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나의 비겁했던 시기가 떠올랐고, 나만의 언어를 가질 생각도 없던 시절을 반복 재생 시켰기 때문이다. |
|
책에서 인상 깊었던 파트를 꼽자면 수없이 많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파트 1. 승인의 권력에서 '무용에 적합한 몸'이었다. 무용에 적합한 몸이 대체 무엇이길래, 스스로를 그렇게 깎아가며 평가하고 관리하여야 하는지는 평생을 지켜봐도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무용에 적합한 몸은 무용을 할 때 원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몸짓과 표정, 그리고 체력과 유연성이 아닐까 싶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날씬하고 비율 좋은 몸이라는 것이 하나의 블랙 코미디로 받아들여진다. 무용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몸'이 아니라 '움직임'이어야 한다. 작가는 여러 목차를 통하여 무용계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독자인 나는 무용계의 새로운 현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수많은 노력으로 인해 힘들겠다, 에서 멈춘 나의 무지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독자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무용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 |
|
세 번째로 '신체 ,공간, 폭력'
|
|
개인을 길러내는 사회의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개인을 움직이는 마음의 물길은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관심이 있는 윤단우 작가의 무용 현장에 관한 고발.
* 움직임을 묶어두는 움직임 '몸'이라는 무용잡지에 근무하면서 작가가 느낀 소감은 '이토록 아름답게 고여 있는 세계라니!" 라는 탄식이었고, 그 탄식은 곧 "고여 있는 아름다운 세계여, 제발 움직여라!"라는 외침이 되었다. '나는 멀리서 보면 그토록 반짝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추하게 얼룩진 이 모순된 세계만큼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
* 사랑을 얻기 위해 인어공주가 잃어야 했던 것은 발언권이다인어공주의 꼬리지느러미를 다리로 바꾸어 걸을 수 있게 해주고 그 대가로 목소리를 앗아간 바다마녀처럼, 무용계에는 전공자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대신 발언을 제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대학을 통해 현장이 구축되어 온 무용계 시스템 안에서 성원권을 부여하는 최종결정권자는 교수들이다.
- 한국에서 '무용계'라 지칭되는 세계는 사실상 '대학 무용계'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 교수들은 교육자와 창작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으로 대학과 현장을 무람없이 횡단한다.
* 여성과 남성 무용가 - 무용 전공자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꾸밈노동의 심화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남성 전공자들은 이 같은 꾸밈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용계 성별 고정관념을 보다 공고히 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 한국무용 공연을 봐도 아직도 여성 무용수들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고 남성 무용수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체 왜 웃음의 기원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고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 신체, 공간, 폭력 신체를 '신체영토'로 이해할 때 '신체주권'이란 신체에 대한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며,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무용인들은 무대라는 신전에 올라가기 위해 예술학교와 예술대학을 거치며 오랜 기간 동안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 문제는 이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많은 무용인들이 예비 무용인 시절부터 인권 유린에 가까운 폭력을 겪는다는 점이다.
* 예술보다 위대한 예술가는 없다 - 1999년 기소된 중앙대 무용학과 국수호 교수의 남자 제자 성추행 사건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반면교사다. 기소 당시 국립무용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국 교수는 사건이 법정으로 이관되며 무용단장직과 교수직에서 모두 박탈되었으나 형기를 마친 뒤 무용계로 성공적으로 복귀하여 지금까지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한국 창작춤의 대명사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또한 1991년 이화여대 무용학과 입시부정 사건으로 교수직을 잃고 수인의 몸이 되어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당했지만, 2021년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의 세 번째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스승의 존재가 내 몸보다 우선시되는 동안 몸의 존엄이 훼손되는 데에는 무감각해진다. 존엄이 훼손되고 식민화된 몸 위에서 독립적인 세계가 지어질 리는 만무하며, 식민화된 몸이 만들어내는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을 만든 이가 괴물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문화평론가 콘스턴스 그레이디)
- 무용수는 원치 않는 행위나 동작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특정 동작을 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무용계 내 성평등 행동강령)
-- 완전한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처럼, 완전한 신체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인간세상은 그러한 자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거장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름답게만 포장된 무용계 내의 폭력성을 고발한 작가와 출판사의 용기가 '여성, 신체, 공-간, 아름다움' 을 지향하는 무용계를 만드는데 일조하기 바란다.
* 이 글은 허사이트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