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강화돈대) 후애돈대
"(강화돈대) 후애돈대" 내용보기
돈대의 역사를 잠시 잊고 현재의 마음으로 바라본 후애돈대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자연, 그리고 서해안의 갯벌.고즈넉한 백색소음은....폐사지터에  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부랴부랴 후애돈대 편을 펼쳐 보고,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놀랐다. "이 돈대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돈대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이 기록되지 않아
"(강화돈대) 후애돈대" 내용보기


돈대의 역사를 잠시 잊고 현재의 마음으로 바라본 후애돈대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자연, 그리고 서해안의 갯벌.고즈넉한 백색소음은....폐사지터에  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부랴부랴 후애돈대 편을 펼쳐 보고,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놀랐다. "이 돈대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돈대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이 기록되지 않아 돈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223쪽  풍경에 취해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있는 이미지만이 눈에 담겼다. 후애돈대 이름의 뜻도 살피지 않았던 거다. "후애라는 말처럼 절벽 뒤에 돈대를 쌓았다"/222쪽 그런데 지금의 눈으로 보면 돈대 뒤에 절벽이 있었을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독 돌들에게로 시선이 갔던 건...혹시 역시 후애돈대와 돌들의 깊은 인연을 상상해 보라는 의미였을까....

 


 


 


서해바다를 다양하게 바라보는 듯한 돌들의 표정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다가도 치열한 전쟁을 상상해 보면...저자는 전쟁에 나선 병사들이 무얼 먹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강화도에 고구마가 유명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걸까 싶은데..어쩌면 후애돈대 근처에 잊혀진 양암돈대의 지금을 생각하면서 해보게 된 생각은 아닐까 싶다. 사라진 시점이 비교적 최근(?)이 아니라서 더 놀랐다. " 이 돈대는 54개의 돈대 중 일찍이 패쇄되어 용도가 사라진 돈대이다.그때가 영조 때였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암돈대 터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는데 돈대의 석축들은 붕괴되어 대부분 사라졌고 기단석들만 듬성듬성 남아있다."/224쪽 지금은 누군가의 밭이 되어 있다고 했다. 후애돈대를 지날때 보이는 고구마밭을 유심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양암돈대터에서 자란 노란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후애돈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될 줄 몰랐다. 역사적 시선으로만 돈대를 바라봐야 하는 건가 싶어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후애돈대는 나에게 아름다운 풍경이 보고 싶을 때도,돌들의 표정을 읽고 싶을 때도 찾아가 보게 될 장소가 된 것 같다.  돈대마다 내부계단은 모두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착각이었나 보다...이제부터 집중해서 돈대 안에 계단 유무도 살펴봐야 겠다.^^

 


후애돈대에만 집중하느라 양암돈대는 살피지 못했는데..다시 살펴보니 양암돈대가 보였다.

w*******i 2023.08.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강화돈대) 건평돈대
"(강화돈대) 건평돈대" 내용보기
강화도를 애정하면서도 돈대에 대한 관심은 걷기를 시작한면서부터 였다. 무슨 이정표라도 되는 것처럼 걷다보면 돈대를 만나다 보니, 이렇게 만나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거냐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 거다.(살짝 찔린다) 얄팍한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백하자면, 돈대의 특징이 다 비슷해 보인것도 이유였던 것 같다.그러나 돈대의 역사를 생각
"(강화돈대) 건평돈대" 내용보기

강화도를 애정하면서도 돈대에 대한 관심은 걷기를 시작한면서부터 였다. 무슨 이정표라도 되는 것처럼 걷다보면 돈대를 만나다 보니, 이렇게 만나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거냐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 거다.(살짝 찔린다) 얄팍한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백하자면, 돈대의 특징이 다 비슷해 보인것도 이유였던 것 같다.그러나 돈대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이제는 흔적만 남은 돈대도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수 밖에. 해서 <강화 돈대>를 구입했더랬다. 그리고 강화도를 가게 될때마다 한 곳씩이라도 다시 찾아볼 생각이었는데..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는 석모도와 강화도 본섬이 해협을 만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어디쯤에 건평돈대가 있다. 하지만 돈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122쪽 고려산 백련사를 들렀다 가는 길 건평리쪽으로 돌아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건평돈대와 눈인사를 했던 기억이 나서..이번에는 하는 마음으로 건평돈대를 찾아보기로 했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준비(?)를 하고 갔을 텐데.. 다른 돈대처럼 접근성이 쉬운 줄 알았다. 이정표도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던가... 그러나 이정표만 믿고 가면 낭패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건창묘와 건평돈대는 방향이 다르다. 화살표를 저렇게 한 방향으로 한 이유를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를수 밖에 없는 이정표다.지도앱으로 열심히 찾아 근처에서만 헤매다가 동네분을 만나 설명을 듣고 한 번 더 놀랐다. 마을 주민들도 찾아기기 쉽지 않은 곳이라니... 이정표가 있긴 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다며 다시 길을 돌아 나서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가야 하고 차로는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비로소 자그맣게 표시된 건평돈대를 보았으나..여름옷차림이라 높지 않은 산이라도 위험할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서나왔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고..차로 오는 이들보다 강화나들길 걷기 코스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라 그랬을까? 생각해도 이정표대로 갔는데 오히려 길이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는 ..아쉽다. 이정표 초입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는 안내를 해주었다면....20분정도 걸어가면 만날수 있다고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해발고도가 겨우 50미터 남짓하지만 절벽 지형이 험해 일반인들은 이곳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122쪽 포기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품었던 의문에 대해 질문을 던져준 점은 반가웠다. 이후 가치가 높아져 복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손쉽게 찾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애돈대라든가, 오두돈대 같은 곳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정표 부터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주차장을 만들어 줄 수 없다면 이정표 밑에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면 고마울텐데....책을 일고 갔다면 건평돈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굴암돈대를 만나는 것으로 대신 했을 텐데..책을 챙겨 가지 않아서.....기분이 좋지 않았는데..후애돈대를 보면서 다시 기분이 풀렸다."후세 역사가들은 김석주가 돈대 축성이나 <<선원록>>을 비치한 것은 남인세력에 대한 견제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129쪽 건평돈대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불량기포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그런데 돈대 말고도 강화도를 지나다보면 시대인물들의 이름들도 만나게 되는데, 아직 오롯이 만나지 못했더랬다. 돈대를 다 둘러 보고 나면 차례가 오게 될까? 돈대를 떠올리면 치열한 전쟁만 생각하게 되는데... 집안 싸움에도 돈대 축성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w*******i 2023.08.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강화 돈대) 월곶돈대 ....
"(강화 돈대) 월곶돈대 ...." 내용보기
강화도를 갈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돈대지만..나는 정작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돈대의 역사적 의미를 개략적으로 아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오만..이 자리했던 거다. 그러다 몇 해전 초지진에서 광성보 갑곶돈대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많은 돈대를 만나게 되었고(그때 정작 갑곶돈대까지도 가지 못했더랬다.^^) 각 돈대의 특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어렴풋 생겼더랬다. 202
"(강화 돈대) 월곶돈대 ...." 내용보기

강화도를 갈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돈대지만..나는 정작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돈대의 역사적 의미를 개략적으로 아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오만..이 자리했던 거다. 그러다 몇 해전 초지진에서 광성보 갑곶돈대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많은 돈대를 만나게 되었고(그때 정작 갑곶돈대까지도 가지 못했더랬다.^^) 각 돈대의 특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어렴풋 생겼더랬다. 2023년에는 강화도에 있는 돈대 전부를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강화 돈대>를 만났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어느 돈대부터 만나야 할까, 생각만 하고 막상 책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흐르는 사이 연미정에서 갑곶돈대까지 걸었다. 연미정에 도착해서야 월곶돈대 안에 연미정이 있었음을 알았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한몸..이었던 거다. 어디를 가도 텍스트를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다..마음으로 먼저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나름의 개똥소신을 갖고 있어서이다. 강화 북해안로..방향은 너무 가까운 북녘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지는 곳이다. 특히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다른 세상이다. <강화 돈대>에서 월곶돈대 편을 먼저 찾아 읽었다. 물론 돈대의 개략적인 설명을 먼저 읽은 후다. "갑곶돈대에서 초지돈대까지 10여 개의 돈대가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복원을 통해 국민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돈대는 그렇게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다가 국내 여행의 붐이 일면서 또 한 번 지방자치단체의 볼거리로 선정되어 수난을 겪게 되었다.54개 돈대 중 10개는 멸실이고 20여개는 군의 소유이며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고증 없는 복원을 거쳤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돈대는 몇 곳이 되지 않는다"/12쪽 몇 줄 안되는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받은 충격이 너무 크다. 초지진에서 화도돈대까지 걸으면서..돈대가 다 비슷하다고만 느꼈던 기억은, 나 스스로 무지해서 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닐수도 있겠다 싶다. 고증 없이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돈대가 극히 일부라는 점 역시 충격이다...돈대를 다 둘러 보고 싶었던 이유가 이제서야 설명되어지는 기분이다."연미정은 월곶돈대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돈대의 홍예문을 지나면 2그루의 느티나무가 정자 양쪽에 웅장하게 서 있다.족히 500년은 되었다고 한다.돈대 안은 넒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면 동벽과 남벽은 훼손된 상태로 성가퀴라 불리는 여장은 사라졌지만 곧게 쌓아올린 육중한 돌들이 온전히 남아 있다"/59쪽 '온전히 남아 있다'는 말에 안도의 마음이..월곶돈대을 오르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생긴다.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너무 가까이 보이는 딴 세상의 풍경...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연미정을 배경으로 한 조선 후기 소설 <강도몽유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월곶돈대가 만들어진 이유, 혹은 이 돈대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아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관한 짧고 강렬한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인조반정의 공신세력이 그 대상인데 광해군을 몰아낸 뒤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공신들의 인사문제  군의 사적인 소유 백성의 제물을 빼앗는 행위,회의론을 내세워 임금이 치욕을 당하게 한 행위가 그것이다(...)"/66쪽 조선 후기 <강도몽유록>에서 여인들이 외쳤던 말들이.지금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월곶돈대를 만나고 와서 책을 마주하기 잘했다 생각한 순간 다음 순서가 갑곶돈대였다. 처음 갑곶돈대를 찾았을 때 막연히 공사중인줄 알았는데..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란 사실도 충격이고, 그렇게 된 이유는 더 충격이다. "정부는 대교건설을 핑계로 돈대를 흔적도 없이 제거해버렸다. 1970년 강화교 개통식 무렵 갑곶돈대와 주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73쪽 그러니까 현재 갑곶돈대라 불리는 곳은 상상의 조형물이라는 거다.(맙소사...) <강화 돈대> 첫 여정에서 만난 돈대는 세 곳(?)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롯이 감상한 곳은 월곶돈대. 연미정에서 갑곶돈대로 가는 길 이정표로만 만났던 염주돈대..사실 염주돈대는 처음 들어보았다. 발목 상태가 오름길은 부담되어 다음 기회에 방문할 생각이었는데..그럴 필요가 없겠다. 염주돈대는 터만 남아 있다는 사실. 염주돈대와 함께 절이 있어 자그만 암자인줄 알고 지나쳤던 진해사는 돈대 축성을 위해 승려를 집결 시킨 곳이란 사실을 알았다.  절 위에 염주돈대가 자리했던 모양이다. 한국전쟁때 파괴되었다는 사실.분명 산길을 오를수 있는 이정표가 보였는데... 터만 남아 있는 듯 하다. 

w*******i 2023.02.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