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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라는 낯선 지명을 처음 들은 날이 기억난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엄마랑 강원도 철원으로 배치된 남동생 면회를 갔다 서울(수유리)로 오는 버스에서 만난 병장이 말을 시킨다. 직장인이냐, 누구 면회 왔느냐 뭐 그런...
'먹고 대학생'이라는 내 신분을 밝히니 그 병장은 제법 밥 먹고 살던 보성 벌교에서 빚보증을 잘 못 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가 빚잔치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을 못 간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수유리에서 내려 헤어지는데 병장은 껌 하나를 주면서 안쪽에 집전화번호를 적어놨으니 연락주면 좋겠다 했다. 보성이나 벌교라는 단어를 들을때면 그 병장이 생각난다.
이 핸디북은 조정래 선생의 '정글만리 3'과 합쳐 3만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샀다. 우리나라 책은 지나치게 종이가 좋아 무겁고 그래서 비싸고.. 핸디북은 옛날 '삼중당문고'판 책과 같이 가볍고 가격도 싸다. ---------------------------------------------------------------- 얼마 전 대학시절 친구들을 만났는데 '태백산맥'을 들고 다니는 나를 본 한 친구가 '철 지난 책'을 이제야 읽느냐 묻는다. '태백산맥'은 88학번인 내가 대학교때 이슈가 되었던 책인데 그 시절에 읽지 못한 것은 정부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낯선 전라도 사투리가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제목이 '태백산맥'인데 무대의 배경은 벌교를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와 뒤의 빨치산활동이 본격화된 이후는 지리산이다.
서울 수서가 고향인 친정엄마를 비롯한 어린시절 샘말분들은 전라도 사람을 싫어했다. 경기도 양평과 전라도는 지리적으로 멀어 왕래가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라도 사람은 속과 겉이 다르다고 하면서.
내가 대학에 입학한 88년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 - 소위 '광주사태'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때였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잠깐 맞이한 민주화를 군화발로 짓밟은 전두환이 올림픽으로 그 기억을 덮어버리려 애를 썼지만. 소위 '운동권'에 전라도 출신들이 많았다.
왜 하필 전라도일까? 이 책에서 조정래 선생은 경기도 수원 출신 군인의 시선으로, 겉으로 친절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전라도 사람과 투박하지만 겉과 속이 일치하는 강원도 사람을 비교하면서, 풍족한 농토속에서 뼈빠지게 농사지어 그대로 수탈당한 전라도 사람이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기에 그런 성격을 갖을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지만 우리는 일제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해방공간에서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미군정과 초대대통령 이승만에 의하여 친일했던 경찰과 관동군이 해방 이후 경찰과 군인의 주축이 된 것이 한국현대사 비극의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민족도 타인의 인격과 생명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희생될 수 있다는 염치없는 그 세력이 권력을 등에 엎게 된 것이 오늘 날 세월호와 땅콩회황으로 대표되는 갑질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이에 반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죽거나 다쳤다. 농민운동을 했던 내 과동기 김동희는 경찰조사후에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나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결론 내렸다지.
"생각 똑바라지게 묵은 젊은 사람덜언 다 죽어뿔고 인자 나 겉은 쭉찡이에, 지 욕심 채리는 것덜만 남었구만... 쓸 만헌 사람덜 요리 한바탕씩 쓸어불고 나먼, 그만헌 사람덜이 새로 채와지자면 또 을매나 긴 세월이 흘러야 허는겨? 갑오년 그 쌈에서 3.1 만세까지가 시물다섯 해고, 3.1만세에서 해방꺼지가 또 시물여섯 해 아니라고."
영화 '태백산맥'을 보지 않았으나 2~3시간짜리 영화로 이 방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태백산맥은 10년짜리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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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산맥은 지금까지 읽은 천여권의 책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대학생 때, 답사로 태백산맥 문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문학관에 이 책을 꼭 읽겠다는 다짐을 붙이고 나와서 학교 도서관에서 바로 빌려 읽었던 책이다.
흡입력이 대단해서 10권의 책을 10일도 안되서 다 읽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운은 10달도 더 지난, 벌써 2~3년이 되가는 책이다.
다 읽고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책, 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책은 사야한다. 학생이었는데 마침 핸디북 세트가 나와서 구매할 수 있었다. 들고다니며 읽기에도 좋다. 지금도 내 책상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태백산맥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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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이 아니었다. |
태백산맥 1 한의 모닥불 핸디북 세트로 읽고 있는데 글씨가 좀 작긴 하지만 읽을만 해요. 저렴하게 10권 세트를 다 살 수 있다니 좋네요. 이렇게 핸디북으로 작게 만들어서 저렴하게 파는 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10권이라 언제 읽나 싶어서 사기가 망설여지는 책이지만 1권 읽으면서 잘 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네요. 책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요. 일제시대 말부터 우리나라 역사와 남북분단, 좌익 우익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게 되겠네요. 1권 빨리 읽고 2권으로 넘어가야겠어요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녁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깍아내고 있는 그믐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13
사방의 경치가 빠르게 도망질치고 있었고, 두 줄로 뻗어나간 철길도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27
그래요. 우리 두 사람의 운명도 저 레일 같을 거요. 저 레일은 두 줄로 뻗어갈 뿐이지 영원히 만나지도, 합해지지도 못하게 돼 있소. 29
피걸레가 되어 내던져진 아들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며 판석 영감은 제 살이 찢겨 나가는 아픔에 떨며 울었고, 차라리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목숨의 구차함이 비통해서 울었다. 39
나라가 금하는 일을, 그것이 제 아무리 옳고 바르다고 해도 나라가 맞서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42
해방이 되는 날부터 두 자식을 기다리며 밤낮 없이 흘렸을 눈물로 벌겋게 짓물러 내려앉은 어머니의 눈자위를 보며 김범우는 속울음을 씹었다 91
싸리나무와 명주실보다 가는 끝가지에 살폿 앉아 네개의 투명하게 붉은 날개를
비스듬히 치켜세우고 허공에 미세한 율동의 파문을 일구던 여름의 생명력을 고추잠자리는 이미 잃고 있었다. 241 꼬막의 껍질은 수없이 많은 골이 패어 있었다. 기와 지붕과 똑같은 골이 쥠부채의 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골마다 갯뻘이 끼여 있으니 씻는 것만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127 사람의 손가락이 바로 총구멍이었다. 저벅거리는 발소리, 이동하는 불빛 .......... 다시 교실로 끌려들어오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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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함경남도 안변군의 황룡산 부근에서 부터 부산의 다대포에 이르는 산맥 우리 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가장 긴 산맥이다
줄거리- 1948년 10월 24일 밤. 여순 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세력인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반란군들은 산 속으로 퇴각한다. 이때 정하섭이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기 위해서 무당딸 소화를 이용한다. 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며 감시를 피해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되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 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궁벽한 율어면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후 그 곳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하게 된다. 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 내기 위해 힘쓴다. 그 바람에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도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을 치른다. 벌교의 유지로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 보려고 노력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다. 벌교 지역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 제헌국회의원이 된 최익승을 수습위원회 대표로 선임하게 된다. 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년단 감찰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양효석, 송성일 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을 모아 이른바 멸공단을 조직,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염감은 목숨을 잃는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했기 때문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 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벌교 지방은 농민이 전체 주민의 8할이며, 대부분이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이다. 농민들은 해방된 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북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주들은 오히려 농지개혁 이전에 소유 농지를 처분하고자 한다. 소작인 모르게 논을 처분한 고흥 지주 서운상은 불만을 품은 소작인 강동기가 삽으로 내리찍은 바람에 중상을 입었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의 환영을 얻고, 그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혁명 과업을 수행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율어 지역의 변화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염상진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하기도 한다.이같은 상황에서 사령관 심재모는 용공 혐의로 서울로 압송되고 그 후임으로 백남식이라는 관동군 출신의 친일 경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벌교 지역 주둔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백남식은 하숙집 주인 과부 송씨와 그녀의 딸을 농락하고 토벌군이 철수하게 되자 송씨의 딸을 속여 끝내 결혼을 한다. 그는 송씨 재산 절반을 차지하고 그 돈으로 자신의 병과를 헌병으로 바꾸어 후방 근무를 택한다. 이때 벌교의 유지 김범우는 벌교를 떠나 서울에서 반민 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맞는다. 그리고 백범과 몽양이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벌교 지역에서 지주들이 소작인 모르게 자기 땅을 팔아 먹거나 빼돌리는 일이 더욱 늘어나자, 농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킨다. 지주 졍현동은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농지개혁법이 발표된다.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몰수 유상분배란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한다.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사태가 악화되자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경찰이 철수하기 직전에 미리 좌익 전향자들을 사살하였기 때문에 또다시 살육의 참상이 겪는다. 심재모는 용공혐의로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벌교 지역 주민들의 진정으로 풀려나서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 지구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중 6.25전쟁을 맞는다. 김범우는 인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한다. 그러나 인민군이 패퇴하자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그는 미군들이 자행한 강간, 살인, 방화 등 비인간적이고도 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한국전쟁이 미군과 우리 민족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김범우는 결국 미군 부대에서 탈출한 후에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전쟁 후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후에 빨치산으로 입산한다. 이에 따라 벌교에서도 염상진 등은 다시 입산하게 된다. 이때 많은 농민, 곧 소작인들이 염상진을 따라 입산한다.
6.25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중국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나 군경의 진압 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진다. 특히 박현영 등 남로당 계열이 전쟁의 실패와 함께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패배감과 낭패감에 빠져들지만, 역사 선택의 기로에서 항전의 결의를 가다듬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과 죽음이 역사 투쟁으로의 전환임을 인식하고 대부분 강렬한 최후를 맞는다. 한편 인민군에 입대했던 김범우는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갇힌다. 뜻밖에도 거기서 제자 정하섭을 만난다. 두 사람은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믿고 있다.포로 석방 때 정하섭은 북으로 가고 김범우는 반공 포로로 위장,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정하섭으로부터 남에 남아 거점을 구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근거했던 빨치산 세력은 군경의 토벌 작전으로 모두 와해된다. 이름없는 숱한 빨치산 전사들과 함께 손승호도, 독립투사요 인민군 소장인 김범준도 토벌군의 총탄에 쓰러진다.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는 군경과 수많은 전투를 하였으나 패퇴를 거듭한다.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리고 그의 목이 벌교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 <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이 살아남아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에의 결의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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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양장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두작품의 박스세트를 구입했는데 그때의 만족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그리고 우연찮게 태백산맥 핸디북이라는 제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뭐 별 생각없이 장바구니에 담겨지더군요.
이렇게 판형이 작은 책은 결국 책장에서 장식용으로 쓰일 확률이 높습니다. 활자가 작기 때문에 눈이 쉬 피로해지기 때문인데 역시나 기대한만큼의 활자 크기를 보여주네요.
그러나 활자가 현미경체라면 어떠합니까. 또한 가격이란게 자비로움의 끝판왕인것을요.
요네스뵈의 해리홀레 미니북세트 처럼 그냥 책장에 꽂혀있을뿐이지만 마음 뿌듯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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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 십여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어 책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던 책입니다.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중에 하나였는데 좋은 기회에 구입하였고 다시 읽어도 여전히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꼭 한번은 국민이 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핸디형이라 글자가 좀 작아서 처음에는 적응하기에 불편할 수 있으나 적응되면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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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시절 친구들을 만났는데 '태백산맥'을 들고 다니는 나를 본 한 친구가 '철 지난 책'을 이제야 읽느냐 묻는다. '태백산맥'은 88학번인 내가 대학교때 이슈가 되었던 책인데 그 시절에 읽지 못한 것은 정부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낯선 전라도 사투리가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제목이 '태백산맥'인데 무대의 배경은 벌교를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와 뒤의 빨치산활동이 본격화된 이후는 지리산이다.
서울 수서가 고향인 친정엄마를 비롯한 어린시절 샘말분들은 전라도 사람을 싫어했다. 경기도 양평과 전라도는 지리적으로 멀어 왕래가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라도 사람은 속과 겉이 다르다고 하면서.
내가 대학에 입학한 88년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 - 소위 '광주사태'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때였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잠깐 맞이한 민주화를 군화발로 짓밟은 전두환이 올림픽으로 그 기억을 덮어버리려 애를 썼지만. 소위 '운동권'에 전라도 출신들이 많았다.
왜 하필 전라도일까? 이 책에서 조정래 선생은 경기도 수원 출신 군인의 시선으로, 겉으로 친절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전라도 사람과 투박하지만 겉과 속이 일치하는 강원도 사람을 비교하면서, 풍족한 농토속에서 뼈빠지게 농사지어 그대로 수탈당한 전라도 사람이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기에 그런 성격을 갖을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