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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장미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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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1936년 4월부터 몇 해 지냈던 런던 근교 월링턴의 옛집을 찾아갔다. 오웰의 정원에 심었다는 사과나무(문득 스피노자가 생각난다)가 아직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뒤뜰의 창고를 확장하면서 베어버려 없었다. 그런데 오웰이 심은 장미는 아직 그대로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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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19364월부터 몇 해 지냈던 런던 근교 월링턴의 옛집을 찾아갔다. 오웰의 정원에 심었다는 사과나무(문득 스피노자가 생각난다)가 아직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뒤뜰의 창고를 확장하면서 베어버려 없었다. 그런데 오웰이 심은 장미는 아직 그대로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다시 정원으로 나갔고, 그곳에는 그 11월의 날에도 멋대로 자란 커다란 장미 두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 그루에는 연분홍 꽃봉오리가 조금 벌어져 있었고, 다른 한 그루에는 거의 새먼핑크 빛깔의 꽃이 피었는데, 꽃잎들의 밑동은 금빛이었다.” (25)

 

이 책은 솔닛이 오웰이 살던 집에서 발견한 장미에서 비롯되었다. 한 작가가 의도치 않게 남겨 놓은 보잘 것 없는 식물을 통해 그녀는 그의 삶과 세상에서 차지한 위치, 세상과 맺은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오웰은 장미 이야기를 여러 에세이에 남겼다. 솔닛이 오래전에 읽었던 브레이 본당신부를 위한 한마디에 바로 장미를 심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좌파 잡지에 게재된 그 에세이를 두고 어떤 독자는 장미를 두고 부르주아적이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솔닛은 여기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과연 그런가? 사회주의를 옹호했던 오웰이 장미를 심고, 장미 이야기를 자주 한 것이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장미는 오웰에게, 아니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과연 삶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이상을 좇는 것과 상반되는 일인가? 오웰이 그랬듯이 솔닛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솔닛은 오웰을 다시 읽었다. 그가 남긴 소설뿐 아니라 많은 에세이, 그리고 가사 읽기들이 모두 오웰이 어떤 이였는지를 보여준다. 오웰이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 무엇을 역겨워하고, 무엇을 지향했는지가 그의 글들에 있었다. 솔닛은 오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고 있지만, 이 책은 결코 오웰의 평전이 아니다. 오웰에 관해 많이 쓰고는 있지만 결국은 오웰을 중심에 두고 종횡무진 다른 이야기들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장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장미는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고, 현대의 기후 위기를 가져온 석탄이 된 식물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빵과 장미라는 구호를 통해 진보의 상징이 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장미를 찍은 사진작가가 다시 사진과 장미를 버려야 했던 현실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깊게 편입된 장미 산업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되기도 하고, 소련의 그릇된 유전학, 리센코주의와 스탈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오웰과 장미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최근에 오웰의 동물농장1984를 읽었다. 물론 그것을 읽었을 때의 나의 감상도 있지만, 솔닛은 오웰의 글을 매우 섬세하게 읽고 있다. 특히 1984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내가 죽고 상심했던 그가 결핵으로 망가진 몸으로(아마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써간 그 작품은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만 하기에는 참 많은 것을 담은 작품이라는 걸 솔닛을 통해 다시 알게 된다. 이게 과도한 몰입 같아 보이지만, 이상에 헌신하고, 자신 편의 잘못에 기꺼이 비판의 펜을 들고, 병들어가는 시대를 함께 아파한 한 작가에 몰입하는 것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솔닛을 통해 오웰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솔닛의 책을 잔뜩 쌓아두었다가 결국 읽지 못하고 도로 물린 적이 있다. 내 책상에 올린 책을 그렇게 물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땐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이 솔닛의 책으로는 첫 번째다.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책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를 좀 알 것 같다.

 

오랫동안 결핵을 앓았던 조지 오웰은 1950121일 죽었다. 그는 자기 무덤에 장미를 심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오웰의 무덤을 찾은 듯한 솔닉의 말에 의하면 허접스런 붉은 장미 한 송이가 피고 있었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3.01.06. 신고 공감 1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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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과 장미 둘 중 어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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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하게 된 건, 오웰 때문도 아니었고 장미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의 홍보 문구에 꽂혔다.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책을 읽기 직전, 나는 갈수록 우경화되는 사회에, 기후 위기가 실현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경제 침체의 그림자에, 심해지는 빈곤과 불평에 슬퍼하고 있었다. 이 우울함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쁨의 저항으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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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하게 된 건, 오웰 때문도 아니었고 장미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의 홍보 문구에 꽂혔다.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책을 읽기 직전, 나는 갈수록 우경화되는 사회에, 기후 위기가 실현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경제 침체의 그림자에, 심해지는 빈곤과 불평에 슬퍼하고 있었다. 이 우울함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쁨의 저항으로 말이다. 오웰과 장미는 그저 내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내가 책에서 알아내고 싶은 건, 오웰도 장미도 아니고 기쁨으로 저항하는 방법이었을 뿐이니까. 

 

읽고나서 더 알쏭달쏭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무엇에 관한 책일까? 오웰인가? 장미인가?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인가? 헷갈린다. 책은 어떤 장에서는 오웰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오웰이 자기 정원에 심은 장미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다가 어느 장에서는 장미와 관련된 (그러나 오웰과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장에서는 오웰도, 장미도 언급하지 않고 스탈린 체제와 전체주의에 대한 묘사만 나온다. 이 책은 무슨 책일까? 

 

오웰은 사회를 분석하는 작품들을 많이 썼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쓰는 작품들은 대부분 어둡고 침울했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운다>를 쓰고 나서 근 1년 넘게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는 작품과 동떨어진 삶을 살지 못한다. 사회비판적인 책을 많이 쓴 오웰은 우울, 비탄과 같은 감정들에 빠져 살지 않았을까? 

 

오웰은 그러지 않았다. 오웰은 그러는 대신에 자기 정원에 장미며, 과실나무를 심었다. 그것들을 아주 정성스럽게 가꿨다. 정원 가꾸기는 오웰에게 시대와 상관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다. 나도 나의 장미를 심어야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23.01.1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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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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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보게 된 표지가 너무도 강렬해서 뭐하는 글이지, 제목의 오웰은 내가 아는 그 오웰이 맞나? 장미는 왜 언급하지?하고 소개글을 읽어보고는 사게 된 책이었는데요. 제가 아는 조지 오웰이 맞았네요. 갖고 있는 책들을 읽고나서 이걸 읽어야 하나 그럼 흥미가 떨어져서 읽을 수 있나..고민하다가 일단 펼쳤는데 조지 오웰이 심은 나무가 지금도 있는 지 보러 갔다가 여전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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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보게 된 표지가 너무도 강렬해서 뭐하는 글이지, 제목의 오웰은 내가 아는 그 오웰이 맞나? 장미는 왜 언급하지?하고 소개글을 읽어보고는 사게 된 책이었는데요.

제가 아는 조지 오웰이 맞았네요. 갖고 있는 책들을 읽고나서 이걸 읽어야 하나 그럼 흥미가 떨어져서 읽을 수 있나..고민하다가 일단 펼쳤는데 조지 오웰이 심은 나무가 지금도 있는 지 보러 갔다가 여전히 남아있던 장미를 본 작가의 에피소드에서 조지 오웰이 장미를 심게 된 얘기로 넘어가는 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사실 리베카 솔닛이라는 저자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생각보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작가의 사고방식도 마음에 들어서 이 분의 다른 저서도 읽어보려고요. 잘 읽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d*******e 2023.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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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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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도 좋아하고 조지 오웰도 좋아하는 입장에서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던 책. (그나저나 요새 왜이렇게 책값이 올랐나요..? 이 책이 두껍긴 해도 18000원 ㅎ... 무료배송 기준도 올랐던데..) 무튼 책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장미라고 생각하면 이 험한 세상도 조금 살 만하게 느껴진다. 나도 내 정원을 가진 다음 무엇이든 심어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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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도 좋아하고 조지 오웰도 좋아하는 입장에서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던 책. (그나저나 요새 왜이렇게 책값이 올랐나요..? 이 책이 두껍긴 해도 18000원 ㅎ... 무료배송 기준도 올랐던데..) 무튼 책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장미라고 생각하면 이 험한 세상도 조금 살 만하게 느껴진다. 나도 내 정원을 가진 다음 무엇이든 심어보고 싶다. 조지오웰이 더 좋아졌다.

s*******4 2023.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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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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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에는 위기의 시대를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이라는 부재가 붙어있다.  첫 장을 읽고 이게 뭔 얘기인가? 오웰이 1939년 장미를 심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웰을 만나고 싶었던 나는 짬짬이 나오는 오웰 이야기에 오웰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리베카 솔닛은 식물은 수동적이지 않다는 문장이 왜 그런지 석탄기에 살았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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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에는 위기의 시대를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이라는 부재가 붙어있다. 

첫 장을 읽고 이게 뭔 얘기인가? 오웰이 1939년 장미를 심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웰을 만나고 싶었던 나는 짬짬이 나오는 오웰 이야기에 오웰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리베카 솔닛은 식물은 수동적이지 않다는 문장이 왜 그런지 석탄기에 살았던 식물 자원을 지금 사용하면서 두 번째 석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해박한 지식으로 매끄럽게 더도 덜도 없이 할 말을 전한다 읽고나면  그녀의 생각이 나에게 스며들어있다 그녀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이 돋보인다. 반 정도 읽고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책의 뒷부분을 더 흥미롭게 하였고 작가에 대한 옆에 두고 차분히 한 장씩 꼼꼼하게 읽어봐야 할 책이다.

s******a 2023.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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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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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책은 언제나 그렇듯 흥미롭게 읽힌다 이번 책은 제목처럼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과 장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 조지 오웰에 대해서도 그리고 장미와 관련된 이야기도 처음 접하는 내용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들이 참 많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겨본다 모든 호의적 유토피아들은 완전성을 상정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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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책은 언제나 그렇듯 흥미롭게 읽힌다 이번 책은 제목처럼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과 장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 조지 오웰에 대해서도 그리고 장미와 관련된 이야기도 처음 접하는 내용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들이 참 많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겨본다 모든 호의적 유토피아들은 완전성을 상정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YES마니아 : 로얄 5*****h 2023.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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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내용보기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다. 그러나 예술은 잘 모르겠다. 작가의 삶과 역사적 배경을 통해 얻은 베이스를 기반으로 해석하는 예술에는 고개가 끄덕여질 때도 있으나 작품 하나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우리 집에는 기능 없이 오로지 심미적 목적으로 놓여 진 오브제가 없다. 내게 아름다운 물건이란 기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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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다. 그러나 예술은 잘 모르겠다. 작가의 삶과 역사적 배경을 통해 얻은 베이스를 기반으로 해석하는 예술에는 고개가 끄덕여질 때도 있으나 작품 하나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우리 집에는 기능 없이 오로지 심미적 목적으로 놓여 진 오브제가 없다. 내게 아름다운 물건이란 기능이 있고 의미가 있으며 '게다가' 아름다운 것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소위 말해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한 인습이 언짢다. 이런 나를 보이는 것 그대로 말하고 싶게 하는, 감상의 촉수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정원이다. 나의 정원에는 유실수를 비롯한 밭작물이 없다. 한 마디로 오직 꽃의, 꽃을 위한, 꽃에 의한 정원이다. 이 열렬한 애정행각에도 불구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원사를 놀리듯이 핀터레스트의 멋진 정원들에 비하면 꽃 인심도 박한 편이다. 게다가 그 꽃은 무언가로 환산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계절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대로 모자를 쓰고 전지가위를 챙겨 땅에 발을 붙인다. 내가 정원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본 기억이 떠오르질 않는다. 노동의 신성함(가능하다면 노동하지 않고 타락하고 싶다)과 아름다운 꽃을 보는 기쁨 정도로 대충 붙여 둔 마음의 이름표를 '꼭 계량하려 들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적'이라 말한 오웰의 말을 보자마자 떼어버렸다. 정확한 계량이 부재한 공간에서 인습에 얽매인 '척'이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깨어남과 사그라짐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다는 것.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예술을 사철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조지 오웰을 통해 느낀다.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촌들과 며칠을 지내고 온 아이들이 내게 말했다. "애완은 장난감이라는 뜻이 있어서 잘못된 말이고, 반려라고 해야 바른말이래요." 언어에 드리워진 인간의 추악함을 간파할 수 있는 인간이 된 아이가 신기함과 동시에 표면적인 언어를 정정하는 것으로 그 이면의 너절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해결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의미가 형식을 전복시킨다는 레베카 솔닛의 의견에 따르자면 이런 현상들이 어느 정도 고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만, 여전히 도처에 널린 비슷한 부류의 아름다운 겉포장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그 포장의 이면은 드글거리는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미지의 것, 기후나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 곳의 것을 갈구하는 마음과 생산과 소비의 온도차를 단절시키는 마케팅. 내 눈앞에 무언가가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도록 아름답게 꾸려진 이야기. 과연 아름다움은 형식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작가 리베카 솔닛은 그 두 가지를 불가분의 관계라고 했지만, 세태를 보면 아름다움에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간과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진상품으로 차려진 수라를 먹기 전, 그 진상품을 받친 백성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나에게 어떤 아름다움이 당도하기까지 어떤 존재의 눈물이 있진 않았을지, 한 폭의 자연이 사그라들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불쾌한 것을 들추어 보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영국인들은 참 이상한 조사를 부지런히도 한다) 읽지 않았지만 읽은 척하는 책 1위에 조지 오웰의 <1984>가 뽑혔다고 한다. 작년 한 해 조지 오웰의 책을 연이어 읽다 보니 그 이유를 느슨하게나마 알 것 같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허술함을 인정하는 태도와, 뻔뻔하게 완전무결함을 외치는 이들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인류애에 뿌리를 둔 확고한 반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품은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헌신과 염원의 진실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시대를 대표하는 양심', '오웰리즘'같은 피상적인 시선으로만 오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진실됨마저 프로파간다의 선전문으로 쓰이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여기저기에서는 '나라꼴이......'로 시작하는 염세주의적 발언들이 봇물 터지듯 흐르지만 나는 그와 나의 생 사이 꽤 괜찮다고 이야기할만 한 시간들이 흘렀다고 믿고 싶다.  사족으로 리베카 솔닛의 책은 정언 삼단논법이 아니라 팔단, 아니 십단논법 쯤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독자의 뺨을 후려치는 정신없는 전개 덕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이봐요 작가양반,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요?"라고 속으로 묻게 된다. 청소로 치자면 방마다 정리를 국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를 거실로 다 쏟아 낸 다음, 커다란 보자기로 한 번에 묶어버리는 다소 정신없는 스타일이다. 다양한 주제로 뻗치는 호기심을 과감하게 집필 한 작가답게 작품 활동에 맥락이라는 게 없어 보인다. 어쩐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궁금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YES마니아 : 골드 e*****1 2024.05.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