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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을 공부하면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에 푹 빠졌던 지난 과거가 떠올랐던 이유는 막스 프리쉬를 설명한 한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브레히트 이후 최고의 작가'란 찬사를 받은 막스 프리쉬의 대표적 작품인 <호모 파버>는 탄탄한 구성과 밀도 높은 감정으로 비극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생애를 보여준다. 소설은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첫 번째 정거장, 두 번째 정거장으로 나눠 주인공 발터 파버의 우연이 빚어낸 필연같은 운명적 삶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더 깊이 몰입하게 해줄 수 있었던 디테일의 힘은 자전적 이야기가 가미되어 만들어진 에너지라 설명할 수 있다. 소설은 생각조차 거부하고 싶은 근친상간 모티브로 운명과 숙명이 지배하는 비극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비록 친딸 자베트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였지만 자볘트와의 만남과 사랑은 우연인듯 비극으로 치닫는다. 주인공 파버는 결국 위암 수술을 받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존재조차 몰랐던 친딸 자베트와의 사랑과 자베트의 죽음을 통해 파버는 과거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지만 중병에 걸린 그에게 남은 시간은 짧기만 했다. 파버라는 한 남자의 삶에 우연처럼 들이닥친 비극은 마치 아이러니한 인생 그 자체라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리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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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도서제공 #세계문학 #소설 #오이디푸스 #소설추천 #독일문학 운명을 믿는가? 살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일이 삶의 흐름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는 굳이 드라마나 소설을 보지 않아도 경험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삶을 자신이 통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생명공학, 의학 등으로 죽음까지도 정복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보아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도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한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인간을 대변한다. 그는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어떠한 틈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술자인 그는 자연과 예술을 터부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비행기 사고, 옛 친구의 동생과의 만남, 친구의 자살, 묘령의 여인(소녀)과의 만남, 옛 연인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되는 충격적인 사실 등,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앞두고 그 시간들을 회고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고전 소설과 같이 우연의 연속이라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지나치게 이성을 신봉하는 인류로 대변되는 주인공이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일을 겪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는 과정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 소설은 1957년에 쓰여졌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때의 소설이다. 사실 이 소설이 언제 쓰여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며 시대적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바로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또 주인공의 고뇌, 또 충격적인 사건 등 흥미를 끄는 요소가 책을 끝까지 붙잡게 만든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시간이 순삭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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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 호모 파버
막스 프리쉬/ 을유문화사
책을 완독 후 한동안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막스 프리쉬, 그는 많고 많은 사랑 중에 왜 오이디푸스적 사랑을 정면에 내세운 것인가! 자베트의 짧은 생이 주는 여운은 너무도 강렬했다. 일기와 보고서로 그려지는 이 책은 마지막 파국에서 정점을 찍는다. 책의 마지막을 읽은 사람이라면 내 말이 와닿을 것이다. 근친상간 소재를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소외, 정체성의 모순과 인종에 대한 편견 등의 무거운 내용과 함께 담담하게 다룬 스위스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스위스 작가의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소설은 위대했다.
책의 주인공 발터 파버는 엔지니어로 그가 탄 비행기가 용설란과 모래뿐인 타마울리파스라는 곳에 불시착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난 숙명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엔지니어로서 난 개연성의 방정식으로 예측하는 데 익숙하다. 대체 왜 숙명이라는 것인가?』 과연 그의 생각은 끝까지 변하지 않을까? 그의 옆자리 승객이 최근 20년간 소식을 듣지 못한 친구 요하임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소설은 숙명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던 그의 삶에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보여준다. 그 우연은 치명적이고 파극이었다.
한나 란츠베르크, 유대인인 그녀는 한때 발터와 연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한나가 요하임의 아내였다. 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과거에 한나는 발터의 아이를 임신했고 결혼하자는 발터의 청을 거절하고 떠났다. 발터를 거부하는 사연은 한나 입장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이후 두 사람은 헤어졌고 발터는 한나가 아이를 유산시킬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사악한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발터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던 중 배의 선상에서 젊은 아가씨를 만난다. 발터가 '그 애'라고 부르는 그 애. 어쩐지 한나가 떠오르는 소녀였다. 여기서 전혀 상상도 못한 것일까? 젊은 여성만 보면 왠지 한나가 떠오른다는 발터.... 50살 생일날 자베트에게 청혼한다. "나랑 결혼할래?" 결코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파리의 오페라에 함께 한 그 젊은 아가씨와의 그 순간이 발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차후에 발터는 일의 전후 사정을 다 알게 되었고, 다시 그날을 떠올려 보여준다. 소설은 우리에게 비장미를 선사했다. 한나와의 사이에서 여러 가지 형편으로 결국, 낳지 않기로 한 바로 그 아이라는 사실을... 이 쯤에서 독자들은 혼돈과 갈등을 겪는다. 이 비극적인 사랑이 결국 파국을 맞고 말리라는 것을 예상했을까?
20년 만에 재회한 한나, 그것도 자베트가 뱀에 물려서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만난 한나. 두 사람의 기분은 어땠을까? 읽는 내내 두 사람에 몰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 형식의 2장 역시 담담한 문장으로 그려졌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릎을 꿇고 우는 한나의 울음 장면에서 나또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 어쩌리!!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막스 프리쉬는 결론을 가만 보여주기만 할 뿐 끝까지 결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기술과 통계, 신화와 운명 사이에 독자를 내던져 버렸다.이 짙은 잿빛 감정을 빠져나오는 데 한참이 걸릴 것 같다. 책을 닫으며 갈기갈기 찍어진 그들의 가슴을 그러모아 끌어안아주고만 싶었다. 운명을 거부한 자,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갔으나... 지독한 운명이여!
을유문화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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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호모 파버>faber*이고 유네스코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원조’ 업무를 담당하는‘’엔지니어인 주인공 이름 역시 발터 파버faber인 것은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을 호모 파버Homo Faber라 일컬었다.
1957년에 기술문명과 과학에 대한 비판이라니, 현재에서 돌아본 그 시절에 대한 평가에 의아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예민하게 결과적인 문제들을 예견할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하고 작가라면 이상할 것도 없다.
테크놀로지와 근대과학에 기반을 둔 문명에 필연적으로 야기될 환경 문제 역시 1970년에 이미 제기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더구나. 오히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가진 결함을 목격하고 이해하는 후대로 이 책을 이제야 만난 일이 다행이라 여긴다.
주인공의 기능적인faber 면들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묘사처럼 담은 문장들이 도입부터 내내 눈에 띈다. 숫자와 확률이 등장하고, 고립된 개인주의적이고 건조하고 피로하다.
“나를 예민하게 한 건 바로, 정지해 있는 비행기 엔진이 공회전하며 덜덜거리는 진동이었다.” “한 단계씩 가속치를 올리며 굉음을 내는 엔진 때문에 이름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녹색 점멸등마저 짧은 순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면도를 한 뒤 전보다 더 자유롭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며 - 난 면도하지 않은 상태가 정말이지 싫다.”
‘장님’이란 표현이 인상적이다. 신체의 연장으로서 기계를 인지하는 세계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장이다. 발터는 사람이 지겹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도 않다. 시선은 기계에서 발하는 신호에 고정되어 있고 창 밖 풍경 역시 기계 장치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엔진 고장으로 비상 착륙을 할 때까지의 상황을 철저히 기계적으로 보도하듯 전하는 묘사에 살짝 숨이 막혔다.
“난 숙명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엔지니어로서 난 개연성의 방정식으로 예측하는 데 익숙하다. (...) 모든 일이 그리된 게 우연 이상이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 하지만 그렇다고 숙명이란 말인가? 개연성 없는 일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 간주하느라고 신비주의 따위가 필요하지는 않다. 수학이면 충분하다.”
호감이 가는 인물이나 흥미로운 서사에 끌리는 것도 아니지만 멈추기 싫은 기분으로 계속 읽는다. 문장이 짧고 깔끔해서 지치지 않고 한 문단씩 읽어 삼키며 달리는 기분이다.
쉽지 않은 대작이라는 명성을 듣고 읽기 전부터 엄청 긴장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무척 재미있다. 아직 모를 뿐 인과를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은 없다고 믿는 내 취향에 잘 맞는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성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여행 장소들이 갑작스럽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들이 끼어들 때마다 상상이 가능할 정도의 정보가 필요한 나는 일일이 찾아 보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과학과 합리성이 체화된 인물이 그 두 가지 모두가 부재한 신화와 운명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장엄한 공간의 대비가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처럼 격렬한 갈등과 혼란으로 분출되리란 기대가 무척 컸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모든 장소의 의미는 발터의 내면을 상징하는 섬세한 활용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획한 일정에 누구든 무엇이든 느닷없이 끼어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삶에 끼어든 혼란과 과거와 만남에 대해 발터가 느끼는 혼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불편하고 불쾌한 내 일상의 균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딸과 만나게 된다. 당연히 감동과 눈물의 재회는 없다.
스스로를 잘 훈련시켜 정돈되고 오류 없이 살아가려는 발터에게는 그 대가로 결여된 것이 있다. 내게는 결여보단 거래의 결과라 보이지만 인간 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선의를 베푸는 인간이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 벌을 받지 않지만 칭찬도 감사도 받을 수 없다.
시각 기능이 무척 중요하고, 자기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이 무척 중요한 수단인 독자로서의 나는 남성이라는 것을 빼면 발터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인지, 그에 대해 내가 느끼고 구축한 감정은 선명하다. 이해한다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그가 “(...) 모르겠다, 흔들린다, 분노한다, 울었다”라고 할 때에도 새삼스럽게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발터처럼 일에 자부심이 크다거나, 남성성을 찬미하거나, 인간의 기술문명이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한 수단이라 믿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관에 큰 의미와 가치를 두어 다른 문명을 비교하거나 시혜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도 않는다.
다른 독자들은 그를 어떻게 여길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가 지닌 결점으로 인해 경멸할까, 아님 동정할까. 혹은 공감할까.
완독 후 가장 부러워한 것은 그가 50세에 여행을 하며 새로운 출발을 맞이한 것이다. 어느새 틈만 나면 가능한 삶을 잘 정리할 생각을 하는 50세 이전의 독자로서 불쑥 무모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무척 부러운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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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유문화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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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인해 지체된 뒤 공항을 출발했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의 아쉬움을... 그리고 몇 년전 진짜 폭설로 인해 지체된 공항에 앉아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 형식의 첫 번째 정거장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발터 파버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우연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이야기로 자신감 넘치고 어딘지 확신에 차고 단호한 분위기를 풍긴다. 일기 형식의 두 번째 정거장은, 수술을 앞둔,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것들에 대한 혼란함이 담겨있는...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도 여전히 이야기 되어지는 성, 물질주의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여서 첫 문장의 가벼움과는 다르게 무겁게 덮은 책이다. 오랜만에 묵직한 이야기들에 멈춰 생각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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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서평단] 『호모 파버』의 주인공 발터 파버는 유네스코 소속 엔지니어로 개발도상국 개발을 지원한다. 그에게 자연은 이용할 도구일뿐이다. 게다가 첫 번째 챕터(「첫 번째 정거장」) 내내 본인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임신중절에 관해 이야기하던그는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건, 자연을 숭배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며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요 엔지니어"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자연이 만든 것도 아닌 다리를 사용하면" 안 되고, "일관성 있게 행동해야 하니 어떤 수술도 거부해야 한다."(151p)고 말한다.
「첫 번째 정거장」에서 파버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다. 후에 친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엘리자베트와의 만남에서 거듭 강조한다. 엘리자베트에게 추근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당연하겠지, 그는 변태가 아니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버와 엘리자베트는 연인이 됐고 엘리자베트는 죽었다. 물론 파버는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딸인 줄 몰랐다. 하지만 엘리자베트의엄마 이름을 알게 된 파버는 거듭해서 날짜를 계산해본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본인이 이성적인 사람이라고강조하던 파버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 앞에서 수학 결과를 조작한다.
'호모 파버'는 도구적 인간을 가리키는 철학적 개념이다. 엘리자베트의 엄마이자 파버의 전여친인 한나가 파버더러 '호모파버'라고 부른 것처럼, 파버는 '이성적인 나'에 취해있는 사람이다. 예술가를 조롱하고 자연의 가치를 깎아내리지만 내가보기엔 파버가 기술 문명을 숭배하는 사람 같다. 100% 감정만으로 사는 게 불균형하듯이 100% 이성만으로 사는 것도 불균형한 법이다. 작가가 주인공 이름에 도구적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것처럼 주제가 명확한 소설이다.
기술 문명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하자는 주제를 오이디푸스 적으로 풀어낸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는데 정미경 교수의해설이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1957년 작품을 2021년에 읽어서 그런지 그다지 와닿진 않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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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가를 개발하는 유네스코 직원인 파버는 인간이 과학기술로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삶이 통제되지 않자 불안해한다. 그가 죽음을 피해다니는 이유는(자살한 친구를 닮은 사람을 피한다든지 친구가 자살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닥치는 사건은 우연으로 진행된다. 우연은 과학기술의 합리성과 대척된다는 걸 생각한다면 얼마나 흥미로운 진행인가. 그는 죽음을 직면한다. (딸이 죽고, 그도 죽는다.) 죽음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죽음(자연의 일부인)을 통제할 수 없어서 피해 다녔건만 막상 죽음을 맞닥뜨린 뒤에는 기존의 세계관이 바뀌어 버렸다.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니 죽음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현재 삶을 즐기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8월 22일에 방영한다는 SBS 스페셜 예고를 봤다. <엄마를 얼렸어? 냉동인간, 과연 부활할 것인가> 라는 제목의 예고편은 죽고 싶지 않아서 나를 냉동보존을 하겠다는 사람들, 영영 떠나 보내기 싫어서 사랑하는 이를 냉동보존하겠다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었다. 파버는 기술을 신봉했지만 죽음까지 지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설 당시의 기술로는 여기까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는데 만약 파버가 현재의 사람이라면(소설은 195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다...) 소설은 결말이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소설에서 파버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즐기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1에서부터 10까지 밖에 없다면 그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할 것이니 말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선 하찮고, 마음에 들지 않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사건조차도 아름답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1에서 50으로 늘어날 수 있다면 현재를 즐길 것인가. 돈이 있으면 1에서 100까지도 늘릴 수 있다면 현재를 소중히 할 것인가. 사소하고 불만스러운 하루가 아름답게 보일 것인가. 내 삶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데 그까짓 것 새로 고치면 되지. 돈 주고 사면 되는 걸.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소설을 읽고 SBS 스페셜 예고를 보니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한계는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계를 알기 때문에 한계를 넘으려 도전하고, 도전하다가 패배하고, 한계를 알기 때문에 한계 속에서 즐기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실 것이다. 나는 애인을 사랑하지만 애인은 죽거나 (또는 내가 죽거나)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나는 이 골목을 사랑하지만 골목은 재개발될 것이다. 나는 비를 사랑하지만 비는 그칠 것이다. 죽음과 이별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깨달음은 언제나 뒤에 온다. 후회와 한탄을 동반한다. 현재를 즐겨라. 지금 현재를 사랑하라. 라는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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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중에서도 #독일문학 인 이 소설은 큰 줄거리만 이야기하면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다. 비판하고 싶은 주인공의 삶과 생각들을 혼자 억눌러가며 읽는데 정말이지 한 대 두 대, 몇 대는 치고 싶은 그런 감정이 들었다. 그게 바로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일 것 같다. 반성보다는 자기 변명이 더 많았기에 발터가 처해진 상황과 겪게 된 사건들이 너무 끔찍했지만 발터를 위로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그로 인해 구렁텅이에 빠진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전체적으로 자연에 대한 묘사나 허허벌판, 공허함에 대한 묘사가 너무 뛰어나서 그 속에 빠지는 기분이다. 기운 빠지고 지치는 감정이 드는 게... 자연과 운명 앞에 놓여진 그나 나나 한낱 그냥 인간이구나 싶다. 제도가 하나 바뀌고 자리를 잡고 나면 과거엔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싶은데 비행기 흡연 장면이 나와 정말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역시 식당, 술집에서 실내 흡연을 했고 제도적으로 금지한 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배려와 발전은 매우 더디다. 몇 년 전에는 고전소설 위주로만 독서를 했는데 최근은 한국현대소설 위주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좀 더 편안한 문체를 즐겼던 것 같은데, 그 사이 몇 권 소장 중인 을유세계문학전집이 벌써 113이라니 놀라웠다. 오랜만에 조금 연식이 있는 책에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서평단 이벤트에 지원하면서도 조금은 걱정했는데 다행히 책은 술술 읽혔다. 고전이라기엔 57년 작품이니 현대소설로 분류되는 것 같다. 징검다리 삼아 점점 올라가 다시 고전과도 친해질 수 있길! ?? 서평단 이벤트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