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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인 나에게는 이길여 총장이 세운 길병원이 익숙하다. 가천대학교를 세운 사람도 현재 총장인 이길여 여사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맨손으로 일으킨 길병원과 가천대학교의 스토리는?
여러 가지 해답을 이길여 총장 회고록인 <길을 묻다>에서 얻을 수 있을까?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가지 질문이 해소된다.
이길여 총장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말을 쓰며 일본 교과서로 배우던 시절인 1940년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233 페이지에서 결혼을 하지 못한 세 번째 질문의 답을 들었다.
이길여 총장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듣다 보니 책을 전부 요약해버릴 뻔 했다.
성공 스토리와 열정을 확인하고 싶은 분은 이길여 회고록 <길을 묻다>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blog.naver.com/kyoyo21/222998936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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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은 어릴적 읽은 위인전 외에는 없었다. 이전에 읽었던 '이어령의 마지막수업' 같은 느낌의 책일까 싶은 궁금어린 시선으로 바라봤었는데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사정을 가졌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한 실제 인물의 과거이야기. 물론 소설책과는 다른 느낌의 성장기였지만 소설책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실제 인물의 연대기를 보고나니 인생의 방향성이 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성공외에도 인물, 이길여 선생님의 가치관이 잘 보이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웃음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면 다 드러나요. 진정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활짝 웃으며 다가가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러한 올바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분이라서 책을 읽는 내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중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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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깡꿈월드입니다.
부모를 못 만나서, 시대를 못 만나서, 기회가 없어서.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오늘의 책.
끊임없이 도전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여성. 이길여 총장의 이야기. 1251. " 길을 묻다 " 입니다.
일제 강점기,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 6.25 전쟁 중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이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 설립했다. 또한 학생 수 기준으로 수도권 사립 4위 규모인 '가천대'와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 까지 설립한다.
앞에 항상 '최초'가 붙는 그녀의 인생을 견인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시골 콤플렉스를 공부로 승화시켰다. 겨울에 이불을 둘러쓰고 덜덜 떨면서 밤을 새우고, 잉크가 얼면 호호 불어가면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의사가 된 그녀는 1958년 개업한 이후로 58년생 개띠, 베이비품을 타고 실력 있는 여의사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거기에 친절하기까지 하다고 하니 환자들이 물 밀리듯이 밀려왔다.
그 비결은 아주 사소한 것, 청진기를 가슴 품에 넣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는 환자들이 차가운 청진기의 금속이 몸에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보고서 시작한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타인 중에서도 특히 약한 자, 환자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은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병원을 지을 때 병리실이 가장 쾌적한 곳에 위치한 것도, 화장실을 무조건 크게 청결하게 만든 것도, 건물에 최신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도, 모두 그녀의 배려심 덕분이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를 없애기 위해 무료 진료권을 나눠주고, 병원 보증금도 없애며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았다.
너무 달렸던 탓이었을까. 그녀는 한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고민이 생기면 사흘 밤낮을 안 자고 안 먹으며 골똘히 생각만 한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몰두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가시덤불 정글 속을 맨손으로 헤집고 빠져나오면 피투성이가 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난한 고행길을 헤쳐가며 화두를 좇다 보면, 막막한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같이 밝아오고, 내가 기어이 정글을 넘어왔구나 하는 순간 어슴푸레한 해답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 유학을 결심한 그녀는 일본의 의료 수준을 체험하며 산부인과를 종합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또한 두 가지 목표를 더 세운다. 하나 좋은 의사와 간호사를 길러내겠다는 것, 하나 무의도, 무의촌에 병원을 세워야겠다는 것.
그렇게 완공된 '인천길병원'은 역사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샘이란 뜻의 '가천'은 1991년 가천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의 수업료를 지원해 주고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갈 기회를 주었다.
남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운이 아니라 노력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의 시간이 없었던 적이 없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길이 없었다.
이길여 산부인과, 동인천길병원, 중앙길병원, 가천길대학, 가천의대. 그녀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최고가 되는 꿈을 꾸며 살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잠을 잊고 노력했다.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간들을 통해 삶의 동력을 얻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고 싶다는 그녀에게 " 길을 묻고 싶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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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한 사람의 삶을 보고 이렇게 많은 영감과 용기를 받을 수 있을까? '길을 묻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이다. 2020년 가을부터 2022년 가을까지 인터뷰로 진행 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인터뷰의 시간이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그리고 거기서 다루는 내용이 한 사람의 삶 전체인만큼 책의 페이지 수도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하나하나가 배울게 존재하는 내용들이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옥구에서 시작해 서울대를 가고, 의사, 대학교 총장이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이길여 총장의 마음과 생각, 행동들은 너무나도 과감하고, 추진력있으며 그럼에도 부실한 부분이 없이 노력과 사랑으로 메꾸는 모습까지. 삶의 구간 하나하나가 이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게 한다. 이러한 사람을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 약간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이길여 총장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인터뷰 내내 잘 느껴지지만 그 중에서도 딱 하나를 꼽아보자면 "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앞으로 달려야 합니다." 이 문장이 나의 기억에도 가장 남는 그리고 이길여 총장의 삶을 내가 봤을때 가장 본받고 싶은 점으로 고를 내용 중 하나이다.
말고도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이길여 총장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긍정적인 생각과 추진력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는지 알고싶다면 '길을 묻다'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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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길을 묻다』는 가천대학교 이길여 설립자의 회고록이다. 이길여 총장은 일제 강점기에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 6·25 전쟁 중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했다. 이후 미국 유학 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 설립,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 수 기준으로 수도권 사립 4위 규모인 ‘가천대학교’를 설립했다. 의료·교육·문화·봉사·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 설립자이다. 이름 앞에 항상 ‘최초’가 붙는 그의 인생을 견인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도전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 의사이자 다음 세대에게도 존경받는 교육자, 한 세기에 걸친 한반도의 역사가 투영된 그의 삶을 김충식 저자와의 2년 간에 걸친 대담으로 돌아본다. 일본어만 써야 했던 일제 강점기 초등학생 시절, 이길여는 무심코 우리말을 썼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뺨을 맞는다. 그것도 같은 조선인 교사로부터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에는 일본군 ‘정신대’ 징발로 온 동네에 난리가 난다. 딸이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혼 바람이 불었다. 이길여의 나이가 서너 살만 많았다면 진작 시집을 갔을 것이고, 지금의 길병원 설립자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담자이자 저자 김충식은 '책을 펴내며' 「발신 발휘 발산, 그 에너지원을 찾아」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일본어책으로 배운 세대로서, 매우 희귀한(?) 현역 대학 총장"이라는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나 그의 생각은 구식이 아니다. 그는 대학의 미래, 급변하는 인공지능 세상, 나아가 21세기 문명에 대해 새로운 통찰과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신(發信)한다"고 썼다.
저자는 통계청장을 지낸 오종남 교수(서울대 과기과정 주임)의 "이길여 총장은 이미지노베이션의 상징이다. 꿈과 상상과 비전이라는 이미지를 현실에서 혁신으로 접목하여, 성공 가도를 달려온 특별한 경영 리더십"이라는 말을 인용해 전한다. 그가 한국 경영학자의 모임인 경영학회에서 선정하는 명예의 전당(2020년)에 오른 건 같은 맥락으로 본다는 의미다. 저자는 그 리더십 역시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데 방점을 둔다. 그는 제자들에게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라고 가르친다고도 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격려하는 이길여 총장의 생각과 의지가 곧 리더십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길여 총장 자신이, 어림짐작으로 무모하게 도전해 온 것이 아니라는 데 저자는 동의한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서울의대 동창회 부회장으로 그와 함께 일했던 심영보 박사(의협 전 이사)는 "이길여 선생은 돌다리를 열 번은 두드리고 건너는 치밀한 분이다. 그렇게 두드리고 안 건너는 경우도 보았다"라는 말도 전한다. 그만큼 첫걸음을 뗄 때 '예비 타당성' 검토에 신중을 기하고, 추진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얘기다. 또 공무원교육원장을 지낸 윤은기 박사(현 협업진흥협회 회장)는, 이길여 총장에 대해 평하면서 "실력, 담력, 매력, 세 가지를 겸비한 감동의 리더"라는 기록을 남겼다. 탁월한 실적으로 증명하는 실력, 그리고 위기와 도전을 이겨내는 담력, 사람을 흡인하여 이끌어나가는 매력, 그 세 가지를 두루 겸한 특이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길여 총장의 '웃음'에 대한 유명한 예를 든다. 이 총장은 간호사 채용 면접 등에서 "크게 활짝 웃어 보라!"고 주문한단다. 그의 리더십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책은 회고록이니만큼 이길여 총장의 부모와 조부모님도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란 시대적 피지배 민족의 생활이 오죽했으랴. 그 어려움을 뚫고 공부는 특별히 집안의 관심사고 삶의 방식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는 무심결에 우리말을 써서 선생으로부터 뺨도 맞은 일이 있다고 하는 대목에선 독자마저 울분이 솟기도 한다. 그것도 조선인 선생이었다고 하니... 슬픔이 된다. 마침내 해방이 되고 이리여중에 입학했을 때 좌우익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은 좌익 선배 언니의 강권으로, 또 어느 날은 우익 언니의 손에 이끌려 시위 현장에 나섰다. 그때는 아직 어릴 때라 특별한 의식 없이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을 테니 시대적 아픔에 공감할 일이다. 우리가 해방된 지 6·25 전쟁마저 터진 뒤, 이 총장은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한동네에 살던 ‘차순이’, ‘신순이’가 징집됐고 한 사람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학도병으로 나간 또래 학생들, 서울대 의대 동기 남학생들이 전쟁터로부터 영영 돌아오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책에서는 서울대 의대와 병원이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부산 국제시장 부근에 있던 시절, 이길여 의대생은 영도다리를 지나 범일동 ‘하꼬방’ 자취집을 오가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책에는 그때의 어려움과 시절의 세태를 자세히 그려져 있다. "세 명이 비좁은 방에 누워 잘 수 없어 돌아가며 한 명은 앉아서 공부를 해야 했다. 서울로 환도했을 때 꽁꽁 언 잉크병에 입김을 호호, 불어 가며 공부를 했다"는 대목은 학업의 어려움보다 삶의 어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비참한 수준이었다.
극심한 생활의 어려움과 6·25 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후 영국 등에서 온 퀘이커 의료 봉사단과 함께 군산도립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했을 때는 그래도 생활고는 없었던 듯하다. 물론 잘 먹고 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 생활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짐작되기는 한다. 처음으로 이 총장은 인천 용동 우물가에서 ‘이길여 산부인과’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직접 환자들 돌보는 것보다 선진 의료를 배우고 싶어 미치도록 미국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비틀즈가 미국을 ‘침공’(브리티시 인베이전)하던 그해(1964), 미국에 갔다. 뉴욕 맨해튼과 브로드웨이를 거니는 날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산더미 같은 병원 일에 파묻혀 살았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조국을 향한 그리움은 〈미션 임파서블〉 같은 미국 드라마로 달랬다. 물론 이때의 〈미션 임파서블〉에는 톰 크루즈가 나오지 않는다. 킹 목사가 암살됐을 때는 워싱턴 D.C.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총소리를 들었고, 로버트 케네디가 저격당했을 때는 뉴욕 퀸스병원 로비에서 동료 의사들과 생중계를 봤다. “(1960년대)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미국에 가서 보니 모두 다 초라하고 비참한 수준이었습니다. 인천의 병원에서 쓰던 주사기, 장갑, 거즈, 기저귀. 이런 것들은 미국에 비교하면, 질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거즈나 기저귀 같은 것은 누더기가 될 때까지 삶아서 다시 썼고요. 주사기는 어머니랑 언니가 매일 밤 소독을 했습니다. 주사 바늘은 숫돌에 갈아 재사용했고요. 그런데 메리 이머큘리트 병원에서는 한 번 사용한 주사기는 그냥 버리더라고요. 세상에.”(p.162)
미국 생활에서도 조국의 비참함과 미국의 풍요로움은 이 총장에게 오히려 더욱 의지를 키워주었다. 미국에서의 의학 공부 이후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미국에서 영구 비자가 나왔다.(1970년) 미국에서 이 총장의 조언과 의료인 생활을 함께해온 후원자 역할을 해준 설리번 박사가 미국에서의 의사 자리를 남겨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자주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은 이 총장의 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에 남은 이유를 "너무 깊숙이 환자들에게 빠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회고한 대목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신은 환자에 미쳤었고, 환자도 자신에게 미쳤던 시절이라고 그때를 회고한다. 자신이 아니면 진찰을 받지 않겠다는 환자들을 놔두고 미국으로 다시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아마 의사가 되기까지의 고국의 현실과 미국의 풍요로움을 비교하면서 안타까운 고국의 환자 치료가 가장 큰 목표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자 김충식은 이때 이길여 총장의 조국의 환자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의무감 같은 것이 굉장히 강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총장에게 이때의 사연을 자료 조사를 통해 질문도 하고, 또 직접 들어가며 몇 개의 사례를 전한다. 1970년대 초 이길여 산부인과를 다니던 30대 잉꼬부부 중 어느 날 부인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이 총장을 찾아왔다.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간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이 총장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어 함께 울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친정엄마를 찾아가는데 그 분은 이 총장을 찾아온 것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또 낙태를 원하는 새댁에게 '남편과 같이 오라'고 돌려보낸 기억도 더듬어 밝힌다. 그후 그 분은 딸을 낳았고 딸은 '엄마의 보물'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얻어 정착했다는 사연을 〈경인일보〉에 소개되었다는 점도 환자에 대한 최선의 치료가 낳은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회고록이니만큼 이길여 총장의 일생을 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기이고 이제 중후반기로 넘어간다. 사실 이길여 총장의 업적 중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지금부터 시작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서평에서는 그 업적이나 걸어온 길을 전부 더듬어불 수 없다. 이후는 이길여 총장의 인생관, 세계관, 삶의 목표 등이 모두 드러나는 실제적인 업적이 쌓이는 시기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으니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은 권유한다. 어쩌면 많은 부분이 이미 신문·TV 등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는 가급적 널리 알려진 업적이 있는 현재보다 그의 목표 의식이나 경영 원칙이 가져온 미래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독자가 이쯤에서 회고록 중간 부분을 자르는 것은 마지막 한 가지 사실을 꼭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 어려운 현대사 한복판을 몸으로 헤쳐나온 이길여 총장에게도 사랑과 로맨스가 있었을까다. 아직 어떤 책이나 보도에서 읽어보질 못한 부분이 이 책에 짧게 소개돼 있다. 저자이자 대담자인 김충식으로부터 4년 동안 미국 의사 공부 중 한국에 온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딱 한 번 귀국했는데, 원래 동료 수련의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마리아와 마타라는 친구였어요. 셋이서 첫해에 2주간의 휴가를 반납했습니다. 그러면 그다름 해 휴가는 4주가 되지요. 그렇게 휴가를 세이브해 놨는데 막상 유럽으로 갈 때가 되니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한국에 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다 복귀했어요."(p.180) 이어 맨해튼 이야기를 꺼내는 대담자에게 이 총장의 답변에 로맨스 얘기가 딱 한 번 간단하게 등장한다. "한 남자와 첫 데이트를 했어요. 나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서울에서 중학생 때 혼자 미국에 건너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사업을 한다고 했다." 이 남자로부터 청혼을 하고 춤도 추고 했지만 막상 청혼에 대해선 섬뜩한 느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고 돌아와 밤새도록 울었다고 한다. 이게 로맨스? 조금 황당하지만 그 전후에도 로맨스는 없었다고...
저자 : 이길여
일제 강점기에 전북 군산의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과정을 일본어 교과서로 마쳐야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리여고에서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의 메리 이머큘리트 병원(Mary Immaculate Hospital)과 퀸스 종합 병원(Queen’s Hospital Center)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고 1978년 국내 여의사로는 처음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했다. 의료보험제도가 없던 시절 ‘보증금 없는 병원’을 써 붙이는 등 병원 문턱을 낮추고 무의촌과 낙도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에 앞장섰다.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와 철원, 양평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의료 수혜의 폭을 넓히는 데 헌신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민간인으로서는 최고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인재 양성을 위해 1998년 가천의과학대학교를 설립했으며, 경원대학교를 인수했다. 2012년에는 4개 대학을 통합해 학생 수 기준으로 수도권 사립 3위 규모인 ‘가천대학교’를 출범시켰다. 사재를 포함해 1천 6백억여 원을 들여 뇌과학연구소와 이길여 암ㆍ당뇨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기초 의과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 2009년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의 과학기술훈장을 받았다.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UN 여성대회 정부 대표, 서울대 의대 동창회장, 의사협회 100주년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현재 가천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가천의대 길병원,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가천미추홀봉사단, 경인일보에 이르기까지, 의료ㆍ교육ㆍ문화ㆍ봉사ㆍ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을 이끌고 있다.
저자 : 김충식
가천대학교 교수(언론영상광고학과)로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법학박사학위(미디어 저널리즘 전공)를 받았다.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간 뛰었으며, 주로 정치부에서 국회, 정당, 청와대, 외무부를 출입했다. 현장기자로서 금단의 성역이었던 중앙정보부, 즉 KCIA(Korea Central Intelligence Agency)를 심층 해부한 《남산의 부장들》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30대에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한국기자상을 두 번 수상(1984, 1993)했다.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 겸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아사히신문] 등에 칼럼을 썼다. 2004년 도쿄대학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치와 보도’ 과목을 1년간 강의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차관)을 지냈다. 저서로 《슬픈 열도》(2006), 《법에 사는 사람들》(공저, 1984), 《남산의 부장들》(2012)이 있고, 번역서로 《화해와 내셔널리즘》(2007)이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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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 다음 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될 리더 사랑과 헌신 이길여 총장의 한 세기를 그린 책! 정말 멋있는 여성! 난 여성리더를 좋아해서인가 정말 두꺼운 책인데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다 일제시대의 이야기도 재밌고 흥미롭게 읽은 책! __ 일제 강점기,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 6·25 전쟁 중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이후 미국 유학 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 설립,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 수 기준으로 수도권 사립 4위 규모인 ‘가천대학교’ 설립, 의료·교육·문화·봉사·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 설립. 모두 이길여 총장이 한 세기 동안 이룬 이력이다. 이름 앞에 항상 ‘최초’가 붙는 그의 인생을 견인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도전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 의사이자 다음 세대에게도 존경받는 교육자, 한 세기에 걸친 한반도의 역사가 투영된 그의 삶을 김충식 교수와의 2년간에 걸친 대담으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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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총장을 처음 안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한 게시물에서였다. 엄청난 동안이라고 올라왔고 자기 관리를 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외모로 이 분을 먼저 알았던 것이 죄송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이루어낸 업적이라는 점 믿기지 않는다. [길을 묻다]는 이길여 총장과 김충식 교수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읽기 쉽다. 2020년 9월에 시작해 2년여에 걸친 인터뷰이기에 내용이 알차다. 자기 자신의 기억이기에 희미한 부분을 김충식 교수가 정확한 날짜와 사건을 짚어준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들이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시절에 미국 유학을 가서 한국 보건에 충격을 받고, 이후 귀국해서 신식 기기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정말 아무나 못할 일이다. 현재 한국 의료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이길여 총장의 노력은 이 책에 짧게 다루기에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 차 문화 알리기, 대학 인수와 지금의 가천대 설립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인생의 단 한 순도 낭비하지 않고 살아온 게 느껴진다.
Q. 어떻게 해결책은 찾으셨습니까? A. 찾았습니다. 이때 생긴 습관인데 저는 인생의 어떤 고비나, 숙제를 맞이하게 되면 사흘 밤낮을 안 자고 안 먹고 골똘히 생각만 합니다. 물론 일부러 안 자고 굶는다는 말은 아니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몰두합니다. 그럴 땐 내가 밤새도록 가시덤불 정글 속을 맨손으로 헤집고 빠져나오며 피투성이가 된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난한 고행길을 헤쳐 가며 화두를 좇다 보면, 막막한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같이 밝아오고, 내가 기어이 정글을 넘어왔구나, 하는 어슴푸레한 해답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은 거예요. 이 부분은 꼭 따라 하고 싶다. 골똘히 생각하기는 말이 쉽지 실제로 행하기에는 어려우니 말이다. 나도 새벽을 맞이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대단한 사람이 해낸 위대한 일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아무나 걸어간 길이 아닌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걸어간 사람. 이길여 총장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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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고난과 역경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요. 맞바람이 바람개비를 돌리듯이,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삶의 동력을 얻는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그것이 언제나 나를 나답게 단련하고, 성취로 이끄는 동력이 됐거든요. 이 책은 의사이자, 가천대학교를 설립하신 이길여 총장님의 일생을 담은 회고록 입니다. 2020년부터 시작해 2년간의 대담을 토대로 지필된 책이라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이길여 총장님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더욱 와닿을 수 있게 합니다. 그녀는 의학분야의 최고, 진정한 멘토 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이길여 총장님은 "나같은 의사를 키우겠다" 라는 마인드로, 그녀가 그랬듯이 이웃에게 몸을 던져 헌신하고 강인한 도전 저인과 의지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라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셨습니다. 의학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교훈이나 어떠한 꿈의 발판이자, 인생의 좌우명이 될 수 있을법한 훌륭한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치며 결코 의사의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길여 총장님의 가정사, 그녀가 그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식민지와 한국전쟁 시기에도 버텨가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읽어갈수록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라고요.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방공호나 나무 위에서 공부를 하고, 기차를 타고 4년이나 통학을 하며 지금 시대의 학생들조차 상상도 못할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 성공한 이후에도 봉사활동에 눈을 떠, 의료봉사를 곳곳에 다니셨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의 유학생활에서 있었던 일들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귀국 후에 당시에는 흔치않던 병원명에 의사 이름 석 자 넣기를 하여 '이길여 산부인과'를 설립함으로써 그녀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신명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고난들과 활동분야를 넓히다가 가천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이야기까지, 여전히 환자를 사랑하며 의료분야를 위해 열정을 아끼지 않으시는 이길여 총장님의 생애를 접할 수 있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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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어떤 길을 가고 싶냐고 물으면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다.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오솔길을 가고 싶다고 하고 싶다. 꽃길도 있고, 고속도로도 있고, 가시밭길도 자갈밭길도 다양한 길이 있지만 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런지 오솔길처럼 조용하고 여유로운 길을 가고 싶다. 책은 2년에 걸쳐서 길병원장이자 가천대총장과의 대담을 담은 내용이다.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살아오신 역사의 산증인이자, 한 사람의 살아온 삶에 대한 회고록이다. 일제시대 둘째딸로 태어나서 외면 당했지만 스스로 언니가 하는 공부를 옆에서 보고 스스로 터득하고 책 읽기를 좋아한 사람으로 출발해서 이길여 하면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온다. 최초라는 말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최강동안의 비법은 물을 많이 마시고 하루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하고 날이 궂을 땐 러닝머신을 뛴다고 하신다. 누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자기관리 또한 철저하기에 지금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할아버지 시대가 다르고, 아버지가 다르고, 또 제가 달랐는데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조선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다는 말을 제게 하시지 않는 걸 보면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하셨던 거 같습니다. 그 시대라면 분명 여자에게는 신학문을 배우는 것에 반대하셨겠지만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보여진다. 병원을 우리집이라고 여기고 학생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르며 내 식구들을 보살피듯이 책임감 있는 마음가짐으로 대하셨으니 모두 다 존경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보증금 없는 병원, 그리고 쌍둥이 네자매를 산부인과에서 직접 받았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길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가진 소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지금의 이길여 총장님이 계신다고 본다. 미국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여겼기에 한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본다. 최초의 수식어와 최고의 지도자의 길을 걸으셨고, 후배 양성과 봉사의 삶을 사셨기에 존경하는 분으로 우뚝 서셨다고 보여진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실천하신 이길여 총장님의 회고록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일때 길을 찾고자 할 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길을 살아오셨기에 그 길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 분명 있다고 본다. 힘든 역경속에서도 꿈과 희망이 무엇인가 알게 해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서평단 자격으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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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깊은 구절
■ 감상평 |