80%는 20%의 원인에서 기인한다던지 그런 식이다. 이런 공식은 자칫 잉여라는 단어와 결탁되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가 있다 치자, 그 팀은 미드필드가 너무 좋아서 수비수까지 공이 잘 넘어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때 수비수를 잉여라고 볼 것인가? 편협한 정책은 때론 중요한 부분을 도려내는 악수로 이어진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중요함이 느껴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파레토는 '엘리트의 순환'이라는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교체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엘리트는 '여우형'과 '사자형'으로 나뉜다. 여우형은 뭔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어떻게 보면 '진보 진영'처럼 보였고, 사자형은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수 진영' 같았다. 여우형 엘리트가 사회를 발전시키면 사자형 엘리트가 자연스레 증가하고 결국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또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깊어지면서 또 교체된다. 역사는 이렇게 둘의 순환으로 흘러간다. 둘의 상태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없다. 여우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무질서화 되고 사자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경직된다. 그리고 둘 다 국민의 뜻을 따른다고 얘기하지만 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도에 불가하다는 점은 같다고 했다. 수학자에서 경제학자가 된 팔방미인 케인스와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슘페터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케인스 역시 에덤 스미스처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나와 '케인스주의'가 되었다. 나 또한 케인스주의를 '기술 최고주의' 혹은 '기술 낙관주의'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광범위한 통찰을 하고 있었다. 슘페터는 '혁신'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린다. 리더의 역할을 할 때 가장 가슴 뜨겁게 다가왔던 '파괴적 창조'의 창시자가 슘페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은 사상과 경제학자, 기업가, 금융가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과 그의 생각을 정리 분석한다. 이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통찰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우리가 여전히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 배울 점이 있어서 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를 통해 최대한 빗나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말을 보기 좋게 재단해서 우리의 주장을 위한 근거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시대를 직시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연구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자본주의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체주의적이다. 모든 사상의 장점들을 계속 이어 붙여가며 결국 통합된 방향으로 간다. 권력 투쟁을 위한 이념적 대립은 소모적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이야기처럼 고양이의 색깔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지금의 시대는 귀여우면 될련가) 현대에도 많이 인용되는 그들의 말의 참 의미를 파악하고 그 말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릴 것 같다. |
|
혼돈과 격랑의 시대를 겪으며 발전해 온 세계. 지금의 경제 사회에 이르게 한 건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헤쳐온 사상과 혁신의 성과 덕분이었습니다. 개인의 발견, 이상적인 산업 사회, 기업가정신, 국가 시스템, 정보의 대중화, 창조적 파괴와 혁신, 창업 등 여러 사건과 경험이 얽히고설키면서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요.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경제학 & 경영 전략 연구개발과 컨설팅업을 영위하는 미라위즈 대표 송경모 경제학 박사의 책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철학 분야를 아우르며 현대 산업 사회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그를 두고 시장 만능주의,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탐욕 예찬을 옹호하는 인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 여기저기서 외치는 '혁신'처럼 '계몽'이라는 키워드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살펴보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어떻게 탄생되고 정립되었는지 알려줍니다.
그가 쓴 <국부론>은 도덕철학서이자 정치경제학 서적입니다. 한 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어떤 원리를 따를 때 사회 전체의 소비 수준이 최고 수준으로 향상되고 번영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대표 저서 <국부론>, <도덕감정론>에는 그를 대표하는 카피 '보이지 않는 손'이 딱 한 번씩 등장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노동과 자본 투입에서 오는 자신의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낳는데, 이 중간 메커니즘을 그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표현한 겁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명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공익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각자 사익을 추구할 때 역설적으로 공익이 달성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사익은 이기심이 아니라 단순히 그 개인 당사자에 국한된 일, 그 자신에게 효용을 안겨주는 일을 가리킵니다.
결국 <국부론>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건설적 개인주의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자본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개인의 판단력과 우월한 능력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능력과 번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구, 원시적인 기계 정도에 국한되었던 곡물 경제, 장인 경제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모든 사업 경영자의 기본 덕목을 잘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았던 손은 이후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을 통해 구현됩니다. 계획형 사회주의자들은 한때 애덤 스미스식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당국의 신과 같은 전능함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대기업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살았던 애덤 스미스. 이제는 자본주의를 넘어 경영주의 시대입니다. 전 시대 자본의 속성과 현대의 자본은 다릅니다. 지식노동, 정보화의 확산, 무형자본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그 사이 인간 본성과 심리에 대한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의 이해도 넓어졌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패러다임은 그사이 폐기되고 보완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며 등장하는 모든 지식은 언제라도 새로운 사회에서 교체되지만 유의미한 족적을 남깁니다.
애덤 스미스가 보지 못한 기업가를 발견한 장 바티스트 세, 국가의 역할에 주목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신문 산업의 아이콘 조지프 퓰리처, 현대 사회학의 태두 역할을 톡톡히 한 파레토, 창조적 파괴를 알린 슘페터, 생동감 넘치는 혁신의 현장 벤처캐피털의 원조 조르주 도리오 등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혁신, 개선, 축적의 역사를 보여주는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다방면의 기술 발전이 뒷받침되어 성장한 신문 산업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기자들의 노벨상인 퓰리처상 이름만 알고 있었지 퓰리처의 생애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추진한 저널리즘의 의미를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후대인들이 파레토의 법칙이라 부른 80 대 20의 법칙. 상위 소수의 인구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분석한 데에서 연유합니다. 이후 현대 불균형 상황을 해석하는 데 이 법칙이 자주 인용됩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회 구성들의 행복감이 큰, 잘 사는 사회를 위한 것들입니다. 더불어 지식의 유용성과 지식의 한계, 위협을 동시에 알린 케인스처럼 이들이 남긴 교훈은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삶의 당위성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먹잇감이 되거나 이용당하기도 하면서 후대가 씌운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숨은 맥락을 짚어주고 더불어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기준을 세워줍니다. 고상한 논변이 가득한 세상보다 실용적인 정신자본이 풍부해지길 염원하는 저자의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혼란의 시대를 돌파해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의 위대한 생각들 송경모 (지은이) 트로이목마 2022-11-23 책이 묵직합니다. 각주를 빼고 437페이지 뿐인데 읽기에 버거웠습니다. 서문에 멋진 말이 나옵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사상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공감이 가는 표현입니다. 가끔 저녁에 마음이 심란하거나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는데 일과시간에 결정과 판단을 내려야할 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상이 정리가 되면 혼란이 사라질까요. 책을 읽어봐야 알겠죠. 11명의 위대한 인물들을 이야기합니다. 수없이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정작 그들의 생각이 원래 취지와는 달리 과장, 왜곡, 편향된 채 알려져 있고, 심지어 그 이름이 오용되기까지 하는 인물들이다. 애덤 스미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빌프레도 파레토,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지프 슘페터는 각각 현대판으로 각색된 ‘보이지 않는 손’, ‘보호무역’, ‘80 대 20 법칙', '재정지출만능론', 그리고 '창조적 파괴'라는 수식어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들이 당시 품었던 생각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진짜 내막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6-7p 이런, 애덤 스미스 외에는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난감하네요. 파레토의 법칙은 기억이 납니다. 두꺼운 책을 속독으로 읽어봤습니다. 어렵습니다. 일단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큰 흐름은 이 11명이 현대 경제의 사상을 마련했구나는 느낌은 조금 받을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눈에 띄는 대목 위주로 읽어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것 외에도 골프, 백파이프, 남자치마, 스카치위스키, 유족연금,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해리포터, 앤드루 카네기, 니얼 퍼거슨이 나왔네요. 아. 저자는 일부러 어렵게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많아 줄이고 압축을 하다보니 글이 어려워보였던 겁니다. 무슨 정보의 양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기술경영대학원의 교수로 있습니다. 교수님이면 웬지 그 분야의 지식을 다 알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죠.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식을 꼭꼭 채워넣은 흔적들이 역력합니다. 첫번째는 애덤 스미스입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부터 상업의 융성, 주변국과의 관계, 교육 시스템, 문화적인 분위기까지 설명하고 enlightment, 계몽을 설명합니다. 이 단어가 칸트에서 나온 거네요. 또, 루소, 흄, 허치슨 등도 설명하며 애덤 스미스가 나오기 전까지의 유니버스를 알려줍니다. 마치 탄생 전의 분위기같습니다. 국부론은 상, 하권 합쳐서 1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평생 읽을 수 없는 책입니다. 저자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온 대목을 찾아냅니다. 도덕감정론에도 한번 나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찾아낸 것이 감동적입니다. 다행히 해설을 해줍니다. 역시 해설도 어렵습니다. 애덤 스미스 부분만 53페이지인데, 몸으로 느끼는 건 530페이지입니다. 다섯번 정도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사람이 잘난척하려고 책을 쓴건가? 두번 읽을 때는 애덤 스미스가 위대한 사람인것같다. 지금까지 영향력이 남아있으니... 세번 읽을 때는 국부론은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구나. 네번 읽을 때는 아하, 흐름 속에서 그의 역할을 찾아내는 거구나. 마지막 다섯번 읽을 때 200년 전에 현대경제의 틀과 시작을 잡은 사람이었구나 정도로 이해됩니다. 두번째는 한번도 안들어본 앙리 드 생시몽입니다. 1814년에 유럽연방을 구상했습니다. 멋진 이론에 비해 나중에 타락한 조직으로 가서 안타깝습니다. 약간 교단의 창시자같은 사람이네요. 세번째는 그 유명한 앙뜨러쁘러뇌, 기업가 단어를 유럽 전역에 보급시킨 장 바티스트 세입니다. 이렇게 보니 목차에 개인, 번영, 기업가, 국가, 개척, 정보, 사회, 기대, 변화, 금융, 창업 등 11개의 단어에 11명의 인물을 연결한 현대 경제의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과연 올해내로 11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앗. 그러고보니 서문에 사상의 혼란이 나오는데 불과 3사람의 이야기민 읽었어도 배가 부른듯이 든든한 기분이 듭니다. 음식처럼 지식도 몸을 채워주는 것깉습니다.
|
|
'21세기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고, 우리 앞에 닥친 문제들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나라의 철 지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자 애썼던 그 당시의 모습으로부터,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받을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다. (p. 435)' 피터 드러커 전문가로 알려진 송경모 교수의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은 경제, 역사가 아닌 인문 교양서에 가깝다. 11인의 위대한 사상가, 기업가들이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룬 책이지만, 저자가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모아 엮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경제 이론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대신 11인이 살았던 그 시대, 그 사회에서 그들이 품었던 인간관 사회관, 지식관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1인 중 첫 번째 그룹 5인. '보이지 않는 손', '보호무역', '80 대 20 법칙', '재정지출 만능론', '창조적 파괴'라는 명확한 수식어가 각각 따라붙는 탓에 애덤 스미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빌프레도 파레토,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지프 슘페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다소 편향, 왜곡됐고 심지어 이들은 종종 잘못 인용하기까지 한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내막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애덤 스미스를 시장주의자, 무정부주의자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저자가 말한다. 스미스는 개인의 자유 실현을 돕는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결국 요지는, 개인이 자신의 노동과 자본 투입에서 오는 자신의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낳는데, 이 중간 메커니즘을 그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p. 39)' '재정지출 만능론'으로 복지국가 옹호론자로 알려진 케인즈는 국가가 할 일은 후견인(guardian)이거나 감시자(supervisor)일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두 번째 그룹 6인, 앙리 드 생시몽, 장 바티스트 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조지프 퓰리처, 조르주 도리오, 프레데릭 터먼. 사상이나 성과 측면에서 사회에 끼친 영향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생소한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재조명해 반드시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은듯하다. 11인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주장에 대해 맞고 틀리다고 할 정도의 통찰이 지금 내겐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앞으로 내가 판단하기 위한 재료의 확장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반성'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교양은 어디서나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의 몫이니까 말이다. (p. 8)' |
|
|
|
『하나, 책과 마주하다』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위해 공부하고 연구해온 11명의 사상가와 기업가의 생애와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통 인문교양서이다. 특히 현대 사회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생각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조망하고 있다.
저자, 송경모는 1964년에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교에서는 조지프 A. 슘페터와 기술 혁신과 진화의 경제사상을 전공했다. 학교를 떠난 뒤 오랜 기간 증권 신용평가와 가치평가, 그리고 증권시장 자문과 중개업에 몸담았다. 지금은 경제학 & 경영전략 연구개발과 컨설팅업을 영위하는 미라위즈의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겸임교수로서 경영, 경제, 재무, 인문학 간 융합 지식을 개척하고 교육하는 중이다. 유교 전통이 깊은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문과 서화의 세계 속에서 자라 자칫 고전과 예술, 전통사상의 세계에 갇힌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수십 년간 현대 학문의 다채로운 사고법과 변화하는 현실의 다양성을 배우고 겪으면서, 동서고금 모든 지식의 무상함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 극복법을 성찰하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 - 개인
언제부턴가 개인의 소중함이 인식되는 순간이 있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피통치자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였기에, 모든 이에게 자유와 평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통해 개인의 존귀함이 구현되기 시작했고 사법 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대를, 우리는 근대로 부르고 있다. 궁금증이 생긴다. 근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각종 이야기에 대한 출판물 보급과 문해력 향상이 그 시작일까? 국민국가의 등장이 그 시작일가? 중요한 것은 근대가 탄생할 수 있도록 수많은 사상가들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18세기, 북유럽의 아테네로 불리던 스코틀랜드는 문화, 예술, 사상이 융성했던 지역으로 그 중 에든버러가 매우 돋보였었다. 에든버러는 17세기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집결지로 그 중심에 에든버러대학이 있었다. 당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은 직접 교수직을 맡지 않았어도 현직 교수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14살에 글래스고대학에 입학하여 프랜시스 허치슨 교수 문하에서 도덕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28살이 되던 해 모교에서 도덕철학 과목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다 1763년 글래스고대학을 떠나 버클루 공작의 가정교사가 되어 교수 시절보다 안정적인 보수를 받으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잉글랜드와 대륙 각지를 여행하며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지식과 사상을 넓혔고 이 시기의 경험과 사색이 그의 국부론에 많은 영향을 끼쳤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시장 만능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할 때면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를 꼭 언급하지만 간혹 개인의 탐욕을 예찬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시작된 종교 개혁이 지식 사회에 끼친 영향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200여 년 먼저 태어났던 존 녹스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로 프랑스에서 장 칼뱅에게 배움을 받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존 녹스가 창시한 프로테스탄트 장로교단 내에서 중도파 목사들은 동일한 기독교 전통에 속해 있어도 세속화와 문명화의 가치를 수용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가 특이할 수밖에 없는 게 고전적인 기독교의 교리에서 피조물인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금욕, 절제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과 가치들을 수용하다니! 이는 전통 기독교 교리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단에 가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중도파 목사들은 계몽주의 철학과 발전된 과학 지식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18세기에 이르러 대다수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진보적 세계관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두가지로 특정 짓자면 앞서 말했던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과 세계관의 변화가 첫번째 현상이다. 두번째 현상은 무엇일까? 바로 상업의 융성이다. 물론 고대나 중세에도 상업은 있었지만 사회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었고 상인은 둘째치고 상거래에 꼭 수반되는 대부업자들의 활동은 사회적으로 경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제와 군주들은 상인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야만 했고 돈이 필요했기에 대부업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십자군전쟁을 통해 상인들의 군수물자 교역이 급증하면서 근대 상업 사회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상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 society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상업의 융성에 따른 개인의 발흥은 보았어도 기계 발전과 대기업 조직의 등장이 몰고 온 미래는 볼 수 없었다. 그가 경험한 경제는 기본적인 도구 혹은 인력에 의존한 원시적 기계가 투입된 곡물 경제나 장인 경제였기에, 이 점을 꼭 알고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생각 - 국가
중세, 로마 가톨릭 전통 사회에서 게르만 야만족으로 분류되었을 정도로 낙후되었었고 대항해 시대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이 바다로 향했을 때도 소극적이었고 영구처럼 근대 산업혁명의 최초 본원지가 되지도 못했었던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그러나 1440년경 마인츠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소가 개업하였고 1517년 교회 벽에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사건만으로도 미국과 영국에 비해 뒤쳐져 있던 모든 역사를 만회하고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인류사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서구 역사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확연히 구분되었었다. 그뿐만인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베토벤, 괴테, 칸트, 헤겔을 배출해 클래식 음악과 낭만주의 문학, 이상주의 철학을 주도하였었다. 20세기에 히틀러의 등장으로 인류사에 죄악 국가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1991년 통독 이후 1993년 유럽연합 창설 전후,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도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항상 굳건하기만 했다. 즉, 튼튼하고 단단하다라는 이미지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독일은 개인보다 국가를 중시하는 사상이 강세를 보였는데,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프리드리히 리스트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가의 부와 번영을 이루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가 시스템이 한 나라의 번영을 달성하는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가죽 염색업을 영위한 아버지는 리스트가 자신의 가업을 승계해주기를 바랐지만 어린 리스트는 아버지의 뜻과 달리 관청에 회계원으로 취업하게 되고 이후 1817년에 튀빙겐대학의 행정학 교수로 취임하게 된다. 1820년에는 뷔르템베르크주 주의원으로 선출되어 기존 사법 및 행정 제도를 세게 비판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살이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를 피해 해외로 도피했지만 결국 체포당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선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펜실베니아 지역에 정착한 그는 농장 경영, 신문사 운영, 탄광 개발 등에 참여하며 미국의 다양한 기업가와 지식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때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눈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말년에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훗날 리스트의 저서들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정치경제학의 국가 시스템」은 그의 사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다.
리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Nation은 특정 권력 기구와 정치 체제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 영토의 구획, 혈통의 계보를 넘어 그 안에서 공유하는 관습, 도덕, 규범, 지식 수준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담이지만, nation의 뜻이 이렇다보니 어떤 한국어를 쓰더라도 이 의미를 근사하게 반영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독일 역사주의 학파에 속했던 리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역사주의의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역사주의는 분석하고자 하는 사회가 처한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에 바탕을 두고 분석해야 하며, 이 특수성을 무시한 보편적 원리만으로 탐구해서는 결코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역사철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름을 의미한다. 독일 역사주의는 세상의 전개를 일방향으로 보지도 않았고 종말론에 강박당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육한 특질과 역사 속 특수한 경험들을 이해해 교훈을 도출시키는 것이 올바른 역사 연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 역사주의가 보편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와 사회의 특수성, 개별성에 초점을 두었다. 리스트는 개인이 진정한 개인으로 성립하기 위해 개인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 적절한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이 조건들을 무시하고 국가의 부가 자유로운 개인들로부터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묘사했으니 리스트는 자연스레 그의 주장을 문제삼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우수한 잠재력을 지닌 개인이라도 국가라는 최고의 통일 형태가 뒷받침되어 주지 못한다면 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예컨대 미국 역시 개인들의 노력만을로 국가의 융성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정부의 현명한 개입 덕분에 국가의 융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작성하고 싶지 않았다. 문체의 아름다움은 민족 경제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경제학 저서에서는 장점이 아닐 뿐 아니라 결함인데, 불건전하거나 약한 논리를 덮고 궤변적 논변을 근원적이고 생각이 깊은 곳으로 통하게 하는 데 오용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이다. (중략) 예리한 감각이 있어 보이는 연역, 과장된 문구들, 그리고 꾸민 말투를 쓰는 사람들은 오직 사물의 본성을 근원적으로 들여다볼 예리한 감각이 결여된 자들, 스스로 명확하지가 않아서 남에게도 명확히 전해줄 도리가 없는 자들뿐이다."
☞ 최근 읽었던 책들만 봐도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레 겹쳐 책 읽는 내내 지식의 폭이 확장되고 있음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경영/경제서 혹은 인문서를 놓치지 않고 본다면 아마 책에 나온 인물들의 절반 이상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만 모아놨기에 추천하고 싶다!
항상 연말이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올해는 그 계획을 1월 1일에 세웠었다. 올해 독서 계획은 '선명하게 남을 수 있도록'이라는 작은 목표를 세워 좀 더 체계적으로 읽고자 계획을 세웠는데 새해 첫 달부터 바쁘게 일하느라 서재에 앉을 시간이 없었다. 서재에 앉지를 못해 기록에 남길 수만 없었던 것이지, 여느 때처럼 1월달도 빽빽하게 독서는 했으니 올리고 싶은 책들은 매우 많다. 이제야 마음 편히 서재에 앉아 보니 벌써 2월도 사나흘밖에 남질 않았다. 하아, 서평 방식을 바꿀까 고민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
|
[똑똑한 도서소개] 트로이목마,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글 / 사진 : 서원준 (news@toktoknews.com)
2022년도 지나고 이제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 똑똑한 도서소개는 신간 단행본을 가급적 많이 소개할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새해 초반에는 작년에 서평을 맡았지만 돌발 사유로 하염없이 미뤄진 신간 도서가 많이 쌓여서 이들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과연 허락될 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세계사를 돌아보면 세계사를 바꾸고 뒤흔들었던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그 중에는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혼란의 시대를 돌파하여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생각을 한 것이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하는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은 혼란의 시대를 잘 돌파하여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의 위대한 생각들을 다룬 책이다. 전쟁, 대공황, 민주주의 혁명, 산업혁명, 냉전시대 등 우리가 역사 시간을 통해서 배운 이 것들을 우리가 혼란의 시대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혁신적 패러다임으로 세계사를 뒤흔든 위대한 사상가와 기업가 11인의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은, 저자가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위해 공부하고 연구해온 11명의 사상가와 기업가의 생애와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으로, 현대 사회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생각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약 200년 동안에 탄생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인공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했으며, 애덤스미스, 케인스, 파레토 등의 생각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 되겠다.
도서 소개를 마치면서 역사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바라보는 거울이라고 했다.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다. 이 책 하나로 근현대 세계사를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 |
|
독서를 하다보면 배경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감동은 고사하고 내용을 이어가기 조차 힘들어서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 자괴감마저 들때가 많다. 그래도 계속 책을 읽어갈 수 있는 이유는 독서 여정의 지식 빈틈 사이를 채워주는 안내자 같은 책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독서 경험에만 비추자면 <낭만적 은둔의 역사>라는 책이 그랬고 이번 책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이 그렇다. 읽으면서 백지로 가득하던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이 좋았던 책이다. 이 책을 온전히 만나고픈 마음에 뒤로 미뤄지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그 감상을 내려 놓는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 그러니까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가 바뀌는 순간들이 역사에 있었고 그런 생각들을 해낸 위대한 11인을 만나는 동안 경제 사회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동안 내게 모호하고도 모호했던 17세기,18세기의 패러다임을 느낄수 있었다. 의식이 성장 과정만큼 흥미로운 분야가 또 있을까 싶다. 종합적인 이해를 돕는 측면에서 올 해 최고의 책이었다. 아~ 머리통이 시원해지는 기분. 어렵고 부담스러워서 피해다녔던 경제철학과 사회철학 전반을 매끄럽게 여행할 수 있다.
몰라서 궁금할 수도 없었던 부분들이 시원하게 풀린다. 예를 들어서 단 몇 페이지만에 이런 궁금증들이 해결되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유럽에선 파티문화가 생긴걸까? 과학혁명 이후 자연과학의 성과가 가져온 의식의 변화가 있었다. 세련된 문화를 동경하고 깨끗이 정돈되고 아름답고 우아한 것들에 대한 동경이 사치문화로 발전했다. 지식에 대한 존경과 나이를 불문한 토론을 바탕으로 지식 교류의 장이 되었던 클럽과 공동체가 세속적인 유흥, 레저활동, 파티문화로 변질되어 갔다.
잉글랜드보다 스코틀랜드의 교육이 우월했던 이유?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가들은 17세기 이후 교구 전역에 걸쳐 지역민의 기금 후원을 독려 하여 초등학교 설립을 대폭 확대 했다.
( 시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 왔던 편지가 생각난다. 대학 재건 기금마련을 위한 후원을 청탁하던 편지는 꼭 이런 분위기였고, 울프의 통찰과 현답이 이젠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게 이곳에 찰떡같이 붙어 주는 재미에 독서가 신난다. )
이 제도로 17세기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문해력은 급격히 향상 됐다. 1750년대 코틀랜드 성인 남성의 65%가 글을 읽을 줄 알았는데 이는 잉글랜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 우리나라가 문맹국을 벗어난 시기에 비하면 왜 우리가 배운 거의 모든 철학이 서양사상과 중국철학인지 슬프지만 이해가 된다. 게다가 우리의 고유성을 잃고 중단되어야 했던 식민지 체제로 우리가 잃은 시간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는다. )
17세기 이후 개신교가 강세를 보였던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지식인들이 스코틀랜드 각 대학의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과학과 인문 학교 과가 강화 되었다.
무엇보다도 1708년 에든버러 대학에서 학감 제도가 폐지된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이후 대학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덜 구애받는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고 전 교수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도덕 철학 과목이 개설 되기 시작한것도 그때부터였다.
18세기 이래 에든버러 대학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형벌과 선택의 엄정한 시스템을 적용했다.결석 할 때마다 벌금을 납부 하거나 매일 오후마다 오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쪽지 시험을 치렀다. 안주가 아니라 경쟁 속에서 지식인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이를 불문한 지식인에 대한 존중과 토론문화였다. 그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화하며 걷는 아테네 학당 의 분위기였다. 사변협회와 명사협회, 포커클럽 등 문필가와 지식인들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는 변질된 공동체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문화가 쇠락하고 점차 지식 주도권은 잉글랜드로 넘어가게 된다.
( 애덤 스미스, 러셀, 데이비드 흄, 밴저민 프랭클린, 장 자크 루소 ) 미성숙이란, 다른 주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자신의 이상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계몽이란,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 칸트
어둠에서 밝음으로, 암흑어서 빛으로, 거진에서 참으로 인식이 이행하는 것. - 마틴 빌란트
신의 은총 안에서만 살아가는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이상을 통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재탄생 하는것을 의미 할 것이다. 이때 18세기의 계몽은 맹목적인 기독교 신앙에 대한 어떤 극복이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논거와 자유무역이라는 시스템,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능력이 모여서 이루어낸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그 과정 뒤에 내가 만나본 니체도 탄생했고 소설 <데미안>도 탄생했을 것이다. 존엄한 개인으로의 여성의 권리도 확고해진다.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도 떠올리고 한나 아렌트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신나게 이 책을 탐독했을지 선명하게 그려지시면 좋겠다. 도표로 나뉜 암기 과목이 된 세계사를 이렇게 만난다면 헤갈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이 책은 적극 추천하고 싶어진다.
여기부터는 11인의 위대한 생각중 에서 1장 개인을 말한 애덤 스미스 얘기이다. 관련 책을 이미 접해보신 분들어게는 어떨지몰라도 내게는 가뭄의 단비같은 촉촉함이었고, 사막의 갈증을 잊게하는 오아시스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설명할 길이 없음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일주일에 한 장을 성실하게 읽고 싶은 책이다.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경제 철학이 엄두가 나지 않던 사람이나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 그리고 세상을 이해해보고 싶은 분들께 꼭 추천드린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일고 쓴 리뷰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