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잘 알려지지 않은 양반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읽다보면 내가 조선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작가님께서 6가지 주제에 맞게 고전 자료와 다양한 참고문헌을 분류하시고요. 해석을 더하여 탄탄하게 쓴 책이라서 신뢰가 갑니다. 읽을수록 조선 500년의 역사는 양반여성이 뒤에서 제대로 서포트 했기에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여성 조상들의 역할이 존경스럽습니다. 역사를 잘 아는 것은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내 성향 중에서 역사적으로 흘러 오는 문화가 DNA로 이어져서 존재하니까요. 힘든 것을 꾹꾹 참는 여자들의 인생이 조선시대에서도 이어왔다는 것도 연결됩니다. 역사속 여성 문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보면 좋습니다. 엄마가 되었거나 딸을 키우고 있는 분들이 읽어도 유익합니다.
|
|
방대한 문헌을 전면적으로 조사하여 조선시대 여성을 아내.며느리.어머니 삶을 조선 사회 자체를젠더로 시공간을 분석 했다. 우리가 아는조선시대와 젠더로 인해 더욱 강해진 객관성을 여러 조선시대 문헌에서 책갈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문헌들에 기록을 지금 우리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문장으로 풀어 담담하게 이어 나가는 글이 상큼 했다. 여성을 아가씨.결혼한여성을 아줌마.나이가 있다고 생각이 되면 할머니.사모님.고객님.이모님..... 조선시대에는 누구네집 딸.결혼하면 남편에 벼슬에 따라 정경부인.정부인.숙부인.숙인.공인.공주.옹주.심씨.안씨 김씨.박씨. 최씨 로 묘비나 옛문헌에 이름 없는여인으로 기록 되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여성은 아내라는역할을 남편에 내조자라 하지만 아내는 부덕이다 라고 기록 되었은데 모든기록은 남성들에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 했기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노동도 효.부덕.자애 로하기 때문에 음식만들기.의복만들기.청소.빨래.침구관리.간병.집안 모든 일들을 잘 해야 했다. 조선시대 청렴은 사대부에 정신이라 하는데 남편에 청렴이 즉 아내에 청렴이었다. 아내의 협력이 없이는 남편에 청렴도 지켜질 수가 없었다고 문헌에 기록 되었다고 그런 내용들을 간결한 필체로 나열 되어 읽기가 참 좋았다. 조선시대 여성은 남자들이 모든 권력을 특히 이름 없는여성들에 대한 모든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으니절부.열부.정부.라는 비슷한 단어를 모두 포함해 열녀라고 했다 남편이 죽고나서 절개를 지키면 절부 따라 죽으면 열부 이런 이름으로 문헌에 기록 되었다. 이름없는 여자들..읽으면서. 조선시대 화가가 그린 옛 그림에 있는 여인들도 함께 책갈피로 나오는것 같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역사에서 여성이 주체가 된 기록은 드물고, 기록된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이 이름 대신 누군가의 아내나 딸, 혹은 남편의 직위로만 기록되어 있다. 분명 존재했으나 기록되지 않아 마치 투명 인간화되었지만 이들의 역량은 세대를 거듭해오며 성별을 넘어 현대인의 유전자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젠더와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흔히 쓰이던 말이 이제는 자칫 성희롱이나 인권침해로까지 이어져 법의 심판을 받게 되거나 많은 이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듯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 또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에 기반해 저자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평생 교육의 일환으로 젠더 이해와 감수성의 문제를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전통 사회에 대한 이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창의적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면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그 시대를 같이 만들어간 여성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저자는 양반 여성에 대한 문헌 분석에서 출발한다. 기록은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양반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양반 여성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들이 관계 맺은 다른 신분의 여성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책에서는 호칭 아내, 노동, 문자, 생명 정치, 평판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칭에 담긴 당대 여성의 실제 지위와 아내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양반일지라도 실제로는 상당했던 여성의 노동 강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문자를 배우지 못했던 여성들이 실제로는 언문과 한문을 다 배운 이도 많았고, 이들의 학습 방식은 대게 문자가 아닌 듣고 암기하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교양과 식견의 능력을 발휘했으나 사회가 이를 반기지 않고 금기시했기에 자신의 지성과 문해력을 스스로 감추고 억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현모양처, 순종과 내조에 대한 오해, 종을 부리기만 할 거라 생각했던 양반 여성들이 실제 노동에 바친 시간과 노동 강도, 글을 공부한 여자들의 속사정, 열녀와 정절에 대한 진실과 더불어 규문 밖을 넘나들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실제 활약상까지 그들의 면면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문집 기록 중에는 시부모나 남편이 위독할 때 자식과 아내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는 단지(斷指), 허벅지 살을 베어 끓이거나 고아 먹인 할고(割股)의 기록이 많았다. 이는 <삼강행실도>에 단지와 할고를 해서 효험을 본 사례가 있어 많은 이들이 이를 모범으로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의학적 효과를 입증할 수도 없지만 아픈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상징적 행위인 단지나 할고 그리고 앞서 등장한 열녀와 미망인의 담론을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사회가 옳다고 하는 이념을 지켰고, 이를 사회가 관찰하고 감시했으며, 이런 사회의 시선이 역으로 당사자의 행로를 규제하고 있었다.
물론 조선시대는 막을 내렸고 우리는 근대화를 거쳐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조선시대 여성의 존재와 그들의 일상과 역량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이런 과거의 사회적 인식에 발이 묶여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기록은 여성의 사후에 조선시대 양반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이는 만큼, 보이는 대로만 적었다. 사후에 마치 그들을 잘 아는 듯 기록한 문서들은 당사자의 진의를 알 수 없기에 아마도 절반의 진실만을 담은 기록물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듯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처음 등장했던 마거릿 애트우드의 "서사는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까, 아니면 사회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까?"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과거의 축소와 왜곡이 우리의 인식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라는 문장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자리 잡아 내가 하는 모든 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사회 속에서 그리고 유전자를 통해 전승되어 온 과거의 산물일 것이다.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그 힘으로 실재하는 현실 세계를 폭넓게 누리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자 문명사의 흐름이라는 저자의 말은 마음 깊이 새겨두고 싶다.
|
|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논문같은 책, 가장 많은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는 조선시대 양반 여성을 중심으로 과거의 여성들의 삶을 읽어보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방대한 데이터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한 조사에서 비롯되는 지식의 집합체로 엮어낸 책이기에 읽으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주제에 대해 저자의 집념과 애정이 느껴지는 뒷 부분의 P.322~387까지 무려 62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부록과 주는 그저 경이롭다! ) 마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과 비슷한 결을 가졌다고 할까? 싶었는데 저자의 말에도 해당 책이 언급되어 있어서 끄덕이기도 했다. 내조란 남성의 시선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아내의 행위를 해석한 단어이다. (중략)남성의 명예는 아내의 협력과 주체적 실천을 통한 공통의 결실이다. 여성의 명명은 여성에게 타자적 명명을 주체에게 들려주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색과 실천은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의 의무이다. ㅡ2장 아내: 현모양처는 없다 中 여성 노동의 가치를 품성이나 윤리로 환원시켜 정서적, 감정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 실제로 가족의 공간과 가사를 생산이 아닌 재생산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돌봄 노동이 시장에 의해 더욱 쉽게 착취당하는 요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중략) 사회가 질문하지 않고 당연시하는데, 당사자 여성이 문제 제기를 하거나 회의를 느낄 때, 바로 그 여성을 문제시하는 사회는 과연 정당한가? 오늘날 사회에서 여성은 집 안팎의 노동 현장에서 충분히 성과가 경력을 인정받고 있는가? ㅡ 3장 노동: 일한 것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딜레마 中 현재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 능력과 역량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중략) 여성이 책임감 있고 비중 있는 업무를 해낼수 있느냐는 우려는 젠더 비대칭적 현실을 정당화하는 지배층의 시선과 담론을 자연화하고 기회에 노출되지 않은 여성의 두려움을 가중시키기에 위험하고 불온하다. (중략) 능력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여전히 야박하다. 여성 능력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익숙하지 않다. 충분히 나이 들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여성에 대한 존경의 표현은 특히나 인색하다. (중략)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여성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적 상상력과 집단 감성이 필요하다. ㅡ6장 평판: 사회 감시망 속 소문과 평판 中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나는 평소에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의 삶이 궁금해서 이책을 읽게 되었다
특히 놀라운점은 남편이 학문을 하면 옆에 듣고 있다가 저절로 외운다는점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최기숙(머메이드,2022)
저자 최기숙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 문학과 한국학, 젠더와 감성 연구를 하는 학자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자료를 해석하고 복원한다. 조선 시대에 공식적으로 문자를 배우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양반 남성에 국한돼 있어 주요 문헌 자료는 양반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양반 여성의 자료이다. 양반 여성이 아닌 여성의 자료도 있으나 아주 제한적이다. 조선 시대 여성의 모습을 고찰함에 있서 문헌 자료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자료를 가지고 여러 기준에 따라 여성의 모습을 해석하였다.
1,2장에서는 호칭에 담긴 여성의 실제 지위를 알아보고 아내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한다. pP40 조선시대 문헌에는 훌륭한 여성을 칭찬하기 위해 여성의 성품과 자질,역략을 남성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 같다.’‘남자보다 뛰어나다.’‘남자로 태어났더라면.’등 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품성과 자질, 역량을 판단했다. 조선시대에 현모, 양처라는 단어 각각은 사용했으나 ‘현모양처’라는 단어를 사용한 용례는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없던 단어를 원래 여성의 본연의 역할인 것처럼 현재 시대에도 사용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p77 나를 품어준 아내는 헌신한 건가, 착취당한 건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단점을 품어주며, 한계조차 지지해 주고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성장시킨 사례다. 이는 이른바 모성에 해당하는 속성인데, 이 또한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마치 그것이 여성이 타고난 본성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신화화된 해석이기에 바람직한 표현이 아니다. 여성의 끊임없는 희생을 단지 ‘내조’라고 표현함으로써 여성의 희생과 노력은 쉽게 신성화하며 지속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3장에는 양반 여성이 담당했던 다양한 노동과 노동 강도를 살펴본다. 조선시대에 노동을 하지 않는 양반 여성을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에 우리가 보는 사극은 다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양반 여성이 했던 일은 다음과 같다. 수유를 비롯한 육아 노동, 가사노동, 상장례와 제사, 시부모와 남편의 봉양과 간병, 돈을 벌기 등이다. 양반 여성은 이러한 노동을 여종과 협력하여 하거나 교차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 여성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수행하는 종은 노동을 하는 것이나 양반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모든 이러한 노동이 배우고 익히지 않았으나 뛰어나 자질을 가지고 있어 저절로 잘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를 남긴 남성을 여성의 능력을 높이고자 남긴 글이었으나 숙련된 노동자에 대한 예우가 없고, 숙련된 자세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 여성의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다.
4장에서는 여성이 가지고 있던 문해력과 식견에 대해 알아본다. p193 한 편의 글에서 여성이 문자를 몰랐다는 내용과 여성이 문자를 알아야 할 수 있는 행위가 나란히 등장한 것이다. 예컨대, ‘글은 모르는데, 취미는 독서’라는 식이다. 많은 양반 여성이 듣고 외워서 글자를 익혔고, 언문을 익혀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썼다. 5,6장에서는 여성의 정절과 관련하여 여성의 삶에 대해 고찰한다. p212 이 책에서 다룬 17세기부터 20세기 초의 여성자료를 대상으로 통계를 내보면, 남성 사후에 자결한 경우가 52%, 생존한 경우가 48%로 대동소이하다. 남편 사후 자결한 여성이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는 비단 양반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지위가 낮은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접하는 사극에서 양반 여성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여성의 노동이 그렇다. 여성의 정절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여성 자신이 주체적인 생명권을 가지지 못했음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해석하여 본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는 시도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조선시대 양반 남성의 시선을 거쳐 단면만 기록된 양반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가는 책이다. 기득권의 언어를 파헤쳐 행간과 이면 속에 숨겨진 여성의 언어를 복원해간다. 이 연구에서는 문학 텍스트를 분석했는데, 양반 남성들이 여성들을 서술하는 방식이 다양하지 못했다. 커지지 못하는(혹은 않는) 사회적 상상력에 의해 실제 여성보다 축소해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밝히는 점에서, 이 책이 그 조선시대 여성들의 말을, 언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강조하며, 각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현대에는 어떤지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모두 현재에도 통용된다. 여성의 역할, 여성의 노동, 여성의 위치 등 문제에 관해 조선시대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무가치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현재를 성찰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문제의식은 젠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주제로 확장될 수 있다.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드는데, 제목과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인물이 표지 밖으로 나오는 것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양반 남성의 문자 기록을 세심하게 해석함으로써 이면에 있는 여성이 드러나고, 발견되는 것 같다. 또한, 이목구비가 없는 것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더 다양한 얼굴들을 그려보라는 의도일까 상상하게 된다.
|
|
젠더의 문제는 이제 보편화 되었고, 현대에 맞게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본성(本性)이라는 것이 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이나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자기다움’이다. 공자(孔子)는 《논어》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말했다. 공자는 이 문구를 ‘정치’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이 구절을 ‘자기다움’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로 해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젠더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남성은 ‘남성다움’이라는 것이 있고, 여성에게는 ‘여성다움’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여자가 여성다움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여성 폄하’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뇌과학’을 통해서 보면 여성에게 특정된 성향 또는 성품이 있고, 남성에게 특화된 성향 또는 성품이 있다. 따라서 그것을 넘어 선다는 것은 분명 특별함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한 특별함의 표현을 여성 폄하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옳지 않다.’는 것보다는 ‘지나치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본인은 여성과 남성을 인간으로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또한 여성이 해야 할 일과 남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 짓는 것도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성이지만 여성보다 연약한 사람이 있고, 반면에 여성이지만 남성보다 힘이 세고 과격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 “남자니까 그런 것은 하면 안 돼!”라든지, “여자가 무슨 그런 일을 해!”라는 말은 얼토당토한 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 중 내게 가장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것을 잘 표현하는 표현이 바로 ‘바깥양반’과 ‘안사람(또는 집사람)’이다.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해야 하고, 여자는 집에서 가정사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남자건 여자건 능력 있는 사람이 바깥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사회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한 때 ‘셧다 맨’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호칭이야말로 남녀차별을 벗어나게 된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긴 하다. 밖에서 일해야 하는 남자가 능력이 부족하여 여자에게 빌붙어 산다는 뜻이 있는 한편 그저 편하게 살아가려는 남자가 선택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를 부려먹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젠더의 문제가 ‘이성 간의 협호’로 발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성 혐오’, ‘여성 혐오’이러한 말자체가 행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일명 ‘묻지마 사건’을 놓고 이건 ‘남성 혐오’라든지, ‘여성 혐오’라는 표현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 시킬 뿐 해결 방안은 아니다. 이러한 범죄는 정신적 오류(흔한 법정 표현으로 ‘정신미약 상태’라고 하는)라고 봐야 한다. 그들을 정신 미약 상태라고 해서 법적 처벌의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문제를 처벌에만 의존하지 말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원인 제거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성우월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차별에 대한 사례들을 다루었다. 제목 그대로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갔던 시대에 여성들의 암울함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한 역사적 내용을 지금에 와서라도 알게 되었다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여성 폄훼’, ‘여성 폄하’라는 단어들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면 당연히 사용되어야 할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때는 조선시대라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당시의 생활 풍습이었다. 여성들 또한 그 당시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여성이 사회 활동이 금지 되어 있던 시대, 문자조차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던 시대를 지금 시대의 생활환경에 빗대어 여성이 핍박 받은 사실만을 들추어내는 것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나는 ‘남자’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남자가 우월한 것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여성이 우월한 것이 있다. 그것 또한 일정하지가 않다. 단지 통계상 그럴 뿐이다. 따라서 남녀가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12년 동안 부엌살림을 맡아했다. 연로해지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집안일을 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또 집안 살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도맡아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위상이 다르지 않다. 과거에 머물러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성에게 복수하듯 대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나쁜 관습을 묻어두거나 덮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 그런 관점에서 저술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조선시대 여성문화사, 남편의 관직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과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성씨로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만 기록에 남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책이다.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라는 책은 수많은 고전문헌을 분석, 해석하여 찾아낸 여성들의 삶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넓게는 그 당시 사회를 다시 보게 만든다.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발견하게 만든다.
호칭, 아내, 노동, 문자, 생명 장치, 평판이라는 주제로 찾아본 여성들의 기록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남성보다 여성이, 양반보다 일반 백성의 삶이 더 기록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얼마 남지도 않은 그 기록 안에서도 더 많은 굴레와 제한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2장 '아내'에서는 부부로서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게 기대고 여러 가지 역할을 했던 여성의 모든 활동을 아내의 내조라는 이름으로 한정 지어 표현한 점을 꼬집었고, 3장 '노동'에서는 양반 여성이 해내는 집안일들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준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은 4장이다. 4장에서는 여성은 어떻게 글을 배우고 공부했는지 그 당시 여성에게 문자교육을 금기시했던 당시에 어떤 기록이 남아있는지 살펴본다. '배우지 않고도 알았다'라는 표현이 여성의 문자교육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이라거나, 아이가 총명해 스스로 깨쳤지만 글에 능한 여자들이 박명했기에 공부를 그만두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글을 읽혀 편지를 주고받고 실생활에 사용하고, 학문을 더 갈고닦아 토론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문자와 문학을 즐긴 이들의 기록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성에 관한 기록이 정말 적은 와중에도 이런 기록들이 있다는 걸 보면 실제로는 얼마나 많았다는 걸까.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여성문제들은 사실 현대에도 현재진행형인 경우가 꽤 많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가 과거를 통해 좋은 것을 얻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흔히 들려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에 쓰인 것만을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게 과연 온전한 과거를 마주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역사가 어떤 이의 시선으로 쓰였는지, 그 사이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했던 다른 이들의 삶은 어땠는지 역시 늘 궁금해하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앞표지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 한복을 입은 모습이 나온다. 표지만 보고선 조선 여인들의 이야기가 단편모음집처럼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가 옛날 여러 문서들을 통해 조선 시대 여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보고서 느낌의 책이었다. 보고서 느낌의 책이다 보니 개인적인 성향 상 조금 지루한 느낌도 있었지만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어 뿌듯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양반 여성들은 대부분 글을 몰랐을 것이라고 예상한 나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사회 진출을 하지 않다 보니 조선시대 여인들은 글을 몰랐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고 그것이 어느 새 사실로 내 머리 속에 저장이 되어 버렸던 것 같다. 또한 아내들이 남편의 그릇된 행동을 보고 꾸짖는 모습에도 놀랐다. 무조건 여인들은 남편에게 순종했다고 잘못 생각한 탓이다. 현모양처라는 말도 오늘날에 생긴 말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잘못 알았던 사실이 많아 부끄럽기도 했다. 남편을 사별하면 남편을 따라 자결하거나 자결하지 않더라도 평생을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조선 여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남성 중심의 조선 시대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가 많은 여성들에게 인생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이 먹먹해짐과 억울함,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지금 이 시대의 여성으로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게 해 주는 책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