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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온더무브』가 마지막인 줄 알았었다, 『고맙습니다』가 정말 마지막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에세이집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와 관련한 시간 감각으로 보자면 꽤 오래 기다렸다. 그렇게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달으며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올리버 색스니까.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평소와 다름 없이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것들, 알고 싶은 것들, 생각한 것들을 글로 쓰고, 전달하고 싶어 했다. “글쓰기는 나의 즐거움이었으며, 만약
그게 없었더라면 색전술 이후의 나날들을 견디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173쪽) 그래서 『의식의 강』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없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는 것은 이 책 바깥의 이야기로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이 그가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책이라는 언급도 전혀 없다. 마지막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생각하고, 찾아보고, 그리고 썼다. 두어 꼭지의 글을 읽고는 책 읽는 자세를 달리 했다. 그의 마지막 책이니까 읽는 게 아니라 그저 그의 책이니까,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읽는다. 올리버 색스는 다윈과 진화에 관해서 썼다. 다윈의 식물학자의 면모를 썼고, 다윈이 마지막으로 연구한 지렁이에서
시작해서 식물과 하등동물의 지각력에 대해서 썼다. 그는 또 프로이트에 대해서 썼다. 많이 알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태두로서의 프로이트가 아닌, 신경학자로서의
프로이트다. 그리고 기억의 오류에 대해서 썼고, 남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 자신에 대해서 썼다. 모방과 창조의 관련성에 대해서 썼고, 의식이 분절된 것인지, 연속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썼다. 그리고 중요한 발견이 잊혀지고 무시되는 과학사에 대해서도 썼다. 모두
궁금한 이야기들이고, 흥미 있는 이야기들이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들은 압축적이다. 중언부언이 없고, 그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분명하다. 사고의 명료함 때문이고, 그
내용들을 오랫동안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미 그가 낸 책들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용하지만 그와 같은
내용들이 아니다. 그 후의 과학적 발견을 따라가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그저 죽음을 앞둔 베스트셀러 신경학자의 회고담이 아니다. 호기심에 가득찬 노(老) 신경학자의 담담하고도 열정적인 탐구다. 그가 낸 거의 대부분의 책들은 아프거나, 무언가 모자라거나, 사회가 어떤 편견을 갖거나 한 사람들에 대한
책이었다(물론 음악이나 고사리 채집에 관한 책은 예외). 그
임상보고서와 같은 책들에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것은 그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었고, 그의
집요함 때문이었다. 단순한 임상보고서가 아니라 그의 시선에서, 환자의
시선에서 그 병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그의 긍정적인 태도와 명료한 ‘글’ 때문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렇겠는가. 올리버 색스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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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읽고 반했던 터라, 책 소개를 슬쩍 읽고 뒤표지 문구를 보고 난 후, 나는 『의식의 강』이 어느 정도 읽기 편안한 문학 분야 수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이런 책은 그의 『고맙습니다』에 가깝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속았네, 속았어!’ 하는 마음이었다. 본격적인 과학책이라 바탕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 윽!’ 하는 마음이 자주 찾아왔기 때문. - 색스가 죽기 2주 전, 직접 선별한 원고라는 점은 지나치게 드라마틱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여기서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인물이 다윈과 프로이트라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아주 오랫동안 열렬히 흠모하며 그들이 쓴 책을 읽고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증언까지 꼼꼼히 찾아보며 생각을 다듬고, 이를 지지대 삼아 자기 영역에서 세심히 관찰하고 탐구하고 세상과 관계 맺고 실제로 아프며 글을 쓴 셈이니까.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좋아하는 대상이었다니,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게다가 대상의 부족한 면, 예컨대 「잘못 듣기」에서 프로이트의 설명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으나 단점도 있음을 인식한다는 점, 즉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점까지 매력적이었다. 영향받았고 빠져든 대상이지만 단점도 있음을 얘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의 글쓰기 방식 역시 찬탄을 불러일으킬 만했는데, 이를테면 유년 시절 기억을 끌어와 서술한 뒤 어떻게 미끈하게 본론으로 진행해나가는지를 지켜볼 때면 ‘이렇게나 글을 잘 쓰다니!’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했으며 마치 ‘자, 이쯤에서 웃겨볼까?’ 하는 듯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능수능란함까지 갖추었다. 신기한 현상은, 과학적 진리에 관해 투명하게 쓴 문장임에도 이상하게 어느 곳에서는 심지어 아름답다고까지 느낀 것이다. 왜였을까. - 한편,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금 요즘 내가 천착하고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나 자신에 관해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밑줄 그었던 곳, 여러 메모를 휘갈겨둔 곳이 ‘다름’ ‘개별성’ ‘기억’ ‘의식’ ‘지각’ 등과 관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위 부분은 다윈이 종에 관한 문제를 정리할 때 강조한 세 가지 사항을 언급하며 색스가 한 다음 말과도 잇닿아 있다. “모든 종들은 독특하며 개체들도 역시 독특하다 (…) 모든 생물은 각자 나름의 생물학적 의미를 갖는다.”(37쪽) 다르다는 것, 각자 고유하다는 것, 그래서 유의미하다는 것을 다시 새겼으며, 색스가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 관점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다르다, 독특하다, 개별적이다, 역동적이다, 변화하다……. 이는 그가 7번가 카페에 앉아 「의식의 강」을 쓸 때, 자신의 지각에 관해 서술한 다음 문단까지 연결되었다.
- “그의 지적 에너지와 창의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고, 다양한 관심사를 추구하는 습관도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32쪽)라는 서술은 그가 다윈을 두고 쓴 말이지만, 독자인 내게는 그 자신에 대한 설명처럼 다가왔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의식의 강』에 대한 기억을 되새긴다면 내적 ‘서사적 진실’에 따라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할 것 같다. 어느 부분은 따라가기 벅찼고, 어느 부분은 완전한 오독이었을지라도 좋았다고. 색스 선생님의 말마따나 중대한 착오는 비교적 드물다고 하니, 이 기분 좋음은 계속 남아 있,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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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책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올리버 색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생각이 그러할 것이다. 올리버색스의 마지막 에세이라는 광고문구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광고로 접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책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약간 자괴감이 들었다. 평소 책에 관심이 많은데.. 많은 척 하는 걸지도.... 정작 이렇게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에세이를 몰라봤단 말인가.. 다양한 주제에 대하 짤막한 에세이로 저자의 의견을 전달해 주는데.. 저자가 신경학자여서 그런지. "이런 주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구나" 하는 감탄마저 느낄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이 책은 제목처럼.. 썪은 물처럼 고여있던 나의 의식을 강물처럼 흘러갈 수 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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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렇게 재밌을수가! * 벌은 파란색과 노란색 꽃에 이끌리지만 빨간색 꽃은 무시하는데, 그 이유는 적색맹이기 때문이다. 한편, 꽃들은 자외선을 꿀벌 안내 표시로 사용하는데, 이는 벌이 보라색보다 파장이 짧은 빛을 인식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나비는 빨간색을 잘 감지하기 때문에, 빨간 꽃의 꽃가루를 운반하지만 파란 꽃이나 파란색 꽃은 무시할 수 있다. 야행성 나방에게 꽃가루 배달을 맡기는 꽃들은 색상이 다양하지 못한 대신에 향기를 풍겨 나방을 유혹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파리에 의존하는 꽃들은 썩은 고기의 악취를 흉내 내기도 한다. * 애인이 재밌다고 할 때는 또 어렵겠구나 속으로 좌절을 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글이라니 애인 정말 좋다.. 내 책인생을 구원해러 온 나의 길잡이,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 여러분 저는 애인이랑 책도 같이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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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책이다 올리버 색스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모든 지식에 출처가 표시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우리는 종종 엄청난 양의 부적절한 정보에 압도당할 것이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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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은 2015년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책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방면에 걸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꼈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구입 후 오래도록 묵힌 탓에 종이가 누렇게 바란 상태였다. 여전히 신작 출시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은데 이리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한 개인의 업적을 특정 단어안에 가두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그의 대표작을 떠올리며 그 이상은 나아가질 않곤 한다.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는 사고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지로부터 비롯됐지 싶다. 나에게는 물론이거나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찰스 다윈은 진화론의 아버지 즈음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름도 낯선 갈라파고스 제도는 살면서 한 번 즈음은 꼭 방문하고픈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류와의 교류가 극히 드문 그곳에는 이제껏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것과는 전혀 상이한 생명체들이 가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윈이 주목한 건 인류가 어떠한 과정을 걸쳐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동물이었다. 어디서도 다윈이 오로지 동물만을 연구했다고 하진 않았으나 난 내 멋대로 그리 사고했고 믿어버렸다. 올리버 색스는 다윈이 실은 식물에도 조예가 깊었단 사실을 언급했다. 대개의 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데, 그 전까지 학자들은 자가수분의 방법에 식물이 의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다윈은 특유의 치밀한 관찰력을 발휘한 끝에 이에 반하는 근거를 발견했다. 종의 다양성은 식물에게도 중요했다. 진화는 결코 동물에게만 국한된 기이한 현상이 아니었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던 면모를 엿봤다. 한 때 그가 심취했던 건 신경학이었다. 괴혈병과 관련된 뇌출혈로 사망한 소년, 급성 다발성신경염에 걸린 열여덟 살짜리 제빵공 도제, 척수공동증이라는 희귀 척수질환에 걸린 서른 살짜리 남성 등이 프로이트의 관심사였다. 그는 장마르탱 샤르코와 한때 입장을 같이 했다. 샤르코와 마찬가지로 히스테리를 신경학적,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들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샤르코를 뛰어넘어 정신의학의 새 장을 열었다. 당시 지배적이던 사고의 틀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그건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사람들은 믿길 희망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이에 반하는 증거가 널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류가 행하곤 하는 오류다. 어떤 이유에선지 인류는 오류를 생성하고 이를 진리라고 철썩 같이 믿기까지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상대의 언어를 잘못 알아들어 벌어진 헤프닝을 다룬 부분이었다. 만일 나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졌더라면 아마도 난 나이가 들어 청력이 떨어진 탓이라며 풀이 죽고야 말았을 테지만, 올리버 색스는 학자답게 자신이 어느 순간 무엇을 잘못 알아들었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마치 글을 검수하면서 끝끝내 틀린 단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도 흡사했다. 아예 얼토당토 않는 단어가 잘못 들어간 경우에는 손쉽게 어느 부분이 틀렸는가를 인지할 수 있었던데 반해, 현실에 존재하고 모두가 사용하는, 그러나 엄연히 틀린 단어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뿐만 아니라 표기는 틀리게 돼 있음에도 나는 이를 옳은 단어로 인지하고 읽기까지 했다. 잘못 듣기가 환청이 아니듯 잘못 읽기 또한 환시는 아니다. 어쩌면 이 또한 세상이 순식간에 일그러드는 걸 방지하기 위한 나라는 존재의 독특한 항상성 유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인간은 오묘한 존재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경도될 경우, 특정인의 행동은 오로지 병리적으로만 비춰진다. 그러나 남들보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행동하는 이들에게도 손상되지 아니 한 의식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재구성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개개인의 노력이 일궈낸 위대한 역작이다. 이런 경이로운 세상을 떠나는 올리버 색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의 저서 중 처음으로 접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생각이 난다. 제목만을 보고 기이한 소설 정도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던 나에게 올리버 색스는 신세계를 선보였다. 오늘 따라 이 대학자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시간이 날 적마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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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있는 신경학자 올리브 색스 박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일어 구매했던 책입니다 이분의 저술은 이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만 읽어보았는데, 어째서인가 프랑스 풍자 소설;;;로 생각하고 몇년을 아무 관심없이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기회에 접하고 자주 다시 읽어보기 위해 구입했던 기억이 있네요 전문적인 지식을 실제 예를 들어 문외한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풍부한 설명과 함께 이야기해주는 책이였습니다 이 책에 실린 열편의 에세이 중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였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기억의 오류들은 살아가면서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고 역사가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여서 스스로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
| 중X선데이에서 정X승 교수가 여름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해서 구매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의식하는지를 이 저자는 자신이 실면서 쌓이온 지식들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문과인 나에게는 도전하기 약간 벅찬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었지만 주석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줘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지 꽤 돼서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다 읽었을 때 과학자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저런 신기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느낌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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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제목이 올리버 색스 글에 대한 동기 부여였다. 신경의학자의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고자하는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 군상의 다양성과 행동 양상등을 세심히 관찰하고 선례와 연구들을 탐구하며 그들의 파악하고 이해하며 치료하고자 노력한 기록이었다. 소설보다 허구적인 그러나 설득력있는 실제 이야기들 속에서 더 큰 감동을 만나고 세상을 더 넓고 인간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올리버 색스... 그가 마지막 시한부 인생에서 다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글을 남겼다. 의식의 강....강물이 흘러가듯 또 멈추지 않고 그렇게 흘러가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와 우주에서 나를 빼면 현실이 보인다고 또 읽으라고, 느끼라고, 생각하라고 그러면 다가올 것이라고 올리버 색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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