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은게 아마도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닌가 한다. 밀레니엄 시리즈에 압도되어, 일주일만에 여섯 권의 책을 읽어제꼈으니까.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는 동안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직장에서도 다음 이어질 내용때문에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었다. 시간만 나면 밀레니엄 시리즈를 붙들고 있었다. 그외에도 추리소설 중에서 북유럽 소설을 좋아하였다. 영미문학에서 보지 못하는 감정을 갖게 했으니까.
그렇듯 추리소설하면 스웨덴을 떠올릴정도로 스웨덴 추리문학은 알아줄만 한것 같았다. 비에른 라르손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비슷한 작가가 있었는데 하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었다. 내가 고른 이 책은 추리소설이면서 순문학이다. 그것도 시문학에 대한 통찰이 깃들어 있는 책이었다.
사실 시를 쓰시는 분들은 소설을 쓰시는 분들보다 훨씬 고고하고 범접할 수 없는 기분을 갖게 한다.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오로지 시만 쓰시는 분들은 뭔가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전에 박범신 작가가 『은교』라는 작품을 쓸때도 시인에 대한 마음을 적은 적이 있었다. 맥락이 비슷한 면도 있다. 이 책 『죽은 시인은 추리소설을 쓰지 않는다』에서도 작가는 소설을 쓰지 않고 시詩만 쓴 시인을 가리켜,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을 온전히 지켰던 시인' (161페이지) 라고 표현했다.
오로지 평생 시만 쓴 시인이 있다. 잘 팔리지 않은 시집이지만, 시의 작품성만 보고 시집을 낸 출판사의 편집자 때문에, 시인은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고, 대중성에 기대해보고자 추리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평생 시만 써온 시인에게 추리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많은 고민 끝에 추리소설을 쓴 시인 얀 Y. 닐손은 결말을 남겨두고 있었고, 자신이 추리소설을 출간할 것인지 고민중이다. 편집자 칼 페테르센은 마지막 계약 사인만을 남겨두고, 세계의 몇몇 출판사와 책을 출판하기로 되어 있었다.
얀 Y. 닐손은 하루의 시작을 새벽을 바라보는 감성으로 배에서 시작했다.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온 배안에서 그는 올가미에 목이 매달린채 시체로 발견된다. 그것도 마지막 계약 사인을 하러 오겠다는 편집자 페테르센에게 발견된다. 얀 Y.는 스웨덴의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썼고, 누군가 그 소설의 출간을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은 시인 얀 Y.와 그의 담당 편집자 칼 페테르센, 얀 Y.의 친구이자 추리소설가 안데르스 베리스텐, 사건을 수사하는 해양경찰서장 마르틴 바르크와 얀 Y.의 모든 정신적인 여자친구 티나 산델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
소설 속에 또다른 소설 「부자를 증오한 남자」가 보여진다. 소설 속 소설에서 실제 상황처럼 시를 쓰는 경찰관이 보이고, 부자를 싫어하는 한 남자가 있는 추리소설이다. 시인 얀 Y.가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 말이다. 얀 Y.의 소설은 자신의 상상속의 산물이기보다는 스웨덴에서 실제 일어났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서 썼다.
『은교』에서 박범신 작가가 소설 속 시인의 시를 자신의 시로 썼다면, 비에른 라르손은 소설속 시인인 얀 Y.의 시는 프랑스 작가 이봉 르 망의 시를 직접 스웨던어로 번역해 사용했고, 시를 쓰는 해양경찰서장 바르크의 시는 작가 자신이 직접 썼다고 했다.
생애 첫 추리소설을 쓴 얀 Y.의 소설 출간을 저지하려는 자는 누구인가. 소설 출간을 반대하는 자가 시인을 죽였을텐데, 아무런 실마리도 보이지 않고, 급기야 얀 Y.의 소설을 출간하려는 또 한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얀 Y.의 시를 사랑했던 사람, 얀 Y.가 오로지 시인으로만 남았으면 하면 마음은 아니었던지.
한 시인의 죽음을 내세워 작가는 출판계의 현실과 순문학과 추리문학의 경계를 없애고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 추리 형식을 빌려 쓴 순문학인 것이다. 진정한 문학은 순문학이어야만 하는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시인이 쓴 추리소설은 시인의 말이 그대로 배어 있을 것이었다. 함축적인 감정을 쓰는 시인이 쓴 추리소설은 다른 묘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꽤 매혹적인 작품이다. |
|
제목도 낯설고 작가도 낯선 이 첵을 선택한 것은 제목이 주는 미스터리함과 스웨덴 장르소설이 주는 믿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북유럽 장르소설들이 평균 이상은 한다는 그런 굳건한 미음이다. 생각보다 잔잔히 흘러가는 통에 이걸 진정 끝까지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중간중간에 하기도 했지만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본다는 모토 아래 죽죽 그냥 읽어내린다. 지루해질만 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통에 사실 그렇게 지루한 편은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시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적인 부분이 많이 언급되고 그로 인한 멈칫거림이 분명 존재하는 편이라서 그런 점은 감안하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혹시 장르소설에서 생각할 꺼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미적인 부분이 첨가된 그런 장르물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시들은 마구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나름대로의 시의 매력과 미스터리함을 포함하고 있어서 전혀 이해못할 수준의 시들은 아니라고 본다. 스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총 세 건의 살인사건이 등장을 한다. 마지막 살인사건은 끝부분이다. 즉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이 사건의 결말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형태이다. 이런 경우 이 범인이 다른 작품에서 다시 등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괜찮은 결말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결말을 쓰지 못하고 죽은 시인 얀.Y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이 결말을 맺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뭐 그런 거 말이다. 시인인 얀.Y는 자신이 살고 있떤 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를 발견한 최초의 목격자는 그의 첫 장르소설을 편집하던 페테르센이었다. 처음에는 자살로 보였지만 경찰 조사에 따라 타살임이 밝혀진다. 마구 유명한 것도 아닌 시인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는 단 하나 그가 쓰고 있던 추리소설이 원인으로 밝혀진다. 시인이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 그 원고 때문에 죽었다고 하니 대체 그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하는 궁금증도 든다. 추리소설은 본문 속에서 조금씩 밝혀진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둘러 싸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려는 사람과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이 이 이야기를 즐기는 묘미일 것이다. 여게에는 또 다른 시인 한명이 등장을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사건을 맡은 바르크다. 경찰이 시를 쓰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그는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물론 읽는 것도 좋아하고 시 자체를 즐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설적인 편집자 페테르센을 알게 되고 그에게 시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가 이 시들을 어떻게 봤을까. 그의 시들은 책으로 편집이 되어서 출간이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전작이 경찰인 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실제로도 경찰이 전직이었던 작가들이 몇 있다. 그들이 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현실적이고 또 사실적인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옴을 잘 알 수 있다. 전직이 이야기 속에 묻어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예 전업작가로 출발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던 작가들의 글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무래도 많은 경험들이 녹아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시 때문에 생각보다 읽는 것이 고되었지만 시 때문에 그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소설이다. |
|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구분한다면 추리소설은 통상 장르소설이라 부른다. SF문학, 판타지소설, 미래소설, 추리소설, 시간이동 소설 등 장르 색깔이 명확한 문학 작품을 우리는 장르문학이라 부른다. 그에 반해 순수문학은 시, 에세이, 장르문학을 제외한 일반소설 등을 일컫는다. 이렇게 구분한다고 누가 법으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문학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있다. 여기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추리소설)을 결합한 엉뚱한 책이 있다. 그런데 순수함(시)과 추리(예측하고 사물 너머를 보는 것)가 만나는 지점을 잘 직조하여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책을 완성했다. 그 점에 있어서 시인과 경찰은 결국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는 동시에 너무나 명백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바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묘하게 감춘 것과 빤히 보이는 것을 모두 파헤쳐야 하고, 진짜 단서와 거짓 단서를 모두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167) 순수 문학을 쓰는 가난한 시인 얀 Y.의 자살 같은 죽음을 둘러싸고 시를 좋아했던 해양경찰 바르크의 수사가 시작된다. 평소 존경해오던 시인이었던 터라 그의 죽음은 바르크 형사에게 충격이었다. 자살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쉽게 밝혀 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책은 시를 사랑하는 작가의 사랑이 듬뿍 담겼다. 그는 추리소설 속에 시에 대한 다양한 문학적 정의들을 별처럼 뿌려 놓았다. 그때 비로소 시가 무엇인지 알았다. 시는 세상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15) 얀 Y.는 새벽을 수집한다. 세상에서 가장 포착하기 어려운 바로 그것을. (25) 얀 Y.는 시적인 면에서, 어째서 이 배가 이 방향으로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시의 목적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참신하고 강렬한 빛을 비추어주는 거라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무엇을 지어내거나 상상하면 안 된다고. (137) 저는 작가로서나 독자로서나 딱히 시를 선호하진 않습니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시도 더러 있고요. 하지만 얀 Y.에게서 이것만은 배웠습니다. 좋은 시에는 아주 귀한 것, 어떤 이의 인생을 바꿀 만한 것, 지적인 면에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삶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요. (146) 이런 주옥 같은 시에 대한 정의와 개념 외에도 작가는 다양한 시를 책 속에 옮겨 적어 시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아, 이런 추리소설이라니. 특히 바르크 형사의 시 사랑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이 작품을 더욱 시에 가깝게 다가가게 만드는 장치로 매우 뛰어났다. 결국 이 사건의 수사는 바르크에게 범인의 신원보다는 시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용의자는 알리바이가 있거나 그럴싸한 범죄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307) 어떻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시와 추리를 엮어낼 수 있을까. 이는 아마도 저자 비에른 라르손이라는 작가의 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 가난했던 시인 얀 Y.는 대형 출판사의 추리소설을 써 보라는 제의에 결국 수락하고 아무도 모르게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만의 시적 문체로 쓰여져 처음 몇 장만 읽어도 문학적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만드는 그런 추리소설이었다. 이런 설정 역시 이 소설의 백미로 이 책 속의 또 다른 책이 되는 액자소설 같은 구성이다. 하지만 스스로 순수 문학의 자존을 깨뜨렸다는 자책은 늘 남아 있었고,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의 변신을 꾸짖기도 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그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기로 하고 추리소설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완성을 보지 못한다. 마지막 결말을 남겨 놓고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자, 이제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흥미진진해진다. 그에게 추리소설을 써 보라고 부추겼던 대형 출판사의 편집장, 그의 절친인 추리소설가, 그리고 애인이었던 티나 센델.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서사는 더욱 단단해진다. 바르크는 자신이 얀 Y.의 소설을 내지 말자고 했을 때 페테르센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무 위험도 없을 때에는 용기를 내기가 쉬운 법이라고. (361) 작가의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결합한 이 소설은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또 한편으로 인생의 무상함, 먹고 사는 문제의 곤핍함을 잘 드러낸다. 예술은 과연 무엇인가? 시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존재론적 질문부터 추리 소설의 백미, 범인은 과연 누구이고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는가? 독자들은 어느 지점에서 어슴프레하게 범인의 존재를 눈치채는가? 다양한 재미와 깊이를 갖춘 추리소설로 더할 나위 없다. '순문학과 장르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혹적은 추리소설"이라는 책 뒷표지의 글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이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알고 있으리라. 어떤 면에서 예술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예술은 세계를 문제시하고,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의식의 하부구조를 재고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파괴해 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지트에서 튀어나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전에는 없었던 그 무엇을 점차 자기 것으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하지요. (366) 마침표 : 우리 인생은 순수와 잡것 사이의 그 어디에서 늘 도전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