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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의 걸작 구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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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의 첫문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상의 <날개>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라고 말하리라. 김훈 선생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웠다"의 깊은 의미를 알았지만, 아래 글만큼 강렬하고 스산한 첫문장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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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의 첫문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상의 <날개>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라고 말하리라. 김훈 선생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웠다"의 깊은 의미를 알았지만, 아래 글만큼 강렬하고 스산한 첫문장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 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어느 정도의 내공을 쎃아야지만 저 같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대중적인 면이나 인기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독창적인 면에서 만큼은 박상륭과 대적할 만한 한국작가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다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내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창 박상륭의 소설에 빠져 있을 때는 옆에다 사전을 놓고 읽어야 할 정도였다. 고도의 집중과 몰입을 해야 하고 이미지와 느낌으로 문장을 따라가야한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는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야 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몇 번이고 문장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만의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지식이 첨가되면 더욱 좋다.
 
이 소설을 토대로 양윤호라는 신예감독이 <유리>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콧방퀴를 꼈다. 괜히 작품만 버려놓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예상대로 영화 또한 어렵고 난해했다. 그 방대한 분량을 담기에는 스토리나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소설이 전하려고 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영상의 옷을 입고 멋있게 재탄생했다. 거칠고 파격적이었지만 처연하고 스산한 여백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했다. 몇 번을 봤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배우가 된 박신양의 데뷔작. 그의 연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박신양의 출연작을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곤 한다. 무엇보다 감히(?)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양윤호 감독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스티브 잡스 때문일까? 요즘 들어 자꾸만 이 책 생각이 난다. 십대 후반부터 내 자신과 치열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종교에 대해 이리저리 방황한 탓일까? 아니면 근래에 들어 박상륭 같은 문장과 문체, 서사를 가진 작가를 만나지 못한 갈증때문일까? 문장으로 내 어깨를 후려칠 죽비같은 소설이 필요하다. 강한 충격파가 없고서는 당분간 소설 읽기도 어려울 것 같다.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한다. 20대에 읽었던 책들을 환갑이 넘어서 다시 읽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어린왕자>, <장자>, <구토> 그리고 이 책을 그 나이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정말 너무 궁금하다. 어떤 기분이 들까?
d********1 2014.11.0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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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의 한 복판을 할퀴고 지나간 소설...
"내 사고의 한 복판을 할퀴고 지나간 소설..." 내용보기
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내가 이 책에 관해 풀어낼 말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첫 한 줄을 쓰기가 이리도 어렵다.   박상륭은 광인과 성자와 천재의 어느 한 변두리쯤에 있는 듯하다. 그 난해하면서도 미칠 듯한 황홀감을 주는 문체를 보자면 천재에 가깝고, 생육적인 질펀함을 보자면 광인 같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깊고 깊어 검푸르게 까지 보이는 사유의 크기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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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내가 이 책에 관해 풀어낼 말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첫 한 줄을 쓰기가 이리도 어렵다.

 

박상륭은 광인과 성자와 천재의 어느 한 변두리쯤에 있는 듯하다. 그 난해하면서도 미칠 듯한 황홀감을 주는 문체를 보자면 천재에 가깝고, 생육적인 질펀함을 보자면 광인 같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깊고 깊어 검푸르게 까지 보이는 사유의 크기를 보자면 성자인가 싶기도 하다. 혹은 성자의 탈을 쓴 악마이거나.

 

이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다. 차라리 읽어내는 것 이라고 해야 더 적합 할 듯한 이 난해함은 요즘 접할 수 있는 텍스트와는 분명 많이 다르다. 한국 평단의 콤플렉스라고 까지 불리는 그 도입 부.

 

공문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라거나 돌팔이 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 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이 하나만으로도 나는 몇 번이나 책을 들었다 놨다. 일독해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이 문장은 책 전체에 이른다. 온갖 글들은 전부 이런 식이다. 이쯤 되니 결국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전이 되어 버린다. 책이 이기는가 내가 이기는가 겨루어 보자는 형식이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승리다. 읽어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완전히 감동한다.”

 

하지만 이 책이 그 문체에 있어서만 그렇게 뛰어난 소설인가 하면 오히려 거꾸로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그 문체의 독특성 때문에 저자의 깊고도 깊은 사유가 자칫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굳이 비유를 들어 보자면,

 

'모래를 손바닥으로 한번 쓸었더니 돌이 드러난다. , 이제 뭔가 보이겠구나 싶은데 실상 나는 바위산 위에 있고, 그 돌은 바위산이다.'  

 

이 바위산이 박상륭의 글이다.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크기.

 

탄트라, 우파니샤드, 체용론, 불법, 힌두이즘, 육조 혜능, 기독교, 성경, 연금술 등등등 다루는 그 내용도 많다. 보통 오지랖이 넓으면 그 깊이가 얕게 마련인데 그 많고도 많은 것들이 전혀 가볍게 다루어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수용하기 버거울 정도로 그 많은 사상을 관통하는 저자의 관념이 깊다. 형이하부터 형이상까지 다다르기도 한다. 도저히 내 알량한 언어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내가 여태까지 이만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가? 그 방대하고 깊은 사유에 헛바람을 삼킨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기 어려운 책이다. 나도 사실 몇 번인가 권했던 적이 있기는 한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뿐이었다. 일단 첫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다. 나 역시 추천을 해준 분을 처음에는 얼마나 원망 했던가? 헌데 지금은 그의 전집이 책꽂이에 소롯이 꽂혀있다.

 

YES마니아 : 로얄 i*******m 2010.07.1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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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늪에서 고기 낚기
"마른 늪에서 고기 낚기" 내용보기
실선으로만 육면체를 그리고 나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올려다보이기도 하고,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물체의 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관찰자의 위치, 시점이 작용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근래에 양자물리학에서 다루고 있으며, 선(禪)에서는 오래전부터 제시해온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인 물고기, 타원형은 양 끝을 중심으로 하는 원이다. 동시에 밖에서 보면 하
"마른 늪에서 고기 낚기" 내용보기
실선으로만 육면체를 그리고 나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올려다보이기도 하고,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물체의 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관찰자의 위치, 시점이 작용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근래에 양자물리학에서 다루고 있으며, 선(禪)에서는 오래전부터 제시해온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인 물고기, 타원형은 양 끝을 중심으로 하는 원이다. 동시에 밖에서 보면 하초요, 안에서 보면 요니인 양성이다. 세계의 본질이 재생이라면, 어떤 이들은 그 재생을 위해 몸부림치고, 어떤 이들은 재생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 재생은 윤회일수도 있고, 생산일수도 있다. 그러나 재생의 전제는 죽음이다. 완전한 죽음. 완전히 죽어야 완전한 새로운 삶을 얻는다. 여기서 붓다와의 대화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때의 기준을 물었던가? 어떤 제자는 아침에 눈뜰 때 태어나고 밤에 잠잘 때 죽는다고 했다. 재생의 단위를 하루로 본 것이다. 어떤 제자는 날숨쉴때 죽고, 들숨쉴때 태어난다 했다. 호흡의 단위다. 붓다의 대답이 눈감을때 죽고 눈뜰때 태어난다 했다. 어떤 이가 그렇게 눈깜빡이는 매 순간순간 새롭게 죽고 새롭게 태어날까. 이 '죽음의 한 연구'의 주인공은 마치 살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완전히, 오롯이 죽기 위해 살아간 것 같다. 그의 목적이 완전한 재생인지, 윤회로부터의 초월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어쩌면 목적에 집착하는 것조차 완전함을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메시아란, 각자(覺者)란, 마치 그 자체가 생명수인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돌중처럼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 나지 않을만큼 모든 것이 뒤집혀지고 파괴되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각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륵은 곧 파괴자일지도. 돌중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누이와 근친한다. 그러나 그 살인은, 그 근친은 오로지 유리 안에서 일어난 것. 그것은 곧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나타나면 조사를 죽이고' 의 현실화일수도 있고, 길위에서 죽은 노승이, 스승의 죽은 얼굴이 내 얼굴로 보인것처럼...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속에서 그저 또 하나의 나를 죽인것이다. 유리의 촌장은 죽음으로써 대물림되는것. 오조촌장의 압사는 육조촌장의 탄생이요, 육조촌장의 죽음은 칠조촌장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는 유리의 불문법에 따라 그 자신의 죽음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 스스로의 의지로 혀를 끊고, 타인의 의지로 눈을 먼다. 혀는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소리의 기관이고, 눈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영상의 기관이다. 소리를 잃음으로써, 손톱만한 자아와 역시 손톱만한 타아의 구분이 없어지고, 시각을 잃음으로써, 특별한 존재는 그 특별성을 잃은 그냥 한 존재가 될 뿐이다. 삶의 의미는 매 순간순간 죽음속에서, 죽음의 의미는 매 순간순간의 재생속에서, 자유는 구속속에서, 깨달음은 무지라는 연꽃속에서 찾을 수 있는 구슬인지도... 옴마니팟메훙

[인상깊은구절]
어떤 종류로든, 스님도 머지 않아, 혹간 스님 자신도 모를, 어떤 타의로부터 말입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실 때가 올지도 모릅지. 소승에게는 말입지, 이 세상 산다는 일이 말입지, 누군가가 배후에서 철사줄을 놀리고 있는 그런 말입지, 무대에 선 한 꼭둑각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말입지, 그 철사줄을 끊고 말입지, 그 꼭둑각시가 무대 아래로 내려서려고 한다면입지, 그건 꼭둑각시의 죽음과 연결되는 것입지. 꼭둑각시의 자유와 초월은 말입지, 철사줄에 계속 붙들려 매어져 있을 때라야만 말입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릅지. 거역이나 반항도 그렇습지, 철사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말입지, 왼손을 쳐들라고 하는데입지, 꼭둑각시 당자가 왼발을 쳐들 수 있는, 그런 말입지, 거역과 자유도 말입지, 그 철사줄과의 연결 아래서 가능된다는 말입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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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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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좌절을 처음 느끼게된건, 박상륭이라는 작가 앞에서였다. 타고난 글쟁이인 , 그사람 앞에서 내게 남겨진건 초라한 '질투'였다. 질투때문에 몸이 타는듯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사람들 앞에 일반인들이 갖는 질투와 좌절은 나뿐 아니고...타인들도 늘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과거 모짜르트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중 기억나는한 영화가 있는데, 액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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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좌절을 처음 느끼게된건, 박상륭이라는 작가 앞에서였다. 타고난 글쟁이인 , 그사람 앞에서 내게 남겨진건 초라한 '질투'였다. 질투때문에 몸이 타는듯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사람들 앞에 일반인들이 갖는 질투와 좌절은 나뿐 아니고...타인들도 늘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과거 모짜르트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중 기억나는한 영화가 있는데, 액자형식의영화였다. 어느 왕정악사가 바라본 모짜르트이야기였다. 하늘이 내렸다고밖에 설명하기 싫은, 재능을 가진 모짜르트를 악사가 회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모짜르트를 질투하며, 신께 원망한다.... "왜 제게 모짜르트같은 재능을 주지 않으시고, 그를 알아볼수있는 눈 만을 주셨습니까?"......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모짜르트앞에, 그의 고통은 심연처럼 깊어만 간다. 재능없는 예술인이라...... 시지프스의 천형과도 같으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을 가진 사람 앞에서 평범한 인간은 그저 무능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의 '모든 노력'이 '무능'이라는 이름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이문열이 말했지만, 타고난 재능앞에서 평범한 인간에게 날개란 도저히 소장될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왜 누군가는..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음악을 듣거나, 미술폼을 보거나, 고서적을 읽으면...그시대로 올라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수있게된다. 그들과의 대화는 때론 고통스럽지만, 그들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동질의 공감대를 형성하게되는데...이것은 시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루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정신적결합이다. 그러한 내밀한 교류는 매우 즐거운 일이다. 예컨대,자신의귀를 자른 후 그렸던 고흐의 자화상 같은것....말이다. 불덩이를 종이에 처덕처덕 바른듯 폭력적인 붓질이며, 원근법따위는 내머릿속에서 계산되지도 않을만큼 격적정인 그의 시각, 신경증적 색체....조마조마 불안한 구도.....마치 누굴 불러들이는 술사의 종이조각 처럼, ....사람의마음을 화폭에 불러들인다. 그리고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나를 산책시키는 것이다. 그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길모퉁이에서 실제로 그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수없이 고흐의 죽음을 목격해야한다. 이것은 강제적인 초대이다. 박상륭의 작품은 위와같이, 확실히 인간과 교류한다. 그의 작품은 그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생명을 갖는다. 박상륭(이하 박)의 소설책은 거울속으로 들어가는듯 어지럽고, 까다롭고, 흥미진지하다. 읽을때 마다 마다... 그 책은 내안에서 다시 잉태되고 다시 출산된다. 자신만의 언어로 기술한듯,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는 이유로 일반인의 접근을 봉쇄하고 일부 극소수의 매니아층만이 그의 소설을 쥔다. 시인 이상과 비슷하게 "개인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자폐적인 분위기를 띄는 이상과는 또 전혀 다른 일종의 파괴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그는 죽음과 생명을 맞닿아 생각하고있고, 파괴는 곧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는 읽는 이로 하여금 여행을 가는것같은 재미를 선사하는데, 그 여행길의 끝은 결국 박상륭,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있다. 그 내면의 소용돌이는, 우주적 공상과 질서로 연결되니 참 넓은 이상을 소유한 사람이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어려운 기술방식, 길고 긴 은유적 문장. 보카치오는 저리가라할 엽기적인 상징적 상황연출. 소재의 비대중성. 형이상학적 주제...... 그는 소설이라는 틀을 통해, 인간이 도달할수있는 그것을 상상하며 인간이 태어났던 자궁으로 자신의방식으로 회귀하고싶어한다. (그러나 물은 흘러가야한다. 물은 그저 흘러갈뿐 회귀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슬쩍 박상륭의 약점을 잡아본다. 그는 한낱 '한방울'인 주제다.) 그의 책은, 일종의 원형을 찾아가는 길고긴 여정이다. 그 원형이 '생명'이라고 그는 말한다. 합일 에의, 그의 끈질기고 기막힌 회귀노력은 눈뜨고 문장을 읽어내기 힘들게만든다. 그의 작품읽어내는 어려움은 내가 가진 편견과 상식으로 인해 더욱더 깊어진다. 박 의 숙제는 이제 합일을 표현해내는것이며 , 원형으로의 회귀를 우리에게 문자로 보여주는 것인데, 그 와중에 그는 형이상학적인 접근만을 고집한다. 어떤 이는 박의 문학적 상징들을 매우 불쾌해하는데.... 사드후작도 울고갈 그의 작품속 설정들을 조금만 다른 눈으로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는 캐나다의 한구석에서 꾸역꾸역 자신의 쉰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그것은 신을 향한 울부짖음이 아니어 심히 불손하고 자신을 향한 울부짖음도 아니어 심히 교만하며, 그것은 생명에대한 목청터지듯 조용한 함성이어 심히 가련하고 불쌍하다. 나는 그의 책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 지겨운놈의, 그 구질구질한, 그 삭막한 , 그 외로운, 그 뜨거운..... 외침앞에 먼지처럼 울어버렸다. 그의 문장을 퉤퉤 뱉어내버리고 싶었다. 기독교인인 내가, 일반 기독교인에게 적극 추천하고싶진 않은 책이다. 그래서 제목란에 '읽어봐요'라는 말을 이번에도 빼돌렸다. 그러나 뜻밖에 난 그의 책을 읽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변증되는 경험을 했다. 기독교적이라부를순없는 그의 책이,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이끈 '작가도 독자도 예상못한 뜻밖의 경험'을 하게된것이다. 박을 향한 평단의 찬사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혹자는 그를 한국문학의 자존심이라하고 , 혹자는 그의 책 [죽음의 한 연구]를 무정이후 최고로 잘쓰여진 소설이라한다. 문학이 이룰수있는 것이 외계의 모방이나 내면의 분출이라면, 기껏 한웅큼 울부짖다 스러지는 바벨탑이 아닌가? 어느것 하나 신선한 것이 있는가?? 박상륭의 웅얼거림은 한 편의 시로 볼수있다. 그의 긴 산문시는 질서와 생명을 향한 편집증적 미학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안쓰럽고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아아. 그가 세울 질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박상륭이여, 너의 친구 시지프스 곁에서 돌을 굴려라. 그사이 나는 평론가들의 냄새나는 혀를 닦으마.
a*****9 2005.12.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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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과 <존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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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승이 어디서 이야기를 듣자니 말이오. 어떤 부잣집 탐욕스런 영감이, 자기가 부리는 착한 종을 데리고, 서낭당귀신에게 찾아간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대체 누구의 목숨 무게가 더 무거운지, 그 무게를 한번 달아보아 달랬다는구먼요. 글쎄 그 노인 생각에, 자기는 부자라 잘사는 판이니, 자기 목숨이 훨씬 무거울 것이라고 은근히 교만해 했던 것입니다. ∼헌데 그 귀신 달
"<존재감>과 <존재의 무게>" 내용보기
- 소승이 어디서 이야기를 듣자니 말이오. 어떤 부잣집 탐욕스런 영감이, 자기가 부리는 착한 종을 데리고, 서낭당귀신에게 찾아간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대체 누구의 목숨 무게가 더 무거운지, 그 무게를 한번 달아보아 달랬다는구먼요. 글쎄 그 노인 생각에, 자기는 부자라 잘사는 판이니, 자기 목숨이 훨씬 무거울 것이라고 은근히 교만해 했던 것입니다. ∼헌데 그 귀신 달아보고 했던 말인즉슨, 두 무게가 아주 꼭 같아서, 저울 눈이 아무쪽으로도 기울지가 않는다고 하드란 것이었소. 그러자 이 노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만약에 목숨 무게가 같기로 한다면, 어째서 자기는 잘살며 상전이 외고, 어째서 저 종놈은 못살며 종놈 노릇을 못 면하느냐고 물었다는구료. 그러자 저 서낭귀신 대답이, ''만약에 노인장께서, 재물로 하여 목숨을 살 수 있다면, 한 여남은 근쯤 더 사다 이 저울대 위에 올려놓아보시오. 그러면 노인장 목숨이 여남은 근쯤 더 무겁지 않겠소''하더라는 것이지. 그러자 이 노인, 그것 참 좋은 의견이라고 기뻐하며, 목숨 무게야 까짓것, 상전 것이나 하인 것이나, 부자 것이나 빈자 것이나 같다고 하니 따질 것 없으니, 그럼 어디 혼 무게를 좀 달아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는구료. 글쎄 자기에게는 그만큼의 재물이 있으니, 장차 자기가 죽을 일이 있으면, 저 충직한 종으로 대신하여 죽게 하여, 그 혼을 자기 혼 대신으로 저승엘 보낼 심산이었던 것이죠. ∼헌데 말이시다. 그 귀신 했다는 대답이 ''목숨이나 혼 무게는 누구의 것이나 같은즉, 그럴 것이 아니라, 누구의 선업(善業)으 무게가 무거운지, 그것이나 달아보면 어떻겠소''하며, 달아본즉, 그 착한 종의 무게가 글쎄, 저 탐욕스러운 장자의 무게보다 삼백배 사백배도 더 무거월설랑 저 장자의 선업의 무게를 가랑잎 한닢처럼 띄워버리더라지요. 그래 노인 심히 의아해하면서도, ''장차 내가 죽어야 될 때, 저 종놈의 혼을 내 것 대신으로 보내도 되겠소?''하니, 그 귀신 대답이, ''이제 선업의 무게로 대강 사셨겠소만, 저승에서는, 노인장께서 저 종자의 종이나 되겠소. 글쎄 저승엔, 무겁지만 혼 위에 업(業)을 업고 오는 것인데 그 무게가 노인장 것과 꼭 같은 것이 있다면, 대신 보내도 될랑가 모르겠소만, 내가 알기로, 이 세상엔 같은 업 무게는 하나도 없는 걸로 알아왔소'' 이러더라지요. 그에 이르러선 장자 슬피 울며, ''한번 죽으면 가져오지도 못할 저 재물 때문에, 내 얼마나 평생에 못할 일을 많이 하였던고!''하고, ''이제 내가 돌아가면, 그 재물로 하여 원한들이나 씻어주어야겠소'' 하고 발길을 돌리려 하는데, 서낭귀신이 불러세워 하는 말이, ''노인장은 어디를 가시려오? 일직사자 월직사자 저 문전에 당도해 있으니, 저승 갈 채비나 하시오'' 그러더란 것이었소. -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이 부분을 읽는 데 제 은사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저도 자주 거론하곤 했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 존재의 무게는 누구나 다 같다. 다만 존재감이 다를 뿐이다 " 인간의 <존재>와 저마다의 <존재의 무게="">에 대해 심각하게 빠져들어 생각해보게 되고, 결국은 생의 순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하죠? 진정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관한 책들과, 객관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전통의식,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들, 이미지들.. 그것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저는 생의 의미를, 그리고 만물의 존재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면,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앞에 인용한 부분 외에도, 이 책에는 저의 심중을 울리는.. 저의 생각들을 장악하는 무수한 말들이 있었지만.. 생략합니다. 그보다, 제게 생의 의미를 찾는 여정의 첫 대문을 열어준 책이라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l****2 2002.12.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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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쓰는 글만이 신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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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피로 쓰는 글만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쪼개어 치열한 혼을 불어넣은 글만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귀한 글들 가운데 박상륭의 책이 자리하고 있다. 캐나다라는 춥고 황량한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끊어낼 수 없었던 모국어에 대한 향수를 그는 이 책 속에 모두 쏟아부어 놓은 것만 같다. 낯선 말투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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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피로 쓰는 글만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쪼개어 치열한 혼을 불어넣은 글만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귀한 글들 가운데 박상륭의 책이 자리하고 있다. 캐나다라는 춥고 황량한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끊어낼 수 없었던 모국어에 대한 향수를 그는 이 책 속에 모두 쏟아부어 놓은 것만 같다. 낯선 말투와 사전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말들의 조합, 그리고 그런 말들보다 더 난해한 메세지와 주인공들의 기행들 사이에서도 정신을 놓지 않고 그를 따라 더듬더듬 책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이 글들을 토해내기까지 무수히 쏟아내었을 血의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국어를 그저 잘 쓸 뿐만이 아니라 새로이 만들고 다듬어 또 하나의 낯설고 정겨운 모국어를 창조해낸 노작가의 정신이 진정 신뢰로운 글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박상륭이라는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진다.
m***o 2002.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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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 놓아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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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맑은 사람이 있었다. 같은 회사 사람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맑은 눈에, 항상 웃음을 띄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제목에 이끌려 몇 번 읽어보려 시도했으나 낯선 어투와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내용에 덮어버린 책이었다. 그런 책을 선물로 받는 것이 재밌었다. 그랬읍지, 저랬읍지... 끝날줄 모르는 긴 말투가 그저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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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맑은 사람이 있었다. 같은 회사 사람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맑은 눈에, 항상 웃음을 띄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제목에 이끌려 몇 번 읽어보려 시도했으나 낯선 어투와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내용에 덮어버린 책이었다. 그런 책을 선물로 받는 것이 재밌었다. 그랬읍지, 저랬읍지... 끝날줄 모르는 긴 말투가 그저 사투리 같고 노래처럼 흥이 있었다. 내게 선물로 준 그 사람은 대학시절, 소문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고향인 강릉 앞바다에 유골을 뿌려주고 친구들과 헤엄쳤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해 방황했다고… 아마도 그의 이런 얘기는 죽음의 한 연구, 책을 읽는 도중 들은 것으로 기억되고, 책 속에서 한 여자의 죽음과도 맞물려 그려졌는지 모르겠다. 유리를 찾아 마을로 들어서는 한 사람,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의 살해, 스승, 유골, 여자, 촛불, 촛농으로 눈을 가리움, 나무 위에서 죽음, 오줌을 저림, 여인의 꿈에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 설명 됨, 죽음이 아름답고 보내주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가 너무도 아름다운 책, 정말 가슴벅찬 느낌, 감동, 어투의 아름다움, 난 정말 너무도 멋있게, 이 책을 보았다. 그리고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그 사람에게 고맙고 왠지 아픈 구석이 참도 많은 그의 마음도 이제는 좀 힘겨움에서 벗어나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죽음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 가깝다 여겨지는 사람의 죽음을 겪고 안 겪고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그저 그런 것,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것, 남아있는 자, 스스로의 위안을 위해서 힘들어 하는 것도 같고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도 같다. 참으로 아끼는 책이기에 감상문을 정성스레 쓰고 싶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죽음 앞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이 책을 읽기란 힘이 들겠지만, 그 힘든 상황에서 책이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박상륭의 멋진 어투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첫날 쯤에 보면 유리를 찾아 마을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벌거벗고 가지요.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의 살해, 스승, 유골, 여자, 촛불, 촛농으로 눈을 가리움, 나무 위에서 죽음, 오줌을 저림, 여인의 꿈에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 등이 떠오르네요. 한 여자의 손을 10대 세개 때리는 장면이 책 중간쯤에 있습니다. 음탕한 손을 때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나오기 전의 책이어서 페이지는 적을 수 없고 예전에 읽을 책이라 지금 책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s***l 2000.09.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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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언어로 쓰여진 죽음과 사랑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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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듯한 한 여름날 일요일. 서울에 모처럼 올라온 나는 오래간만에 대학로에 갔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책을 샀다. 내가 생기발랄한 젊음의 그 거리에서[죽음의 한 연구]라는 어두운 제목의 이 책을 든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뫼르소처럼 아무 이유없이 그냥?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 기 죽이게 만드는 작가의 장(長)문은 도대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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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듯한 한 여름날 일요일. 서울에 모처럼 올라온 나는 오래간만에 대학로에 갔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책을 샀다. 내가 생기발랄한 젊음의 그 거리에서[죽음의 한 연구]라는 어두운 제목의 이 책을 든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뫼르소처럼 아무 이유없이 그냥?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 기 죽이게 만드는 작가의 장(長)문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자꾸자꾸 반복하여 읽게 만들었고 서점에서 서서 읽으려니 머리에 더더욱 안 들어오는 것 같아 나는 덥석 이 책을 사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8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거의 두 달 반을 이 책 한편(책으로는 2권)만을 아침, 저녁으로 만났다.(책의 분량만으로 볼 때 이 때만큼 책을 읽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듯 하다) '죽음'하면 내 경우에 어둠. 不可知, 해탈, 부활, 영혼, 지옥, 천당, 섹스, 탄생, 윤회 그리고 삶, 사랑.. 그런 말들이 떠오른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는 이렇게 죽음에 관계되는 인간사 고뇌의 다양한 분출과 침잠의 이미지를 한 인간이 어떻게 이겨내고 승화시키는지를 쓰고 있다. 1인칭 화자인 '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창녀다. 어렸을 적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는 중에게 불머슴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스승이 원한대로 스승을 죽이고 소설의 처음에 소개되듯이 “유리”라는 돌중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인하고 사랑하고 죽음을 준비한 40일간이 이 작품이다. 이 책이 어렵다고 해도 관념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관념의 언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몸의 언어로 죽움과 사랑, 그리고 초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익숙해져 버린 관념언어가 아닌 몸의 언어로 썼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나’가 그의 아버지 같던 스승을 살인하는 장면이나 가장 더러운 곳에 있다고 생각되는 수도부(창녀)가 백치처럼 순수하고, 하나님과 늘 같이하는 교회의 목사 손녀가 ‘나’의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 유혹하는 장면 등은 생각만으로는 얼른 이해가 안 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선 모든 게 그의 전존재의 죽음을 위한 시련임을 알게 된다. 국내 소설을 별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박상륭만큼 개성이 넘치는 작가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스케일이 크다고 할까 아니면 사유의 깊이가 심연 같다고 할까 하여튼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 빼놓아서는 안 될 소설이다.
d******t 2000.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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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넘나드는 대단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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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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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이것이 죽음의 한 연구의 첫 문장이다. 굉장히 긴 문장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책을 얻고도 몇 년이나 읽지를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읽어보니 이전보다 좀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스승을 죽이고 유리의 오조촌장인 존자를 죽인다는 것은 아마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수도청 이야기는 막달라 마리아를 나타내는 것일 게다. 사십일간이라는 기간도 아마 예수 그리스도의 기간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권에서 장로댁에서의 설교는 아마도 종교간의 통합에의 한 길일 수도 있으리라. 요즘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한다면 제대로 알아들을 것 같지는 않지만. 도망갈 수도 있으나 유리의 법에 따라 죽어가는 그 모습이 처연하다. 어떻게 인간이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러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실체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가 오조촌장을 죽인 것처럼, 칠조 촌장이 될 촛불승에 의하 그 또한 죽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행위인 마른 늪에서의 고기 낚기는 아마도 깨달음으로 보인다. 해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강 이런 식으로 이해하며 이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그 깊은 뜻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 한 번 더 읽어 보아야겠다. 아무래도 깨달음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 같다.
7*****0 2002.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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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이룰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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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93년, 제대를 몇달 안 남긴 고참병장 시절이었다. 과업중에는 내무반에서 뒹굴며 이 책을 읽고 밤에는 쫄따구들을 데리고 소주를 먹었다. 긴장도 없고 재미도 없는 군생활에 몰락될 무렵 만나게 된 박상륭선생의 '죽음의 한구'는 문학이 구현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제시한 경이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재미가 있었다. 독특한 문체를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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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93년, 제대를 몇달 안 남긴 고참병장 시절이었다. 과업중에는 내무반에서 뒹굴며 이 책을 읽고 밤에는 쫄따구들을 데리고 소주를 먹었다. 긴장도 없고 재미도 없는 군생활에 몰락될 무렵 만나게 된 박상륭선생의 '죽음의 한구'는 문학이 구현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제시한 경이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재미가 있었다. 독특한 문체를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면 희열에 가득찬 미소가 번지곤 했고, 문장은 시처럼 아름다웠다. 또한 장면장면은 내 머리를 비현실적인 몽롱한 상태로 인도했다. 주제가 무엇인지 지금도 알길이 없지만 무작정 중독될 수 밖에 없었다. 열명길이라는 단편집이 출간돼 있는 것을 알고 재빨리 구입해서 읽었다. 그러나 그 때는 박상륭선생을 아는 인간이 주위에 하나도 없었다. 친구놈들은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가 최고의 소설로 아는 놈들이었으니깐..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으니 외로왔다. 그 때는 박선생이 캐나다에서 오시기 전이었으니 .. 그 후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문학제도 열리고.. 지금은 비록 소수지만 '박상륭매니아'들이 도처에 많다. 제대로 된 비평서도 많이 나오고 있다. '죽음의 한 연구'가 흔히 어렵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읽을만 하다. 앞부분 3장만 참을성 있게 읽는다면 끝부분은 부르르 떨며 덮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칠조어론(1-4)은 어렵다. 그야말로 죽음의 한 연구식으로 읽어야 한다. 나는 칠조어론을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있다. 직장생활 하면서 빠지게 되는 이런저런 현실과 나태함 때문이다. 언젠가 '죽음의 한 연구'를 처음 읽었던 저 푸른제복의 20대와 같이 혼란많고 힘들때가 오면 그때는 읽힐 것 같다. 아무튼, 박상륭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는 척박한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경박한 정신세계에 경종을 울린 명저이며 한글로 작성된 문학작품 가운데 후세에 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s*****9 2002.07.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