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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일 소설 세리의 크레이터 우연이 거듭되어 만들어진 인연
세리의 크레이터 정남일 지음, 교유서가 펴냄
결혼 제도 밖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을 선택한다는 건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세리에게는 용기, 내가 보기엔 무모함이었던 그 일을 세리는 어떤 계기를 통해 결정하고자 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세리는 그 결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크레이터로 생겨난 초계분지로 여행을 계획했고 나는 그녀의 결정 과정에 그저 들러리처럼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 여행의 결말은 뻔히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에는 내 선택만 남을 거였다. 마지막 내 선택 역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
세리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을 수많은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했고, 전남친의 아이를 품은 채 나와의 동거 혹은 가족 형성을 꿈꾸었으며, 나는 그러한 세리의 크레이터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아,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잠깐의 발돋움으로 패러글라이딩의 맛을 보는 중에 나와 세리에게, 그리고 세리의 아이에게는 어떤 우연들이 겹쳐져 결정이 이루어질 것일까? 그 아이는 세상의 빛을 만날 수 있을까?
정남일의 단편소설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는 개인의 욕망이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데 그것을 망칠 사람은 필요치 않다. 기꺼이 거부하고 배척한다. 수많은 우연을 거쳐 한 아파트며 옆집에 살게 되었을 이웃이지만 우리의 욕망은 여전히 조건부이고 한정적이다. 곤경에 빠진 이웃, 아니 타인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기란 이리도 힘든 일일까!
우연이 거듭되어 거대한 인연을 생성해내는 우주의 섭리 앞에 우리 인간은 뻗대고 손사래를 치지만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을 터. 차라리 아름다운 시선을 유지하면 참 좋겠다 싶다. 자신도 모르는 새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우연'과 '관계', 나아가 '기적'에 대한 이야기.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의 "세리의 크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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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일 작가의 단편집 『세리의 크레이터』는 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한 2022년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시리즈 10권 가운데 한 권입니다. 이 시리즈의 단편집은 모두 두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단편인 「세리의 크레이터」는 세리와 연인이 된 ‘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세리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했지만, 세리의 남친이자 ‘나’의 친구인 ‘오’로 인해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세리가 ‘오’와 헤어진 후, 둘은 자연스레 연인이 됩니다. 이렇게 연인이 된 둘 사이에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리가 ‘오’의 아이를 가졌던 겁니다. 게다가 세리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합니다.
물론, 초계분지라는 곳, 오만 년 전 한반도에 소행성이 떨어졌던 장소, 크레이터를 찾아간 후 마음을 정리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세리의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입니다. 세리의 엄마가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미혼모로서 세리를 낳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세리 역시 초계분지에 감으로 자신의 삶에 중요한 사안을 결정지으려는 겁니다. 과연 세리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운석은 우연이 겹친 인력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소설은 소개합니다. 또 한편 그렇게 생긴 크레이터는 분명 상처입니다. 사람 간의 인력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며, 또 한편으로는 그 상처가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고,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는 유명한 격투기 선수 행크를 좋아했던 젊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행크를 열렬히 사랑했던 커플, 그런데, 그 행크는 점차 광대가 되어 케이지에 오르게 됩니다. 자연스레 행크에게서 마음이 떠난 부부. 그런데, 옆집에 그 행크가 이사 온 겁니다. 격투기 선수 행크와 너무나도 닮은 거구의 흑인, 정말 옆집에 행크가 사는 걸까요
남편은 옆집 행크의 사진을 찍겠다고 말하고, 행크에 푹 빠졌던 아내는 설령 옆집 남자가 행크가 맞더라도 그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험악한 흑인이 이웃에 살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말입니다. 아내는 너무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아내가 열렬히 참여하는 하늘다람쥐를 보호하자는 시위는 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는 님비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결국 삶입니다. 행크가 야수에서 광대로 전락한 것도 삶을 위해서였습니다. 부상으로 명예로운 은퇴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광대의 길을 걸어간 것 역시 어쩌면 치열한 삶의 투쟁이 아니었을까요? 아내의 볼썽사나운 이기적 모습 역시 어쩌면 그렇습니다. 역시 자신의 삶을 위한 투쟁이겠죠. 다소 볼썽사나운 이기적 모습이고, 결코 바람직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어쩌면 치열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상처받고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이기적 모습이 볼썽사납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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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미혼모이고, 떨어지는 운석을 보고 마음을 바꿔 자신을 낳았다면? 그런데 자신도 미혼모가 되기 일보직전이라면? 또는 옆집에 좋아했던 격투기 선수하고 똑같은 거구의 흑인이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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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려는데 시선이 자꾸 책표지를 향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지러이 그어진 선들이 복잡하게 얽혔을 뿐인데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별똥별이 긴 꼬리를 떨쳐내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위로 향하여 쏘아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소행성 세레스가 떨어졌을 때 미혼모였던 엄마는 세리를 낳기로 결심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엄마는 생각을 바꾼 거야. P9>라는 세리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연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세리의 엄마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날 운석이 떨어졌고 엄마는 이것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나'의 친구 오와 사귀었던 세리 또한 미혼모가 되었다. 현재 '나'는 세리와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는 아니다. 우연이 우연을 끌어당겨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무엇이 될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망설여지는 경우 누군가에게 조언을 듣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이유를 만들어 <확신>을 얻기 위함이다.
글의 중반쯤 등장한 초계 분지. 경남 합천군에 있는 크레이터(분자공)에 내려가서 세리가 진짜로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곳까지 동행하게 된 '나'는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미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 선택은 상황에 따른 우연일까? 정해진 필연이었을까?
옆집에 전혀 모르는 거구의 흑인이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가 예전에 좋아했던 파이터 행크를 너무도 닮았다. 그래서 유심히 보게 되고 관심이 간다. 그런데 만약 전혀 알지 못하는 이였다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익숙함과 낯섬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쯤 될까?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아내'는 <신도시 아파트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을 한다. 그리고 다람쥐 보호를 가장한 공공임대 반대 운동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집값이라는 프레임에 맞춰진다. 옆집에 흑인이 사는 것이 알려지면 집값이 떨어지기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집값을 지키기 위해 공공임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단이기주의> 인가? 개인의 이익보다 다수의 공공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해답이 궁금해진다.
사람들의 마주침은 소행성이 떨어져 만든 큰 크레이터처럼 자국을 남긴다. 세리와 '나', '나'와 아내, 옆집 남자는 그 자국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관계이다. 서로에게 남긴 자국은 관계를 변화 시킬까?
대부분 화성과 목성 사이의 수많은 소행성을 이루어진 곳에서 그중 하나가 목성의 인력에 이끌려 궤도를 이탈한 뒤 태양의 인력에 이끌려 태양을 향해 날라오다 지구의 인력에 우연히 이끌려 떨어지는 것이 운석이라고 한다. 우연에 우연이가 겹치고 겹쳐 결정적 순간이 만들어진다.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면 <우연히>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헤아릴 수 없는 만남이 만든 자국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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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투데이지원도서
<세리의 크레이터>를 100시간 정도 걸려서 썼다는 작가의 말을 보고,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후루룩 읽어버린 내가 다 머쓱해졌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에겐 세리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요술공주 세리가 생각난다. 물론 저들에 푸르른 박세리(1998)도 생각나지만, 너무나 강력하게도 어린 시절의 요술공주 세리를 이길 수는 없다.
소행성 세레스에서 따온 이름 세리.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엄마는 미혼모가 되기로 결심했고, 요술 공주 세리가 별나라에서 지구로 찾아왔다는 노랫말처럼 세리는 마침내 태어났다. 그리고 세리가 임신한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의 엄마처럼 운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초계 분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크레이터(crater)는 운석이 충돌하면서 깊이 팬 웅덩이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상부리 941번지 일대를 말하는데, 직경 7km의 타원형 분지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2번째 운석 충돌구라고 한다. 운석 충돌은 약 5만 년 전에 일어났고, 운석 충돌구는 4km로 최소 직경 약 200m의 운석이 떨어졌다고 한다.
책 <코스모스> 읽고 저 광대한 우주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었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크레이터가 있는지는 몰랐다. 따뜻한 봄날에 찾아갈 곳이 생겨서 기쁘다.
떨어지는 운석을 보고 결심한 엄마처럼, 세리는 초계 분지를 보고 어떤 결심을 했을까?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교유서가 #2022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 #세리의크레이터 #정남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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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발견한다고 하잖아요. 모든 관계는 우연과 인연으로 시작되고, 낯선 만남을 통해 친숙함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중에서 9번째로 만난 책은 바로 이런 우연과 인연,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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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크리에이터라고 읽게 되는 건 크레이터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할 까닭이겠지요. 크레이터는 운석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를 표현하는 것인데도 자꾸 크리에이터라고 읽게 되고 말하게 됩니다. 단어의 오류에서 오는 불편함이 해소되기까지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세리의 크레이터는 세리의 어머님이 세리를 낳게 되었던 세리를 낳아야 했던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운석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난 후였고 그래서 이름이 소행성 세레스의 이름을 딴 세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미혼모였던 세리의 엄마와 같은 상황이 된 세리였기 자신이 갖게 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결심을 하기 위해 운석이 떨어졌던 곳으로의 여행을 결심합니다. 아이의 아빠가 아닌 아이의 아빠의 친구와 함께 입니다. 세리의 결심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은 어떤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취업도 어려운 상황에 어떻게 연예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냐고 반발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옥탑방에서 살아야 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고작 손에 들어 오는 돈은 백만원 남짓 올라가는 관리비와 사기도 엄두가 나지 않는 집들을 보면서 젊은 청춘이 열심히 벌어도 과연 삶이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는 듯 합니다. 더구나 아이가 생긴다면 더 큰 갈등과 고민에 휩싸이게 될 것이지요. 세리는 상황의 어려움에 아이 낳기늘 고민하는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지만 현실과 소설은 약간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세리의 선택이 좋은 결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소설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 조사를 하러 다닌다고 하였을때 자료조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리의 크레이터를 읽으면서 작가가 자료 조사에 매진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별똥별의 다른 점 등의 상식을 알려주고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등 일상생활에서 귀 동냥으로는 보기 어려운 듣기 어려운 것들의 전문성을 보여주어 독자들로 하여금 글을 통해 전문적인 상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정보전달의 도구로 활용이 되었던 소설이지 않나 싶습니다. 두번째 소설인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는 키가 2미터가 넘고 등치가 산만한 흑인이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디서 많이 보았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 후 그가 누구인지가 상당히 궁금함 속에서 오래전 세계타이틀을 거머쥐었던 파이터 행크라고 판단한 주인공들은 행크가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게 됩니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는 것과 흑인이 산다는 것이 다르다른 것은 아파트 집값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겠죠. 임대아파트가 들어오면 안되는 이유를 청설모를 지켜야 한다는 겉모습과 다른 시위를 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유있는 정당성 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행크는 아니었지만 외국인을 도와 주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된 주인공의 고뇌가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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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세리의 크레이터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펴냄)
삶의 많은 부분에서 운명을 얘기한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모든 희노애락에. <세리의 크레이터>에서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떨어지는 운석 덕분이었다 말하는 세리는 뱃속의 아이의 운명을 다시 보기 드문 운석 대신 크레이터를 보러가는 것으로 정한다. 정한다는 말은 사실 틀렸다. 답을 정해놓고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정한 운명을 남에게 함께 하자고 하는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기심...왜 딱히 더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까. 자신의 엄마가 걸어온 미혼모라는 길, 그 길 위에서 사는 인생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러기라도 하는 것인지, 자신과 아이의 운명에 동행하기를 부탁하듯 강요한다. 혼자서 온전히 끌어안을 자신이 없다면 누구의 운명도 자신이 결정지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별똥별은 그것을 보게된 사람에게는 행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크레이터라는 거대한 구멍으로 남게 되는 소멸이나 상처일 뿐이다. 너, 나, 우리. 우리 나라,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우리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남편. 남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마저도 우리라고 표현하며 정서적 연대를 갖는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가 있다. '우리'가 주는 연대감은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에게는 차별과 냉대가 가득한 경계선이다. 외국의 동포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에는 격분하면서 이 땅에선 또다른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고, 경제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재고 판단하며 끼리끼리의 문화를 이룬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 초라해져가는 행크를 보며 과거에 눈물짓던 아내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행크로 의심되는 남자를 들여놓지 않았다. 마음의 관계보다 경제적 실리로 구분짓는 우리라는 경계선에서 안과 밖,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자신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밀어낸 '우리'라는 안은 또다른 '우리'에서 밀어낸 밖일 수도 있다. 영원한 우리도 영원한 타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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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일 작가님은 아무래도 단편소설의 대가이신 것 같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편이라 상쾌했다. 나도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싶어지는데! 표제작 <세리의 크레이터>에서는 운석과 초계분지에 대한 지식을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는 격투기와 입주자 모임에 대한 지식을 부차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신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은 명확하고 쏠쏠한 법이다. 두 편의 화자는 남자인데, 여자친구 또는 아내인 여자 인물이 무척이나 강한 캐릭터로 나온다. 첫 편의 세리가 두번째 편의 민정이 된 건 아닌데, 묘하게 닮았다. 나도 주인공처럼 이들이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남자 주인공 보다 조금 더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처럼 거리를 두게 된다. 어쨌든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간결하며 명확한 캐릭터다. 명확한 캐릭터를 만들고, 단막극 처럼 사건이 펼쳐지고 결말도 복잡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깔끔하긴 한데, 사실 두 편 모두 열린 결말이다. 어… 열린 결말을 깔끔하다고 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데! 열린 결말이 찌연한 느낌으로 남는게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상상해 볼 수 있는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채 끝난다. 그래서 이 결말이 더 좋다. 신나게 읽을 수 있었던 단편 두 편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던 책. 아무래도 대가이신 것 같은데.. 정남일 작가님의 단편은 믿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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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은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을 통해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뜻깊은 기획물을 제작했다. 이번에 출간된 시리즈는 9명의 소설가들의 소설집 9권과 13명의 시인들의 신작시詩를 묶은 앤솔러지 시집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집 9권 중 한 권인 《세리의 크레이터》는 정남일 작가의 작품 두 편을 담고 있다. 2017년 단편소설 「라스트 장용영」으로 영남일보 문학상을, 2021년 단편「냉장고의 미래」로 천강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문학평론가 황현경은 이 소설집 해설의 첫 문장에서 '명백히 모든 소설은 인간에 대한 것이고, 이는 또한 모든 소설이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라고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그런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한 관계의 정의를 뛰어넘어 인간관계의 바탕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관계의 바탕은 친숙함 즉 '내 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세리의 크레이터」에서 세리는 자신의 출생이 엄청난 우연들이 겹친 행운이라 말하며 지금 자신이 임신 중인 태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며 동거하고 있는 '나'에게 여행의 동행할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리의 뱃속 아이는 동거한 남자 오의 아이다. 관계가 뒤틀릴 수도 있고, 아무 일 없듯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는 2미터가 넘는 거구의 흑인이 등장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흑인을 대하는 주민들과 나의 모습은 비슷하다. 조금 당황하여 굳어지는 얼굴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 하지만 그 원인은 천지차이다. '나'는 유명한 격투기 선수로 생각하면서 말을 걸 기회를 엿보는 것이고, 주민들은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힐끔거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다름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그렇다면 '나'의 반응에서 거대한 흑인이 격투기 선수와 닮았다는 것을 빼면, 즉 친숙함을 빼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