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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읽었던 소설, 하지만 읽은 후 미래를 계획하게 된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얼마 전 반려견을 잃었다. 아주 오랫동안 우울했고 나는 자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딘가에 뭉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에도 뭉이는 없었다. 그러던 중 박초이의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를 읽었다. 그곳에서 난 이 문장을 발견했다.
“갑자기 미래가 보고 싶었다. 구와 연락이 끊긴 이후 내내 그랬다. 가끔 혼잣말을 하다보면 나를 바라보는 미래가 있었고, 텔레비전을 보다 고개를 돌리면 몸을 말고 누워 있는 미래가 보였다. 미래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서나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미래가 어디에도 있지 않다고 생각하자 좀 서글퍼졌다. 미래가 없는 미래가 상상되지 않았다.” - 37쪽
미래는 옛 남자친구의 고양이 이름인데, 주인공은 미래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고양이 장례식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남자친구가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입장과 사연이 복잡 미묘하게 펼쳐진다. 세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만 나는 내 감상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의 마음을. 상처를 간직하고 있던 주인공이 고양이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의 죽음을 본다는 것은 그런 것일거다. 과거와 더불어 미래까지 고민하게 만들고, 나아가 현재를 계획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눈물이 나왔던 것인지도.
작가의 말을 읽었다. 마지막 문단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출발선 앞에 섰다. 출발선 앞에 서서 숨고르기를 할 때마다 보르헤스를 생각한다. 보르헤스는 30권 밖에 팔리지 않은 자신의 책을 회상하며 독자를 상상했다. 30이란 숫자는 상상 가능하지만 그 이상이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곧 만나게 될 독자들을 상상하며 조금은 즐거워진다. 나는 그 수가 너무 적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으리라. 두 손을 맞잡고 즐거운 대화도 나눌 수 있으리라. 가족처럼, 친구처럼, 오래 교제한 연인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으리라”
이 글을 읽자 작가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기꺼이 독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아니, 사실 난 박초이 작가의 소설을 두 권째 읽는 중이었다. <남주의 남자들>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말에 묘한 감동을 받았었는데, 두 번째 소설집을 읽게 돼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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