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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혜안'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수진'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수진'은 '혜안'을 추억하며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절규하는 여자가 되게 해준 건 오직 그녀뿐이었다. 혜안은 나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p.135)'라는 말을 남긴다. '혜안'은 어떤 인물이길래 이토록 절절한 평을 남기게 만드는 걸까? 이 리뷰는 '혜안'이라는 인물이 '수진'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진'과 '혜안'은 ''절규'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열어놓은 인터넷 카페 하나를 공동으로 운영하(p.139)'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바로 사람들의 ''절규를 대신해(p.139)'주는 것이다. '수진'은 그 일을 두고 '사람들이 결코 토해내지 못한 것들을 대신 토해주고 돈을 벌었다(p.135)'고 말하고 있으며, '절규하는 여자는 나였지만 기묘하게도 혜안이 없으면 그 일은 불가능(p.135)'했다고 고백한다. '수진'은 '내가 영문 모르고 굿판에 불려와 사지를 덜덜 떨며 신내림을 받아내는 초짜배기 강신무였다면, 혜안은 매번 내게 잔인하고도 끔찍한 신병을 내려주는 베테랑 샤먼이었다(p.142)'고 표현한다. 즉 둘은 최고의 파트너였고,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행할 수 없던 일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작중 내내, 주인공인 '수진'이 가진 절규하는 능력은 스스로의 입을 통해 설명되고 있지만 '혜안'이 가진 기묘한 능력은 설명되지 않고 있다. 대신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수진'은 '혜안'은 처음 만난 날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뭐랄까, 그녀는 내가 취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떨어진 비현실의 스트레이트잔 같았으므로.1) (…)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예뻤다. 나는 처음 보는 그녀에게 일종의 매혹을 느꼈으나, 그 매혹은 어딘가 지독하게 답답한 것이었다.2)
'수진'이 느낀 이 '지독하게 답답함(p.149)'은 바로 '혜안'의 성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혜안'의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으며, 그녀는 '28년 동안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p.151~152)'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혜안'은 하필 '여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촌 동생을 사랑(p.151)'하게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혜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여러 번 숨을 들이마(p.151)'쉬거나 '둘이서 손을 꼭 붙잡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시간이 멈추기만 기다(p.152)'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비밀스런 연애가 발각되면서 두 집안은 난리가 난다. 그때를 회상하며 '혜안'은 이렇게 말한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목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존재 자체로. 이십몇 년 동안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내 진짜 이름을 크게 써서 엄마 아빠 눈앞에 흔들어 보이고 싶었어.3)
'혜안'은 며칠 뒤 감시를 피해 함께 근신 중이던 사촌 동생에게 몰래 전화를 걸었고, 둘은 도망을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한 날 새벽, 사촌 동생은 나오지 않았(p.153)'고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촌 동생이 선을 보았으며 다음 달에 결혼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고야 만다. 그 얘기를 듣던 '수진'은 '혜안' 대신 소리를 질러버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바보야, 멍청아! 네가 거길 왜 가니!4)
그리고 곧 '수진'의 서술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의 첫 의뢰인인 셈이었다(p.155)'고. 이 사건이 일어난 뒤 곧바로 둘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절규를 대신하는 일을 시작했다. '혜안'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사람과 닮은 사람인 '수진'을 통해 성 소수자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을 해소시키려 했다. 자신의 절규하고픈 마음을 의뢰인들에게 투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혜안'과 만남을 가진 뒤에도 '구십구 퍼센트 스트레이트였(p.153)'던 사촌동생처럼, '수진' 역시 남자인 의뢰인과 사귀게 되었다. '수진'은 '꼭 그 남자 때문은 아니었다(p.175)'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결국 서로 목적이 뚜렷하면서도 진정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었던 '혜안'과 '수진'의 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었으나, '혜안'은 '수진'이 그 의뢰인과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
(……) 귓불에 매달린 피어싱을 쑥스럽다는 듯 만지작거리면서, 야, 근데 솔직히 얼굴은 좀 아니더라, 너 취향 좀 이상해, 하고 쿡쿡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한차의 침묵 끝에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애가 돌아왔어. 그러니까 나도 돌아갈게, 갈 때 되면.5)
하지만 '수진'은 혜안의 자깁에서 자신과 '퍽 닮았지만 아무런 흠집도 없는(p.176)' 그리고 '결코 혜안에게 돌아오거나 할 얼굴(p.176)'이 아닌 사촌 동생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혜안'이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혜안은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의 사촌 동생이 울고 소리치고 온몸을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도 사실은 아팠겠지, 하는 남모를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혜안과 나는 서로를 이상한 청동 거울처럼 이용하는 사악한 흑마법사들에 불과했을까. 붙들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한 번도 우리에게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이들을 거울 위에 불러내, 목소리로 혹은 온몸으로 그 얼굴 위에 날비린내 나는 것들을 퍼붓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결코 치유 따위의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시큼하고도 유쾌한 위안이었고 먹기 싫은 쓴 약을 삼키는 가장 달콤한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도 그런 말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치는 건 그렇게도 쉬웠는데.6)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진' 또한 그런 '혜안'에게 위안을 얻고 있었다. '수진'에게 있어서 '혜안'은 '가장 끔찍한 것들이 조금씩 배설되는 것을 눈 돌리지 않고 지켜보아준 유일한 사람(p.156)'이었으며 '수진'을 욕망했지만 '수진'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너를 원하지도 않을 거고. 우리 서로 촌스럽게 굴지는 말자. 나도 그러지 않을 테니까(p.159)'라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진'은 '혜안'이 잠든 모습에서 그녀의 본모습을 본다. '혜안'은 '(……) 파충류의 잔인하고 공허한 눈동자가 아니라, 험악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순한 나비가 제 날개에 새겨 넣은 커다란 가짜 눈동자(p.178)'를 가진 뱀눈나비였다. '수진'은 '혜안'이 떠난 뒤 그녀와 함께 개설했던 '절규' 카페를 폐쇄하며 '이제 곧, 나비들이 있는 곳에도 봄이 오겠지(p.179)'란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은 2006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이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혜안'은 소리 없는 절규를 멈출 수 있었을까? 과연 나비들이 있는 곳에도 봄이 왔을까.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런 질문에 떳떳하지 못하다. 여전히 추운 겨울이고,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지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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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상처는 마음에 쌓이고, 어느 순간에는 절규가 된다. 절규는 시끄럽다. 누군가의 절규를 다른 사람들은 소음이라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의 절규에 담긴 상처를 온전히 알아차릴 수 없다. 절규는 그 자체로 날카롭다. 날카로운 것은 감싸 안기보다는 상처 입히기에 바쁘다. 절규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상처 입고 입히며 다가갈 수밖에 없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초록창의 검색 결과에 따르면, '절규란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음'이라 했다. 비슷한 말은 열규라고. 그래서 괴로우면 그토록 열이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누군가는 절규한다. 비단 소설 속에 드러난 형태가 아니더라도, 누구의 마음속에든 절규는 존재한다. 속에 쌓인 절규는 마음을 긁고, 마음을 파내어 상처 입힌다. 그래서 '의뢰인'들은 아마도 카페 '절규'에 모였을 것이다.
대신 절규하는 값, 이십일만 원.
어떤 빛깔과 냄새와 무게의 고통이든 의식의 비용은 똑같았다. 21만 원. 그것은 서울 시내 산부인과에서 4주 반 정도 된 태아를 중절할 경우 드는 기본 비용의 평균치였다. (157p, 첫 번째 문단 첫 번째 줄)
'꽉 움츠러든 성대가 꿈틀꿈틀 움직이는(158p)' 형태로 뱉어지는 절규를 듣고 대신 내질러 주는 값, 이십일만 원. 돈으로 환산했으되 돈으로 충족할 수 없는 연약한 치유가 이루어졌던 공간에서, 소설 속 사람들은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울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에 대신 울어주는 것은 고귀한 희생임과 동시에 얄팍한 사기다. 만약에 필자가 실제로 그 카페를 마주쳤다면 아마 '뭐야 그런 이상한 것도 있네?'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필자의 절규는 아직 이십일만 원 어치에 못 미쳤던 모양이다. 혹은 필자에게는 아직 직접 절규할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악은 절규가 무엇인지도 잊어버렸거나.
어쨌거나 아직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을 아는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 모였고, 화자는 <혜안>과 함께 대신 절규한다. 최초의 절규는 혜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혜안이 떠나감으로써 종결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유대감이 존재했고, 또 일방적인 감정이 존재했고, 또 어느 정도는 비즈니스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정의는 176p 마지막 문단과 177p에 걸쳐 화자의 시야로 정의되어 있다. 그 관계는 식상한 듯 또 새롭다.
혜안은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의 사촌 동생이 울고 소리치고 온몸을 떨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중략) 혜안과 나는 서로를 이상한 청동 거울처럼 이용하는 사악한 흑마법사들에 불과했을까. 붙들고 소리치고 한 번도 우리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이들을 거울 위에 불러내, 목소리로 혹은 온몸으로 그 얼굴 위에 날 비린내 나는 것들을 퍼붓는. (중략) 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도 그런 말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치는 건 그렇게도 쉬웠는데. (176p 마지막 문단 - 177p 첫 번째 문단)
필자는 '청동 거울'이라는 표현이 참 섬세한 상징이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윤이형의 소설에서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이러한 상징들이 상당히 감각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곱씹을수록 가슴 한구석으로 점점 파고드는 듯한 표현은, 이 소설에서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다.
물론 그 외에도 매력적인 부분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저번에 리뷰 했던 윤이형의 <루카> 역시도 사람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었는데, 이번에 리뷰하는 <절규> 역시도 특유의 담담함이 매력적이다. 또, 하필이면 화자와 함께했던 여자의 이름이 '혜안'인 것도 어떠한 상징을 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혜안'은 화자에게 혜안을 통해 엿본 것과 같은 지혜, 혹은 혜안을 통해 엿본 것과도 같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남긴다.
절규하는 여자님, 님의 목소리는 그런 곳에만 쓰기에는 아까워요. 부디 건강하세요, 너무 탄식하지 마시고. 그러다가 후두에 이상이 생겨요. (179p, 두 번째 문단 끝)
그건 화자에게 남기는 말이자, 독자에게 남기는 말이 아닐까. 당신의 목소리는 탄식하는 데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그 말을 듣고 탄식을 멈추어주기를.
그러면 이제 약간의 쓴소리를 해보고자 한다. 어쨌거나 퀴어 시점의 리뷰이니. 이 소설에서 드러난 퀴어는 분명 주목할만한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일부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퀴어다. 짧은 머리, 피어싱, 훤칠한 키 따위는 사실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동성애자 여자'의 형상에 가깝다. 기독교라는 요소와 연관되어 있는 점 또한 '교회로부터의 상처'라는 점에서 동일 선상의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때로는 그럴싸한 인과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몰입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현실은 그렇게까지 철저한 논리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므로. 물론 윤이형은 혜안을 '남자'의 구실을 하는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혜안'은 반항하려고 일부러 자신이 사회를 통해 주입 받았던 전형적인 동성애자의 모습을 흉내 냈을 수도 있겠다. 이는 '혜안'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 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다.
뱀눈나비. 가끔씩 그 창백한 얼굴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파충류의 잔인하고 공허한 눈동자가 아니라, 험악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순한 나비가 제 날개에 새겨 넣은 커다란 가짜 눈동자였다. (178p, 밑에서 6번째 줄-밑에서 3번째 줄)
그러니 사실 이 쓴소리는 까기 위해 깐다, 고 느껴질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필자가 굳이 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루카>에서도 종교 때문인 갈등이 주요한 요소로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꽤 다수의 종교이며, 이래저래 영향력이 크고 막대한 권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글쎄. 굳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퀴어를 별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아 하더라. 그런 지점에서 그래도 '이유'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던가. 형태도 없는 불신 속에 절규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점에서. 물론, 이렇든 저렇든 썩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 내일의 절규는 오늘의 절규보다 조금은 더 줄어들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이십일만 원의 값을 치르고서라도 절규를 내뱉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내비쳐 본다. 언젠가는, '후두에 이상이 생겨요'를 전해 들을 수 있기를.
작성: 숙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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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졸업'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라는 가사에 꽂혀서 몇 날 며칠을 이 노래만 들었다. 그땐 다름을 틀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세 박자를 이기려면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내가 미쳤다고 안정하면 되었다.인정하니 다른 사람들도 이 미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라는 작은 틀 속에 갇혀서 틀밖에 멋진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이젠 틀 밖의 멋진 세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난 또다시 내가 깬 틀보다 조금 더 큰 틀에 갇힐 것이다. 하지만 이젠 미칠 것 같진 않다, 깨는 방법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한번 해봤는데, 또 못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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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으나 나름 진지하다고나 할까, 군데군데 조크가 묻어나기는 하지만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21세기에는 걸맞지 않아 보이는 우중충함이 가득하고, 게다가 그 우중충함인 디지털적이기까지 하다. 아직 부족해 보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흡반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런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의 동공이 별 모양으로 변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 처음에는 오른쪽에서 시작된 거예요. 네, 검은 별이 눈에 박혀 있었어요. 검은 별요. 정확히 말하자면 동공이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별 모양으로 변해 있었죠...” 그렇게 검은 불가사리처럼 나의 눈동자에 자리를 잡은 그 무엇인가와 그로 인하여 자행되는 나의 살인...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무엇인가가 보여주는 살인의 충동과 그 실행이 소설을 통해 덤덤하고 무표정하게 구술되고 있다.
「셋을 위한 왈츠」. “... 셋이 함께 방에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밖에서 만나는 것을 선호했다. 한방에 있다 보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긴장이 흘렀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에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형과 누나와 나로 이루어진 삼각의 의미가 묘연하다. 부모의 죽음 이후 함께 했던 시간, 그리고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시간, 그리고 갑작스러운 형과 누나의 죽음... 지켜보는 자이면서 동시에 삼각형의 한 꼭지점이어야 했던 나에게 삼박자의 왈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피의 일요일」. 게임 속 캐릭터들의 반란 혹은 자아 찾기...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며 수족처럼 부리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만약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라는 얼토당토 않은 작가의 상상력이 마음에 든다. “... 우리는 모두 캐릭터이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버에 갇혀 마치 동물처럼 키워지고 조종되는 존재라고... 목소리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조련되는 존재였다. 우리를 조련하는 것은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에게 이름을 부여한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면 우리를 달리게 만들고 또 재미가 없어지면 갑자기 연결을 끊어서 우리를 이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월드 어브 워크래프트, 일명 와우라는 게임을 해봤어야 말이지...
「절규」. ‘절규하는 여자가 당신이 토해낼 수 없었던 것을 대신 토해내드립니다.’ 절규하고 싶은 심정인데도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절규해주는 사업을 했던 혜안과 나 수진이... 그들을 대신하여 절규하는 여자인 나 수진과 그러한 나의 절규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채근질하며 도와주었던 혜안... 레즈비언인 혜안의 과거사와 나의 과거사, 그렇게 우리 모두의 과거사가 있고, 그러한 과거가 만든 절규하고 싶은 현재도 있다. “... 진실과 선은 별개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 기준을 세워 놓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때로는 진실을, 때로는 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실과 선 가운데서 판단을 내리는 우리의 이성은, 기억이라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뼈대 위에 세워진다...”
「DJ 론리니스」. “... DJ 한 명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은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음악을 트는 디제잉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러더니 덧붙였어요. 하지만 오리지널리티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라고, 뻔한 음악이라도 뻔하지 않게 튼다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된다고 말이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 그렇지만 대다수는 또한 그 이유를 모른 채 살기도 하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득도라도 하듯이 제 삶의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하겠지, 여기 소설 속 DJ 론리니스처럼...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 대학에 들어가고 A를 만나면서 희주는 말의 정치학, 자신의 오만을 상처 나지 않게 숨기면서 언어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새롭게 깨친 것 같았다... A를 만난 다음부터는 말을 아끼는 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말을 하는 행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갖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란성 쌍둥이인 나와 희주... 어린시절부터 어른들 뺨을 후려치게 말을 잘 하고 모두보다 앞서갔던 희주와 그런 희주에 가려져 있던 나... 엔지니어가 되어 차를 몰고 가다가 우연히 길에 지나가는 말을 본 나와 시인으로 승승장구하다 어느 날 모든 말을 잃고 중증의 뇌이상을 일으키고 만 희주...
「안개의 섬」. “... 남편과 나는 수없이 많은 공이 담긴 자루를 옆에 부려놓고 각자 상대방을 향해 서브만 날리고 있었어. 그 사람과 내 생활엔, 리시브라는 게 없어.” 온라인 게임의 괴물 캐릭터 만드는 일을 하는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연하의 남편... 게임 마스터로서 숨어 있기 좋은 게임 속 안개의 섬에서 만난 게임 속 캐릭터인 나무... 게임 속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속살은 무척 현실적이다. 여자로서 산다는 것의 허망한 정체에 대하여...
「판도라의 여름」. 갑작스러운 근미래 SF물의 등장... 인간 또한 이성을 불러들이기 위해 페르몬을 발산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인간에게서 발산된 페르몬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화면으로 재구성하여 출력시킬 수 있는 판도라라는 기계를 만들게 된 나... 그리고 실험 대상이었던 남편의 페르몬에서 추출된 여자의 사진, 그리고 그러한 남편의 페르몬을 질투하여 급기야 그의 모든 것을 앗아버린 나... 얼마전에 본 젤라즈니의 단편들을 연상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