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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화가이자 팝 아트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에 대한 작품론과 작가론으로 쓴 책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일대기이고, 전기(傳記)로 봐도 무방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초기에 추상 표현주의의 작품을 그리다가 1961경부터 만화에 관심을 돌려 독자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그 당시에 일상품, 만화, 광고 등의 소재를 사용한 것이 반예술 계열로 보이게 했으나 사실은 정보사회의 아이콘을 작품에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현대 미국 미술의 대표적 작가로 이미 미술대사전 인명편에도 등재돼 있다. 그는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콜럼부스의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수학했다. 처음에 추상 표현주의풍의 작품을 그렸으나 1961경부터는 만화로 관심을 돌려 독자적 스타일의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저자 재니스 헨드릭슨도 이 책에 쓰고 있다. 일상품과 만화, 광고 등 기성 이미지를 제재로 하는 점에서 반예술 계열에 속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 정보사회의 아이콘을 명철하고 견고한 조형력에 의하여 회화형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오브제를 채용하는 입장과는 다르다고 한다. 1964년 이후 풍경, 추상표현주의에서 아르데코의 의장 등으로 주제를 넓혀 자신의 스타일 가능성을 추구하였으며, 1970~1972년에는 자신의 조형언어만으로 성립된 추상적 『거울』 연작을 제작했다. 그 후에는 미래파, 표현주의 등 20세기의 아방 가르드(전위미술)의 작품을 주제로 들 수 있다. 그외에 판화 입체도 제작했다. 만화를 제재로 한 작품에는, 『물에 빠진소녀』 (1963 뉴욕 현대미술관), 『Whaam!』(1963, 런던 테이트 갤러리) 등이 있다.
저자 재니스 헨드릭슨은 '베이식 아트 시리즈'의 하나로서 이 책의 집필을 맡았다. 헨드릭슨은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마틴 원케 밑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녀는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 피카소 작품집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으로 거듭났다. 그 이후 간결하고 얇은 작가별 도서는 200여 종이 넘게 제작되었고, 20여 개 국어로 출간되었다.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뛰어난 제작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훌륭한 삽화와 지적인 내용을 담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출판사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각각의 책이 지닌 주제 의식은 활력이 넘치면서도 어렵지 않아 가까이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2005년 첫 한국어판을 출간한 이후 15년 만에 새롭게 재출간됐다. 이번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는 전보다 더 커진 판형과 도판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작품 이미지를 전달하도록 양장본으로 펴냈다. 책에 따르면 미국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은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산업 생산 기법과 만화, 연재만화, 광고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같은 동시대 인물들과 미국 대중매체와 소비문화를 반영하고 풍자했다. 특히 벤데이 점 인쇄와 같은 대량 생산 기술로 제작한 〈이것 좀 봐 미키〉, 〈물에 빠진 소녀〉, 〈와아앙〉은 픽셀화된 ‘점’ 스타일을 만들었고, 이는 리히텐슈타인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이 책은 추상표현주의와 팝 아트 초기작부터 후기 ‘붓자국’과 현대 걸작의 재해석에 이르기까지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필수적인 내용을 제공한다.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에서 그의 주도적인 위치와 작품들이 20세기 미국을 어떻게 비판하고 연대하는지 살펴본다.
독자는 미술을 특별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지 못해 화가 중 현대 화가, 그 중에서도 미국의 현대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을 정도로 문외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책을 많이 읽다보니 '힐링 도서'의 일환으로 미술, 미술사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미술이나 화가에 대한 지식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미술 수업이 전부였다. 그때 미술 교과서에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등장하지만 현대 화가들은 별도 장(章)을 마련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구색 맞추기인지 피카소는 워낙 유명한 화가고 미국에서 활동하지 않아 서양 화가의 (章)에 몬드리안, 간딘스키와 함께 실렸지만 그 외의 화가들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의 만화를 통해 몇 번 접한 기억이 있어 이 책과는 첫 인연인데도 낯설지는 않았다. 물론 책 안으로 들어가면 '멋지다'는 탄성(개인 입장에서)이 나올 정도의 그림도 여러 점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게 했다. 책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은 마흔에 가까워질 때까지 그의 화풍과 작품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미술계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1962년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미술계의 리더가 되었다. 한 해 전 그는 가끔 보여주던 불손한 유머 감각에 어울리는 회화 양식을 발견했으며, 뉴욕의 유명한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의 후원을 받게 됐다. 그리고 곧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었다. 그가 연필로 슨케지하고 유화로 완성한 초상화 〈조지 워싱톤〉을 그렸는데 이 초상화가 한때 미국 1달러 지폐에 담겼다고 한다. 저자는 이 초상화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동안 만나게 될 많은 생각을 담고 있어, 그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꼽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우선 작품의 주제가 유명하고 영웅적이면서도 평범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또 18세기 미국 회화의 싸구려 복제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점도 특징이라고 밝힌다. 〈조지 워싱톤〉은 길버트 스튜어트가 이미 100점 이상의 워싱턴 초상화 복제화를 그린 이후 이를 보고 그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의 워싱턴 초상화는 원작의 복제의 복제의 복제쯤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유머뿐 아니라 이 작품의 모순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그림의 특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리히텐슈타인의 회화 기법은 대량 생산되어 신문에 인쇄된 원본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것이다.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차고 및 주차장 전문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그의 가정에 예술적인 경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굳이 그런 사실까지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이 책에 적고 있다. 미술 과목이 없는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며 드로잉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취미로 집에서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렵 재즈에 빠졌다. 그는 할렘의 아폴로 극장과 52번가의 재즈 클럽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그는 벤 샨 같은 미국 화가들처럼 음악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종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청년 리히텐슈타인은 가장 흥미진진한 문화적 영감을 찾아 뉴욕을 배회했다. 재즈에 매혹된 일은 그가 시각예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입체주의 화가들이 흑인 문화를 애호한 것에 공감했고, 아프리카 미술뿐 아니라 미국 재즈를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레지널드 마시가 그의 첫 스승이고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를 존경했다. 마시는 마치 풍자화처럼 알아보기 쉽게 일상의 주제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는 세계를 다루었으며, 입체주의나 미래주의 같은 전위적인 유럽 추상미술은 거부했다. 이 사조들은 1913년 뉴욕, 시카고, 보스톤에서 열린 아모리 쇼을 통해 미국에 소개된 이후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시의 관점에서는 유명해지기보다 '악명 높아진 것'이었다. 이런 전위미술은 마시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추상을 거부하고 오히려 회화성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시는 대중에게 매력을 느껴 사람들의 얼굴을 빠른 붓놀림으로 묘사했으며, 놀이공원과 해변, 코니아일랜드, 지하철 등 색과 움직임으로 가득 찬 도시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이런 마시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리히텐슈타인은 마음속의 느낌이나 현실세계를 기록하는 것보다는 미술과 미술작품 제작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1950년까지 리히텐슈타인은 말년의 피카소, 브라크, 클레의 영향을 받은 반추상화를 그렸다. 1951년 그는 강사로 채용되지 못하고 아내의 직장이 있는 클리블랜드로 이사해 6년간 살면서 토목 설계사, 창문 장식사, 금속판 디자이너 같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그림을 일을 하고나서 그렸다. 그는 실제 풍경, 모델, 순수 추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뉴욕에서 전시를 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에 눈을 돌렸다. 추상표현주의에는 외향적 형식과 내향적 형식이 있다. 외향적 형식인 액션 페인팅은 미술가의 에너지와 즉흥적 기법에 의지하는 것으로 물감에 담배 꽁초나 유리를 섞어 커다란 캔버스에 뿌리기도 하고 방울방울 떨어뜨리거나 바르는 것이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 쿠닝이 이런 직접적인 표현방법을 강조했다. 앤디 워홀은 추상표현주의의 세계는 상당히 마초적이라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리와 촉감 같은 감각, 혹은 중요성이나 흥분 같은 추상적인 성질을 기호로 표현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대중적인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 가던 리히텐슈타인에게 관심을 표한 사람은 또 다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이었다고 한다.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그림을 부러워한 것은 벤데이 점 때문이었다. 벤데이 점은 검은 윤곽선이나 제한적으로 선택한 몇 개의 산업적 색보다 그림에서 돋보였다.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 낸 이미지는 오랫동안 순수미술과 결합되어 왔지만 아무도 콜라주나 회화적 모티프 이상의 표현으로 확장할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 같은 인쇄기술을 참고해, 인쇄된 출처에 적용된 구상을 그대로 살렸다. 자신이 원용한 출처에서 거리를 두지 않았다고 리히텐슈타인을 비난한 비평가와 상업미술가들은 확실히 그림의 내용뿐 아니라 양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이 모든 초기작에서 벤데이 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벤데이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62년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 〈모자 쓴 여인〉을 개작했다. 그는 배경은 벤데이 점으로, 가슴은 10대 만화 속 소녀들의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게 그렸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처음에는 피카소의 그림을 캐리커처처럼 변형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몇몇 비평가들은 그렇게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이 가한 변화를 눈여겨보면 이런 해석은 타당성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색은 맑아졌고 중심색인 노랑과 파랑만 쓰였으며, 형태들도 단순해지고 모든 형태에 똑같은 구성적 무게가 실렸다.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원작의 구성을 변형해 자기의 양식을 피카소의 형태와 결합했다고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리히텐슈타인은 예술의 불멸성에 대해 회의적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파란 붓자국이 있는 벽화〉의 흘러내리는 파란 폭포는 리히텐슈타인의 붓자국 모양을 가장하고 있지만 붓자국의 질감을 띠지 않으며, 마치 청소를 도우려는 듯 한쪽 구석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p.90)
리히텐슈타인은 여러 가지 탐험을 했지만 모더니티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행 중에 많은 영역을 발견하고 또 재발견했다. 아마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 거슬리는 모순과 숨겨진 유머일 것이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과연 21세기에 미술이란 또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를 남겨놓았다.(p.91) - 「편집, 생략, 뒤섞기」 중에서
저자 : 재니스 헨드릭슨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마틴 원케 밑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녀는 작가이자 큐레이터이다.
역자 : 권근영 수원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이동도서관이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로 전학 후 중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3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MFA 첨자 처리)를 받은 뒤 기자가 됐다. 이후 10년 넘게 미술·문화에 대한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에 칼럼 「그림 속 얼굴」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를 연재했고, 지은 책으로 『나는 예술가다―한국 대표 예술가 10인 창작과 삶을 말하다』가 있다. 광주비엔날레 연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JTBC 스포츠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자를 하며 만난 미술가들, 대학과 미술관 강의 때 만난 미술에 대한 열정 가득한 사람들, 또 세계 곳곳으로 취재를 다니며 접한 명작들은 삶의 어두운 순간을 ‘반짝’ 밝혀주는 빛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의 나눔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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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이름을 몰랐을지라도 그림은 본 적있을 법한 만화풍의 그림, 상업적 그림이라고 하면 앤디 워홀이 주로 떠오를 테지만 그림을 보면 익숙하게 아하 이그림! 하게 되는 또다른 상업적 그림들의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미술전문 출판사인 마로니에 북스에서 베이식아트 시리즈로 나온 책들은 도판이 크고 선명해서 그림 보기에 참 좋으면서도 화가 한 명을 집중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는데 이번 화가는 '팝 아트의 창시자' 라고 불리는 대표적 미국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미술시장의 주류와 관계를 맺으려 (p. 16)' 애썼지만 화가로서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을 때 리히텐슈타인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는 힘들었고 그렇게 리히텐슈타인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다른 방향의 표현법과 주제를 생각하게 되면서 디즈니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업인쇄 기법을 응용하고 만화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넘어 말풍선까지 넣은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예술로 간주될 수 있었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Yes 이다. 심지어 리히텐슈타인과 비슷한 시기에 앤디 워홀도 만화 주인공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 표현기법에 있어 더 창조적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워홀의 그림을 제치고 갤러리와 계약을 하게 된다.
'리히텐슈타인은 상업미술의 즉각적인 힘에 매료됐을 뿐더러, 상업미술 작품의 형태 속에 미술가의 의도가 효율적으로 나타나는 데 감탄했다. (p. 26)' 리히텐 슈타인은 디즈니주인공들을 그리고 광고지나 다른 상업적인 것들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그림에 대한 화가로서의 의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만의 독창적 그림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팝아트계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 만화풍도 특징적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가치를 높여준 것 중 하나는 '벤데이 점'을 활용한 표현법이었다. 그렇다고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모두 만화적이고 모두 벤데이 점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여러 해 동안 리히텐슈타인은 미술양식 시장을 어슬렁거리듯 거의 모든 현대 미술 운동에 반응했다. 그러나 그가선택해 응용한 양식들은 본질적으로 개별적인 형태의 단위였기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은 연대기적 순서를 지켜가며 미술사에 반응하지는 않았다. (p. 70)' 만화풍의 그림만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보며 리히텐슈타인의 새로운 그림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까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그가 어떤 스케치를 했고 어떤 만화 캐릭터를 그렸으며 어떤 아르데코풍을 묘사했고 어떤 화가의 그림을 참고했든 간에 전체적으로 모던하다. 그래서인지 깔끔한 모던풍을 좋아하는 나는 이 책 속 리히텐슈타인의 그림들을 보는 내내 편안하고 좋았다. 그가 어떤 풍자를 담고 어떤 의미를 숨겨놓았든 상관없이 그림을 불편한 마음 없이 그저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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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니스 헨드릭슨 / 마로니에북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은 나에게 낯설게 다가왔지만 어쩐지 그의 그림들은 조금씩 낯이익은 느낌이다. 알고 보니 몇 년 전인가 삼성에서 비자금으로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을 구입한 사건이 뉴스에 등장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행복한 눈물을 그린 화가가 바로 로히텐슈타인이라는 것이다. 당시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그동안 갖고 있던 예술의 그림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는 로히텐슈타인의 그림이 어떻게 그렇게 고가의 미술품이 되었는지 의아해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보통의 미술, 예술이라고 하면 섬세한 터치과 고상한 느낌, 그리고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깊이가 느껴지기 마련인데. 어떤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것은 만화같은 느낌이 짙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팝아트라는 장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해졌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그간 미술계가 이끌어 가던 흐름을 바꾸고 팝아트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미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예술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이라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미 그는 남들의 편견을 깨면서 예술의 그것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생소했던 분야와 낯선 이름이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조금씩 로이 리히텐슈탄이 느껴진다. 그가 어떤식으로 인생을 그렸으며 예술계를 뛰어넘는 업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배울만한 기점이 분명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분야든 자신의 믿음과 재능이 있다면 확실한 업적과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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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나 역사를 주제로 그린 그림,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등을 보면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웅장하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 현대 미술에서 유명한 작품을 보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죽은 상어를 박제해서 포르말린에 넣고 자신이 잤던 어질러진 침대 그대로를 예술이라고 합니다. 깜박이는 형광등이나 수프캔을 그대로 그린 그림도 유명한데 화가의 설명을 들어봐도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잘 와닿지 않네요. 그중에는 만화의 한 장면을 크게 확대해서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여자가 두 빰에 손을 댄 채로 행복하게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유명한데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은 예술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타셴의 책으로 이번에 마로니에북스에서 번역해서 나왔네요. '행복한 눈물' 은 과거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의 표정을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이기는 하네요. 화가가 직접 그렸기 때문에 예술 작품이기는 하지만 예술적인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는 궁금했습니다. '공을 든 소녀' 역시 리히텐슈타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흑백 광고물에 나온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나온 작품이네요. 이러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무척 인기가 높아서 경매에서 수천만 달러에 거래되며 1억 달러를 넘는 작품도 있다고 합니다. 만화의 한 장면을 모티프로 하였지만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네요. 리히텐슈타인하면 자연스럽게 만화가 떠오르는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리히텐슈타인 작품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그림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점입니다. 이러한 점을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하는데 리히텐슈타인이 하나하나 직접 그린 것은 아니며 구멍이 뚫인 판을 이용해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점묘법을 만든 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가 생각났는데 쇠라는 모든 점을 직접 그렸지만 리히텐슈타인은 빠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두 기법의 차이가 언급되어 있는데 벤야민 데이 주니어가 창안한 벤데이 점을 보면서 예술에 응용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리히텐슈타인도 대단한것 같아요.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기 때문에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술 전공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이후 교수로 강의도 하였네요. 작품 세계 역시 벤데이 점을 이용한 그림 뿐만 아니라 '일출', '나무 사이의 붉은 헛간' 등과 같은 그림도 있습니다. 원색을 적절히 사용하고 사물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서 놀랐네요.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책은 도록으로서도 가치가 있는데 큰 책에서 선명한 컬러로 보니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달리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와도 어울리면서 서로 예술적인 영감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세계에 한발짝 다가선 기분으로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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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만 좋아해서 인상파에 대한 책만 읽었는데 이제는 다른 화풍들도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 제니스 헨드릭스는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마틴 원케 밑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녀는 작가이자 큐레이터이다. 미국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산업 생산 기법, 만화, 연재만화, 광고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같은 동시대 인물들과 미국 대중매체와 소비문화를 반영하고 풍자했다. 이 책은 추상표현주의와 팝 아트 초기작부터 후기 붓자국과 현대 걸작의 재해석에 이르까지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필수적인 내용이 나온다. 앤디 워홀 그림과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책 맨 앞표지를 보면 리히텐슈타인의 사인이 있는데 무난한 것 같다. 리히텐슈타인은 강사를 하다가 작품 활동에 전념하려고 그만두었다. 1962년 마흔에 가까워도 리히텐슈타인은 이렇다 할 경력도 없고 그저 반쯤 출제한 정도였다.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차고 및 주차장 전문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미술 과목이 없는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고 재즈에 빠졌다. 마시가 그의 첫 스승이고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를 존경했다. 나중에 피카소에 대한 책도 읽을 생각인데 연결이 돼서 좋은 것 같다. 1940년 고교 졸업 후 리히텐슈타인은 화가가 되기로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미술 강사로 채용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강사로 일했고 이런 지적인 환경은 그의 작품이 더욱 분석적 경향을 띠게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마음속의 느낌이나 현실세계를 기록하는 것보다는 미술과 미술작품 제작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1950년까지 리히텐슈타인은 말년의 피카소, 브라크, 클레의 영향을 받은 반추상화를 그렸다. 1951년 그는 강사로 채용되지 못하고 아내의 직장이 있는 클리블랜드로 이사해 6년간 살면서 토목 설계사, 창문 장식사, 금속판 디자이너 같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그림을 일을 하고나서 그렸다. 그는 실제 풍경, 모델, 순수 추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뉴욕에서 전시를 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에 눈을 돌렸다. 추상표현주의에는 외향적 형식과 내향적 형식이 있다. 외향적 형식인 액션 페인팅은 미술가의 에너지와 즉흥적 기법에 의지하는 것으로 물감에 담배 꽁초나 유리를 섞어 커다란 캔버스에 뿌리기도 하고 방울방울 떨어뜨리거나 바르는 것이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 쿠닝이 이런 직접적인 표현방법을 강조했다. 앤디 워홀은 추상표현주의의 세계는 상당히 마초적이라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리와 촉감 같은 감각, 혹은 중요성이나 흥분 같은 추상적인 성질을 기호로 표현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대중적인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앤디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그림에서 부러워한 것은 벤데이 점이었다. 나도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보면서 저 점들의 집합은 뭔지 항상 궁금했었다. 벤데이 점은 검은 윤곽선이나 제한적으로 선택한 몇 개의 산업적 색보다 그림에서 돋보였다.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 낸 이미지는 오랫동안 순수미술과 결합되어 왔지만 아무도 콜라주나 회화적 모티프 이상의 표현으로 확장할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 같은 인쇄기술을 참고해 인쇄된 출처에 적용된 구상을 그대로 살렸다. 자신이 원용한 출처에서 거리를 두지 않았다고 리히텐슈타인을 비난한 비평가와 상업미술가들은 확실히 그림의 내용뿐 아니라 양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리히텐슈타인이 모든 초기작에서 벤데이 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벤데이 점은 그의 작품과 동의어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벤데이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 벤데이는 한 가지 톤만 시도했지만 목판화 같은 효과를 얻는 선과 결에 의한 그러데이션이다. 이를 위해 리헤텐슈타인은 음영을 표현할 필름을 필요한 위치에 고정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위치를 고정하는 정밀 기기를 사용해 인쇄 필름을 서서히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움직임을 반복해 첫 판에 색을 더하며 정확한 위치로 인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제작한 드로잉은 후에 포토 인그레이빙 과정을 거쳐 판으로 복제했다. 쇠라의 점묘법의 점은 리히텐슈타인의 점과 시각적 연관성이 있다. 자기 양식을 확립한 지 5년 뒤 리히텐슈타인은 새로운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리히텐슈타인은 그림을 그릴 때 미술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이루었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언제 작품을 만들었고 그 미술가가 그것을 원했는지 아닌지 생각하며 모든 종류의 미술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그는 미술적인 자의식을 자신의 방식에 사용했다. 다른 작품을 참고하거나 연상시키는 방식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의 작품에 만화 형태를 적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은 형태에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평면적 모양으로 형태를 단순화하는 피카소의 양식에 매력을 느꼈고 미술가로서의 피카소 위상에 기대려는 의도도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의 특정 회화가 아니라 피카소라는 인물의 의미를 사용했다. 미술 사조는 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가 있다. 오늘날 인상주의는 가장 인기가 있다. 인상주의에는 모든 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 한때는 전위적이고 기이한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19세기 말 저속해 보였던 주제는 오늘날 아주 존경할 만한하고 심지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형태의 해체와 빛의 유희는 한때 미숙한 회화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8월의 오후처럼 편안하고 조화로워 보인다. 리히텐슈타인이 인상주의를 작품의 주제로 삼은 것은 대중성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의 풍경화 연작은 외광회화를 그리던 인상주의자들의 수많은 풍경화에서 영감을 얻기는 했지만 리히텐슈타인은 몇 점의 인상주의 작품만 특별히 참고했다. <루앙 대성당세트 2번>은 날 각기 다른 햇빛에 잠겨 있는 대성당의 파사드를 그린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제목에서 모네의 의도를 고수했지만 그 의도를 자신이 완성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리히텐슈타인은 검은 윤곽선을 뺐는데 모네의 이미지를 원래 양식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모네의 그림에서 쓸 수 있는 특징들만 받아들이고 새로운 특징을 첨가하지는 않았다. 단순하고 겹쳐진 벤데이 점은 인상주의 회화의 붓자국 같은 얼룩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냈다. 1970년대 말에 착수한 초현실주의 연작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실내장식을 버리고 패스티시 양식으로 옮겼다.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만 그린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여러 가지 탐험을 했지만 모더니티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행 중에 많은 영역을 발견하고 또 재발견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 거슬리는 모순과 숨겨진 유어이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21세기에 미술이란 또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의 여지를 남겼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를 초현실주의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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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어?! 이 그림 아는데!!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신지......
'로이 리히텐슈타인'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한 그. 이번을 기회로 그의 이름을 새겨보려 합니다.
팝 스타 예술이 꽝! 터졌을 때
『로이 리히텐슈타인』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리히텐슈타인.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짧게 공부한 후, 오하이오에서 실습과정을 밟고 미술 학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특히 교수 중에 호이트 L. 셔먼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어두운 방에서 스크린에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비추는 '플래시 룸'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강한 잔상, 총체적 인상을 어둠 속에서 그려야 했다. 부분이 전체와 관계를 맺는 지점이 어딘지를 알아채는 것이 요점이었다. [...] 그것은 과학과 미학이 뒤섞인 작업이었고, 바로 내 관심의 초점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예술과 비예술을 규정하는지 늘 궁금했다. 셔먼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으로 통하는 길을 가르쳐주다. 그 자신은 이를 '지각의 통일'이라 불렀다." - page 10
시각이란 서술적이거나 감상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광학적 과정이라며 가능한 한 의미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지각력을 키워야 하고, 작품에 항상 예술가의 의도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셔먼의 생각이 리히텐슈타인에게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대상 지향과 피할 수 없는 미술가의 의도 지향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중시했던 리히텐슈타인. 이런 긴장감이 자기가 그린 이미지의 주된 힘일 뿐 아니라 이미지를 익살스럽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추상표현주의를 따라가던 1957년경,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운 조류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있었고 리히텐슈타인은 미술시장의 주류와 관계를 맺으려 애쓰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58년 럿거스에서 캐프로의 작품을 알게 되고 해프닝에 몇 번 참여하면서
해프닝은 재미있고 많은 것을 시사하는 연극적인 이벤트이며 자신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가운데 하나
라 말하며 이때부터 도발적인 만화 그림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전의 미술 감상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중요시되지도 않았던 전화번호부에 실린 작은 광고 드로잉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작품이 아무리 비개성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리는 과정 자체에 사람의 손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내재해 있음에 그는 고급예술에 익숙한 대중에게 가장 저급한 것, 가장 예술성을 박탈당한 예술을 제시함으로써 논점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구분 짓는 기준을 늘 알고 싶었다" - page 25
그래서 그는 일간지에 실린 휴양지 포노코스의 신혼여행 호텔 광고로부터 <공을 든 소녀>의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을 든 소녀>에 단순히 진부한 이미지만 재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추상적 형태를 조작해 특정한 의미를 연상하도록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확실히 이런 형태들은 다중의 의미를 지니며, 2차원적 표면의 디자인과 눈에 보이는 실제 그림의 명시적 의미 사이를 오간다. 리히텐슈타인은 자기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성은 적어도 주제만큼 신중하게 고려해 선택한 것이었다. <공을 든 소녀>에 나타난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원형은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에서 계속 되풀이된다. 후기의 만화 그림에서 그녀는 좀 더 세련된 모습이며 말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말풍선이 함께 등장한다. - page 32 ~ 33
그는 만화 같은 성격의 그림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형태의 작품도 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난해함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삶에 대한 풍자적인 통찰을 그려냈던 그로부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대중적인 미국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종종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어째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어째서 작업의 완전한 기계화를 좋아하게 되셨습니까?' '어째서 저급한 예술을 좋아하게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세상에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름대로 의견이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급'문화가 세련미를 독점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과연 어떤 것을 예술로 간주해야 하는지 새롭게 가치를 매겼다. '고급'문화를 지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했다. - page 38
늘 구분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던진 메시지. 마냥 '만화'같은 그림이라고 여겼던 저에게도 일침을 주었던 그의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작품은 모두 어떤 면에서 다른 예술에 관한 것이다. 그게 만화일지라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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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과 함께 팝 아트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라면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얼마 전 대기업 비자금 사건에서 그의 작품이 검색어로 떠오르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 영향인지 이전보다는 당시 팝 아트에 대해 주된 기사가 오르내린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의 작품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주된 것들이 디즈니 만화를 차용한 색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밖에도 그는 다양한 예술의 세계에 몸담고 직접 자신의 그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데에 실험적인 행보를 보였다.
뉴욕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화가가 되기 위해 오하이오주 주립대에 진학한 후 강사로도 활약하면서 작품을 개인전을 연 것을 비롯해 앤디 워홀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의 표현을 리히텐슈타인이 자신의 작품에 시도한 것을 보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점들이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 오늘날 각자의 예술 세계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그의 미술작품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유명한 기법인 벤데이 점은 각 작품 속에 그 특성이 그대로 녹아있게 창작한 과정이 만화로 유명한 화가란 인식 외에 기존의 타 작가의 작품을 복제라는 것을 통해 새로운 그만의 작품으로 탄생시켰고, 특히 모네의 루앙 대성당은 재해석을 통해 또 하나의 걸작을 남겼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초현실주의 스타일의 작품이나 미국만이 아니라 타 국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응용한 미술작품, 상업미술을 통한 기존 질서에 대항한 창작들은 눈여겨볼 수 있는 부분으로 다가온다.
틀에 매인 정형화된 작품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과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모습을 이용한 그만의 예술기법은 어떤 것에 한정돼 머무는 것이 아닌 추후 편집과 생략, 뒤섞기라는 시도를 통해 연작시리즈라는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원색과 점들의 연속성과 빈 공간의 배율, 여기에 선배들로부터 받은 지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나간 그의 노력은 오늘날 대중들에게 친숙한 광고, 만화, 붓의 터치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단 점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 책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자의 예술 세계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책으로 책을 통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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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를 다룬 연극 〈레드〉에는 팝아트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조수 켄의 말에 로스코는 깡통 수프나 만화 같은 것들을 그려놓는 게 무슨 예술이냐면서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바로 그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그의 이름은 몇 년 전 삼성이 비자금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을 구입했다는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의 가격에 놀라고 그림을 보고 또 놀랐다. 보통 명화 하면 떠올리는 어떤 고상함이나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만화같이 단순한 그림이어서다.
팝아트의 상징이 된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은 195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예술계에 뛰어들어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앞서 언급한 로스코의 비난은 예술계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아이들 장난 같은 그림을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대중들로부터 나왔다. 이런 비난에도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일상에서 소재를 찾았다. 그는 산업 생산 기법과 만화, 연재만화, 광고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미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술의 시작이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일상의 기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고 보면 일상에서 소재를 찾고 응용하는 게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소재를 활용한 예술작품은 미술관에 가야만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현실과 예술은 어렵다는 인식을 허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 더 흥미가 생기는 이유다. 그는 익숙한 소재들을 선택해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했고 동시대 인물과 대중들의 소비문화를 반영하고 풍자했다.
책은 강한 원색과 점들로 기억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예술관과 삶을 한 권에 담아낸다. 대표작들을 포함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만날 수 있고 책의 후미에는 화가의 일대기가 요약되어 있어 생애 전체를 걸친 예술혼과 인생관을 만날 수 있다.
선배들에게 배우고 자신만의 시선과 방식을 찾아내는 방식은 모든 예술가에게 필요한 태도와 마음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대표작 뿐 아니라 생애 전체에 걸친 작품을 만나는 건 한 예술가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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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 작가로는 앤디 워홀을 필두로 여러 유명 작가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제일 선호한다. 여러 스타일의 작품들이 있지만 만화의 한 장면같은 작품들이 재밌고 인상적이어서 그런데 사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는 상태여서 미술 전문 출판사인 마로니에북스의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 중에선 '키스 해링'편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도 기본적인 구성이 대동소이했다. 먼저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미국 미술계의 리더가 된 1962년경을 언급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는데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한 그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이 40세 무렵이니 그리 일찍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고교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오하이오 주립대 에서 미술학사학위를 받았으니 당시로서는 미술가가 학사학위를 받은 게 드문 일이었다. 10년 동안 강사로도 일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1951년 뉴욕에서 처음 개인전을 열고 계속 활동하지만 큰 반응을 얻진 못했는데 도발적인 만화 그림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1962년에 이르러서야 강단에 서지 않고 전업 미술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쾰른의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여러 점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일출' 등이 작품을 보여준다. 내가 사진으로 담아오지 못한 '구름과 바다', '폭발 1번', '타카타카' 등의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만화 스타일의 작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벤데이 점과 관련한 흥미로운 얘기를 비롯해 모네의 '루앙 대성당'을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하거나 추상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스타일의 작품들도 많이 작업을 하였다. 마지막에는 간략하게 연표와 사진을 곁들여 그의 삶과 작품 세계까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동안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의 여정과 주요 작품, 팝 아트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