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어느 곳에서도 들어 본적도 없고, 누군가 읽어 본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무명작가 장 델뤽의 ‘미궁에 대한 추측’이라는 소설에서 건축가, 법률가, 종교학자, 연극 배우라는 허구적 인물들의 입을 빌은 크노소스 궁전의 ‘라베린토스(미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후에 문자 해독을 통해 미궁의 비밀이 벗겨지고 결국 ‘장 델뤽’의 여러가지 추측 중에서 한가지가 진실로 판명이 나게 되나 작가가 손을 들어 주는 것은 그 진실 자체나 진실에의 근접성 여부가 아닌 장 델뤽의 신화, 그 신성함에 칼을 들이 대는 대담한 행위이다. 하비 콕스는 그의 대표작인 ‘세속 도시’에서 종교의 세속화 -즉 우리의 한정된 지력과 상상력 속에서 우상화된 신을 죽이고, 신성이라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재해석- 가 이루어 지고 있는 공간을 ‘세속 도시’로 제시하며, “신화와 율법의 속박에서 빠져 나와 자유를 누린다는 것으로 즐거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 자기 자신의 책임을 걸머지는 인격자들이다.”라는 말과 함께 인간 해방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인들은 해방된 존재이며 현대 도시, 세속 도시는 해방의 공간인인가? 오히려 현대인들은 흑백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냥 칼로 자른 듯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맘에 안 드는 것은 검다고 비난하고 주저없이 칼을 꽂으면 되는 것이다. 회색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저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모든 현상과 사람이 간단하게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아도 끊임없이 온 몸과 마음으로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리라. 현대 사회는 자신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하면서도 자신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굉장한 존재라고 착각을 하면서 한 평생을 살기에 아주 편리한 System을 갖춘 곳이다. 시선을 빼앗으려고 하는 허상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픈 진실 따위에는 눈을 줄 시간도 당위성도 없어 보이는 곳이 현대 사회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신의 시야와 이해도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지력과 의지력을 한계로 하는 ‘불구의 신’에 의지해 각종 대상들을 난도질하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식의 자유와 만족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반쯤 눈이 멀어버린 현대인의 속박이요, 종교요, 반쪽짜리 해방인 것이다. 즉 현대인은 해방의 한 형태가 고착화 되어 또 하나의 우상이 되어 버린, -하비 콕스가 ‘세속 주의’라는 개념으로 경계하고 있는-, 모습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궁에 대한 추측’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선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가 구현될 가능성이 있는 공간과 어떤 편견과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인간 정신 해방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미궁’은 공간적으로는 고착화된 현실의 모습으로 인해서 왜곡 당하고, 헤게모니를 쥔 자들에 의해서 유린당하는 과거의 ‘진실의 조각’을 잉태할 수 있는 곳을 형상화 하고 있다. 현재의 정당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날조되는 진실의 기억이라는 것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일상의 범속함에 눈이 먼 자들은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신화’이고 미궁일 것이다. 성경에 예수가 비유로만 말했다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또한 미궁에 대해서 어떤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각각의 해석을 존중하는 행위는 유리벽 속에 갖혀 자신이 유리벽 밖으로 보는 것을 향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자유로와지라는 선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호 씨가 ‘반신학의 미소’에서 한 ‘이제 우리의 진리를 죽일 때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적대하는 다른 진리를 포용하자는 게 아니다. 진리를 살리려는 자들의 일체의 억견에 대항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진리는 부정의 진리이다. 죽기 위해 존재하는 진리이다.’라는 말을 한번 되씹어 봄 직하다. 이승우 씨의 ‘미궁에 대한 추측’은 어떤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 추측의 행위 그 자체로 인간 해방의 작은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할 수 있는 공간, 신과 인간이 창조라는 미완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서로를 찾고 있는 공간을 ‘미궁’을 통해 형상화 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을 ‘창조’라는 위대한 과업에 능동적 행위자로 참여 시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