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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바르와 폐퀴세는 어딘가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을 스스로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그들은 성직자의 권력에 겁이 났다. 이제는 사회 질서를 강화하는데 그 권력을 이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화국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삼백만의 유권자들이 보통선거에서 제외되었다. 신문의 보증금은 올랐고 검열이 되살아났다.사람들은 신문소설을 비난했다. 고전철학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고(.....)"/261쪽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를 읽고 나서, 다시 <마담 보바리>를 읽었다.여전히 잘 읽혀지는 플로베르의 글을 영접하고 보니.. 미뤄두기만 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를 읽어야 할 것 같아 부바르...를 골랐다. 제목이 몹시도 어려워 보인 건 기우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었다. 두 남자가 만나는 과정과,이후 두 남자의 동행이 시작되는 상황은 지극히 연극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라서 그만...) 그런데 작위적이란 기분보다 묘하게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플로베르에게는 있는게 분명하다.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는 작가의 말이 미친 영향 때문이었을까.. 두 남자는 어리석어도 지나치게 어리석다는 느낌을 지을수가 없다. 그런데 황당한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저들이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익한 일에 몰두하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83~84쪽 지나치게 겸손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관대한 사람 역시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 과연 내가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바르게 가는 길이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할 수 없을 테니까...불이 일어났는데도 원인 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의심을 먼저하기도 하고, 실패에 대한 분석을 하기 보다 누군가를 탓하기만 한다면 어리석음에서 영원히 벗어날수 없을게다. 그래서 소설은 두 남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답답증을 느끼다 보면..어느 사이 그 화두의 중심에 두 남자가 아닌..독자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아직 1부만 읽었을 뿐이라 뭐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1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두 남자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무얼 바라봐야 하는 지에 분명한 것이 보였다. 나는 절대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지 않을꺼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길로 빠질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기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