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 시인 말고는 낯선 작가들이라 처음에는 살짝 망설였다. 그러나 그림에서 시를 만나기도 하고, 시를 통해 그림 보는 즐거움을 안다고 감히(?) 생각하는 입장에서 놓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어떤 편견도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설레임이 읽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클레를 소개해 준 안희연작가님과 보나르를 소개한 최재원 작가님의 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클레를 만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는데... 작가의 고민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독자와 작가의 입장은 분명 다를수 있다는 사실..카프카가 자신의 원고를 불태워 달라고 했다는 유언은,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 될 수 있겠구나..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유들까지 세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봉인(?)된 기억의 장치를 열어 본 덕분에, 작가는 클레와 다시 조우할 수 있었고, 독자는 클레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수 있게 되었다. 소개된 클레의 그림은 네점. 한 점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그림이란 점도 좋았지만,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연주한다' 와 '녹색 위의 착오' 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되어 반가웠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좋아하는 그림들이겠지만, 많은 그림이 소개되지 않아 오히려 집중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시인은 독자에게 숙제(?)를 남겼다. '전나무의 개념'은 그동안 추상을 수없이 보고 자유로이 해석이 되었던 나에게...허락 되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와 마주하게 해 주었다.^^
'전나무의 개념' "다 말하려고 하지 마. 모든 걸 설명지 않아도 돼.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시의 공터.그곳에 놓인 의자를 상상해 봐.그저 앉아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등받이가 있었으면 좋겠니?(...)그것이 바로 추상의 힘이야.불가해한 세상을 불가해한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최선의 방식"/36쪽 보여지는 대로만 보면, 도저히 전나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난감한데.... 눈을 감고 나무의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저와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물론 클레에 대한 작가님의 설명덕분에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전나무의 개념..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상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미처 만나지 못했던 클레의 그림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클레의 그림이 시인에게 미친 영향까지... 담백하게 들을수 있어 좋았다. 마티스 그림을 소개해 준 오은시인의 글에서는 마티스를 색채화가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들려 주어서 좋았다. "색채 화가라는 별명은 그가 많은 색깔을 사용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적재 적소에 배치된 색에서 그 색들이 서로 교호하거나 길항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무엇보다 구상과 구성을 해치지 않고 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개개의 섹에서 비롯된 것이다"/86쪽 마티스 그림을 수없이 보았지만 춤을 집중해서 본 기억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색채의 강렬함에 끌렸던 이유...를 비로소 알아챈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
|
너무나 아름다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예술은 예술이라는 짧은 단어로 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문학과 그림 ,음악,그리고 조각까지. 우리는 시를 쓰는 사람을 작가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화가라 부른다. 동시에 그들을 예술가로 묶는다. 가깝고도 먼 시와 그림을 한데 묶는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8인의 시인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을 각자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화가는 어떨까. 아름다움을? 말 속에 담아내는 8인의 시인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기는 화가를 적어 내려간다. 서윤후 시인이 만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부터 신미나 시인인 만나는 프랑스라는 낭만을 전세계로? 퍼트린 장프랑수아? 밀레의<만종> 그리고 박세미 시인이 만난 이소화 화가의 <나의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화가가 담아 둔 의미와 예술가의 해석을 적는 8인의 시인들의 수필은 새로운 경험을 느끼게 한다. 마음을 글에 담아,마음을 담은 그림에 답합니다.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에 대한 답이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나의 글과 그림이 나에게도 답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멋지고 아름다운 책을 만나게 해준 미술문화 감사드립니다.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너무나 아름다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예술은 예술이라는 짧은 단어로 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문학과 그림 ,음악,그리고 조각까지. 우리는 시를 쓰는 사람을 작가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화가라 부른다. 동시에 그들을 예술가로 묶는다. 가깝고도 먼 시와 그림을 한데 묶는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8인의 시인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을 각자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화가는 어떨까. 아름다움을? 말 속에 담아내는 8인의 시인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기는 화가를 적어 내려간다. 서윤후 시인이 만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부터 신미나 시인인 만나는 프랑스라는 낭만을 전세계로? 퍼트린 장프랑수아? 밀레의<만종> 그리고 박세미 시인이 만난 이소화 화가의 <나의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화가가 담아 둔 의미와 예술가의 해석을 적는 8인의 시인들의 수필은 새로운 경험을 느끼게 한다. 마음을 글에 담아,마음을 담은 그림에 답합니다.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에 대한 답이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나의 글과 그림이 나에게도 답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멋지고 아름다운 책을 만나게 해준 미술문화 감사드립니다.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https://www.instagram.com/p/CnEQJMQPXOp/?igshid=YmMyMTA2M2Y= |
|
독자는 한때 시와 소설을 TV에서의 광고와 드라마로 비유한 적이 있다. 물론 사석에서 한 말이고, CF의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에서 파생돼 나온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미술 에세이로서 시와 그림은 매우 닮은 점이 있다는 의미에서 갑자기 TV 광고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시는 간결하고 언어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로서 어쩌면 가장 오래된 문학인지도 모르겠다.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은 서사시로서 긴 이야기를 시의 형식으로 썼기 때문이다. 시는 간결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상징과 은유 등 비유도 자주 사용되고, 갖은 문학적 수사 방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간혹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다면 사진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림의 시초도 사실은 자연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그림을 자연 모방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이라고 한다. 이는 문학에서도 차용되는 논리다. 자연이나 화자의 느낌, 감정, 마음 등을 짧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장르기 때문이다. 문자가 없었을 때는 구전해야 했기에 간결한 것이 우선이었을 터, 마땅히 짧게 표현하다보니 시가 짧게 의미 전달을 위해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는 문학으로 발전되지 않았나 싶다. 문학 전공자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독자도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시와 그림의 조화라고 해도 될 것이고, 한편으론 화가가 표현하는 바를 시인이 글로 반추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에세이다. 이 책의 8명의 저자들은 모두 시인들이다. 시인 중에서도 그림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림을 좋아하고, 어떤 시인은 화가의 작품에 일가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애호가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분도 있다 하니 미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는 시인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예스24 에세이 PD 이나영의 평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8명의 시인들이 각자 친애하는 화가의 그림들을 글로 써낸 책이다. 시와 그림은 말을 줄여 한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시절을 관통한 그림들을 시인 각자의 언어로 추억하고, 조우하며 시와 그림이 접촉하는 순간, 엉겨 붙어 내게로 오는 순간을 느낀다." 시와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자.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한쪽은 글로 쓴 예술이고, 한쪽은 선과 색으로 그린 예술이다. 보다 엄밀한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너무도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라 이쯤에서 넘어가 본다. 시와 그림은 자주 한데 엮인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줄임으로써 말해지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대상을 구체적으로도 추상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읽고 감상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다. 시와 그림은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부수고 깨뜨리고 치유하고 복원한다는 점에서, 이토록 희미한 세상의 한 구석을 한결같이 예리하게 투사해 헤집어 놓는다는 점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이러한 시와 그림을 적나라하게 사랑하고 싶어서 기획된 책이다. 고유한 세계관과 예리하게 벼린 시어로 이미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단단히 각인된 시인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논했다. 안희연 시인은 특정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그림 세계를 구축한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를, 서윤후 시인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성정을 우키요에라는 불멸의 장르로 승화시킨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오은 시인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해 ‘야수주의’라는 사조의 시초가 된 프랑스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또 김연덕 시인은 간결하고 깔끔한 선과 색채로 천진하여 더욱 애달픈 연인 연작을 그려낸 프랑스 화가 ‘헤몽 페네’를 골랐다. 신미나 시인은 반 고흐가 존경한 화가이자 순박하고 꾸밈없는 농촌 생활을 화폭에 담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이현호 시인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약하며 기인, 미치광이, 주객 등의 별칭으로 전국팔도에 이름을 떨친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최북’을, 최재원 시인은 풍성한 색채와 영롱한 빛 표현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한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를, 박세미 시인은 오랜 시간 서로의 예술에 크고 작은 영감을 선사하며 우정을 나눈 한국의 동시대 화가 ‘이소화’를 각각 골랐다. 시인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과 언어로 그림을 향유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고른 화가와 그 그림이 시인들의 한 시절을 예리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희연 시인에게 파울 클레는 최승자와 더불어 그의 이십 대를 정의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는 한때 “클레의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혔고 그것을 언어화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나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를 보라. 아마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장벽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극이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어떤 그림은 그 자체로 크고 넓어 언어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이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클레의 그림에는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는 여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듯 기우뚱한 전나무가, 겁을 집어먹은 듯 처연하게 눈물 한 방울 떨구고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뒤 시인은 고백한다. “지금껏 써온 나의 시들이 상당 부분 클레에게 빚지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파울 클레에게 무한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안희연은 시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니, 시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청춘을 달려온 시인들에게 그림은 때론 위안을, 때론 공감을, 또 때론 조언을 해주었다고 털어놓는다. 시인이 되고 시집을 펴내며 마주한 고민의 시간과 다양한 인연들 속에서 아파한 이들에게 그림은 때론 사랑을, 때론 상실을, 또 때론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시인들의 한때가 짙게 묻은 그림을 보며 독자들은 시인이 품고 있는 기억의 한 구석을 그들과 공유하며, 그것이 산문으로 발화하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게 된다. "클레는 달랐다. 클레의 그림 앞에선 침착하려 해도 휘저어졌다. 단순한데 깊고 골똘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서 추상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이 좋았다. 현실을 똑바로 옮겨내는 작업도 소중하지만 내게 보다 위안이 되는 그림은 물컵에 담긴 쇠젓가락처럼 신비로운 굴절이 일어나는 작품들이었다."(p.24)
또 서윤후 시인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두고 “이십 대의 방황 속에서 우정을 짙게 나눈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마치 언젠가 소식이 끊겨버렸지만 한 시절의 깊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추억한다. 시인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속 성난 파도를 바라보며, 펄펄 끓어올랐던 호쿠사이의 정열과 갓 시인이 되어 조급하고 서투른 마음으로 안달했던 자신의 이십 대를 병치한다. 김연덕 시인에게 헤몽 페네는 열세 살에 처음 만나 “한낮의 서점에서, 잠깐의 순간에도 그의 연인들에 매혹”되게 만든 화가다. 시인은 “나는 오직 페네를 위해, 책에서 20페이지도 차지하지 않는 그 부분을 읽고 간직하기 위해 그것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의 그림은 거의 내가 들고 다니는 노트에 한 낙서 같았고 그게 낙서라면, 내가 태어나 보았던 낙서들 중 가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며 유년 시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페네의 그림을 추억한다. 시인은 열세 살 꼬마에서 스물여덟이 되었고, 그 사이 시인에게 찾아온 사랑들의 “겉과 안은 여전히 아프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때, 페네가 그린 천진한 연인들은 다시 부활하여 시인과 조우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시와 그림. 글과 색. 펜과 붓. 문장과 색채. 그리고 시인과 화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두 개의 예술이 서로를 흡수하여 하나가 되는 합일의 예술을 목격한다. 어쩌면 글로 그림을, 그림으로 글을 100퍼센트 완벽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결핍이 그들을 계속해서 책상과 이젤 앞에 앉히고, 끊임없이 쓰게 하고 그리게 하는 것 아닐까? 시인과 화가가 접촉한 순간은 한 편의 산문이 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이 글은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생경한 촉감을 남길 테다.
오은 시인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티스에 대한 꽤 깊은 조예가 드러난다. 시인은 마티스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춤추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춤추자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라는 것. 몸을 움직이는 데 '젬병'인 시인조차 신체 곳곳에 분포한 신경이 반응한다. 발을 살짝 떼도 괜찮지 않을까.란 표현으로 몰입하는 그림임을 강조한다. 손을 슬쩍 머리 위로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란다. 시인은 마티스의 회화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이 느낌이라고 말한다. 직전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아슬아슬함을, 한창때에 번져 나오는 흥분과 희열을 시인은 도무지 외면할 수 없다고 느낌을 말한다. 그러나 마티스의 회화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는 데 와선 흥분을 슬쩍 감추기도 한다. 신체는 캔버스에 스며든 듯 안정적이고 신체가 표현하는 동작은 날렵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시인의 표현으로 독자는 마치 진짜 춤을 추는 사람들 앞에서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은 시인의 마티스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성을 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마티스의 작품에 대해 보고 또 보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한 듯하다. 예술 작품을 오래 보면서 사유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는 글까지 이끌어내는 데서 "역시 시인은 다르다"는 독자의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마티스는 회화 작업을 할 때 단순화를 중시했다. 무엇을 단순화한다는 것일까? 형태를? 색깔을? 입체감을? 사실상 모든 것이었다. 회화 작업을 할 때도 그는 스케치가 지닌 본래의 날렵한 미덕을 지키기 위해 붓을 들었다. 붓을 드는 일은 스케치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연필선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채색 작업은 원래의 구상을 뚜렷하게 하는 작업이기 대문이다. 구상이 뚜렷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처음의 의도는 희미해진다."(p.83)
시간이 지연될수록 나는 내 공간에 그녀의 그림을 걸게 될 순간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소화의 얼굴을 본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이제 훨씬 더 많게 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깊어진 것처럼.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이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리고 그녀의 그림이 내 공간에 존재하게 될 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웃게 된다. 이것이 작은 꽃의 기쁨.(p.240) - 「박세미 × 이소화」중에서
저자 :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18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재와 사랑의 미래』가 있으며 곧 다가올 성탄절을 내 생일처럼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산책과 꽃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
저자 :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저자 : 서윤후 1990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과 『휴가 저택』, 『소소소(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그리고 여행 산문집 『방과 후 지구』, 『햇빛세입자』, 만화 시편 『구체적 소년』 등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위 최애라는 것도 있고 그 이유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는 예술 분야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 시인도 각자가 좋아하는 화가가 있기 마련이고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바로 부분에서 시작된 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 8인의 시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좋아함의 이유에 대해 어떻게 보면 보편적인 미술평론와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 그야말로 개인적인 호감에서 발로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한데 왜 이 화가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설령 내가 그 화가에 대해 잘 몰라도, 알았어도 딱히 감흥이 없었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면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좋았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과 화가 중 좀더 낯설게 다가오는 쪽은 전자이고 후자의 경우에도 밀레처럼 상당히 대중적인 화가도 있는 반면 그림은 많이 보았지만 이름은 늘 새로운 가쓰시카 호쿠사이도 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처음 들어보는것 같은 헤몽 페네나 이소화 화가도 있었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화가의 경우에는 그나마 많은 정보가 있어서 작가님이 왜 이 화가를 좋아하나 궁금한 마음에 만나보게 되었고 낯선 화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아가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한 명의 시인과 화가가 만난 콜라보가 진행되기 전 두 사람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글(정보)이 나오니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시작하면 앞으로 나올 시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자신이 정한 화가의 작품과 관련한 일화라든가 그 화가의 생애에 관련한 일화 등을 읽는 것은 큐레이터나 도슨트를 통해 작품 해설을 듣는것과는 다른 것이 시인의 그 화가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하기 때문인데 클레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그림을 언어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는 것만 봐도 역시 시인이나 작가는 다르구나 싶으면서 얼마나 그 감상이 크게 와닿으면 이런 시도를 해보려 할까 싶은 순수한 궁금증도 들었다. 그저 감상하고 느낄 뿐이지 그걸 언어화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화가의 시리즈 작품에 어느 것이 좋으냐는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해 시리즈일지언정 저마다 다른 세계가 담긴 그림이기에 어느 것을 꼭 집을 수 없다는 말이나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시간이 흘러 보이는 경우를 보면 그 그림에 꾸준히 애정을 보였다는 말이기도 해서 덩달아 그 그림들, 그 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도 한다. 그 화가의 무엇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하고...
비록 내가 시인은 아니지만 잘 알고 모르고를 떠나 나만의 최애 화가는 있기에 문득 나는 그 화가의 어떤 부분(이유) 때문에 그와 그의 그림들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
스스로가 딱히 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퀴즈 문제를 푸는 정도의 지식과 남들이 하는 미술이나 음악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준의 교양을 위해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림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거 같다. 세계의 명화나 그 그림을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관련 책들을 읽는 것은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특히 화가들과 그들이 남긴 명화라고 불리는 그림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은 재밌으면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꼬맹이 조카들을 데리고 바티칸 미술관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러 가고 고흐전도 보러 갔으며 몇 해 전에는 에르미타주전과 뒤샹전도 보고 왔다. 이제 조카는 바티칸과 대영박물관, 일본의 한 회사에 있다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러 간다며 들떠있다. 어린 시절부터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미술책과는 달리 시인들이 쓴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미술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이 미술 평론가나 전문가가 저자인 책들로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한 책 읽기였다. 타인의 감상을 읽는 것은 나중에 그 그림을 봤을 때 선입견이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또한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첫 장에 등장하는 파울 클레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딱히 알지 못했다. 책에 실린 그림을 보고서야 이 그림이었구나~ 하고 작품 몇 점이 기억이 났다. 저자는 그가 작품이 지닌 정신적인 힘을 강조한 화가라고 한다. 화가가 그림 모든 그림이 사실상 자화상이라는 저자의 글은 파울 클레뿐만 아니라 모든 화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쓰시마 호쿠사이~ 호쿠사이라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일본의 화가 중 유일하게 알고 있으며 그의 작품 '가나가와 현의 높은 파도 아래' 라는 그림의 제대로 된 풀 네임과 그 그림이 '후지산 36경' 이라는 시리즈 중 하나라는 것도 저자를 통해 알았다. 서양의 그림사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본의 전통 그림인 '우키요에' 가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가 그린 다른 그림인 일본의 요괴 그림은 그가 그린 것은 몰랐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인 '춤' 은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기에 이미 알고 있지만 그 그림의 크기가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춤이라는 그림이 한 점이 아니라 1이었고 2도 있었으며 이 그림이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이라는 사실에 몇 년 전에 갔던 에르미타주 특별전에서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지인이 말한 '춤 자체가 싫어졌다기보다 춤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싫어졌다' 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음악가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멘델스존' 이 생각나는 화가 해몽 페네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화가였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니' 아~ 그림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페네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나 역시 모네를 좋아한다. 고흐나 슈베르트처럼 가난으로 고생하지 않고 일찍 성공을 거둬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친 성공한 인생을 산 그들의 작품은 힘들지 않아서 그 이유만으로도 좋았다.
유복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재력 있는 부모의 지지와 재능에 멋진 외모,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의 음악을 함께 나눌 수 누이까지 짧은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누린 멘델스존이 생각나는 페네는 미술계의 멘델스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이 여성적이라 당연히 여성화가일거라 생각했는데 이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린 화가가 할아버지였다는 사실 또한 신기했고 그의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화가는 바로 최북이었다. 그의 이름이나 작품, 기행 등은 다른 책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읽는 그의 인생은 참으로 아쉬움으로 가득한 거 같다. 너무나 뛰어났던 재능에 인생이 송두리째 삼켜진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앞으로 그의 그림들을 보면 천재적인 재능으로 그려진 작품 너머 삶의 고통이 느껴질 거 같아 씁쓸했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같은 날씨에 술에 취해 길에서 얼어 죽었다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8명의 시인들이 들려주는 화가와 작품, 그리고 시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
|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8인의 시인, 8인의 화가 :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 이 책은 8명의 공동저자가 8인의 화가의 작품들에 대해 쓴 8편의 에세이를 엮은 신간입니다. 저는 맨 마지막 챕터를 가장 먼저 읽었는데요, 가장 최근의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젊은 한국 추상화가여서(이 중에 가장 모르는ㅎ) 입니다. 저도 뉴욕과 뉴저지에서 미술관련을 공부해서 그런지 생생한 묘사의 수필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만큼 작가는 동시대 지인으로 연고를 자랑하기도 하고, MZ세대여서 그런지 이제 그림을 사기도 하네요! 시인들은 대부분 젊은 층(70후-90년대초)이고, 특히 서윤후님은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90년도생이네요ㄷㄷ 저는 특히 신미나(싱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화가라고 하네요)와 이현호 시인의 글이 기억에 납니다. 무교이지만 재미나게 맛깔나게 읽었고, 가장 담백하고 소위 시쓴다는 사람들의 난해한 어휘로 치장한 부분이 없었어요. 후자는 초반엔 문체 스타일이 약간 그랬지만 뒷부분으로 갈 수록 본인의 직업이 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고찰한 느낌이 나서 상당히 좋았습니다(10년후에는 또 이불킥하실지도 모르지만ㅎ). 소제목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라고 하는데, 예전부터 좋아했던 화가의 작품들을 다시 보고 시인의 말로 소개하고 있어요. 여러 산문의 특성이 보이긴 하지만 특히 최재원의 글은 작품 자체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래 산문에서 묘사 부분보다 내러티브(스토리텔링이 진행되는)를 더 중요시하는데(학부는 문학전공), 그림을 앞에 두고 글로 묘사하는 방법을 미술대학원에서 배웠는데요, 이 작가(시인)가 어디를 보는 지 시선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디에서 더 머무는 지 알게 되네요. 그리고 제 그림은 미국 석사동기가 클레 작품이 연상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언젠가 어디에선가(아마 샌프란?) 클레의 드로잉 작품전을 보았던 것 같은데 그때 유작 원본도 감상할 수 있었어요. 김연덕의 페네 (글)는 결혼하는 친구의 축서같은 아름다운 느낌이 나네요. 책에 실린 도판이 참 마음에 들고, 홍보용 띠지가 없어서 한층 더 아름답네요. 표지 그림은 구스타프 피예스타드의 <스키가 지나간 자리, 1944>라고 뒷날개에 적혀있어 반가웠어요. 의외로 이걸 표기 안하는 도서들이 있더라구요. 선정한 작가들도 조선, 일본, 한국 등이고 나머지 반절은 유럽(거의 프랑스)화가인데 대중적 인지도랄까?난이도?가 적절히 섞여있는 것 같아요. 그림들을 시인들과 함께 감상하여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
책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한쪽은 글로 쓴 예술이고, 다른 한쪽은 선과 색으로 그린 예술이라고”(본문 5쪽). 달리 말하면 화가는 선과 색이라는 비기(秘器)를 통해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이나 인물을 그렸고, 시인은 글이라는 문력(文力)을 통해 그(그녀)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창조해냈다. 화가와 시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다르지만 그들이 창조해낸 결과물은 우리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글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땅의 예술가들이 그 힘든 과정을 마다하면서 예술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글로 쓴 시인 8인이 그들의 기준으로 그들이 사랑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인의 면면들이 낯익지 않은 것을 보면서 나를 자책하는 것도 잠시, 그들의 언어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최승자 시인을 무작정 사랑했고, 파울 클레를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이십 대를 떠올리는 안희연 시인, 그리고 최승자가 말하는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와 파울 클레의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연주한다’는 그들을 대표하는 문구들에서 안희연 시인의 처절했던 이십 대를 떠올리게 된다. 쓰다만 시구를 던져버리고, 그리다만 캔버스를 찢어버리고 말지만 결국엔 그 고통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낸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시와 그림들이 더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이라는 일을 하면서 방황했던 이십 대의 우울한 청춘인 서윤후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가쓰시카 호쿠사이, 그리고 그들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성난 파도의 모습을 보여준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그림을 보면서 그들의 우정이 파도보다 높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보게 된다. 우스갯소리지만 2023년 다이어리를 구매하면서 성난 파도 위에서 그물질을 하는 다이어리 커버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무심코 구매를 했는데 그게 바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토미야 36경이었다. 책을 통해 만난 호쿠사이지만 그의 그림을 선택한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서윤후 시인 같은 심정으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을 선택한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이외에도 춤을 좋아해서 앙리 마티스의 춤추는 그림들 또한 좋아했던 오은 시인과 어린 시절 다른 어린이들과는 달라 보이기를 바랐던 김현덕 시인의 눈에 들어온 헤몽 페네의 그림들, 무작정 피아노가 좋았고, 성화(聖畵)가 좋아서 들락거린 교회를 통해 만난 밀레의 만종과 신미나, 간송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최북의 그림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 이현호, 피에르 보나르를 통해 어린 시절 그리운 기억을 반추해낸 최재원, 우연히 그녀(이소화)를 만났지만 얼굴보다 그림을 통해 그녀를 더 애정 하게 된 박세미 시인 등 당신들의 그림들의 8인의 시인들 눈에 들어왔고, 당신들의 그림에 답해주고 있는 시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시가 읽고 싶어졌다.
열여덟, 내 인생은 용도를 알 수 없는, 피아노의 가운데 페달 같았다.(12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과 화가라는 예술가들의 조합도 신선했지만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시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접했고, 어떻게 느꼈으며, 무엇을 통해 감상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시인들의 감성과 그 감성으로 무장한 어린 청춘들의 치기 어린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다. 가면 갈수록 시인들의 설자리가 줄어들고 있지만, 시(詩)는 우리들의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는 창작물이기에 예전처럼 많은 분들에게 다시 사랑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고, 여기에 나온 8인의 시인들이 그 중심에 서있길 바라본다. |
|
그림과 시는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 책은 8명의 우리 시인들이 각자 선택한 8명의 화가의 작품들에 대한 자신의 얘기를 엮은 책이다. 사실 시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의 시인은 모두 초면이었다. 그나마 시인들이 고른 화가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어서 과연 어떤 작품들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려줄지 궁금했다.
먼저 안희연 시인은 파울 클레를 선정했다. 파울 클레는 알기는 하지만 그리 친숙한 편은 아닌데 시인은 파울 클레의 작품을 시로 옮기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자신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써 놓았지만 발표하진 않은 시들이 담긴 USB를 판도라의 상자로 표현하는데, 카프카는 사후 본인의 원고를 모두 태워달라고 했음에도 부탁을 받은 친구 막스 브로트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우리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지만 시인은 자신의 USB를 깊은 바닷물에 버려주거나 펄펄 끓는 물이라도 부어달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서윤후 시인은 가쓰시카 호쿠사이라는 낯선 이름의 일본 작가를 선택했는데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우키요에 작품은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예술이 아주 고독하고 진귀한 혼잣말로 만들어져 왔다고 얘기하는데 잘 몰랐던 호쿠사이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오은 시인은 앙리 마티스를 소개한다. 마티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춤'과 A라는 무용수와의 사연을 얘기하는데 마티스의 '춤'이 뉴욕 현대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두 개의 버전이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김연덕 시인은 헤몽 페네라는 화가를 선택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이지만 내 취향에도 맞는 그림들이었다. 신미나 시인은 밀레의 '만종'을 중심으로 고등학교때 교회와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이현호 시인은 조선 후기의 기인 호생관(붓으로 먹고사는 사람) 최북을 선정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최재원 시인도 조금 생소한 피에르 보나르를 선택했는데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라는 그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박세미 시인은 이소화라는 낯선 한국 추상화가와의 인연을 들려준다. 이렇게 여러 시인들이 각자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사연이 있는 화가들 작품과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들려줘 화가와 그림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을 준 책이었는데 정작 시인들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여서 시인과 작품을 아는 상태에서 이 책을 봤다면 훨씬 더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
시인이 쓴 에세이마다 주야장천 쓰는 말이 있다. 시인의 에세이는 실패할 일이 없다고.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직까지 이 말을 무를 일은 없었다. 미술을 좋아하고 시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 같은 책들이 나왔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목차의 첫 페이지는 안희연과 파울 클레가 장식하고 있다. 이건 정말 참을 수 없다. (읽은 책들이 꽤 되었음에도 이 책을 받는 순간 다른 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동안 단숨에 읽어 내리고 만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에서는 김연덕 박세미 서윤후 신미나(싱고) 안희연 오은 이현호 최재원 8명의 시인과 시인들이 사랑한 화가가 함께 등장한다. 시인들은 화가에 대한 추억과 시인이 당시 그림에 영향을 받은 시와 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몇몇 시인들은 그림을 통해 받은 영감을 시로 기술한 부분을 함께 수록하는데. 문장으로 그린 그림과 그림으로 쓰인 시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본다면 무엇보다 매력적인 에세이다.
항상 생각했던 것이지만, 에세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받은 느낌이다. 시와 회화는 닮았다. 아니, 시는 모든 예술과 치환이 가능하다. 음악을 표현하는 가사가, 그림을 그리는 문장으로, 예술은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
이 에세이를 보면서 누군가 회화와 관련 시를 엮어서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림에 한 번 설레고, 시인의 글에 한 번 더 설렐 수 있는 책. 이런 에세이를 내준 미술문화에 감사드린다.
안희연 시인이 쓴 파울 클레의 글 중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연주한다. 이 그림 소개를 읽으며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문장이... 문장이 미쳤어. 그런데 작가의 글에는 부끄러움과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는 시인이 글을 쓰면서 마주한 장벽이라니... 시인이 저렇게 비관하면 문단에 살아남을 시인이... 시인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갑자기 시인의 시가 읽고 싶어졌다. '당신의 그림이 답할게요'에서 안희연 시인이 쓴 글 하나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끊어서 읽어보라.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울림이라니.
이현호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난 시집은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어쩜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시집을 들고 계산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이후 이현호 시인의 시에 반해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함께하게 되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처음이지만 시인의 다른 에세이를 읽고 싶어졌다. 그때 나는 내 영혼을 지키고 싶었다. 무엇이 영혼을 해치는지도 모르면서. 이 문장 그냥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좋은 글과 그림이 많았다. 새로 소개받은 화가도 있었고,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글로 나를 놀라게 한 시인의 글도 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과 글을 만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책이다.
정말 취향은 어쩔 수 없다. 관심과 애정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일전에도 시인들이 쓴 사물 에세이인 '당신의 사물들'에서도 안희연 시인이 쓴 침낭을 소개했다. 안희연 시인의 글은 사람의 눈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무기력한 나야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마는 것이다.
클레에 대한 사랑은 어떻고, 지금은 숨겨진 글이나 과거의 글 중 '앙겔로스노부스'는 파울 클레의 그림을 보고 쓴 글이었다. 아름답고 숭고한 고전주의 천사가 사라진 자리. 다소 우수꽝스러운 기괴하고 장난꾸러기 같지만 조금은 슬퍼 보이기도 하는 낯선 천사를 내미는 화가. 그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 속의 천사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었다.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린 전환점에 가까웠다. 하여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클레에게 머문다. 그리고 안희연 시인은 내밀한 욕망을 무엇보다 아름답게 연주한다. 정말 보석 같은 글과 그림을 만났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5948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