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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는 평정심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평정심을 기반으로 덕을 추구하는 스토아 학파와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이 아타락시아를 궁극의 행복으로 보았다고 읽혔다. 로고스라는 신적 이성은 내게는 섭리라는 의미로 다가왔는데 이 섭리를 따르며 평정심을 지속하는 걸 행복으로 본 듯하다. 평정심은 육체적 고통이 없고 정신적 동요가 없는 상태를 이야기한다는데 에피쿠로스는 ‘지속되는 고통은 약하고 강한 고통은 금세 끝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잠시의 텀만을 두고 반복되는 강한 고통은 금세 끝난다고 보기 어렵다. 육체적 고통이라도 큰 격동이 잠시 텀을 두고 반복되면 “잠시 만에 끝났구나. 또 시작되겠지만 우선은 끝난 거야”라며 안도하는 사람은 없다. 텀이 있더라고 지속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게 당연하다. 그러니 육체적 고통을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존엄사’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행복을 주는 다른 요소들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는 평정심을 갖추게 된다 해도 행복과는 무관하게 다가온다. 평정심의 구비 다시 말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동요의 종료가 곧 행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는 욕망도 본성적이면서 필수적인 것과 본성적이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것 그리고 본성적이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가 말하는 본성이 무엇인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에 대한 해석이 없다 보니 본능과 본성을 구분 없이 사용하였나 싶기도 하다. 그는 기원전 270년에 사망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어의와 지금의 어의가 다른 부분은 주석에 있겠으나 그 시대에는 없던 개념이나 표현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능에 대한 정의는 기원 후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보면 여기서 말하는 본성이 본능일 수도 있겠다고 보면 이해가 더 쉬워진다. 당연히 에피쿠로스는 필수적이지 않거나 본성적이지 않은 욕망은 자제하도록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자족에 대한 권유가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자족(소소한 삶에 만족하는 것)을 행복의 추구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았는데 “가난은 커다란 부이며 무한한 부는 곧 궁극의 가난”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난한 삶에서 자족할 줄 알면 아타락시아가 가깝지만 무한한 부를 추구하는 과정은 자신의 결핍에만 주목하고 외적인 것들만을 추구하게 함으로 인해 더욱 결핍을 크게 느끼는 궁극의 가난한 상태를 가져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자족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가난은 직접적인 결핍을 자각하게 할 뿐이지 않은가? 부유한 이들도 거듭 재산에 대부분을 나눔으로써 함께 행복할 길을 찾아가려 하는 이들도 있다. 가난과 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를 대하는 태도 곧 마음이 문제인 건 이 시대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철학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신적 이성(로고스)에 따르며 자족하며 살면 행복하다”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연(운명)을 믿지 말고 탐구(애쓰는 바)에 전념하며 살기를 권유하고 있다. ‘모든 게 운명이라고 말하는 자는 모든 게 운명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게 운명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도 운명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고대부터 이제까지 내려오는 논리학은 말장난 같을 때가 많은데 논리란 것 자체가 진리 탐구의 면도 있지만 놀이의 한 형식이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한다. “카리나네 자매들은 모두 이쁘다. 난 카리나다. 고로 나는 이쁘다.”라는 말을 카리나가 했다면 거짓이 아닐 것도 같지만 만약 카리나에게 게리나, 야리나라는 두 언니가 있다고 할 때 둘이 다 이쁘지는 않을 수도 있기에 전제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게 논리라는 거다. 이런 삼단논법은 그저 놀이 형식이지 진리 탐구 차원에서는 결함이 크다고 보인다.
어쨌건 본서를 통해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윤곽 정도는 알 수 있겠으나 깊이 있는 걸음을 하기에는 다소 목마름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싶기도 하다. 에피쿠로스의 서신들과 그의 저작들에 대해서도 기미 정도 할 수 있는 수위로 수록되어 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대한 첫걸음이나 그 향기 정도를 미리 엿보고 싶다는 의도로는 좋은 저작이며 해제를 통해 그의 역사와 그의 철학의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살짝 맛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에피쿠로스쾌락 #에피쿠로스 #현대지성 #아타락시아 #행복론 #에피쿠로스연대기 #에피쿠로스이전철학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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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지지 않은 것을 바라다가 가진 것까지 망쳐서는 안 되고, 우리가 지금 가진 것도 전에 우리가 바라던 것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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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는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익숙하게 들려오는 이름이다. 당시 고대에서의 혁신적인 방법으로 철학을 했었고, 최근 들어 다시 재조명되는 이론이라고 생각되어 언젠가 한번은 이 철학자의 진정한 생각을 읽어 보고 싶었다. 현대지성은 이런 면에서 완벽한 출판사라고 생각한다. 완역본이고 무겁지도 않고 번역도 잘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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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님의 에피쿠로스 쾌락 입니다. 어떤 욕망에도 흔들림 없이 살게 하는 아타락시아를 누리는 길 에피쿠로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제1-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해 아테네의 국력이 쇠퇴하고 도시국가가 몰락하고 혼란기에 들어서면서 헬레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철학이 필요했고, 이프쿠로스는 바로 그런 사유가 가능한 철학을 함 이런 삶을 누리기 위해 그들은 야심과 경쟁으로 마음의 평정을 해칠 수 있는 삶을 머리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으므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육체적 쾌락이 아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미니멀리즘이나 마음챙김과 같은 평정심로 이어질 수 있는 지식을 구했는데요 어떤 욕망에 흔들림 없이 사는게 생각보다 어렵진 않겠지만 쉽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상 해보자 실천해보자 실행에 옮겨보자 하면 그게 쉽지 않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뭔가 해탈의 경지까지 올라야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아..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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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에피쿠로스 쾌락을 감상한 뒤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에피쿠로스의 원고 총 8편의 그리스어 완역본이라고 합니다. 철학은 어렵지만 천천히 읽다 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려고 합니다. |
| 에피쿠로스는 흔히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철학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의 추구가 아닌, 고통의 회피와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을 통한 진정한 행복을 강조한다. 그는 욕망을 줄이고 단순한 삶을 통해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며, 죽음과 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을 중요시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유물론과 무신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토마스 제퍼슨과 칼 마르크스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
| 이런 고전 철학서 같은 걸 읽다보면 늘 드는 생각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거... 인간은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에 대한 답은 늘 책에 이미 쓰여있다는 거... 그러니 독서를 해야되나 봐요. 독서편식을 줄이고 싶어서 선택한 책인데 잘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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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쾌락주의 철학을 다룬 작품으로, 쾌락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평온과 고통의 회피가 진정한 쾌락이라고 강조한다. 에피쿠로스는 무분별한 쾌락을 경계하고, 자아의 평화와 이성적 삶을 통해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에서 쾌락의 본질과 균형을 탐구하는 중요한 철학적 교훈을 준다. |
| 에피크로스쾌락 이 책 정말 유명한듯요. 아무 생각 없이 베스트 셀러에 있어서 구매했어요. 개인적으로 번역본이 저는 좀 힘들더라구요. 서양철학쪽은 유명한 사람들 아니라서 그런지..그리스 신화에서 볼 법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읽어볼만..저한테는 좀....힘든..그런 책이였어요. |
| 에피쿠로스 쾌락 리뷰입니다 대여로 읽은 작품인데 재밌게 읽었어요 몰랐던 정보를 이 책을 통해서 많이 얻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술술 읽힌 작품이라서 지인들에게도 추천하려고요 같이 보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누좋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