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습득 경로를 먼저 얘기해야겠다. 아니 기록으로 남기려고. 어느 날, 서평단 모집을 우연히 봤는데, 번역에 관한 책이었다. 번역을 하려는 뜻도 없고, 업으로서 번역가에 대한 관심도 그다지 없는 편인데 말이다. 다만 번역이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꼼꼼하고 성실하게 잘 된, 그러면서도 나는 감히 모르지만 원서에 가장 근접했을 노력의 결과물로서 번역의 중요성은 너무 잘 알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늘 대하고 있었다는 정도 외는 번역의 미래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바가 없다. 아무렇지않게 오역을 해놓고, 변명이라고 해놓은 어느 일본 저서의 역자 후기에 나는 아연실색을 한 적도 있다. 그것은 내가 일본어가 조금 되어서도 더 그랬을 것이다. 당시 역자는 자신의 일본어 뉘앙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으로 작중 인물의 이름을 바꾸어놓고는,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에 더 잘 부합하다는 사족을 달았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책을 어느 누구의 번역본으로 보아도, 내가 직접 원서를 읽는 만큼의 정서가 전달이 안돼 감흥이 떨어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어로 된 역서만큼은 그 미래에 대해 혼자 생각해본 적 있다. 일본어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고, 요즘 책이 아닌 시대가 좀 지난 옛날 일본책은 우리말의 번역일 경우에도 옛 정서를 살려 번역하는 것이 나을텐데 점점 현대적인 언어 사용으로 그 옛스러움의 운치가 표현이 잘 될 것인가 등등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전적 일본책의 번역 품질이 예전만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열심히 좀 더 내 취향에 부합하는 일서 번역가를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번역가가 있었다. 그분도 개인 출판 번역업을 하시고, 출판번역을 하시는 동시에 건설현장에서의 일을 하시기에 매우 의아해하며 블로그를 방문하곤 하다가, 내 호기심이 넘쳐 결국은 번역과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이유를 여쭙거나, 일본 원서를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등에 관해서도 여쭙고 한 적이 있다. 번역업을 하기 위해 , 그 자금을 대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돈을 번다고 답해오셨다. 아..하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번역서를 예사로 여길 수 없는 이유를 내가 현실에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같은 경우, 번역가에 따라 책 느낌이 많이 다르게 된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우리 한국인의 제 2외국어로서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기 때문에 스스로는 번역을 못할지언정 번역이 이뤄진 책에 관해서는 일정 수준 가늠을 하는 판단력도 나름나름 제각각으로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옛날 번역 버전을 어려서 읽었기에, 김영하 작가의 번역은 별로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고 , 프랑스어나 러시아어, 독일어의 경우는 번역계에서 말하는 출발어(원서의 언어)를 전혀 모르기에 판단이 거의 불가능함에도, 문학은 문학적 작품으로서 내 지적 경험과 생활 체험에서 작품을 읽어내는 배경을 바탕으로 번역의 수준을 아주 거친 수준으로 어림잡아 판단하고 책을 고르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한다. 그 와중에도 좀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있고, 어딘듯 덜 매끄럽고 자연스럽지 않아, 끊김의 해석을 머릿속에서 거치더라도, 결국은 내 사고, 사유의 영역에서 통합되어 해석될 것이기에 후자쪽을 선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이 책 <번역의 미래>에 관한 주제와 밀접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이처럼 나는 인간 번역에 얽매여 대해서만 생각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인간 번역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해야할까. 기계 번역이란 상응 영역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어찌 보면 용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나는 벌써부터 기계 번역의 존재 속에 살고 있었기 하였다. 스스로가 인터넷에서 파파고를 활용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 구글 번역을 해서 제품들의 설명서를 읽어낸다는 식의 글도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이제서야 든다. 다만 그것들이 기계번역인줄은 몰랐고, 또 그 존재만큼이나 그것들의 비중을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혹시 파파고를 제대로 된 번역이라 믿고 쓰고 있나요? '하는 뉘앙스의 글을 보고, 가끔이지만 의심없이 보던 파파고의 번역을 그 문장을 접한 순간 이후로 의심의 눈으로 경계했던 덕분도 있다.
그래서 이 책 <번역의 미래>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등장하는 고백처럼 < 앨런 튜링,지능에 관하여 > 이라는 책을 세 번인가 네 번 읽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을 쭈욱 읽고는 얼른 주문하였다. 나는 이제 새로운 번역에 대한 주제를 안내 받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와 이 책을 읽은 이후의 나는 번역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이 달려졌다. 적어도 내가 우물을 조금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할까. 나는 이제 김연정 전산언어학자면서 기계번역가의 안내를 받아, 다른 세상에 대한 본격적인 입문은 아닐지라도,최소 눈을 뜰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그렇게 이 책이 내게 영향을 준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한다.
책 <번역의 미래>는, 저자가 말했듯이 번역가의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번역이라는 언어적인 전환 행위에 의한 결과물, 그 행위 전체에 대한 미래 조망을 다루는 책이기도 하다.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를 좀 말해보고 싶다. 나는 목차를 보고, 아주 아카데믹하지는 않아도 어느 면에서 연구보고서나 학술 논문 정도의 수준와 외형을 갖추지 않았나 했을 정도다. 그러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자전적이면서 개인적인 서술이 들어있기에 연구 논문은 아니구나 했고, 그러면서도 또기계번역의 현황과 번역 현업의 실태를 알려주고, 최신경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연구논문적 성격도 보였다. 여러모로 꼼꼼히 읽게 하는 글이었다. 개인적인 솔직함이 잘 드러났고, 저자가 걸어온 길, 경험한 과정, 고민하고 머뭇거렸던 내적 모습까지 유심히 읽게 되는 책이었다. 동시에 책을 읽다보면 하물며 독자인 나조차도 조급해지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너무 이쪽을 몰랐다는 생각.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이 비단 번역에만 머물 것인가 하는 쫄보의 마음이 생기면서, 이 책을 접한 것이 다른 시각, 시선을 강제로 보게된 것이었도 좋았겠다 하면서 이런 기회로 책을 읽은 인연이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마치, 인간번역의 품격만을 믿고 경력을 쌓기를 해온 작가가 자신의 인식 범위를 의식적으로 깨뜨리려 했던 다짐과 그 계기들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들이 내게도 비슷한 종류로 전이되는 느낌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인 지금 이후는 번역의 패러다임이 완전 바뀌는 추세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정말 후먼 번역 수준 이상으로 기계번역이 월등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됐다. 우리는 어쩜 늘 인간우위적인 사고방식으로 그래봤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의 고유성을 기계는 감히 침범할 수 없을 것이라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얼마전 챗봇의 수준은 , 아니 출현은 우리를 한번 들어올렸다 내린 셈이다. 그리고 아직 그 영향의 주변부에도 속하지 못한 나같은 아날로그적 인간은, 크게 충격을 받지도 않아서 더 위험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런 변화하는 환경에 무디고 담쌓고 있는 이들도 상당 있을것으로 추정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기술, 미래, 인간으로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방편들, 그리고 보람, 그리고 또다른 영역, 인간의 사유와 인식... 그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 재밌고, 공감이 많이 갔다. 저자의 자부심이 느껴졌는데, 그 자부심은 남들이 알아줄 것을 , 혹은 알아주기에 내 어깨를 상대적으로 좀 더 활짝 펼칠 수 있는 식의 자부심이 아니란 것도 알겠다. 이국의 문화와 지적 자산이 글이라는 형태로 남겨진 책을 옮기는 과정이 얼마나 내적으로 충만함을 주는 일인지, 문장을 만드는 기쁨이라든지, 또 그런 언급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원저자와의 숨결을 내밀하게 느껴본다는 즐거움과 우위적인 기분은 없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노고를 통해 전달하는 일, 현황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인 성과로 일대일 대응시키기엔 너무나 짜디짠 현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연어처리, 언어서비스, 언어산업, 산업번역, 인하우스, 에이전시, 포스트에디터로서의 번역가의 미래, 언어 데이터관리를 하는 전산언어학자, 인공지능과 기계가 가져올 증강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 사유, 인간적 가치, 인간적 특성...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을 다시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저자 자신 스스로가 관점의 전환을 얻고 재차 확신하며 인식을 거듭하는 자세로 풀어낸 서술을 따라 나도 공감하며 읽었고, 또 늦었지만 저자가 소개해주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의 곁눈으로 살피었으니, 이제 조금 더 알아가는 노력이 남은 것은 내 몫이다. 잘 소화해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먼저는 읽어야겠기에, 그 다음엔 나도 저자처럼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배우고 익혀 미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야할텐데 걱정이 먼저 앞선다.
이 책을 , 기꺼이 보내주시고, 읽고 서평을 쓰기까지 시간을 넉넉히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열정과 따뜻한 마음과 성실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삶을 개척해가시는 작가님의 뜻한바가 잘 펼치시기를 또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자신의 인생 기로에서 이 직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 집념이 조사와 연구와 탐구로까지 이어져 관련 주제로 책이 되어 어떤 인연으로 제게 와닿은 것까지도 포함해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께서 불교공부를 더 열심히 하신다는데, 그 까닭이 인간다움과 사유와 성찰에 있다 여겨 응원도 드립니다. 다만, 저도 불교가 멀지않고, 인간으로서의 위대한과 미약함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하긴 하지만, 얼마전 김초엽 작가의 책과 우연들이라는 에세이집을 읽고서 '인간다움'에 대해 다른 각도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기계 번역,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시대에서도 인간다움은 그 이전의 인간다움을 일컫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초엽 작가는 인간과 물질을 구분하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 선을 그은 것 같더라구요. 더 인간적인 것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물음도 함께 던져졌던 것 같습니다.
책이 훌륭하나, 제 읽어낸 , 그리고 서평으로 남겨진 글이 너무 미흡합니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팽창하는 장의 계기에 제 서평도 한몫 미약하나마 할 수 있기를 소소하게 바래봅니다.
# 번역의미래 #인공지능 #AI #휴먼번역 #기계번역 #산업번역 #번역가 #앨런튜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