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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돌아가셨어요." 내가 말했다. "유행성 독감으로 3년 전에요. 온몸이 흐물흐물해져서요." "맥스,제발,."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지금 싱글이지요." 내가 덧붙였다. (-16-)
"그냥 질문 몇 개만 할 거야." 소년의 시선이 달라스의 가슴팍에 닿았다. 그는 우리 사이에서 앞뒤를 살펴보더니 소리르 지르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주춤했다. 소년의 친구들이 우리 쪽을 돌아보더니 소리쳤다."도와주세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학교 진입로에 있던 작은 흑인 여자아이도 외쳤다."도와주세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99-)
"감시카메라 고장 내고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해킹한 건 내가 아니야," 나는 자비에를 힐끗 보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랬다 쳐도, 나느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니야. 통제받을 필요까진 없다고." 그레넌이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38-)
내가 알리의 예전 학교 밖 보도에서 좀비들을 보고 있는데 타일러 윌킨스가 멈춰 섰다."안녕, 맥스웰. 수업에 안 들어가?" 그는 학교 앞마당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 뭔가 이상해.우리 한 번 얘기한 적 있었지." 그는 움찔하더니 가슴에 한 손을 갖다 댔다."감기나 오나 봐." 그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미소를 내게 지었다. (-204-)
달라스 아빠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러 들렸다."불법 싸움 도박 때문에 경찰에 불려갈 일도 없고,뒤쪽 담을 넘어서 몰래 들어오는 춪답한 여자애들도 없고, 끊임없이 말싸움할 일도 없고." 그는 우리가 앉아 있는 소파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놈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남는 벌을 받거나 음악을 크게 틀거나 동성연애자로 크리스마스 연극에 출연하는 일이 없고." 달라스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둘 다 저녁 때 제가 한 음식을 아무거나 불평 없이 잘 먹어요." (-269-)
서둘러 5분 동안 길을 따라 내려가면 차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 짐들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중간에 텐트를 네 번이나 떨어뜨렸다. 다들 그걸 가지고 온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말이 없었다. 알리조차도 , 차가 있는 데에 도착했을 때는 재킷은 열어젖히고 장갑들은 주머니에 넣은 상태였다."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가 중얼거렸다. (-395-)
엄마는 너무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헤벌렸다. "우리는 이제부터 당신이 탄 차량을 조사할 겁니다. " 그느 우리를 절대 자기 나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이기 깨문에 우리 차 안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밀수품을 찾아낼 것처럼 이 말을 했다."내리세요. 아이들도 내리게 하고요." (-420-)
캐서링 오스틴의 소설 『올 굿 칠드런』을 읽는다면, 청소년 이야기와 성인이야기가 중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맥스웰 코너스는 학교 에서 문제아이, 괴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때로는 돈을 주고 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주변 아이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한다. 청개구리 스타일, 전형적인 문제아이의 모습 그 자체다.
소설 『올 굿 칠드런』은 그러한 맥스웰의 행동과 그의 여동생 알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왜 문제 아이는 문제아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맥스웰은 문제아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그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었다. 아빠는 방글라데시 독감으로 사망하였으며, 엄마는 간호사로서, 노인전문 간호를 주로 한다. 아빠의 부재로 인해 맥스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사회적 통제,사회적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아이였다. 눈앞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는 일을 나가야 했고, 아빠는 없는 가운데, 주변 아이들은, 선생님들은 맥스웰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맥스웰은 태생부터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단 세상이,주변 환경이 맥스웰의 행동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해, 해야하는 일인지 하면 안되는 일인지 구별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맥스웰은 사회가 만든 괴물이지만, 선생님의 숙제를 잘 하는 똑똑한 아이다. 즉 어떤 상황이나 환경, 조건이 맥스웰에게 악과 선을 나누게 되는 기준을 만들었던 거다. 소설은 그러한 부분을 파고 들어간다.내 주변에 괴물이라 부르는 아이들을 방치할 것인가,아니면, 교화나 잘잘못을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다.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지 ,이웃의 역할에 대해서 『올 굿 칠드런』 은 물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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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굿 칠드런 : lalilu 모두가 좋은 아이들이라는 책의 제목은 “정말 그런 세상이 존재할까?” 하는 질문으로 출발해 “‘굿’은 누구를 위한 ‘굿’일까?” 하는 질문과 “어떻게 하면 올 굿 칠드런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등 책을 읽기 전부터 많은 질문이 제목을 통해 생각나게 되었다. 책장을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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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상이 아니다. / p.18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선한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정기적인 부모 상담을 제외하고는 선생님과 만날 일을 만들지 않았다. 말하면 알아서 했었다고 한다. 규칙을 어기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담을 넘는 땡땡이와 사고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 졸이거나 혼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대한 하라는 것만 하고 살았을 뿐이다.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재미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가 봐도 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꾀병을 부려서 조퇴증을 끊는 합법적인 땡땡이를 치기도 했었고, 야간자율학습 중에 좋아하는 가수의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들키지 않았을 뿐 나름 그 안에서 반항적인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재미있었다고 대답하는 편이다.
이 책은 캐서린 오스틴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의 의미가 참 궁금했다. 한국어로 해석한다면 모두 좋은 아이들로 될까. 순종적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줄거리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지점이 나름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내 학창 시절을 볼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소설은 맥스라는 아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맥스는 초반부터 학생과 마찰이 있어 교장 선생님께 찍히는 등 문제아로 보일 정도로 뉴 미들타운에서의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맥스가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를 일으킬 아이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친구와의 싸움이었을 뿐인데 어른들은 맥스를 그냥 두지 않았다. 맥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역시도 평범하게 생활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우성 인자를 가진 아이들에게 주사 치료를 하면서부터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변한다. 맥스는 어머니의 반대로 주사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 치료를 받은 아이들 사이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누가 봐도 어른에게 순종적인 아이들 사이에서 맥스와 친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습은 조금 불편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착한 아이들로 변해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좋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어 놀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 생활에 폐를 끼치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는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중반에 이러한 생각과 감정에 변화되었다.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조하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명확하게 그려졌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감정과 행동을 강요하는 게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어른들의 욕심이자 통제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아이들에게 순종과 착함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내내 생각이 깊어졌다.
그동안 읽었던 청소년 소설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과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의 원동력을 삼았다고 하면 이 소설은 어른으로서의 반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청소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을 무겁게 닿았던 시간이었다. 과연 어른들의 바람을 채울 수 있는 제목처럼 올 굿 칠드런은 존재할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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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인 아이들’을 원하는 세상 캐서린 오스틴, 『ALL GOOD CHILDREN』(시공사)
제목만 보고 ‘읽고 싶다’가 아니라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굿 칠드런’을 해석하면 ‘착한 아이들’이다. 제목이 주는 꿈틀거림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이 꿈틀거림은 불쾌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착하다’라는 표현이 언제부터인가 거북했다. ‘착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곱고 바르고 상냥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언행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기준을 놓고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마음이 언행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는 미친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착하다는 말이 좋아서 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커갈수록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착한 아이라는 타이틀 안에 가뒀고 세뇌되듯 착한 아이가 되어 그 나이 때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성숙함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치 않은 성숙함에 어른들은 칭찬을 했고, 그렇게 나는 아이였던 적 없이 ‘어른 아이’에서 바로 ‘어른’이 되었다(나와 같이 어른 아이로 살다가 준비가 필요 없이 어른이 된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아이 같은 모습을 종종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뉴 미들타운의 모든 아이를 ‘어른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얼마나 무섭고 이기적인 일일까?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심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아이들은 원한 적 없는 세상에 떨어진 것이다. 선택받은 상위 계급들만의 주거지인 뉴 미들타운을 배경으로 하여 유전자 조직으로 우성 인자만을 가려 탄생시킨 아이들에게 행동과 감정을 통제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사 치료를 실시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들에게 약물을 주사한다는 설정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읽을수록 이런 상황이 꼭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까지 닿았다. 어쩌면 지구 어딘가에서 약물 주사 치료를 받은 후 로봇의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치료’라는 단어가 이질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아이들이 가장 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문제가 되어 치료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분노라는 감정이 계속 느껴졌다.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문제를 일으키고 그에 대해 어른들의 가르침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약물을 주입하여 순종적인 아이들로 만든다니.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칠판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쉬는 시간에도 책상에서 가만히 앉아 책만 들여다보고 있을 아이들 모습이 학교를 가득 채울 것 같은 불안함 마저 들었다. 가상 공간에서 현실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현실의 뉴 미들타운에서 사는 건지도 모른다. 무엇이 아이들을 ‘순종적인 아이’, ‘착한 아이’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걸까? 왜 아이들이라서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걸까? 왜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들을 원하는 걸까? 이 책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많은 생각과 의문을 갖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약물 주사’와 ‘순종적인 아이들’에 초점을 맞춰 읽었지만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분명 다른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소설은 거의 처음이다. 어른들 입장에서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들이 좋고, 원하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였던 적이 있었던 어른들은 어른이 된 순간 아이였을 때를 까맣게 잊고, 아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이런 면에서 맥스의 모든 모습이 반항적으로 보이지만, 맥스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 캐서린 오스틴 작가님 X 시공사 출판사 : 오랜만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와 교육,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1월 14일 토요일까지 서평을 올렸어야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1월 18일 수요일에 서평단 활동을 완료했습니다. 늦은 서평 등록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또한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작가님과 시공사 출판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받았습니다:)
#올굿칠드런 #ALLGOODCHILDREN #캐서린오스틴 #시공사 #청소년소설 #시공청소년문학 #캐나다도서관협회청소년소설대상수상 #미국도서관협회청소년소설분야베스트북선정 #책로그
캐서린 오스틴, 『ALL GOOD CHILDREN』(시공사)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캐서린 오스틴 작가님과 시공사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독자로서 책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 생각이나 느낌을 과감히 덧붙인다는 것이다. 책을 사랑함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 이 책에게 고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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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말을 잘 듣는 아이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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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부모님들은 언제나 꼭 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하게 만들어…….
지구 환경은 기후 변화 등으로황폐해지고, 인류의 안전은 환경 난민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심하게 위협받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 만들어진 계획도시 '뉴 미들타운'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성장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에 의해 자존감을 잃어가는 어린아이들의 잘못된 교육을 《올 굿 칠드런 ALL GOOD CHILDREN 》 의 주인공인 열다섯 살 소년'맥스'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는 매력적인 소설책이다.
계획된 도시 뉴 미들타운에서 살기 위해서는 일정 자격이 존재한다. 상위 계급들만의 주거지로 유전자 조작으로 아이들의 출생도 계획한다. 자연스러운 임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공수정,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최고의 우성 인자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주인공 맥스는 세 개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이다. 이 세계에서도 돈은 세상을 지배한다. 수십 개 중에서 최고로 우수한 한 개를 고를 수 있다. 그런 최고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맥스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맥스와 친구들의 평범한 학교생활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해 변해가기 시작한다. 네스팅(New Education Support Treatment)은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폭넓게 실시하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교육 지원 치료라는 것이 많이 이상하다. 주사 즉 약물을 통해서 아이들을 얌전하게, 어른들이 원하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이다. 정말 독일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에 맹종하는 아이들로 키우겠다는 것인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빠르게 감지한 아이가 있었으니 마로 주인공 맥스이다. 늘 말썽의 중심에 서있는 맥스는 동생 알리가 자신이 '소모품'이라고 부르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하게 되면서 맥스는 더욱더 네스팅에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간호사인 엄마를 통해서 네스팅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정말 전반적인 내용이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시공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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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굿칠드런 #시공사
- - 선택받은 상위 계급들만 사는 주거지, 뉴 미들타운! - ===================================== - 맥스는 이곳에서도 우수한 아이들만이 다니는 - 성적이 떨어지면 트레이드 스쿨이라는 곳으로 - 어느 날, 동생 알리는 아이들 느려졌다고 이야기한다. - 정부의 주도하에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여 - 치료는 아이들의 성적 향상 결과를 가져왔고 - 아이들과 어울려 말썽을 일으키고, 싸우고, 대들고, - 맥스는 이 치료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 숨 가쁘게 다가오는 치료의 공포!! - 결국, 치료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 - - 그들은 치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 - 안전한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 독성 물질 유출, 테러리즘, 기아, 난민들이 - 작가는 대립되는 이 두 가지 사회를 보여주면서 - 맥스의 심리적 갈등, 사회 불만, - 개인적으로 뉴 미들타운의 주사 치료를 보며 - ================================= - 맥스가 자신의 텐트에 그래피티한, 이 문구는 - 혹시, 청소년기 사춘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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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만이 인정받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가타카>를 재미있게 봤어요. 몇 년 전 중국 연구팀이 특정 질병 유전자를 제거한 아기 출산에 성공해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아직은 불법이지만 영화처럼 뛰어난 유전자만을 가진 아기들이 탄생하고 그들이 성장해 사회구성원이 되면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까요~ 궁금증이 들어요. 유전자조작을 통해 뛰어난 두뇌와 체력, 재능을 가진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아기들이 현명한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얼만 전 공감도 지능이라는 글을 봤는데 공감 능력도 유전자조작이 가능할까요~
소설의 주인공 맥스를 보면 아직까지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15살 맥스는 유전자 조작으로 우성 인자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여요. 맥스가 사는 뉴 미들타운은 선택받은 상위 계급들만의 주거지로, 맥스와 같이 유전자 조작으로 우성 인자만을 가진 아이들을 육성하는 마을이죠.
그래서인지 맥스의 자부심은 대단해요. 예술 감각도 뛰어나고 성적도 취상 위인 맥스는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다니는 트레이드 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을 소모품이라고 부르며 무시하죠.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인데 유전자로 사람들을 구분 짓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큰일이 벌어져요. 일곱 살 동생 알리가 성적 부진으로 트레이드 스쿨로 전학을 가게 된 거죠. 설상가상 학교친구들과 싸움으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버려요.
제목인 <올 굿 칠드런>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목 그대로 번역하면 착한 아이, 말 잘 듣는 아이로 해석할 수 있어요. 당연히 말 안 듣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키우기에 좋죠. 하지만 제목은 말 잘 듣는 것을 넘어 순종적인 아이들을 의미해요. 뉴 미들타운은 모범적이고 조용하며 감정 조절도 잘하는 로봇 같은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네스트라는 주사치료를 실시합니다. 이런 주사를 맞는 이유는 오직 학업에만 집중하게 위해서여요 그런데 문제아가 되면서 맥스는 이런 교육방식에 반기를 들게 되죠.
세상이 잘못되는 건. 지능이나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죠. 똑똑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이들이 지도층이 되면 잘못된 선택을 하고도 실수를 인정조차 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어릴 적부터 사교육에 시달리며 다양한 체험이나 인성교육보다 영어 단어 외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아이들이 떠올라 안타까웠어요. 맥스의 엄마가 주사를 거부한 것 역시 주도권을 가진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니까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어른들의 임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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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게 뭘까요? 어린 시절 착하다는 얘기를 듣는게 좋았어요. 부모님께 저는 착한 큰 딸이여야했거든요. 맞벌이를 하다보니 저와 여동생은 친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어요.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이 아니라 같이 살 수 없다는 공포가 더 컸던것 같아요. 책은 선택받은 상위 계급들만의 주거지인 뉴 미들타운에 유전자 조작으로 우성 인자만을 가려 탄생시킨 아이들에게 행동과 감정을 통제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사 치료를 실시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없어지고 어른들이 원하는대로만 행동하는 아이들과 그 주사 치료를 거부하는 맥스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학교 다닐때 반에 한 명쯤은 있었을 엉뚱하고 장난끼 많은 친구들과 모범생들 그리고 그들을 질려하는 선생님들과 부모. 모가 어른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도 그들의 나이에는 "공부해!"라고하는 부모님들에게 반항심도 있고 적개심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왜 우린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걸까요? 아이들의 모든 개성을 나쁜것으로 규정하고 똑같은 무채색을 입히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무방비로 공격당하고 포기해버리는 거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면서도 우리에게 복종하며 착하게만 살길 바라고 있는거 아닐까요? 읽으면서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인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비유적인 거다"라는 말이 자주 나와요. 이 책은 조금은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갇힌 사회에 대한 비유적인 이야기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읽으면서 계속 [기억전달자]란 책이 떠올랐어요. [다이버전트]와 [이퀄스], [메이즈러너]같은 영화도 생각이 났구요. 전부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토피아로 떠나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현실이 디스토피아가 아닐수 있죠. 상황을 받아들인다면요. 그리고 그들이 떠난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또다른 디스토피아일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제가 좋아하는 소재의 이야기들인데 이번 [올 굿 칠드런]도 요런 소재여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책에선 [1984]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직 1984를 안 읽어봐서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어요.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좋으시겠어요? 그럼 우선 이 책 먼저 읽어보시겠어요? 공부를 잘하는게 좋은지, 자신의 감정으로 살아가는게 좋은지 우리가 결정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자구요.
이 책은 마침 15살이 된 딸아이가 읽어보겠다고해서 읽은 후 함께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agnesjay/222978332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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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오스틴(Catherine Austen)'의 '올 굿 칠드런(All Good Children)'은 근미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린 SF 소설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일종의 SF로서, 단골이라 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리고 있다. 디스토피아는 그간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왜 그런 사회가 되었는가를 그리는 기본은 이 소설도 기존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상황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더 사회를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몰아가는지를 그려내는 것에는 나름 개성적인 특징이 있는데, 이게 딱히 그렇게까지 미래에나 있을법한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진 결과들의 합으로나 가능한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어쩌면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성을 띄고있기 때문에 꽤나 피부에 와닿는 끔찍함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타인에게 어떤 기대같은 것을 품고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법을 준수할 것'이라는 믿음부터가 그렇다. 그렇기에 그러한 기준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보일 경우 크게 반응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그런 생각을 갖는 것 까지도 문제삼으며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것을 사회화라고 부르며 긍정적으로 여기고, 정말로 그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은채 쉽게 받아들이곤 한다. 소설 속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말이다. 소설은 근미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대부분 현재에도 유효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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