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박일우의 전공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만주표상문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주의적 스타일’의 작품을 나는 좋아하고, 잘 모르는 전통을 담은 작품은 더 좋다. 역사를 잊은 듯, 역사란 없는 듯 사는 요즘에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궁금했다.
오래 묵힌 원고들이 한 권의 책이 되면 장점이 있다.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가 흐름처럼 느껴지고, 작가의 세계관의 변화도 문해력에 비례해서 감상할 수 있다. ‘흐름’이라고 했지만 인간이 약속한 시간만 쉼 없이 흐르고 인간은 실은 그 약속을 못 따라가는 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의례 하는 말씀인 줄 알았던 ‘살아보니 금방이다’ ‘삶이 한순간이다’하는 표현이 모두 이해되고, 당혹스러운 것은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나. 언제부터 어른인지를 모른 채 당황한 상태로 나이만 먹고 있다는 문득 가슴이 철렁하는 자각...
“5년간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 발가락 사이사이에서 쩍쩍 소리를 내며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단편들의 공간에는 어느 시절의 나처럼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잠시 하던 일을 멈춘, 아직 어느 방향으로 다시 발을 내딛을지 모르는 상태의 사람들이 있다. 다시 내 시간이 째깍거리기 시작하면 그 막막함이 사라지지만 잠시 멈춤은 언제든 반복될 수도 있다.
“빛도 안드는 음습한 방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 회오리치곤 했다. 유폐의 시간이 쌓여 갈수록 탈출의 욕망도 따라 차곡차곡 쌓여 갔다.”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음판이라거나, 열심히 살았는데 어두운 단칸방에 갇힌 상태라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 혼자인 상태라거나, 이젠 사회인으로 살아야하는데 내 자리가 없다거나, 갑작스런 사별을 겪거나, 무기력에 잠식되거나... 모르지 않고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다.
“현실을 벗어난 몸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뺨을 올려 치지 않았다면, 그의 의식은 산산이 날아가 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구원자는 나를 방문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견디고 서고 다시 걷거나 포기하고 끝내거나. 기회비용의 규모와 상관없이 매번 전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 2023년에 도착했다.
“떠오르는 것보다 떨어짐이 빠르다. 점점 앞이 희미해진다.”
여러 인간유형을 다양한 상황에서 만나는 단편 소설들은 도움이 된다. 새해라지만 새롭지 않을 듯해 두렵고 새로운 것은 낯설어서 두려운 그런 시간을 맞이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또 살아본다. 가능하면 분열되지 않고 온전히...
|
|
완벽한 방 박일우 소설집
표지 디자인의 따사로움이 선택에 한 몫 했었다. 읽기전 과 읽고 난 후 온도차가 큰... 따뜻함보다는 날카로운 겨울 햇빛에 더 가깝고나.
일곱 편 소설은 분명 제각각 색채가 다른데 어떤 부분에선 묘하게 닮은듯하다. 곁에 있는 사람을, 함께 사는 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입장과 스스로 떠나는 입장 차이는 분명 다르다. 이별의 이유가 선명하다면 다행이나 불확실하거나 오해로 만들어진 결과라면... 누구의 책임이고 어떻게 책임져야하나.
아버지의 아픔. 아버지 회사 부도와 자살. 청소년시기에 부모 두 분 모두 잃고 결혼후 아내와 딸의 죽음. 술만 취하면 주사와 주폭으로 어머니를 괴롭힌 아버지 까지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여러 형태와 이유가 너무도 저릿하다.
5년간 회사생활로 ‘일’과 ‘자리’는 얻었으나 ‘그녀’는 떠났다. 약속 일주일을 남겨두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손해 본 것도 , 볼 것도 없다? 이익 분배 정산 관계도 아니고.. 덩그러니 남은 차주임.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동생과 통화로 아버지 입원 소식을 듣고 귀국, 고국 나들이를 결심. 아버지는 고향에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사람들, 친구라면 친구인 그들도 장성하여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좋은 소식이 있는가하면 가슴 아픈 소식도 있기 마련이니, 맺힌 응어리를 풀어낼 땐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공감이 힘이 된다.
어릴 때 누가 어떠했고 뭘 했네 하는 이야기는 매해 명절마다 듣는 에피소드 아니던가.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었어도 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며 그 때의 감정에 휘둘린다.
어린시절 빼놓을 수 없는 쓰린 기억 중 하나는 어른들의 계모임 계주는 1번 또는 마지막 번호. 순번대로 잘 태워 주다가 점점 이상한 기류가 흐르면서 어느날 아침이면 어젯밤까지 보이던 계주의 가족 전체가 야반도주로 사라진다. 당연히 계모임은 깨지고 풍비박산! 어머니들의 홧병 절반은 계모임이지 않을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계모임이 굴리는 금액도 커진다. 마치 물가 상승을 반영하는것처럼.
< 마르K > 와 < 자영사 >는 한 편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시대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이 도드라진다. 선주의 시점과 정우의 시점이 교차되는 부분은 영상으로 구현되면 어떨까...
생각과 염려가 이입되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뒷부분 해설편을 읽으면서 조금은 아쉬웠던 조각들이 정리되니 놓치지않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활용, 작성합니다. |
|
일단은 다른 소설과는 다른 장르의 소설이다. 일곱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책이다. 읽으면서 사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수선하게 끝난다.그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체증이 내려가지를 않는다. 매 단편마다 그렇다. 해피엔딩의 결말을 원한다면 애시당초 틀렸다. 단편 하나하나가 가슴을 막히게 한다. 퍽퍽한 고구마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처럼 답답하다.
책의 끝부분에 주어지는 해설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 소설을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그런데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읽히지가 않았다.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 같고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다보니 마지막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해설 부분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터졌다. 저자가 이렇게도 치밀하게 장치를 해 놓은 줄 몰랐다. 아나도 그동안 너무 뻔한 결말이 주어지는 소설을 좋아해서인가 보다. 사실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부분에 해설은 꼭 읽어야 그 실마리가 풀린다.
작가는 이리저리 꼬아 놓는다. 시간도 그렇고 순사도 그렇다. 의도적으로 서사의 주체를 숨기기도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히기는 커녕 오히려 더 좁아지게 한다. 왜 그롤까? 저자의 의도는 익숙한 데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몰입했던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동안 처리했던 방식으로 소설을 읽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모든 이들은 일명 루저라고 할 만큼 못나 보인다. 그렇다면 저자가 원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무엇일까? 처음에는 당황스럽다가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가면 숨겨진 저자의 의도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아~~ 하고 탄식을 지르게 된다. 그래도 여운이 남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