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문득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생각났다. 자기가 가진 침대에 남을 눕힌 후 상대가 침대보다 길면 상대 몸을 자르고,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죽이던 도적이 프루크루스테스였다. 이는 곧 '어떤 절대적 기준을 정해 놓고 모든 것을 맞추려 하는 행위'를 비유한 용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내가 정한 기준 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지 않고자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가족과 함께, 학교에서, 직장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건 나와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다. 타인과 뒤섞여 살아가며 우리는 마음 속에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치우게 된다.
가족, 학교, 직장에 비해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연애와 결혼도 사회화 과정에 포함할 수 있다. 후자는 전자보다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우리 인생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가치관이 상이한 상대와 계속 함께 살면서 새로운 가정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더라도 내가 상대에게 맞추든, 아니면 상대가 나에게 맞추는 식으로 서로 변할 수 있다. 문제는 언제나 상황이 이렇게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어두운 작중 배경과 상황은 인물 간 갈등을 더욱 부각해주는 소재다. 「하모니」에서 자유분방한 남편 펠릭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옭아매려는 아내 안네마리와 상극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나아간다. 『파도』에는 신흥 귀족 집안의 딸 도랄리체가 중심이다. 뼈대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노쇠한 쾨네 백작과 틀에 박힌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한 도랄리체는 화가 한스에게 푹 빠지어 함께 도망친다. 그러나 둘은 계급과 가치관 차이 때문에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도랄리체는 답답한 귀족 생활을 벗어나고자 자유분방한 한스를 택했지만 정작 그의 기질을 따라갈 순 없다. 먼 바다로 나아가려면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파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무더운 날들」은 부자 간 갈등을 중심으로 한다. 아들 빌은 아버지와 사촌 누나 게르타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면서 크게 동요한다. 책에 소개된 소설 3편에서 대립하는 인물쌍은 유미주의-자연주의, 혹은 문명-자연 간 대립을 나타낸 듯하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가치관에 혼란을 겪는다. 이런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카이절링은 조국의 미래를 소설을 통해 예견한 듯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로이센은 패망했으니 말이다.
*.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
독일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카이절링의 대표작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토마슨 만과 함께 독일 작가 중 문학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입니다. 독일 유미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파도>는 을유세계문학전집 124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911년 출간되어 국내에는 초역으로, 독일 문학 특유의 세기말의 우울한 정서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자연적인 생명력과 인위적인 문명의 갈등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카이절링의 소설은 독자에게 독일 문학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수성을 알려 주는 걸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을 읽고 수집하는 독자입니다. 기대되는 작품을 좋은 기회에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 <하모니>는 갸름하고 총명한 얼굴에 병약한 젊은 귀족 부인 안네마리와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남편 펠릭스 폰 바세노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부부간의 성격과 이상이 맞지 않는데서 갈등은 시작됩니다. 안네마리는 까다로우며 감성적인 성격에 하루의 생활을 자신의 뜻에 따라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남편을 제어하는데 반해 남편은 마치 마법에 걸린 성에 살고 있는 것 같이 너무나도 고상한 안네마리에게 어쩌면 스스로 질려버렸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감각적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결국 남편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파도>의 도랄리체는 젊고 아름다우며, 본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욕망이 가득차 있고 수선 늙은 쾌네-아스키 백작과 결혼을 하면서 귀족들의 문화와 관습에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쾨네 백작이 지배하는 또 다른 문명화된 삶 속으로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무더운 날들>의 주인공 빌은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서 떨어져 누이들과 함께 휴가를 가는 대신 여름 동안 아버지를 따라 영지에서 보내면서 아버지와 맞지 않는 성격탓에 삶은 지루한 일상이 심화됩니다. 그러던 중 친척 폰 바르노 집안의 소녀들을 알게 되면서 사촌 게르다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촌 엘리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괴로워 합니다.
안네마리와 있을 때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세계 속에 있었다 - 그녀를 위한 세계 속에,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외부 세계로부터 커튼을 내리기 위해 말텐 부인이 있었다. 좋다! 그는 커튼 뒤의 세계에 속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세계에 대해 그는 늘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p.23 하모니
“그래서 비난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비밀로 덮어 둬야 하는 흉측하고 부적당한 일이어야만 하는 지금, 저는 저 자신이 창피해요. 제가 살롱의 장식장에 다시 가져다 놓으려고 하시는 삼촌의 사기 인형처럼 느껴진다고요- 인형은 다시 자기 의무를 다해야겠죠. 신분을 대표하는 일요.” ---p.342 무더운 날들
작가 카이절링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을 통해 극도로 문명화된 삶의 몰락을 이야기 합니다. 발트해 지방의 고귀한 성과 정원, 숲과 야외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이유 모를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읽기 쉽게 짧고 간결한 문장이지만 인물의 심리와 상징적 공간을 섬세하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세 작품 모두 카이절링의 대표작이자 지금껏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귀한 책입니다. 독일 문학의 탐미성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고전으로 손꼽는 작품입니다. 자연적인 생명력과 인위적인 문제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출판사 지원도서
|
|
자연과 그 속의 인물들이 한 폭의 정적인 그림으로 표현되는데 미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서술이다 카이절링 파도는 우울한 정조와 품위를 가장한 숨막히는 분위가 있다 ? 펠릭스의 결혼 상대 안네마리는 품위있고 고상해보이는 귀족 여인이며 확고한 삶의 방식 혹은 테두리에 갇힌 여인이라서 남편에게도 마음에 드는 것만을 보고 맞지않는 것은 거부한다 ? 그것은 그를 긴장시키고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불행으로 향한다 ? '그늘에서 피어난 꽃잎처럼 창백한' 안네마리는 아기의 출산과 죽음으로 끔찍한 병을 얻어 요양원에 가게되고 펠릭스는 여행을 떠난다. ? 회복하고 다시 돌아온 안네마리는 더 예민해 보인다 자신에게 맞지않는 것은 참기 힘든 너무 까다로운 여인이다 ? 그녀는 앞으로 있을 하루 일과를 명령처럼 말한다 그녀가 바라는 바대로여야 한다 그것은. 아주 우아하게 말하지만 이기심이 보인다.그녀가 마련한 그녀의 하얀 세계는 고상하고 완고하다 ?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여야하는 그 하얀 성에서 펠릭스는 점점 반항심을 갖게 된다 ? 펠릭스는 안네마리가 자신을 지루해하고 경멸하는 것을 참기힘들다 ? 삼촌 틸로는 아름다운 아말피 푸른비단같은 바다는 안네마리에게 어울리는 바다라고 그 배경에 그녀가 빠지면 안된다고 말한다 펠릭스는 안네마리가 그의 말에 더 빠져있음을 보고 질투한다 ? '아 아니야 고마워 하지만 나에겐 맞지않아' 차가운 거부의표현은 상대를 위한다고 할수 없다 그녀에게 온전히 속하고 싶은 강렬한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 얼굴 앞에 둘러맨 가면은 우리를 질식시킨다고 생각하는 펠릭스에 반해 틸로는 가면은 벗어 버릴수 없는 거라고 생각을 말한다 터놓고 얘기하지 말라는 충고도 함께 ? 그 둘은 맞지 않는다 정신 세계가 다르므로 불협화음이 있고 끝내 그 사이는 크게 벌어지고 결국엔 각자가 원하는 다른 세계로 간다 펠릭스는 자유로운 생동하는 야생으로 안네마리는 라일락 꽃을 들고 노래하며 물속으로 ? 건강한 미와 품위있으나 차가운 미의 대조가 간극을 벌이고 회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마친다 안네마리가 추구하는 미적세계는 꿈꾸는 세계다 도달하기 힘든 미의 세계는 그러므로 비극이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결코 될 수 없다 스스로 죽음도 나쁘지않다고 말하는 것 그래서 그곳에 빠지는 선택이 쉬이 이해하기 어렵다 ? ? ? |
|
'독일문학'의 담박함과 명료함이란.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만 같다.
평소 작가 본인의 이름에 기대어 독서할 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간혹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들의 소개가 눈에 띄곤 하는데 새삼 독일계 작가들의 면면이 시선을 끄는 요즘.
흥미로운 단편 셋이 수록된 을유 출판사의 <<파도>> 행간 곳곳에서 느껴지는 인생에 대한 관조가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사이 은밀하고도 오묘한 분위기, 미세한 긴장감의 연속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자못 흥미로워지다가, 마지막장으로 치달을수록 어쩌면 담담하게- 도리어 차분하게 끝을 맺는다.
특히나 '후각적 풍경'에 대한 묘사가 유달리 돋보였는데, M. 프루스트를 연상시킬 만큼의 상황 설명과 묘한 분위기로 인해 읽는 내내 바닷가 짠내와 터키인의 바닐라 향이 소설 언저리를 감싸 도는 듯하다.
금세 한 편의 영화로 영상화 한다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세밀한 배경 묘사와, (이데올로기를 제하고 약간의 멜로적 요소를 한스푼 더한)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다분히 현실적이면서도 공감각적 경험으로 독자에게 인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폭풍이 불어오는 밤마다 케이크처럼 한 조각씩 잘려 나가는 공동묘지 말입니다. 이 모든 고요함은 모래사장 쪽에서 내다보며 바닷바람이 해골 주위로 불어 나가게 합니다. 저 해골들이 아침의 붉은빛 속에서 얼마나 요염하게 물드는지 한번 보세요. 마치 장미꽃처럼 피어납니다..."
"삶이 어떻게 계속 진행되는지 조용히 기다리는 거지요. 왜냐하면 부인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저기 작은 파도를 보십시오. 지금 저기 작은 파도 하나가 위에서 빛을 받고 있지만, 곧 그림자 속으로 내려갑니다. 좋아요, 좋아요- 저는 타고난 물고랑의 친구입니다. 그러고 나서 파도가 다시 위로 올라가면, 그러면 부인은 저를 그 자리에 두고 가시면 됩니다..."
다분히 이전 세대의 사랑과 배신, 방종함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을 만큼의 모던함. 굳이 미려한 결말을 시도하지 않는 점과, 극적인 시도 없이 담담하면서 서늘하게 마무리를 맺는 단단함도 참 좋다.
|
|
[기차역은 성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마차는 벌판을 달려갔다. 회녹색의 대지, 그 위로 비단 같은 푸른색 그림자가 퍼져 갔다.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다. 펠릭스는 이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뻤다.] -'하모니' 중에서
따스한 지중해 햇살이 있는 아말피 해안을 벗어나 아내가 있는 독일 북부 지역 영지로 돌아 온 펠릭스 폰 바세노는 이제 명령만 내리기만 하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준비해 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다소 상기되어 있다. 자신 보다 계급이 높은 아내 안네 마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만 받아 들이는 사람으로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들어 오는 것만 받아 들였다. 결혼 생활 내내 아내 안네 마리가 보는 방식에 맞춰 살아야 했던 펠릭스는 항상 긴장했고 지독할 정도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기에 아이를 사산 하고 요양을 하게 된 아내를 커다란 성에 남겨둔 채 여러 해 동안 세상을 곳곳을 돌아 다녔다.
[높이 솟은 소나무들 사이는 어두웠고 엄숙한 정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펠릭스는 마치 환영을 보듯 또렷하게 안네 마리의 모습을 보았다. 성의 불빛이 벌써 정원의 나무들 사이로 아른거렸다. 새로 깔린 자갈이 바퀴 아래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성문 앞에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어둠 속에 사람들의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하모니' 중에서
펠릭스는 아내가 있는 성으로 돌아 오자 비로소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새 하얀 색으로 말끔하게 단장 된 것을 좋아 하는 주인 안네 마리를 위해 온 세상을 전부 새 하얀 솜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충실한 집사 폰 말텐 부인은 매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쳇 바퀴처럼 모든 장소마다 하인들을 배치 해 놓고 명령을 내렸다. 폰 말텐 부인은 안네 마리가 듣고 싶어 하는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하녀를 고용하며 마치 교회 처럼 주인을 둘러싼 모든 세상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펠릭스는 아이를 사산 한 후 극도로 허약해진 아내 안네 마리를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났다 가도 항상 아내의 손 안에서 모든 행동을 멈춰버렸다. 아내 안네 마리는 남편과 아침 식사 중에 이렇게 차려 입고 행동할 것을 요구 했다.
[오전에 영지를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커다란 회색 펠트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말이야. 창문 옆을 지날 땐 큰 목소리로 얘기해 줘. 누군가를 혼내도 좋고.] -'하모니' 중에서
폰 말텐 부인은 오후에 안네 마리의 부친과 그의 동생인 틸로 삼촌이 영지에 찾아 온다며 분주하게 하인들을 불러 모아 세웠다. 미소를 머금은 안네 마리는 남편에게 속삭이듯 오후 정찬에 나올 음식들 가재 수프, 멧도 요새와 파인 애플 빵, 샴페인을 마실 것이고 식사 후 노을이 질 때 파란색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원에서 나이팅게일의 새소리가 들릴 것이다. 라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폰 말텐 부인은 하인들에게 이 모든 것들을 지시한다. 자신 만의 세상을 살고 있는 안네 마리, 그 세상을 지켜주는 충실한 집사 폰 말텐 부인 아내의 가문에 비해 초라한 집안이였던 펠릭스는 고상한 문화와 언어를 구사하는 아내 가문에 끌려서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지만 엘름트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기에 일반인들과 뒤섞여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가장 고귀한 종족이였다. 아내의 삼촌인 틸로는 가문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대 변혁 속에서 가문 최후의 제국 백작으로 남겠다며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죽을 때까지 가문의 이름과 지위를 절대로 버리지 않기 위해 차라리 자연 속으로 멸종해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아내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눈동자 색을 가졌다며 하녀를 내쫓아버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마차를 몰던 마부가 그만 진흙탕 길에 빠져 버리자 마부가 쥐고 있던 채찍을 휘두르며 악마 같은 폴란드 놈이라고 욕을 퍼붓는다. 펠릭스는 어린 마부의 목숨을 살려 주기 위해 일부러 장인 앞에서 마부의 몸을 때리며 어서 도망가라고 속삭인다. 가문에서 키우는 가축들 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하인들을 살뜰 하게 챙겨주는 펠릭스는 엘름트 가문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서 야 비로소 이곳 영지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가족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아내는 삼촌 틸로를 위해 남편 펠릭스에게 국회에 출마 하라며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의 유머가 삼촌을 웃게 하기 때문이라고 조롱 섞인 말투를 내뱉고 식사를 마친 후 파란 방에 모인 가문 일족들은 자신들 세상에서만 빛 날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엘름트 가문 성지 전체를 물들일 노을이 펼쳐지면 때 마침 하녀들이 잡아온 나이팅게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할 시각에 돌연 초원 너머 검은 구름이 몰려 오더니 번갯불이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겪는 날씨네' '어쩌면 자기도 그건 모르는 거야. 갑자기 무언가가 와서- 거기에 있고 그러면 더 이상 전혀 살고 싶지 않게 되는 거야.'
한 밤중 느닷없이 밖으로 나간 아내는 연못 근처를 배회 하며 분명 이곳에서 제비꽃 향기가 나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펠릭스는 그 날 밤 노을도 보지 못했고 나이팅게일의 지저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가 본 건 오로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노란색 터키 스타일의 신발을 신은 아내 그리고 박물관에 걸려 있을 것 같은 엘름트가문 남자들이였다.
'이곳의 모든 것들은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 모든 가구들, 모든 꽃들까지도 그 자신도 또한 신경을 가지게 되었다.' -'하모니' 중에서
펠릭스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법에 걸린 성에 살고 있었다. 이곳에 어떤 사람은 커프스 단추를 달고 있어서 오면 안 되고 어떤 사람들은 말을 길게 늘어 놓아서 오면 안되었고 어떤 하인은 붉은 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갖고 있기에 식사 중에 나와 있으면 안되었다. 오로지 이 가문의 문화와 예법에 맞는 이들만 문을 통과 할 수 있는 성에는 말하는 것과 먹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이들이 살고 있다. 펠릭스는 아내가 쫓아 버린 하녀 밀라와 내연 관계를 맺고 삼촌 틸로는 조카 안네를 숭배했고 그리고 그 조카는 삼촌을 사랑한다.
'뭐 죽음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확실하게 쳐진 커튼 - 그러면 안전해요. 그리고 어쩌면...'
세기말 스스로 자멸의 길을 택한 귀족들의 삶을 작가 카이절링은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대비 시켜 가문의 몰락 문명의 쇠락을 묘사했다.
[장군 부인인 폰 팔리코와 그녀의 오랜 동반자이자 친구인 말비네 보르크 부인이 거실로 들어 왔다. 두 사람은 잠깐 쉬고자 했다. 장군 부인은 이제 막 반짝이는 검은색과 붉은색 무명 천으로 씌워 놓은 소파 위에 앉았다. 더위에 지친 부인은 턱 밑의 모자 끈을 풀었다. 연 보라색 여름 옷이 가볍게 바스락 거렸다. 관자놀이의 하얀색 머리핀이 비뚤어져 있었다. 부인은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간 튀어나온 반짝이는 파란색 눈으로 방 안을 비판적으로 둘러 보았다. 방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몇 개의 무거운 가구들이 사방의 벽에 놓여 있었다. 여기 선 석회와 바다 이끼 냄새가 났다.] -'파도' 중에서
산업 혁명기 시대를 지난 1910년대 독일은 상업과 무역으로 부를 쌓아 올린 시민 계급들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다. 돈으로 지위를 산 신흥 귀족 집안의 도랄리체는 늙고 노쇠한 마지막 귀족인 야스키 백작과 결혼해서 상류 사회로 진출한다. 엄격한 규율이나 지켜야 할 예법이 없는 자연 상태의 환경에서 성장한 도랄리체는 숨 막힐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고수 하는 상류층 사회에서 문득 문득 자신의 핏 속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며 기이한 불안감에 사로 잡힌다. 값비싼 고급품과 아름답고 거대한 성 안에서 도랄리체는 이전의 삶 보다 훨씬 더 규칙적이게 살기에 삶이 고달퍼졌다고 느끼던 중에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시민계급 출신의 화가 한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는 희생자가 희생자가 되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고통과 사랑의 실망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도시 속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바다로 멀리, 모래톱 너머까지 헤엄쳐 나가려고 했다. 미지근한 작은 파도들이 그녀에게 밀려 왔다. 끝없는 만족감이 그녀의 몸속으로 흘렀다. 별들이 활기찬 황금 빛 점들처럼 반사되는 검은 파도 언덕이 그녀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가 다시 부드럽게 황금 빛 별빛이 비치는 검은 파도 아래쪽으로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모든 뜨거운 것 비좁은 것들 짓누르는 것들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했다.] -'파도' 중에서
도랄리체는 남편 쾨네 백작을 버리고 시민계급 출신의 화가 한스와 도망쳐 결혼식을 올린다. 남편에게 벗어난 도랄리체는 화가 한스가 이끌고 가는 자유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은 그녀를 위한 천국이 아니였다. 귀족들과 평민들이 뒤섞여 있는 해안가 파도가 치는 곳에 다다른 도랄리체는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 되지 못한 채 거세가 밀어 닥치는 파도에 휩쓸려갈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저주하고 배척하면 그제야 우리는 우리끼리 만 함께 있게 되는 거예요. 오늘 낮에 바다에서 처럼 요. 그러면 우리는 삶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삶을 사는 것은 너무 어리석어요.' -'파도' 중에서
산업 혁명으로 부를 쌓아 올리고 돈으로 계급과 권력을 쥔 이들이 많아진 사회에서 도랄리체는 백작 부인으로 불리는 것과 지극히 평범한 화가의 부인으로 불리는 것 사이에 엄청난 차별의 벽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도랄리체는 밤마다 꿈 속에서 자신이 살았던 성에 살고 있었고 잠에서 깨어 나면 그녀는 꿈 속의 그곳을 그리워 했다.
'삶이 어떻게 계속 진행되는지 조용히 기다리는 거지요. 왜냐하면 부인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저기 작은 파도를 보십시오. 지금 저기 작은 파도 하나가 위에서 빛을 받고 있지만 곧 그림자 속으로 내려갑니다. 그러고 나서 파도가 다시 위로 올라가면 저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둡니다. 바다가 우리를 놔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겁니다.' -'파도' 중에서
자신의 운명 앞에 불어 닥쳤던 파도에 올라 탔던 도랄리체, 백작 신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 보다 작고 등이 휘어진 화가, 사람들에게 신사라고 불리는 그와 함께 또 한번의 파도가 불어 닥치더라도 맞잡고 있는 두 손을 놓지 않는다.
독일 데카당 문학의 대표 작가 에두아르트 폰 카이질링은 19세기말 거세게 불어 닥치는 시대 변화를 거부 한 채 스스로 멸종의 길을 선택한 독일 지역의 지방 귀족들의 삶의 양상을 자연의 생성과 소멸에 빗대어 유미주의적인 문체로 펼쳐 보였다. 2005년 부터 독일 공영 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카이절링의 작품들을 통해 지난 독일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상류 계층의 삶을 보여주기에 독일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카이절링의 작품들은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 방영 되면서 21세기 독일 사회에서 찾아 보기 힘든 독일적 문화와 가치 사상이 녹아있는 유미주의적인 세계관을 보여 주었다. 19세기 말까지 독일 지역은 각 지방을 다스리는 지역 영주들은 봉건주의적 관습을 고수 하며 자신들의 가문을 오랜 세월 동안 지켜 왔던 것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855년 독일 통치 지역이였던 쿠어란트(현재는 라트비아) 지방의 파데른 성주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카이절링은 심각한 척수병이 발병으로 학업을 그만 두고 가문 집안 사람들은 물론 지역 귀족들과도 섞여 살지 못한 채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가 그곳 영지를 관리하며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기에 자신들과 비슷한 부류의 귀족들이 성 밖 너머의 사람들이나 사회 변화에 뒤 섞이지 못한 채 어떤 삶을 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6여러 편의 작품을 통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카이절링은 1900년대 부터 자신의 두 명의 누이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문인들이 모여 있는 카페를 드나들며 유명 작가들인 릴케와 카스너, 쿠빈등과 교류했다. 그는 이 시기에 세상과 고립된 가문에서 벗어나 여행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자유로운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데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본 귀족들의 삶을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 시켰다. 척수병으로 등이 굽었던 카이절링은 6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방탄한 사생활로 얻은 매독 후유증으로 서서히 시력을 상실해서 점차 사회에서 고립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 장편 <파도>는 삶의 끝자락에 발표한 작품으로 일반 사람들과 거의 교류 하지 않은 자신들 만의 성 안에서 고귀한 종족 처럼 살았던 귀족들이 스스로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세기말 사회 변혁의 물결 앞에 놓인 귀족들의 각기 다른 인생의 행로를 파도의 세기와 빛으로 묘사했다.
붉은 햇살 이 내리 쬐는 곳에서 모기들이 춤을 추는 곳, 자작나무 잎의 향기에 취해 졸음이 쏟아지는 곳을 벗어나 수평선 너머로 황금 빛 태양이 파도를 타고 넘실거리는 그곳으로 뛰어 들어간 고귀한 종족들
[배는 앞으로 나갔다. 하늘에 별들이 떠 있었고 바다가 어둠 속에서 마치 조용히 움직이는 더 검은 어둠처럼 물결쳤다.한 무리의 갈매기가 날아왔다. 불분명한 빛 속의 크고 하얀 모습, 갈매기들은 날카롭고 탐욕적인 울음을 뱉어 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강하고 가차 없는 삶을 숨 쉬고 있었던가....] -'파도' 중에서
|
|
띠지 앞쪽에는 ‘탐미주의 소설’이라고 쓰여 있고, 띠지 뒤쪽에는 ‘유미주의적 삶은~’이라고 쓰여 있다. 탐미주의와 유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사상으로, 둘은 사실 같은 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말이 같다고 해도 탐미주의라는 말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곤 한다. 탐미라는 단어에선 탐닉이라는 단어가 연상이 되는데, 탐닉하여 현실을 도피하고, 탐닉하다가 붕괴되는, 부정적인 어감이 탐미라는 단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의 소설에선 규범이 인간을 구속하고, 인간은 규범에서 벗어나 살려고 하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특히 규범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원래 사랑의 논리라는 게 맹목적이므로 이런 설정은 자연스럽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들에게 죽음이라는 결말을 선물한다. 사랑은 왜 이뤄지지 못하고 실패하나. 사랑이 죽음이라는 결말로 끝난다는 것은 비극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게다가 죽음은 독자에게 사랑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장치라서 많은 영화와 소설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비극적인 정서로 선명하게, 인물들이 처한 한계와 의지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이 자연을 묘사하는 대목도 재밌는데, 자연 현상은 인물의 심리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물가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에드제와 페터가 물고기를 세고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나는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밤이 점차 밝아지고, 회색이 되어 투명해지고 시작하고, 사물들이 무채색으로 무미건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내게 한없이 거슬렸다.” p310, <무더운 날들> 그가 묘사하는 자연은 아름답기에 탐미주의를 신봉하는 인물의 심리를 자연 현상으로 투영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한편으론,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제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인간은 자연 현상 즉 자연의 본성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뜻 같기도 하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데, 인류가 만든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라고. 소설의, 패배하는 사랑, 붕괴하는 인간한테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