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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죽었다.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였다
악마는 형상이 없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악마는 아름답기 조차한다. 형상화된 보기에도 무서운 그것이 아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한다. 같은 공간에 있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늘 마음속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인간의 악함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닐지도…. 선과 악의 구도라면 얼른 와 닿겠지만, 애초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별이 어디에 있겠는가, 성선설과 성악설을 외치는 옛사람들조차 이 둘이 반드시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인간의 악함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나와 점차로 물들어가는 것인가, 이 소설은 줄 곳 풀리지 않는 “악마”와 “악함”에 관한 이야기다. 글 속에 섞여 있는 명언의 구절들.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의 키워드일지도…. 4악장(惡章), 악을 4개의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나?. 아무튼 흐름은 그렇다.
선의 이성이여, 악의 이성을 따르라
“이제 나는 악의 이성이 이끄는 대로 토굴 밖으로 나가려 한다. 토굴은 친절하게도 나를 30년 동안 품어주었다. 토굴은 짙고 푸른 어둠으로 나의 고독한 영혼을 끌어안았다. 그 고독과 편안함을 벗어 던지고 광기와 혼란으로 얼룩진 세상 속으로 나가려 한다. 그리하여 이기와 탐욕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악의 이성으로 평탄케 하려 한다.”(11쪽)
인간은 다 똑같은 인간이다. 이 소설의 대미는 그와 여자는 순두부 탕을 먹고 인근 모텔로…. 여자의 신음과 함께 점점 넓어지는 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점이 되더니 마침내 완전히 녹아버렸다(568쪽), 악마는 죽었다.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인 것이다.
작가 최인은 이전 소설<도피와 회귀>(글여울, 2021)에서 한 체제로부터의 도피는 또 다른 체제에는 회귀가 된다. 영원히 홀로일 수 없다. A로부터의 도피는 B로의 회귀, 에리히 프롬의<자유로부터의 도피> 는 어디로 회귀한단 말인가? 프롬은 인류가 자유에 내재해 있는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권위주의에 의지하게 될 것이며,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중심 사상은 불안한 인간이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고….
<도피와 회귀>에서 말하려는 것들과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산다는 것은 죽음 위를 걷는 영혼의 그림자라고…. 악마의 인간에 대한 법칙은 살리는 자는 죽이고, 죽일 자는 더욱 철저히 죽이는 것, 인간의 선행은 이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것, 선행은 악마의 밥이 되는 것….
최인의 소설은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유하란다. 제 머리로 지금 여기서 생각하란다. 당신에게 악마란 어떤 이미지인가, 또 인간의 악함이란 어떤 것인가, 불가 수행자의 화두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의 소설<도피와 회귀>에서 인간성 회복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영혼의 자유를 잃어버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하는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차라리 배고픈 철학자가 되라고 함인가.
이 소설은 167개의 경구와 함께 시작한다. 166. 악함은 선함이고, 선함은 악함이다. 소수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만인의 노예가 돼라. 용기는 별로 인도하고 두려움은 죽음으로 인도한다.
나를 위하여
이렇게 작은 제목만 보더라도 ~ 관하여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최인은 167개를 말로 악마의 존재와 인간의 악함을 견주었다. 물론 끝내는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였지만 말이다. 악마는 내게 존재하여 나로부터 상대화되고, 악함은 상대화되지 못한 채, 내 안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또 다른 잠재적 악마가 아닐까 싶다. 존재 그 자체 이외에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신의 종이여, 행복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는 점에 있다.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남보다 한두 가지 나은 점은 있지만, 열 가지가 다 뛰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 아는가?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는 옳은 일이 자신 속에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행복이란 글자가 가진 뜻과 그것이 그 사람의 올바른 성과이며,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게 아니다.”(531쪽)
행복이란 무엇인지, 악마는 뭐라 답할까?
인간의 악함을 대면하고 직면해서 이야기를 나눠본다.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악마는 밖이 아니라 스스로 달콤하고 유혹적이라 상상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다. 악함이란 악마의 유혹을 딛고서 일어났지만, 또 그 자체가 악마가 되어버리는 순환이 아닐까. 여전히 행복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이렇게 이 소설은 오만 생각을 알게 만든다. 돌아가지 않는 굳은 머리를 애써 돌리게 한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악마 같은, 악마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악마는 나에게 말한다. 끊임없이. 이렇게, 날개 없는 희망에 집착하지 말라고…. 아마도 167개 속삭임을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악마가 나에게 당신에게 하는 말, 한두 구절쯤은 기억해두자. “악마가 이렇게 말했다”라고. 내 안의 악마가 나에게 하는 말을. 우리 인간의 악함으로 악마를 죽여버릴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악마가 생겨나야…. 끊임없는 번뇌가 없다면 흥분도 긴장감도 없는 그런 생활이지 않겠는가. 의욕도 함께 잠들어버려서는 안 되기에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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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떤 비의(秘義)를 알려면 신뿐 아니라 때로는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도 아후라마즈다뿐 아니라 아흐리만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남겼으며, 그 아흐리만의 입에서 나왔다는 많은 메시지들은 이후 조로아스터 교의 핵심을 이루기도 했죠. 악신의 성격은 역설적으로 절대선과 신(神)의 본질에 대해 더 정확한 파악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면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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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이성, 세상 나들이
인간의 앞길을 비추고 인도하는 유일한 램프는
악의 이성이다.
선의 이성은 밝음으로서의 존재를 읽고 악의
이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토굴 속 짙고 푸른 어둠에서 30년 동안 고독한 영혼은
악의 이성이 이끄는 대로 광기와 혼란으로 얼룩진
세상 속으로 나간다.
머리에는 헌 삿갓을 쓰고, 손에는 썩은 지팡이를 들고,
등에는 짚신이 매달린 괴나리 봇짐을 멘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턱수염은 목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때에 전 모시 도포와 낡은 무명 바지 저고리, 짚신을 신고
도시를 향해 걸어간다.
선지자는 남보다 먼저 깨달아 무엇이든 잘 알지만,
후지자는 남보다 늦게 깨달아 무엇이든 덜 안다.
후지자는 참된 신과 참된 천사와 참된 인간을 찾기 위해
토굴에서 나왔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된 신,
거짓된 천사, 거짓된 인간이다.
욕망에 빠진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불빛이 진리라면
어둠이 혼돈인지,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절도범이 건넨 금박성경을 받아 절도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하며 세상의 풍파를 겪는다.
인간의 욕망, 천사의 욕망, 신의 욕망, 악마의 욕망,
모든 욕망에는 한도가 없다.
사람마다 저마다 행복이 있고, 타오르는 욕망의
불행에 빠져있다.
사람은 희망이 무서워 쾌락을 만들고
절망이 무서워 희망을 만들었다.
기쁨이 무서워 악마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 신을 만들었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토굴에서 나와 도시를 여행하는 후지자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삶과 인생에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후지자가 만나는 인간은 인생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상징한다.
쾌락이 주는 줄거움과 깨달음의 한계,
진정한 행복, 마음의 평화를 얻기
기쁨의 의미, 선과 악의 관계, 자유의 의미,
진정한 사랑의 의미, 재물과 행복,
연애와 우정, 행운과 행복,
사랑의 기쁨과 고통, 탐욕과 지혜 등을
생각한다.
후지자의 행동을 통해 악함과 선함의 의미,
인간 세상의 악행 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어려운 철학 주제를 여행과 사람의 만남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악함 속에 들어있는 선함과
선함 속에 들어있는 악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선과 악은 한 몸일 수 도 있다.
인간의 양심과 악성의 양립,
악과 선의 관계,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율법,
선함을 가장하는 악의 문제 등
인생의 본질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도서출판 글여울 과 리앤프리 서평단에서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악마는이렇게말했다
#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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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인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책의 저자는 최인 작가이다. 이 책은 선과 악에 대해서 신인지, 인간인지 모호한 갈수록 세상은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져 가고 있다. 예전에는 착하면 좋은 사람이였지만, 가볍게 술술 재미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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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최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제목을 보자마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떠올랐는데, 묘하게도 거울을 비춘 듯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동굴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걸어가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래 칩거하던 토굴 밖으로 나와 도시를 향해 가고 있어요. 여기서 결정적 차이는 마음에 품은 것이 선이냐, 악이냐 라고 봐야겠네요. 주인공 '나'는 악의 이성에 끌렸다고 고백하는데 그는 인간일까요, 아니면 악마일까요. 혹은 신의 경지에 오르려는 걸까요. "나는 악의 이성이 이끄는 대로 토굴(土窟) 밖으로 나가려 한다. 토굴은 친절하게도 나를 30년 동안 품어 주었다. 토굴은 짙고 푸른 어둠으로 나의 고독한 영혼을 끌어안았다. 그 고독과 편안함을 벗어던지고 광기와 혼란으로 얼룩진 세상 속으로 나가려 한다. 그리하여 이기와 탐욕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악의 이성으로 평탄케 하려한다." (11p) 이 소설은 원래 문예지에 발표한 250매 분량의 중편 작품을, 2022년 봄에 악몽을 꾼 뒤 장편으로 확대 개작한 것이라고 해요. 꿈 내용은 화창한 봄날 오후에 벚꽃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커다란 사자의 급습으로 쓰러졌는데, 바위에 부딪혀 쓰러진 사자를 자전거를 탄 남자가 뭉개듯 지나쳤고, 죽어가는 사자가 안타까워 심폐소생술로 살려줬더니, 그 사자가 악마로 변신해 "악마는 자신에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 언제나 파멸을 베푸는 법이오."라며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거예요. 공포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으니 심장이 벌렁대고 식은땀이 났을 것 같네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와 '사자' 그리고 또다른 '남자'는 각각의 인물 같지만 모두 내 안에 존재하는 '마음' 같다고 느꼈어요. 어릴 때는 선과 악이 완벽하게 분리된 건 줄 알았는데 커가면서 혼재되어 있음을 깨달았어요. 세상에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다는 걸 말이죠. 악의 평범성, 이 개념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가 인정하는 인간다움이란 본능과 이익에 끌리면서도 끌려가지 않는 자기 결정권, 일종의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에는 본능과 이익을 쫓아 타인을 괴롭히고 살해하는 범죄자가 존재해요. 연쇄살인범의 경우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그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요.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분신인 여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어요. "악마는 악마의 일을 해야 세상이 건전해집니다. 악마가 선자의 행세를 하니까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인간은 더 악하게 되고, 인간이 악하게 되면, 악마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마는 죽었습니다. 인간의 악함이 악함을 죽였습니다." (565p) 인간이 뭐길래, 신을 죽이고 악마를 죽이는 걸까요. 심오한 진리를 대서사로 풀어낸 소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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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명성을 늙게 만드는 것에는 네 가지가 있다. 바로 불안. 공포, 노여움, 증오이다.이성과 명성을 젊게 만드느 것에는 네 가지가 있다.바로 사랑, 희망,즐거움 , 기쁨이다. 그는 토굴에서 시시각각 이성을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와 싸웠다. 그는 어둠 속에서 이성의 기쁨과 오성의 즐거움과 명성이 행복을 그리워했다. 그는 음습한 곳에서 참다운 감성과 지성과 참다운 각성(覺性) 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하루에 한 끼씩 먹으며, 참다운 종교와 참다운 신과 참다운 인간에 대해 갈등했다. 그는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며, 참다운 선과 참다운 악과 참다운 의지에 대해 고찰했다. (-57-)
그대는 아는가? 남자가 술을 마시면 집이 절반 불타고 , 여자가 술을 마시면 온 집안이 불탄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가?낡아짐으로써 점점 더 값어치가 오르는 것은 술과 사랑을 하는 사나이라는 것을.그대는 아는가? 새로워짐으로써 점점 더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은 우정과 설익은 술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죽음에 가까워지고, 술잔을 비우면 비울수폭 저승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166-)
여자가 장미넝쿨을 움켜 쥔 채 말했다. "굶주림에 시달려 본 사람만이 쌀 한 톨의 귀중함을 알고 , 삶과 죽음의 갈등을 겪어본 사람만이 생명의 존귀함을 아는 법이지요. 또한 극심한 고통을 느껴 본 사람만이 진정한 기쁨을 알고,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신을 찾은 사람만이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279-)
사랑은 열정과 쾌락과 희망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론 절망과 고통과 비극을 끌어안고 있다. 참된 사랑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정신의 교감이다. 참된 사랑은 고통과 절망을 극복한 영혼의 노래이다. 참된 사랑을 하는 자만이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된 사랑을 하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357-)
그대들은 뛰고 땀 흘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대들은 잠자고 꿈꾸고 좌절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대들은 악하기 때문에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그대들은 나약하기 때문에 게으른 것이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에 나약한 것이다. 강한 인간이란 가장 훌륭히 자신의 일을 해 낸 사람이고, 나약한 인간이란 가장 게으르게 자신의 일을 회피한 사람이다. (-441-)
행복은 작은 새처럼 가만히 붙들어 두어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살그머니, 그리고 갑갑하지 않게 놔두어라. 작은 새는 새장 안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즐겨 머물러 있을 것인가. 스스로 즐거움 안에 갇힌 자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믿을 것이가. 아무리 사소한 일의 성공이라도 만족하라. 비록 경미한 성과라 할지라도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다.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큰 것에 있는게 아니라, 아주 작고 미세한 것에 있다. (-532-)
작가 최인의 『돌고래의 신화』, 『도피와 회귀』 를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각성된 깨달음을 책에 녹여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내 삶, 나의 시간,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세상에 대한 관찰을 지혜와 지식으로 ,생각과 감정과 각각에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세번 째 읽게 되는 책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소설은 철학 소설이며, 우리 삶을 각성하는 효과가 있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보는 것, 선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진리와 변화에 대해서, 그는 나의 삶에 대해서, 정제된 생각을 투명하게 녹여내고자 한다. 특히 이 소설은 단순히 읽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구절이 곳곳에 묻어 난다. 단편적인 생각이 아닌 선과 악의 본질, 인간과 동물의 차이,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서, 욕구와 욕망에 대해서, 분명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책 속에 작가 특유의 역설과 반어법이 눈에 들어온다,.내가 생각한 선과 행복에 대해서, 내가 생각한 악과 불행에 대해서,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나가는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어리석음을 덜어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품은 질문과 의심이 많을 수록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득해진다. 불행은 갑자기, 불현 듯 나타나지만,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아 하며 노력에 의해서 , 추구되어야 한다는 걸 놓치지 않고 있었다. 즉 우리 사회는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환경과 상황, 조건에 따라서 ,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불안. 공포, 노여움, 증오 를 품고 살아간다면, 영원히 악의 화신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스스로 명상을 정화되어야 하며, 내 마음 속의 악의 근원을 비워야 하는 이유다. 삶에 있어서,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내 안의 히틀러의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욕구가 본질적으로 선과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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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악마를 보았다 영화 이후로 책 제목이 좀 섬뜩했다. 이런 소설이면 읽다가도 자다 깰 정도가 아닐까? 페이지 분량도 560쪽이다. 완전 장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설에 특별한 점이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명언까지 가미했기에 더 머릿속에 많이 박힌 부분이 있었다. 선과 악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평가가 되는 잣대라고 생각한다. 중간은 있을 수가 없다. 악마화 된 인간과 대신해 죽은 신과 그리고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작가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을 보면 정말 낭만적이다. 물론 무서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렸을 때는 판타지 소설을 이따금 보고 그 이후에는 거의 소설을 보지는 않았다. 30년 동안 캄캄한 토굴에서 지내다 세상 밖으로 나온 남자. 그는 인간인가 짐승인가 악마인가 선지자인가? 인간은 과연 본래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고등학교 때 배운 성선설, 성악설이 떠올랐다. 인간은 믿음이라는 족쇄를 욕구로 풀기도 한다. 솔직히 욕구가 없는 사람이 과연 사람일까? 심지어 동물도 욕구를 갖고 있는데.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나에겐 쉽지 않았다. 인간을 복잡하고 미묘하고 어렵게 표현을 했다. 자유, 욕망, 분노, 유혹, 쾌락, 고행, 등등 여러가지의 평가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그만큼 작가의 창의력과 필력은 가히 최고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철학적 사유도 같이 녹아있기에 더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 픽션을 가미한다면 개연성도 떨어지기에 고구마가 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해하기기 쉽지않아도 더 이해하려고 만들게한다. 그리고 요즘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무조건 선, 착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좋으면 더 좋아져야하는데, 오히려 역으로 -, 뒤통수로 다가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즉 무조건 착하면 호구라는 말이 점점 더 공감대를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착하면 무능하고 바보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소설이니까 재미에 국한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명언이나 배울 부분도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소설이 작가님께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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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악마가 들어가니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조금 드는데 표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몸의 모양들과 함께 토속 신앙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섬뜩한 기분이 조금 들기도 하더라고요.
선의 이성을 벗어던지고 악의 이성이 이끄는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니 이 말만 들어도 뭔가 개운치 않은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더군다나 토굴 안에서 30년이나 있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우리 세상에 품어야 할까요.
선과 악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악의 이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네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선과 악이 대조되는 것으로 알고 자라왔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선의 이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악의 이성은 어떤 것들을 말하는지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책이 굉장히 철학적 사고를 많이 하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인간아’라는 표현때문에 옥신각신 다투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인간이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모두 다 같은 인간인지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어떤 내용들은 우화를 한 편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찌보면 책 내용은 어렵지 않지만 굉장히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가 병행할 수 없는 것처럼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종이 한장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네요.
선과 악, 천사와 악마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선과 악을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자세히 보면 한 명의 인간에게서도 선과 악을 동시에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천사의 뒷모습이 악마일 수도 있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아무튼 색다른 소재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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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조금 묘한 매력과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책이다. 소설이라는 의미가 주는 상징성이나 기발한 접근, 책에서도 이 점이 잘 표현되고 있고 천사와 악마라는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느낄 수도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제법 긍정적인 의미와 표현을 마주하게 되는 책이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인간이 중심이라는 사회적 인식이나 인간 만이 가치있고 존엄하다는 표현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 사회가 갖는 특수성이나 때로는 부정적 요인, 혹은 대립과 갈등, 반목의 역사가 반복되는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평가나 의미는 퇴색되기도 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책에서도 신과 인간, 천사와 악마 등의 대비적 색채가 강한 주체들을 통해 인간상에 대한 표현이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진단하며, 나름의 풍자와 상상, 기발한 접근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현실문제에 대해 생각할 것이며 또 다른 이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해당 도서를 통해 더 나은 형태의 방식이나 이해를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 어떤 접근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한다는 점과 인간이 갖는 성향이나 본성, 혹은 욕망 등의 가치에도 솔직하게 접하며 공감과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책이 갖는 특장점도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설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일반화 하는 행위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나, 부정보다는 긍정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은 책이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통해 특정 대상이나 가까운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신과 인간, 천사와 악마 등의 대비적 색채로 인해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모습에 대한 불만족, 이를 더 나은 형태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인해 그럴지도 모른다. 색다른 접근과 표현이 인상적인 소설책으로 인간과 사회, 악마와 신 등의 키워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거나 생각해 봐야 하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며 현실문제나 삶에 대해서도 함께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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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서점 서지학적 분류상 문학, 문학 분류상 소설이다. 56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소설로서 최인의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이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명언집에 가깝다. 저자 최인은 이 소설 창작의 과정에 대해 서두에 밝힌다. "처음에 250장 분량의 중편으로 쓰여졌고, 이후 약간 손을 봐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나 2022년 4월 '꿈'을 꾸고 난 다음, 장편으로 확대 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인 6월에 초고(2,000장)를 끝냈고, 그 후 4개월간 탈고를 거듭해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과 대신해 죽은 신과,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맑고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나는 흰 벚꽃이 하늘을 뒤덮은 자전거 도로를 콧노래를 부르며 라이딩 중이었다. 자전거 도로 양쪽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듯 아름답게 지저귀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빰을 스쳤고, 오색의 자전거 마스크 자락을 살랑살랑 날렸다. 도로 좌우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울창했고, 벚꽃 향기는 콧속으로 싱그럽게 파고들었다. 그 어떤 것도 향기로운 공기와 상쾌한 기분과 행복한 마음을 깨뜨릴 것 같지 않았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에 취해 있는 순간, 오른쪽 숲속에서 커다란 사자가 양발을 벌리고 내 몸과 저전거를 동시에 덮쳤다." 저자가 꾼 꿈은 봄에 꾸었으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사자가 나타났으니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빗대어 '사자몽'(獅子夢)이라고 해야 할까? 왜 꿈이 소설의 동기가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꿈의 내용을 더 따라가본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필사적으로 사자의 발톱을 피했고, 사자는 자신의 중량과 속도를 이기지 못한 채, 반대편으로 쪽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때 뒤따라오던 자전거가 사자의 몸을 깔아뭉개고 재빨리 도망쳤다. 나는 남자를 따라 도망치려다가 '죽어 가는 생명체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숨이 넘어가는 사자의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몇 분 후, 사자는 눈을 뜨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는 머리에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인간의 선은 살리는 것이지만, 악마의 선은 죽이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소? 내가 말했다. "그대는 악마가 아니잖소? 사자가 재빨리 뿔이 달린 악마로 변신하며 말했다. "악마는 자신에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는 언제나 파멸을 베푸는 법이오." 내가 반문했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사람이오." 악마로 변한 사자가 껄껄 웃었다. "악마의 인간에 대한 법칙은, 살리는 자는 죽이고, 죽일 자는 더욱 철저히 죽이는 것이외다." "그럼 내가 그대를 죽게 내버려 둬야 했단 말이오?" "맞았소. 인간의 선행은 이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소. 지금 당신이 할 유일한 선행은 그대로 내 밥이 되는 것이오." 악마는 이렇게 말하고 내 목에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박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고 꿈에서 깨어났다.
이 작품은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추억한다. ‘악(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에 깊이 매료된 저자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 인간을 대신해 죽은 신,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돌이켜 생각한다. 역설적이면서도 부조리한 회억은 과거를 되새기고, 반성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저주와 조소와 비난의 읊조림이다. 이미 죽어서 궤란(潰爛)의 무덤 속에 자리 잡은 미래는 신조차도 살릴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 되살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차라리 창조주를 어둠의 동공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버림 받은 신과 천사와 악마는 궤란의 무덤 속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재확인한다. 얼핏 들으면 단테의 신곡 같고, 읽다보면 철학서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저자 최인의 이력과 전작을 살펴보면 좀더 이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저자는 등단 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했다. 범죄와 악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으리란 짐작이다. 또 전작 『도피와 회귀』(2021. 10, 글여울刊), 『돌고래의 신화』(2022. 4, 글여울刊)을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문체와 소설 내용에 대해 쉽게 수긍하리란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 최인은 전작 『도피와 회귀』에서 이미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서나 종교서, 혹은 사회학 책으로 가깝게 보이는 작품을 썼다. 『도피와 회귀』의 줄거리는 '허구'이지만 사용되는 단어가 철학 등 학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색을 갖고 있다. 제목, 소제목 등도 대부분 학문적 용어들이다. 우선 제목에 있는 '도피'라는 단어 역시 사회적 사건일 때 뜻하는 '범인이 도피(도망) 중이다'는 예처럼 쓰이지 않고, 일상에서 권태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뜻의 현실 도피와 어우러지는 단어다. 또 회귀는 종교서적이나 철학서에서 많이 이용된다. 언어가 철학적 단어나 심리학적 단어로 완벽히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의 일상 용어가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는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의 용어를 쓴다. 각 단어의 뉘앙스 차이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학자들이 학문을 할 때 정확한 뜻의 단어를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전문용어로 점찍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소설가나 시인들이 도피나 회귀의 단어를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가진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15장으로 이뤄진 소설 각 장의 제목도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존재와 비존재」, 「야만적인 너무나 야만적인」, 「이데올로기의 부활」, 「특화된 다수는 항상 부정하다」, 「우연 그리고 필연」, 「진지함의 가벼움, 사소함의 무거움」, 「선택과 판단」, 「모든 사람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현상과 본질」, 「군중 속의 고독」, 「탄생과 죽음」, 「이것이냐 저것이냐」, 「가는 자와 오는 자」, 「도피와 회귀」이다. 현실 도피와 일상 회귀를 암시하는 듯한 단어들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주인공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탐구이다.
또 『돌고래의 신화』는 단편소설집이다. 최인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이다. 저자는 이 작품집에서 포우와 오 헨리가 즐겨 쓴 '충격요법'과 '반전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한편, 극적 반전을 이뤄 독자를 글 속으로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치밀하고 세밀한 점묘법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에로티시즘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 한층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단편소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충격요법, 반전기법, 점묘법 등은 단편소설의 요건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단편소설이 대부분 200자 원고지 70~80장 분량임을 감안한다면 장편소설처럼 사건이나 인물에 구구한 설명도, 장황한 묘사도 필요없다. 오히려 소설 전개나 반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포우와 오 헨리의 소설작법은 이미 '교과서'로 지목될 정도로 모범적 단편소설들이다. 이 작품에는 52명에 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이 보조 인물로 등장한다. 이 보조 인물들은 주인공의 분신이면서도 제2, 제3, 제4의 자아이기도 하다. 카두케우스를 손에 든 헤르메스가 우리를 쫓아왔어.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그는 일렁이는 백사장과 하늘로 솟구치는 바닷물을 느끼며 물었다. 헤르메스가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지? 미재가 오래된 진공관 소리처럼 말했다. 사랑에 빠진 자들을 징계하기 위해서야. 아니 깊이 잠들게 하고, 그 다음에 죽이려는 속셈이지. 그는 그럴 듯한 상상이라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은지로 변한 미재가 무릎을 꿇고 백사장에 앉았다. “내가 펠라티오를 해 줄게.”
저자 최인의 네 번째 장편소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현대를 그리고 있지만 과거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이 책을 펴낸 도서출판 글여울 측은 인간, 신, 악마, 짐승 등이 길을 가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옛날 신화의 원형을 가져다 쓴 서사기법이며 길을 가며 세상의 모든 것과 대화와 현상 인식을 하며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보라, 머리에는 헌 삿갓을 쓰고, 손에는 썩은 지팡이를 들고, 등에는 짚신이 매달린 괴나리봇짐을 멘 인간을. 보라, 머리는 여인처럼 길게 기르고, 턱수염은 목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때에 전 모시 도포와, 낡은 무명 바지저고리와, 짚으로 엮은 신을 신은 인간을. 보라, 마른 샘물가에서 얻은 한 모금의 물과, 궁핍한 자에게서 얻은 한쪽의 빵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천정으로 삼은 잠자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즐거움을."(p.12)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이 기행문이지만 선지자와 짐승을 운율적으로 표현하며, 악마의 부르짖음이지만 이성과 오성과 명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시대 최대 슬픔의 하나는 이성(理性)이 인간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 최대 불만의 하나는 오성(悟性)이 인간에게 깊은 충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 최대 불행의 하나는 명성(明性)이 인간에게 깊은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성과 오성은 기본적 인간이 기형적 인간에게 갖추어야 할 올바른 사고이고 능력이다."(p.24) 출판사 측은 또 신과 천사와 악마를 논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대들 영혼의 파괴를 거부하지 않음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어둠의 힘찬 발걸음이다. 그대들 영혼의 죽음을 반갑게 끌어안지 않음은, 어둠을 향해 다가가는 악마의 힘찬 발걸음이다. 그대들 마음의 눈뜸이 없는 집과, 영혼의 외침 없는 음식과, 절망이 깨어 있지 않은 잠과, 탐욕이 불 밝힌 희망에 눈멀지 말라. 그대들 이성의 자각이 없는 육체와, 오성의 깨달음이 없는 정신과, 명성의 단단함을 갖추지 않은 영혼을 그리워하지 말라."(p.37)
남자는 흰 천으로 감싼 항아리 2개를 지게에 얹어 놓고 있었다. 도심 속에서 지게를 지는 것도 이상했지만, 흰 천으로 감싼 항아리는 더욱 수상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게 위에 얹어 놓은 항아리는 무엇이오?” 남자가 술을 한 잔 마시고 대답했다. “슬픔입니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항아리가 슬픔이라니?” 남자가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제 슬픔의 모든 것입니다.” 그가 항아리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누구의 유골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남자가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제 어머니와 아버지 유골입니다.”(p.462)
우리는 흔히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p.474) 말이 오해될 때가 아니라, 침묵이 이해되지 못할 때 인간관계의 비극은 시작된다.(p.487) 이쪽에서 정성껏 얘기하고 있는데, 농담을 지껄이는 것처럼 못 견딜 것은 없다.(p.487) 가장 위대한 사랑이란, 그리워하다가, 질투하다가, 증오하다가, 그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추억하다가,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p.502)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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