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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 작가 ‘고이케 마리코’의 에세이예요. ‘고이케 마리코’와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는 작가인데 일본의 나오키상 후보에 같이 올라 둘 다 수상하여 작가부부로 유명하죠. 그러나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말기 암을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고양이와 책이 있는 평온한 그녀의 일상은 슬픔이 쌓이는 중이네요. 37년을 함께 한 남편이었고 같은 길을 걷는 소설가 동료이자 친구였던 남편의 죽음 이후 겪고 있는 그녀의 상실감이 글 하나하나에서 녹여있는데 그녀를 둘러싼 시간들은 아직도 남편과의 기억뿐인가 봅니다. 사랑했었던 사람의 죽어가는 시간을 함께 했던 그녀의 기억들이 괜스레 마음이 복잡 미묘하게 만들어요.
죽은 자는 하늘에 오르고, 무수한 별 중 하나로 모습을 바꿔 아득히 먼 저편의 성운과 하나가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는 지금 정적으로 가득한 우주를 떠다닐 것이다.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안식에 몸을 맡겼으리라. 그럼에도 쓸쓸하다. 그저 다만 쓸쓸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다. 백 년이고 천년이고 함께 할 거 같았던 남편이 괴로워하며 매일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절망하고 고뇌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경험일까??... 그녀의 슬픈 이야기를 읽자니 자연스레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되는데 남편과의 '파란 많은 인생'은 가끔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면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들이 많았어요. 이젠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을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어지네요.
책을 펼치자 그녀의 자필 사인이 담겨있어서 감사했어요.
슬픔이 고이는 자리 배우자 혹은 연인의 죽음이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 1위라고 할 정도로 죽음이 시간을 멈춘 듯 느껴지는 까닭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들을 남기기 때문일 테지요. 남겨진 자에겐 슬픔이 고이지만 또 매일을 이어가야 하는 고통의 시간들이죠. 과거에 썼던 소설 속의 한 장면, 혹은 이야기의 일부이라면 좋으련만.. 소설에 쓴 내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나 봅니다. 어째서 그 겨울의 아침은 그렇게 맑고 푸르렀던 걸까? 아직 따뜻하던 남편의 시신이 왜 그토록 밝은 빛 속에 누워 있었던 걸까?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갑니다.
내려 쌓이는 기억 매일의 일상처럼 멍하니 tv를 보다가 문득 남편의 생각이 나고 기억은 버릴 수가 없는가 봅니다 버렸다고 생각해도 불쑥불쑥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고개를 내미니.. 그렇게 남편과의 일상들이 그녀에게 전해지네요. 마지막으로 남편이 먹었던 음식이 뭐였더라? 문득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지고 숨을 거두기 전 무심코 한 말들을 되뇌이게 되고 사라져 가는 남편의 환영이 눈에 선하고 홀로 밥을 먹다가 웃거나 울거나 부자연스러운 행동들을 반복하면서 남편을 보내고 처음 맞는 시간들은 그래서 고독해집니다. 남편의 죽음을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이제 슬슬 혼자에 익숙해질 때가 됐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시 태어난다면.. 이 말에 포함된 절묘한 상상력은 남편에게도 분명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같이 살며, 혈관이 끊어질 것처럼 화가 났던 수두룩했다. 그런데 이제 와 보니 즐거웠던 일, 재밌었던 일, 둘이 공유해 온 사소한 일상의 기억이 그 숫자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루빅큐브를 착착 돌려 완성이 코앞인데, 마지막 큐브 하나가 도무지 맞춰지지 않는 기분, 예를 들면 그런 기분이랄까?
삶과 죽음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보자면 아주 작은 점일 뿐이다. 호들갑 떨지 말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커튼을 닫고, 외등을 켜고, 고양이와 나를 위한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p67
부부는 원래 서로에게 의존하던 관계였으니 한 사람이 사라지면 남겨진 사람은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 상실감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지만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에요. 엉엉 소리 내 울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함께 했던 시간도 다시 돌아올 리 없어요.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들이 찾아올 텐데.. 그래서 지금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줍니다.
#달밤숲속의올빼미 #고이케마리코 #시공사 #죽음 #상실 #애도에세이 [저는 이 책을 해당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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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느낌과는 달리 이 책은 폐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작가가 쓴 애도 에세이이다. 평소의 마음이었다면 그리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터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나날이 지속된다는 것이 날마다의 기적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은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개의 죽음이 있다면 백가지의 슬픔이 있고 백가지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글을 읽으며, 타인의 고통과 슬픔은 똑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상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글을 읽으며 오히려 더 강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남편이 아프게 되면서 남편 대신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다 오열을 하게 되거나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라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도 컵라면을 먹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세상에는 죽은 척 숨어있으면서 집안에서만 몰래 살아가면 어떨까 라는 농담을 하던 남편을 떠올리며 죽은척이 아니라 진짜 죽음을 맞이해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거나......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무심히 읽어내려가다 순간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품 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의 발톱에 걸린 옷걸이가 넘어지면서 남편의 옷들이 무너져내리자 쉴틈도 없이 옷들을 정리해버렸다는 이야기 끝에 늘 옷들 위를 넘나들던 고양이가 사라져버린 옷들과 비어버린 옷걸이 위를 잠시 쳐다보는 그 모습을 보며 그것이 고양이 나름의 애도의 표현,이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 느껴지면서 새삼스럽게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게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죽음으로 인한 이별, 상실감에 대한 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크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나 상실감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어느새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은 잊어버리고 온전히 작가 고이케 마리코의 글에만 집중을 하게 되었다. 딱히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 실려있는 소소한 글들이 애도의 마음으로 다가오고 왠지 모를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암에 걸려 시한부를 통보받았을 때, 오히려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어 좋다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 역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또 부인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만이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말하지만 또 그렇지 않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시시각각 숲은 달라진다. 계절은 흐른다. 그냥 그 순간의 풍경과 내 마음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으로 붙잡고 싶었다.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 내는지 그 방법을 나는 모른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모르는 채로, '모른다는 것' 그 자체를 쓰고자 했고, 그렇게 써 왔다"(214)는 연재를 묶은 이 책은 고이케 마리코가 받은 위로 이상으로 내게도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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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부부가 살았던 일본의 시골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가 주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작가인 남편을 암으로 잃고 난 후에 작가인 부인이 남편을 생각하며 작성한 글 50여편의 이야기 수록된 글이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후에 남겨진 자의 생활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 지인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 깊은 공허함이 오랫동안 남아있지 않을까요? 아주 가까운 그리고 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이야기를 함께 함께 하면서 마지막에 그 어떤 죽음도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는 슬픔에 젖어들고 그리워 하게 되고 미친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는 등의 일상생활속에서 그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잃은 슬픔의 애도라고 생각하고 싶어졌습니다. 남겨진 사람이 작가이기에 그 슬픔의 표현이 글로 남겨질 수 있어서 행복한 일이 아닌가 했어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흔적을 서서히 지워나가는 일상을 보면서 글로써 추도와 애도를 할 수 있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듯 합니다.
1952년생의 작가는 부부가 나란히 수상을 한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1952년생이면 올해나이로 71세입니다. 현업 작가이신 고이케 마리코의 글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부터 현재의 남편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부분이 생겼는데요. 작가님이 작고 하시면 이런 글을 남겨줄 자녀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소원함이 생기지 않으실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가 남편을 추모하며 쓴 글이 사람들의 가슴에 그를 더욱 기억하게 만든 이야기의 책이었다면 작가님을 기억하며 누군가 남겨주는 것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 하는 누군가가 작가님 곁에 있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시골집에서 부부가 각자의 서재에서 글을 쓰는 활동을 하면서 산속 동물들이 내려와 얼굴을 비추고 노랑할미새가 둥지를 틀고 고양이의 빗어서 생긴 털을 창가에 놓아두면 새들이 둥지를 틀때 활용하고 원숭이 무리들이 지나가고 꼬리털이 포근하게 보이는 여우가 내려와 던져놓은 호두를 먹고 가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제설기로 눈을 치우는 모습들을 연상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시골생활의 여유로움을 공감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좋은 글을 남겨주는 작가님으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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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캐리입니다. 오늘은 일본작가님 부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달밤 숲속의 올빼미를 읽은 이야기 써볼게요.
이책은 저자인 고이케 마리코님이 암으로 투병한 배우자의 곁을 지킨 시간과 남편이 죽은 이후 남겨진 자로서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에요 책 사이즈도 아담하고 예쁜데 작가님 사인도 있어서 받고서 진짜 선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P. 30 죽기 몇 주 전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이 든 너를 보고싶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섭섭하다.˝ 들을 때는 몰랐는데 눈물 나는 이야기를 했던 거구나,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영정 속 얼굴은 거기서 시간이 멈춘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만 나이를 먹는다. 세월이 흘러, 아들의 영정 앞에 합장하는 노파로 보이는날도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시간은 막무가내로 흘러간다. => 남편이 죽고 나서 영정속 얼굴의 시간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을 느껴지고 남은 배우자만 나이를 먹는 것을 실감하는 내용이 담담하게 잘 느껴졌어요.
p65 배우자를 떠나보내거나, 배우자를 남기고 떠나는 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겪게 될 사건이다. 두 사람이 동사에 죽을 확률은 극히 낮다. 복권당첨이나 진배없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누가 먼저일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 동시에 죽는 일이 복권당첨과 같이 비유될 만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리스로마신화에도 한 날 한시에 죽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부부 이야기가 있듯이..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리의 노후인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정말 남겨진 자가 먼저 간 배우자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 안에서 웃고 울게 되는 모습이.. 상실의 한가운데서 남은 이는 또 삶을 살아가야하니.. 작가인 부부라면 더욱 추억할 일이 많지 않을까..작가여서 지지 않고 논쟁에서 이길려고 들었던 과거의 모습들도 다 추억이 되는 것이..문체가 담담해서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p123 어느 날 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눈을 치운다는 핑계로 밖에 나갔다. 문득 정신 차려 보니 눈삽을 쥐고 선 내가 몸을 흔들며 오열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이 영하의 찬바람에 휩쓸려 갔다. 그때의 나는 틀림없는 설녀였다. =>남은 사람이 힘든 것 중에 하나가 평소에 배우자가 대신해주던 일이 이제는 내가 해야될 일이 되었을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까지도 힘들고, 작가님은 눈을 치우면서 오열한 부분이 조금씩 참고 있었던 내면의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온 듯 해요.설녀가 흰옷을 입은 여자귀신이라고 하는데..무서운 설녀가 본인이 된 듯한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요? 이 오열 뒤엔 조금은 그리움을 털어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p 211 때로는 서로를 미치도록 미워했다. 그러면서도 용서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끼 낀 깊은 숲 어딘가에서 가만가만 살아가는 암수 한 쌍처럼, 서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반쪽이 아니었다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부부이기에 반쪽이기에 이러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쪽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는데 진정한 반쪽은 죽음까지 함께하고 남은 자에게 붙여줘야 하는 단어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나중에는 남은 사람도 그 곁으로 가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내용이..참 인생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네요.
37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 말기 암을 진단받은 뒤 고통스러워하며 세상을 떠나는 과정과 이를 지켜보는 심정을 솔직하게 담은 이야기 달밤 숲속의 올빼미였습니다. 아마 이 숲에서 올빼미는 자는 동안에도 작가님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출판사에서 도서만 제공받아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 #달밤숲속의올빼미 #고이케마리코 #시공사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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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고이케 마리코씨는 1952년 생으로 1978년 [지적인 악녀의 권유]라는 에세이를 시작으로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예문학상, 시바타 엔자부로상등 수 많은 상을 받으며 일본 작가들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도 글을 쓰는 작가로 한 집안에 두명의 작가가 있는 보기 드문 내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펜만 잡는다고 술술 나오는게 아니지 않은가. 대부분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인데, 한 집안에 그것도 남편과 아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니 누가 들어도 앗 소리가 나오기 마련일것이다.
묘하게 라이벌 의식도 있을 것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상도 받으며 서로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쓰기위해 시골로 내려가 숲속의 집을 마련하고 자연 속에 뭍혀 살던 부부는 완성된 글을 상대방에게 건네며 평가를 받기도 하고, 까페에 앉아서 차한잔을 앞에두고 서로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며 부부로써, 동료로써 나무랄데 없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병마에 몸이 침탈 당하면서도 자신에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후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작가는 지독한 상실의 시간을 견디며 홀로 숲속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아내가 남편에게 바치는 사모곡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다정했던 한때를 회상하며 남기고 간 흔적들을 손으로, 눈으로 더듬어며 그리움과 애틋함을 글 마디마디에 새겨놓았다.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했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본다. 그때 그런 소리를 했었지, 이런 소리도 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기억'이 몸집을 불려 나간다. 상실의 슬픔이 흔들흔들 출렁이던 그 희미하고 부드러운 윤곽이 뾰족하고 예리한 무언가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다. 됐다. 이렇게 하면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겠다. 편안해질 수 있겠다. 든든한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남은 이에겐 고문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어두고 밉고 섭섭했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부재의 외로움에 잠식당하게 된다.
나도 사람을 잊기 위해서 분단히 노력한 적있다. 차라리 미워해보면 잊어질까, 부러 그런 기억들만 꺼집에 내봐도 효과는 미비했다. 결국은 시간에 맡겨볼 수 밖엔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각성을 하며, 흔들리지 않을려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두고 지탱하려고 애쓰는 사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상흔 같은 기억들이 흐려지며 비로써 완벽하진 않지만 울지 않게 되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작가에 글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난 뒤로는, 늦은 밤 침대에 들어가 스마트 폰을 쥐고 트위터에 '사별, 남편' '사별, 코로나'등을 검색했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고독한 외침을 따라가다 보면 쓸쓸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잠이 몰려왔고 손에 쥔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낯선 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저이도 나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어찌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처지가 안쓰러운 사람들을 보며 그나마 나는 양반이네..라며 위안을 삼는다. 남편의 부재와 동시에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빠져들 수 있는데, 손바닥만 스마트폰으로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함께 공감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위로와 격려는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기도 한다. 작가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며 상실의 아픔을 이겨낼려고 했었구나.. 이 사람도 나와 다를바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조금 힘을 내어보게 된다.
배우자를 잃고 숲 속 집에서 혼자 지내는 쓸쓸함.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며 사람들과 손을 잡지도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 외로움. 이 두가지의 쓸쓸함과 외로움은 묘하게 닮아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 때, 의할 곳이 없어 외로울 때, 술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 누군가 가만히 안아 주거나 손을 잡아 주기만 해도 잠시나마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적막한 마음에 따뜻한 빛 한줄기가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별거아닌 그 간단한 일을 하는 것이 너를 지켜냈고, 나를 지켜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손을 맞잡고, 안고, 안기며.. 그렇게 또 힘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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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택의 이유 : 최근 큰 개인적으로 큰 상실을 경험하였다. 같이 했던 시간 만큼 슬픔이 크고 극복하기가 힘들었는데 에도에세이라는 다소 생소한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상실의 계절이라는 표현도 참 마음에 들었고 책 표지에 있는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는 말도 문장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첫 느낌 : 책을 받으니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표지 디자인도 그렇고 빛바랜 민트라고 해야하나. 이런 색감도 상실을 잘 받아들이고 위안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은 저자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후에 일들을 무척 덤덤하게 적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 폰트가 참 책 내용의 덤덤함을 더해준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크게 위로를 하거나 무언가를 담은 글을 쓰지 않지만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글로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나타내지만 이러한 글들 통해 상실과 같이 사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상실 후 이런 비슷한 감정을 겪었지만 글로 나타내지는 못했다. 책 구성도 참 마음에 와닿는다. 소 제목을 원고지 세로 형태로 배치해주고 글이 단문 위주로 되어 있어서 내 마음속으로 툭툭던진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과거 남편에 대한 회상, 남편의 암투병이야기, 잔잔한 저자의 일상. 무척 담담하기때문에 나역시 담담하게 상실을 받아들여 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게하는 것이다" 이 문장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생각하게 되고 기억에 남는 문장인 것 같다. 최근 상실을 경험하여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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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에 두 작가.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 37년을 함께한 남편 _ 같은 길을 걷는 소설가 동료이자 친구 _ 소울메이트 그런 그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그녀는 이 연재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써내려 갔을까. . 책을 읽는 내내 왠지모를 울컥거림으로 나는 혼자 울고 있다. 모르겠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그녀의 글이 너무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해서 그런것 같다. 이 책속에 시간은 거꾸로도 흘러가기도 한다. 지금 내 곁에서 같이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같이 웃고. 마시고.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아파하기도 한다.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안고 싶고 안기고 싶어한다. P11 _ 그럼에도 쓸쓸하다. 그저 다만 쓸쓸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다. P18_ 같이 산 세월이 37년인데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함께였다는 기분이 든다. 고목에 뚫린 큼직한 구멍 속 ,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눅눅한 솜처럼 켜켜히 쌓여 있다. 혼자가 된 나를 지금 , 어두운 그 구멍속에 가만히 숨어있다. P126_ 죽음이 시간을 멈춘듯 느껴지는 까닭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들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스미는 글들이 너무도 많아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다. (번역가 님에게도 빠졌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여자인가 … 남편에게 자주 그런말을 한다 “ 나는 너를 먼저 보내고 살 자신이 없으니 나보다 먼저 죽지마. 나보다 오래 살아. ” 나는 작가님처럼 이토록 커다란 상실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기에. 계속 이기적인 여자로 살려한다 . . #달밤숲속의올빼미 #작가님의숲속집에가보고싶다 #너무도아름다운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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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다 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나의 일기를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느끼고는 있지만 표현해 내지 못했던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실이란 단어가 딱 들어맞는 마음인건 알겠는데 문장으로 적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십 년 넘은 세월이 흘러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런 현실에 미안함과 서글픔으로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새벽에 읽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하루 종일 눈이 따갑고 가슴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글을 써 주셔서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작가님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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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설 제목같은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상실의 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건네는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아~! 이 두 제목을 읽는데 벌써부터 울컥한다. 아마 내가 가까운 이를 잃지 않았다면 결코 공감하지 못했을 제목에 감정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간접 경험을 위해서라지만 상실에 대한 경험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진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이기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에게는.
서문을 읽어본다.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제목의 작가의 글은 이 에세이를 쓰게 된 동기가 담담히 적혀 있다. 37년 전, 사랑에 빠져 소설가를 꿈꾸며 함께 살기로 한 두 사람.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자신들을 묶어놓고 싶지 않아 세간의 이목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함께 할 삶을 결정한다. 아이는 처음부터 낳지 않기로 했다고. 온전히 두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하는데 이 두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그럼에도 11년 전에는 혼인신고를 했단다. 그리고 2018년, 남편에게 폐암이 발견됐다. 1년 10개월의 투병과 간병을 지나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이후, 고이케 마리코, 후지타 부인의 남편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첫 글 "올빼미가 운다"를 읽는데 ... 작가의 상황이 너무나 눈에 선하게 보였다. 이제 남편이 없는 자리, 작년과 몇 해 전과 하나도 다름없이 내 주변의 풍경, 계절은 돌아오는데 남편만 없다. 그때 느꼈을 상실감이 너무나 크게 공감됐다.
"기억은 버릴 수가 없다. 버렸다고 생각해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고개를 불쑥 내민다."...50p "시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흘러간다. 그제 밤에는 올 들어 처음으로 올빼미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떴고, 숲속 여기저기 울어대는 올빼미 소리에 문득 아득해지는 현실감을 느낀다. "...159p
신기하게도 누군가를 잃고 나면 그 사람과 나빴던 감정과 기억보다 좋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감정과 기억이 훨씬 더 짙게 남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무심하게 일상이 흘러가지만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런 공감의 순간을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주 잘 드러낸 것 같다.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며 그렇게 다시, 일상과 함께 기억한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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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달밤 숲속의 올빼미 지은이: 고이케 마리코 펴낸 곳: 시공사 오늘 서평할 책은 고이케 마리코 작가님의 '달밤 숲속의 올빼미'라는 책을 서평하려고 해요. 고이케 마리코님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애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여러 장르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작가님이신데요. 이번에도 어떠한 장르 소설이냐 하실 수도 있는데 오늘 서평할 책은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요즘들어 사고가 많이 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뉴스들을 들어서인가 심란해져서인지 아니면 그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이 책의 소제목인
라는 문구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이 책에 고이케 마리코 작가님이 애도하는 대상은 바로 남편분인데요. 남편분 또한 작가님과 같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직업이 같다보니 서로 의지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여러 추억이 쌓였을텐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남편은 암투병을 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래서 작가님의 에세이 글에는 가족을 비롯해 동물들도 그리워하지만 그 중 특히 남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이 글마다 묻어나오더라고요 이 책의 소제목처럼 작가님은 현재 상실의 계절을 보내고 있음을 느꼈는데요. 무엇보다 소설을 쓰던 작가님이여서인지 글마다 묘사가 너무 생생하고, 그래서 더 애잔하다고 느끼는 글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인생에서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순위가 1위가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것 보면 당연한 순리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상실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작가님의 글은 짧고 간결하게 몇 페이지 안되는 글로 구성되어있지만 이미 상실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미 보낸 사람들도 이 세상에 남겨져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상실의 계절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까지 상실의 계절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상실의 계절을 경험하고 있는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 '달밤 숲속의 올빼미'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