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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솔직함이 망설여지는 고백을 한 가지 먼저 해 보면, 내겐 이 소설집이 정이현 작가와의 첫 만남이다. 집에 이 책과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또 하나의 단편소설집(데뷔작품집이라는 것 같다), <너는 모른다>라는 장편이 한 편 있으니, 드라마라도 만들어져 유명한 작품 <달콤한 나의 도시>만 갖추면 '정이현 작가를 꽤 좋아하시나봐요..'라는 말도 들을만한 구색은 되는 셈인데, 어쩐지 나는 지난 수 년간 그녀의 작품을 단편 한 편이라도 접해본 기억이 없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슬그머니 느껴지는 어떤 가벼움이 내게 생각보다 짙은 선입견을 만들었던 것 같다. 일단 내 취향이 아니라는..
뭐 특별한 취향이 있다는 건 아니다. 일단 읽어보고 좋은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나간다는 정도가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무 자르듯 이건 되고, 이건 안된다는 기준 같은게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 칼같다기 보다는 우유부단한 쪽에 가까운 내 성격 전반에 비추어도 특별한 취향은 어울리지 않는다. (음식도 비리거나 느끼하거나 안가리고 잘 먹는데.. 뭘) 그런 고로 여기서 '취향'이라 함은 곧 '남의 이목'과 치환 가능한 단어다. 적어도 지하철 등에서 한 번도 안면이 없는 이들의 머릿속에 '어머 저 아저씨 뭐야.. 어울리지도 않는 책을 읽고있네.. (웃겨)'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그게 취향이라면 취향이겠다. 늘 남의 눈치안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잘 안된다. (천성적으로 남의 눈치를 안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좀체로 안 한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늘 그런 결심(그것이 어떤 결심이던)을 하는 사람은 그 일에대해 뭔가 심각할 정도로 잘 안되는게(어쩌면 결함..?) 있는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감히 읽어보지도 않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 정이현에 대해 내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스토리는 전혀 칙릿스럽다거나 차도녀스럽지(이런 말 쓰긴 사실 싫은데.. 적절한 표현이 잘 생각안난다) 않다. 오히려 냉소적이랄만치 차갑고, 그 차가움 만큼이나 삶의 아이러니를 재치있게 찝어내고 있다. 그래서 결심한 바, 이 책 다음 책으로 최소 삼년이상 책장에서 졸아온 그녀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갈 예정이다. 그 과정이 끝나면 회사 도서관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도 빌려볼까 한다. 몇 년전 어떤 후배가 재미있다고 읽어보라고 했을 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책이다. 내 도리질을 바라보는 그녀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 '알지도 못하면서 센척 팅기기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인 <오늘의 거짓말>을 포함, 총 열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 연애기간의 연장으로만 받아들였던 결혼생활의 권태를 못이겨 이혼한 젊은 부부의 사소한 일상속에 끼어든 우연한 사고를 다룬 <타인의 고독>에서는 우발적 사건의 진실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고자하는 공범자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있다. 실제 1995년에 발생한 상품백화점의 붕괴사건을 다룬 <삼풍백화점>에서는 (필요에 의해서는) 친하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친할 수 없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관계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 두 젊은 고교 동창생 여인이 등장한다. <어금니>에서는 아들의 빗길 교통사고 속에 담긴 엄청난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과 재력을 쥔) 부모의 모습이 그려진다. 객관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지만, 부모라면 누구라도 할 수 밖에 없을 선택의 이야기다.
표제작 <오늘의 거짓말>은 직업상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짓말이 세상을 돌아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황을, 죽은 과거 대통령을(또는 무척 닮은 이를) 등장시키는 다소 환상적인 톤으로 재치있게 그려낸다. 자신이 살던 초현대식 아파트에서 황당하게 내몰린 남자의 에피소드를 다룬 <그 남자의 리허설>에서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퇴장당하지 않으려는 한 중년남자의 추한 몸부림이 어쩐지 서글프게 묘사된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되면, 그 추한 몸부림이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우울하고 답답함이 느껴졌던 작품. 2인칭으로 쓰여진 소설 <비밀과외>는 1980년대 중반 학생운동 탄압과 과외금지령이 스크렴(Scrum)을 짜고 온 한반도에 그늘을 드리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냉랭한 어조로 다루고 있다. 그 시절을 고교생으로 살았던 내 감상은 '드릴 말씀 없습니다(노 코멘트)' 다.
<빛의 제국>의 배경은 2022년 미래다. Y대학 부설 자살문화연구센터의 한 계약직 연구원은 2004년에 여성전용 소년원에서 자살한 장유희의 사건을 재조사하며,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이상한 정황 및 증거들을 발견해나간다. 그런데 그 연구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당시 이 소년원(여고라는 명칭을 썼다)의 재단이사장이 현재 당선이 유력시되는 기호 <1>번의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 <위험한 독신녀>는 정신적 충격 속에서 '현재'를 잃어버린 양채린과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현재 자신의 삶 속 해법을 찾아가는 현주라는 삼십대 후반 두 여고동창생의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남편 뒤에 어린 악마의 실루엣을 힐끗 본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어두워지기 전에>는 중의적 반전을 통해 진실을 모호하게 흐린 채 결말을 맞이하는 세련된 기법으로 쓰여졌다. 오싹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 <익명의 당신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변태적인 소재를 다룬다. 정이현 작가의 기발함과 의외성이 돋보이는 작품. 결말은 역시 종잡기 힘든 모호함으로 긴 여운을 만들며 흐려진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캐릭터,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지만.. 어딘지 한결 같이 느껴지는게 있다. 나는 그걸 한 마디로 '삶의 아이러니' 라고 정의내지는 표현하고 싶다. 이 책의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어쩐지 환멸스런 세상의 정체성은 바로 그 속을 살아가는 개별적 나의 선택의 유기체적 결과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러운 세상이야..라고 투덜대며 사는 삶 속 작은 부조리가 바로 그 더러움을 만들도 있다는 것. 부조리를 끊임없이 사방으로 흘려대는 것이 삶이 가진 필연적 소산이라면, 최소한 그 사실을 인정하며 살 수 있는 용기정도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 앞에서는 점점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는 작가의 말에 내 멋대로의 의미를 부여, 공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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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로 단번에 반해버린 정이현의 단편집이다. 나이 서른 즈음에 겪는 기가 막힌 연애 심리를 보여준 이 작품을 무릎을 치며 읽었다. 때론 달콤한 낭만이 때론 씁쓸한 현실이 함께했지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 오은수와 함께 연애를 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공감했다고 할까. 다른 친구들은 연애보다는 의외로 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오은수에 더 공감했던 것 같다. 여자 나이 서른 즈음이라는 게,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이 사회 안에서 참 불안정한 위치니까 말이다.
이 단편집에는 <타인의 고독> <삼품백화점> <어금니> <오늘의 거짓말> <그 남자의 리허설> <비밀과외> <빛의 제국> <위험한 독신녀> <어두워지기 전에> <익명의 당신에게> 등 모두 열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현 시대상을 함께 자세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훑어본 느낌이다. 대다수의 작품 결말은 안정, 안주 그런 것이었지만, 평안함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속 한 켠에 지나간 아픔, 공포 또는 비밀 같은 것을 나의, 내 가족의 이기를 위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 결말보다 더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안정적인 끝, 그 끝은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한 또 다른 불안과 비극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또한 우리의 인생 아니겠는가. 끝없이 반복되는 불안과 잠시의 안정, 그 안정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만의 비밀, 불안 말이다. 연애 얘기보다 한층 깊고 다양하게, 사회적인 사건이나 현대성을 보여준 정이현, 우리 사회를, 우리 모두의 이기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인간의 불안을 현실적으로 날카롭고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우리는, 여전히 침대의 양 끝단에서 잠을 잤다. 훼손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긍정적인 안주다. <어두워지기 전에>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진정한(!) 진정성은 어쩌면 <오늘의 거짓말>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출근해서 남의 주민등록증과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상품 후기를 거짓말(!)로 작성하는 주인공은 결국 머니를 벌기 위해 거짓말로 산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러닝머신을 산 윗집에 사는 그분은 누군가를 너무 닮았다. 그래서 알고 싶다. 정말 그분이 그분인지. 스무 개도 넘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하는 직장을 그만 두는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디로 러닝머신의 진정한 리뷰를 작성한다. 그리고 노인에게 편지를 쓴다. 물론 부치지 않을 편지지만 주인공은 묻는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나는 왜, 당신이 아직도 여기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왜.” 주인공은 그간의 거짓말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녀의 마지막 바람이다. ‘그럼 나는, 저 미지의 1979년에 대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될까? 1979년 7월 7일 서울의 대기 온도와 바람이 불어오던 방향, 바람의 속도 같은 것들. 1979년 7월 7일생의 불완전한 거짓말, 진짜 비밀의 공포에 관하여.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들 모두 각각의 색깔이 있었고 흥미로웠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삼풍백화점>이었다. 우리 기억에 참 쓰라린 사건으로 남아있는 삼풍백화점 붕괴에 얽힌 얘기를 작가는 주인공인 나와 R의 우정(!)으로 담담하게 끌어나가고 있다. 그 시대도 그 시대에 평범하다면 평범했던 주인공도 삼풍백화점 붕괴를 겪었고 이젠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위험한 독신녀>에서 서른여덟의 주인공이 맞선남을 두 번째로 만나는데, 한 살 연상의 남자가 탐색 모드를 가동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생각한다. ‘끝이 두려워지는 문답이었다. 그러나 결혼 경력이 없는 서른아홉 살의 총각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나 같으면 그래도 괴로웠을 것 같다만 그게 현실이라 받아들여야 한다니…
<어두워지기 전에>에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이현식 현실이다. ‘문은 결국, 열리거나 닫힌다.’ 되도록이면 정이현의 현실이 앞으로도 계속 인간과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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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니님 나눔으로 받은 책>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감각적인 느낌이 가득한 세련된 느낌의 트렌디한 소설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글자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기대감이 가득한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 작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는 뜻이다. 책은 대기중이다. 표제작을 포함해서 총 10개의 단편들이 빼곡히 들어찬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들은 흥미로움을 더한다. 아쉽다 싶을만큼 후속 이야기들이 그려지길 바라게 되는 작품도 물론 존재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로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작가만의 스타일에 대한 부러움이 살포시 들면서 약간의 질투가 생긴다. <타인의 고독> 잘 만났고 잘 결혼을 했고 잘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자의 엄마는 또다른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정보회사에 아들을 등록시켰다. 그런 그에게 전부인이 전화를 해서 강아지를 맡긴다. 아이도 없어서 잘 헤어졌다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이 시간에 강아지가 등장을 하게 된것인지, 이 강아지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언쟁. 작가는 왜 타인의 고독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삼풍백화점> 친구와 들렀던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오래전 동기를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얼굴만 알던 사이였던 나에게 그 친구는 아는 척을 한다. 세일정보를 알려준다며 연락처를 남기라고 했고 그 이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같이 밥을 먹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친해진 둘이었다. 그 백화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금니> 생일. 마흔 넘은 사람의 생일은 언제나 별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한 가정의 엄마의 생일은 더욱 그러하다. 치과를 간다. 생일날 치과라니. 심각하게 임플란트를 의논하고 있을 때 아들이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엎친데 덮친 것일까. <오늘의 거짓말> 인터넷 홍보회사. 이름만 그럴 듯 할 뿐 결국은 후기로 메꿔넣는 인생. 자신이 사용해 보지도 않은 상품에 대한 후기를 작성한다. 무조건 근사하게, 무조건 좋게, 별점은 많이. 자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그 남자의 리허설> 아침 일찍 일어나 담배를 한대 문다. 그것이 루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담배가 없다. 여분이 있을까 책상을 뒤진다. 없다. 그저 단순히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려고 문을 나섰다. 도착을 한다. 지갑이 없다. 하. 난감하다. 다시 돌아간다. 아뿔사. 카드키를 두고 왔다. 이 특수한 아파트는 키가 없으면 들어갈 수조차 없다. 어떡해야 하나. <비밀과외>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과외를 붙였다. 처음엔 미술선생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냥 좋았지만 선생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보다는 정권 투쟁에 더 관심이 있었나 보다. 어느날 텔레비젼에 그녀의 얼굴이 나왔다. 내가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불법과외가 성행하던 무렵 나는 다시 과외선생님이 생겼다. 내 성적은 올랐다. 정말 과외 덕분이었을까. <빛의 제국> 자살문화센터 계약직 연구원인 그가 처음으로 받은 일은 예전 비원고등학교에서의 여고생 투신자살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이름만 고등학교일 뿐 그 곳은 여성 전용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만 모아놓은 곳. 그곳에서 벌어진 투신자살.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 되어 버린다. 그 자살은 진짜 자살이었을까. <위험한 독신녀>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보고 얼굴이 많이 상했단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오래전 그 스타일대로 나타났다. 말이 많던 친구였다. 결혼을 해서 브라질로 갔다던 친구였다. 지금 고등생 시절 스타일대로 입고 나타난 이 친구는 누굴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하는 이 친구의 존재가 낯설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장 큰 침대의 양쪽 끝을 사용하는 부부. 윗집 아이가 죽었다. 엄마가 잠간 집을 비운 사이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아니는 독살을 당했다고 한다.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아이에게 독을 먹인걸까. 남편이 윗 집 아이가 뛸 때 쿵쿵거린다고 불평하던 일이 새삼 떠올른다. 남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간다. <익명의 당신에게> 그저 평범한 병원. 일요일 아침 간호사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의사가 자신의 항문사진을 찍어갔다고 한다. 물론 이곳이 항문외과이기는 하나 사진을 찍을리는 없는 바 병원 전체가 왈칵 뒤집혔다. 환자의 보호자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나서고 병원 관계자들은 의사를 사칭해서 이런 짓을 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중이다. 누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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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게 된 동기는 순전히 반값세일이라기엔 정이현 이라는 이름이 눈에 더 들어왔기 때문일게다. 첫 만남이었다. 10편의 단편모음들은 하나같이 쏙쏙 들어왔다.
「타인의 고독」 타인이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면서 지인이기도 한 묘한 관계선상에 서게 되는게 이혼이다. 같이 있으되 타인인 사람들도 있는 현실에서 타인이면서 전혀 타인일 수 없는 사람을 타인의 고독이라는 전제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삼풍백화점」 삼풍백화점의 직원인 동창을 조우한다. 학창시절 존재감 없던 그녀가 인간적인 살가움으로 다가와도 선뜻 맘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가운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진다. 존재감없던 학창시절의 동창을 만난다면 난 어떨까? 현실에서도 존재감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소속은 되어 있으되 그냥저냥 주어진 날들이니 의미없이 사는 사람도 있겠고, 자신은 의미있게 산다지만 전혀 존재감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사람도 있겠다. 어디에서건 어느곳에서건 중요한 존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봤다. 심지어 이 블로그상에서도.
「어금니」 생일날 예약된 치과에서 발치를 할까 어물적 거릴때 걸려 온 전화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 아들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한 가해자인 상태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오로지 건강만을 챙기는 남편과 현실감은 조금 떨어지는 평범한 아내의 아들을 위한 마음이 빚어내는 심리를 들여다보는 마음은 편칠 않았다. 나 역시 아들 하나만을 둔 부모임에랴.
「오늘의 거짓말」 인터넷이 없이는 생활이 안되는 현실에서 신종직업의 비애를 그렸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진실(?)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보는 제3자의 시선은 심히 불편하다. 어느날 내가 어떤 사용자의 사용 후기를 참조하여 물건을 구매할텐데 나 역시 어떤 알바의 직업상 멘트을 믿게 되는건 아닐지. 내가 서평을 올림에도 더 신중해야할 당위성을 갖는다.
「어두워지기 전에」 섹스리스 부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른들만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나 둘은 어느새 불편함보다는 익숙함으로 살아간다. 한 침대서 자도 둘은 서로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남편이 정황상 범인이라는 확신아래 아내가 채근하니 남편은 이실직고한다. 회사 여직원(유부녀)과 만나고 있었으나 정리되었다고. 애당초 섹스리스 부부였기에 더할것도 덜할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자존심이 용인되지 않음에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여전히 침대의 정해진 자리에서 자고 일어난다. 달라진건 가임기가 얼마남지 않음을 인식하며 임신을 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여자는 갖게 되었다. 세상엔 많은 사랑이 난무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맘사랑과 몸사랑을 함께 하면서 그 결실인 아이를 갖는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맘사랑만을, 몸사랑만을, 혹은 이 둘을 가지고 아이는 원하지 않는 사랑은 왠지 미흡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둘만이 하는 것이지만 아이가 생김으로써 내 부모의 나에 대한 사랑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되며 자신들의 분신이라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보며 끝없이 더 노력하고 같이 성장해 간다는 생각이다.
「익명의 당신에게」 자신만 애가 달아서 난리지 별반 상대방은 나에게 그리 적극적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건 많이 슬픈 일일 것 같다. 그럼에도 조건이나 자신의 이상형이라서 쉽게 포기가 되지 않을때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위험(?)한 거래를 해서라도 그사람을 받아들이면, 잡아둔다면 그 마음이 온전히 내게로 올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10편의 단편을 읽으며 비교적 쉬운 소재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설정아래 생각을 요하는 글들에 많은 부분을 빼앗기고 빨려들었다. 대단한 흡인력이다. 첫 조우치고는 예감이 너무 좋았다. 해서 다른 작품임을 알면서도 너는 모른다(장편소설)을 기꺼히 선택했나보다. 참신한 발상과 순간의 심리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궁금함으로 오른손이 왼쪽으로 빨리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 가벼운 듯 하면서도 결코 예사롭지 않은 사건들을 접하며 묘한 흥분감으로 대했던 시간들이 행복했다. 맘에 드는 책(작가)을 만난다는건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서도 참으로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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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열망이 꼭 시쓰기의 실패에 대한 예감때문은 아니었다. 함축적이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시에 비해서 소설은 할말을 다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단지 그 '할 말'이라는 게 막상 쓰려고 보면 수위조절을 놓고 자꾸 백지처럼 하얗게 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어쨋든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일이 비교적 즐겁다. 끈적거리지 않는 문장이 일단 마음에 들고,그렇다고 아주 냉소적이지도 않다는 점, 그 점도 마음에 든다.그렇다고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온다거나 감동의 물결이라거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끝이 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몇년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생은 막 웃기도, 처절하게 울기도 아닌 그저 '적응하여 살기'라는 점을 쓰고 있어서 그 점이 좋다.특히 너스레를 떨거나 현학적이지 않다는 점도. 달콤한 나의 도시도 읽어봐야겠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왔지만 이 책 역시 너무도 사랑스럽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보는 디자인의 소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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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말로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역사상 최초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어린이 합창단의 멤버로 압단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보이 소프라노가 어느 날 잦은 결석을 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엔, 지도 교사가 아이의 목소리 변화를 눈치채고 상처주지 않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어야 했다. 어느날 부쩍 키가 커버렸다면, 아이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면, 목소리로 이미 스타가 되어 버린 아이가 그 고운 소프라노 음성을 잃게 되는 대신 갖게 될 다른 종류의 남성성과 음악성에 대해 잘 이해되도록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게 어른이 재능있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명목으로 지불받는 많은 것들 대한 최소한 의무다. 25년 전 성탄절 특별 공연에서 솔로를 맡은 보이 소프라노가 1부 동안 사라져 있었다면, 아이의 귀를 잡아 끌어 2부 공연의 솔로를 위해 억지로 세우기 보다는, 그 아이의 내면을 관찰했어야 했다. 그 남자에게 그 사건, 목소리의 고음에서 변성기의 쇳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버린 망쳐진 공연은 자신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악가가 되었다. 아마도 그 때에는 그 사건에 따르는 후유증을 이겨내고 극복하였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예술가로서의 길은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야만 밥을 벌어 먹고 살 수가 있다. 매2년 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남자는, 공연 기획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아내에 비해 초라하다. 추리닝 바람으로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최첨단 아파트의 카드 키를 안가지고 나온 것을 꺠달은 그의 하루는 한마디로 일진이 사납다. 지갑에 카드 키가 들었고, 지갑을 빼놓았고 동전 한 닢 없는 거지꼴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구걸구걸 했지만 자신의 아파트 보안팀은 자신이 자신이란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 들여보내 주지 않고, 키를 가진 아내를 찾으러 가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는다. 만나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들어가는 장소마다 창을 활짝 열고, 대화하는 사람마다 코를 만지고 그를 피한다. 그는 적어도 2일에 한 번은 샤워를 하는 사람이고, 일주일에 한번은 대중탕에서 때를 미는 한국적 깨끗함의 관습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는 오늘 냄새가 그리 심하게 나는 걸까. 가까스로 만난 그녀의 아내에게 냄새가 나는 지를 물어보지만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냄새가 진짜로 났을까? 고약한 냄새와 고약한 일진과의 관계는 무엇일가. 이 소설에서 고약한 냄새는 어떤 은유를 지니고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냄새, 천재적인 감성과 천상의 목소리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했던 보이 소프라노에서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위치의 시민합창단이 되어 살고 있는 한 남자의 하루. 단편을 읽으면 암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들이 어렵게 느껴질 떄까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정이현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 중 <그 남자의 리허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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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읽을 만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단편 <삼풍백화점>,
그리고 최근의 <달콤한 나의 도시>까지 분명 '모단한' 도시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분명 장편보다는 단편이 낫다.
이혼 후 결혼정보회사에서 B+ 등급을 받은 나,
삼풍백화점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동창생의 죽음을 겪은 나,
인터넷 쇼핑몰에 다른 사람 명의로 꼭 추천한다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상품후기를 올리는 직업을 가진 나,
그리고 여하튼 이 각종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위선적인 평온에 대한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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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산다... 부끄러움 없이 일상의 거짓말들을 내 뱉기도 하고 아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약간의 거짓말을 가지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이현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고 또 작가가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주제나 시대적 배경이 생소하지 않았던 점이 나를 이 책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작가의 깨끗한 문체와 정갈한 단어 선택 그리고 빠른 스토리 전개가 이 책의 매력을 더욱 높였음직 하다...
두달전인가 나는 김별아 작가의 논개라는 책을 읽었었다.. 완전 대조되는 작품이라고 할까... 김별아 작가의 글이 만연적이라면 이책은 간결 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고, 김 훈 작가의 글이 간결하지만 비장하다면 이 책은 담담 이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즉 "간결"과 "담담"이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던 28일 있는 작가와의 대화에 꼭 참여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을때면 술 먹은 다음날 미나리 뜸북인 맑은 복국을 먹는듯 하나 책을 덮고 나면 삼겹살 먹고 소주 먹지 않은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
정이현 작가의 팬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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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오늘의 거짓말'을 주문하니, 그녀의 장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미니 북이 낑겨왔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먼저 읽었는데, 그만 쏙 빠져버렸다.
주인공 '오은수'는 나와 같은 75년생으로, 그녀의 서른살 시절의 그녀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해주는 화자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타고 났고, 나와 비슷한 직장 생활을 하고, 나와 비슷한 연애를 하고 나와 비슷한 친구가 있는 '은수'를 보니 그 거부할 수 없는,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공감에 그 뒤로 정이현씨의 팬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다지 깊이 있는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마치 그냥 텔레비젼 단편 드라마 한편을 보는 느낌이지만, 그녀가 좋은 이유는 바로 그 '공감' 때문이다.
이 책을 작년에 서른살이었던 내 동생에게 권해줬는데, 아무래도 아직도 읽지 않은 것 같다.
은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내 동생... 올해는 시집 보내야지.
'오늘의 거짓말'은 다양하게 시도한 그녀의 문학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블랙 유머, 치졸한 현실, 발칙, 까칠하게 까발리는 그녀식의 문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는 단편은 '익명의 당신에게'와 '타인의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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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지는 않았지만 , "오늘의 거짓말"은 오래간만에 소설읽기의 맛을 느끼게 해준 맛깔스런 책이었다. 일상에 지친 내게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엿보게 해준 이 책을 읽는 3일간은 감히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왠지 정이현 작가의 열혈팬이 될것같은 느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네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읽고 싶은 분들께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