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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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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란 전화가 없던 그 시절, 그 옛날에 급한 일 즉, 침략이나 나라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빠르게 소식을 알리기 위한 통신 체계라는 것 밖에 모르고 여전히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 이동통신 봉수>라는 도서의 제목을 본순간 옛날에 전화와 빠른 교통수단과 우편 시스템이 없었는데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답니다. 이 도서의 내용을 살펴본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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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란 전화가 없던 그 시절, 그 옛날에 급한 일 즉, 침략이나 나라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빠르게 소식을 알리기 위한 통신 체계라는 것 밖에 모르고 여전히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 이동통신 봉수>라는 도서의 제목을 본순간 옛날에 전화와 빠른 교통수단과 우편 시스템이 없었는데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답니다. 이 도서의 내용을 살펴본바 여기저기 우리나라에 많은 곳에 흩어져 있다니 이 도서의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흔적들과 역사를 직접 손수 뛰시면서 찾아가시면서 답사를 하신 사실 그대로를 담으셨다니 너무나 읽고 싶어 이렇게 펴쳐보기 시작했답니다.

이 도서 <옛 이동통신 봉수>는 총 아홉개의 지역별로 나누어서 파트를 구성해 봉수의 터전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각 페이지 별로 많은 사진들이 그 곳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어서 꼭 이곳에가서 주변 환경도 살펴보고 할 수 있도록 전해주고 있답니다.

서울 인천 경기지역, 강원 대구 경북지역, 충북 내륙지역, 충남 전북 지역, 부산 울산 지역, 경남 해안 도서 지역, 전남해안과 도서지역, 제주도 연대들, 마지막으로 그 지역 외의 봉수들로 나누어서 현장감이 넘치도록 설명해주고 있어 그 당시에 어떠했는지 대감 짐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봉수대가 각 산등성이마다 있었다니 너무나 놀랐습니다. 무심결에 도심 속에서만 살아가는 나로써 봉수대가 이렇게 많이 있었다니, 우리 선조들의 봉수대를 활용한 지혜를 엿볼 수있어서 좋았습니다. 6.25 전쟁으로 무너졌던 여러 봉수대들 또한 지금은 복구를 해서 옛 날의 모습을 복원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전기가 없던 그 당시의 봉수대의 활용을 했던 모습을 잘 살려서 갑작스런 응급상황에 사용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전기가 없다면 전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써 엄청난 혼란이 돌아올텐데 이때를 위해서라도 봉수대를 잘 살피고 보존해 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봉수대 소개를 하면서 그 곳의 위치와 형태, 만들어진 시기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전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봉수대에 관한 정보들을 살펴볼 때마다 느꼈던 점은 모든 봉수대는 산등성이 꼭대기에 있다보니 그 곳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봉수대를 올라가 살펴본다면 우리나라 전문 지리자가 될 꺼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이동통신의 전신이 봉수였음을 생각티 못했던 터라 그 내용들이 정말로 참신합니다. 그러나 정반적으로 읽었을 때 봉수도 이동통신도 모두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이 얼마나 더 발전하고 우리의 생활을 변화하게 할지 봉수에대한 역사와 우리 문화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 탐험을 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도서 <옛 이동통신 봉수>였습니다.

s****s 2018.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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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주네, 옛 이동통신 봉수이야기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주네, 옛 이동통신 봉수이야기" 내용보기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주네'     초등학생 4학년 아이에게 '봉수'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답이 이렇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즉 전쟁이나 나라의 경사가 생겼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알려주는 기구였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는 과정중에 '봉수'가 옛날 이동통신이 있었다는 게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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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주네'

 

  초등학생 4학년 아이에게 '봉수'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답이 이렇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즉 전쟁이나 나라의 경사가 생겼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알려주는 기구였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는 과정중에 '봉수'가 옛날 이동통신이 있었다는 게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도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도 책에서만 배웠던 '봉수'를 남산에 올라갔을 때, 정상 근처에서 본 것이 '봉수'에 대한 첫인상이다.

어떻게 '봉수'를 복원시켜놓았는지 잘은 모르지만, 항상 역사 속 무언인가를 만나게 될 때,

"역사적 고증을 참고 삼아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복원을 했을거야"라고 아이들에게 답변을 해주었다는 사실.

그렇게 남산에서의 봉수대를 보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답변을 했었다.

"엄마,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봉수대는 옛날 조선시대부터 계속 있어 왔던 건가요?"

"아닐걸. 아마도 6.25 전쟁도 있었고 그에 앞서 일본 식민시대도 거쳤으니 그 때 아마 많이들 소실이 되었을거야.

잘 봐봐. 너무나 깨끗하잖아. 우리 나라가 그렇게까지 역사 유적지를 깨끗하게 보존 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는데?"

"그럼 엄마, 이 봉수대는 없어졌다가 다시 만들어진거네요? 그렇다면 옛날의 봉수대와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 맞을까요?"

"그렇겠지! 아마도.... 그래도 수도 서울에 봉수대를 복원할려면 역사전문가들도 많으니 그분들에게 철저하게 고증을 받아서 복원을 했을거야. 아마도...."

그렇게 불과 몇 달 전에도 아이와 나는 그렇게 봉수대를 바라보고 그런 대화를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최진연 작가님은 우리나라에 있는 봉수대들을 발로 뛰며 20여년 간 찾아다니며 조사해 온 결과, 조선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국가경영의 기간 통신망으로 유지되었던 '봉수'가 고종 31년 갑오경장 때 철폐되고 , 이듬해 칙령으로 전국 각 처의 봉대와 봉수군이 최종 철폐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봉수제의 철폐 이후 120년이 지나면서 그 존재가치마저 잊혀가는 상태에 현재 한반도 남한에 약 500여 기의 봉수 터가 동.남.서해 연안의 만이나 곶 뿐만 아니라, 도서 혹은 육지의 산 정상에 소재하고 있는데 20년 넘게 남한 지역 곳곳에 산재한 봉수 210여 기를 직접 답사해 사진을 찍고 글을 정리해 오면서 직접 살펴 본 결과물로는 참으로 많은 봉수들이 없어졌고, 흔적도 찾기 힘든 것들도 있으며, 어떤 것은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현재까지도 접근이 불가능해 유적의 실태조차 파악이 어려우며, 해맞이 명소 자리로 전락해 있기도 하며, 서울에 있는 동봉수는 서울정도 600년 기념 이벤트로 사용하기 위해 1994년 연조 하나와 방호벽을 복원했는데 정확한 고증절차 없이 복원해 굴뚝 모양이 되고 말았다고 하니...

남산의 봉수대 앞에서 내 아이에게 "철저한 역사적 고증 절차를 거쳐 복원했을거야" 라는 말은 거의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만 셈이다. 

역사적 산물들을 지키는 것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소실되고 엉뚱하게 복원하고 더 엉뚱한 방향으로 가치를 전락시키는 전국의 210여기의 봉수를 만나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저자의 목소리가 많이도 나타난다.

 

  조선봉수 연락 약도와 조선 후기 전국 봉수지도(증보문헌비고)를 토대로 사진기자이면서 데일리안 문화유적 전문기자인 저자의 조선 봉수를 따라 함경도에서 출발한 제1노선과 부산에서 출발한 제2노선, 평안도 내륙을 다라온 제3노선, 평안도 해안을 경유해 도착한 곳이 남산케이블카 종점 부근인 제4노선, 그리고 전라도 여수를 출발해 서해안을 타고 올라와 남산분수대 주변에 도착했던 제5노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신궁이 있던 곳인데 이 노선들을 따라 봉수의 이야기가 지역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생생한 사진과 구수한 입담으로 팔도여행하듯이 봉수의 흔적들을 따라 고흥과 여수 신안 대봉산봉수까지의 봉수 여행이 가치있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20여년의 시간을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낸 이 책을 만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2015.1.16. 소지개.

 

h****i 2015.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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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최진연]30년 동안 국토를 누비며 찾아 낸 우리 봉수 이야기,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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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최진연]30년 동안 국토를 누비며 찾아 낸 우리 봉수 이야기, 대단하다~     제목에서부터 끌리는 책이다. 우리 역사,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늘 설렘과 애잔함, 뭉클함 등 복잡한 감정을 선물받기에 우리 이야기라는 사실만으로도 끌리는 분야다. 『옛 이동통신 봉수』   봉수는 밤에는 불(봉烽)로, 낮에는 연기(수燧)로 국경과 해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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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최진연]30년 동안 국토를 누비며 찾아 낸 우리 봉수 이야기, 대단하다~

 

 

제목에서부터 끌리는 책이다. 우리 역사,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늘 설렘과 애잔함, 뭉클함 등 복잡한 감정을 선물받기에 우리 이야기라는 사실만으로도 끌리는 분야다. 『옛 이동통신 봉수』

 

봉수는 밤에는 불(봉烽)로, 낮에는 연기(수燧)로 국경과 해안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험 신호를 보내던 옛 긴급 신호체제였다. 날씨로 인해 봉수의 신호전달이 용이하지 않을 때는 봉수군을 통해 직접 달려가 알리기도 했다. 옛날 그리스의 마라톤처럼. 때로는 위험상황을 징과 꽹과리로 알리거나 깃발로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봉수는 삼국시대부터 원시적인 형태로 시작해 고려 시대에 체계가 잡혔고, 조선 세종 때에 크게 정비가 되었다. 고종 31년 갑오경장 때 철폐되기 시작하면서 이듬해인 1895년에 전국의 봉대와 봉수군마저 철폐되었다. 현재 한반도에 있는 봉수 터는 남한에 해안가, 섬, 산지 등에 500여 기의 봉수 터가 남아 있고, 북한에 650여 기의 봉수 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내 유일의 봉수전문가인 김주홍 박사는 전한다.

 

가장 유명한 곳이 서울 목멱산봉수가 아닐까.

함경도에서 출발한 제1노선의 봉화 도착지는 남산 동쪽 1봉인 현재 미군 통신탑 부근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제2노선의 봉화 도착지는 남산골 한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2봉이다. 평안도 내륙을 경유하는 제3노선의 봉화 도착지는 현재의 봉수가 있는 남산 팔각정이다. 평안도 해안을 경유하는 제4노선의 도착지는 남산 케이블카 종점 부근이다. 전라도 여수를 출발해 서해안을 타고 올라오는 제5노선의 도착지는 일제 강점기 조선 신궁이 있던 남산분수대 주변이다.

현재 남산 팔각정 아래의 봉수는 수원화성의 봉돈을 참고해 1993년에 세워진 곳이며, 매일 오전 한 시간 동안 전통 봉수의식이 재현되는 곳이다. 서울의 주요 관광 명소이기도 한 곳이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조선 22대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 세자를 기리기 위해 도읍지를 꿈꾸었던 수원화성 안에 있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봉수의 구조나 위치에서 특별하다. 산봉우리가 아니라 평지에 축조되어 있고 유사시에 군사들의 숙소와 무기고까지 있다고 한다. 성벽에 구멍을 내어 총을 쏠 수 있도록 했기에 봉수가 아니라 돈대라고 한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한국전쟁 당시 일부가 파괴된 것을 197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의 관방유적 정비사업 때 보수 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봉수 중 원형이 잘 보존된 유일한 봉수라고 한다.

 

지금 봉수는 유실되거나 잡목으로 인해 접근 불가능한 곳도 있고, 파괴되거나 방치된 곳, 고증도 없이 잘못 복원된 곳, 가까스로 흔적만 남은 곳, 봉수 내부의 민묘를 옮기고 전직 국회의원 부친의 묘를 이장한 곳, 봉수에 올라가 국태민안을 비는 행사를 매년 가지는 영덕군 대리마을의 봉수, 산불감시초소로 둔갑한 곳 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120년 세월이 무심해서였을까. 봉수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저자인 최진연은 문화유적 전문 기자라고 한다. 그는 30년 동안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우리 조상이 남긴 유적들을 사진과 글로 담아왔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수원화성 사진 작업을 시작으로 성곽 등에 관심을 가졌고, 봉수, 옛 다리 등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대부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나 산간 외지에 있었기에 관심 밖이었을까. 개발의 뒷전으로 밀려난 곳도 있고, 개인의 욕심으로 가족묘로 둔갑한 곳도 있고, 고증도 없이 사업가나 관계 기관에서 복원한 경우도 있다니, 무척 슬픈 일이다. 무심코 지났을 우리의 봉수, 때로는 돌무더기에 궁금증을 갖고 스쳤을 봉수들이 버려진 채 쇠락하고 있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원형 복원은 차후로 하더라도 푯말이라도 세워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임을 알렸으면 좋겠다.

 

이젠 눈여겨 두었다가 산꼭대기에 오르게 되면 유심히 관찰하고 살펴봐야겠다. 각 지역별로 사진과 설명이 상세하게 되어 있으니, 여행 갈 때마다 미리 공부하고 가야겠다. 나에게로 온 정말 귀중한 책이다.

a******7 2015.0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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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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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는 나라에 시급한 일이 생겼을 때, 즉, 전쟁같은 난이 일어났을 때 아군에게 알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봉화를 올리는 곳이 봉수, 봉수대이다. 그저 위급상황에서만 쓰이는 기관이라고 알고 있었다. 추가하자면 올림픽이나 국가행사 때 쓰이는 정도? 딱 그만큼만 알고 있었는데, 조선 전역을 통해 만사 평화롭다는 신호로도 사용된다는 걸 이 채을 통해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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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는 나라에 시급한 일이 생겼을 때, 즉, 전쟁같은 난이 일어났을 때 아군에게 알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봉화를 올리는 곳이 봉수, 봉수대이다. 그저 위급상황에서만 쓰이는 기관이라고 알고 있었다. 추가하자면 올림픽이나 국가행사 때 쓰이는 정도? 딱 그만큼만 알고 있었는데, 조선 전역을 통해 만사 평화롭다는 신호로도 사용된다는 걸 이 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인 최진연씨는 30여 년 간이나 산천을 떠돌며 이 책을 완성했다. 그 노력과 열정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답사의 사진들 하나하나 허투루 찍은 것없이 귀중한 사진들이었기 때문이고, 기록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문적인 역사가가 아니었던 저자는 현재 문화유적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진작부터 그랬어야 할만큼의 훌륭함이 책 곳곳에 나온다.

 

일단 전국에 봉수가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남북한 통틀어 1150여기가 있으며 북한에 650기 남한에 500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400기는 흔적이 남아있는데 접근이 어려워 210여기를 답사했다고 한다.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고 전쟁으로 훼손되어  복구된 것도 있었고 봉수라고 하기 어려울만큼 형체가 알아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복구시기도 다 제각각이며 고증이 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었다. 어찌보면 안타까움이 남지만 어찌보면 다양성이 남기도 한 것 같다.

 

저자는 봉수대의 위치와 형태나 축조시기 등을 전해주고 있다. 더불어 봉수가 위치한 지역의 주변이나 역사까지 훑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봉수란 그저 돌무더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다. 저자가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고 학술서가 아니기에 이 책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20년동안 김주홍 박사와 소통하며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김주홍 박사는 국내 유일의 봉수전문가로 조선시대 봉수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어떻게 보면 국내 유일의 봉수전문가라는 말이 서글프기도 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들이 너무 적다는 말이랑 상통하기 때문이다. 좁게 보면 결국 김주홍 박사와 저자인 최진연씨 말고는 국내에 봉수관련 인물들이 없는 게 아닐까

 

전기가 없었던 그 시대에 봉수의 활용도는 높았다. 만약 지금까지도 전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싶다.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있는 봉수를 너무 소홀하게 알고 있었고, 좀 더 우리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예전보다 더 많이 들었다.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이 수반된 훌륭한 문화유산인 봉수들이 아낌없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면 좋겠다.

 

d*******2 2015.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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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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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개화의 가속화가 내겐 더욱 아날로그가 그 때가 그립게만 한다.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아날로그 시대의 아날로그의 감성이 그리운게다.뭐,그 때를 회상하고 동경해 보지만 다시 되돌아 올 풍경이 아니기에 더한 여운만 남겨주는 듯 하다.과거와 달리 지금은 디지털망명시대다.편리한 디지털 시대,스마트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1초의기다림마저도 지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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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개화의 가속화가 내겐 더욱 아날로그가 그 때가 그립게만 한다.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아날로그 시대의 아날로그의 감성이 그리운게다.뭐,그 때를 회상하고 동경해 보지만 다시 되돌아 올 풍경이 아니기에 더한 여운만 남겨주는 듯 하다.과거와 달리 지금은 디지털망명시대다.편리한 디지털 시대,스마트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1초의기다림마저도 지루해 할만큼 그 속에서 지배 당하고 있다.그래서인지 나는 기기와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전하는 감성을 느끼고 싶다.나의 넋두리는 '옛 이동통신 봉수'란 책을 읽고서 시작 되었다.'우리 터 우리 혼,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고 표제부에 적힌 문구의 주인공은 '봉화'다.봉수(烽燧)는 흔히 봉화라 하며 수십 리의 거리를 두고 서로 살피기 좋은 요지의 산 정상에서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발휘해 위급한 일을 재빨리 알리는 경비 전신 역할을 맡아오던 중요 시설였다.과거 전통적인 통신제도인 봉수를 나도 책을 통해서 깊이 알게 된 계기였다.
 
 
저자인 최진연,그가 30여 년간 산천을 떠돌며 버려진 성곽,봉수,옛 다리등을 찾아 글과 사진으로 담고 있다.또한 그는 버려진 우리의 유적등을 사진으로 기록해 책을 내는 등 국내에서 유일한 독보적인 사진작가라고 한다.그런 이유에서 그가 30여년 발품 팔아 찾아낸 봉화를 통해 아직 일반인의 봉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장본인이 아닌가 싶다.봉수제는 삼국시대에 원시적인 형태로 활용되기 시작해 고려시대에 정례화 되었다고 한다.그 후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국가경영의 통신망으로 유지 되었다고 한다.그런 후 고종 31년 갑오경장때 철폐되었다고 한다.봉수제의 철폐이후 120년이 지나면서 존재가치마저 잊혀져가는 상태에서 저자는 남한 지역 곳곳에 산재한 봉수 210여 기를 직접 답사해 사진과 글을 남긴 것이다.최전방 비무장지대(DMZ)의 도라산봉수에서 제주도 오소포연대까지 전국의 봉수대를 그의 열정으로 발로 뛰며 찾아낸 결과물을 보며 실로 감사한 마음이 절절하기까지 하다.세월이 흘러 자연 유실된 봉수,잘못 복원된 봉수,관광상품화 된 봉수등의 이야기등을 보면서 앞으로 봉수 관리 및 보존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동시에 우리 삶 터 곳곳에서 만나는 유적들에 스민 우리의 옛이야기에 자발적인 관심과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때가 지금부터가 아닌가 싶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과거 기억을 기억하기 위한 호국유적 봉수를 통해 잊혀져 있던,잃어 버리고 있던 그 옛 것에 대한 향수가 함께 한 시간였다.


 

k*****5 2015.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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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 이동통신 봉수 :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 주네
"[서평] 옛 이동통신 봉수 :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 주네" 내용보기
30여년간 전국 팔도에 세워졌던 봉수를 답사하고 조사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봉수가 세워진 지역을 직접 찾아가 주변을 조사하고 답사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책에 나온 사진들을 보면 원형 그대로 보존한 곳보다는 1885년 전신·전화 등 근대통신장비가 도입되면서 고종 32년 왕명으로 중단된 이후 방치된 채 파괴되거나 유실된 봉수가 많다고
"[서평] 옛 이동통신 봉수 :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 주네" 내용보기



30여년간 전국 팔도에 세워졌던 봉수를 답사하고 조사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봉수가 세워진 지역을 직접 찾아가 주변을 조사하고 답사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책에 나온 사진들을 보면 원형 그대로 보존한 곳보다는 1885년 전신·전화 등 근대통신장비가 도입되면서 고종 32년 왕명으로 중단된 이후 방치된 채 파괴되거나 유실된 봉수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시설이기에 다른 용도로 변경되거나 복원을 했더라도 관련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봉수도 볼 수 있었다. 조선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증보문헌비고>에 보면 봉수는 전국에 676기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봉수전문 학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1,150여기인데 이중 북한이 650여기이고, 남한이 500여기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근데 이 중에서도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건 400여기라고 하니 표지처럼 봉수 전문가가 아니면 단지 돌무더기에 불과한 채 남아있는 봉수가 많다고 한다.


봉수는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알리기 위한 통신수단이었다. 봉수꾼이 봉수대 근처에 기거하면서 전국에서 전해져오는 신호를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동통신이었던 셈이다. 만약 연기를 피울 수 없는 상황이면 말을 이용하여 다음 봉수대에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현재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은 수원 화성봉돈이다. 모양을 보니 남산 정상에 세워진 목멱산봉수가 복원할 때 많이 참고한 듯 싶다. 이 책은 역사에 있어서 봉수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지금 남아있는 봉수는 어떤 형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준다. 어떻게보면 인기없는 주제일 수도 있다.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단지 봉수라는 것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 실린 사진으로 만나보는 봉수를 보고 있으면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땅을 살았던 선조들도 원거리에서 위험유무를 가장 빠르게 알릴 수 있는 통신수단을 고민해왔다는 것이고, 산 정상에 수많은 봉수대를 세우면서 소식을 전해들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역사를 기억하는 일만큼이나 잘 보존하고 발굴해내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중요하지 않다며 유지보수에도 소홀히 할 때 하나둘 자연스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30여년간 저자는 발로 뛰면서 현재 남아있는 봉수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있다. 문헌에는 나와있다고 하지만 봉수를 기록한 자료는 몇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옛 이동통신 봉수>는 근래 봉수의 기록을 담은 최초의 책이자 역사서로써 기억될 것이다. 봉수마다 형태도 다르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 봉수대에서 바라본 주변 지형의 모습까지 실제 살아있는 역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c******d 2015.0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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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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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란, 봉(烽, 횃불)과 수(燧, 연기)로 연기와 불로 급한 일을 전달하던 중국과 고려, 조선의 고대 통신 수단이다.  봉화는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재난 등이 일어 났을때 병란이나 재난이 일어 났음을 알리기 위하여 봉수대에서 신호를 올리는 불"을 말한다. 그에 반해 봉수는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재난 등이 일어 났을때 봉수대에서 "밤에는 햇불"을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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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란, 봉(烽, 횃불)과 수(燧, 연기)로 연기와 불로 급한 일을 전달하던 중국과 고려, 조선의 고대 통신 수단이다.  봉화는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재난 등이 일어 났을때 병란이나 재난이 일어 났음을 알리기 위하여 봉수대에서 신호를 올리는 불"을 말한다. 그에 반해 봉수는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재난 등이 일어 났을때 봉수대에서 "밤에는 햇불"을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한 일을 중앙에 전달하는 군사통신제도를 이르는 말이다.


봉수대는 불빛이나 연기로 소식을 전하는 장소(곳) 보통 산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국가의 안보 상태와 직결되어 외국의 침략을 막거나 미리 알리는데 크나큰 통신망의 역할을 했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대에 있어서 국가 방어체계의 하나인 봉수는 원거리 통신수단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봉수는 전파 등을 활용할 수 없었던 전근대의 기술적 수준에 있어서는 매우 우수한 통신수단의 하나였다.  높은 산에 있는 봉수대에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위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전했다. 동양에서는 물론 서양의 고대사회 및 미개사회에서 널리 상용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최진연'님은  저자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장, 대한뉴스 화보 사진 부장을 거쳐 지금은 데일리안 문화유적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30여 년간 산천을 떠돌며 버려진 성곽,봉수, 옛 다리 등을 찾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지난 1987년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과 '한국사진문화상'을 수상하고 옛 다리와 관방유적 등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15차례 이상 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책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최전방 비무장지대(DMZ)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의 봉수대를 발로 뛰며 찾아다니며  우리나라 봉수 218개소 중 멸실된 곳 7개소를 제외, 현존하는 211개소와 봉수의 시원지로 알려진 경남 진해 망산도비문 1개소를 전한다. 또한 봉수대 사진 400컷과 역사자료, 주변 환경 등을 토대로 소상하게 정리한 내용이 담겨있다. 대부분의 봉수는 산 정상에 축조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조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 유실되거나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한다.

 

k****7 2015.0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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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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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란 전화가 없던 그 시절, 그 옛날에 급한 일 즉, 침략이나 나라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빠르게 소식을 알리기 위한 통신 체계라는 것 밖에 모르고 여전히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 이동통신 봉수>라는 도서의 제목을 본순간 옛날에 전화와 빠른 교통수단과 우편 시스템이 없었는데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답니다. 이 도서의 내용을 살펴본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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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란 전화가 없던 그 시절, 그 옛날에 급한 일 즉, 침략이나 나라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빠르게 소식을 알리기 위한 통신 체계라는 것 밖에 모르고 여전히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 이동통신 봉수>라는 도서의 제목을 본순간 옛날에 전화와 빠른 교통수단과 우편 시스템이 없었는데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답니다. 이 도서의 내용을 살펴본바 여기저기 우리나라에 많은 곳에 흩어져 있다니 이 도서의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흔적들과 역사를 직접 손수 뛰시면서 찾아가시면서 답사를 하신 사실 그대로를 담으셨다니 너무나 읽고 싶어 이렇게 펴쳐보기 시작했답니다.

이 도서 <옛 이동통신 봉수>는 총 아홉개의 지역별로 나누어서 파트를 구성해 봉수의 터전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각 페이지 별로 많은 사진들이 그 곳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어서 꼭 이곳에가서 주변 환경도 살펴보고 할 수 있도록 전해주고 있답니다.

서울 인천 경기지역, 강원 대구 경북지역, 충북 내륙지역, 충남 전북 지역, 부산 울산 지역, 경남 해안 도서 지역, 전남해안과 도서지역, 제주도 연대들, 마지막으로 그 지역 외의 봉수들로 나누어서 현장감이 넘치도록 설명해주고 있어 그 당시에 어떠했는지 대감 짐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봉수대가 각 산등성이마다 있었다니 너무나 놀랐습니다. 무심결에 도심 속에서만 살아가는 나로써 봉수대가 이렇게 많이 있었다니, 우리 선조들의 봉수대를 활용한 지혜를 엿볼 수있어서 좋았습니다. 6.25 전쟁으로 무너졌던 여러 봉수대들 또한 지금은 복구를 해서 옛 날의 모습을 복원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전기가 없던 그 당시의 봉수대의 활용을 했던 모습을 잘 살려서 갑작스런 응급상황에 사용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전기가 없다면 전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써 엄청난 혼란이 돌아올텐데 이때를 위해서라도 봉수대를 잘 살피고 보존해 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봉수대 소개를 하면서 그 곳의 위치와 형태, 만들어진 시기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전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봉수대에 관한 정보들을 살펴볼 때마다 느꼈던 점은 모든 봉수대는 산등성이 꼭대기에 있다보니 그 곳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봉수대를 올라가 살펴본다면 우리나라 전문 지리자가 될 꺼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이동통신의 전신이 봉수였음을 생각티 못했던 터라 그 내용들이 정말로 참신합니다. 그러나 정반적으로 읽었을 때 봉수도 이동통신도 모두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이 얼마나 더 발전하고 우리의 생활을 변화하게 할지 봉수에대한 역사와 우리 문화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 탐험을 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도서 <옛 이동통신 봉수>였습니다.

s****s 2015.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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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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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흔히 봉화대로 알려진 이 시설물에 대해서 지금껏 나는 특별히 무언가 '특별하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봉수대만을 소개하고, 또 봉수대의 오늘을 말하는 이 책 의 내용을 접하면서, 나는 오늘날 무관심 속에서 변형되고, 파괴되는 봉수의 오늘을 알게되 었다.    봉수란 무엇인가? 과거 편지, 파발마 같은 수동적인 통신수단에 의지하던 시대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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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흔히 봉화대로 알려진 이 시설물에 대해서 지금껏 나는 특별히 무언가 '특별하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봉수대만을 소개하고, 또 봉수대의 오늘을 말하는 이 책

의 내용을 접하면서, 나는 오늘날 무관심 속에서 변형되고, 파괴되는 봉수의 오늘을 알게되

었다.    봉수란 무엇인가? 과거 편지, 파발마 같은 수동적인 통신수단에 의지하던 시대에 있어

서, 봉수는 한반도에 있어서 가장 빠른 통신수단으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실제로 조선시대 구

축된 봉수시스템이 부산에서 한성까지 12시간만에 '(긴급)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 시대에 있어서 그것은 나라와 각 지방을 연결하는 가장 요한 연결고리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봉수 중에서 '서울'의 봉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얼핏보면 '돌 무더

기' 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만큼 철처하게 회손되고 또 파괴된 모습이 드러난다.   어째서 고려

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오랜기간 한반도의 통신을 책임지던 봉수가 이처럼 초라한 모습

을 보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인 일제시대를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 6.25

전쟁을 겪으며 파되된 탓도 크지만, 그 후 후손들의 무관심과, 지방관청의 성의없는 '전시행정'

에 의한 파괴가 제일 큰 문제로 떠오른다.

 

실제로 저자의 필름에 찍힌 사진들을 들여다 보면,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봉수도 오늘날 군부대

의 헬기장이나, 방송 송신탑을 만든답시고, 허물어지고, 밀려나고, 파괴되는 등의 많은 수난을

당한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기껏 관광상품, 올레길, 산책로 등으로 계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해도, 역사적 고증이 없이 그럴듯하게 지어지거나, 심지어는 시멘트까지

섞어 무리하게 쌓아올린 봉수의 모습은 저자에게 있어서, 절로 한숨을 지어지게 하는 한심한

'행정'의 결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봉수의 특성을 살리

고, 그 주변환경의 아름다움을 이용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가치는 빛을 발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봉홧불을 올리는 봉수의 특성상 대부분의 봉수는 산 위, 아니면 주변이 확 트

인 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봉수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거나, 그곳에 존재하

는 '봉수의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광고와, 연구만 진행된다면, 사람들은 굳이 화려하지 않더라

도, 아니... 그 초라한 동무더기 속에서라 할지라도 진정한 (한반도의) 역사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q*******a 2015.03.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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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 이동통신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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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의 노력에 감사함과 박수를 먼저 보내고 싶다. 이제는 필요없는 유물에 해당하는 봉수를 이렇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며, 사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긴 저자의 노고는 책을 잠시만 훑어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국가안위를 책임졌던 봉수는 1150여기가  있으며, 북한에 650기, 남한에 500여기 정도가 파악되고 있고, 이중에서 400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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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의 노력에 감사함과 박수를 먼저 보내고 싶다.

이제는 필요없는 유물에 해당하는 봉수를 이렇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며,

사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긴 저자의 노고는 책을 잠시만 훑어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국가안위를 책임졌던 봉수는 1150여기가  있으며,

북한에 650기, 남한에 500여기 정도가 파악되고 있고, 이중에서 400여기는 지금까지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봉수의 특성상 정상에 위치하고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 많아 책에 수록된 봉수의 수는 210기정도라고 한다.

 

솔직히 책을 보며 조금 놀란것은 아이들의 교과서나 사진속에서 본 모습만큼

웅장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봉수는 거의 없고,

대부분 그 소중함을 지키지 못해 유실되거나 제대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자신의 문화를 잘 지키면서 새로운 문화도 받아들인 경우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의 것들의 소중함을 알지못해 다 망가진 후에야 복원작업을 통해,

옛것을 흉내 내놓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책은 총 아홉개의 챕터로 나누어 봉수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지역으로 나누어 210기에 해당하는 봉수들을 주변 경관과 함께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그와 관련된 봉수 이야기까지 들어있어,

봉수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부분의 봉수들이 절이나 산정상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과 잘 정리된 봉수들을 공부하기위해 한번쯤 가보는 것도 무척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라하면 이제는 사용하지도 않고,필요하지도 않은 건축물이라,

평소에 나조차조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나니 조상의 지혜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잘 보전하고 아끼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중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봉수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책을 보고 나면 관심이 생기게 될 만한

흥미를 가진 책이니, 아이들과 함께 보며 한곳을 정하여 나들이 겸 직접 방문해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문화를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r******3 2015.0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