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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숙(私淑)지훈선생을 그리며... 나의 반세기전 어린 학창시절...문화환경이 전혀 없었던 시절였다. 학생들에게 문화행사는 단체 영화관람이 고작이었다. “빨간 마후라”나“성웅 이순신”, 에델바이스 노래를 배우게 해준“ 사운드 오브 뮤직”...아스라한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관람하고서는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마지막 장면에 연합군이 중국 태평천국군사의 저항을 뚫고 북경을 탈환하는 장면에서 역사도 모르고 박수를 쳤다는 이유에서였다. 하하하 역사도 아닌 지리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학교에서 배워주는 것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고교때는 문학강연 등 문화행사라고는 했지만 대학선전의 일환으로 열린 ‘고대(高大)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당대의 지성인들이 대거 동원된 좀처럼 접해 볼 기회가 없는 교양강좌이기도 했지만, 없는 것을 갈구하는 젊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먼발치에서 본 한복 차림의 고고한 선비의 강연 모습만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연내용은 기억에 없는데 무엇인지 모를 신선한 충격과 지사(志士)라는 말이 큰바위 얼굴처럼 겹쳤다. 더정직하게는 풍우(風雨)에 마모된 내안의 미륵불같은 모습을 발견한것 같았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수도꼭지마다 막걸리가 꽐꽐 쏟아지는 고대(高大)의 품에 안기라고 호기를 부리는 내 모습이 고대의 밤 행사무대에 나타난다. 장쾌하게 호언장담한 막걸리 발언의 뒷감당은 평생의 즐거운 부채가 되었다. 성장과정에서 길을 헤맬 때마다 바른 길을 밝혀주는 북극성(北極星) 같은 어른을 내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때그때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극한상황에서도 진일보(進一步)하는 결단도 사실 용기나 지혜라기보다는 스승의 큰 가르침에 따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길만길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해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빌 수도 없고 되돌아 갈 수는 더욱 없다. 이제까지 왔던 그 걸음으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것이다. 청소년 때부터 그의 선비정신을 흠모하며 사숙(私淑)했던 큰 스승 지훈 선생의 뜻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갖고 싶은 생각이 천둥처럼 울린 것은 1986년 김준엽 전 고대총장의 한국현대사《장정》 (長征)―‘나의 광복군(光復軍) 시절’을 출간하고서였다. 《장정》을 펴내며 일제 침략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중국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말 달리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조국에 남았던 그 가족과 집안이 일제(日帝)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보상을 바라고 광복의 투쟁에 앞장선 것은 아니지만 광복된 조국이 그분들에게 한 대접은 무엇이었는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후손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새 시대 젊은이들에게 분단된 반도의 움막에서 벗어나 선조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했던 광활한 대륙의 기상을 전달해 주고 싶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신(神)’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절하게 아름다운 인연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고교생 때 한 번 봤다고 그토록 존경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숙(私淑)은 그런 거라고 믿는다. 선생이 타계하신 지 43년이 됐지만 난 여전히 그의 선비정신을 우러른다. “지금까지 지훈처럼 살아왔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앞으로 지훈처럼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과 그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남의 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삶의 지향성을 지훈 정도의 격(格)으로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 자신을 끌고 나가면 그 가능성이 반드시 내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새겨두고 있는 지훈의 시가 있다.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시를 발견하였을 때는 마치 나를 위해 지훈이 이 시를 남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기뻤다. 모래밭을 스며드는 잔물결같이 잉크 롤라는 푸른 바다의 꿈을 물고 사르르 밀려갔다. 물색인 양 뛰어박힌 은빛 活字에 바야흐로 海洋의 전설이 옮아간다 흰 종이에도 푸른 하늘이 밴다. 바다가 젖어든다. 破裂할 듯 나의 心臟에 眞紅빛 잉크, 문득 고개들면 유리창 너머 爛漫히 뿌려진 靑春, 복사꽃 한 그루. 조지훈, 인쇄공장 당신의 시집을 인쇄하고 있던 공장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공장의 기계음을 지켜보다 불현듯 당신이 꿈꾸던 시세계에 몰입했을 것이다. 시인이 색칠하는 찬란한 색감의 조화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다. 시인의 상상력은 칙칙한 인쇄공장을 상큼한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에 젖게 만든다. 그리고 뭉툭한 인쇄 납활자는 은빛 갈매기가 되어 춤추게 한다. 만성피로의 먼지에 전 답답한 일상을 일순간에 광대무변의 해양의 전설 속으로 환치시킨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전부터 피어 있던 공장 유리창 너머의 복사꽃은 시인이 문득 정말로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서 의미를 갖는다. 그 꽃은 파열할 듯한 나의 심장에 진홍빛 잉크가 되고, 그 꽃은 난만히 뿌려진 나의 청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승의 존재가치란 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의 현재를 그 스승이 감시하고 격려하는 데 있다. 내가 처한 이 입장을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행동이 스승의 기준에 비춰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나를 엄격하게 지탱시키고 때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존재, 내게는 지훈이 바로 그런 존재다. 자기 자신이 늠름하게 설 때만이 비로소 남도 인정할 수 있다. 한국사회를 하나의 인격으로 친다면 아직은 늠름하고 의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신이 어떤 의미의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잘하는 이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 이런 모든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힘겹기만 하다. 그보다는 어쩌면 의식의 하향평준화로 치달아야만 긴장을 감춘 채 골목대장의 불안한 평화를 누리려고 하는 건 아닌가. 우리 젊은 날의 커다란 신화였던 사숙(私淑)지훈 선생의 추상같은 지조론이 현재에는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야 할지 늘 화두(話頭)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