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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힘겹고 아린 아이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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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힘겹고 아린 아이의 독백     이 소설은 불운한 환경에 처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의 경험이 동기가 되어 씌어졌다. 소설에서처럼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유기된 어린 남매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이 내게 주어졌지만 일 년 남짓 계속된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패감만 남았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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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힘겹고 아린 아이의 독백

 

 

이 소설은 불운한 환경에 처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의 경험이 동기가 되어 씌어졌다. 소설에서처럼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유기된 어린 남매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이 내게 주어졌지만 일 년 남짓 계속된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패감만 남았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녀리고 어린 영혼을 잠식해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허위의식이나 세상의 불친절과 저절로 차갑고 기형적으로 단련되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데 따른 부끄러움을 맛보기도 하였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로부터, 내쳐진 아이들은 문 없는, 단단히 봉인된 방과 같았고, 나는 있지도 않은 문을 찾아 안타깝게 더듬대는 형국이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때의 참담함이나 부끄러움은 많이 엷어졌으나 나 자신이 또다시 그 아이들을 어딘가에 무책임하게 버려둔 듯한 부채감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내게 이 소설의 뒤를 이어 써야 한다고 부추기곤 하였다.

오정희 '<새> 개정판을 내면서' 中

 

장편소설이라고는 하나 165페이지라 중편소설에 가까운 이 짧은 소설을 다 읽는데 거의 3개월이 걸렸다. 보통 다 읽는데 오래 걸린 책들의 경우 바쁘거나 여러 책을 동시에 읽고 있어서인데, 이 책을 다 읽는데 오래 걸렸던 것은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2003년 리베라투르상 수상작, 한국인 최초로 한국 문학작품으로 해외문학상을 받은 작가이자 거의 모든 작품이 해외에 번역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새>, 등단 42주년 기념 문장을 가다듬어 낸 개정판으로 읽었다.

 

 

<새>는 사랑을 받아본 적도, 제대로 된 가족도 가져본 적 없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다. 작가가 자원봉사를 하며 겪은 일화들을 모티브로 썼다는 <새>는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이 없고, 모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겪는 소외를 (보통 이런 소재의 픽션들이 흔히 행하는) 연민이나 감동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냉정할만큼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현실의 비극과 그대로 마주하려 한다. 그러면서 오정희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정제된 문장의 향연과 군데군데 삽입되는 환상적인 묘사들은 다큐와 동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신 없이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란 뜻의 우미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되란 뜻의 우일, <새>는 이 남매의 누나이자 열두살난 계집애 우미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로 아버지도 남매를 장모(남매의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를 시작으로 남매는 물건 옮겨지듯 이 친척, 저 친척 집을 전전했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가 남매를 찾아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여러 가구가 사는 공동주택엔 이웃이 있고 새엄마가 있다. 남매는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바람을 맞지 않기 위해 어린 사내애 오줌에 집착하는 외할머니의 바람 맞은 급사, 어머니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 집을 떠날 때야 비로소 처음 아이들의 눈을 봐주는 큰 어머니, 레즈비언 부부와과 그녀들에게 집착하는 홀아비, 곰순이를 두며 동심과 순수가 가득찬 교실을 꿈꾸지만 아이들 각자의 곰순이는 FM 이상 허용하지 않는 선생,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아이들을 보며 무서운 새엄마(창녀였다), 형식적인 관심만 베풀 뿐인 상담어머니, 은둔자 정씨의 사정, 겉으로만 행복하고 지극한 연숙네, 불구된 딸 걱정에 결국 교회에 미치는 안집 할머니, 우미를 희롱하는 아버지와 동네 사내들..그리고..그리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지만 남매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다만 우미는 점점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우일이는 머리가 커지지 않는다. 결국 새 집에서도 남매는 버림받는다.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며 묵묵히 집을 지키며 상한 고기까지 남김 없이 먹는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오만 여자들의 얼굴들을 오려 모은다. 우미는 관심 받고 싶어 매일 똑같은 일기를 쓰고, 우일이를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공부시키고 벌을 준다. 우일이는 토토에 빠져 있고, 횡설수설하고, 멋진 남자가 되고 싶어 학교보다 불량배 누나·형들을 좋아한다.


이들은 <새>의 일부 에피소드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수많이 툭툭 던지는 우미의 눈에 비친 어른들과 우미와 우일이가 겪는 일들을 계속 지켜보다보면 어느새 '새'로 향하는 끝이 보인다. 홀아비 이씨는 과부새를 키우며 적적함을 달랬고 남매는 그 새에 호기심을 갖는다. 끊임없이 날고 싶어하던 우일이는 몸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토하며 점점 가벼워져 새가 된다. 우미는 새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상태에서 이씨의 새장을 들고 무작정 달린다.


이름과는 너무 반대되는 이 남매의 불행을 그저 주변인으로 지켜보고만 있는 독서 시간, 그리고 그를 다시 기억해내며 감상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참말 끔찍했다. 어떻게 그럴싸한 문장들을 늘어놓은다한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의 감흥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 인생의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꽤 오랫동안 내 가슴에 박혀 있을 것 같다. 동정이나 충격은 아닌데 묘한 참담함과 무기력함에 힘이 풀린다. 우미는 그 후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며 지금도 달리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i*****7 2011.10.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