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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안녕하지 못한 시절일 수록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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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앞에서, 교육 앞에서 자신만만한 이가 어디 있으랴. 외출타기를 하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같기도 하다. (6쪽)   그런데 아닌 것 같다. 교육 앞에서, 삶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나뿐'인 것만 같다. 모두들 저렇게 당당한 얼굴로 자신있게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날마다 흔들리고 매 순간마다 흔들리는 것 같다. 삶 앞에서, 아이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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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앞에서, 교육 앞에서 자신만만한 이가 어디 있으랴. 외출타기를 하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같기도 하다. (6쪽)

 

그런데 아닌 것 같다. 교육 앞에서, 삶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나뿐'인 것만 같다. 모두들 저렇게 당당한 얼굴로 자신있게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날마다 흔들리고 매 순간마다 흔들리는 것 같다. 삶 앞에서, 아이의 교육 앞에서는 더더욱...

 

아이가 대안교육을 시작한 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중고등 과정의 대안학교에 진학했다(진학했다 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초등 6년 과정 중, 저학년 3년 동안은 학교 생활에 남들보다 뛰어나게, 혹은 남들만큼 적응시켜보려고 동분서주 했고, 그 후 3년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호시탐탐 대안학교를 넘보게 되었다. 주위에 대안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가 없어 나름 각개전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모르니까 일단 규모가 적은 곳은 기피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대안학교도 이름이 알려진, 나름 탄탄해 뵈는 학교였으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탄탄한 대안학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마음에 드는 학교는 편입이 쉽지 않았다. 해서 초등기간에 훌쩍 정규 교육을 포기하는 대담함은 감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면서 집 가까이의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된 것은 나름 큰 모험이었다. 물론 입학하는 순간까지도, 아니 어쩌면 지난 일 년간 내내 제도권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를 고민했다(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므로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어느 중학교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대안교육을 선택하기 까지 격월간 <민들레>의 힘이 컸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만 알던 무식한 엄마로서는 누군가 바람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대안학교에 대해 알리는 것조차 꺼렸을 것이다. <민들레>를 통해 알게 된 작은 대안학교들은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런 학교들이었다. 내 아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있는 그대로 숨쉬게 해줄 바로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지난 일 년간 무수하게 흔들렸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나태한 모습에 그랬고, 생각보다 작아도 너무 작은 학교 규모 때문에도 그랬고, 운영위원이니 대표니 학교를 이웃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선생님들의 온갖 시중들기를 마다하지 않던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습에 기가 질렸던 나는 대안학교는 더더군다나 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운영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런가하면, 입학 전 캠프나 사전 합숙을 통해 대안학교를 체험하고 두말없이 대안학교를 선택했던 아이도 역시 학기 중간 중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중간고사를 잘 보았냐고 묻는 초등학교 친구의 말에 그랬고, 수학이나 영어의 수준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면서도 그랬고,  공강이 있을 때 자기가 이렇게 여유있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고 했다(겨우 열 네살이 된 아이 입에서 자신이 여유있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그동안 아이를 많이 닥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선뜻 일반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에게 되돌아갈 것을 권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우리 모자는 흔들리면서 첫 대안교육 일 년을 보냈다.

 

흔들렸으면서도, 흔들리면서도 대안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역시 해보니까 알겠다는 거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무익함을, 그 횡포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음은 대단한 행운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혹은 아이에게 일조하라는 그런 거창한 포부는 없다. 단지 오늘을 즐기는 아이가 내일도 역시 즐겁게 지낼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남들보다 학력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내는 실력만큼은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보다 더 느린 템포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만큼 신중한 아이인 것이다. 한 때는 그것이 세상살이에 큰 해가 되지싶어 아이를 닥달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아이가 달팽이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 해도 그 아이의 걸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정해진 규율대로만 움직이며, 보이는 고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그나마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아이가 제 머리로 생각하고, 가끔 자주 옆길도 흘깃거리며 부딪히고 깨지고 아파해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

 

이 책은 격월간 <민들레>의 발행인 현병호 선생님이 지난 10여 년 동안 <민들레>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 대안교육을 고민할 때 <민들레>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지난 1년 간의 대안학교 생활을 생각해 보며 2013년 한 해를 정리해 보자는 의미에서 연말을 이 책과 함께 보냈다. 흔들리는 마음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잡을 수 있었고, 역시 우리의 선택이 그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대안교육을 선택할 때 바로 이점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점이기도 하다. 좋은 학교, 좋은 교사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가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것이다. 그것이 대안교육 역시 또다른 형태의 교육과잉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현병호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대안교육이 만능은 아닌 것처럼, 이 책 또한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를 아는 이라면, 그가 부모이든 교사이든 혹은 그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대안교육과는 무관하게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책이니까 말이다. 모두가 안녕하지 못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교육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니까 말이다.

a*****0 2014.01.0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대안교육'이라는 말이 사라질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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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의 '외줄타기'   '이야~~!! 제목 한번 잘 지었네.'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의 부제다.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크게는 바뀌는 교육 정책에도 오락가락하고 작게는 학교 선생님의 말에 노심초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곧 서열을 결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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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의 '외줄타기'

 

'이야~~!! 제목 한번 잘 지었네.'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의 부제다.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크게는 바뀌는 교육 정책에도 오락가락하고 작게는 학교 선생님의 말에 노심초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곧 서열을 결정하는 냉혹한 경쟁이기에, 부모는 무릎을 꺾어놓는 현실 앞에 좌절하기도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약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내 속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성숙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바라보고 싶지 않은,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내가 이제껏 만난 스승 중에 가장 두렵고도 큰 스승일지도 모른다.

 

현병호의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현실과 우리 교육의 현 주소에 대해 되짚어보는 책이다. 특히 대안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이기도 한 저자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대안학교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올바른 대안교육 실현을 위한 과제를 모색한다.

 

진짜 교육, 진짜 배움

 

요즘은 정상적으로 잘 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사회가 워낙 비정상적이다보니 생겨난 씁쓸한 말이다. 교육이 소비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학교 현실은 '배움의 실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일본의 교육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학교에서 자본주의 등가교환의 논리에 익숙한 아이들의 '배움으로부터의 도피'가 커서는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로 연결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데에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교육당국과 교사, 부모가 모두 공범이다.

 

그동안 우리가 아이들을 제물로 바친 곳은 '학교'나 '학원'이라는 괴물이 아니라, 바로 부모들 자신이 만든 '욕망의 제단'이 아니었나 싶다. (84쪽)

 

이 책에서 저자는 '배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지 않는다면 학교 교육 정상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배움이란 자기가 배운 것의 의미와 가치를 삶과 연결시켜 이해함으로써 '주체'를 세우는 과정이다. 때문에 배우기 전과 배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야 비로소 공부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을 거세해버리는 학교에서 실제 삶과 동떨어진 교육은 '성찰의 힘'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기술에서 뛰어난 능력, 관계를 잘 맺을 줄 아는 능력,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며 "'전인(全人)'이란 이런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고 또 주위와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대안교육"(31쪽)이라고 말한다.

 

'대안학교'만이 전부는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대안교육'이라는 말도 사라져야 한다. 기존의 교육시스템이 워낙 문제가 많아 다른 길을 찾다보니 교육이라는 이름 앞에 '대안'을 붙인 것이 아닌가. 대안 교육이라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교육이 '정상화' 된다면 학교는 진정한 배움의 터전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교육 실현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 설립이나, 혁신학교 확대와 같은 긍정적인 시도도 늘어나는 추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대안학교'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재정부담으로 인해 정작 대안교육이 필요한 소외계층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은 여전히 대안학교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할 배움과 성숙의 과정이 오히려 '대안학교'라는 또 다른 '획일성' 때문에 삶과 유리될 수 있는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대안'이라는 말이 진입 장벽이자 그들만의 울타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대안이 아니다.

 

그래서 배움터에서는 빨간약을 제공할 필요가 있지만, 파란약을 원천 봉쇄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이 성장하는데는 파란약도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약을 주느냐보다 서로 다른 약을 구분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점에서 안정된 대안학교가 꼭 바람직한 교육환경이라고는 볼 수 없다. 경제적 환경이나 문화가 비슷한 학생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교사 집단으로 이루어진 대안학교는 삶의 다양성이 거세된 온실같은 교육환경일 수 있다. 그런데서 자라 험한 세상에 나가 어떻게 살겠느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삶과 하나 된 교육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이 또 다른 의미에서 삶과 유리된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169쪽)

 

저자는 "성숙에는 역동적인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삶이란 것이 본디 죽음과 함께 하는 역설적인 과정이듯이 갈등과 긴장은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라며 "학교는 세상과 갈등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삶의 다양성이 거세된 안온한 온실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곳,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곳이어야 한다"(171쪽)고 강조한다.

 

내가 사는 영광군 묘량면에는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작은 학교'가 있다. 농촌 시골마을에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결국 마을공동체마저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모여 주민들은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다행히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보태져 학교는 살아났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마을이 곧 학교'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폐교를 막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마을에 문호를 개방하고 마을은 학교와 자원을 공유하며 '공동체'라는 울타리에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함으로써 아이들 교육 환경도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대안학교'의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교육철학과 교육내용, 학교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대안교육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삶이 곧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에 기반해 보면, '삶의 질'이 곧 '교육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학교가 이웃,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바로 세우기'는 학교 현장 안에만 맡겨져야 할 과제가 아니다. 기존 시스템이 싫다해서 무턱대고 대안학교만 찾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지금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좋은 교육 환경이 되고 있는가에서부터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길은 바로 여기, 우리 발 밑에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4.0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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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늘 삶을 배웁니다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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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1   아이들은 늘 삶을 배웁니다―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현병오 글 양철북 펴냄, 2013.12.6.     오늘도 언제나처럼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큰아이는 왼쪽에, 작은아이는 오른쪽에 눕습니다. 밤에 아이들 재우면서 부를 적에는 자장노래이고, 낮에 아이들 함께 놀며 부를 때에는 놀이노래입니다. 밤에 부를 적과 낮에 부를 때 노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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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1

 


아이들은 늘 삶을 배웁니다
―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현병오 글
 양철북 펴냄, 2013.12.6.

 


  오늘도 언제나처럼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큰아이는 왼쪽에, 작은아이는 오른쪽에 눕습니다. 밤에 아이들 재우면서 부를 적에는 자장노래이고, 낮에 아이들 함께 놀며 부를 때에는 놀이노래입니다. 밤에 부를 적과 낮에 부를 때 노랫가락을 바꿉니다. 노래를 부르는 빠르기를 달리하고, 노래를 부르는 목청을 달리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아이들과 놀면서 노래를 부르고 보면, 이 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베푸는 선물로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내 마음이 따스하고, 노래를 내 귀로도 함께 들으며 즐겁습니다.


  아이들과 들마실을 하면, 아이들만 즐겁지 않아요. 아이와 함께 들길을 걷는 내 몸과 마음도 나란히 즐겁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면, 아이들만 바다놀이를 하며 신나지 않아요. 나도 바다내음 맡고 바다빛 누리면서 신납니다. 밥을 차려 맛있게 먹일 적에 아이들만 배부르지 않습니다. 나 또한 배부르면서 즐거워요.


.. 서로가 잘되도록 돕기보다 서로가 못되기를 은근히 바라게 만드는 것이 학교와 사회의 문화가 되었다 … 학교가 그렇게 아이들을 하루 종일 잡아놓고 있지 않는다면, 또 그렇게 경쟁하도록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더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기’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 그만큼 값져서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개 학교의 교칙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  (15, 16, 20, 34쪽)


  일곱 살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웁니다. 네 살 작은아이를 수레에 태웁니다. 나는 앞에서 자전거를 끕니다. 두 아이 무게와 샛자전거 무게와 수레 무게는 꽤 됩니다. 여름에는 더위에 땀으로 폭삭 젖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얼어붙습니다. 여름에는 참 덥다고 느끼고, 겨울에는 참 춥구나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자전거를 달립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을 안 모시니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즐겁습니다. 아이들 숨소리를 느낄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마음대로 멈추어 쉴 수 있습니다. 멧골도 넘고 바닷가도 달립니다. 논둑길도 달리고 고샅길도 다닙니다.


  아이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달리며 흘리는 땀과 느끼는 추위가 재미있습니다. 들바람을 쐬고 바닷바람을 먹는 자전거마실이 신나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 옷가지를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비벼서 빨래할 적에도 재미있습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 빨 적에도 신납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입고 조그마한 몸으로 그처럼 개구지게 뛰고 달리고 노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한결 아끼고 보듬자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옷이 어느덧 안 맞을 만큼 자라고, 다른 작은 옷이 어느새 안 맞을 만큼 큽니다.


  마당에서 함께 옷을 넙니다. 방에서 함께 옷을 갭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비질이나 걸레질을 거듭니다. 큰아이는 곧잘 설거지를 거듭니다. 수저를 밥상에 곱게 놓을 줄 압니다. 풀밥을 잘 먹고, 마당에서 까마중을 훑을 적에 함께 훑어 주곤 해요. 이 겨울 지나고 새로운 봄 찾아들면, 아버지와 함께 봄풀 뜯으러 이곳저곳 함께 다녀 주겠지요. 조물딱조물딱 호미질을 하며 흙을 같이 일구어 줄 테고요.


.. 이 땅의 학교는 졸업장을 팔아먹는다. 값비싼 졸업장은 지상천국도 약속한다면서 … 사랑과 이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 아이들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가슴속에 사랑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 사실 수능 준비 같은 이상한 공부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다 … 도시에서 자라면서 아이들이 약아지고 양심과 감스성이 무디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까 … 행복은 이렇듯 돈과 시간을 아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데 있지 않을까 ..  (26, 30, 40, 50, 63, 66쪽)


  미술학원에 다녀야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됩니다. 붓과 물감이 있어도 됩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스스로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을 배웁니다. 남이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 글을 쓰면 돼요. 스스로 글을 써야 글을 배웁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스로 사진을 찍어야지요.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스스로 노래를 불러야지요. 춤을 추고 싶다면? 스스로 춤을 추어야지요. 흙을 일구고 싶다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야지요.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면 스스로 자전거를 탈 노릇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않고서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이론을 배우거나 영화를 본들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이론이 아니라 자전거입니다. 그림도 이론이 아니라 그림이에요. 스스로 즐겁게 그릴 때에 그림이에요. 마음속에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려야 그림입니다. 이런 기법과 저런 솜씨를 뽐낸대서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나타내고 싶은 빛을 그림이라는 틀에 빌어서 보여주기에 그림이에요.


  문장작법에 맞춘대서 글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보고서나 논문을 쓰지 않아요. 글을 씁니다. 삶을 들려주는 글을 씁니다. 삶을 사랑하는 글을 써요.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면서 나누는 글입니다. 남한테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곱다시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 고급 빌라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아이의 장래일까 … 우리 교육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네 부모들이 아이들을 닦달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벗고 나서서 뛰어다닌 결과이지 않을까 … 엄연히 이름이 있는 아이들에게 번호를 매겨서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곤 한다. 그런 교사들은 흔히 한 해가 다 가도록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기 일쑤다 … 불행히도 학교는 애초에 아이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자원’이 되도록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에 더 가깝다 ..  (75, 82, 95, 125쪽)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못 가르쳐요. 왜냐하면, 학교는 학교이지, 집이나 삶터나 보금자리나 마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나 틀이 아닌, 집이라면, 집에서 무엇이든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지식이나 교과서나 책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못해요. 밥이란 삶이고, 옷이란 삶이며, 집이란 삶입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는 모두 삶입니다. 이론이나 교과서로는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해요. 학교 아닐 집일 때에 비로소 밥을 어떻게 짓고 옷을 어떻게 지으며 집을 어떻게 짓느냐를 배우고 가르쳐요.


  이론이 아닌 몸으로 먹는 밥이에요. 지식이 아닌 몸으로 입는 옷이에요. 실기나 체험이 아닌 삶으로 누리는 집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학교에서는 밥도 옷도 집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를 다니고 나면 밥과 옷과 집하고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손수 밥을 차릴 줄 아나요. 유학을 다녀온 아이들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아나요. 대학원 무슨무슨 논문을 쓴 아이들이 나무를 베고 손질해서 기둥을 세우고 처마를 댈 줄 아나요.


  약초도감이나 식물도감을 들여다본대서 나물을 캐거나 뜯지 못해요. 스스로 들과 숲을 다니고 논둑과 밭둑에서 풀을 뜯어서 먹어야 비로소 나물을 캐거나 뜯을 수 있어요.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혀로 느낄 때에 나물을 알고 배워요.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으며, 뱃속에 넉넉히 담아서 삭혀야 나물을 익히고 깨달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해야 사랑을 압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을 꾸어야 꿈이 됩니다. 착하고 참답게 살아가려는 빛이 있을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곰곰이 헤아릴 노릇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서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낼 생각이냐, 아니면 아이한테 졸업장을 선물할 생각이냐, 둘 가운데 어느 길로 가고 싶을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 슈타이너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 나무 한 그루 없는 휑한 운동장은 아이들이 운동하기 위한 공간이기보다 전체 조례나 운동회 같은 집단 의례를 위한 공간이다 … 너무 일찍부터 부모와 멀어지고, 대신 텔레비전과 더 가까워진 아이들, 골목과 놀이 친구를 잃어버리고 대신 학원 선생님을 만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몸을 놀려 놀지 않는다 … 문제의 본질은 학교 폭력이 아니라 ‘폭력 학교’이다 ..  (183, 209, 249, 264쪽)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잡지 《민들레》가 있습니다. 《민들레》를 펴내는 현병오 님이 그동안 꾸준히 쓴 글을 그러모아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2013)라는 배움책 하나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느긋하게 지내지 못한다고 여기는 마음을 이 책으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입시지옥일 뿐이요 시험기계만 만들 뿐이라는 모습을 낱낱이 밝힙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은 무엇을 말할까요. 제도권교육 아닌 대안교육은 얼마나 다른 교육일까요. 제도권이 아니니 낫다고 할 만한지요. 대안을 말하니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할 만한지요.


  교과서를 안 쓰고, 입시지옥이 아니며, 시험기계를 만들지 않는 대목에서는 제도권교육보다 나은 대안교육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지 않고, 나무를 아끼지 않으며, 나무를 누리지 않는 곳에서 어떤 대안교육이 이루어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심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대안교육 이론이나 생각이 설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며 누리는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즐거울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제도권교육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안교육이냐 아니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삶이냐 아니냐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합니다. 꿈이냐 아니냐를 읽어야 합니다.


  배움책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는 오늘날 이 나라 교육제도가 얼마나 엉망진창인가를 잘 밝힙니다. 오늘날 이 나라 대안교육도 그리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슬기롭지 못하다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와 어른은 어떤 삶으로 나아갈 적에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우리들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꽃피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활짝 웃을 만할까요.


  아쉽지만,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책에서 이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아름답게 나아가는 길까지 이 책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삶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찾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굳이 다룰 까닭이 없을 만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나 대안이나 제도나 교육은 둘째치고, 글쓴이 현병호 님 스스로 이녁 삶과 사랑과 꿈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가꾸면서 하루가 즐겁게 빛나는가를 들려주기를 바라요. 제도권교육과 대안교육 비판은 살짝 내려놓고, 현병호 님 스스로 밝히거나 빛내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걸어가는 즐거운 길을 밝히면 됩니다. 스스로 부르는 고운 노래를 들려주면 됩니다. 스스로 나누는 예쁜 사랑을 흐드러지게 펼치면 됩니다. 교육이란 삶이니, 삶을 말하고 보여주면 모든 꿈이 즐겁게 이루어집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h*******e 2014.0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