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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이 폭발시킨 인간성의 상실과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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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전반부는 몇 달간 이어진 파업으로 한계에 다다른 광부들의 '굶주림'을 처조명합니다. 굶주림은 인간을 서서히 괴물로 만듭니다.항상 온순했던 마외 처를 비롯한 여성들이 앞장서서 군대와 맞서고, 자본가들의 상점을 부수며 기괴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에밀 졸라는 이를 미화하지 않고, 극한 상황에 몰린 집단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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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전반부는 몇 달간 이어진 

파업으로 한계에 다다른 광부들의 '굶주림'을 처조명합니다. 굶주림은 인간을 서서히 괴물로 만듭니다.

항상 온순했던 마외 처를 비롯한 

여성들이 앞장서서 군대와 맞서고, 자본가들의 상점을 부수며 기괴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에밀 졸라는 

이를 미화하지 않고, 극한 상황에 

몰린 집단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날카로운 자연주의적 

시선으로 고발합니다.


노동자들을 이끌던 주인공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폭력의 소용돌이 앞에서 깊은 무력감과 한계를 느낍니다.

특히 말 없는 러시아 출신 아나키스트 수바린이 감행하는 탄광 파괴 

공작은 2권의 가장 압도적인 서스펜스입니다. 인간에 대한 냉소로 가득 찬 수바린의 파괴 행위로 인해, 지하 수백 미터 아래 갱도가 무너져 내리는 재앙이 펼쳐지며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에티엔과 카트린이 무너진 지하 갱도에 갇혀 극한의 공포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눈물겹도록 비장합니다.

결국 파업은 실패로 끝나고 수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봄날 아침 에티엔이 다시 탄광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이 왜 위대한지를 증명합니다. 짓밟힌 대지 아래에서 여전히 울리는 곡괭이 소리는, 언젠가 기어이 얼어붙은 세상을 깨고 나올 노동자들의 연대와 희망의 '싹(제르미날)'을 상징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5 2026.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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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사실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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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2 | 에밀 졸라, 강충권 저가난한 프랑스 탄광마을에서 노동자들에 벌이는 자본과의 투쟁과정을 담은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활, 탄광에서의 힘겨운 작업과정 등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혁명의 단계단계마다 주요한 인물들의 행동방식들이 극적으로 대비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노동자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탄광의 사장과 주주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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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2 | 에밀 졸라, 강충권 저

가난한 프랑스 탄광마을에서 노동자들에 벌이는 자본과의 투쟁과정을 담은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활, 탄광에서의 힘겨운 작업과정 등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혁명의 단계단계마다 주요한 인물들의 행동방식들이 극적으로 대비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노동자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탄광의 사장과 주주같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두 계층이 얼마나 다른 환경,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혁명과정 중에 탄광주인의 딸 세실이 ‘빵을 달라’는 성난 여성주민들에게 고초를 당하고, 결국 탄광에서 폐병을 얻어 퇴직한 본모르 노인에게 목졸려 죽임을 당한다. 가난 앞에 눈이 돌아버린 성난군중와 혁명의 비정함, 제 손을 벗어나 통제되지 않은 군중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선동가의 모습 등이 그려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도시에서 실직하고 프랑스 북부 탄광마을까지 흘러온 에티엔은 아슬아슬한 작업환경에서 일을 시작한다. 탄광마을 사람들은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대를 이어 탄광에서 일하며 가난한 삶을 산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적이며, 남자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배고픔과 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는 마을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섹스 뿐이다. 부부들도 불륜을 쉿쉬하며 용인하는 분위기며, 어린 아이들조차 일찌감치 개방적인 관계를 통해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마을에 있는 가게 주인 메그라는 주민여자들이 빚을 갚지못하면 몸으로 대신 갚게하는 방식으로 사욕을 채운다.

에티엔은 탄광일을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카트린과 썸을 타지만, 탄광노동자 샤발이 이를 질투하며 억지로 카트린을 집에 보내주지 않고 데려와 함께 살게된다. 카트린은 매맞고 살면서도 자신의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때문에 어쩌지 못한다. 어느날 임금이 줄어들어 온 마을이 비탄에 잠기고 그즈음 탄광붕괴사고가 발생하여 한 명이 죽고 카트린의 동생 장랭이 두 다리를 다친다. 결국 파업이 단행되어 노동자들에 직접 사장과 주주를 찾아가 면담하지만, 그들은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에티엔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 주요한 인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기존 노동자대표자 겪에었던 이와 충돌이 생긴다. 급진적인 혁명에 대한 우려와 염려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노동자들을 선동한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주민들은 전면파업을 다짐하지만, 사장의 회유에 넘어간 샤발이 파업 결정을 배신하고 작업을 재개한다. 이에 흥분한 광부들은 광기에 휩싸여 탄광 안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케이블을 끊고 시설을 파괴하는 하며, 뜻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노동자들이 사장의 저택으로 몰려왔다가 에티엔의 중재로 대신 메그라의 상점을 파괴한다. 메그라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그에게 성적 수탈을 당했던 마을의 여자들이 메그라의 시체를 훼손하고 능욕한다.

결국 헌병이 개입하여 사태를 진합하고, 파업을 주도한 사람들이 해고당한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구걸하며 생활이 더 어려워진다. 사업을 유지하려는 탄광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려 시도하다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헌병이 또 다시 대치하며 발포하는 사태가 벌여진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자 마을 사람들은 에티엔을 비난한다. 파업주도자를 찾는 헌병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던 에티엔은 방수벽이 터져 붕괴가 시작된 탄광 안에 카트린과 함께 갇혀있다가 그녀는 죽고 혼자 구조된다.

결국 파업은 끝나고 사고에서 회복된 에티엔은 마을사람들을 만난다. 절대 탄광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갱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에티엔은 마음아파하지만, 카트린의 어머니 라 마외드를 만나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화해의 말을 듣고 힘을 얻는다. 대를 이어 온 그녀의 체념과 다시금 복종하게 만드는 규율 준수하는 물려받은 태도 속에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희망을 품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정말 슬픈 결말이다. 다시금 탄광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어떠했을지, 자식들이 나이가 차서 하루빨리 탄광에 내려가 돈벌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하는 어미의 심정이 어떨지. 너무나 현실적인 결말이라서 더욱 슬픈것 같다.

#제르미날 #에밀졸라 #민음사 #탄광노동자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g****3 2023.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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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ㅣ 에밀 졸라 ㅣ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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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바크는 베일 위험을 무릅쓰고 두 손 가득 한 무더기의 총검을 움켜잡더니, 그 총검 세 개를 흔들어 대며 그것들을 뺏으려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르미날 2 P205   2권은 읽으며 몇 번을 울컥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왜 항상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말은 무시당하는 것일까? 그들도 살아 숨 쉬고, 생각을 할 수 있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한 인간인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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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바크는 베일 위험을 무릅쓰고

두 손 가득 한 무더기의 총검을 움켜잡더니,

그 총검 세 개를 흔들어 대며

그것들을 뺏으려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르미날 2 P205

 

2권은 읽으며 몇 번을 울컥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왜 항상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말은 무시당하는 것일까? 그들도 살아 숨 쉬고, 생각을 할 수 있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한 인간인데. 왜 자신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을 달라고 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글자일 뿐인 책인데도 고개를 돌리게 하거나 두 손으로 눈을 가리게 하는 장면들에서는 분노가 일었다.

 

에밀 졸라는 1884년 북프랑스의 탄광 도시인 앙쟁의 광부들이 파업(1만 2천 명이 참여하여 오십육 일간 총파업) 했을 당시 그곳을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갱내를 돌아보고 광부들, 갱내 감독관들, 기사, 파업 주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파업이 1869년에 라리카마리와 오뱅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던 광부들의 파업 사건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지속되어온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들은 사실대로의 모습을 담아 글을 쓴다.

 

산업 혁명을 거치며 에너지원으로 떠오른 석탄은 여러 곳에 사용되며 중요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캐내는 광부들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까지 여러 명목으로 임금이 깎인다.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P97>외치며 거리로 나온 것은 자신들의 배고픔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배고파 하는 것이 힘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에 눈에 안락한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 엔보나 엔보부인, 그레구아르부부등 부르주아들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리로 나온 파업 광부들과 아내, 딸 등 여자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며 난폭해져간다. 폭력의 끝은 어디로 향할는지, 어디까지 갈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알 수 없어져가고 있다.

 

말없이 오랫동안 꽉 쥐면서

다시 시작할 그날을 약속하는 바로 그 악수였다.

제르미날 2 P351

 

라 마외드는 어떻게 에티엔과 마지막 악수를 할 수 있었을까? 에티엔으로부터 시작된 파업으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 많은 그녀이다. 그런 그녀가 에티엔의 손을 잡고 건넨 마음이 제르미날의 제목의 뚯에 있는 「싹」일까? 책으로 어설프게 배워 잘못 알게 된 지식으로 인한 허영과 자만심들은 실패한 파업을 겪으며 에티엔은 성장했다. 장바르에서 나누었던 악수를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날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성공의 날이었면 한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에밀 졸라가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출간한 20권짜리 이야기이다. 19세기 후반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가계의 이야기이다. 「제르미날」 마지막 장에 첨부되어 있는 「루공 마카르 가계도」를 보았을 때 한참을 보며 주인공인 에티엔 랑티에를 찾았다. 몇 세대에 걸친 이야기 속에 민중, 상인, 부르주아, 상류사회 등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린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분노를 키보드에 퍼부었다. 다다다 쏟아내다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1869년과 1884년의 모습이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광부들의 파업은 여전히 실패한 것인가? 무엇이 19세기,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될 때까지 변화하지 못하게 했을까? 나는, 우리는 지금 제르미날 속 인물들 중 누구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일까?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언제 읽던 살면서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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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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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투데이지원도서   [완독서평]   1884년 앙쟁 탄광 오십육 일간의 총파업으로 '제르미날'이 남았고, 2022년 화물연대 십오 일간의 총파업은 무엇을 남겼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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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투데이지원도서

 

[완독서평]

 

1884년 앙쟁 탄광 오십육 일간의 총파업으로 '제르미날'이 남았고, 2022년 화물연대 십오 일간의 총파업은 무엇을 남겼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 법률이 정하는 주요 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노동3권은

 

① 단결권 :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하여 근로자들이 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

 

② 단체교섭권 : 근로자들이 노동단체를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사용자와 자주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권리

 

③ 단체행동권 : 근로자가 작업환경의 유지, 개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시위 행동을 함으로써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파업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지만 한국은 항상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더 많다. 왜 파업을 하는 원인을 보도하지 않고, 불편함만을 보도하는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업 자체를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파업이 끝난 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생긴 손해배상과 업무방해죄로 기업과 기나긴 소송과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 50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젊은 기계공이었던 에티엔 랑티에가 실업자로 지내다가 광부가 되면서 보여주는 탄광촌의 척박한 삶과 부르주아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의 극명한 대비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다.

 

 

비참하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 노동자의 투쟁, 자본의 노예가 된 민중, 궁지에 몰린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는 그냥 막장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파업을 일으키지만 자본은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 군대의 힘을 빌린다.

 

 

무력에 쓰러지고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빵을 얹기 위해서 갱도 속으로 내려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노동자들의 굶주림은 해결되지 않았다. 죽도록 일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날이 계속된다. 겨우 11살짜리 장랭도 갱도에 들어가야 했고 매몰되고 겨우 구해내지만 다리가 부러진다. 아이들까지 막장으로 몰리게 되지만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탐욕을 살 찌우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버린다.

 

 

<목로주점>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민낯을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에밀 졸라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자신의 발로 탄광에 찾아갔고, 수많은 탄광 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직접 막장에 내려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탄광에 대해 그가 묘사하는 부분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충분히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행동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서 부르주아들의 행동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진 자는 절대로 노동자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 빵 한 조각을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의 피의 대가로 자본주의는 굴러가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제르미날 #에밀졸라 #민음사 #세계문학 #루공마카르총서

g*****a 2022.1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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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 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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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민음사 세계문학으로 만나는 <제르미날>입니다. 최근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해 임금 협상에 나섰던 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내용들이라 더욱 안타까웠던 <제르미날>이네요. 그 언젠가 물 대포를 맞아 사망한 농민도 떠오르고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여 시위를 하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적은 금액에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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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민음사 세계문학으로 만나는 <제르미날>입니다. 최근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해 임금 협상에 나섰던 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내용들이라 더욱 안타까웠던 <제르미날>이네요. 그 언젠가 물 대포를 맞아 사망한 농민도 떠오르고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여 시위를 하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적은 금액에 최대의 노동력을 제공받길 원하는 최고관리자와 되도록이면 일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이 받길 원하는 근로자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긴 할까요.

 

기계공으로 일했던 에티엔이 마외가 일하는 탄광에 팀으로 들어가고 저임금으로 노동력만 착취하려는 탄광 사업주들에게 맞서 사회주의적 의식이 깨어난 에티엔은 사람들을 설득하며 파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쉬울까요? 너무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당장 먹을 것, 당장 손에 들어올 적은 액수라도 돈이 필요한 탄광 노동자들이 파업을 강행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배우지 못해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운 건 문란한 성이었습니다. 술, 문란한 성..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제한적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배움의 장에서 올바른 것을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어린 자녀들이 어린 신부를 두고 폭군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안타깝기만 하네요. 썸 타는 것 같던 에티엔과 카트린 사이도 너무 안타까웠어요. 서로 마음은 있었지만 카트린은 샤발에게 몸과 마음을 주었고, 심지어 가족을 두고 샤발을 따라 작업장도 옮기고 집을 나가기까지 합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손에 넣은 카트린을 너무 막 대하는 샤발은 뒤통수를 한대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에티엔이 지도자로 나서며 파업을 이끌어가니 샤발도 따라 하려다 사장에게 매수당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카트린에게 욕지기를 퍼붓고 게으름뱅이라 타박하더니 탄광에 갇히게 된 순간까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혀를 찰 정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파업은 실패했지만 파업을 통해 함께했던 탄광 노동자들의 눈은 뜨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에밀 졸라는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탄광촌과 탄광회사들을 방문해 그가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을 상세히 기록해 <제르미날>의 기초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제르미날>을 읽으면서 왜 노동자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광부는 땅속에서 깨어나고 진짜 씨앗처럼 땅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들판 한가운데에서 그 씨앗이 싹터 오르는 걸 보게 될 겁니다. 그래요. 그 씨앗은 사람들을, 정의를 회복할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밀어 올릴 겁니다" 빈궁함, 고된 작업, 짐승 같은 생활, 집에서는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내와 아이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에 씨앗 같은 희망이 파릇파릇 돋아나길 기대해 봅니다.

 

 

 

 

 

 

a*******7 2022.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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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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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화물연대는 안정운영제 영구화, 적용 차종 품목 확대도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으며 이들은 12월 9일 파업 16일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가 권리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르미날 >1은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이 에티엔 랑티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파업이 절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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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화물연대는 안정운영제 영구화, 적용 차종 품목 확대도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으며 이들은 12월 9일 파업 16일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가 권리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르미날 >1은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이 에티엔 랑티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파업이 절정에 이르며 끝이 났다. <제르미날 >2는 부자의 삶으로 서문이 열리는데 가난한 노동자의 삶과는 매우 대조된다. 노동자들은 실낱 희망을 가지고 파업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제르미날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본성을 등장인물을 통해 그려내었다. 주인공 에티엔과 대치를 하고 있는 샤발은 파업을 고집하면 에티엔의 보좌관밖에 안될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는 야망으로 인해 속임수를 쓰게 되고, 이것이 발각되면서 시위대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되고, 앙갚음을 하기 위해 현병들에게 시위대 위치를 알려준다.

 

 

혁명을 주도했던 에티엔은 동료들이 그 누구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 하지만 샤발로 인해 내재되어 있던 악의 본성이 살아난다. 두 달간 파업이 강행되자 온순했던 몽수 광부들은 분노와 굶주림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간다. 투석기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 리디는 실수로 군중 속에 있는 어느 여자의 머리통에 금이 가게 하였으며 그 모습을 본 두 사내아이는 배꼽을 잡을 뿐이다. 상점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이는 걸 넘어서 신체를 훼손한다. 현병들이 오면서 에티엔은 땅속으로 은신하게 된다. 몽수의 파업으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 구조 시스템 하나씩 붕괴되어 가고, 에티엔은 이렇게 계속 무너져 가는 것을 보게 되자 희망이 되살아났지만, 쉽사리 무너뜨리기에는 회사가 너무 튼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 르 보뢰의 모든 입구가 방금 전에 폐쇄되었다. 그리고 예순 명의 군인들이 총을 발 옆에 세워 잡고는 바리게이트가 없는 유일한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P197) 에티엔은 세 번에 걸쳐 군인들을 향해 설득하였지만 수갱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광부 시위대들은 군인들을 향해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고 벽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요청한 지원군이 오지 않고, 병사들이 부상을 입자 사격을 명한다. 그로 인해 부상과 사망자들이 발생한다. 군대가 물러간 후 에티엔은 동료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어 돌을 맞는다.

 

 

회사는 파업에 참가한 광부들을 용서하며 받아주겠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들은 다시 수갱으로 들어간다. 그러던 중 르 뵈르가 붕괴가 되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몇 명의 광부들은 매몰되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을 어떻게 되었을까? 제르미날 2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배고픔과 처우개선을 위해 파업을 감행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게 되자 더 나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은 선과 악을 추구하는데 에밀 졸라는 신랄하게 인간의 양면성을 그린다.

 

고전이지만 2022년에 읽어도 낯설지 않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도 불안정한 고용구조, 열악한 노동현실, 하도급 갑질 등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저항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사회를 안주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l*******5 2022.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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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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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권에 이어 2권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의미를 떠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까지 재미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당연히 노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에밀 졸라의 멋진 서술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지극한 연민과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노동의 처절함 끊임없이 노동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특히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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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권에 이어 2권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의미를 떠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까지 재미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당연히 노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에밀 졸라의 멋진 서술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지극한 연민과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노동의 처절함

끊임없이 노동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특히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에 대해서 생각했다. 필수적으로 시간을 앗아가고 몸을 혹사시키고 배고픔을 주는 게 노동인 걸까? 한편, 노동을 하지 않는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들은, 도대체 노동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일하고도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돈을 받는 탄광촌 사람들과 가만히 앉아서 대주주로 배당금과 각종 명목의 수익으로 돈이 생기는 사람들의 삶에는 공통점도 공감도 있을 수 없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권 마지막에서의 사건으로 활시위가 당겨져 날아가듯 혁명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며 일어날 줄 알았는데, 혁명은 더디게만 일어났다. 파업 정도는 탄광회사도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알아서 며칠은 하기를 바란다는 것도 놀라웠다. 모든 것은 계산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하지 않으면 온 가족이 먹고 살 수 없기에 필수적으로 최소한의 할당량을 채워야만 했다. 제대로 뒤엎을 혁명은 가혹한 현실의 이면에, 철저한 노동의 착취 속에 갇혀있었다.

 

생생하고 균형 잡힌 서술

처절한 상황을 서술하기에, 격분하며 전개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소 격앙된 부분도 있지만 시종일관 결코 흥분하지 않는 에밀 졸라의 서술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리얼리즘의 절정이며, 읽는 독자들을 쉼 없이 대신 흥분하게 했다. 장황하지 않아서 더욱 생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광 속에서 말이 폭주하는 장면이나 심지어 정신착란의 혼미한 상태에 대한 서술도 믿을 수 없게 담백한데, 효과적으로 행간에서 불꽃 튀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듯했다.

지극한 연민, 깊은 슬픔

균형 잡힌 서술을 가능하게 한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에 불씨를 당기기 위한 작품이었다면 부르주아를 몰아붙이고 노동자들을 선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르주아의 삶에서도 일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노동자의 삶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에 대한 스토리의 비중이 적지 않은 점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느끼며, 소설 속 상황에 더욱 깊고 지극한 연민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이들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에서는 이들에게 허락될 수 있는 일말의 성취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희망을 이야기하며, 찬란히 빛나는 4월의 제르미날을 말하며 끝나지만,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너무나 뜨거웠던 책, 나에게는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책이다.

 

y****1 2022.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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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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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2』 에밀 졸라(저자) 민음사(출판)   제르미날 1권에 이어 2권의 책장을 펼쳤다.1권은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프랑스 몽수의 탄광촌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2권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전개가 급속도로 빠르게 나타난다. 탄광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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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2』

에밀 졸라(저자) 민음사(출판)

 

제르미날 1권에 이어 2권의 책장을 펼쳤다.1권은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프랑스 몽수의 탄광촌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2권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전개가 급속도로 빠르게 나타난다. 탄광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대를 이어 탄광 일을 하게 되고 근무환경 또한 열악했지만 그런대로 그들은 살아간다.

 

주인공 에티엔이 임금 삭감으로 인해 파업을 주동하며 노동자들의 마음에 불씨를 피웠고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파업이 정의와 평등사회에 일원할 것 같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의 파업은 그 당시 참으로 위험한 수단이었음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뻔한 결과에 맞서 외치는 그들의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건만 무리였던 것일까? 파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감 말이다.

 

노동자들은 왜 더욱더 철저하게 계획하지 못했던 것일까? 빵을 달라며 절규하는 노동자들을 아마도 난 제르미날을 다 읽은 후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 것 같다. 많은 독재 정치로부터 일어나는 사건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노동자들의 외침 속에 엔어보 사장은 자신이라고 행복하냐는 자신의 내적 물음 속에 확답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이들 노동자들에겐 그저 꿈이었을까? 결국 죽음만이 그들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에도 현대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권력이 있어도 돈이 풍족해도 늘 자신들의 욕망을 찾기 바쁜 인간들의 삶은 어쩌면 자신들의 처지를 낙관하고 받아들이며 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 비할 것이 못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결핍이 분노를 낳고 폭력사태에 이르는 것을 지금 또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 에밀 졸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희망의 빛을 남긴다. 그것은 곧 앞으로 나아갈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며 인간애이자 광부들에 대한 계급의식이 싹 틔우고 있다는 것이다. 졸라의 시적 언어와 플롯으로 작품의 깊이를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은 노동과 자본 간의 투쟁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 성적 욕망과 억압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과 계급이 나뉘어버린 그들의 성생활과 부부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직접 탄광에 들어가 광부들과 생활했기에 프랑스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했던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주었기에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작품이다.

 

 

m*****4 2022.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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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면 현재 우리의 삶 모습과 거의 비슷하여 사람의 삶은 세월이 흘러도 똑같구나 싶을 때가 있다. <제르미날>을 읽고 있는 지금 광부들이 파업 이야기가 화물연대 파업의 소식과 맞물리고 있어 더욱더 위와 같은 생각을 느끼고 있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도 광부들의 파업 이야기를 보았었다. 광부들의 파업을 다루고 있는 책이 남아있다는 것과 참으로 시의적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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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면 현재 우리의 삶 모습과 거의 비슷하여 사람의 삶은 세월이 흘러도 똑같구나 싶을 때가 있다. <제르미날>을 읽고 있는 지금 광부들이 파업 이야기가 화물연대 파업의 소식과 맞물리고 있어 더욱더 위와 같은 생각을 느끼고 있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도 광부들의 파업 이야기를 보았었다. 광부들의 파업을 다루고 있는 책이 남아있다는 것과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을 만나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1권에서 에티엔은 부조리에 항거를 하기로 결심하고 동지 광부인들과 함께 파업을 하고 그 이야기를 잇고 있다. 광부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회사가 임금을 삭감하여 더 궁핍하게 몰아가자 파업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대동단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몇몇 광부인들은 파업하는 동지들을 저버리고 탄광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이에, 에티엔과 그의 뜻을 함께하는 광부들은 살벌하게 배신자들을 몰아가고 위협한다.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받은 광부들의 기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듯이 맹렬한 기세이다. 책을 읽으면서 광부들 내부에서도 단압을 이루지 못하는데 과연 이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세상은 종의 아름다움과 생존을 위하여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투쟁의 장에 불과한 것인가?"

부르주아에 비해 광부들은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광부들이었으나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합의가 되지 않았고 오합지졸과 같았다.

이들이 부자들에게 고함을 쳐도 소용없다. 강자들은 자신들에게 반발한 약자들을 강력하게 짓밟고자 하는 듯하다.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군인들의 무력 진압이었다. "사격 개시"라는 말과 함께 군인들은 광부들에게 무기로 제압한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최소한의 보장을 해달라는 생계를 위한 싸움이었는데 그것조차도 허용을 해 줄 수가 없는 것일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일까 싶기도 하고 사회는 너무나도 악한 곳이었다.

에밀 졸라가 고심 끝에 착안한 '제르미날'이라는 말은 '싹이 나는 달'이라는 뜻이다. 졸라가 의도적으로 차용한 이 말은 노동과 혁명에 대한 작품 전체의 취지를 요약하는 메타포로 간주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고 있다.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을 통해서 유럽 전체에 해당하는 탄광 노동 여건의 문제를 고발하고자 했다. 부당한 계약, 임금 체계, 수당 삭감, 열악하고 위험한 갱도와 막장 현장, 사고 보상 체계의 미비 등 이는 유럽 탄광 지역의 공통된 문제였다고 한다. 에밀 졸라는 이 작품을 통해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라고 한다.

역시 지성인 에밀 졸라 다운 것 같다. 소신 있게 자신의 능력을 토대로 사회, 정치적 문제에 정면돌파한다. 현재에 읽어도 깊은 이해와 공감, 감명을 주는 책 <에밀 졸라>이다. 더욱더 에밀 졸라의 팬이 되었다.

 

 

k******1 2022.1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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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에밀 졸라 | 강충권 옮김 | 민음사 요즘 내가 기다리는 요일이 있다. 바로 금, 토, 일이다. 새삼스럽게 휴일을 왜 기다리는지 ㅎㅎ 하지만 다름 아니라 그날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방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시청률 20퍼센트로 향해간다는 그 드라마...[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나름 현실과 비교가 되고, 이미 시 시절을 지내온 사람으로 어떻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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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에밀 졸라 | 강충권 옮김 | 민음사

요즘 내가 기다리는 요일이 있다. 바로 금, 토, 일이다. 새삼스럽게 휴일을 왜 기다리는지 ㅎㅎ 하지만 다름 아니라 그날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방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시청률 20퍼센트로 향해간다는 그 드라마...[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나름 현실과 비교가 되고, 이미 시 시절을 지내온 사람으로 어떻게 그려지고, 주인공이 의지를 가지고 앞날을 통쾌하게 헤치고 가는지 나름 공감하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그 드라마에 달린 댓글을 보면 좀 가관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국밥집 좌파 아들로 바꿔야 한다는 댓글도 있고, 땀 흘려서 일한 돈을 왜 자식에게 물려주면 안되는 거냐?라는 댓글까지... 대한민국은 미묘하게 갈라져 있는 듯하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댓글은 바로 그 균열이 큰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말이다.

왜 노동자는 주인이 되지 못하는가? 왜 꼭 재벌이 나오고, 검사가 나와야지만 먹히는 소재가 되는가? 이 드라마는 노동자도 나오고, 재벌도 나오고, 검사도 나오고, 더군다나 주인공 막내아들은 재벌의 옷을 입고 태어났지만 그 태생의 뿌리를 잊지 않는 소위 말하는 좌파적인 캐릭터이다. 이 책 역시 노동자가 주인공인 탄광촌의 현실을 다루었다. 아마 책 그대로의 내용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면 잘 안됐을 것도 같다. 노동자와 자본가만 있으니 말이다. 재벌, 법조인, 출생의 비밀... 뭐, 그런 양념을 좀 더 추가한다면 모를까 싶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으로 연일 뉴스가 시끄럽다. 소위 정부는 화물연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업무 개시명령을 시행함으로 그들의 요구에 협상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맞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파업에의 강경 대응으로 인하여 정부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타협할 꺼리조차 되지 않는 것인가? 안전 운임제란 화물 차주에 대한 적절한 운임 보상으로 과속, 과로,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 취지의 선량함은 충분히 와닿는다. 안전 운임제의 유효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각종 규제나 효력이 일정 시간이 되면 사라지는 것이 일몰제인데, 바로 그 안전 운임제의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 화물연대 파업의 이유이다. 왜 이렇게까지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안전 운임제에 대해 효과를 보고 실효를 거뒀으면서도 굳이 이것을 폐지하겠다는 속셈은 뭐, 뻔히 보인다.

제르미날에서 나오는 자본가들의 속셈... 4부 7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부르주아 자본은 어딘가 신비로운 장막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이 아사지경인 사람들의 생명을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동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아무리 먹어도 계속 배고파하는 미노타우로스... 결국 욕망은 먹을수록 더 배 고픈 법이란 말인가? 현실의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는 과연 누구일까? 고전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 이치를 발견하는 것은 참 통쾌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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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2022.1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